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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씬 짜오. 나는 윤 태리의 동생 세리 라고 해.(Tôi là Seri, em trai của Yoon Tae Ri.)

by 피안재 2025. 1. 11.

 

 

 

 

 

흔히들, 상당수 여행자들은 (나짱)과 (나트랑)을 같은 장소를 가리키는 같은 용어로 사용한다. 어떻게 보자면 공항의 간판에서부터 온갖 여행안내서에까지 영문 표기인 (Nha Trang)를 사용하고 있으니 이를 그대로 발음해서 (나트랑)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당연히 옳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글로 쓸 때는 (Nha Trang)이라 적어도, 읽을 때는 (나짱) 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냐짱)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옳겠다. 베트남 현지인들 절대다수가 (나트랑)이라고 사용하면 알아듣기는 하지만, 현지인들 누구도 (나트랑)이라고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나트랑)은 근거도 없고 사용하기에도 영 불편한 오류로, 베트남 사람들은 가슴속에는 오로지 (냐짱)만이 있을 뿐이다.

어찌보면 단순한 듯 어렵고, 쉬운 듯 해보이지만 결코 이해가 쉽지않은 애매모호한 경우라 할 수 있는데....... 이 상황을 이렇게 약간 변형시켜서 이야기를 해 본다면 좀 더 이해하기가 수월해질 것 같다.

만약에 어떤 외국인이 서울 한복판에서 우리나라 사람에게 (조선인)이냐고 물어왔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 외국인이 한국의 역사와 연관 시켜 (대한민국)과 (조선)을 약간 혼동하는가 보다 하면서 대충 이해를 하고 넘어 간다. 보편 타당한 이해와 상식의 선에서 (조선인)과 (한국인)이 모두 같은 의미라는 것에는 충분히 동의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외국인이 만약 일본인이라면 사뭇 그 의미가 심각하게 달라진다. 일본인 이라는 바탕을 전제로 하고 등장하는 (조선인)이라는 용어에는 (조센징)이라는 과거사속의 아픈 과거 역사적 의미가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따라붙게 되고, 그렇게 등장한 (조선인)이라는 용어에는 ‘못돼먹은 한국인’ 내지는 ‘식민지 노예 신분의 한국인’등의 결단코 동의할 수 없는 거북한 의미가 부여된 (조센징)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조선인)과 (한국인)이 혼동되는 것 까지는 용납할 수 있겠지만, (조센징)과 (한국인)은 한국인 고유의 민족정서상 결코 같은 용어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나짱)과 (나트랑)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 된다고 하겠다.

하여, 최소한의 예우 차원에서라도 부득이 간판을 읽거나 글로 표기를 할 때는 (Nha Trang)이라 사용을 하더라고, 현지인과의 대화에서만은 (나트랑)이 아닌 (나짱)이라고 불러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그럼 이 나트랑(Nha Trang) 이라는 출처불명의 용어가 도대체 언제 어디에서 부터 등장 하였느냐?

아편 전쟁을 통해 청나라 대제국(중국)을 난도질해 가며 약탈을 일삼던 유럽 열강의 침략전쟁이 유럽의 중심부에서 발생한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드넓은 중국땅이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의 무주공산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호시탐탐 대륙으로의 진출을 노리던 일본이 이 틈을 놓칠 리가 없었다. 조선을 강제 합병시킨 일본은 여세를 몰아 만주를 침공하고 난징 대학살을 통해 중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되었다. 대륙 내부에 거점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이기도 했지만, 일본으로서 가장 절실한 것은 무기를 만들 철의 수급과 보다 중요한 석유자원의 확보가 급선무였다. 점령지 곳곳에 석유 탐사와 시추를 계속하면서 그들은 자연환경과 조건이 전혀 다른 보다 더 넓은 땅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하여 그들은 더 남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도착한 곳이 바로 지금의 베트남 땅이다.

