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s a white house in a town
Old and scared and tumbled down
어느 마을에 하얀 집 한채가 있었죠
오래되어 무섭고 쓰러질 것 같은 집
I can build it up once more
That's what memories are for
지나간 옛 기억을 위해
난 그 집을 다시 지어보겠어요
There'a fire, a chair, a dream
Was I six- or seventeen
그곳엔 벽난로와 의자와 꿈이 있었죠
내가 열여섯이나 일곱살때 쯤이었어요
As the years go by you'll find
Time plays tricks upon the mind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시간은
마음이 변하게 장난친다는 걸 알게 되지요
White house joy will disappear
What became of yesteryear
하얀 집의 기쁨은 사라지고
옛날 일이 되어버렸어요
With my mother and my father there
I knew love was everywhere
그 집에서 난 아빠 엄마와 함께
사랑으로 가득찬 세상을 알았어요
Was it hate that closed the door
What do children know of war
문을 닫아 버린 건 미움때문이었죠
아이들이 전쟁이 뭔지 알까요
Old and scarred and tumbled down
Gone the white house in the town
오래되어 무섭고 쓰러질 것 같은 집
마을에서 그 하얀 집을 이젠 볼 수 없어요
White house joy will disappear
What became of yesteryear
하얀 집의 기쁨은 사라지고
옛날 일이 되어버렸어요
With my mother and my father there
I knew love was everywhere
그 집에서 난 아빠 엄마와 함께
사랑으로 가득찬 세상을 알았어요
There's a white house in a town
Old and scared and tumbled down
어느 마을에 하얀 집 한채가 있었죠
오래되어 무섭고 쓰러질 것 같은 집
I can build it up once more
That's what memories are for
지나간 옛 기억을 되새기기 위해
난 그 집을 다시 지어보겠어요
That's what memories are for
The white house
그건 바로 지나버린 옛 기억의
그 하얀집을 위해
(빈 원더스) 나들이를 마치고 하버에서 그랩 택시를 불렀다.
우리 아들 또래쯤, 갓 마흔을 겨우 넘겼을 것으로 보이는 택시 기사가 낡은 차안에서 스테레오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스피커를 통해서 음악을 틀어놓고 있는데...... 아뿔싸. 나이에 전혀 걸맞지 않아 보이는 올드 팝송이다. 올드 팝송도 올드 팝송 나름이지. 완전 60년대 중후반에서 70년대 중반기까지의 진짜 올드 팝송들이 연달아 흘러나온다.
카펜터스( Carpenters)의 <Yesterday Once More> 이야 그렇다고 쳐도 엘비스(Elvis Presley)의 <kiss me puick> 같은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어서 한때 내 18번지 애창곡이었던 닐 세다카(Neil Sedaka)의 <You Mean Everthing To Me>가 흘러나온다. 거기까지만 해도 그저 그렇다 하는 느낌도 있었지만 이어지는 비키 레안드로스(Vicky Leandros)가 부른 하얀 집(The White House)을 들으면서는 그냥 두 손 두 발을 다 들 수밖에 없었다. 기사 본인은 오래전부터 그냥 올드 팝송이 편하고 좋아서 꾸준히 들어왔다는 것이 전부였다.
비키의 (하얀 집)을 이 멀고 낯선 나짱의 낡아빠진 택시에서 다시 듣게 될 줄이야.
