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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카메라만 손에 들고 훌쩍 떠나는 '걸어서 제주(濟州島) 속으로'

by 피안재 2022. 1. 7.

 

 

 

 

 

 

 

 

 

 

 

 

 

 

 

 

 

 

 

 

 

  

 

  여행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고 하루하루를 산다는 것은.... 아니, 상실한 채 살아간다는 것은 힘겨운 일상의 연속일 뿐이다. 비루하고 참담한 심정마저 들 정도이다. 거기에다 이렇게 갇혀버린 듯한 일상의 반복이 개인적인 내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코로나 19라는 대대적인 사회적 문제로 부터 생겨난 것이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을 넘어서서 솔직히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 해야겠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가 보다는 과연 이 사태가 언제 끝이 날것인가에 초점이 쏠린다.

  코로나 사태가 생겨난 후로....... 한 해가 지나더니 어느새 또 새로운 한 해가 덧없이 지나가고 있다. 허탈하다. 어느새 나이 육십 줄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떤 서글픔을 지나 아주 조금은 알 수 없는 억울함 같은 것이 솔솔 생겨나기도 한다.

  ‘아!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한참이나 철이 지난 대중가요를 혼자 읊조리면서 지는 해를 바라다본다.

 

  2019년의 크리스마스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맞았었다. 섣달 그믐날에 몰타로 이동해서 새해 일출을 지중해에 떠오르는 해로 보았고, 시칠리아를 거쳐 나폴리에 들르고, 로마와 피렌체와 베네치아를 돌아보고 2020년 1월 17일에 로마를 통해서 귀국을 했다.

  1월 초부터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 19 뉴스가 유럽 전역에서도 연일 방송되고 있었지만, 일본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그나마 지극히 방역안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 왔다. 17일 귀국에도 공항에서 열감지기를 통한 표본조사 정도에 그치고 있었다. 며칠 지나 21일 경부터 공항폐쇄 의견과 개별적 전수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덧없이....... 기약 없이....... 2년이 흘러갔다.

 

  2022년을 코앞에 두고........ 그넘의 코로나 사태만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틀림없이 프랑스 남부해안을 걷고 있거나, 터키 남부에서 리키아 트래킹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베트남이라도 갔을텐데........

  ‘아! 어쩌란 말이냐? 이 황금 같은 연말연시 휴식기를 코로나 19에게 갇혀서 보내야 한다니 말이다.’

  어디로든지 떠나자.

  마냥 이대로 코로나 사태가 자나가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어.

  지중해가 아니면 어때?

  대자연과 길이 있으면 어디든지 가는 거지. 성한 우리의 두 발이 있는 이상 어디든 가면 되는 것이지.

  우리가 늘 상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이 있잖아?

  ‘우리가 가진 건 시간과 배짱뿐인데...... 세상에 겁날게 무엇이 있어?’

  부랴부랴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

  해외여행 시에는 알차게 배낭을 꾸려야 한다. 짐의 크기와 무게가 매번 성가심과 비용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국내여행을 나선다면 짐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주 익숙하게 금방 여행 떠날 준비를 마치고 채 어둠이 가시기도 전에 힘차게 출발을 한다.

  (우리는 지금 제주도로 간다!)

 

 

 

 

 

 

 

 

 

 

 

 

 

 

 

  제주여행은 이미 여러 번 경험이 있었던지라 별로 낯설거나 어려울 것이 없었다. 다만 지나간 마지막 여행이 꽤나 오래 전이었던 터라 적지 않게 변했을 것이라는 기대와 예측은 있었다.

  제주여행은 제주시를 기점으로 하는 북부지역 여행과 서귀포를 중심으로 하는 남부지역 여행이 있는데, 대부분의 이름난 관광지가 주로 서귀포 인근에 분포하고 있는지라 나의 여행 역시 주로 남쪽지방 중심이었다.

  그래서 모처럼 오랜만에 찾아보는 제주였기에 남쪽이 주가 되기는 하겠지만, 이번엔 동쪽 해안과 서쪽 해안에 좀 더 집중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하여 여행의 절반을 서쪽으로 치우친 안덕면에 거점을 마련하였고, 나머지 절반은 동쪽의 성산면에 숙소를 정했다. 본래는 한라산 지역의 휴양림 두 곳을 택해서 겨울 캠핑을 시도해 보려고 계획하였으나, 챠밍 여사께서 이번 여행만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차분하고 조용하게 편히 쉬다가 오고 싶다고...... 캠핑 장비를 가져가면 안 따라 나서겠다고 우기는 통에 할 수 없이 캠핑은 접고, 취사가 가능한 펜션에서 엥겔지수 향상에 주안점을 두는 방향으로 여행 가닥을 잡고 출발했다.