비옥한 베트남을 두고 오랜 세월 전부터 유럽의 열강들이 치열하게 침략을 시도했었다. 결국은 프랑스가 승리하여 베트남을 점령하고 식민지배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식민지배의 기간이 이미 상당히 길었던 만큼 베트남 사람들의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는 독립투쟁의 역사 또한 대단히 길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이제 싸움질에는 어느 정도 이골이 났을 정도로 전투가 일상생활이 된 지가 오래전부터라는 뜻이기도 하단 것이다. 독일에게 자국 본토를 모두 빼앗겨 영국으로 망명정부를 만들어 프랑스가 쫓겨간 상황이었으니 이제 베트남의 독립은 요원해 보이기만 했다. 바로 딱 그런 시점에서 이 공황상태를 노리고 이번에도 일본이 손쉽게 베트남을 삽시간에 재점령해버린 것이다. 2차대전의 후반부인 말기에 일본이 베트남을 점령하였고, 한없이 부족한 전쟁물자들을 이곳에서 조달하고자 하였으니....... 비교적 짧은 점령기간(약 5년)이었지만 그만큼 그 피해 정도나 참상은 극에 달하고 말았다. 약탈 방화 살인 강간이 지극히 일상처럼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베트남도 우리나라처럼 해방이 되었다.

물론, 이후로 물러났던 야비한 프랑스가 과거 식민지의 지배권이 아직 유효하다면 다시 쳐들어 오고, 흔히 베트콩으로 대변되는 남북 내전이 재개되고, 추악한 야욕으로 가득 찬 미국의 참전으로 오랜 전쟁의 양상이 다시 급변하게 되지만........

베트남의 역사는 알면 알수록 깜짝 놀랄만큼 대한민국과 아주아주 닮았다.

2.000년의 역사를 되집어 보면 어느 한 순간도 대륙의 강국 거대 중국과의 대립과 마찰과 분쟁과 다툼의 순간이 없었던 적이 거의 없다. 덩치 크고 포악한 거인 옆에 살아간다는 이유로 한 시도 편한 적이 없었단 뜻이다. 고구려 평양에 당나라가 안동도호부를 두고 식민통치를 했었다면, 베트남 하노이에 역시 당나라가 안남도호부를 설치하고 식민통치를 했던 것까지 닮았다.

우리가 중국을 왠지 거북하고 마주하기 꺼려지는 은근한 적대감의 대상으로 여겨지듯이, 베트남 사람들의 중국에 대한 감정은 우리 정도의 생각에다가 적대감의 수치를 조금 더 높이면 될 것 같다. 절대 우호적으로 바뀔 수 없는, 어떤 역사적 운명적으로 반듯이 극복해 내야 하는 원수 같다고 해야 할까? 암튼 그 비슷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베트남 사람들이 그런 중국인들 보다 더 치를 떠는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베트남 가서 더 대접을 받고 싶으면 일본 여행자들과 함께 움직여라. 그러면서 ‘나는 한국인이다’를 당당하게 표현하라. 그 차이를 절감하게 될 것이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내 놓지는 않지만........ 베트남은 일본에게 사뭇 적대적이다. 상대적으로 동병상련이랄까? 한국인에겐 대단히 우호적이다.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일본이 저지른 만행과 베트남에 남겨놓은 아픔과 상처가 그만큼 너무도 깊고 컸음이리라.

나짱을 점령한 일본군 지휘부는 이곳에 휴양지를 건설하였다. 전쟁에 지친 일본군 고위층을 위한 위락시설을 마련하고, 강제 위안부를 동원하여 그들이 먹고 마시고 맘껏 놀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가히 지상천국이요 파라다이스라고 부를만 했을 것이다.

이내 나짱에 소식은 전 일본군대에 퍼져 나갔고, 누구나 공을 세워 나짱으로 특별 휴가 가기를 소원했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일본군대 내에서 (냐짱)을 일본식으론 있는 그대로 발음하지 못하자 (나트랑)이라 부르고 (일본어: ナトラン)라고 표기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물러가고 무뢰배 미국이 다시 침략을 해오면서 미국 역시 (나짱) 발음과 표기가 어렵다고 판단되자, 일본이 만들어 사용하던 방법대로 (나트랑)이라 부르고 (Nha Trang)이라고 적기 시작하면서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조센징)이라고 하면 그냥 넘어가지 못할 것 같다. 더군다나 그렇게 부른 사람이 일본인이라면 더더욱 더 말이다. 하지만 (조선사람)이라고 확연하게 구분되는 발음이라면 일단은 받아들이고, 짬을 내어 (조선인)과 (한국인)의 차이를 역사적 관점에서 짧게라도 설명을 해줄 것이다. 나를 (조선인)이라 부르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먼 과거에 일본인이 조선인을 대하며 적대하고 비하시키던 (조센징)으로의 취급은 용납할 수가 없다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 소견이다.

