'바뻐. 정신없이 바뻐. 이게 뭐니? 야반도주하는것도 아니고. 조금만 더 기다려. 한 20분이면 다 마칠거야.'
카카오로 날라온 문자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봐도 분명 숫자는 20 이었는데, 웬걸 벌써 시간은 분명 35분을 지나치고 있었다.
눈 앞으로 지금 집안에서 벌어지고 있을 일들이 파노라마 처럼 스쳐지나간다.
피식하고 옅은 웃음을 날리면서 결국 차를 아파트 앞에 대고 계단을 오르려는 찰라, 배낭을 둘러메고 양손에 손가방을 든 여전사가 비장감 마저 도는 포스를 내풍기며 나타났다.
그렇게 밤 아홉시를 조금 앞두고 허겁지겁 서두르다시피해서우리는 안면도를 향해 출발했다. 둘 다 일이 있으니 퇴근을 한 뒤이어야 하고, 요즘은 금요일 부터가 주말이 아니었던가.
또, 내 오랜 여행의 습관중 하나가 여행 목적지가 먼곳일 때에는 주로 야간에 장거리 이동을 하는 습성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남들은 야간 장거리 이동이 위험하고 피곤하다지만, 내 경우에는 오히려 한산하고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고, 나름으로는 어둠속을 달리는 색다른 묘미도 있고해서 야간이동을 즐긴다. 또한 가장 중요하기로는 여행시간 절약을 이유로 들 수 있겠다. 야간 운전은 혼자 조용히 하고 날이 환해지면 무엇인가 함께 보고 듣고 즐기는 여행시간을 더 많이 갖고싶은 이유에서다.
충주 시내를 벋어나다가 장보기를 보충하려고 충주대학교 앞 하나로 마트에 들렸다.
'제기랄. 진작에 여기 이런게 있는 줄 알았으면 그 난리를 안치루는건데..........'
마트 안을 돌던 왕짜증여사가 갑자기 짜증 가득담긴 푸념을 툭 던진다.
인근 주변이 주로 혼자 기숙하는 학생들과 일부 직장인들이 밀집해 사는 원룸촌이다 보니 마트에 잔반찬들이 다양하게 작게 포장되어 있었다. 가지수가 무척 다양할 뿐더러, 한 개의 가격이 이천원이란다. 맛갈스럽게 다양한 반찬들이 앙증맞게 포장되어 수북하게 쌓여있다. 저녁에 퇴근해서 다듬고 끓이고 찌지고 볶고 하면서 옷가지 챙기랴 여행가방 챙기랴 부산을 떨었을 터이니 지금 조금 억울한 생각이 들었을법도 하다.
'짱구 모친님. 마주앙 하나 살까?'
슬쩍 분위기를 쇄신해 볼까 하고 와인 한 병 사자고 제안을 해 본다. 젊은날 와인이라고 처음으로 접한 것이 마주앙이었는데, 요즘은 거기에 가지수도 늘고 라벨도 바뀌고 여간해선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마주앙이 없어서 다른 라벨을 살피는데.
'와인은 무슨? 나 오늘 쏘맥으로 할껴.'
충주 - 음성IC 가는 동안 속도계기판이 50 - 60 사이를 오르내닌다.
신발을 벗고 아에 책상다리로 야간운행을 즐기며 옆에 앉아있는 왕짜증여사의 표정이 뭔가 대견스러워 하는 표정이다.
- 그래. 길은 이미 나섰겠다 급할게 뭐가 있는가. 느릿느릿 가다보면 아무때고 안면도에 도착하겠지......... ㅎㅎㅎ
서해대교른 건너 행담도 휴계소에 들릴때까지 고속도로에서도 계기판 숫자가 70 - 80 사이만을 오르내린다.
차에서 내리니 쌀쌀하고 몹시 사나운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아무래도 겨울로 다시 돌아가나 싶다.
우동 하나랑 순두부 하나를 시켜 요기를 하는데........ 맛이 별로다.