흐린 나의 기억을 되짚어 보자면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때가 1976년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이종사촌 형이 휴대용 트랜지스터형 전축과 석 장의 LP레코드를 가지고 왔는데, 한 장은 비틀스(beatles)의 <Let it be> 앨범이었고, 다른 두 장의 앨범은 싱글 컷팅된 음악들 모음집이었다. 그중에 존 덴버(John Denver)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가 타이틀로 있던 앨범의 맨 안쪽에 수록되어 있는 노래가 바로 비키 레안드로스(Vicky Leandros)가 부른 하얀 집(The White House) 이었다. 당시 인기를 구가하던 정훈희와 패티 킴과 펄 씨스터스가 번안곡으로 불렀었고, 근자에 적우가 리메이크 하기도 했었지만, 나는 우리나라 식의 번안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뭐랄까? 엉뚱하리만치 전혀 다른 느낌 다른 맛이라고나 할까? 비록 원곡은 아니지만 비키가 부른 노래가 익숙하고 전형인 것처럼 나의 귀와 가슴이 길이 들었다고나 할까? 더하여 여기에서의 하얀집(The White House)을 백악관으로 오해하는 어처구니는 없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 노래의 원곡은 이탈리아 칸소네로 돈 배키(Don Backy)가 부른 <Casa Bianca>가 1967년 발표한 원곡이다. 하지만 별 반응이 없었고 이듬해에 마리사 산니아(Marisa Sannia)가 산레모 가요제에서 다시 불러 입선함으로써 비로소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음악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엄연히 미국과 영국이었다. 이탈리아 칸소네라는 장르의 한계가 분명해진 시점에서 그리스 출신의 가수 비키(Vicky Leandros)가 영어로 개사해서 <Casa Bianca>를 발표함으로써 크게 히트한 명곡으로 남게 되었다.
여기서의 카사(casa)는 집(house)을 가리키고 비안카(bianca)는 하얀(white)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도시의 지명인 나짱의 나(nha)는 집(house)을 가리키고 짱(trang)은 하얀(white)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나짱과 카사비안카는 모두 똑 같이 ‘하얀 집’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이제야 그것이 같은 의미였다는 것을 알아차렸음에 약간은 씁쓸하게 허탈한 웃음을 혼자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카사비안카(Casa Bianca) 하면 바닷가 바위절벽위로 새하얀 건물들이 그림처럼 올려 져 있고 저녁노을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그리스의 산토리니(Santorini)를 떠올리고는 했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살아왔던 사람들은 해변에 밀려온 하얀 모래 언덕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짱(하얀 집) 이라고 애초부터 불러 전해내려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럼 쉽게 익숙해 지지는 않겠지만 이제부터는 카사비안카(Casa Bianca) 하면 여기 나짱(Nha Trang)을 먼저 떠올려야만 한다는 말인가?
아무렴 어때?
세상에는 지금도 카사비안카(Casa Bianca) 라고하면, 험프리 보가트의 영화 <카사블랑카>를 떠올리거나, 버트 히긴스(Bertie Higgins)가 부른 <카사블랑카>를 떠올리는 사람도 부지기수일 텐데 말이다.
그림, 혹시 이쯤에서 버트 히긴스가 부른 <카사블랑카>라도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역시나 아니었다. 나도 알지 못하는 엉뚱한 올드 팝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러만도 하지. 이 기사 아저씨의 올드 팝 취향에 기준해 본다면 아마도 <카사블랑카>는 최신 팝송에 해당할테니 말이다.
헐!!!
그나저나, 날씨가 흐려서 지는 해가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해시계는 부지런히 제 몫을 다하느라 이제 지쳤을 법하고 서서히 땅거미가 내려올만한 시간이련만........ 우리 두 공주님과 할망구의 물놀이 사랑은 그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늘 집에 걸터앉아서 캔 맥주 두 개를 사서 마실 동안 제대로 눈길조차 주지 않고 연실 자기들끼리만 신나서 마구 떠들고 소리치고 바다에 뛰어들기를 반복한다.
비가 다시 시작되고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할 때쯤 백사장에서 나오기에 ‘이쯤에서 그만 하려나보다’ 했더니만 얼씨구........ 보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워터파크의 다양한 놀이시설들을 구경하고 슬쩍 엿보고 통과하고 분수대에서 샤워 흉내를 내면서 점점 안쪽으로 들어가더니만, 끝내는 워터파크의 가장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 (신비의 사원)까지 가는 것이 아니가. 그럼 절대로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 (신비의 사원)은 용인 애버랜드의 (카라비안 베이)에 해당한다. 매 삼십분마다 스릴 넘치는 인공파도가 폭포 쏟아지듯 무차별로 터져 나오는 (워터 폴) 풀장이기 때문이다.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어쨌거나 얼마를 기다리던 간에 파도에 휩쓸리기 한 판 제대로 하고 가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얼마를 지났을까?