바로 그것이다. (나짱)과 (나트랑)의 차이가 딱 그런 정도의 차이인 것이다. 상대에 대한 예우의 차원에서라도 우리는 이야기를 할 때는 (나짱)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쓸 때는 (Nha Trang)이라고 쓰더라도, 다시 읽을 때는 (나짱)이라고 해주는 것이 옳다. 이미 나는 그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더 많은 사람이(적어도 한국 여행자들은) 그렇게 이해하고 실행해 주었으면 좋겠다.

'안녕! 나는 윤 태리의 동생 세리 라고 해. 오늘은 빈 원더스를 보여줄께. 기대해도 좋아.'

(Xin chào, mình là Seri, em gái của Yoon Tae Ri. Hôm nay mình sẽ cho các bạn xem Bin Wonders. Các bạn có thể trông đợi đó.)

‘내 이름은 세리(Seri) 랍니다. 윤 태리 언니의 하나뿐인 동생이랍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언니랑 함께 나짱으로 가족여행을 왔어요. 엄마 아빠는 어디에선가 겨울방학 휴가를 보내고 계실거예요. 오늘은 나짱의 빈 원더스 놀이동산으로 나들이를 갈 계획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내리고 있어요. 아주 조금씩 말예요. 그래도 우리는 갈 예정 이예요. 언니랑 나는 비가와도 가고 싶거든요. 우리가 원하면 아마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들어주실 거거든요. 아참. 빈 원더스는 우리 집(이천)에서 가까운 용인의 애버랜드 쯤으로 여기면 된다고 할아버지가 말씀해 주셨어요. 우리 가족은 모두 애버랜드 1년 자유이용권을 가지고 있어서 아주 자주 놀러가곤 했는데, 언니는 거의 모든 시설을 마음대로 타고 노는데, 저는 아직 키가 작고 어려서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타는데 제한이 있어서 늘 많이 아쉬웠어요. 그래서 여기 나장에선 어떨지 모르겠어요. 저도 재미난 것들을 많이 타고 놀고 싶거든요. 그리고 오늘 우리는 버스를 타고 가 보기로 처음엔 했거든요. 그런데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비가 너무 많이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할머니가 택시를 타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서둘러 택시를 불렀어요. 비가 내렸다 그쳤다는 반복하고 있는데....... 내가 오늘 나짱의 빈 원더스 놀이동산을 잘 보여 드릴께요. 저만 잘 따라 오세요. 혹시 길을 잃어버리시면 눈에 잘 띄는 곳에 서서 손을 들고 윤 세리라고 외치세요. 제가 금방 찾으러 갈께요. 아셨죠? 나짱의 빈 원더스는요? 정말로 최고였어요. 꼭 다시 갈래요.’

 

오늘 계획은 본래 호핑투어를 생각하고 있었다. 여행 출발 전 인터넷으로 예약을 할까 하다가, 때가 우기라서 현지에서의 모든 상황들이 늘 유동적이었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세차 추워지거나 파도가 거세 물빛이나 물놀이가 여의치 않는 일이 발생했을 때, 여행사에서 불가하다고 판단하여 일방적 취소를 하면 모든 예약이 순조롭게 파기가 되지만, 이용자 입장에서 취소를 하게 되면 예약금을 전부 떼이는 결과가 발생하기에, 이런 경우 현지에서 상황을 파악해 적어도 하루 전에만 예약을 결정하면 아무도 어떤 손실도 발생하지 않기에 나는 기꺼이 후자를 택하는 편이다.

어제 짬을 내서 쎄일링 클럽까지 다녀왔지만, 오늘쯤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호핑투어 스노쿨링 프로그램은 날씨 때문에 포기해야만 했다. 바다 속 물빛이 탁하고 바람이 많아서 물놀이 후에 배에 올라와 있는 시간이 자칫 병아리들에게는 고통스러울지도 모르겠다는 우려에서였다.

