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부슬 내리는 밤비를 맞으며 야간열차는 로마 테르미니 역을 정시에 출발했다.
시계는 2018년 1월 21일 21시 3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부터 13시간을 달려 기차는 나를 시칠리아 섬의 팔레르모 중앙역에 내려줄 것이다. 열차는 이층 침대가 양쪽으로 마주보고 있는 남성 4인용 이코노미 객실이었다. 로마에서 팔레르모까지 이 열차의 요금은 59.9 유로를 지불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4인용 객실을 나랑 40대 후반의 이탈리아인 남자랑 둘이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사내의 이름은 이탈리아에서 아주 흔한 이름인 알베르토였다.
그런데 이 알베르토가 누가 이탈리아 사람 아니랄까봐 무척, 아니 엄청나게 수다스럽다. 눈만 마주치면 속사포처럼 뭐라뭐라 연실 혼자서 마구 떠들어 댄다. 그가 아는 영어라고는 겨우 ‘땡큐’쏘리‘푸드’정도 뿐이다. 그러니 미칠 수밖에.......
처음 만나고 나서 한 시간 정도 지나고는 하도 시끄러워서 아예 자는 척 침대에 돌아 누워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잠시....... 차장이 승차권 검사한다고 객실 문을 열어서 또 눈이 마주치고, 물병 나눠준다고 또 문이 열리고, 과자와 캔디를 준다고 또 열리고(기차에서 공짜로 주는 것)도 여러 가지다. 알베르토가 물을 하나 더 달래서 또 열리고, 객실이 차장 집무실 바로 옆이었던 탓에 나중엔 아예 문을 열어 놓고 복도에서 차장과 수다를 떤다.
‘이거 오리지날 이탈리아 사람을 만나도 제대로 만났구나.’
침대에서 뒤척이며 참다 참다 화장실에나 다녀오려고 일어서니 알베르토는 아예 작정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화력의 속사포를 나에게 쏘아댄다.
그런데....... 인간이란 것이 본시 엉뚱하다 싶으면 또 위대하다고 분위기에 익숙해지는가 싶었더니 대충 그의 표정과 목소리 톤과 손짓 발짓을 보면서 대충 대충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그가 따발총처럼 이태리어로 40마디쯤 늘어놓으면 나는 멋쩍게 웃으면서 한 세 마디 영어로 대답을 한다. 그리고는 그것이 서로 간에 정답이었던 것처럼 마주보고 환하게 웃는다. 복도에 서있는 차장의 영어는 썩 훌륭했다. 하여 부족한 부분은 차장이 중간에서 통역을 해준다. 이거야 정말........ 좀 더 시간이 지나자 우리 세 사람이 아예 처음부터 이번 여행의 한 팀이었던 듯 싶어진다.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며 기차는 나폴리를 지나서 이탈리아 반도의 남쪽 끝자락인 칼라브리아 지역을 내달린다.
이제 머지않아 바다가 나타나리라. 지중해가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대륙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는 겨우 1.9km 거리를 두고 시칠리아와 마주 대하고 있다. 대륙의 칼라브리아 항구와 시칠리아의 메시나 항구 사이에 수많은 어선과 화물선과 페리들이 오가고 있지만, 내가 타고 있는 이 기차는 인근의 산 지오반니 항구에서 기차를 그대로 페리에 옮겨 싣고 30분 정도면 메시나 해협을 건너 메시나 항구에서 다시 연결된 철로에 그대로 올라타고 팔레르모로 달려갈 것이다. 기차를 통째로 페리에 올려 바다를 건너는 노선으로는 여기가 세계에서 유일한 곳이다. 계절이 여름이면 간혹 페리에서 해협의 아침풍경이랑 지중해의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한겨울인 지금은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항구의 가로등 불빛들만이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시간이 없어서 메시나 해협을 그대로 건널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여기 메시나 해를 바라보고 있는 대륙의 끝자락 칼라브리아 지역은 과거 역사에서 대략 3번 정도 거대한 기록을 남겼던 장소로 나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 머물면서 둘러 볼 시간적 여유가 내겐 없었다. 언젠가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이탈리아를 다시 찾을 날이 있겠지 라며 스스로를 달래본다.
칼라브리아 지역의 첫 번째 기록은 바로, 이번 여행기의 초반에 적었던 바대로 로마와 카르타고의 ‘포에니 전쟁’에 등장한다. 로마를 궤멸시킨 ‘2차 포에니 전쟁’의 영웅 한니발은 무슨 연유에선지 방어력을 상실한 로마를 침공하지 않고 로마 주위만 빙빙 돌다가 물자가 풍부한 여기 이탈리아 남부지방을 2~3년 동안 약탈한다. 그러자 기력을 회복한 로마가 스키피오의 계략대로 지중해를 건너 방비가 허술한 카르타고의 본토를 침공하자, 허겁지겁 놀란 카르타고는 한니발에게 귀환을 요구한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한니발은 배를 띄워 본국으로 철수를 하게 된다. 한니발의 군대가 눈물을 흘리며 배에 오른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그리고 2차 포에니 전쟁이 막을 내렸던 것이다.
