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an with only patterns.'
우리 하나뿐인 아들의 새로운 별명은 '무늬뿐인 아들' 이다. 거진 일 년쯤 되었지 싶다. 하지만 그런 별명의 호명권은 오로지 한사람 챠밍여사에게만 허용된다. 어쩌다 내가 '무늬.......' 정도만 입에 담아도 청천벽력과도 같은 불호령이 떨어진다. 어디까지나 이 별명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해당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시작은 뭐 대충 이랬다.
TV에서 (인간극장) 이라는 프로를 실컷 보고 난 챠밍여사 입에서 쌩뚱맞게 튀어나오는 말에 '자식을 낳을것이라면 어찌되었건 딸은 꼭 있어야 돼. 딸이 있어야 엄마 마음을 헤아려 주고 살갑게 대해주지. 아들은 있으나 마나야. 겉으로 무늬만 그럴싸하지........ 나이들면 딸이 꼭 필요해 지는거야.' 라고 혼자 푸념을 잔뜩(?) 늘어 놓는다.
이쯤되면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긴장감으로 머리끝이 쭈뼛쭈뼛 서게끔 되어있다.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아들넘이 뭐든간에 엄마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한거여?' '내가 이넘을 그냥?'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우리 아덜이란 녀석이 저렇게 엄마의 심기를 은근 슬쩍 불편함이 질질 끌게 만드는 녀석이 절대 아니라는데 더 불안감이 증폭된다. 아들넘은 여간해서 제 속내를 엄마에게 들키는 넘이 아닐뿐더러, 정히 엄마랑 갈등이라도 생기면 단칼에 천둥처럼 간단명료하게 결론부터 내리는 녀석인데 말이다. 그렇게 되면 엄마는 돌아서서 발을 동동 구르고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다가는....... 언제나 처럼 그 불똥이 고스란히 나에게 화가되어 미치곤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들에게 아무런 조치도 할 말도 없다. 초등학교때 내가 회초리를 좀 모질게 든 이후로 아들은 언제나 한결같이 '바른생활 사나이' 이기 때문이다. 우리집은 '아빠는 철부지 개구장이, 아들은 애늙은이'로 이제껏 살아왔으니 말이다. 이럴때는 그저 적당히 고개돌리고 무조건 응야 응야 하면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 뭔지는 몰라도 엄마가 스스로를 다스리고 제자리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아주 가끔은 엄마 몰래 아들에게 SOS를 문자로 보낸다. '아덜, 엄마가 완전 다운이여. 너가 보약인것 알지?'
아들이 무슨 요술을 부렸는지, 그날 저녁에 퇴근하면 쌩판 언제 무슨일이 있었냐는듯이 말짱해진 엄마를 본다.
헐!
'난 아들한테 엄청 감사해. 우리가 조금만 더 뒷바라지 해줬으면 훨씬 더 많은것을 이뤘을텐데......... 그래도 지금 저렇게 가족을 챙기면서 번듯하게 열심히 살아주는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이야? 소식이 뜸하면 뜸한대로...... 무심해 보이면 어때? 가장으로 살아가느라 얼마나 힘들게 노력하는지 눈에 선한데....... 우리에겐 정말 아들 하나만은 더 바랄게 없는 하나님의 큰 선물이야. 난 항상 그것에 감사해.'
'하나밖에 없는 무늬뿐인 아들이 평상시에 엄마한테 좀 잘할것이지........ 고연넘 같으니라고.........'
'당신은 그말 쓰지 말라니까? 내가 몇 번이나 경고했지?'
'허 참. 당신은 아들한테 무늬뿐이라고 수시로 하면서, 나는 아들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고? 아이고..... 아들의 절반은 확실하게 내꺼라고. 알어? 아덜 무늬의 절반은 내꺼라고...... 내꺼만큼만 내가 부른다는데?
'어감이 다르잖어? 당신이 부르는 무늬하고 내가 부르는 무늬하고 어감....... 풍겨져 오는 늬앙스가 다르다고 알아? 내가 말하는 무늬가 미안함과 안타까움이라면 당신이 말하는 무늬는 부정적이며 비꼬는투 잖아. 우리아들은 그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그러니까 당신은 무늬 이야기도 꺼내지마.'
'헐(어이없음). 아들을 동정녀 처지로 어디서 혼자 맹글어 왔나? 무늬는 분명 내아들이기도 하거든?'
'그래서 더 싫다고? 반듯한 우리 아들이 당신 닮아서 무늬뿐인 가장이 될까봐 싫다고?'
'뭐야? 도대체 내가 뭘 어쨌는데?'
'맨날 아들 흉보잖아? 아들이 어디가 어때서?'