엄청난 폭포 소리와 함께 마구마구 성난 바다폭풍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큰 손녀 태리와 할머니는 어찌어찌 대충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작은 손녀 세리까지도 튜브 안에 파묻히다시피 하면서 까지 거의 죽을힘을 다해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 너무 위험해 보여서 카메라를 내던지고 뛰어 들어가 안고 나오려 하는데, ‘괜찮아요. 할아버지. 조금만 더 할래요. 할 수 있어요.’라고 외치는 것이 아닌가? 몹시 위험하고 힘들어 보이는데도 언니와 할머니의 몸부림에지지 않으려고 바둥바둥 안간힘을 쓴다. 결국 할아버지는 서너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물러나서 아슬아슬하게 순간순간 위기를 넘기고 있는 작은 손녀를 손에 땀을 쥐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간절하게 어서 끝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마침내 파도가 잔잔해 지고 모두 물 밖으로 나왔을 때 기진맥진 거의 탈진상태에 이르렀으면서도 기어코 워터 폴을 끝내고 나오는 세리를 달려가 꼭 안아주었다.(이 녀석 뭐가 되려고 이러지? 승부욕 하나는 알아줘야 하겠다. 어이쿠. 요녀석을 어째?)
락커룸에 가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점점 하늘이 수상하다. 갑자기 어둠이 내리는 듯하고, 빗방울이 굵어지고 바람이 거세어진다.
밤중의 타타 쇼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두원진 후에 시작하는 야간 공연을 좀 보려고 계획했었는데....... 이러다 배가 제때에 맞춰 나갈 수 있으려나 하는 걱정이 될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다.
하여 부득이, 병아리들이 지치기도 했고 배가 고파 올 시간도 되고 해서 오늘은 여기쯤에서 일단 철수하기로 하고 방파제로 걸음을 옮겼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는지 나머지 일정을 포기하고 시내나 숙소로 서둘러 돌아가려는 방문자들로 어느새 대기장은 빼곡해지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니 여기저기 드러눕는 것이 신나기는 했지만 녀석들도 체력적으로 너무나 열심히 물놀이를 즐긴 탓에 버거운 하루였나 보다. 그나저나 가장 먼저 시급하기로는 무엇이든 먹어야만 했다. 오후 들어서 별로 먹은 것이 없지 않았는가.
‘우리 맥도날드 가서 치킨 먹을까?’
해서 꼬맹이들을 데리고 호텔을 나섰다. 코앞 길 건너편 센트럴 빌딩 1층이 맥도널드 매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쨌으면 좋을까? 우리나라처럼 후라이드 치킨 전문점처럼 꾸며진 것이 아니라, 스탠드바나 카페처럼 꾸며진 레스토랑 분위기라고나 할까? 거기다가 먼저 찾아 온 손님들이 너무나 많이 빈 자리가 전혀 없다. 치킨을 포장해서 테이크 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가계가 아니라 주문해서 앉아서 먹고 가는 카페 분위기다보니 웨이팅이 길어질 수밖에 없겠고, 당장 어디에도 빈자리가 보이질 않는다. 거기다 메뉴를 살펴보니 치킨은 조각을 중심으로 하는 세트 메뉴가 주류고 햄버거가 메인으로 보일 정도다. 콤보 세트 메뉴가 몇 가지 눈에 띄지만 손녀 태리가 먼저 절래절래 고개를 흔든다.
‘할아버지 우리 그냥 야시장 구경하고 눈에 띄는 길거리 음식 사서 호텔에 가사 먹으면 안 되나요?’
세상에나. 이 할아버지가 누구 할아버진데 우리 병아리들이 원해서 안되는 게 어디 있어?
호텔에서 불과 300m 떨어진 지척에 비교적 짧은 한 블록 거리에 나짱 야시장이 펼쳐진다. 뭐 대충 달랏이나 푸꾸옥에서의 야시장을 기대하고 주전부리나 실컷 해야겠다고 찾아갔는데........ 얼씨구!!! 기대와 전혀 다르게 그 흔한 해산물이나 꼬치를 굽고 지지고 볶는 그런 야시장 형태가 전혀 아니다. 그저 오로지 기념품 상점 위주에 맛사지와 과일 판매 가계가 군데군데 있을 뿐이다. 나짱에만 해도 담시장을 비롯해 유명 브랜드 짝퉁 시장이 유명할 정도로 성업 중이라는데 그렇다면 여기 야시장은....... 언뜻, 관광객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어설픈 짝퉁을 가지고 홀려서 바가지를 씌우는 야바위 시장이라고나 할까???