다시 출발.
이런저런 이야기들. 속닥속닥. 큭큭. 히죽히죽. 키득키득.
보온병에서 커피 따라 마시고 나서....... 다시 속닥속닥 키득키득. 게기판은 여전히 60에서 오르락 내리락.
자정을 넘겨서야 자동차 불빛에 반가운 표지판이 얼굴을 내밀었다.
삼봉 해수욕장.
마을길을 돌고 돌아서 삼봉해수욕장 야영장을 찾았는데 아 글쎄............
칠흙같이 어두운 숲속의 야영장엔 단 한팀의 캠퍼도 없이 공허한 적막만이 차지하고 있었다.
- 뭐가 잘못된 거지?
- 날씨가 겨울 같으니까 다 철수 했나?
어디 지나가는 행인이라도 있어야 무슨 일이냐고 물어나 보지. 이 야밤에 어떻게 한다?
다시 차를 돌려서 한참 아래쪽의 꽃지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웬걸.
드넓은 주차장의 시멘트 바닦위에 두 군데에서 캠퍼들이 화덕에 불을 피우고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성난 바닷바람이 사정없이 가슴팍을 후벼파는데도 아랑곳 하지않고 제대로 캠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려고 이리저리 어둠속을 들추고 다녀본다. 어두운 바다 저편에 할미 할아범 바위가 잔뜩 인상을 쓰고 고약한 심술을 우리에게 부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주차장의 두 팀 외에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게 시방 무슨 조화속이여........
아무리 생각을 굴려보아도 뾰족한 타개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짱구아빠. 오늘은 우리도 여기서 그냥 차 안에서 자고, 날이 새면 방법을 찾아보자.'
이럴려고 그 먼 밤길을 달려 온 것이 아니었는데........
'그래. 그런데 기왕 차에서 잘거면....... 다시 삼봉으로 올라가자. 여기까지 와서 시멘트바닦 주차장이 뭐냐? 주차장이. 삼봉에 가서 야영장 숲속을 통째로 차지하고 자자. 한 번 다시 둘러보고 사람들이 없으면 가로등 근처에 텐트를 치던지, 아님 차에서 자든지 삼봉으로 가서 결정하기로 하자.'
그 야심한 시각에 다시 삼봉으로 꾸역꾸역 올라간다.
후레쉬 하나씩 들고 삼봉야영장 숲속을 들쑤셔보고 바닷가 백사장도 거닐어 보고, 한마디로 요상시런 난리법석을 떨어보아도 사방에 어디 사람 흔적 하나 찾을 수가 없다. 돌아다니기는 하였으나, 캠핑을 이대로 하기에는 조금 무섭다고 하여 결국은 차에서 자기로 했다. 아침이 얼마나 멀었으려나 만은.
후다닥 쬐끄만 꼬마 텐트 하나를 차 옆에다 치고, 차 안의 짐들을 몽땅 옮겨다 넣었다. 의자를 눕히고 침낭을 깔아놓았는데.
'어찌됐건 둥지까지 틀었는데 이대로 잘껴?'
이 아줌마 보게. 금방 날새게 생겼는데 그럼 뭐 아직 할게 남은겨?
이 시간에 도대체 차 안에서 뭘 하자는 거여? 시방?
훗훗 훗.
맞어. 할게 아직 남았지. 그럼 어디 슬슬 시작해 볼까?
야영장 숲속에서 차 안에 실내 미등을 켜기도 하고 후레쉬를 켜보기도 하면서 룸싸롱을 하나 개업해 보기로 한다.
플라스틱에 들은 중간 크기의 참이슬 두 병이랑 하이트 피티 큰거 하나 꺼내놓고 사과에 게맛살에 과자 등등 주점부리까지 죄 다 꺼내놓고 커다란 유리잔에 폭탄주를 제조한다. 3:7의 폭탄주 제조자는 왕짜증여사님. 두 잔의 제조 비율은 절대로 똑 같아야 한다는 사명감과 투지에 불타시고.
