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이야기

'씬 짜오 나짱, 또이 뗀 라 태리 윤(나짱 안녕, 나는 윤 태리 라고 해)'

by 피안재 2025. 1. 5.

 

 

 

 

2024년 12월 2일에서 7일까지 처갓집 어른들을 모시고 베트남 푸꾸옥 여행을 목전에 둔 처지로, 또 12월 26일부터 새해 1월 1일까지 또 베트남 나짱을 다녀오게 되었다.

아무리 직업적으로 좀 한가한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한 해에 두 번도 아니고 한 달에 두 번씩 비행기를 타다니....... 차라리 이참에 아예 실버 여행사를 하나 차려서 가이드로 나서볼까? 이제라도 직업을 바꿔?

지난 여행 때 챠밍여사가 큰 손녀 태리를 데리고 가고 싶어 했는데..... 그러자니 동생 세리가 여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고심을 했었다. 하루만 안보여도 죽어라 찾아보는 언니인데 일주일을 헤어져 있으면 뻔히 눈치를 챌 것이고, 그 이유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세리를 빼놓고 언니만 데리고 여행을 갔다고 하면....... 그 원망과 후폭풍이 어쩌면 평생 갈지도 모른다는 어떤 불길한 예감을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동안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름 손녀 둘을 늘 공평하게 대하고 어른 못지않은 인격체로 존중해 주겠다는 약속을 잘 지켜왔다고 자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을 다 데려가던지, 아니면 둘을 다 떼어놓고 가던 지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이 90세가 넘으신 목사님(큰 동서)를 포함해 우리보다 훨씬 어른 네 분을 모셔야 하는 처지다보니 이런 상황에서 꼬맹이 둘을 보태서 돌보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이지 싶어 결국엔 꼬맹이 둘을 이번엔 떼어놓고 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미 어린 손녀 둘과의 해외여행을 입 밖에 낸 상황이 되었던 것이고, 크게 실망할지도 모르는 꼬맹이들의 표정을 떠올리니...... 평소 손녀들이라고 하면 그야말로 언제든지 목숨이라도 내걸 할머니의 처지로 이대로 어정쩡하게 상황을 넘길 수는 없었나 보다.

‘태리가 겨울 방학만 시작하면 곧바로 이 할머니가 태리 세리 다 데리고 베트남으로 호핑 투어 하러 갈 거야. 그게 할머니 약속이야. 다들 그런 줄 알고 있어.’ 라고 단정적인 폭탄발언을 해버렸다.

‘그래 엄마. 그게 좋겠다. 이번엔 어른들끼리 편하게 다녀오시고......’

‘어머니. 태리가 크리스마스에는 방학해요. 그러니 천천히 어른들 여행 다녀오셔서 생각하셔도 돼요.’

‘크리스마스 때 부터는 애들이 자유롭다고? 할아버지 지금 이야기 들었지? 병아리들 데리고 26일 날 떠나는 비행기 표랑 숙소를 구해보셔. 기다릴게 뭐 있어? 이야기 나온 김에 정해서 다녀오면 되는 것을...... 할아버지 알았지? 당신이 가장 잘 하는 게 그쪽방면 이잖아. 우리 병아리들과 그때 떠나게만 해 줘. 여행 목적지나 기간이나 소요 비용은 모두 무한정 열린 상태로 할머니가 다 책임진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지나면 출발하게만 해줘.’

‘엄마, 그게 갑자기 어떻게 돼? 방학이 하루 이틀도 아니니까 차차 상황 봐서 하면 되지? 일단 어른들하고 여행이나 다녀와서 생각하면 될것을? 그리고 애들이 아직 어린데 둘씩이나 데리고 해외까지 장시간 비행기타면서 감당이 되겠어? 걱정되네?’

‘다 잘 할 수 있어. 거기다 나 못지않게 손녀라면 꺼뻑하는 할아버지가 옆에 있잖아. 거기다가 여행쪽은 할아버지가 일찍부터 도사만큼 통달을 했으니까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렇지?’

‘당신 명령이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도맡아 해왔는데, 예쁜 병아리들까지 더한다면 영혼을 저당 잡혀서라도 임무 완수를 해야지. 암. 당연하지.’

‘겡구야(며느리 별명). 애들 짐 챙겨서 크리스마스날 집으로 데려 오던가, 아니면 우리가 데리러 가마. 너희는 그 다음날 출근해야 하니까 우리가 하루 일찍 데려와 같이 있다가 다음날 공항으로 가마. 알았지?’

‘네. 어머니. 그렇게 준비할게요.’