'내가 왜 아들을 흉봐. 녀석이 나를 완전히 빼다 밖았다는데....... 내가 내얼굴에 침을 왜 뱉어? 여기 제대로 좀 봐. 내몸뚱아리에 이 선명한 무늬를......... 아들한데도 똑같은 뮈늬더구만. 색안경 끼지말고 제대로 봐.'
이쯤되면........ 더 이상 웃음을 참지못한 챠밍여사는 화장실로 도망친다.
우리 일상은 이런 씨츄에이션 연속선상이라 보면 거의 틀림없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 - 모레 두 분 계시는 시간에 도착 할께요. 아빠 몇 시에 퇴근하세요?
엄마 - 너희들 힙들게 오지 않아도 돼.
아빠 - 아덜. 오.지.마.
아들 - 태리도 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싶대요. 이번엔 만나뵌지도 오래되었잖아요?
엄마 -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조심해야 하지 않겠니? 우리 손녀들이 아직은 너무 어리잖아?
아빠 - 오.지.마. 아덜. 엄마아빠 집에 없어.
아들 - 엄마 아빠 어디 가시게요?
엄마 - 연휴라는데 코로나 때문에 서로 오가기도 그렇고 해서 잠시.......
아빠 - 우리 캠핑 갈꺼야. 그러니까 너희들도 집에서 잘 보내도록 해.
아들 - 캠핑이요? 에이 이제 나이도 생각하셔야지요?
아빠 - 임마. 나이라니? 지지난달에도 거뜬히 다녀 왔는데? 죽을때까지 캠핑은 계속할꺼여 아빠는.
아들 - 엄마. 지난번엔 휴양림 통한 여행이라면서요?
엄마 - 휴양림은 맞지. 휴양림 안에 있는 캠핑장?
아들 - 어휴. 하여간 아빠는........ 안추웠어요? 여전히 할만 하세요?
아빠 - 아빠가 누구냐? 우리 연말에 제주도로 캠핑 갈껀데?
아들 - 아빠. 이젠 정말 청춘이 아니세요?
엄마 - 아들. 엄마는 아직 결정 안했다.
아빠 - 결정은 아빠 몫이고........ 엄마는 어디까지나 공범!
아들 - 이번엔 그럼 어디로 가시는데요? 아들이 알고는 있어야지요?
아빠 - 선유도. 너희도 명절 잘 보내고 다녀와서 보자? 다들 안부 전해주고. 끝.
사실은 추석명절 연휴 한 달 전쯤부터 이미 이번 가족여행을 계획해 두었다.
할아버지 입장으로 추석을 기다리는 최고의 이유는 당연히 우리 손녀 태리랑 놀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지만, 태리의 어린 동생 세리가 이제 겨우 돌을 맞이하는 시점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파동이 적지않게 신경이 쓰였다. 더군다나 내 경우나 태리할망구 경우나 적지않게 많은 사람을 접하는 직업이다보니, 백신 예방주사까지 맞은 우리 입장보다는 어린 손녀들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고픈 마음이야 너무도 간절하지만....... 녀석이 조그만 더 자라고 코로나만 잠잠해지면 아무때고 녀석 손을 잡고 유럽여행을 기필코 함께 떠나리라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간절한 소망때문에 이정도의 거리두기 쯤은 충분히 견뎌내야만 한다고 늘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만의 특별한 자유공간인 서재에 손녀 사진을 걸어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의 대화를 나누곤 한다. 평생동안 아들바라기람 할 줄 알았는데....... 이젠 아들은 저만치 멀어지고, 오매불망 손녀뿐이다. 지금 내 이름은 '태리 할아버지'면 넘치도록 충분하다. 나는 '태리할아버지' 이고 챠밍여사는 '세리할머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참으로 잘한것 중의 하나가 챠밍여사를 잘 꼬득여서 충주댁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계기로 혼자되신 장모님을 충주로 모셔오기까지는 했는데, 갑자기 병환이 생기셔서 이곳 충주 생활을 크게 누려보시지는 못하시고 말았다. 그러다가 생각치도 않게 작은 처형이 충주로 이사해 오시게 되었고, 정년퇴직을 하신 처남부부가 충주 근교 전원으로 내려오셨다. 이젠 처가집 가족중에서 목회자를 부군으로 두신 큰처형만이 경주에 떨어져 사시는데, 언젠가는 큰처형을 포함해서 온 가족이 충주에 모여 살 날이 오지 싶다. 가뭄 없지, 물난리 없지, 지진 모르지, 대형 사건사고 없지, 대한민국에 사람 살아가기에 이만한 곳이 더는 없지 싶은 충주에 모두 모여 살게 한 공로가 바로 내 덕분(?) 이라고 치면, 울 마눌 나한테 잘해야 할낀데..........ㅎㅎㅎㅎ
코로나 바이러스로 불편하고 심란하던 차에 아예 내가 서둘러 작정하고 추석연휴 계획을 짰다.