두 번째 기록은 ‘스팔타쿠스의 난’ 때이다. 자유를 갈망하던 검투사들의 난은 온 로마를 불안에 떨게 하였다, 하여 결국은 북쪽지방의 수비군과 동유럽에 나가있던 원정대까지를 불러들여 난을 진압하게 하였다. 반도의 북쪽으로 올라가 알프스의 산세를 끼고 돌아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스팔타쿠스의 반란군은 그만 길을 차단당하고 말았다. 고도로 훈련되고 체계적인 조직력을 갖춘 제국의 군대를 상대하기엔 수백 명의 검투사에 민병대로 조직된 반란군의 규모로는 판세를 뒤집기에 한계가 있었다. 반란군은 점차 이탈리아 남부의 해안가로 쫓겨 나게 되었다. 그들은 그동안 약탈해서 모은 모든 재화를 해적들에게 주고 해적선을 이용해 지중해를 건너 아프리카로 도망치기로 해적들과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이를 눈치 챈 로마가 해적들에게 두 배의 재화를 약속하면서 반란군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마지막 희망으로 바닷가에 몰려 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약속한 배는 오지를 않고, 제국의 대규모 군대가 점차 포위망을 좁혀왔다. 반란은 진압되었다. 이곳에서 로마까지 이르는 로마가도(아피아 가도) 양쪽 옆으로 길게 십자가가 늘어서 설치되었고, 체포된 반란군 모두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되었다. 스팔타쿠스는 포로 로마노에 가장 가까운 십자가에 내걸리는 신세가 되었다.
세 번째 기록은 ‘십자군 원정’ 때였다. 1차 십자군 원정대는 육로를 통해 예루살렘까지 진군했다. 험준한 산악지형을 넘고 넘으면서 눈보라와 싸웠고 초원과 강과 골짜기를 지나서는 다시 사막을 걸어서 건어야 했다. 희망찬 출발 때와는 다르게 목적지 예루살렘 부근에 도착했을 때는, 전체 군사의 3/4을 행군 도중에 잃고 난 후였다.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2차 십자군 원정에서는 해로(바닷길)을 통한 이동을 준비하였다.
여기 산 지오반니 항구 주변이 온통 십자군 원정대로 가득 채워졌다. 그리고 해협 건너 메시나에는 보급 물자로 넘쳐났다. 실로 어마어마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배를 띄웠고 그리스를 지나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과해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서 보급물자를 지원 받고 나서 육로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그리고 일부 부대와 지원물자는 여기에서 터키 남부 해안을 끼고 돌아서 리비아의 트리폴리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의 기록을 더 한다면, 2차 세계대전 중에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의 무솔리니 군대를 쳐부수기 위해서 연합군이 상륙했던 곳 또한 바로 이곳이었다.
그만큼 이곳은 해상무역중심지이자 해상 교통의 요충지였다.
영화 (킹덤 오브 해븐)의 초반부에 여기 메시나에 대한 배경과 설명이 거대한 영상으로 멋지게 등장한다. 바로 그곳이다.
기차를 실은 배가 메시나 해협을 건너는 짧은 시간동안 세차게 내리는 비로 인해 배의 갑판 위로 올라가 볼 수가 없었다. 아쉽긴 했지만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메시나에서 남쪽으로 카타니아. 사라쿠사를 향하는 기차와 북서쪽으로 팔레르모를 향하는 기차로 분리가 된 후 한참을 더 지나고 나서야 서서히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두 눈 가득 펼쳐져 들어오는 짙푸르다 못해 검푸른 바다. 지중해였다.
메시나 해협을 가운데 두고 그리스 크로아티아 쪽의 바다를 이오니아 해라고 부르고, 반대편 프랑스 스페인 쪽의 바다를 티레니아 해라고 부르니까 지금 달리는 기차를 따라 해안선을 이루고 있는 바다는 바로 티레니아 해였다.
코발트 빛 바다를 껴안은 채 기차는 달리고 또 달렸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파란 하늘이 가득 차창을 통해 들어온다.
나는 지금 시칠리아를 달려가고 있다. 여기가 바로 시칠리아다.
그렇게 1시간 반쯤을 더 달렸을까?
해안으로 아주아주 낯익은 풍경이 두 눈 가득 쏟아져 들어온다.
검푸른 파도가 하얗게 포말로 부서지는 황금빛 백사장이 늘어서 있는 아주 작은 어촌 풍경이다. 정말 황홀하도록 아름답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지극히 낯익은 풍경....... 바로 (체팔루)였다. 기차는 영화 ‘시네마 천국’의 촬영지 체팔루를 지나가고 있었다.
‘내일이나 모레쯤 다시 찾아 올 나의 시칠리아 여행 스케줄에 포함되어 있는 장소였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체팔루의 여운을 간직한 채 1시간여를 더 달려서 마침내 기차는 긴 여행의 종착지에 나를 내려놓았다.
팔레르모 중앙역.
‘다르다’
‘아니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딱히 꼬집어서 ‘이것이다’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어도 무엇인가가 분명 달랐다.
하늘도....... 바람결도....... 건물의 빛깔도....... 공기도........ 그 모든 것이.......
시칠리아에 들어서면서부터 꾸준하게 내 머릿속을 채워가고 있는 느낌은 바로 이 ‘무엇인가가 다르다’라는 느낌과 생각이었다.
시칠리아는 분명 이탈리아에 속해 있는 한 지역의 이름이었음에도, 나는 지금 시칠리아는 나머지 이탈리아와 분명하게 무엇인가가 너무도 다른 느낌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다른 거지?’ ‘어디에서 이런 느낌이 생기는 것이지?’
그런 생각에 젖어 있다가 팔레르모 중앙역에 도착했다.
화창한 봄날(4월 말. 5월 초 느낌)의 팔레르모가, 그리고 시칠리아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한국은 분명 한겨울 1월인데 말이다.
배낭을 둘러메고 기차에서 내렸다.