  아무리 그래도 올레 길은 열심히 걸어보기로 다짐을 했었다. ‘우리에겐 천천히 꾸준히 걷는 것이 최선의 휴식이라나 모라나’ 하는 챠밍 여사의 우격다짐 때문에 말이다. 5코스, 7코스, 12코스는 예전 여행에서 걸어 본 적이 있었다. 그 기억이 너무 좋아서 5코스 7코스는 맛보기로 산책 정도를 하고, 이번엔 우도 코스(1-1)와 2코스와 10코스를 우선으로 시간이 허락하는데 까지 다른 코스를 두루 섭렵해 보기로 작정한 여행이었다.

 

  차를 몰고 고속도로에 올라 4시간 좀 넘게 달려 완도 항에 도착했다. 하도 오랜만에 다시 찾은 길이라 도로 여건과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다. 새로 놓은 다리도 있고 소도시의 우회도로들이 적지 않게 소요 시간을 단축해 준다.

  소위 맛 집이라는 곳을 찾아가면 주차하기가 까다롭고 번거로워서 기껏 찾아들어 간다는 것이 갈비탕집이다. 얼씨구, 그 먼 길을 단숨에 달려 온 것이 이러자고 서둔 것이 결코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말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저 익숙한 맛이 맛있고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니 말이다. 완도까지 와서 겨우 찾아낸 음식이 말이다.

  배에다 차를 선적하고 나서 여객선 터미널에서 아메리카노 커피 마시다가 보니 여객선 보딩 패스를 시작한다. 완도 항을 출발해서 2시간 반 만에 제주항에 도착했다. 정시 도착은 했는데 제주도에서 추가 자체방역을 한다고 하고, 열 체크와 백신 접종 확인 등으로 추가적인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었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적극 참여 협조하는 것이 당연하겠으나, 적극 동참을 하면서도 불편하고 짜증이 나는 것은 누구나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차를 몰고 항구를 빠져나가기 까지 걸린 시간이 1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우리는 그길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동문 시장으로 이동했다. 몇 불럭 떨어진 한적한 골목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서 시장으로 향한다. 처음 제주여행을 계획하면서 떠올렸던 바로 그 모습 그대로였다. 역시나 제주여행의 백미는 전통 재래시장이었나 보다. 우리 동네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먹거리의 천국이 펼쳐진다. 먹을 음식을 상당부분 집에서부터 준비하여 차에 싣고 왔지만....... 빠진 것이 바로 회였다. 바로 그 싱싱한 제주 바다 회가 사방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오메! 여기가 가히 천국이 아닌가벼?

  방어가 제철이란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사야지. 씀씀이 손이 유독 큰 챠밍 여사가 이런 상황을 대충 넘어갈 위인이 결코 아니다. 방어에다가 소라에다가 무시기 새우에다가 갑오징어까지 쓸어 담는다.

  동문 시장을 나와 서귀포 안덕면으로 향하는 길가에 눈이 쌓여있다. 한동안 제주도가 한파에 시달리더니 그제와 어제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출발 전 주위에서 제주 폭설 소식에 여행을 걱정해 주곤 했었다. 하지만 내가 믿고 있는 것은....... 제주엔 엄청난 폭설이 자주 내리기는 하지만, 적어도 한나절이면 웬만큼 녹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도 아니면 최소한 도로만은 녹는다는 사실을 나는 굳게 믿고 있었다. 한라산 중턱의 1.100 도로 정도만이 폐쇄가 될 뿐이지, 해안도로는 언제든 통행이 가능하다는 사실 말이다. 밤이 깊어지자 간간히 눈발이 다시 날리고 도로 사정은 다소 조심스러웠지만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예정했던 도착 시간보다 2시간 정도를 훌쩍 넘겨서 안덕면에 예약해 놓은 수 펜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 기다려준 매니저에게 키를 받고 체크인을 마쳤다. 방은 기대 이상으로 따뜻하고 좋았다. 주차장 밖의 오렌지 농장 비닐하우스 위로 서귀포의 밤바다와 조업 중인 어선의 불빛이 보인다.

  대충 짐정리를 마치고 씻은 뒤, 무사 도착과 본격적인 제주여행의 시작을 축하하는 우리방식의 조촐한 파티가 벌어진다. 무한정의 회와 무한정의 소맥이 우리와 함께하는 밤이다.

  ‘아침에 못 일어나면 또 그런대로 하루 종일 침대에서 뒹굴면 되고........ 우리가 가진 게 뭐 있어? 시간과 배짱! 그거면 된 거지. 건배! 또 건배!’

 

  ㅎ! ㅋ!

  이때까지도 우리 아들은 모르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차를 끌고 배에다 싣고 제주도까지 갔는지를 말이다.

  당연히 비행기 타고 건너가서 렌트카를 사용하는지 알고 있었다.  어쨌꺼나 여행 말미에 기어코 아들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기어코 한 소리 듣게 되었지만........