그리고는 호암지에서 운동을 하다가 모처의 커피 숖에서 이번 추석나들이에 대한 전모(?)를 챠밍여사에게 오픈하고 적극적인 협조와 동의를 구했다. 공범을 만들어야 하고, 여기에서 협조라는 것은 대부분 비용부담을 말한다.
그래서 처남네집, 처형네집, 우리집을 포함해 자녀들에게 이번 추석에 어른들이 모두 합심해 집단 탈출을 할 터이니 이번 추석은 각자 알아서들 잘보내라고 넌지시 선전포고를 보냈다. '어른들은 모조리 추석에 집에 없데이?'
선유도가 좋겠다 싶어서 신시도 자연휴양림을 두 달전부터 염두에 두고 공작(?)을 펼쳤는데 불발이 되었다. 안면도 휴양림도 하늘의 별따기여서 결국 포기했다. 그래서 마지막 카드로 비장하게 군산 인근에 있는 희리산 자연휴양림을 선택했다. 처남부부. 처형. 우리부부 해서 다섯인데........ 코로나 사태로 수용 인원제한이 4명 까지다. 거기에다가 혹시나 조카가 하나 둘 죽어라 따라 올 수도 있고, 혹시나 큰처형부부까지........ 하는 생각에 예비용 보완책까지 마련해서, 숲속 유양림 1동에 양영장 캠핑테크 하나까지 예약 주문을 마쳤다. 입장시에 휴양림은 4명까지만 입장시키니까 말이다. 캠핑장은 최대 6명 제한인데 역시 코로나로 4명까지 허락되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8명까지는 이번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희리산 자연휴양림에서 군산은 25분 정도, 선유도 일대는 1시간 남짓이면 접근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지나온 우리의 여행 이력에서 기억도 선명한 고창 선운사까지도 1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다.
이번 여행의 첫번재 목적지는 고창 선운사로 지금 한창 만개한 꽃무릇을 만나러 찾아가기로 했다. 아침일찍 캠핑장비랑 여행지에서 가족들과 함께하는 동안의 기본 먹거리를 챙겨 싣고서는 힘차게 집을 나선다.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거예요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예요
시인이 아니면서도 어쩌면 시인보다도 더 애잔하게 싯적으로 동백을 노래한 송착식씨의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나도모르게 눈시울이 촉촉해 진다. 붉디붉은 동백꽃이 내마음처럼 툭하고 떨어지는 것만같다.
그랬다. 적어도 우리 세대에게는 그랬다.
'선운사(禪雲寺) 하면 동백 아니것소? 동백 하면 선운사를 빼놓을수가 없제?'
간혹, '선운사도 좋지만 내가 그 먼곳까지 기를 쓰고 찾아가는 이유는 코앞에 풍천 장어가 있어서 아니겠소? 장어 한 토막이면 쏘주가 그냥.........' 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주당들도 분명 계셨다.
그런데 어느때 부터인가 달라졌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사람들의 시선과 관점이 달라졌다는 말이다.
선운사에 동백꽃을 기억하고 찾아가는 사람은 이젠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남해안 지방 사방으로 동백꽃이 흔하디 흔할 뿐더러, 선운사 동백만의 그 정취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이 지긋하신 낭만가객이시던가 시정에 파뭍혀 사는 고즈넋한 인품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한겨울 세찬 눈보라를 비집고 나와 짧은 봄햇쌀에 반짝이는 미소를 짓고있는 동백의 아름다움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운사 대웅전 뒷쪽 병풍처럼 늘어선 500년을 넘은 동백나무 숲은 이젠 옛추억 너머의 골동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꽃망울을 떨어트린 동백은 표정을 감추며 돌아앉아 버렸고, 선운사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사찰의 담장 주변까지 모두 꽃무릇이 점령해 버리고 말았다. 붉디붉은 꽃술을 터트린 꽃무릇 군락은 너른 공터를 모두 차지하였고, 사람들은 이제 상사화(꽃무릇) 축제를 새로운 지역관광 상품화 해버렸다.
새로운 보고 즐길꺼리가 생긴것은 분명하지만 무엇인가를 빼앗겨 버린듯한 허전함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이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갑자기 미당 서정주님의 '선운사 동구' 라는 시가 떠오른다. 늦여름이 지나면서부터 이렇게 인파가 몰려들고 저마다 꽃무릇 밭을 헤집기라도 할 것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을 보시면 선생께서는 아마도 몹시 서운한 생각이 드셨을것만 같다. 하얀 눈이 소복히 쌓인 나뭇잎 사이로 빨간 눈망을울 터트리는 동백을 어쩌면 시리도록 그리워하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꽃무릇을 상사화(相思花) 라고 여긴다.