13시간을 함께한 웬수덩이(?) 알베르토와 이탈리아식 인사(포옹하고 교대로 양 볼을 비비는)를 난생처음 경험했다.
와!
눈에 탁 띄는 팔레르모 기차역 건물만 해도 비잔틴 양식에 이슬람 양식이 혼합된 아주 멋진 건물이었다. 세상에나......... 여기서는 골목길을 가다가 남의 담장 넘어 보이는 개집조차도 저렇게 멋있는 비잔틴 이슬람 양식이 아닐까? 개 밥그릇도 대리석 식기 아니야?
무엇인가 분명하게 다른 이 느낌을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팔레르모에 머무는 나흘 동안 나는 스스로 에게 똑같은 이 질문을 수백 번은 더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흘이 지나 팔레르모에서 카타니아로 떠나는 버스 안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빛바랜 곳의 빈티지한 아름다움’ 이라고........
고색창연했던 옛 영화가 모두 사라지고 버려진 듯 잊혀 진 듯 저만치에 밀려나 있던 까마득한 존재. 칠이 벗겨져 나가고 벽이 허물어지고 사람의 자취마저도 뜸한 과거에로의 시간여행 속에서, 잠시 멈칫거리게 만드는 낯설음이 이내 사라지고 포근한 어머니의 품에 안기듯이 여행자의 마음까지 녹아 스며들 듯 포용해 주는 안식처 같은 곳이 바로 시칠리아였다.
빛이 바래고 그다지 세련되지도 않고, 그런가하면 크게 공들이지 않고 그냥 툭 내던진듯한 그런 소담스런 풍경들과 수다스럽지만 소박하고 정겨운 사람들이 사람다운 냄새를 서로 풍겨가면서 살아가는 진짜 이탈리아가 그곳에 있었다.
정말이지 나는 시칠리아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아니다.
어쩌면 웬만한 시칠리아나 이탈리아 사람에 비해도 오히려 내가 충분하리만큼 아는 것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실제 내 앞에 드러난 시칠리아는 낯설었다. 하지만 그 낯설음이 거부감에서 생기는 낯설음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단히 매혹적인 설레이는 낯설음으로 내게 다가왔던 것이다.
내가 이미 알고 있었던 시칠리아는 바로 이런 곳이었다.
시칠리아에선 아몬드와 속이 유난히 붉은 블러드 오렌지가 참으로 많이 생산된다. 아그리젠토의 아몬드와 2월 축제는 아주 유명하다. 그리고 10그램의 블러드 오렌지를 툭 하고 터트리면 정확히 11그램의 풍부한 과즙을 쏟아낸다. 이 오렌지의 맛과 향이 정말로 기가 막히다. 가격도 우리나라에 비교하면 절반 이하일 정도로 싸다. 이번 여행 내내 행복한 동반자였다.
시칠리아에선 꼭 아란치니를 먹어줘야만 한다. 짭쪼름한 양념 누룽지볶음을 속에 넣고 제법 커다랗게 둥근 완자 모양으로 만들어 기름에 튀겼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스낵이니만큼 꼭 맛을 보아야만 한다. 나도 서너 번 먹어 보았다. 꼭 완자 모양만 있는 것은 아니다. 크고 뾰족한 딸기모양으로 생긴 것도 있다. 곧 사진 올리겠음.
피코 딘디아는 인도의 무화과라는 식물로 우리나라에서는 손바닥 선인장이나 백년초로 불리는 식물이다. 식용 약용으로 쓰이고 술을 만드는 데도 사용한다. 그런데 이 선인장이 산이던 들이던 절벽이던 도심 공터이던 공원이던 가는데 마다 어디든지 자생하고 있다. 그리고 간혹은 들판에 울타리처럼 또는 언덕길에 담장처럼 나름 색다른 분위기의 조형장식물처럼 마주칠 때가 있다. 다만 가시에 찔리면 찔끔 눈물을 흘리게끔 하니 조심해야하겠다.
또 시칠리아 남부에서는 ‘마르살라’라는 약간 와인의 칼라와 채도가 낮은 와인을 생산한다. 고대로부터 지중해의 풍부한 태양과 바람은 당도가 높고 풍미가 풍부한 와인을 생산하게 하였으나, 와인의 제조기술이 다른 포도생산지에 비해 뒤떨어졌다. 하여 유럽 각지의 와이너리들은 타닌과 산미가 완숙되기 힘들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시칠리아의 마르살라 와인을 판매용 테이블 와인이 아닌 주정강화용으로 생산케 하였으며, 이 마르살라를 가져다가 자신들의 와인과 혼합하여 새로운 맛과 차원의 고급 와인을 생산하였었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서 마르살라는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힘입어 새로운 마르살라 와인으로 고급화되어 되살아나고 있다.
오페라 ‘노르마’는 시칠리아가 사랑하고 자랑하는 빈센초 벨리니의 작품이다. 벨리니는 시칠리아 남부의 카타니아 사람이다. 1831년 스칼라에서 초연되었고, 20세기에 마리아 칼라스가 불러서 유명해 졌다. 시칠리아에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오페라 공연을 관람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마피아 하면 떠오르는 곳이 바로 시칠리아이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중심으로 영화로 그려낸 것이 바로 프란시스 코플라 감독의 (대부 시리즈)였다. 시칠리아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여럿 있다. 영화이야기는 차차 여행을 하면서 다시 꺼내보기로 한다.