사실 뭐, 그렇게 생각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결코 아니리라. 그냥 그런 어설픈 장사꾼들이 대충 어설프게 판을 벌여놓은 애매모호한 장소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런데 말이다. 그게 아무리 어설프고 애매모호한 짝퉁시장이라고 해도 말이다. 어른들에겐 충분히 그렇게 이해가 되고 어느 정도 자중하면 되겠지만...... 일단 아이들이 들어섰다고 하면 상황은 조금 달라지게 마련이다. 무언가 기대에 차고 무언가 호소하는 듯한 ‘할아버지가 설마 우리에게...... 할머니라면 이럴 때 우리에게......’하는 그런 눈빛 말이다.
어쩌겠어? 뻔히 알고 당하지 말아야 하지만....... 병아리들이 우리에겐 약점이라면 치명적 약점인 것을......... 열심히 흥정을 해서 깎았지만..... 그래도 또 속는구나 하면서 지갑을 열 수밖에 없는 것은......... 내가 바로 태리 세리의 할아버지니까!!!!!
그러고 나서, 야시장 주변을 한참이나 돌고 돌아서 요즘 SNS에서 제법 핫 하다는 식당을 골라서 찾아갔다. 배는 고플 터인데 아무리 메뉴판을 넘겨보아도 우리 병아리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메뉴는 보이질 않는다. 어쩌겠는가? 스프링 롤에 새우 비비큐에 야채볶음 국수에 볶음밥에 쌀국수를 시켜 보았는데, 결국 우리 병아리들 망고 쥬스 하나씩만 들고 돌아오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에 결국 바게트 빵과 딸기 쥬스를 사서 그나마 허기를 면하게 하고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는 그런 저녁이었다.
‘정말, 녀석들 입맛에 꼭 들어맞아 “또 먹고 싶어요. 할아버지. 또 사주세요.”하는 음식이 나짱에는 없는 것일까? 이제 여행은 아무런 걱정도 되지 않는데 우리 병아리들 입맛 맞추는 게 최대의 과제가 되고 말았다. 도대체 무얼 대령하면 맛있게 먹어주겠니?’
밤을 새워가면서 녀석들 입맛때문에 오만가지 생각과 상상을 다 해본다. 나짱의 로컬 음식중에 개구리 튀김이 유명하다는데 슬쩍 한 번 먹여볼까?
'나중에 아들 며느리 알게되면 할아버지 체면이 뭐가되라고?'
'그나저나 어쩌면 좋단 말이냐? 하긴 아들이 그랬지? 편하게 생각하라고....... 배고프면 다 먹을 거라고....... 아들. 땡큐여.'
역시, 할아버지 보다는 애비가 애들에 대해서 뭘 더 잘 알아도 훨씬 잘 아는구나.
‘아빠. 애들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고 지켜보셔도 돼요. 아무것도 안 먹으려는 것처럼 보여도, 지들이 배가 고프면 뭐든지 다 먹게 되어 있어요. 저한테는 그러셨으면서.......’
‘야! 아들하고 손녀하고 같으냐? 너도 나중에 할아버지 되면 나처럼 안 그럴 것 같으냐?’
헐!!!
허긴, 과거에 내가 아들이 하나밖에 없어도 절대로 ‘오냐. 오냐’ 하면서 키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게...... 할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절대로 아빠가 된다는 것과 질적으로 다른 문제다. 뭐라고 딱 꼬집어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달라도 너무나 다른, 새로운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아들 임마. 할아버지가 어디서 고스톱 쳐서 따는 것 인줄 알아? 너도 나중에 되어 봐라. 나도 내가 이럴 줄은 꿈에도 몰랐단 말이다. 할아버지 아무나 하는 것 아니야 임마.’
그렇기는 하지만, 거 참 신통하다.
다른 때 보다 일찍 깨우지도 안았는데 병아리들이 스스로 일어나 다가와 속삭인다.
‘할아버지. 배고파요. 밥 먹으러 식당에 내려가면 안돼요?’
안되긴? 너희들 먹는 문제로 밤새 할아버지가 얼마나 고심을 했는지 아니?