잎과 꽃이 마주치지 못하는 모든 식물을 상사화라고 부른다고 치면 그럴수도 있는 일이겠다 싶지만, 엄연히 꽃무릇과 상사화는 다른꽃이다. 두 꽃 모두가 수선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알뿌리 식물인것 까지는 맞다.
상사화의 학명은 (Lycoris squamigera)로 봄에 잎이나서 초여름에 잎이 모두 말라버리고 나면 연붉은 자줏빛 깔때기 모양의 여섯 꽃잎으로 이루어진 꽃이 피어난다. 산과 들에 흔하게 무리지어 피어나는데, 꽃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다.
꽃무릇은 석산(石蒜)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며 학명은 (Lycoris radiata) 이다. 산기슭이나 습한 지역에 주로 서식하나 언제부터인가 절(사찰) 근처의 그늘에 즐겨 심기 시작하였다. 10월 쯤에 잎이 자라나기 시작하여 군락을 이루며 겨울을 나고, 이듬해 5월부터 차차 잎이 시들어 사라진다. 잎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8월 초에 푸릇루픗한 꽃대가 쑥 쑥 솟아오르게 되면 9월 경에 붉디 붉은 꽃을 피운다. 원산지는 중국 양쯔강 유역이며 특이하게도 원산지의 꽃무릇은 이배체로 씨앗이 만들어지지만, 우리나라에 피는 꽃무릇은 삼배체로 결실을 보지 못한다. 9월 말에 꽃이 지고나면 다시 새잎이 돋아나면서 비늘줄기를 통해 번식한다. 꽃무릇의 꽃말은 '참사랑' 이다.
상사화(相思花)가 그 이름처럼 봄에 돋아난 잎이 모두 지고 나서야 꽃을 피워,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있을 때는 잎이 없다 하여, 서로 그리워 하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곧 잘 비유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하지만, 꽃무릇에는 그런 그리움과는 전혀 다른 끔찍한 배경이 따라붙는다는 것을 잘 알고나서 그 둘을 함께 상사화로 쓰여도 될런지에 대해서 조금은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싶다.
꽃무릇에는 석산(石蒜) 이라는 이름 외에 지역마다 다르게 부르는 여러개의 이름이 더 있다. 사인화(死人花), 장례화(葬禮花), 혹은 유령화(幽靈花) 라고도 불리워 진다. 왜 하나 같이 지독하리만치 어두운 이름들이 따라 붙는 것일까? 일본에서는 꽃무릇을 피안화(彼岸花) 라고 부르는 아주 특별한 지역이 있다. 일본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텐메이 대기근 당시 머든 먹을꺼리가 바닥이 나게되자, 주변에 지천으로 피어있던 꽃무릇이 유독식물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뜯어다가 데쳐서 일단 허기를 모면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꽃무릇 마저도 부족하게 되자, 뒤이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의 참극이 벌어졌던 것이다. 하여 그후로 그날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꽃무릇을 보게되면 씻을 수 없는 참혹한 과거의 참극을 떠올리게된 것이다. 지금도 일본 사람들중의 일부는 꽃무릇을 죽음의 상징으로 불길하게 여기고 있다.
그런 꽃무릇이 어느때부터인가 우리나라 남쪽지방의 사찰 주변에 많이 심기기 시작했다.
고창 선운사 뿐만이 아니라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 등이 대표적이다.
꽃무릇의 붉은 꽃이 필때면 주변에 활활 불이 붙은것처럼 착각될 정도로 붉디붉은 색감이 화려하고 강렬하다. 거기에다 하나같이 거대한 군락지를 이루며 피어난다. 마치 들불이 타오르는것만 같다고 할까.
하여 각기 지역마다 어떤 특색을 내세우며 지역 축제를 벌이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같이 똑같게 '상사화 축제' 이미지 형상화에 열심이다.
하지만....... 글쎄다. 상사화와 꽃무릇은 분명 전혀 다른 꽃인것을............
상사화야 아쉬운 그리움이나 이루어지지 못하는 가슴아픈 사랑이라지만.........
꽃무릇 뒤에는 어두운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긴 누군가가 말했다.
'모르는게 약이라고....... 모두 알면 병이 생긴다고..........'