그런가 하면 시칠리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시칠리아의 모든 풍요로움은 바로 시로코 때문’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시로코’란 지중해에서 시칠리아로 불어오는 바람을 뜻 한다. 아프리카 사하라 지역의 고온 건조한 바람이 지중해를 건너오면서 수분을 얻어 시칠리아 전역에 꾸준하게 비를 뿌려주고 평상시에는 시원한 바람을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배낭여행자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당연히 텐트를 먼저 치거나 아니면 숙소를 찾는 일이 가장 급선무다.
고로 지금 나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숙소를 구하는 일이다.
한국에서 숙소를 구하는 일이야 생각보다도 아주 쉬운 일이다. 밤거리에 나서서 하늘을 보라. 빛나는 붉은 네온사인을 세운곳은 교회 아니면 호텔이다. 학교에서 배운 표식에의하면...... 한국은 지구상에서 온천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한국에서 호텔은 곧 온천이 아닌가. 수증기가 피어 오르는 개밥그릇 말이다.
도심이건 시골이건 사방이 온천이다. 또 여전히 사방에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게 온천이다. 시설 또한 22세기형이다. 사람이 없는 무인 온천이라니 말이다. 한국인의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외식산업이니 문화산업이니 레저산업이니 발전들을 했다고 떠드는데...... 불경기를 모르게 가장 번창하고 늘어가는게 바로 온천업(?)이 아닐까? 왜 멀쩡하게 자기집에 목욕탕 남겨두고 무인온천(?)들을 대낮에 남의 눈을 피하면서 이용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지하에서 뜨거운 온천수가 솟아나는 곳이 아니면 절대로 수증기 피어오르는 개밥그릇 표시를 할 수 없다.
또한 유럽의 거리에서는 우리나라 저잣거리의 (간판문화)를 상상 할 수도 없다. '유럽의 도심이 아름다운것은 거추장스러운 간판이 없어서 이다.' '한국에서는 돈을 들여서 멋지고 예쁜 건물을 지을 이유가 없다. 아무리 멋지게 지어보았자 분양이나 임대가 이루어지고 나면 휘앙찬란한 간판으로 곧 도배가 될터이니 말이다.' 하여 4성급. 아니면 5성급의 유명 호텔이나 리조트가 아니라면 간판에 의존해 호텔을 찾기란 무척이나 고되고 어려운 일이다.
구찌나 페르가모 같은 세계 굴지의 패션브랜드 본사를 로마나 피렌체에서 보았어도 화려하고 커다란 간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입간판이래야 사람 얼굴 크기의 목판이나 철제로 이미지를 형상화 한것이 전부였다. 그냥 한칸이나 두칸 정도의 쇼윈도우에 브랜드 표시와 함께 자신 브랜드의 특성을 잘 나타낸 장식이 전부였다. 세계적인 명성과 품질은 결코 크고 휘앙찬란한 간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 전통과 자부심 그리고 장인정신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골목을 가득채운 번쩍이는 네온사인에서 전통과 자부심과 장인정신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 화려한 간판에서는 졸부의 있어보이고 싶은 사치심과 허영과 오만이 자라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런점을 노려 등장하는 장사치들이 그런 도시를 지배한다. 나는 간판이 적거나 없는 도시가 좋다.
오늘 새벽 내가 탄 기차가 메시나 해협을 건넜을 떄 웬수덩이(?) 알베르토가 물어왔었다. 팔레르모에선 몇날이나 어디에 묵을 것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4일 정도를 묵을 예정이고 아직 묵을 곳을 정해지 못했다고 했다. 그랬더니 어떤 유형의 숙소를 생각하느냐고 다시 묻는다. 호텔. 리조트.민박.게스트하우스. 펜션. 아파트먼트 등등을 말하기에, 혼자니까 우선은 좀 조용하고 가격이 저렴하면서 음식을 직접 해먹을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고 했다. 가능하면 커다란 마트나 시장이 가까우면 더욱 좋겠고........
팔레르모의 지리적 조건이나 가보고 싶은 여행지와의 교통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어 온다.(참 신기한게.......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도 알베르토는 장황하게 이탈리아어로 떠들고, 나는 간략 간략하게 영어로 대답하거나 되묻곤 하는데........ 기기묘묘하게 대충이나마 서로의 의사가 전달되고 약간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대화의 내용이 서로 이해가 된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이건 여행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 완벽하지 않은 대화와 이해가 대단히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되겠지만........ 그것 또한 내 여행의 일부였다.)
나는 늘 즐겨 걸어다니면서 여행을 하기에 지리나 교통의 문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대답을 했고....... 알베르토가 멋진 숙소 한 곳을 추천해 주겠다고 했다. 딱 내가 원하는 그런 곳일거라며....... 자기 친구의 동생이 얼마 전부터 호텔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아직은 소규모 아파트먼트식 민박집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때부터 어마무시 장황하게 그 친구동생과 그의 호텔을 입에 침이마르도록 설명을 늘어 놓기 시작하는데......... (뭐라 떠드는지 도무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핸드폰을 뒤져 호텔 연락처를 찾는데 찾지를 못하고........ 가방을 뒤져가며 명함을 찾는데 찾지를 못하고......... 수첩을 펼쳐놓고 약도를 그려가면서 설명을 하는데......... 약간의 이해가 갈뿐........ 제대로 알아 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의 열의와 정성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땡큐. 알베르토. 너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겠어. 오케이. 땡큐. 찾아갈 수 있을것 같애. 웅 걱정말어. 아이 캔 두 잇. 오케이. 아이 캔...........'