‘애들한테 이야기 해줘야 하겠네? 크리스마스 지나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데리고 해외여행 간다고. 그런데 아빠. 그럼 어디로 가실 건데요? 푸꾸옥?’

‘아니, 우리 병아리들하곤 푸꾸옥 안가. 아이들하고는 늦가을이나 겨울이면 무조건 나짱.’

‘나짱이면 나트랑이잖아요? 이번에 푸꾸옥이 좋다고 해서 가시면서 왜 애들 데리고는 나짱을 가시려 하세요? 특별한 이유나 계획이 있나요?’

‘그동안 내가 베트남을 종단하듯이 세 번이나 다녀왔어도 최근까지 푸꾸옥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최근 가장 핫한 베트남 여행지라고 여기저기 잡지랑 티비 여행 프로그램에서 난리를 피우던데, 그건 어디까지나 여행 업계가 날조나 조작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업적 목적을 가지고 그쪽으로 흐름을 유도하는 공동작전이나 연출이 틀림없어 보여. 다낭에 호이안과 바나힐을 엮어서 오랫동안 빼먹더니 약발이 떨어진다 싶어지면서 이번엔 나짱에 달랏과 무이네를 엮어서 또 한동안 잘 빼먹었거든, 그러더니 베트남 여행 시장이 서서히 정체되었거나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해 갑자기 푸꾸옥을 띄우고 여행시장 확장에 열을 올리는 것 같아. 여행자 후기도 읽어보았고, 해외여행자들 평가도 여럿 보았는데.... 솔직히 내 짐작으로는 부정적인 생각이 지배적이야.’

‘나짱은 한 물 지나갔다고 방금 이야기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거기를 간다고.....’

‘여행사 입장에서 시장의 확장성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표현이었고, 여전히 다낭과 나짱이 베트남 여행 시장을 선도한다고 볼 수 있어. 그건 틀림없어. 내가 나짱에 체류해 보지는 못했지만, 무이네서 호이안으로 이동할 때 버스 환승하느라 두 시간 정도 머문 적이 있었어. 내 주된 여행 스타일인 역사나 문화 유적이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주로 쫓아다니는 여행에서 본다면 나짱은 별로 매력이 없겠지만, 한 곳에 체류하면서 쉽게 돌아다니고 먹거리를 즐기고 바다에서 놀기를 치자면 오히려 다낭 보다 나짱이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을 거야. 일례로 다낭은 겨울 바다 수영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나짱은 겨울 바다 수영이 가능하고 호핑투어나 스노클링 프로그램이 진행되니까 말이다. 나짱부터 남쪽으로를 베트남의 진정한 열대지역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아버님. 우리 애들은 물만 있으면 잘 놀아요. 수영장만 있으면 돼요.’

‘나짱은 다낭에 비하자면 도시 면적이 훨씬 작아서 웬만하면 다 걸어서 다닐 정도야. 우리나라로 치자면 딱 부산 해운대 일대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약 6km 정도의 해변 백사장이 길게 늘어서 있고, 그 옆에 야자수 나무 우거진 공원이 길게 따라서 늘어서 있단다. 그리고 나면 해변도시의 특징인 도시의 중심 자동차도로가 또 길게 해변을 따라 들어서고, 그 길을 건너면 온통 초고층 호텔과 루프탑과 레스토랑과 오피스용 사무실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지. 하와이나 부산 해운대나 홍콩이나 다 비슷한 풍경이지. 그 해변의 빌딩 숲 바로 뒤로 현지인 거주지와 재래시장과 로컬 식당과 마사지 네일 숖들이 그득하지. 적게 움직이면서 휴식과 놀이를 마냥 즐기기엔 가히 천국과도 같은 곳이라 하겠다. 그리니 당연히 우리 병아리들에겐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나는 생각하고 있단다. 푸꾸옥을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이제 가려고 하고 있지만, 다낭과 나짱과 푸꾸옥을 놓고 우리 병아리들과 함께 갈 곳을 지금 선택해야만 한다면....... 나는 나짱이란다.’

‘그럼 장소도 결정 된 거네. 아빠 말씀대로 나짱으로 가야하겠네.’

‘엄마도 나짱 이야긴 지금 처음 듣지만...... 아빠가 나짱이라고 했으면 나는 무조건 좋아. 왜냐면 아빠가 여행에 관해서만은 정말 잘해왔거든. 이제껏 실망시킨 적이 거의 없어. 거기다 손녀들을 데려간다는데...... 이미 수많은 생각을 가졌었다는 반증이거든. 알써. 이번엔 크리스마스 지나면서 무조건 나짱이다. 비행기표만 확보해 보셔.’