다음으로 군산에 들러서 맛있는 음식도 즐겨보고 시장도 보고, 그런가하면 이번 여행에서 나름 기대를 가졌던 콜로니얼 건축물(Colonial architectur)을 돌아볼 심산으로 새내 한복판으로 찾아들었는데....... 아뿔싸.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우리뿐이 아니었다. 속된 표현으로 도떼기 시장을 방불케 하는 인파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동안 군산은 서너차례 그냥 지나치기만 했지 제대로 경험해 볼 기회가 없었기에 벼르고 별러서 찾아 온 길이었는데........ 일제 식민시대의 건축이던 유명한 맛집이던 일단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로 붐볐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군산하면 우선 짬뽕' 이라는 소문을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서로 최고라고 자부한다는 유명 짬뽕집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하필......... '정기 휴일' 이란다. 명절 대목이고 보면 문을 연 집도 있게지 하면서 다른 맛집을 찾아가 보았더니 역시나 문이 굳게 닫혔다. 소위 '3대 짬뽕집'이 모두 문을 닫았다. 다른 메뉴를 찾으려는데 시내 중심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는식당 간판이 분명 짬봉집이다. 동네를 돌고 돌아서 기어코 주차를 시키고 쫓아가 줄을 섰다. 한참을 기다려 들어가서 메뉴판을 보니 역시나 짬뽕이 주종목인듯 한데, 우리고장에 비해서는 가격이 좀 비싼편이다. 하지만 군산 하면 짬뽕이라지 않은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올 해물짬뽕을 주문했다. 한참을 기다려서 마침내 짬뽕이 나왔는데......... 비주얼은 해물짬뽕의 전형인듯 보이는데, 우선 매운 열기가 팍 스며들어 왔다. 기대와 호기심으로 가득찬 표정을 지으며 끝내준다는 군산 해물짬뽕의 면치기를 일제히 시작했는데.......... 하나같이 환한 만족스런 표정들이 아니다. 솔직히 표현하자면 맵기만 딥따 맵고, 국물 또한 깔끔하던지 그윽하게 깊은맛이 있던지......... 이건 시중에 파는 짬뽕라면 스프를 끓이다가 야채와 해물을 잔뜩 넣어서 한소끔 더 끌이다가 베트남 고추가루 한 숟가락 휙 끼얻은것 빼고는 아무것도 아닌 느낌이 팍 들었다. 가족들 모두가 많이 남겼다. 처형은 해물만 건져 드시다 포기했다. 그나마 다 먹은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옆 테이블에서도 원성이 터져 나왔다. 맛있어서가 아니라 너무 매워서 공기밥을 시켜 말아서 몇 숟가락 뜨다가 마는 것이었다. 그 일행이 역시나 남기고 일어서면서 툭 내던지는 말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맛 없는 짬뽕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내 심정도 역시나 그의 표현과 똑 같았다. 이거야말로 대 국민 사기극이 아닐까?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요즘 홍수의 바다에는 몇 푼의 이득을 챙기려고 진실과는 동떨어진 허황된 기적을 창출해주는 인플루언서들의 수작들이 극에 달해있기 때문이다. 이걸 '맛있는 짬뽕' 이라고 믿고 저렇게 길게 줄까지 서고 있다니........ 벌써 나도 줄을 섰었다니.......
내가 양심에 손을 얻고 자신있게 고하건데........... 우리고장 충주에만도 군산시 짬뽕보다 20% 이상 싼 가격에 '3대 짬뽕이니 명물 짬뽕이라 하는' 인터넷 블로그에 떠들썩한 짬뽕집 보다도 훨 맞있는 식당을 10군데 이상 자신있게 권할 수 있다. 그 가격대에 저런 정도의 맛이라면......... 우리 고장에서는 문을 닫아도 벌써 문을 닫아야 했을 것이다. 군산의 짬뽕을 극찬하는데 일조한 언플루언서 중에서 한 번 냉정하게 비교 평가를 하고 싶다고 하면, 별도의 비용까지 지불하지믄 못하더라고 내 사비로 얼마든지 충주의 제대로 된 짬뽕을 사 드릴 용의가 있다.
차를 몰고 다른곳을 찾아 군산 시내를 이동하려는데...... 가보려 하는 곳마다 길게 줄을 서고 있다.
이런건 우리 스타일의 여행이 아니다.
그래서 수산시장에 들러 회를 떠서는 희리산 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접시꽃 이란 이름의 숲속의 집이랑 야영장에 캠핑 데크가 하나씩 예약되어 있다.