- 오키. 오키. 마셔부러.
- 잔 빗써. 애브리 바디 오키.
술잔이 돌고 도는데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린다.
엠티를 온건지 야유회를 온건지, 야영장 저만치 가로등 아래로 열대여섯명 정도의 젊은 남녀들이 나타났다. 창문을 통해 사방으로 오픈된 우리의 룸싸롱을 스쳐지나치면서 모두들 유심히 안쪽을 살피며 지나간다. 차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을 유심히 살핀 눈초리들이 조용조용 침묵을 고수하면서 살금살금 지나 바닷가 백사장으로들 몰려갔다. 수근대거나 킥킥거리는 녀석 하나 없이 말이다.
사실 말이지.
장소가 룸싸롱이라서 좀 그렇지. 들여다 보니 나이 지긋한 중년의 어른 둘이서 소담스럽게 술잔을 들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지들 생각에 집에 있는 부모님 생각이 안나겠어? 이 야심한 시각에 인적이라곤 하나없는 숲속에 지들도 혼자 오라면 무서워죽겠을 판에, 그런 마당에 세상일에 달관한 듯한 두 중년어른이 나름 분위기를 가득 엎 시키며 한껏 자기들 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지들도 훗날 나이들어 저랬으면 좋겠단 녀석도 있을 것이고, 아님 지금 집에 있는 부모님도 좀 저랬으면 하는 녀석도 있있을것이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
한참을 지나 그 무리들이 다시 백사장을 나와 우리 룸싸롱을 지나 마을의 펜션으로 가는데, 이번에도 조용조용 살금살금 옆을 스쳐지나간다. 이번엔 안을 살피지 않고 다들 고개를 돌려 외면을 하고 지나간다. 그래서 이번엔 우리가 창문에 낀 성애를 옷깃으로 문지르며 녀석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저만치 모두 사라질 때까지 끝까지 내다보며 실컷 구경을 했다.
- 우리의 이동 숙소와 꼬마 창고. 그리고 전날 룸싸롱에서 나온 쓰레기 봉지.(삼봉 해수욕장 야영장)
- 흐트러진 침대
'잉간아. 그럼 그렇지..........'
아침 일찍 일어나 주변 산책을 하던 중에 왕짜증여사가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키득 거리고 웃는다. 웃는 표정을 살펴보니 (니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내 그럴줄 알았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론. 뭐가 어쨌다는 거여 시방.
크크크크. 어이없는 실소가 더는 참지 못하고 터져나왔다.
지난밤 왜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어야만 했는지, 왕짜증여사가 가리킨 손가락 앞에 내걸린 프랭카드 한 장이 모두 말해주고 있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안면도 국립공원 전 해수욕장 야영장, 야영.캠핑. 취사 절대금지. 적발시 10만에서 50만원까지 과태료 처분. 단, 몽산포해수욕장과 학암포해수욕장 야영장에서는 캠핑이 허용되니 이용객께서는 그리고 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잽싸게 꼬마창고 텐트를 접어 낼름 치웠다.
그리고 서둘러 삼봉해수욕장을 떠나왔다.
- 삼봉해수욕장과 지척에 있는 백사장항.
백사장항은 삼봉해수욕장과 아주 가까운 인근에 거의 붙어있다.
조개나 해산물을 좀 구입하여 볼까 하고 백사장항에 들렸다.
작고 한산했으며 포구치고는 깨끗한 편이고 조용했다.
아침배들이 들어오면 장이 섰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게끔 한 여타의 다른 항구나 포구에서 겪었던 경험들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약간 커다란 건물의 수산물 판매장에 가보아도 여기저기 꽃게랑 쭈꾸미가 조금 눈에 보일 뿐, 영 기대에 못미쳤다.