결국, 그날...... 푸꾸옥 여행 출발을 일 주일이나 남겨놓은 상태에서 다음 여행지는 이제 가보아야 할 푸꾸옥을 배제하고 나짱으로 비행편을 예약해 버렸다. 다만, 당시에 난 귀국일로 1월 2일을 원했으나 할머니 요청이 1월 1일 귀국이 좋겠다고 해서 결국 그렇게 해버렸는데...... '1월 2일이었으면 참 좋았을것을'하는 아쉬움을 집에 도착하는 순간까지도 차마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런 사연일랑은 차차..........

크리스마스를 엄마 아빠와 보내던 병아리들이 오후에 여행 캐리어를 끌고 충주로 왔다. 9살 5살 어린이 둘인데 무슨 짐이 그렇게 많은지...... 수화물 위탁용 캐리어 둘에다 휴대용 접이식 의자에 졸리면 탈 유모차까지 바리바리 싸가지고 왔다. 숫제 할머니 할아버지 짐보다 더 많아 보인다.

하긴, 평소 아들과 며느리가 추구하는 생활이나 여행 방식이 럭셔리(luxury)하고 안락한 호캉스와 같은 여행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들 취향이니 당연한 결과이리라. 그들만의 방식에 언제나 지지와 성원을 보내는 할아버지가 바로 나이다. 그런데 문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고방식이 전혀 다르다는데 있다. 특히 이 할아버지는 구닥다리(spartan)에 로컬방식을 생활이나 여행에서 줄기차게 유지하고 추구하는 취향이다.

그런 결과에서 내가 돌출해 낸 최선의 방법은, 병아리들이 엄마 아빠와의 여행에서는 얼마든지 풍족하고 화사하고 멋진 럭셔리(luxury)한 여행을 얼마든지 즐기고 누릴 수 있다.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 있고 좋은 엄마 아빠를 두었으니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일단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와서 생활하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곧바로 배낭여행이나 오지 캠핑처럼 어느 정도의 불편과 신체적 고난을 감수해야만 하는 스파르타식 구닥다리(spartan) 여행임을 전제로 하고 이제는 녀석들도 충분히 알고 있고 적응해 나가고 있는 중이라 하겠다.

럭셔리한 여행도 여행의 일부이며 나름 배우고 깨닫고 얻는 것이 있듯이, 할아버지 방식의 스파르탄 방식의 여행에서도 나름 배우고 깨닫고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일단은 다양한 경험을 해보게 해주려는 목표가 첫째다. 엄마 아빠에게서는 시도해보거나 경험하기 어려운 것을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시간에서 다양하게 경험시켜주고 싶다.

엄마 아빠가 등산을 좋아하지 않으면 병아리들은 높은 산을 올라갈 기회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2025년에 흘림골에서 주전골 트래킹과 두타산 베틀바위 트래킹을 꼭 시도할 것이다. 계곡에서의 낚시도 꼭 체험시켜 주고 싶다. 봄이 되고 수온이 오르면 서핑부터 도전하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다. 이런 것들이 어쩌면 할아버지의 몫이 아닐까?

우리 가족 완전체 6명이 다모여서 간만에 함께 외식을 하러 나갔다.

겡구(며느리)가 예약을 했고 메뉴를 골랐으니 당연히 럭셔리한 식사가 틀림없다. 내가 현재 살아가고 고향 충주에 이런 고급 분위기의 식당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맨날 짬뽕에 국밥만 먹으러 다녀서 그런가? 암튼 며느리 덕분에 크게 호사를 누린 그런 시간이었다.

아파트로 돌아와 꼬맹이들의 여행 짐(캐리어 등등)을 모두 꺼내서 옮기기 전에 아들에게 하나하나씩 용도와 사용법에 대해서 설명을 듣는다. 코앞에 이 녀석(아들)을 품에 안았든 것이 근 40년 전의 일이었으니, 이거야 생판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수두룩한데 더해서 뭐가 이렇게 복잡해? 현장에서 쓰는 신형 공구보다도 더 복잡하다.

어쨌거나 아들이 제 자식들을 위해서 마련해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쭈욱 이렇게 살아왔고, 이제 아이들을 한동안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겨야 하게 되었으니 ‘엄마 아빠가 힘들게 고생하실까봐’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속내는 ‘제 새끼들 고생시킬까봐’ 걱정이 되는 심사가 틀림없어 보인다. 허니 어쩌겠는가? 아들이나 손녀들이나 다 우리 새끼들인걸. 그래서 열심히 설명을 듣고 시키는 대로 조립하고 해체를 해 본다.