식구들은 방갈로에서 짐을 풀고 저녁 준비를 하고, 나는 야영장으로 이동해 텐트를 설치한다. 이번엔 중간 크기의 리빙쉘 텐트를 가지고 왔다. 지난번 청옥산에서 테크에 비해 텐트가 너무 커서 벌였던 헤프닝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가지고 온 텐트를 마지막으로 펼쳐 본것이 거진 10년 가까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설치에 앞서서 적지않게 걱정이 앞섰다. 10년 전에 제대로 말리고 정리해서 가방에 담았었는지........ 홀 폴대가 휘거나 부러지지는 않았는지......... 팩이나 끈이나 부품은 제대로 들어 있으려는지......... 대형 텐트를 구입할 때는 어쩌면 이 텐트를 다시 사용학 될 줄을 꿈에도 생각치 못했을지도....... 은근히 미안한 생각이 든다. 무언가 아쉬워져야 가직 되는 인간의 속성처럼 말이다. 혹 설치가 불가능 할 정도가 되면 어쩌지? 집에 다시 다녀올 수도 없고....... 군산 나가서 소형 자동텐트 하나 사는거 아냐?
퍼.펙.트.
'그럼 그렇지.' 내 성격 탓일까? 10년 만에 꺼내보는 텐트는 말쑥하게 잘 말리고 정리해서 착착 접혀진 상태로 온전했다. 팩이며 끈도 깨끗하게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이런 상태를 보고 누가 10년만에 꺼낸것이라 눈치 챌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ㅋㅋㅋㅋ. 내 자신이 대견 스럽다)
텐트를 설치하고 주변 산책을 하다가 야영장 편의시설에서 샤워까지 모두 마치고 나서 방갈로로 돌아가 가족들과 합세한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원제한이 어디나 4명으로 되어 있다. 숲속의 집도 4명, 텐트는 기본6명 허용이었는데 4명 까지로 수정 제한 되어 있다. 지금 우리 일행은 5명이다. 인원제한을 넘어서면 휴양림 입구에서 아예 입장 제한을 받는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무조건 4명을 넘을 것이고 많으면 7~8명을 예상해서 숲속의 집에다가 야영테크 하나를 추가로 예비 삼아서 예양해 둔것이었다. 지금 일행이야 모두 백신 주사를 마친 사람들 뿐이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담화 시간을 갖고, 명절에 모이면 의례히 치르는 무릎을 맞대는 올림픽을 피해서 혼자 텐트로 향한다. 내 단점중의 하나가 한국인이면 누구나 즐기는 잡기(?)에 전혀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집들이, 초상집 등에 가면 죽어라 술만 마셔댄다. 이상하게 그런 잡기엔 소질도 관심도 없다.
텐트에서 쐬주 한 잔 즐기면서 핸디 폰과 노트북을 연결해 해외 여행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 본다. 책도 세 권이나 준비해 갔다.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정수복 지음)'이 그제부터 크게 내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챠밍여사가 '다음 여행은 무조건 프라하에서 시작하고 싶어' 했으니까....... 동유럽을 살짝 맛보이고....... 파리에서 일주일 정도 있다가 나머지는 프로방스에서 보내다가 귀국하는 프로그램을 계획해 볼까? 이렇게 되면 그날밤 나의 꿈나래는 동유럽과 프랑스의 하늘을 날라다니느라 온 밤을 하얗게 새게 될것이다.
텐트 위로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흡사 굵은 빗방울 소리처럼 툭툭 울려 온다. 내가 원하는 시간이자 공간이다.
'그나저나...... 마누라는 언니들 틈에서 잘껀지? 아님 텐트로 날 찾아 올것인지 알아야 마중이라도 갈꺼 아니여?'
마눌님께서는 외박(?)을 하셨다.(하긴 뭐 하시든 말든 ㅎㅎㅎ)
책을 보다가 얼핏 자정을 넘겨서 잠이 든것 같았는데 새벽에 그만 짬에서 깨고 말았다. 시계를 보니 5시반을 좀 넘어서고 있다. 텐트가 요란한 소리로 요동을 쳐서 깬 것이다.
일기예보가 어찌나 정확하던지 새벽부터 오전까지 세찬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보가 있었는데....... 느닷없이 요란한 천둥이 치기 시작하더니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가만히 텐트 밖을 살펴보니 벳소리 천둥소리 외엔 모두가 쥐죽은 듯이 숨어 있었다. 다들 텐트속에서 지금 '어쩌나?' 하면서 고심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캠핑이나 여행에서 비를 만난다는것은......... 조금 불편하고 약간의 제약을 받게된다는 것일 뿐.......... 나는 비가 오면 무조건 좋다. 그것도 많이많이 좋다. 눈은 비만큼 반갑지는 않지만.
나는 과감하게 밖으로 나온다.
일단 비를 그대로 맞으며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고자 화장실 부터 다녀오고나서.......... 도대체 이 비가 언제쯤 그친다는 것인지가 궁금해 일기예보를 살피려는데........ 카카오 톡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깼지? 비가 엄청 내린다. 텐트엔 별일 없지? 다들 천둥 소리에 깨셔서 당신 걱정하고들 계셔.'