인근의 다른 마을과 연결하는 다리는 거의 완공되어 가고 있었다,
방파제와 파출소 앞에 여기저기 고기를 말리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말라가고 있는 고기들이 오리려 수족관 안에 있던 꽃게나 쭈꾸미 보다도 더 싱싱해 보였다.
- 생긴 모습이 아귀를 닮았는데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멀리서 보면 윤기가 보일정도로 싱싱했다.
-- 백사장 항구 전경
몽산포해수욕장.
본래 이번 여행의 게획표에서는 빠져있는 곳이었는데, 상황이 상항인지라 몽산포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아뿔싸.
지난밤의 삼봉과 꽃지야영장에서의 풍경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지 않은가.
안면도를 찾은 그 많은 캠퍼들이 다 어디로 갔나 했더니만, 그들은 모두 몽산포 해변에 모여있었다.
토요일 아침 이른 시간에 찾아온 것이었건만, 이미 야영장은 꽉 차있었다.
해변과 야영장 일대를 모두 살펴 본 결과 바닷가 쪽에 붙어있는 사설야영장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에도 캠퍼들이 속속 주차장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캠핑이 중년 남성들의 새로운 로망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기사를 얼마전에 읽은것이 실로 실감이 났다.
번화가에 속속 늘어가고 있는 아웃도어용품점 만큼이나 다양한 취향을 가진 캠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뒷산에 산책을 가면서도 차림새는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려는 사람들보다 더 중무장을 하고 나서는 한국인들' 이라는 뉴스 기사처럼 실제 주변에서 그런 모습들을 너무도 흔하게 보면서 은근히 비위 상하고 역겨웠든게 사실이었는데, 그런 모습들이 캠핑장에서는 더욱 더 하였다.
숲과 자연 속에서 휴식과 안정을 찾으려는 순수한 캠핑에서 벗어나, 화려하고 비싼 고가의 유명브랜드 장비만이 캠핑의 본질을 보다 확실하게 보장해 준다는 듯한, 더하여는 고가의 브랜드 장비를 앞세워 도심을 떠난 자연속에서 마져도 자신의 체면과 위상을 내세우고 과시하려는 듯해 보이는 많은 역겨움들이 캠핑장 곳곳에서 스며 나왔다.
쉼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와 실용성은 점차 어디론가 사라져가고 있다. 야영장 곳곳이 돈더미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일전에 구경삼아 한 아웃도어 용품점엘 들른적이 있었다.
머그잔 하나에 사만 육천원이라 적혀 있었다.
맘에 끌리던 중형 크기의 텐트엔 가격표가 백삼십만원 이라 적혀있었다. 그러니 더 큰 것들은 얼마일까. 멋쩍어 하던 중에 점원이 다가왔다.
"캠핑이 새로운 대세로 들어섰지요? 주말에 가족들과 산으로 계곡으로 바다로 모두들 떠나고 계십니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많은 손님들이 대부분 셑트로 일괄 구매를 주로 하십니다. 보편적으로 나가는 셑트의 경우 대략 한 삼백만원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몽산포 해수욕장. 텐트에 누워서 바다가 보이는 노송숲 아래 자리를 잡았다. 난 끈도 아끼려고 아직 처음 그대로 가방안에 넣어놓고 비닐끈을 가지고 다니며 이용하는데, 주변의 다른 캠퍼들의 값비싼 브랜드에 그만 기가죽을 지경이었다.
- 둥지를 틀고나서 보니 명당은 명당이로세.
- 드넓은 몽산포해수욕장과 갯벌
갯벌 원정대.
호시탐탐 해변을 넘보던 왕짜증여사가 남들이 하나 둘 백사장으로 몰려가는 것을 보고는, '올타꾸나 물때가 왔구나. 물때가.' 하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빨간 고무장갑에 군청색 고무장화를 신고 호미를 움켜쥔 품세에서 가히 원주민의 포스가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차마 원주민 포스를 왕짜증여사의 쏘셜 포지션을 생각해 기록으로 남기지 않기로 했다.) 그뒤에 빨간 통을 들고 쫑쫑 따라다니는 노란장화의 사내 하나.