캐리어와 모든 짐들을 끌고 집으로 올라와 커피 한 잔씩을 다 마시기도 전에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내가 무대포로 대갈일성을 토로해 버렸다.

‘됐다. 이제 병아리들이 무사히 우리 품으로 찾아왔으니, 너희들도 서둘러 너희끼리 계획한 스케줄로 돌아가려무나. 이 순간부터 우리들의 여행을 진짜로 우리끼리 시작해야 하겠으니, 너희는 너희 둘만의 방학을 실컷 즐기도록 하려무나. 일주일 지나서 여행이 끝나고 방학이 끝나는 날 다시 만나자.’

‘몇 번 캠핑 데리고 갔을 때를 빼곤 이제껏 엄마 아빠 없이 어디를 가본 적이 없는 애들이거든, 정말로 비행기 타고 외국까지 가서 일주일씩 괜찮을까? 지난 번 푸켓 다녀올 때 야간 비행기를 타니까 새벽에 잠투정을 조금 하더라 구요. 아빠. 괜찮으시겠어요? 애들 둘을 한꺼번에 감당하시겠어요?’

‘자신 있으니까 걱정 말거라. 매일매일 사진 보내줄 테니까 우리가 얼마나 잘 지내는지 확인해 볼 수 있을 거야. 우린 한 가족이야. 핏줄이 어떻게 당긴다는 것인지 알게 될 거야. 매일매일 엄마아빠가 지켜보면서도 잘 알지 못했던 우리 병아리들의 새로운 모습을 이번에 보여주마. 우리 병아리들 다 컸어. 애들이 스스로 잘 대처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도와 줄 거야.’

‘그랬으면 좋겠어요. 아버님. 부디 좋은 여행하고 무사히 돌아오세요.’

‘좋은 여행하려면 준비가 필요해. 그러니까 얼른 너희들은 출발해 돌아가거라.’

할머니까지 나서서 아들 며느리를 강제로 쫓아내듯이 몰아세운다. 결국 아들과 며느리는 병아리들과 어정쩡한 인사를 나누고 저네들 집으로 출발을 했다.

‘방학 잘 보내렴. 겡구야. 짱구야.’

밤늦게 거실에 길게 이불을 깔고 네 식구가 함께 뒹굴며 잠이 든다. 항상 그렇다.

아침 산책하고, 놀이터 가서 놀고, 마트 가서 장보고, 키즈 카페 다녀오고 나서, 오후 4시쯤 되어서 여행 짐을 싣고 인천 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물론 여행 짐은 대대적인 수술을 감행했다. 할머니의 거세 반대에 부딪치기도 했지만 끝내 과감한 감량을 결행했다. 아들 방식의 럭셔리한 스타일에 필요한 용품과 장비들을 뺐다. 할아버지는 어디까지나 스파르탄식 스타일의 순수 배낭여행가가 아니었던가? 아이들의 안전과 편안함에 필요해 가져가야 한다는 할머니 주장은 ‘내가 다 책임지고 알아서 할게’하는 할아버지의 공약으로 인해 묻혀 버렸다. 동남아 여행이 거의 대부분 밤비행기로 새벽을 이용해 이동하는 것이다 보니 자다가 깨야하고, 깨자마자 줄을 서거나 이동해야하는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수반하다보니 당연히 어린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고충이 되고 마는 것이다. 비행기 곳곳에서 아이들이 울고불고 투정부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난 우리 아이들이 어느새 다 성장했다는...... 그런 상황에 나름 훌륭하게 대처해 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다. 그래서 아주 자신이 있었다. 우리는 모든 과정을 썩 잘해낼 것 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차고 넘쳤던 것이다. 그러면서 힐끗 병아리들을 훔쳐보면서는 ‘모든 것은 너희들한테 달렸다. 할아버지 좀 살려줘라.’라는 기원을 담아 보냈다.

밤 9시 비행기는 언제나 그랬듯이 지연되었고....... 결국 새벽 2시 40분이 넘어서야 베트남 나짱의 깜란공항(Cam Ranh)에 도착했다.

베트남 남부의 12월은 우기(雨期)의 끝자락에 해당된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7월의 장마철에 해당된다. 실제로 우리나라 7월 날씨와 아주 유사하다. 평균 기온도 섭씨 22도에서 28도를 유지한다. 수시로 비가 내려 구질구질한 상황 속에서 외부활동을 해야 한다는 점 빼고는 나무랄 데가 오히려 없다고 볼 필요도 있겠다. 날씨 요정의 도움을 받아 우기 중에도 매일 비가 오는 것은 아닐 터이니 드문드문 맑은 날을 맞이하거나, 종일 흐린 하루 중에도 간간히 내리는 비는 오히려 더위를 식혀주고 그 짬을 이용해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코코넛 커피를 마시며 열대의 비오는 풍경을 즐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날씨 요정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고 다른 곳으로 휴가를 떠나버리셨나 보다. 일주일 여행기간의 날씨 예보가 일주일 내내 온통 흐리고 비가 내리는 암울한 예보뿐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막 도착한 캄란 공항엔 폭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때? 우리 세리가 새벽 잠투정 한 번 없이 지금 제 꼬맹이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는 걸....... ‘내가 자신 있다고 했지? 난 이럴 줄 알았어.’