'비는 올꺼라고 내가 말했잖아. 아무일도 없고....... 지금 여기 분위기 끝내준다.'
'비 안샜어? 안 추워?'
'단디 대비 했지? 춥긴? 나 지금 샤워하러 갈껀데? 숲속에서 약간 싸늘한 아침 샤워를 포기할 내가 아니잖아? 지금 이 숲속에 일어나 나와있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네? ㅎㅎㅎ. 샤워하고 커피 끓여 마셔야지. ㅎㅎㅎ'
'감기 걸려. 참어. 나도 커피 마시고 싶은데 언니 오빠가 아직 누워계셔서.......'
'당신, 무단으로 외박한거다?'
나는 빗속으로 샤워장으로 향한다. 휴양림엔 사계절 온수가 나온다. 단 관리소에 비용을 지불하고 온수사용 카드를 구입해야만 그 한정된 시간만큼 온수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온수 카드가 없다. 내 특별한 버릇중에 하나가 아주 자주 간단하게 샤워를 즐기는 편인데 언제나 찬물 샤워라는데 문제가 있다. 한겨울 머리감는데 냉수가 문제가 있을 뿐, 나는 항상 아침 저녁으로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찬물 샤워를 썩 즐긴다. 12월 중순에서 3월초 까지를 제외하고는 집에서건 밖에서건 찬물에 적셔야만 직성이 풀린다.
샤워를 하고 가스버너로 물을 끓이고 있는데 외박한 마눌님께서 오신다. 텐트속 정리정돈도 이미 마친 상태이다.
우리만의 텐트카페(베벡의 벅스처럼)에서 모닝 커피를 마신다.
'이렇게 비가 오면 오늘 스케줄 어떻게 해야해?'
'뭘 어떻게 해? 조개 잡으러 가는거지. 이정도 가지고 비가 대수여? 춘장대 조개 오늘 아작났쓰.'
흐메야. 이런다고 누가 올림픽 금메달 주는것도 아니겠구만..........
난리도 아닌 폭우를 무릎쓰고 춘장대 해수욕장을 찾아갔더니만, 정신줄을 반쯤 놓은 사람들이 우리뿐만은 아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바다 저쪽까지 들어가 있었다.
쫓아들어가 사방 여기저기를 헤집어 보는데......... 이거야 원.
까마득한 지난날 몽산포에서 삽시간에 통 하나를 가득 채웠던 기억은 뜬굼없는 전설처럼만 여겨질 뿐이었다. 분명 모시조개가 있기는 한데 공들이고 품들인것에 비하자면 영 아니올시다 였다. 여기저기 기웃기웃 남의 바구니를 훔쳐보는데..... 거기도 맨 고만고만한 상황이 아닌가? 이거 때를 잘 못 만났거나 아무래도 장소가 여기가 아닌가벼? 비는 억수루 내리 퍼붓는데도 거기서 그만 물러날 우리 가족들이 결코 아니다. 더군다나 태리할망구가?
비가 그치려나 싶게 삐꿈하고 해가 모습을 드러낼 즈음에 어디선가 '물이 들어온다' 하면서, 한없이 밀려나갔던 파도가 은근슬쩍 다시 밀려들어 오는것이 아닌가? 물 때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모시조개가 담겨있는 통을 들여다보니 영 속이 차지 않을 정도밖에 안되지만, 어쩌겠는가? 이제는 물러나야만 하는 상황인걸?
'근일내로 언제 날잡아서 당일치기로 한 번 더 오자. 조개는 분명히 있어.'
예보는 참으로 신기할 정도로 정확하게 들어 맞았다. 오후가 되자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이 말짱하게 날이 개었다.
우리 부부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선유도를 찾아가기로 했다.
과거에는 군산에서 배를 타고 가야하는 고군산열도 였지만 서해 방조제 사업의 결과로 이제는 섬이 아닌 다리를 통해 연결된 새로운 육지였다. 그 결과로 신시도에 생긴 자연휴양림을 여러차례 예약 시도했었지만 정말로 하늘의 별따기라 포기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가 이젠 모두 다리로 서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꼭 다시 찾아보리라 계획했던 여행지였다.
그런데.........
그곳은 이제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추억의 여행지가 아니었다.