해서 서둘러 호텔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는데.......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말이 입맛이 까다로운 우리 병아리들에게도 적용되는 줄은 몰랐다. 녀석들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거 앞으로 밥투정이다 싶으면 아예 작정하고 한 두 끼니를 걸러 굶겨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정말로 얘들을 굶긴다고?
어쨌든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한 아침인가!!! 오늘은 무척 무척 좋은 아침이다!!!! 더도 덜도 말고 딱 요만큼씩만......... 오늘 아침은 무조건 해피 대이야!!!(Oh, happyday!!!!!)
겡구야. 우리 절대로 병아리들 굶긴 것이 아니다. 어제 많이 노느라고 녀석들 배가 쉬이 꺼져서 밤새 배가 좀 고파진 것뿐이란다. 오해하면 안돼.
병아리들 먹는 것에 대한 걱정을 말끔히 털어버려도 되는 가쁜 하고 기분 좋은 아침식사였다. 느긋하게 녀석들을 데리고 후식 과일에 커피와 요거트 까지 즐길 수 있었다.
‘신통한 요 녀석들 무엇으로 보상을 해줄까?’
밖을 내다보니 오늘도 슬픈 날씨 운명에 대한 기대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꾸역꾸역 비가 내리고 있다. 이제까지의 여행 내내 ‘잔뜩 흐림과 꾸준한 가랑비’를 유지해 왔는데, 남은 여행기간 내내도 ‘언제나처럼 꾸준히 잔뜩 흐림과 아주 간간히 해는 볼 수 있음’에다가 ‘싸늘한 바람은 늘 그러려니 감수해야하는 날씨’를 암시하고 있다.
늘 우리를 지켜주던 날씨 요정이 코로나 사태 때부터 보이지를 않고 있으니 어디 정년퇴직을 하신 것인지 딴 세계로 발령을 받은 것인지........ 아무래도 포 시즌 게이트를 지나 높은 하늘 위 올림포스 산에 사서함을 두고 계신 날씨를 관장하는 여신께 e-mail로 문의라도 해보아야 하겠다. ‘저희랑 계약 파기하신 건가요? 이러심 안 되잖아요?’
숙소로 올라와 밖을 살피며 ‘도대체 오늘은 무얼 해야 좋을까?’를 두고 이런저런 스케줄을 궁리하고 있는데........ 또 헐!!!!
‘할아버지. 우리 수영장 다녀오면 안 되나요? 이젠 익숙해져서 저희끼리 다녀와도 되겠는데요? 수영장 가면 지켜봐 주는 할아버지도 있으니까요.’
‘지금 비가 내리고 있어. 아직 아침이라 추울 것 같은데? 우리 함께 보드게임 하다가 좀 있다가 가면 안 될까?’
‘조금만 하고 바로 올라오면 안 되나요?’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너희들만으로는 절대로 안 되지? 할아버지라도 따라 가야 되는 거야.’
세상에........ 애들을 누가 말리지? 거기다 일어나서 밥 먹자마자 또 물놀이라니?
헐!!!!!
결국 할머니가 또 따라 나선다. 가히 몸살 나기 직전이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아들이나 며느리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아도 시원찮을 처지에....... 5세 9세의 보호자로 모든 일정과 일과를 똑같이 해야 하는 고난의 행군 중이신 이 위대하신 할망구를 보라. 눈만 마주치면 ‘어떻게 좀 해봐! 나눠서 좀 도와주던가?’ 라는 표정으로 호소를 거듭거듭 반복하지만, 고개만 돌리면 한없이 온화하고 자상한 표정으로 또 쫄래쫄래 병아리들을 따라 나선다.
슬슬 걱정이 시작된다. 이거 이런 상태로 할망구가 여행을 제대로 마칠 수 있으려나? 아니면 귀국 후에 싸고 드러누워서 옴팡지게 내게 덤탱이를 씌워 앙갚음 하는 것은 혹 아니런지 말이다.
수영장으로 내려가니 스산하리만치 추위가 느껴진다. 그랬음에도 할머니는 손녀들 따라 물에 풍덩 빠져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혼신을 다해 함께 물놀이를 함께한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대로는 무리겠다. 어찌되었든 오늘은 좀 쉬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옴 머리를 굴려가면서 방법을 찾아본다.