어쨌거나 아침에 일어서 날씨를 살피고 해변 산책을 하고나니 아무래도 오늘 호핑투어를 취소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차기 계획이었던 빈 원더스(놀이동산)로 스케줄을 바꾸기로 했던 것이다.

빈 원더스의 물놀이 동산이 해변 비치와 연계되어 있다. 바다 수영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해변은 나짱으로 먼 바다에서부터 밀려오는 파도를 빈 펄 섬이 등지고 앉아있는 형국이라 바닷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형국이라 나름 안전하고 평안한 바다수영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했고 썩 훌륭한 해수용장 이었다.

종일 놀이동산에서 보내려면 아침 식사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했더니 요녀석들 좀 과식한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먹는다. 그만큼 오늘 놀이동산이 크게 기대되고 있다는 반증이리라.

서둘러 빈 원더스로 가는 케이블 카가 있는 빈 펄 하버로 가자는데, ‘할아버지. 우리 오늘은 버스타보고 싶어요. 23번 녹색 버스 타러가요.’하는 것이 아닌가? 어제 할아버지가 시내 도보여행 중에 버스터미널의 녹색 간판을 가리키며 ‘이게 놀이동산으로 가는 23번 버스야.’ 라고 이야기 해주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오늘 버스를 타 보고 싶단다. 평소에 학교 등하교 버스와 학원 버스를 빼고는 버스를 탈 일이 없었을 아이들이니....... 일반 시내버스에 호기심이 생길 수는 있겠으나, 지금 이 상황에서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겠니?

허나 어쩌겠는가? 공주님들이 기어코 타 보시겠다는데....... 비를 맞으며 정류장에 가서 시간표를 보니 15분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어이쿠. 다행인지 불행인지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마당하게 비를 피할 곳이 없다. 결국엔 할머니에게 설득당해 허겁지겁 그랩택시를 불렀다. 그리고는 빈 원더스 하버로 달려갔다.

하이고야.

어차피 새로 꿰어진 스케줄이라 여기 역시 사전 예약을 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 길게 줄을 서서 표를 사는데 좀체 길이 줄어들지가 않는다.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몰려있다보니 의사소통을 통해 표를 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핸디폰 번역기가 없었던 시절에는 도대체 어떻게 소통을 했으려나? 어떻게든 돌아가긴 돌아갔겠지?

베트남은 놀이시설의 기준이 나이로 통용되지 않고 거의 대부분이 키 크기로 결정된다. 100cm 이하는 무조건 무료, 101cm~139cm 까지는 어린이 청소년 요금, 140cm 이상은 무조건 성인 요금이다. 나는 우리 병아리들 키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할아버지다. 큰손녀 태리(9살)는 135cm 이고, 작은 손녀 세리(5세)는 104cm 이다. 나는 당당하게 손녀 둘 다 어린이 기준으로 비용을 지불하려는데, 창구 아가씨가 자꾸만 세리가 100cm가 안되면 무료라고 하고, 태리는 140cm이 넘어 보인다고 한다. 글쎄 그렇게 해주면 나한테 더 이익이 되겠지만, 돈을 더 내더라도 우리 세리가 다 큰 어린이라는 것을 인정받는 게 더 뿌듯하다 싶어져서 거듭 신장 숫치를 확인시켜주고 제대로 계산을 한다.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무 나이가 많다고 시니어 할인을 해 주는데, 결과적으로 우리 네 사람의 입장요금이 똑 같아지는 것이 아닌가. 기꺼이 여권을 꺼내 나이를 확인시켜주고 나서 돌아서며...... ‘땡 잡았다’를 외쳐본다.

한참 걸려 표도 샀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빈 펄 섬으로 건너가 놀이동산을 맘껏 즐기면 되겠는데........ 아뿔싸!!!!

거센 바람 때문에 빈 펄 섬으로 가는 케이블카가 중단이 되고 말았다.