  '엄마 아빠.  이젠 나이를 생각하셔야 해요. 건강과 안전을 염두에 두어야 하신다고요' 라고 말이다.

  '임마! 네겐 네 스타일과 방식이 있고, 엄마 아빠에겐 우리 나름의 스타일과 방식이 있단 말이야.  그리고 우린 아직 우리 방식과 스타일을 고수할 만틈 자신도 건강도 있다 말이야. 짜샤.' 라고 외쳤지만 어디까지나 우리 끼리의 독백이었을 뿐이다. 걱정하는 아들에게 대 놓고 그런다는건......  앞으로도 계속 그럴거라는 통보가 될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ㅎㅎㅎ.  우린 앞으로도 쭈욱 그럴 생각이다.(아들에겐 비밀!)

 

 

 

 

 

 

 

 

 

 

 

 

 

 

 

 

 

 

 

 

 

 

 

 

 

 

 

 

 

 

 

 

 

 

 

 

 

 

 

  내가 처음 제주도를 여행한 것이 대략 30년이 조금 안되는것 같다.

  다니던 회사에서 우수사원으로 뽑혀서 상패랑 금빼찌를 받았는데 부상으로 당시 가장 크게 회자되던 동경모터쇼 관람권이 포함된 항공권을 2장 받았었다. 여행사에서 수속접수 요청이 왔는데, 당시 어린 아들 짱구가 마음에 걸려서 동경모터쇼 관람 해외출장을 거절하였었다. 여행사로서도 난처했는지 동경 모터쇼 여행권 2장을 제주도 여행권 3장으로 바꾸어주면 어떻겠냐는 의뢰가 있어서 흔쾌히 수락했다. 그렇게 해서 첫 제주도 여행을 우리 3식구 가족여행으로 다녀왔었다. 아스라이 어느새 28년 전쯤의 추억이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그때는 이 세상에 더 이상 부러운 것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당시 내 인생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더없이 착하고 귀여운 하나뿐인 우리 아들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아빠가 되어주고 싶었다. 아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 같다. 이제껏 아들 때문에 속상하고 고민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어설픈 개구쟁이 아빠였고, 이제는 두 손녀의 할아버지이다.

목표는 분명 그러했는데...... 난 그리 썩 좋은 아버지는 되지 못했다. 한창 아들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시기에 말 그대로 아주 쫄딱 망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거듭거듭 말이다. 그랬음에도 아들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청년으로 성장했다. 녀석 살아가는 모습 지켜보는 낙으로 살아왔지 싶다.

물론 지금에야 상황이 많이 바뀌었지만 말이다. 지금은 아들은 안보고 안와도 좋다. 대신 우리 손녀 태리와 세리만 자주 보았으면 좋겠다.

‘얘들아! 할아버지는 태리 세리 손잡고 이태리 여행가는 바램으로 살아간단다.’

 

  그렇게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갔었을 때 우리에게 제공된 숙소는 KAL 호텔이었다. 앞으로 펼쳐져 있는 마치 초원 같은 잔디밭이 어찌나 넓었는지 한참을 달려가면 그 너머에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제주도라고 해보았자 서귀포 쪽으로 거대한 호텔들과 여미지 식물원 같은 관광 시설이 좀 있었을 뿐, 오늘의 모습이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신기한 도로, 민속 박물관과 제주시장과 서귀포시장 정도가 기억에 떠오를 뿐이었는데, 지금은 달라져도 너무나 달라져 버렸다. 제법 여러 번 제주도를 드나들은 편이지만, 매 번 갈 때마다 제주도는 무섭게 변해가고 있었다. 겨울에도 모든 공사가 가능해서 그런가?

  해안가를 따라서 온통 호텔과 펜션들이 숲을 이루고, 어디를 가나 사방이 온통 카페 천지이다. 간간히 소박한 게스트하우스들이 듬성듬성 꼽혀있다. 아무래도 제주도 사람들은 커피만 마시고 사는가 보다. 눈 뜨면 우선 커피 한잔 마시고, 브런치 같은 참에도 커피를 마시고, 점심때와 오후 참에도 커피를 마시고, 저녁에 회 먹고 나서도 입가심은 커피로 하고, 잠자리에 들 때 슬링핑 커피까지 마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문제는........ 하루에 드는 커피 갑이 도대체 얼마여? 최하가 4천원 아니든가? 제주도 사람들 엥겔지수는 커피가 죄 다 차지하는구먼?

오래된 앨범을 모처럼 펼쳐보니 사뭇 감회가 새로워진다.

꼬마는 이제 중년에 접어들었고, 나름 내 모습도 그때는 어디가 내놓아도 먹어 줄 정도는 되었었는데 말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할망구의 기세만은 점점 드세어져서 세월을 무색케 하고 있지만 말이다.