오늘은 역시나 우중층한 날씨를 염두에 두고........ 나짱의 명소라 하는 포나가르 사원과 대성당을 들려 볼 생각이었다. 사진 찍기 좋은 폼 나는 카페에 들려서 쉬면서 도심 투어를 할 생각이었다. 맛 집도 들리고 쇼핑가서 혹 병아리들에게 베트남 민속의상인 아오자이를 입혀 볼 생각이었다. 세리가 호감을 보인 네일 아트를 해주고 싶었다. 할머니를 좀 쉬게 해줄 수 있는 방편으로 마사지를 계획했었는데, 우리 병아리들이 질색을 해서 마사지는 이번 여행에서는 포기하기로 마음먹었었다.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호핑투어와 스노쿨링은 변함없는 날씨 때문에 계속 날씨의 추이만 지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도대체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면 좋단 말인가?
‘태리야 세리야. 할아버지가 오늘 우리가 함께 할 스케줄에 대해서 상의하고 싶은데, 들어보고 생각을 이야기 해줄래?’
‘뭔데요?’
‘우리 오늘은 머드 스파라고 하는 온천을 가보는 게 어떨까? 작은 욕조에서 황토 진흙물에 몸을 담구고 문지르면서 피부 마사지를 하고 따뜻한 온천에서 물놀이를 하는 거야.’
‘황토 마사지 싫어요. 뜨거운 온천도 별로예요. 할아버지. 그냥 여기서 놀면 안 되나요?’
‘황토 마사지라는 것은 그런 게 있다고 할아버지가 그냥 설명한 것이고........ 거기가면 아주 커다란 수영장이 네 개나 있어. 그런데 두 개는 약간 따뜻한 수영장이고 두 개는 여기와 똑같은 차가운 수영장이야. 시원하게 차가운 수영장에서 실컷 놀다가 비가 더 많이 오고 바람이 불어 추워지면 그땐 따듯한 수영장에 들어가서 실컷 놀 수 있는 그런 곳이야. 그냥 따듯한 물이 나온다고 해서 온천이라는 뜻이지 놀이동산 수영장과 다를 것이 없어.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커다란 수영장이 네 개나 있는 곳이야.’
‘그렇다면 좋아요. 온천 수영장 갈래요.’
‘저도요. 따뜻한 수영장 가고 싶어요.’
슬쩍 뒤편의 할망구를 쳐다보니 환한 미소와 함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그래. 참으로 다행이다. 병아리들도 실컷 물놀이 하고 할머니도 푹 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 오늘은 우리 모두 머드 스파로 하루를 푹 쉬러 가는 날이다.'
탑 바 머드 스파(Thap Ba Mud Bath)는 나짱을 찾는 여행자들에게는 거의 필수코스처럼 일컬어지는 여행 명소라 할 수 있겠다.
하루쯤 할머니도 좀 쉬면서 여행을 하면 좋겠다 싶어서 하나의 방책으로 마련한 것이 온천 여행이었고, 수영장이 여럿 있다는 사실에 병아리들이 선뜻 따라나섰던 것이다. 머드 스파에 몸을 적시고 따뜻한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아래서 자연 마사지도 받고, 냉탕과 온탕 수영장에서 쉬엄쉬엄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 정도 지친 체력을 회복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오로지 할아버지의 머릿속에서만의 생각이었음 뿐이었다. 한마디로 모두 개뿔이더란 말이다.
물 만난 병아리들이 어디 잠시라도 할머니를 그대로 두겠느냐는 말이다.
비치 파라솔 아래 안락의자까지 두 개나 확보해 놓았건만, 한시도 가만히 앉아서 쉬지를 않는 병아리들을 쫓아다녀야만 하는 할머니 처지는 그야말로 (냉정과 열정사이)가 아니라, 냉탕과 온탕...... 그러니까 천당과 지옥을 번갈아 드나들어야 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의 행군이었던 것이다.