서해 방조제를 지나 신시도에 접어드는 순간부터 어디에서나 밀리는 차량 행렬과 틈새 하나없는 빼곡한 주차장과 좁은 도로에는 서로 교차하기도 힘든 병목현상으로 인해 그야말로 교통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다. 발 아래로 사방에 걸쳐 빼어나게 아름다운 경관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지만, 밀려들고 나가는 차량으로 어디 잠시 눈길을 붙들어 맬 수가 없고, 잠시라도 차를 주차시킬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섬의 곳곳에 있던 손바닥만한 전답들은 모두 개인 유료주차장으로 탈바꿈해서 경쟁적으로 유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흡사, 먼 과거에 정동진이 처음 무섭게 탈바꿈하기 시작했던 상황들을 연상 시켰다.
내 먼 기억속의 선유도가 멀고 외진 쓸쓸한 여행지였다면, 지금의 선유도 일대는 변화의 물결만큼이나 투기의 열풍이 휩쓸고 있는 자본주의의 쓰레기로 넘쳐나는 아비규환 지옥속 같았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선유도는 죽어 버렸다. 혹한 속의 비수기에나 찾아오면 약간이라도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으려나?
모든것이 변했다. 변해도 너무나 많이 변했다. 그것도 끔찍한 모습으로 말이다.
장자도 주차장에 겨우 비집고 들어가 대장도까지 걸어서 건너가 보았는데........ 내가 혼자 비박을 하고 내려 오던 바위벼랑엔 데크 시설로 전망대가 설치되었고, 밧줄을 잡고 오르던 길도 데크로 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나의 기대는 실망을 넘어서 절망으로 남았다.
돌아 나오는 길목에 씨앗 호떡집이 있는데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들 있다.
우리도 한 번 먹어보기 위하여 줄을 섰는데........ 순번이 되었음인지 안으로 들어간 챠밍여사가 도통 나올 생각을 안한다. 궁금해서 돌아가보니......... 헐. 이 사람 손님의 직분을 그새 잊었는지 호떡집 주인 옆에서 손을 걷어부치고 호떡을 굽고 담아서 내주고........ 장사를 대신해 주고 있잖은가? 얼핏 누가 보면 챠밍여사가 주인이고 진짜 주인이 아르바이트로 온것 같은 분위기까지 풍기면서 말이다. 참 오지랍 넓고 하여간 뭐든지 덤벼들면.........ㅎㅎ
아무래도 사는게 힘에 부치면 어디에다 호떡집 하나 차려야 할까보다.
여행의 마지막 날.
오늘도 아침에 비가 예보되어 있다. 하여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우선 텐트를 철수했다.
짐을 꾸려서 차에 실어놓고 야외 커피를 끓여 먹고 산책을 하고나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춤으로서 집에 돌아간 후에 정리정돈이 훨씬 수월해진 것이다. 방갈로에서 아침을 해서 먹고 티비로 (밴드 2) 라는 프로를 보다보니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였다. 연휴가 끝나는 날이라 길이 막힐것을 생각하며 서두를 계획도 했었지만, 그래도 또 언제 이곳에 오려나 싶어서 해송 산림욕장으로 산책을 하러 찾아갔다. 해송 숲 위를 거닐 수 있는 '스카이 워커' 가 있다기에 부러 찾아갔는데, 아쉽게도 추석 연휴기간동안 문이 닫혔단다.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접어두고 바닷가 숲길을 산책한다.
사실 작은 처형께서 이미 오랫동안 병마와 싸우시느라고 상당히 힘에 겨우 상태였기에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도 나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기도 했다. 이동 거리, 시간, 응급상황, 먹거리 등등을 세심하게 나름 따져보고 아내와 상의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평온하고 즐겁게 보내시는것을 보고 크게 감사하고 있던 중이었기에 나름은 산림욕장 산책도 좋을것이라 생각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챠밍여사와 언니가 단 둘이 함께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보았다.
귀가하는 차 안에서 '해변 솔숲 산책'이 무척이나 좋은 시간이었다는 말씀에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모두가 가족이니까 말이다. 속히 쾌차 하셔서 좀 더 편하게 다음 가족여행을 계획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누군가 내게 왜 사느냐고 물으면.........
그냥 웃지요.'
눈 내리는 겨울이 오면 다시 떠날 캠핑을 기다리며 다시 일상 속에서 더 열심히 생활해야 하겠지요.
이 순간까지의 내가 가졌던 시간들에 감사하면서......... 가족과 모든 지인들에게도 감사 할 따름입니다.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시련이 하루속히 마무리되고, 지극히 너무나도 평범했던 지난 시간 속의 일상들이 더 이상 그리움이나 안타까움으로 남게 되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모두모두 건강하시기를........ 그리고 소망 잃지 않으시기를 염원해 봅니다.
아마도 다음 국내 여행기는 연말이 지나서 제주도 여행기에서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제주도 겨울 캠핑 여행을 꿈꾸고 있는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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