그럼 어쩌지? 어쩌긴? 다른 방법으로 가면 되지. 케이블카 대신 쾌속선을 타고 바다를 통해 놀이동산으로 데려간단다. 바람 때문에 파도가 높아지면 배가 더 위험한 게 아니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무조건 바람이 많이 불면 쾌속선으로 실어 나르고 놀이동산은 제대로 돌아간단다.

아무렴 어때? 놀이동산만 제대로 돌아가면 되었지. 그런데 나중에 체험을 통해 놀이동산에도 바람이 심하면 작동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나중에.......

성난 바다가 쾌속선을 심하게 뒤흔들고 있지만, 배는 바람보다도 빠르게 파도 사이를 가르고 내달린다. 사방으로 바닷물이 튀어 오른다.

하지만, 채 십 여분 항해 끝에 배는 빈 원더스의 선착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예쁘게 꾸며놓은 아름다운 미니어처 마을이 눈앞에 짠하고 나타났다. 흡사 동유럽의 어느 요정 도시에 도착한 것만 같았다.

‘아싸!!!! 오늘 예감이 아주 좋았어.’


나짱 해변의 앞바다 저만치 가로놓여 있는 혼쩨 섬(Hon Tre Island)을 통째로 차지하다시피 하고, 그곳에 초대형 리조트와 테마파크를 베트남의 최대부호인 빈(Vin)그룹이 2006부터 점차 개발하였다. 빈그룹은 잉 거대한 테마파크에 개성이 각기 다른 6개의 공원을 조성하여 어드벤처 랜드(Adventure Land), 킹스 가든(King's Garden), 월드 가든(The World Garden), 워터 월드(Water World), 씨 월드(Sea World), 페어리 랜드(Fairy Land)로 꾸몄으며, 중앙 광장에서의 특별 쇼를 더 하였다. 여기에 방문자들의 편의를 위한 레스토랑과 쇼핑 상점을 설치하면서 스타벅스나 롯데리아 등의 유명 브랜드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빈펄 랜드(VinPearl Nha Trang)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빈펄은 더욱 다양한 시설을 보완하고 추가하면서 최신식 현대적 테마파크에다가 주변에 계속 개발한 최신식 리조트들을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발전시키면서 이름을 빈펄에서 지금의 빈원더스(VinWonders Nha Trang)로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빈그룹의 포부나 바램에서야 ‘아시아권의 디즈니 랜드’를 꿈꾸었다고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들만의 바람이었다고나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이나 홍콩 등 실제 디즈니랜드에 범접하는 놀이시설들이 아시아에는 이미 여럿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신식인 롯데월드의 경우 테마 부문이나 면적이나 리조트 부문까지를 생각하면 분명 상황이 좀 다르다 하겠는데, 용인의 애버랜드에 비교하자면 빈원더스는 한참이나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 솔직한 내 생각이다. 애버랜드에 비교 대상이 된다는 것 조차도 버거울 정도의...... 수준 면에서는 많이 뒤떨어진다고 보아야 하겠다.

그러나 동남아 권에서 보자면 어쨌거나 최상급이고, 베트남을 대표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짱에 여행을 왔다하면, 꼭 한 번은 들려야 하는 놀이동산이 아닐까 싶다.

더구나 애버랜드에 비교해 가격이 한참 저렴하고 아주 조금 구형의 놀이시설들이 아기자기하게 색다른 느낌과 맛을 선사해주고, 거기다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정도의 한산함이라면 충분히 색다른 매리트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용인 애버랜드 1년 가족권을 가지고 수시로 드나들며 놀이기구를 거의 마스터 하다시피 한 큰손녀 태리의 경우도 색다른 즐길꺼리를 찾기보다는 한산하게 할머니랑 동생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과 놀이를 위해서 익사이팅 놀이기구를(동생 세리의 키 때문에 제한받는 놀이기구들) 그대로 지나치거나 나중에 나오면서 타보겠다고 미루면서 미련 없이 장소를 이동해 주는 모습에 ‘큰 애가 어딘지 모르게 다르긴 다르구나’하는 감회에 젖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 나짱의 빈원더스에서 가장 뜨거운 놀이기구는 당연히 (알파인 코스터)다. 1.865m의 길이나 되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길고 아찔한 스릴 만점의 난이도를 가진 놀이기구나. 거의 대부분 방문객들이 일단 빈원더스에 도착했다고 하면 무조건 달려가 길게 줄을 서는 명소 아닌 명소다. 우리가 갔을 때도 줄은 길었고 30분 이상은 족히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었는데, 태리가 세리를 설득하더니 이내 포기하고 돌아섰다.