 

 

 

 

 

 

 

 

 

 

 

 

 

 

 

 

 

  서귀포시 안덕면의 숙소 코앞인 대평 포구는 제주 올레길 8코스와 9코스가 나뉘는 분기점이다. 아침 산책길에 포구에서 그래도 옛 추억이 새록새록 스며있는 동쪽방향 8코스로 걸었다. 영화 <쉬리>에 등장해 유명세를 톡톡히 치룬 해변 언덕 위 벤치가 있는 호텔 신라의 정원을 향해 걸었다.

  워땀시....... 중문단지를 무슨 세종시 건설처럼 몽땅 바꾸어 놓았다. 예전의 호젓한 신라호텔 주변 풍광이 절대로 아니다. 하이고야....... 내가 알던 신라 호텔이 아니다. 항상 오픈된 환경이라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제야 본 건물을 통해 옛날의 모습을 그나마 되찾을 수가 있었다. 세상에나....... 드넓은 초원 끝자락 바위벼랑 위에 달랑 놓였던 아담한 의자는 모든 정취를 잃어버렸다. 안내 표지판이 없었다면 하루 종일 걸려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이거여? 이게 <쉬리>에서 김윤진이 앉았던 그 의자여? 이렇지 않았든 것 같은데..........?’

 

 

 

 

  <제주 올레 10코스>

 

  숙소에 돌아와서 이번엔 좀 진하게 커피를 타서 한잔씩 한다. 보온병에도 연하게 커피를 타서 담는다. 작은 배낭에 보온병에다가 캔 맥주 하나에다 과일을 좀 담아서는 둘러메고 길을 나선다.

  오늘은 제주에 왔으니까 어떤 성스런 제례의식이라도 치루는 것처럼 아직까지 걸어보지 못한 올레길 중에서 명소로 손꼽히는 10코스를 걷기로 작정한 날이다.

  올레 10코스는 옆 동네인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을 시작으로 산방산 자락을 휘돌아 용머리해안을 지나 송악산을 거쳐 섯알오름을 지나 모슬포 항에 이르는 15.6km의 거리를 대략 5~6 시간에 걸쳐서 걸어야 하는 구간이다.

  우리는 차를 몰고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 출발지로 가서 주차를 했다.

  올레길 안내소에 들러 모슬포 항에서 돌아오는 대중교통편을 문의하였는데...... 세상에나....... 안내해 주시는 아가씨가 어찌나 친절하고 세세하면서도 꼼꼼하게 가르쳐 주시고 메모까지 해주시는지 여행 내내 여운처럼 감동으로 남았다. 여기에서 출발하나, 반대편으로 가서 출발하나 이동에 별 문제는 없어 보인다.

  우리는 쏟아지는 햇쌀을 등지고 서서 씩씩하게 썩은 다리 전망대를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전망대에 오르기 전에 우연히 길 옆에서 제주식 돌담으로 둘러싼 무덤을 만났는데 비석을 살펴보니 '충주 지씨' 성을 가진분의 무덤이다.  오메~~~~~~  '충주' 라는 이름만으로도 어찌나 반갑던지.........  어떤분이 이 멀고 먼 제주까지 오셔서 생활하시다가 돌아가셨나 보다.  지인 중에 '지씨' 성을 가진 친구들이 여럿 있는데 혹 그네들의 친척이시려나?  잠시 고인의 명복을 빌고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해 본다.

 

 

 

 

 

 

 

 

 

 

 

 

 

 

 

 

 

 

 

 

 

 

 

 

 

 

 

 

 

 

 

 

 

 

 

 

 

 

 

 

 

 

 

 

 

 

 

 

 

 

 

 

 

 

    

  제주도를 연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마도 한라산(漢拏山. 높이 1950m)가 아닐까 싶다. 분단된 한반도의 남쪽에서 가장 높은 웅장한 산이기에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한 것 같다. 보기에 따라서는 한라산 자체가 제주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아직 한라산 정상을 올라보지 못했다. 젊어서 등산과 캠핑을 그렇게 좋아했고 수시로 한라산 등반을 입에 달고 살았었음에도 정작 한라산을 걸어서 올라보지 못했다. 매번 제주여행 시간이 짧았음도 이유가 되겠고, 주로 겨울에 찾아오다보니 겨울철 등산 준비를 갖추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어쨌거나 반듯이 한라산 등산을 해야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부족했기에 생긴 결과이리라. 이번 여행에서도 아이젠까지 챙겨 가기는 했는데, 혹시 이번엔 한라산을....... 생각은 있었지만, 실행까지는 옮기지 못했다.

  주변에서 간혹 나에게 ‘제주도를 간다면 꼭 찾아가야 하는 장소를 세 군데만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몇 번 있다.