그리고 지금 나는 이 낯선 도시 팔레르모의 대로를 따라 알베르토가 설명해준대로 그 호텔을 찾아가고 있다.
팔레르모 중앙역사를 나오면서 여행안내소에서 지도를 한장 얻었다. 곧바로 지도를 중심으로 알베르토가 그려준 약도와 대비를 해 본다. 그런데 묘하게 일맥상통 하는 듯 하면서도 무언가가 지리적으로 다른 듯 하게 느껴지는 이 불안한 기운은 무엇일까? 오랜 경험으로 지도를 우선 기준으로 믿고 그 지도의 동선 위에다 약도를 그려가면서 무엇인가를 표현하려고 했던 알베르토의 심정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과감하게 광장을 나서서 도로를 건너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커다란 교회가 나타나고 다시 도로를 건너고 또 교회가 나타나고, 그리고는 여행방송과 안내책자에서 무수히 보았던 유명한 사거리가 나오고......... 이거 뭐 대충 팔레르모의 유명 관광지를 다 돌아본 기분이 들었을 때 이미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점점 배낭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하여 지나는 행인을 붙잡고 지도와 약도를 보여주며 길을 물었는데...... 대부분이 영어를 잘 모른다. 한 노인분에게서 교차로를 두 번 거너서 오른쪽으로 가면 된다는 말씀에 죽어라 또 걸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시 영어가 가능한 사람을 섭외해 길을 물었더니 아뿔싸...... 왔던 길을 되돌아 가란다.
허니 어쩌겠는가? 교차로 까지 되돌아 와서 캔맥주를 하나 사서 마시면서 쉬고 있는데 왼쪽으로 저만치 무지무지 커다란 건물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길을 찾지못하고 있는 처지도 순간 잊어버리고........ 일단은 그 건물 구경부터 하러 간다.(이게 내 여행방식의 일부분이다) 당시 내가 마주친 건물은 옆모습일 뿐이었는데 전체를 다보지도 못했으면서도 나는 벌써 '와! 이게 팔레르모구나' 하면서 감탄사를 늘어놓기 시작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학생들을 붙잡고 '이 건물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데....... 영어를 못알아 들으면서도 내가 손으로 가리키는 뜻을 이해 했는지 역시나 이태리어로 대답들을 서로 해주는데........'떼아트로 마시모'란다. 고맙다고 시늉하면서 돌아서는데 문득 떠오르는 단어 '마시모'가 뇌리에서 섬뜩였다. 쫓아가서 학생에게 다시 물었다.
'마시모 오페라 하우스?'
'씨. 오페라 하우스'
그 순간 나는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챘다. 알베르토의 약도에도 분명하게 마시모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이해가 어느정도 되었다. 이곳에서도 나는 아직 한참을 더 북쪽으로 가야만 한다. 하지만 따져본다면 처음 중앙역에서 목적지까지 비스틈히 골목길을 따라 가거나 좀 돌아서 가는 지름길이 지도상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알베르토는 이곳이 초행인 나를 생각해 멀리 돌아가는 길이 되겠지만 커다란 중심도로만을 따라서 찾아가는 약도를 그려 준 것이었다. 배려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턱수염이 더부룩한 알베르토를 오해해서 속으로 여러번 욕했었는데......... ㅎㅎㅎ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알베르토가 그려준대로 약도상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분명한 목적지에 제대로 찾아 온 것이다. 번지수를 확인하며 동네를 세바퀴나 돌았다. 그런데 이게 뭐야. 이 동네의 분위기는 완전 미국의 하렘가 같은 분위기가 아닌가. 흡사 서울로 치면 아파트 재개발을 기다리는 빈민촌이나 판자촌 같은 분위기랄까? 빛바랜 낡고 여기저기 허물어진 건물들과 약간 암울하고 음습한 분위기. 조금 전에 지나온 마시모 오페라하우스 인근이 지금 팔레르모에서 떠오르는 가장 핫한 도심(서울의 압구정)이라면 여기는 재개발 지역이 분명했다. 곳곳엔 유적을 발굴중인 모습도 보인다. 좋게 본다면 이곳 모두가 천년 이천년 전에 지구상에서도 꼽일만큼 번창하던 도심의 중심이었겠으나........ 지금의 모습은 솔직히 좀 망설여지는 그런 정도의 후미진 도심의 뒷골목이었다.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를 붙잡고 알베르토의 약도를 보여드렸다. 같은 이탈리아분이시니 글씨를 알아보실테고 이 동네분이시니 혹시나....... 해서였다.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쓰레기가 나뒹구는 골목을 가리켰다. 감사를 드리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호텔이 없다. 헛탕을 치고 나와서 또 돌아다니다가 이번엔 할아버지를 붙잡고 여쭤보았는데....... 또 좀 전의 할머니와 같은 골목을 가리킨다. '혹여 간판이 너무 작아서 내가 못 보았나?' 하고 다시 들어가 이잡듯이 뒤져 보았는데...... 그냥 허름한 빈민가 모습일 뿐 어디에도 호텔은 여전히 없었다.
얖 뒤로 약 20kg의 배낭을 메고 거의 1시간40분 정도를 걸어서 다녔다. 이미 온 몸이 땀에 젖었고 이젠 더 싸돌아다닐 기력도 모두 소진한 상태였다. 차라리 다른 호텔은 찾아야겠다고 발걸음을 되돌리려 하면 무엇인가 '이제까지 시간과 정성이 아깝잖아?' 하면서 내 발목을 잡았다. 미칠지경이다. 어쩌겠는가? 장소는 맞게 찾아왔는데 호텔이 없는 것을.......... 우선 무엇이든 좀 먹고나서 기운을 차린 뒤에 어떻게든 해 보자고 큰 길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골목어귀에 자동차 수리쎈터가 있었다. 남자가 서너명 있기에 마지막으로 혹시나 하고 가서 다시 물어 보았다. 다행히 카센터 주인아저씨가 영어를 했다. 상황을 성명하면서 약도를 내밀었는데......... 아뿔싸........... 또 또 또 그 골목을 가리킨다.