참 신기하고 놀라울 정도로 신들린 것 마냥 열심히들 잘 논다. 물만 만나면 언제나 마냥 신나고 그렇다. 그날 결국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덜. 너네 아무래도 어디 바닷가로 이사해야 하는 것 아니니?' 그러자 아들 왈, '아빠. 이사는 나중이고 그렇게 무리하시면 엄마 탈 나는 것 아니예요? 걱정되네요.' 이놈이 항상 엄마 걱정은 하면서 아빠에겐 무덤덤한 태도를 보인다. 설마 무관심까지야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런 중간에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가 한 가지 새롭게 등장했다.
온천 스파의 곳곳에 카페나 레스토랑 형태의 휴게실이 마련되어 있는데, 오늘은 한 곳만 문을 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가고 있다. 배가 고파 올 시간이 되었기에 테이크 아웃이 가능한 메뉴를 살피러 갔는데....... 여러 가지 베트남 현지 음식은 당연히 우리 병아리들에게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렇다면 피자 메뉴뿐이고, 4가지 피자 중에서 2가지가 가능하다고 해서 주문을 넣었는데, 좀 지나서 직원이 다가오더니 주문한 피자 재료가 모두 떨어졌단다. 그래서 다른 피자를 주문하려 했더니 오늘 피자 판매가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헐! 이런 낭패가....... 슬리퍼를 끌고 직원의 양해를 구해서 온천 밖의 주변 상점으로 쫓아갔는데....... 현지 로컬 음식 서너 가지 외에는 병아리들이 먹을 만한 음식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닌가. 파라솔로 돌아와 할머니랑 현실에 닥친 먹거리 문제를 상의해 본다. 소중한 병아리들을 정말로 굶겨가면서 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결론은 조금만 더 놀게했다가 서둘러 나가야 한다는 결론인데........ ‘할머니. 우리 배 안 고파요. 가방에 싸가지고 온 음료수랑 바게트 빵이 아직 남았잖아요. 그거면 충분해요. 빵 먹으면서 좀 더 놀고 싶어요.’
제발 누가 애들 좀 말려 주세요.
결국 저녁 무렵까지....... 놀다가 놀다가 어느 정도 지칠 때가 되어서야 호텔로 돌아가자고 하는 우리 용맹무쌍한 병아리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빵 쪼가리로 때우며 열심히 놀더니 갑자기 허기가 몰려오기 시작하나보다. 그런데 그게 어디 녀석들만 그럴까? 할머니 할아버지도 이제껏 캔 맥주 두 개씩으로 점심을 때웠거든.
허겁지겁 샤워를 하고 온천을 나서 호텔로 돌아가려 그랩 택시를 불렀는데........
‘할아버지. 여기 정말 최고에요. 이번 여행에서 제일 재미있었어요.’
‘그랬어? 우리 태리에게 그렇게 즐겁고 좋은 장소였어?’
‘네. 정말 좋았어요. 다음에 또 왔으면 좋겠어요.’
이건 정말로 보통의 칭찬이 아니다. 우리 손녀 태리의 입에서 ‘좋아요’는 간혹 나오지만 ‘최고에요’라는 말은 적어도 이 할아버지에게 하는 말로는 처음이지 싶었을 정도니까 말이다.
오늘의 탑 바 온천 나들이가 훌륭하리만치 무척 좋았다는 표현이 태리에게서 선뜻 나왔으니....... 이제 이번 여행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것이야 어떠했던지 간에,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인상적일만큼 충분하게 즐겁고 만족했다는 뜻이니 말이다.
손녀에게 칭찬받는 감격스러운 할아버지의 심정을 그 누가 알겠는가? 절로 웃음이 피어난다. 씨익 할머니도 눈치를 채고 미소를 보내온다.
이런게 행복이지. 이게 내가 그토록 간절히 열망하는 우리 가족의 안녕과 행복이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당장 저녁을 어떻게 하지?
열심히 놀아 준 예쁜 우리 병아리들에게 어떻게든 보상을 해주고 싶은데........
가여운 할머니도 뭐든 제대로 먹게 해야 기운을 좀 차릴 텐데........
이러다가 여행이고 뭐고, 할머니부터 잡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는 은근한 두려움까지.......
그래!!!! 오늘 저녁은 제대로 먹자. 무조건 회식이다!!!!
-- 다음 이야기에서는 나짱의 맛집을 한 번 소개해 보겠습니다. 찾아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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