도착할 때 잠깐 지치고 힘든 표정이었을 뿐, 사람들이 비행기에서 내리기 시작했고..... 할아버지가 각오했던 바대로 안아주겠다고 했을 때...... ‘걸어갈 수 있어요’ 하면서 씩씩하게 앞장을 섰다. 푸하하하하하. ‘야가 누구 핏줄인가 하면? 내 핏줄이 섞였어.’

픽업 서비스를 신청해 놓았던 터라 호텔에서 보내 준 차량을 타고 40분을 달려 나짱 중심가에 위치한 로지 호텔에 도착했다. 신통한 세리가 택시에서 다시 잠에 떨어졌던 터라 호텔에 도착해서만은 할아버지 품에 안겨서 이동했다. 큰손녀 태리는 이미 다자란 청소년이라 아무런 걱정이 없다. 스스로 다 알아서 잘 처리해 나간다,

호텔 체크인도 대충 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침에 천천히 다시 하겠다하고 자동키를 받아들고 방으로 올라갔다.

룸 컨디션이고 뭐고 살펴볼 겨를도 필요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커튼을 열어 재치니 코앞에 어둠속에서도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거실의 너른 쪽에 우리가 가져온 여행 짐을 길게 늘어놓고 짐도 푸는 둥 마는 둥하고는 일단 피곤함을 달래려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어 버렸다.

 

 

 

일단은 성공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퍼펙트하지 않은가.

어쨌거나 여기까지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여행은 이제 겨우 첫걸음을 떼어놓고 있었지만...... 날씨만을 제외하고는 예감이 아주 좋았다. 자신감이 저절로 넘쳐났다.

나짱(Nha Trang)을 선택한 것이 그중 가장 으뜸이지 않았을까 싶다.

비행기 표를 사기까지 다낭과 나짱과 푸꾸옥 중에서 고심 아닌 고심을 좀 하긴 했다.

다낭은 이젠 아주 익숙하고 여행과 휴식과 물놀이에 최적의 장소이겠으나 겨울철 바다수영이 현지인에겐 가능하지만 아직 어린 우리아이들에겐 불가능하다는 전제가 마음에 걸렸다. 우리 병아리들에게 휴식과 놀이란 무조건 물(수영장)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푸꾸옥은 베트남에서 겨울철에도 수영하기에 가장 수온이 높은 여행지이긴 하지만, 여행과 놀이나 쇼핑 하나를 선택하더라도 매번 먼 거리를 이동해야하는 번거로움을 수반하는 단점 또한 많은 도시다. 바닷가에 숙소를 구해 물놀이를 실컷 할 수는 있지만 매 끼니를 해결하러 움직이거나 또 다른 볼거리를 찾아가려면 빈번히 많은 수고를 해야만 하기에......적어도 우리 병아리들과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선택한 것이 나짱이다. 푸꾸옥 보다는 기온이 1~2도 낮지만 겨울철 28도 정도면 우리나라 7월 하순의 날씨라 오히려 덥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날 그날의 날씨에 따라 바다 수영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바다는 물론 숙소와 식당 등이 모두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빼곡히 들어서 있다. 아이들이 힘들여 걸어서 이동하지 않고도 충분히 여행과 물놀이가 모두 가까운 곳에서 가능하다. 우기의 끝자락이라 날씨 요정의 도움이 절실해진다는 점만 빼놓으면 당연히 나짱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이미 나짱에 머물고 있다.

나짱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다음 단계로 숙소를 정하기까지는 나름 또 몇 가지 고심을 해야만 했다.

어쩌면 그것들이 오히려 더 중요한 과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첫째는 무조건 푸른 바다가 그대로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게 펼쳐져 있는 씨뷰(Seaview) 룸이어야만 했다. 침대를 포함한 방안의 어디에서든지 커다란 벽면을 대신하는 커다란 창문을 통해 밝아오는 아침 바다와 낮과 밤의 바다가 그대로 보여야만 했다. 무조건 이 부분이 충족되고 나서야 다음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필수 충분 조건하에서 부단히도 검색을 많이 하고 또 했다.