어슬렁어슬렁 갯벌로 들어가더니 서툰 솜씨로 여기저기로 파 해재끼기를 해대시는 왕짜증여사께서 한참만에 조개 하나를 건졌다.
씨익 내비치는 눈웃음 뒤로 '으흠. 요기 요렇게 숨어들 있었구만. 흐흐 이제 알았어. 느그들 꼼짝말고 있어. 이제 다 죽었어.' 하는 무한의 자신감이 은근하게 내비친다.
아니나 다를까.
손놀림이 점점 빨라지더니만 하얀 조개들이 줄지어서 따라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너니.
'아빠. 여기 봐. 왕거니야. 왕거니이.'
손바닦을 가득채우는 크기의 커다란 조개가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이 바로 그분이 오시는 날이었나 보다.
세번 째로 '아이고 허리야. 나 죽겠네.' 하면서 일어섰을 때, 빨간 통이 조개들로 가득차 있었다.
- 1 시간 정도에 이만큼 잡았다.
지금 한반도는 삼지사방 도로 공사중.
나의 지난 기억 중에서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전후해 뚜렷하게 새로와진 것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중 하나가 화장실 문화였다.
한반도 어디를 가도 변변한 화장실을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고, 혹간 있다 하여도 지저분 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디 경치 좋은곳에 가서 자리 좀 잡을까 십으면 '으악' 비명소리를 내지를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커다란 행사를 치루면서 좋아지다 못해 너무너무 좋아졌다. 도심 공원이던 산이던 계곡이던 바다던 화장실 없고 휴지 비치되지 않는 곳이 거의 없게 되었다. 어느 고속도로 휴계실 화장실은 차라리 내 집하고 바꾸고 싶어질 정도였다. 예쁘고 특색있는 화장실도 여기저기 등장하였고, 심산유곡의 절간에 있는 화장실은 많은 사람들이 굳이 찾아가는 문화유산이 되기도 했다. 긍정적 변화였다.
또 다른 하나의 변화로 느낀것은 바로 도로였다.
한반도 이곳저곳을 지나가다 보면 여기저기 사방이 도로 공사중이다.
교과서 지리 시간에 배운 작고 손바닦만한 나라 한반도. 그 작은 영토 안에 삼지사방 거미줄처럼 바둑판처럼 도로들이 서로 연결되고 엉키어 있다. 아마도 국토면적 대비 도로가 차지하는 길이나 비율로 치자면 가히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으뜸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지금 국토 여기저기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또 1차년 계획 2차년 계획 하면서 에정된 곳들이 무수히 많으니, 가히 도로왕국이 아닐까 싶다.
거기에 또 하나의 조금 다른 느낌의 도로건설이 거의 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제주 올레길에서 시작된 나들이길이 시대적인 붐을 타면서 대한민국 방방곡곡 지자체들이 앞장서서 길을 내고 길을 뚫고 길을 만들기에 여념들이 없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괴산 산막이 엣길. 등등 또 등등
(잘 만든 올레길. 웬만한 공단 하나 안부럽다)(지자체는 지금 도로공사중)
- 안면도 해안 둘레길
- 둘레길 4코스에는 두 구루의 소망나무가 심겨져 자라고 있었다.
-- 해당화 묘목밭에서 새로 나온 새순을 열심히 관찰중이신 왕짜증여사.
-- 소나무 숲길 사이로 이런 사구에도 고운 모랫길이 간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 모래야. 모래야. 다시 바다로 쓸려가면 안돼.
안면도 해안산책로 중 4코스 솔모랫길을 걸었다.
소망나무 두 구루가 자라고 있었다.
'뒤로 가는 시간을 이제야 깨달았다.
오래된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이제야 알았다.