미티미티. 정말로........ 정말로........ 사람 확 돌아 버리겠다.
'저기 선배님....... 삼촌........ 아저씨......... 다른분들도 거기라 하셔서 제가 들어가서 죽어라 샅샅히 찾아보았껄랑요?요요요요요요요. 근데 없어요.'
아마도 지금 생각하면 당시 내 표정이 '정말로 억울하고 지치고 낙담하다 못해 크게 상심한 표정' 이었으리라.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그 아저씨가 내 팔목을 잡아 끌면서 직접 그 골목으로 호텔을 찾아주러 나서주셨는데...........(바로 윗쪽 마지막 사진의 오른쪽 부분 주차금지 간판 옆이 바로 그 카센터이고 왼쪽 하얀 물탱크의 꼭대기 모서리부분 파란 테라스가 내가 머물 숙소)
또. 아.뿔.싸........ 정말 사람 미쳐도 여러번 미치게 한당............... (배낭여행이 아니면 죽어도 경험하지 못할 극적인......... 허망함의 진수)
오.우.마.이.갓.
간판은 물론 아무런 표시판 조차도 없다.
헐.
카센타 아저씨가 세번째로 벨을 누르고 나서야 안에게 기별이 들려왔다. 작은 스피커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데 나는 하나도 알아 들을 수가 없다.
삐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잠시 후 나보고 4층으로 그냥 올라가면 된다고 한다. 일단 감사 인사를 드리고 나서 계단을 올라서려다 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거야....... 이상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 않은가? 아예 간판 조차도 없어?
'혹시 이거 인신매매로 장기 축출 같은거 당하는것 아니야?' '내 눈을 빼가면 어떻게 하지?' '이대로 알았다고 하고 다른 호텔을 찾아볼까?'
실제로 잠시 망설여졌다. 태어나서 처음 격는 그런 이상하고 애매모호한 상황이 아니겠는가? 그러다 이내..........
'까짓꺼 내 인생 나름으로 살만큼은 이미 충분히 살았는데 뭐. 인생 뭐 있겠어? 다 거기서 거기지? 도대체 뭔 일인지 알아나 보고 나서 결정하지 뭐.'
다시 힘차게 대리석 계단을 통해 4층까지 올라갔다.
그러자 머리가 온통 시원한 (파비오)가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반겨준다.
내가 알베르토의 약도를 보여주자 처음엔 신기해 하더니 이내 수십년 된 친구를 다시 만난듯 지극 정성으로 나를 반긴다. 3개의 숙소가 있는데 마침 하나가 비어서 자신이 청소하느라 손님이 왔는지도 몰랐다고 정중히 사과한다. 정말 상대를 존종할 줄 알고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사내다.
방을 보여주겠다고 안내를 하며 문을 여는 순간................ 그 찰라 같은 순간에 나는 이미 결정했다. '나 여기 묵을 거야.'
파비오는 하나에서 열까지 세세하고도 자상하게 설명을 거듭했다.
나는 무조건 '애브리싱 이스 화인. 노 프라블럼'만 연발하고 있었다.
그동안 웬만큼은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면서 다양하고도 숱한 경험으로 숙소들을 맞이했었다.
최악의 숙소라면 당연히 미얀마의 (바간)에서 묵었던 딱 2평짜리 겨우 삐걱거리는 침대에 달랑 선풍기 하나로 적도의 열대야를 격은 경험이겠다. 반대로 딱 내 취향의 최고의 숙소를 꼽으라면 나는 촌각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여기....... 이곳......... 파비오의 호텔을 꼽겠다.
내가 다시 팔레르모에 간다면........ 나는 5성급 호텔이나 최고급 리조트를 누가 거져 준다고 해도 사양할 것이다. 나는 꼭 다시 여기 파비오가 멋지게 꾸며놓은 이 호텔을 다시 찾을 것이다. 그만큼 좋았다. 그만큼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부킹닷컴)이나 (트리바고) 같은 싸이트에도 등록이 된 정식 호텔이다. 하지만 찾으시려면 발품 좀 파시게 그냥 두려고 한다.
파비오는 재개발지역의 사라져가는 낡은 가옥들을 사들여 자신의 취향대로 꾸며서 여기저기에 호텔업을 벌이고 있는 젊은 사업가였다. 모든 시설과 인테리어를 직접 했다. 그리고 관리와 하나하나 청소까지도 그의 아내와 둘이서 운영을 하고 있었다. 평범하지만 기품이 있어보이는 온화한 모습의 아내도 만나보았다. 하여 여기 재개발 지역의 4층을 전부 사들여서 3개의 숙소로 꾸며 놓았는데..... 아마도 내가 머물렀던 방의 전경이 가장 뛰어나지 않았을까?
야경도 아주 멋졌다.
지중해의 코발트빛 바다를 연상시키는 온통 파란색의 톤으로 모든 벽을 마감했다.