둘째는 해변과의 거리였다. 창밖으로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다면, 낮이고 밤이고 아무 때고 그 바다에 가고 싶어지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게 해변에서 최대한 가까운 숙소를 원했다. 실제로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바다가 보고 싶어지면 수도 없이 달려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특별한 추억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셋째는 간편할망정 유럽 스타일의 뷔페식 조식을 제공하는 곳이어야만 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병아리들의 체력유지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만큼 아주 중요한 전제조건일 것이다. 우리 병아리들이 아주 특별한 입맛과 먹거리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둘의 먹거리 특성이 극과 극으로 완전히 다르다. 태리는 고기에 콜라 정도를 좋아하고 세리는 오로지 과일을 좋아한다. 일단 시각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거나 조금만 향이 강하면 끝까지 외면하는 아주 특별한 입맛들을 가지고 있다. 녀석들 공통의 입맛이라곤 짜장면, 탕수육, 간장계란밥 정도가 전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캠핑을 가면 언제나 할아버지는 녀석들이 남긴 간장계란밥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그래서 일단 유럽 스타일의 호텔 조식은 최소한의 위기를 넘길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 아닐까 생각하여 조식을 필수 조건에 넣었다.

넷째는 풀장(수영장)인데, 이번 나짱 여행의 경우는 가능하다면 지상 수영장(1층 시설)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신 추세에 따라 나짱의 경우에도 전망이 멋진 루프탑 수영장이 대세이지만, 시기가 겨울인 만큼 루프탑 수영장이나 고층의 수영장은 지상 수영장에 비해서 수온이 2~3도 낮아질 수 있으며, 사방으로 오픈된 환경으로 인해 세차게 불어드는 바람에 의한 추위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하여 부득이 겨울 수영장은 이용해야한다면 루프탑이나 고층 수영장 보다는 지상층(1층) 수영장이 훨씬 유리하다 하겠다.

이런 전제조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모두 충족시키는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해 선택한 숙소가 바로 로지호텔((Nha Trang Lodge Hotel) 바다전망 스위트룸 이었다.

블로그의 후기를 읽어보면 긍정과 부정이 혼합되어 있지만, 도착해서 쪽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해변 산책을 하고 주변을 둘러 본 소감으로는....... ‘썩 만족’이란 결론이었다.

나의 선택은 탁월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이번 여행을 아주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 것이다.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나가려는데 큰손녀 태리가 일어났다. 채 아직 피곤한 얼굴이다. 좀 있다가 아빠랑 전화통화 하겠다기에 두고 해변으로 나갔다. 산책에서 돌아와 아침을 먹으려 내려가려니 아직 작은 손녀 세리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벽 4시 가까이에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고 이제 8시를 넘어서고 있으니 어쩜 당연하리라. 다들 배가 고프다기에 세리를 깨워 식당으로 가려하니 녀석이 신통하게도 일어나서 앞장을 서서 내려간다. 하지만 식당에서 계속 하품을 하더니 기어코 엎드리고 만다. ‘우리 아침 식사 맛있게 하고 나서 바다에 나가야 하는데’ 했더니만 벌떡 일어나 정신을 차린다. 언제 그랬냐 싶은 모습으로 세리다운 특유의 해맑은 모습을 되찾고 맛있게 아침 식사를 한다.

‘세상에나....... 이 깜찍하고 예쁜 공주는 도대체 어느 별에서 온 거지?’

 

 

 

 

 

 

 


겨울이면 어떠하리, 더해서 우기인들 또 어떠하리. 하물며 매일 비가 온들 또 어떠하리?

우리 병아리들의 거침없는 행보에는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어라.

그나저나 세리할머니는 큰 난리를 만났다.

우리 작은 공주 세리에게는 ‘애착 원피스’가 있다. 주황색 꽃무늬 원피스가 바로 그것이다. 나짱의 아침 바다 산책을 하던 세리는 할아버지가 자신을 찍은 사진을 즉석에서 보여주었더니 그 사진이 몹시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할머니. 나요. 바닷가에 나올 때는 항상 이 옷 입을래요.’

‘입으면 되지. 그럼 물에 빠지지 말고 조심해 입어야지? 바닷물에 빠지면 세탁해서 말릴 때까지 시간이 걸리니까 말이야.’

‘네. 알았어요.’