시간은 앞으로 흘러가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시간은 새로운 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보다, 뒤로 흘러가는 것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 슬픈날의 행복여행/남기환 中에서
앞서서 걷다가 뒤를 돌아 보기도 하고
뒤에 따라가며 앞선 사람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고
그것도 아니면 나란히 서서 손을 꼭잡고 걷는다.
말을 건네기도 하고
물음에 답하기도 하고
그것도 아니면 한참을 침묵속에 바다만 바라보기도 한다.
가르치는 아이들 이야기
우리의 아들 이야기
아들 여자친구의 신상털기
우리가 가졌던 시간속에서 여행에 대한 이야기
그래. 여행.
누구를 만나고, 어디에 어떤 집에 살고,무엇을 입고 무엇을 타며, 무엇을 즐겨 먹으며 어떤 일을 하는지가 적어도 지금은 무의미하고 공허하게만 느껴지는 그런여행.
이번 안면도 여행이 실은 그런 느낌이었다.
왕짜증여사의 밝은 미소가 참으로 해맑게만 느껴진다.
'참으로 오랫만이다. 그치. 내가 이렇게 편안한 시선으로 너를 바라다 보고 있다는것이.'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내 어깨를 툭 치면서 이제부턴 그녀가 앞장을 선다.
'사랑과 믿음을 가지고 동행했으면 좋겠어. 생명을 바쳐 후회없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그건 결혼한 자들의 책임이자 의무야.'
------ 슬픈날의 행복여행/남기환 中에서
- 이번 여행중에 함께 읽은 책. 여러가지 많은 대화의 소재가 되어주었다.
- 주꾸미 축제 무대에 설치된 현수막.
- 넌 도대체 누구의 먹거리가 되고 싶어서 거기 그러고 있는거니?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하더니만.
쭈꾸미던 조개구인던 안면도에 왔으니 저녁에 좀 먹어보자며 나선 가장 가까운 항구 몽산포항이었는데, 쭈꾸미 축제가 열리는 날이란다. 그것도 오늘이 바로 축제를 개장하는 주말 토요일이란다.
선천적으로 이런 거창한 행사는 죽어라 기피하는 체질의 우리는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사람이 많이 모여들어도 우리 부부가 기꺼이 찾는곳은 아마도 여행중 각지방에서 열리는 전통 오일장 뿐일 것이다. 인파에 쓸려다니고 오만 오사리잡놈들이 득실거리고 질펀하니 술판이 벌어지고 미혼약에 취하기라도 한 듯 흥청망청 먹고 소리지르는 꼬락서니들이 보기 싫어서라도 달아나고 싶었다. 어쩐지 몽산포항 이정표 지날 때부터 차량이 길게 늘어서 있다 싶었다. 그런데 어쩌랴. 좁은 도로에 길게 늘어선 차량에 낑겨서 어떻게든 빠져나갈 길이 묘연해졌다. 앞 뒤가 관광버스 아닌가.
대충대충 흔들어 대는 길안내원의 수신호고 뭐고 오로지 외통길을 어절 수 없이 굼벵이 느린 속도로 항구로 글려들어갔다. 사방에 마구잡이식 대충 주차들이 되어있어서 요리조리 빠져나가기도 매우 힘들다. 마을을 휘돌아 해안쪽으로 한참을 돌아나가는 길이 포구 유일한 나가는 길이란다. 어쩌구저쩌구 앞차 꽁무니를 따라 빠져나가고 있는데, '어라' 다른 차가 빠져나가고 있는 공간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하며 일단 얼른 앞바퀴부터 들이밀었다.
'우리는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는데, 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들 알고 이렇게 모여들었을까?'
무수히 많은 인파들 사이로 기웃기웃 구경들을 좀 해보았다.
임시 부스와 식당 마다 사람들로 가득차있다.
쭈꾸미 볶음과 쭈꾸미 샤브샤브가 너도나도 맛있게들 먹고 있는 주메뉴였다. 아마도 다른 메뉴는 주문해도 오늘은 안되는 날 일것만 같았다.