  그러면 나는 촌각도 지체하지 않고 장소 세 군데를 불러주고는 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제주도에서 꼭 가보아야 할 여행지’로는 (일출봉) (섭지코지) (용머리 해안) 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 외에도 좋은 여행지가 많이 있지만 나는 우선적으로 앞서 제시한 세 곳을 먼저 다녀오라고 권한다.

  일출을 보기에 우리나라에서 으뜸으로 꼽히고 애국가 영상에도 항상 등장하는 일출봉이지만, 솔직히 일출봉은 만만한 여행지로 꼽기에는 제한적 한계가 분명하게 존재하는 장소이다. 성산을 향하다보면 아주 익숙한 일출봉의 풍경이 시야 가득 들어오기 시작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일출봉의 바위벼랑까지의 언덕에 푸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그 아름다운 풍광은 사람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하고도 넘친다. 보는 것과는 달리 일출봉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 길은 그리 녹녹치가 않다. 가빠지는 호흡과 어느 정도의 땀방울을 지불하고 나서야 비로소 일출봉 정상에 올라서게 되는데........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빼어난 풍광은 틀림없으나, 왠지 성산 부근의 바닷가에서 올려다보던 일출봉의 풍경만은 못해 보인다. 하지만 전망대라는 제한적 지역구분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자연 보호와 관람객의 안전이 최우선이기에 택한 최선이라고는 하지만, 최소한의 자연 훼손 내지는 개발로 일출봉을 좀 더 적극적으로 감상하고 느껴보는 기회를 빼앗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일출봉 정상을 한 바퀴 둘러보게 하거나, 한두 갈래의 길을 내어서 바닷가 벼랑 쪽을 볼 수만 있게 해주면 안 될까?

  과도한 안전장치들이 오히려 장애가 되고 자연을 훼손한다는 생각은 없을까?

  노르웨이 피오르드 투어를 생각해 보자. 바위 암석 길을 오르고 뾰족 튀어나온 바위덩이 위에 올라서도 어디에도 안전장치나 저지 바리케이트가 없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최대한 즐기되 안전에 관한 책임은 오로지 행위를 하는 당사자에게 있다는 확실하고도 분명한 정책의 결과다. 선택의 자유를 보장함과 동시에 벌어진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섬나라인 몰타의 경우 국토의 전체 해안이 모두 천연 수영장이다. 그들은 사계절 내내 자유롭게 해수욕을 즐긴다. 하지만 어디에도 출입제한 구역이나 철조망 저지선이나 구명조끼나 튜브를 배치하지 않는다. 경고 안내판조차도 찾아보기 힘들다. 도시 인근의 바닷가에만 유소년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아주 쬐끔 보일 뿐이다. 섬나라인 만큼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수영을 가장 먼저 배운다. 평생 동안 바다를 생활터전으로 하고 즐긴다. 바다로 인한 안전사고는 오로지 개개인의 책임인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만큼 지하철 안전에 과할 정도로 신경과 비용을 지불하는 나라를 나는 보지 못했다. 유리 펜스도 없고 지정 대기선도 없다. 시설은 낡았고 전동차와 지면의 간격은 우리나라 보다 훨씬 넓었다. 동남아 일부 국가는 공무원 안전요원이 일부 있어서 주로 줄을 서거나 인원 초과에 대해서 제재를 가하는 정도이지, 승객이 제발로 걸어서 타고 내리는 안전까지 지켜보고 대비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나는 보아왔다.

  그래도 사고는 나고, 지하철 안전사고라도 혹 나게 되면 온 나라가 시끄럽다. 국가가 관여해야 하는 지나친 과도한 보호는 우리 국민의 자립성이나 스스로의 창의적 개척정신을 해치고 책임전가의 가치관을 우리네 일상속으로 끌어들이고만 있는 것 같아서 솔직히 개탄스럽다. 사람들을 점점 우매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자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잔디밭은 사람들이 밟고 깔고 앉고 즐기라고 만들어야지, 잔디 보호를 위해 사람들이 삥 돌아가야 하는 현실문제는 결코 옳지 않다. 생활주변이나 자연의 활용에 대해 무조건 가로막고 보호하기 보다는 활용하면서 스스로 보호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고 참여케 하는 정책으로 제발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성산 일출봉의 바닷가 비탈에 소형 테트를 치고 비박을 한 후에 아침 일출을 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다음 두 번째로는 (섭지코지)를 추천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제주도에서의 이국적인 멋진 풍경감상과 인증샷을 목표로 하고 있을 터인데, 그런 바람들을 최대한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섭지코지가 아닐까 싶다. 어느 때부터인지 제주도에서 여행객의 발걸음이 가장 많이 분주히 찾아가는 곳,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섭지코지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한라산 등반을 목적으로 제주도를 찾는 사람, 올레길 투어를 위해 제주도를 찾는 사람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 이곳 섭지코지에서 멋진 추억을 사진과 함께 남기고자 찾아온다고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섭지코지는 ‘재능있는 사람이 많이 나는 지역’ 이라는 의미의 ‘섭지’와 육지에서 바다로 툭 삐져나오는 지형을 일컷는 ‘곶’이 합쳐진 제주 방언이다. 흔히 육지에서 ‘재능 있는 사람’ 이라면 과거에 급제해서 출세한 사람들이 나는 고장을 일컷겠지만, 과거 유배지였던 제주를 생각하면....... 문과(文科)가 아니라 이과(理科) 적으로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세 번째는 (용머리 해안) 이다.