주방을 겸한 커다란 거실과 더블침대가 놓인 커다란 침실의 두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팔레르모의 구도심이 바라다 보이는 발코니가 있고, 도심쪽의 벽면마다 아치형태의 아주 커다란 출입문을 겸한 창이 만들어져 있다. 나는 이상하게 높은 지붕과 여기같은 아치형태의 높은 창문에 어떤 로망 같은 것이 있다. 물론 사계절이 뚜렷하고 우리처럼 혹한의 겨울이 있는 곳에서는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말이다.
침실과 거실에는 따로 에어컨과 TV가 설치되어 있다. 침대에 누운채로나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창을 내다보면 그대로 팔레르모의 옛 도심이 바라다 보인다.
절말로 멋진 풍경이다. 거실 소파의 쿠션을 제거하면 또 하나의 훌륭한 싱글 침대가 탄생한다. 그렇게 따지면 최소 3명이 지낼 수 있겠는데...... 우리 문화가 방바닥 문화인 점을 생각하면 이 숙소에서는 한 7명 까지는 충분히 머물수가 있겠다. 왜냐하면 침실 옷장의 아래쪽과 윗쪽의 벽장 같은 공간엔 여분의 담요, 이불(이들도 겨울이 있기에) 각종 깔개나 덮개가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 모든것을 지금 나 혼자 사용하게 된 것이다.
주방은 흡사 어느 레스토랑의 주방을 방불케 할 정도이다. 커다란 오븐에 동시에 5개의 요리를 할 수 있는 가스렌지, 거기에 진짜 파스타와 올리브유와 각종 향신료가 내집의 부엌처럼 그대로 가득 놓여져 있다. 각종 요리 도구와 그릇과 접시와 유리잔들이 종류별로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다. 지친 배낭여행자에게는 가히 천국이라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번외로 나를 크게 감동시킨것이 바로 화장실이었다. 해외를 가면서까지 자신의 화장실(?)을 가지고 갔다는 전직 모 대통령의 슬픈 비화를 가지고 사는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여기 화장실이 그 전직 대통령의 화장실 보다 나으면 낮지 결코 못하지 않을 것만 같다.
침실과 거실과 화장실엔 각기 모양이 다르고 개별 조정이 가능한 스팀이 설치되어 있는데 화장실의 스팀은 벽걸이 형태로 옷걸이를 대신한 모양과 형태로 매달려 있다. 그런데 이것이 빨래 말리는데 정말로 기가막히게 쓰인다. 여행에 가져가 옷가지(겨울 외투만 빼고) 싸그리 샤워실에서 빨래해서 이 벽걸이 스팀에다 말려 입었다. 초일류 빨래 건조대 베리 굿 이다. 그냥 예쁘기만 한 직사각형 세면대는 손씻고 면도나 하고, 세수나 머리는 구석의 의자 꺼내서 양변기 옆의 또다른 세면대를 이용한다. 이 세면대 아주 특색있다.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에는 없다. 이거 한국양반들 오해하면....... 혹 남자들 소변기나 여자분들 비데로 착각하면 큰 망신이겠다. ㅎㅎㅎㅎ
파비오와 나는 즉석에서 4일간의 임대 계약을 했다. 무조건........ 무조건....... 이미 첫눈에 마음에 쏙 들었으니까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내가 여기까지 찾아오느라 얼마나 죽을뚱 살뚱 애를 썼느냔 말이다.
1일 30유로에 유럽에서는 거의 항상 따라붙는 도시세 1일 1.5 유로. 도합 4일에 126 유로를 내기로..........
줄곳 자유배낭여행만 다녀온 나에게 있어서도 패키지여행의 부러운 점이 두가지 정도는 있다.
패키지여행과 배낭여행은 서로 상호보완적인 면이 분명히 있는데, 패키지여행이 가장 전면에 내세우고 자랑하는 두가지가 바로 솔직하게는 내가 부러워 하는 두가지와 같다. 패키지여행의 최고 장점은 최고급 숙소와 최고급 식사에 있다. 또 그때문에 비용이 팍 오르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하지만 부럽기는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정도는 여행사에서 자랑하는 그 정도는 결코 아니다.
하루 한끼(주로 저녁) 정도는 좀 마음 편하게, 좀 폼나게, 또 그지역에서 자랑하는 음식을 먹고 싶다. 하지만 주로 혼자나 둘이 여행하는 배낭여행자에게는 굳이 비용문제가 아니라도 그리 호락호락할 문제가 아니다. 특히 유럽을 가게되면 서양인들의 식사예절을 우선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태어나 먹어보지 못했고 알지 못하는 메뉴 선택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런면에 있어서 누군가가 설명해주고 선택해주고 어느정도 친분이 있은 사람들과 어울려서 담소를 나누며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정도의 식사여건을 부러워 한다는 뜻이다.
숙소의 경우 사우나나 수영장이 딸린 5성급 호텔을 부러워 한다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들여서 어렵게 구한 호텔이 마음에 안들거나, 간혹 늦은 시간에 숙소를 구하지 못해 헤매고 다닐때는 '내가 이 고생을 왜 사서하나' 하면서 패캐지를 부러워 할 때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결코 패캐지로 내 여행방식을 바꿀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내 체력이 허락하는 한은 영구불변이다.
지금 팔레르모에서 맞는 이런 상큼하면서도 매혹적인 여행은 배낭여행이 아니면 절대 겪어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나에게는 나름으로 '비싸고 맛있고 품위있는 패캐지식 음식문화'를 대체할 방법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케이블 방송의 '윤식당'이란 프로를 몇 번 보았다.