다음으로 뜨거운 놀이기구는 (짚라인)이다. 높은 산허리에서 바다를 향해 그대로 내리 꽂듯이 하는 베트남이 자랑하는 가장 길고, 가장 가파르고, 가장 높은 짚라인이 바로 여기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태리는 가능한데 세리는 타기가 불가능하고 더하여 종착지가 출발점이었던 항구 옆이라는데 있다. 태리가 타고 내려가면 할머니나 할아버지중 한 명은 세리를 데리고 아주 한참을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서 내려가야 한다는 데 있다. 이번에도 태리가 포기를 해주어서 함께 걸어서 새로운 장소를 찾아 이동을 한다.

언니 태리의 이해와 양보로 우리 가족 모두의 여행이 한결 여유롭고 편안해 졌다.

게임 오락장도 들리고 키즈 카페도 들리고 여러 가지 올망졸망한 초보급 놀이동산 놀이에 푹 빠져본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할아버지다. 하이구야. 놀이동산이라는 데 마지막으로 와 본게 한 30년 쯤 되나? 우습게 보이는 놀이기구가 작고 협소해 끼이다시피 타기도 하고, 작아서 그런지 뺑뺑 도는 데는 또 왜 그리 빨리 도는 것인지........ 이 할아버지는 도저히 적응이 안되는데....... 병아리들은 그런 할아버지 모습이 재미있다고 자꾸 또 타자고 하는데......... 이거 솔직히 죽기보다 더 힘들다.

거듭거듭 손사래를 치면서 한 번 더 타기를 사양하는 이 할아버지에게....... 작은 손녀 세리가 왈....... ‘할아버지 살 빼!!!!!!’

헐!!!!

그날 놀이동산에서....... 세리에게 ‘살 뺄게’하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은 물론 손바닥으로 카피까지 하고 말았다.

오 주여!!!!! 대체 이를 어찌하오리까?

그딴 익사이팅 놀이기구 아니라도 우리는 충분히 재미있게 놀 수 있다?

왜냐고?

웬만큼 쨩 난다는 놀이기구는 이미 우리나라 애버랜드에서 충분히 섭렵했거든? 지금은 오로지 우리 가족이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를 골라서 즐겁게 누려보려는 중이고..... 괜찮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워터 파크이고, 바닷가 해변으로 가서 수영과 스노클링을 할 생각이니까 말이야.

‘할아버지 날으는 배 한 번만 더 타고 가요. 네?’

‘또 탄다고? 저걸? 할머니랑 타고 와. 할아버진 여기서 사진 찍어야지.’

‘사진은 아까 찍없잖아요. 같이 타요. 네?’ 할아버지 망가지는 꼴을 보며 또 신이 나고싶은 녀석들의 징그러운 심뽀.......

‘아이고 배야. 할아버지 화장실 다녀와야 겠네?’

‘그것도 거짓말. 아까 다녀왔잖아요. 함께 타요.’

‘할아버지가 챙피한 이야기지만..... 배가 끼어서 숨을 쉬기가 힘들어서 그래. 이번 놀이기구는 좀 봐줘라.’

‘그러니까 내 말은..... 할아버지 살 빼시라고요. 당장!’ 또 세리가 끼어든다. 할아버지 자꾸만 슬퍼진다.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그럼요 할아버지. 할머니랑 경주해서 이길만한 놀이가 없어요?’

‘있지. 당연히 있지. 할아버지가 미리 준비해 놓은게 있어. 좀 이따가 할머니한테 도전해서 이번엔 너가 꼭 이겨봐. 알았지?’

‘그게 뭔데요?’

‘버기카. 차 끼리 쫓아다니며 마구 부딪히는 게임이야. 도망가는 사람이 지는거지. 예전에 마검포 캠핑장서 못해본걸 오늘 여기서 해 보는거야.’