수족관마다 쭈꾸미며 여러가지 조개며 꽃게들로 가득했다.
'어찌되었든 왔으니까 쭈꾸미 한 번 먹어보고 갈까?'
말은 그렇게 꺼내 놓고도 우리는 서로의 표정만 유심히 살피고 있다. 사실 우리 둘 다 저런 먹거리엔 별반 관심이 적은 탓이다. 누구 하나 탁 하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밍구적 밍구적대고만 있다가 그냥 조금 더 구경해 보다가 결정하기로 한다. 그렇게 행사장 주위를 어슬렁 거리다가 '저거야 저거. 우리 저거 먹을까?' '오 케이. 좋았어' 하고 단칼에 결정이 나는 먹거리는 바로 대하튀김이었다.
노랗게 튀겨져 맛갈스러운 자태로 수북하게 쌓여있는 대하튀김을 둘이서 열심히 먹는다. 우리는 본래 이런 부류 사람들인걸 어째?
어렵사리 겨우 몽산포 쭈꾸미 축제장을 빠져나오는데도, 들어가는 차량 행렬이 장난이 아니다.
여전히 해산물에 대한 미련이 영 가시지 않는다.
그래서 24KM나 떨어져 있는 안흥항으로 향했다.
- 안흥 포구의 안흥내항
가는 도중 안흥 도로표지판이 처음 눈에 띠자 뜬금없이 왕짜증여사가 빤히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안흥 표지판을 보니까 찐빵이 생각나.'
으잉?
순간 내 가슴속은 극심하게 요동을 치면서 부쩍 긴장하기 시작했다. 애써 태연한 척 앞만 바라보고 운전하면서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머리를 굴려도 답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안된다. 이러면 안된다. 어서 기억을 떠올려야만 한다. 기억을 떠올려 해답을 찾아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도무지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었다.
'이거 미치겠네. 안흥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시동생 생각이 왜 난다는 거여?'
'우리가 언제 셋째네 하고 여기 왔다 간적이 있단 말인가? 셋째하고 안흥 때문에 다투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이고 속터져. 미치고 팔딱 뛰겠네.
'안흥이 하고 셋째하고 어쨌다는 것이여? 시방?'
속으로 안절부절하면서 말은 못하고 있는데, 이런 내 모습을 멀뚱히 이상하다 쳐다보고만 있던 왕짜증여사가 불현듯 집히는게 있었는지 크게 웃으면서 손사래를 친다.
'오버하지 마. 당신 지금 이상한 쪽으로 자꾸 생각하고 있는거지? 그 찐빵이 말고 강원도 찐빵. 원주 지나서 안흥면의 그 진짜 찐빵. 아이고 이 사람아."
'아하. 강원도 찐빵.'
에구머니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놀랬던 내 가슴이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셋재 동생의 지난날 별명이 찐빵이었다.
시집와서 셋째가 장가들때까지 시동생을 부르던 호칭이 '찐빵삼촌''찐빵이 삼촌' 이었다.
거기에 살아오면서 시집식구 이야기나 친정식구 이야기가 조금만 이상하거나 삐뚤게 들리면 그것은 곧바로 부부싸움으로 이어지고, 때론 큰 싸움으로 비약되던 지난날의 아픈 기억들이 나를 그 지경으로까지 만들었나 보다.
(안흥)과 (진빵)이라는 수식어 뒤에 어떻게 (강원도)가 퍼뜩 떠오르지 않고 (셋째)가 먼저 떠오르는 나의 어처구니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
아무래도 가까운 시일에 셋째네하고 살풀이 여행이라도 한 번 해야지 않되겠다.
안흥항은 외항과 내항으로 구분되어 있을 정도니 제법 크고 번창하리라 짐작했었다.