  내 유년 시절에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신 아버지께 전해 들었던 이야기와 작은 흑백사진을 통해 알게 된 제주는 (용두암)과 (용머리 해안)이 거의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나는 아주 거대한 용이 제주도라는 섬을 감싸고 지켜주는 아주 신성한 장소로 생각했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 처음 제주도를 찾아서 아버지가 보여주셨던 용두암을 가장 먼저 찾아보고는 ‘에게게? 겨우 이거야?’를 연발했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용머리 해안의 경우는 달랐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용머리 해안은 항상 나에겐 하나의 거대한 경이로움 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다’라는 어떤 알 수 없는 안도감 내지는 ‘이런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제주도’ 라는 확고한 느낌을 언제든 나에게 가득 안겨준다. 제주도를 가장 제주스럽게 만들어 주는 장소라고 나는 생각한다.

  제주 올레길 10코스의 중간쯤에 투박한 모습의 산방산이 버티고 서있고, 그 아래 코지의 끝자락에 바위 벼랑길을 휘감아 돌게끔 용머리 해안이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서서히 용머리 해안 속으로 걸어들어 서고 있었다.

 

 

 

 

 

 

 

 

 

 

 

 

 

 

 

 

 

 

 

 

 

 

 

 

 

 

 

 

 

 

 

 

 

 

 

 

 

 

 

 

 

 

 

 

 

 

 

 

  제주 올레길 10코스 구간은 올레길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전형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화순금모래 해수욕장에서 바라다보면 썩은다리와 황우치 해안을 지나쳐서 산방연대의 전망대까지 이르는 해안과 언덕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인다. 초반의 해안 길을 지나 잡목이 우거진 낮은 언덕 숲길을 지나고 다시 해안을 거쳐 통나무 계단을 올라야 하는 길이다. 계단의 우측으로 웅장한 산방산과 산자락 아래 둥지를 튼 산방사의 뒷모습이 엿보인다. 좌측으로는 제주 해안 특유의 빼어난 풍광을 간직한 용머리 해변이 수줍은 듯 언덕빼기 아래 모습을 감추고 있다. 이곳에서 뒤를 돌아다보면 저만치 멀리 처음 시작했던 화순금모래 해수욕장이 엄지손톱 만하게 보인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도 무방하지 싶어진다. 여기까지 걸어온 거리만 해도 상당하게 느껴질 테니 말이다. 여전히 성한 우리의 두 발들에게 위로와 감사를 드려본다.

  좀 더 서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작지 않은 해안가 마을이 보인다. 사계포구다. 제주 서귀포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주 평화롭고 소박한 마을이다. 잠시 전에 들려 지나온 용머리 해안의 놀랍도록 빼어난 풍광은 어느새 사라지고 잠시나마 그전 평온한 외갓집 같은 옛 마을의 정취에 젖어서 산책을 하듯이 거닐어 본다. 투박하게 쌓아올린 검은 돌담에 둘러싸인 겨우 손바닥 크기의 텃밭에 유채꽃과 이름 모를 푸성귀들이 파릇파릇 자라고 있다. 여기저기 돌담장 너머로 밀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제주스런 모습들이다. 산토리니를 연상케 하는 게스트하우스랑 짙은 색으로 치장한 작은 기념품점 가게들이 그렇게 정겨워 보일 수가 없다. 다만 현 시국을 반영하듯이 열려진 가게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어선들이 빼곡하게 정박해 있는 사계포구도 역시나 한산하다.

  마라도 행 선박의 출항지이자 바다낚시로 유명한 항구이지만 한파가 수시로 내려지는 겨울철 비수기에다 바닷바람이 워낙 거세다보니 항구 분위기 자체가 무척이나 썰렁하다.