‘할아버지 저 무면허인데요?’

‘그래서 너가 이길거야. 면허 있는 사람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더 용감해서 이길 수 있는 게임이 바로 이거야.’

‘아싸!!! 나도 이제 할머니 이길 수 있다~~~~~~~~아!!!!!’

요녀석 커가면서 점점 할머니를 어떤 것으로든 이기고 싶은가 보다. 씨름도 진심이었고. 팔씨름도 진심이고 툭하면 키 재어보자고 하고.......... 오늘은 버기카로 도전한다.

우.리.태.리.지.금.신.나.쓰.

‘공자 말씀하시기를, 지혜 있는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니, 지자는 물같이 움직이고, 인자는 산같이 고요하니라.’ 라고 <논어論語 옹야雍也> 편에 적으셨다.(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꼭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어쨌거나 나름 어질고 인자한(?)나는 산을 좋아한다. 산에 올라 풍광이 뛰어난 장소에서 혼자 비박을 즐기기도 했었고, 인적 없는 계곡을 찾아 깊숙이 들어가 하는 캠핑에도 일가견을 가졌었다. 그런가하면 들로 산으로 수도 없이 쏘다니며 약초를 캐기도 했다. 반면에 가족들과의 어쩌다 물놀이 캠핑이 아니면 그다지 물을 좋아하는 편은 결코 아니다. 낚시도 할 줄 모르고 친구들 여럿이 즐기는 스킨 스쿠버에도 일절 관심이 없어왔으니 하는 말이다.

반면에 아내인 마귀할멈 챠밍여사는 물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내 꼬득임에 무수히 산을 오르기는 했지만, 물에 가면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헤엄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여행 중에도 풀장이 있으면 그곳에서 피로를 풀고 여가를 즐긴다.

이런 우리 두 사람에게서 유일하게 아들이 하나 태어났는데, 이넘이 생김새와 성별은 날 닮았는데 성격과 취향이 영 엄마 쪽을 골라 택하고 나왔다. 특히 물 좋아하는 것은 닮아도 닮아도 너무나 닮았다. 물놀이라면 열심을 넘어서 영혼가지 저당 잡혀놓은 것처럼 열중하고 심취한다. 성장하면서 보여준 몇 가지 물놀이에 대한 추억이 신화처럼 남아있을 정도다.

그런 아들 짱구가 겡구를 만나 가정을 이루면서 딸을 둘 낳았는데, 요렇게 태어난 태리와 세리가 제들 애비인 아들의 성향을 고대로 빼다 박았다. 녀석들의 물놀이 사랑은 어떻게 막거나 달리 해볼 도리가 없을 정도다.‘누구 딸래미들 아니랄까봐 말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를 나짱으로 택한 최우선 이유가 바로 물놀이, 즉 바다수영이었다.

어쨌거나 푸꾸옥은 어린 손녀들에게는 매번 이동해야 하는 동선이 길어서 불편하다 판단했고,(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음) 나짱은 나처럼 추위를 덜 타거나 현지인들에게는 겨울 바다수영이 가능하겠지만, 어린 아이들에게는 절대로 아니었다.(역시나 옳은 선택)

그래서 선택한 나짱이었는데........ 우기의 마지막 끄트머리인 시기에 예년에 보기 드물게 연일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왔고, 더하여 여행의 남은 일정 날씨도 온통 비 예보뿐이다.

그래서 하나의 방편으로 택한 것이 빈 원더러스 나들이였다. 테마파크 놀이동산은 물론, 워터파크에서 다양하고 난이도 수준이 다른 물놀이 시설을 즐길 수도 있으며, 일정 구역의 해변에서 바다수영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놀이시설을 가지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여기저기서 피자에 생과일주스에 주전부리도 했겠다, 이제부터의 시간은 바야흐로...... 고대하고 기다리던 물놀이의 시간이 마침내 찾아 온 것이다.

우리는 이제 워터 파크로 간다.

'빈 원더스 워터 파크야. 마침내 우리가 왔어. 여긴 우리 언니 윤 태리고 나는 동생 세리야.'

-- 길어진 관계로 이어지는 나짱 여행은 다음에서 이어가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