찾아 간 곳은 내항이었는데, 마치 석탄산업이 망하고 난 탄광촌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한산하다 못해 처량해 보이기 까지 하는 피폐해진 뼈대만 남은 앙상한 작은 촌락 같은 모습이었다. 몇 몇 횟집을 기웃거려 보면서 과연 이런곳에서 장사가 될까 싶었다. 길게 늘어서 있는 오래되고 낡은 건물과 포구에 들어섰던 흔적만 남은 구조물들을 보아서는 지난날 크게 번성했던 커다란 항구였던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여기저기 기웃거려보고 지나는 사람들의 말을 동냥하여 들으니. 바다낚시꾼들에게만 중요하게 인식되어지는 항구란 생각에 도달했다.
주말과 휴일이면 낚시꾼들이 모여들고 그들을 배에 태워 바다 어딘가로 날라주고, 그들이 돌아오면 잡아 온 물고기들을 요리해 주는 인근 식당들이 불을 지피고, 밤길이 늦어지면 하룻밤 머물다 돌아가는 그저 그런 항구로 퇴락해 가는 쓸쓸한 모습을 짙은 주름살 처럼 여기저기 감추어 둔 항구를 뒤로하고 떠나왔다.
- 안흥항에서 돌아나오는 길에 한 농가 마당가로 수선화 꽃이 예쁘게 피어 길게 늘어서 있다. 잠시 멈춰서서 한 컷.
지금 안면도엔 진달래 꽃이 지천이다. 고만고만한 산기슭으로 무리지어 피어난 진달래가 고운님을 반기듯이 수줍은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다.
길가 가로수인 벚꽃은 대다수 떨어져 지고 있었으나. 군데군데 언덕넘어 늦게 피어나는 곳에는 소담스럽게 만개하여 있다.
지난날 남해여행에서 느꼈던 마늘밭의 그 짙은 푸르른 여운이 안면도 곳곳에서도 진하게 풍겨져 온다. 안면도에도 마늘밭이 참으로 많았다.
사방 어디에고 파헤쳐져 속살을 드러낸 땅은 온통 시뻘건 황토흙들이다. 마늘밭들 사이로 속살을 드러낸 황토밭 또한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그 황토에서 호박고구마가 생겨나는 것 같다. 길을 가다보면 여기저기서 호박고구마를 판매하고 있다.
날씨는 온종일 흐리고 간간히 비마져 뿌려댔다.
어제와 오늘 아침까지 확인한 일기예보는 틀림없이 화창하고 주말 여행이나 나들이 하기에 좋은 날씨라고 했었는데, 바람이 거세게 불어대고 겨울로 되돌아 가는 것처럼 쌀쌀했다.
그러나 안면도에 왔으니 서해의 일몰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차피 끝내 상황을 장담할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일몰의 장관하면 꽃지해수욕장의 일몰이 '한국의 비경 100선'에 든다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어쩌겠는가? 또 가야지.
베이스캠프에서 기어코 남쪽으로 24KM를 또 달려 내려간다.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차안에서 바다를 살피다가 또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그러면서 한시간 반 정도를 기다렸건만, 끄내 일몰의 타임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을 즈음에서야 체념을 하고, 그래도 왔으니 지난밤 어둠속에서 시커먼 모습으로 심술을 부려대던 (할미 할아범바위)를 향해 셔터를 눌러댄다.
'꽃지의 일몰아 안녕. 내가 분하고 기가차서 다신 오나 봐라.'
-꽃지해변 할미 할아범바위. 뒷배경만 일몰이었다면.........
---- 뒷 이야기는 다음으로.....................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延豊 - 과거로의 시간여행 (0) | 2013.05.14 |
---|---|
覺淵寺 - 그곳에 가니 이미 절이 있었네 (0) | 2013.05.10 |
산막이 옛길 - 파란 수면위로 떠다니는 길 (0) | 2013.05.09 |
화양구곡 - 선비의 발자취를 따라 도원을 거닌다 (0) | 2013.05.01 |
안면도 -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으로의 동행(2) (0) | 2013.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