  마을을 벗어나면서 탁 트인 해변길이 끝없이 펼쳐진다. 사계포구에서 송악산 주차장에 이르는 약 3km의 해변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명소이다. 중간 중간에 사계화석 유적지로 보호되어 출입이 통제되는 지역이 있기는 하지만, 출입이 허락되는 해변으로 형제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여행객들이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올레 10코스의 특징 하나가 바로 이렇게 코스를 걷는 중간 중간에 방금 지나온 길과 앞에 남아있는 길을 살펴볼 수 있는 이정표 같은 구간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아마도 10-1. 10-2. 10-3. 10-4 미니 코스로 구분지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사계포구를 지나면서부터 제주도가 본래의 성깔을 드러내기 시작이라도 한 듯이 바람이 거세어지기 시작했다. 가히 장난이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는데 적지 않게 지장을 줄 정도다. 해변의 중간쯤에서 돌아다보니 한참이나 저만치에 우리가 거쳐 온 사계포구가 보이고, 고개를 돌리면 또 저만치에 송악산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가까워지고 있다. 가야할 남은 길도 만만치 않고 되돌아 가기도 결코 호락호락한 거리다. 모든 것이 다 요놈의 칼바람 때문이다.

  어디 카페에서 잠시 쉬었다 갈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곳이 보인다. ‘보말 칼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란다. 제법 유명한 집이라는 소리에 마침 때도 되었던지라 우리고 그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가기로 한다. ‘보말이 도대체 뭐야?’

 

 

 

 

 

 

 

 

 

 

 

 

 

 

 

 

 

 

 

 

 

 

 

 

 

 

 

 

 

  체온 체크하고, 백신 접종 확인하고, 예약과 동시에 주문을 하고 나서도 40분을 더 기다려서야 '보말 칼국수' 라는 것을 먹을 수 있었다.

  물론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칼국수였다.  유명 연예인의 방문 사인이 빼곡히 벽에 걸려있는 맛집으로 널리 알려진 식당이었다.  맛집을 굳이 찾아다니지는 않는 성향이지만 나름 음식에 대한 관심이나 요리에 대한 약간의 열정은 가지고 살았던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뭐랄까?

  기억에 남는 확실한 한가지는.......  보말 칼국수 한 그릇의 가격이 1만원 이었다.  이름난 관광지 제주도라는 나름의 이유야 분명 있겠지만,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것을 보면 그 정도면 무난하다 싶기도 하겠지만, 하루하루의 일상속에서 주로 점심을 동료들과 함께 밖에서 사먹는 입장으로서는......... 흔히 점심 밥값으로 1인에 7~8천원 정도를 지불하는 편이다.  갈비탕이나 내장탕이라면  1만원 정도이거나 약간 더 지불하겠지만........ 그뿐이었다.

  통상적인 제주도의 물가나 특히 음식과 입장료등은 문화선진국이라 일컷는 서유럽 수준이거나 오히려 더 높게 느껴진다.  울릉도 물가는 스위스나 아이슬란드 정도에 버금간다는 느낌이 들었을 정도였다.

  제주도 여행비 정도이면, 내 경우에는 유럽 어느나라이던 하루나 이틀 기간을 더 늘려가면서 여행하기에 충분하겠다고 자신한다.  제주도 여행비에 항공료만(비행기표) 별도로 추가한다면 과연.......  제주도를 가야할까? 아니면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을 갈까?

  제주도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모든것이 비싼 편이었다.  1만원 자리 칼국수, 1만 오천원 짜리 라면,  다른 퓨젼 요리와 특히나 흑돼지 음식 가격은 터무니 없이 과하다 싶을 정도였다.

  대신 싱싱한 횟값은 기대 이상으로 싼편이다.  원없이 실컷 회를 먹었지 싶다.

  과연 제주도 여행이라는 것이 그정도 비용을 요구할 정도로 타당한 값어치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애국심을 뺀다면 나의 생각은 '글쎄 올씨다' 라고 해야겠다.

  내 경우로 치자면..........  제주도 여행 1주일 비용이면 최소한 동남아 여행 2주가 가능하겠으며, 서유럽 여행 10일 가능하겠다.(유럽의 경우엔 항공료만 별도로 하고)  물론 제주도 못지 않게 먹을것 다 먹고, 볼 것 다 보고 말이다.  코로나 사태 덕분에 2년이나 발이 묶여서 제주도를 선택할 수 밖에 없기는 했지만,  제주도나 울릉도 여행을 계획하는 지인들에게 나는 언제라도 해외여행을 권유하고 소상하게 안내할 용의가 있다.

 

  송악산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만해도 코스 완주에는 별 이상이 없게 느껴졌다. 문제는 그곳에서부터 생겨났고, 모든 원인은 바람에 있었다.