녀석 대답은 떠끔떠끔 잘도 한다. 그 약속이 과연 지켜질 지는 여전히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평상시 할머니나 겡구(며느리)가 아이들이 흙장난을 하거나 옷을 더럽히는 놀이를 하는 것을 말리거나 제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크게 위험하지만 않는다면 조금 다치거나 옷이 찢어지거나 하루에 여러 번을 더럽혀도 뭐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은 큰 위험만 아니라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실컷 하게끔, 체험을 통해 깨우치고 경험을 쌓아가게끔 그냥 두고 방치하는 교육방식을 실행하고 있다. 넘어지고 조금 다치고 피가 나고 울고불고 해도 그저 못 본 척 당장은 방치한다. 시간이 지나고 울음을 그치며 그제서 상처를 돌보며 상황복기를 하는 타입이다. 나는 그런 겡구의 교육 방식이 지극히 현명하고 슬기롭다고 생각하고 적극적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아이들이란 기본적 인성과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가치관만 크게 삐뚤어지지 않는다면 그냥 건강하고 자유롭게 성장하면서 서서히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먼 미래에 부닥칠 삶이란 당장은 아이들의 영역이 아니라 절대자인 창조주의 영역일 테니까 말이다. 책을 많이 읽고, 많은 친구들을 사귀면서 많은 대화와 토론을 나누고, 여행을 통해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깨닫는 풍부한 경험위에서, 성인이 된 후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어쩌겠는가?

세리의 그 약속은 너무도 당연하게 십 분을 넘기지 못했으니 말이다.

해변에서 파도가 저만치 밀려왔다가 밀려가고, 느닷없이 안쪽까지 높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언저리를 쫓아다니는 놀이를 하다가 그만........ 발목까지 빠지고 말았다.

그럼 옷을 버릴까봐 여기서 멈추고 물러나느냐? 그럼 우리 세리가 결코 아니다.

지칠 줄 모르는 에너자이저 세리는 파도놀이를 거듭거듭 계속하다가 결국엔 치마를 온통 적시고 말았다. 그러면 아예 언니와 할머니까지 잡아끌고 다니면서 아예 밀려오는 파도에 풍덩 빠지는 놀이를 과감하게 실행한다. ‘옷을 버리지 않게 조심한다고?’ ‘개뿔.’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아예 언니랑 할머니까지 바다에 퐁당 빠지는 놀이를 벌인다. 겨울바닷바람이 제법 쌀쌀함에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영혼까지 쏟아 붓듯이 열정적으로 즐긴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할머니. 원피스 빨아서 빨리 말려 주세요. 다시 입어야 해요.’라고 재촉하기를 거듭한다.

어디 그 뿐인가?

'할머니. 우리 수영복 갈아입고 수영장 내려가요.' 라던가, '할아버지 포도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요. 지금이요.'

'태리 세리야. 너희들 지금 안춥니?'

'안추워요.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요.'

우리 꼬맹이들 포도 아이스 크림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첫날부터 호텔 주위의 미니 슈퍼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네 곳의 슈퍼가 있는데, 어느 슈퍼에 포도 아이스크림이 하나 남았고 바나나와 딸기아이스크림은 네개씩 남았다는 것까지..... 동네 슈퍼의 아이스크림 재고를 다 파악했을 정도가 되고 말았다. 할아버지 노릇이라는게....... 결코 가만히 앉아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뼈저리게 깨달았다.

호텔 앞쪽 이동식 카페의 망고 스무디를 좋아하더니....... 이내 도시 반대쪽에 있는 먼 식당의 애플 레모네이드에 심취해버리고 마는 손녀들을 가진 할아버지의 미래는......... 낙관하거나 예측하기가 불가능하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린다.(내 인생의 후반부가 이럴것이라는 생각을 꿈엔들 해 보았겠는가? 오! 주여!!!!!!! 할렐루야!)

여기까지는 여행이 아주 순조롭게 술술 풀리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서 배가 고파졌다는데 있었다.

잘못하면 녀석들 먹는 문제 해결이 가장 큰 골치 거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출발하기 전에 녀석들 입맛을 고려한 맛집을 24 군데나 사전에 준비해 갔었다. 거기에는 요즘 나짱에서 가장 핫 하다는 인기 음식 명소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현지인들만의 로컬 음식점들이 추가되어 있었다. 우리 병아리들이 먹을 만한 메뉴들을 우선으로 선정했다.

시내 중심가를 휘젓고 다니면서 몇 군데 음식점들을 실제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살피는데........ 모조리 싫다는 판정이 나왔다. 일단 분위기도 향료 냄새도 녀석들 취향에 맞지 않았다. (아!!! 어쩌란 말이냐? 이 엄청난 난관을?)

참으로 암담한 심정이 되어서 결국엔 늦은 점심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베이커리라도 찾아야 하겠는데....... 이거 한국에선 흔하디 흔한 정식 베이커리가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진땀을 흘려가며 쫓아다닌 끝에 찾아낸 베이커리에 들러서 코로상과 반미에 사용하려 보이는 미니 빠게트를 사서 자리를 잡았다. 샌드위치도 싫고 파이도 싫고 피자도 싫다니...... 할아버지 정말 미치기 직전이다.

빵을 해결하니 태리는 좋아하는 콜라로 해결되는데, 세리는 복숭아 음료수를 달래는데 다른 것은 다 있는데 복숭아만은 없다.(거의 절망적 상태다. 야들을 누가 이렇게 길렀을까? 아들. 정말 이럴거야?)

하지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일절 내색할 수가 없다. 저승사자 보다 무서운 할머니가 병아리들을 감싸 안고 있기 때문이다.(할아버지가 다 책임진다며?)(책임도 책임 나름이지?)

어찌어찌 달래서 요기를 마치게 해야 하겠는데.........

‘할아버지. 우리 호텔로 돌아가면 곧바로 수영장 내려가면 안돼요?’

‘안되긴? 오후 수영 해야지. 대신 배고프지 않게 여기서 맛있게 많이만 먹으면 곧바로 수영장 가는 거지. 알았지?’

‘앗싸. 이거 다 먹을 거예요.’

일단 뭐라도 먹여야겠기에 수영장 약속을 했다만...... ‘야들아. 지금 밖에 비오고 있어. 이 날씨에 기어코 수영장 가야겠니? 거기다가....... 그럼 오늘 저녁을 또 어떻게 해야 하니? 이거 아무래도 아들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절망이 엄습하고....... 앞날이 깜깜해 진다. 이를 어쩌지?

잠시 후에 우리는 기어코 수영장엘 갔다.

아무도 없는 수영장을 통째로 차지하고서 놀았는데....... 얘들이 도무지 끝낼 생각을 안하더라는 것이 문제였다. 비는 간간히 내리고 차가운 바람은 불어오고....... 어른들도 추울판에 어찌 우리 애들만은 추위를 모르는 것인지..........

'태리야 세리야. 오늘은 이만큼만 하고 올라가서 따듯한 물에 샤워하고 나서 망고쥬스 먹으며 쉬면 안될까? 수영장은 내일 또 내려오면 되잖아? 할아버지가 밖에 나가서 최고로 맛있는 망고쥬스 사올 테니까 올라가서 따뜻하게 샤워하고 있을래?'

'포도 아이스크림 먹으면 안되요?'

'추우니까 그러는거지. 그럼 할아버지가 망고 쥬스에다가 포도 아이스크림도 사 갈테니까, 아이스크림은 이따가 저녁 먹고나서 먹는 것으로 하자. 어때? 약속?'

'네. 약속.'

 

 

할머니 할아버지로 살아간다는 것......... 맨날 봄날일 것이라 기대하지 마세요.

자칫, 일생일대 최대의 고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우리에겐 그런 고난이 거듭거듭 다시 찾아오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것과도 결코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쁨과 행복이 그 고난 속에 숨어있으니까 말입니다.

우리 태리와 세리는 참 예쁘고 깜찍하고 어디에 내 놔도 눈에 탁 띄는 그런 아이들이라 더 큰 기쁨이랍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과 성원을 끌며 다니게 되니까요.

엄마 아빠와 여행오는 어린이들이 많이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포함한 3대 가족여행객들도 적지않게 있습니다.

하지만 늙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선뜻 나서는 어린이들은 우리 외에는 아직 보지를 못했습니다.

3대 가족여행중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물어 옵니다.

'엄마 아빠는 어디 있느냐고?'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도 어디있는지 몰라요. 방학을 만들어 보내주었거든요. 편하게 처녀 총각때 처럼 쉬다가 오라고요. 엄마 아빠 방학 만들어 주려고 할머니 할아버지랑 나짱으로 여행을 떠나온것이랍니다.'

'세상에....... 엄마 아빠 없이도 애들이 따라 나서나요?' '밤에 엄마 안찾아요?'

'괜찮아요. 평상시에도 우리끼리 이렇게 캠핑을 자주 다니니까요.'

'세상에나..........' 그런 이유로 함께 사진을 찍자는 요청도 가끔 받는다. 우린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게 그렇게 신기한건가?

암튼 우리의 여행은 이제 첫날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녀석들이 좋아하고 함께있는 우린 행복하고..... 아들 며느리도 어디선가 좋은 시간 보내고 있겠지.(아니, 오늘은 출근하는 날이다.)

암튼, 병아리들 걱정은 마라.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직은 누가 뭐래도 현역(?)이거든. 잘 지키마.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우리 가족 여행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