  사계포구를 지나면서부터 바람에 대한 우려는 생겼었다. 우리가 택한 코스의 방향이 무조건 모든 바람을 맞으며 나아가야만 하는 방향이었던 것이다. 화순금모래 해변을 출발하였을 때, 우리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걷던 사람들이 열 명은 되었었다. 산방산 전망대와 용머리 해안을 돌아 나와 다시 사계포구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 멀리나마 우리를 앞질러 가고 있는 사람은 세 명 정도였다. 뒤를 돌아보니 따라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올레길 10코스는 그래도 7코스에 이어서 가장 인기가 많은 코스라 들었었다. 송악산 주차장에서 전망대를 둘러보고 다시 본래의 올레 길에 접어들었을 때, 저만치 우리 앞에 언덕을 먼저 올라서는 두 사람과 불쑥 새롭게 주차장에서 나타난 한 사람이 전부였다. ‘올레 10 코스가 항상 사람이 붐빈다고 들었는데 다들 어디 간 거지’ 하는 의구심이 저절로 생겨날 정도였다.

  서둘러 억새밭을 지나 언덕길에 접어들었는데....... 아뿔싸, 앞섰던 두 사람이 되돌아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바람 때문에 오늘은 이쯤에서 접기로 했단다. 여기까지 왔는데....... 언덕 숲길을 빠져나가니 너른 평야와 함께 알뜨르 비행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제가 본토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하여 가장 가까운 지역인 제주에 비행장과 잠수함 기지를 건설하고자 했던 곳이 바로 여기였다. 역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더불어 제주 4.3 사태와 양민학살 위령비가 서있다.  민족의 아품이 새겨진 곳이다.  잠시 옷깃을 여미고 고인들의 넋을 기려본다.

  헐!

  완전히 맨몸으로 북풍한설의 만주벌판을 마주하고 선 느낌이다.

  바람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앞서 내려갔던 한 사람마저도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여기 언덕을 내려서면 알뜨르 비행장 영역의 들판을 가로질러야 모슬포 항구까지 이어지는 올레 10코스가 마무리 되는 것인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의 인적이라고는 우리 둘 밖에는 보이질 않는다.

  어쩌겠는가? 항상 되풀이 말하지만...... 우리에게 가진 것이라고는 시간과 배짱뿐인 것을. 여기까지 왔는데 뻔히 내려다보이는 모슬포 항구까지를 포기 하겠는가? 언덕 골짜기를 내려가니 저만치 들판에 무엇인가 수확에 한창인 농부 몇 명과 화물트럭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벌판 한복판에 제자리에 떠 있는 커다란 산림청 헬기가 보인다. 이 거친 바람 속에서 구조 훈련을 하고 있는가보다.

  챠밍 여사가 훌쩍 저만큼 앞서서 들판을 가로질러 나가기 시작한다.

  암튼 걷는 것 하나는 도가 텄다. 이 엄청난 맞바람을 그냥 훌훌 털어내듯 앞서 나간다.

  ‘우리는 어쨌거나 모슬포 항까지는 간다. 10코스는 무조건 오늘 끝낸다.’

 

 

 

 

 

 

 

 

 

 

 

 

 

 

 

 

 

 

 

 

 

 

 

 

 

 

 

 

 

 

 

 

  제주 올레길 10코스 완주!

  화순금모래 해수욕장에서 산방산을 지나 송악산을 넘어서 모슬포 항구까지 이어지는 15.6km를 기어코 완주했다.  대정리 버스터미널에서 20분 정도를 기다려 시내버스로 화순 농협까지 이동해서 다시 10분 정도를 걸어서 금모래 해수욕장 주차장에 가서 우리 차로 다시 숙소로 돌아가면 되는 여정이다.

  시내버스에 오르신 현지인 할머니들이 우리를 빤히 쳐다보신다.  외지인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달랑 우리 둘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이시간 전후로 올레 10코스를 주파한 사람이 전혀 없어 보였다. '어디서 왔어요?  이런 날씨에 정말로 올레길을 걸었단 말이예요?' 라는 표현을 제주도 사투리를 섞어서 물어 오신다.  현지인들로서도 이런 날씨는 보통이 넘는 날시였나 보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는 이미 예정된 목표를 달성하고 난 다음이었으니 말이다.

  차에 오르고 나서야 찬기가 엄습해 온다.  장시간 너무 찬바람에 노출되었었던것 같다.  감기 걸리기 딱 십상이다.  날씨만 화창했다면 다시 조금 되돌아 가 송악산 전망대에서 일몰을 구경할 계획까지도 세웠었지만,  하늘을 보니 오늘도 일몰은 영 시원치가 않을것 같다.

  내가 항상 말했지? '우리 여행에선 결단코 일출과 일몰에 목숨걸지 말자고' 수도 없이 말해 왔다.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알함브라 궁전의 일몰에 속았던 기억이 너무소 생생하기 때문이다.  일출이나 일몰은 그냥 방송이나 잡지책에서 최고의 장면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는것이 아마도 최선인것 같다.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으로는 말이다.

  차를 몰로 서귀포 올레 시장에 가서 저녁꺼리를 장만하고 숙소에 돌아오니......  숙소가 바로 낙원이다.

 

 

 

 

 

 

 

 

  --- 제주여행은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이어지겠습니다.  기다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