몇일 전 종영된 스페인편에을 보았다. 한국의 음식을 유럽에 알리면서 여행의 충동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인기 연예오락프로그램이었다. 재미있었다.
그런데 내게 유독 눈길을 끈 것은 프로그램의 재미 보다도, 등장하는 음식의 종류와 음식의 양(분량)과 가격이었다. 유럽을 여행하려고 하는데 있어서 대충이라도 보편적인 음식들의 가격대를 짐작 가능케 해주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중에도 그지역(유럽) 음식의 퀄리티에 맞추어 가격 책정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에피타이저 6유로 정도. 메인 메뉴 10 ~ 12 유로 정도. 스페인 뿐만이 아니라 서유럽의 가장 보편적인 수준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적어도 내게 중요한 것은 음식의 질은 둘째이고, 우선 음식의 양에 시선이 갔다.
비빔밥은 그 중 좀 나아보였지만, 닭강정 달랑 손가락 한마디만한것 여덟개, 갈비라고 달랑 애기 손바닥만하게 두조각, 잡채라고 어디 한식집 반찬으로 나오는 정도의 양이었다. 쉽게 삼겹살 1인분의 양하고 비교해 보면 이해가 쉽겠다. 서양과 우리나라의 음식문화가 아무리 다르기로서니........ 그렇다면 혹시나 그 식당을 들리게되는 한국인에게는 절반의 가격을 책정하시던지...... ㅎㅎㅎ
만약에 내가 그 방송 시즌에 혹시나 '윤식당'에 여행도중에 들렸다고 치자.........
에피타이저는 아예 생각조차 안하겠다.
일단 맥주 한병에 닭강정을 주문했다. '에게게....... 한국인의 지극히 보편타당적인 수준에서......... 맥주 두모금 마시고 나니 닭강정이 사라졌다.' 기본 땅콩이나 팝콘도 안주면서 말이다. 닭강정의 분량을 알았으니 1인분 더 시켜보았자 역시나 새발의 피일 것이다. 갈비도 비슷할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잡채를 시켰다. 웬걸? 이게 정량이야? 지극히 보편 타당적인 한국인의 식성으로 반찬이 아닌 한끼 음식으로 먹으려면 적어도 4접시(4인분) 이상은 먹어줘야 간에 기별이 갈것만 같다. 꼬우면 식당하라고........ 부러우면 지는거라고.......... 에이....... 씨.
비빔밥을 시켰는데 맛은 좋았다. 그러나 허기를 겨우 면한 정도이지 근사하게 식사를 마쳤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가 않는다. 계산서를 달래본다.
닭강정(12유로). 잡채(12유로). 비빔밥(12유로). 맥주(3유로)가 나왔다고 치자. 정확한 판매 가격은 기억이 안나지만 말이다. 도합 39유로. 대충 한끼 식사에 4만원 이상을 썼다는 이야기가 된다. 뭐 실제로 유럽여행에서는 별로 특이할 것이 없는 상황이다. 어디 레스토랑인데 코스로 나오네 싶으면 9만원에서 14만원 정도 비용이 필요하다고 보면 된다. 이런 정도면....... 배낭여행에 대한 모독 수준이라 해야하나??????????
문제는 적어도 나의 경우에 비추자면 한끼에 4만원씩 들여가면서는 여행을 계속할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훗날 언제고 아이슬랜드 정도를 계획한다면 그런 수준을 감당해야만 하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굶어가면서 여행을 하느냐?
오! 노노노노노노노노노노.......... 절대로 아니다. 먹을거 제대로 다 먹고 다닌다.
숙소를 찾아오느라 너무 힘이 들어서였을까?
샤워를 하면서 로마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하지 못햇던 빨래를 했다. 아예 말짱한것 까지 꺼내서 빨았다. 햇쌀이 그만 너무 좋아서.
침대에 누워서 조금 쉬고자 했는데......... 팔레르모에서의 첫날에 대한 아무런 의욕도 생겨나지가 않았다. 그동안 여정에 조금 피곤이 쌓였나보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러나온다.
'그래. 오늘 이시간 이후의 스케줄은 없음. 그냥 맛있는거 먹으면서 푹 쉬고 보는거야. 이런게 배낭여행이지......... 내 맘이니까..........ㅎㅎㅎ'
슬리퍼를 끌고 밖으로나온다.
정말 새롭고 정말 무엇인가가 다르다. 시칠리아는 분명 이탈리아이기는 한데 분명하게 본토와는 다른 무엇이 있다.
파비오가 가르쳐 준 대로 두 불럭 떨어져 있는 시장으로 간다. 시장은 새벽에 열려서 오후가 되면 하나 둘씩 문을 닫는다고 했다. 시장은 문을 닫아가고 있었고 입구에 두 세군데의 대형마트가 있다고 했다. 모두를 둘러 본 후에 한곳을 정해서 마트에 들어갔다. 장바구니를 들고 쇼핑을 한다.
와! 정말 시칠리아는 로마와 달랐다.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와! 정말로 싸다'라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연실 튀어나왔다. 팔레르모 물가 정말로 착했다.
10그램짜리 오렌지를 툭 터트리면 석류알처럼 붉은 속살이 드러나면서 정확히 11그램의 달디 달은 과즙이 튕겨나온다. 거기에 가격은 우리나라와 비교가 되질 않게 무척이나 싸다. 사과도 배도 토마토도 싸다. 포도는 우리나라 가격의 8~90% 정도인데, 감격스러울만치 감사하게도 와인이 거의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수준으로 눈물이 날 만큼 착한 가격이다.
알.럽.팔.레.르.모.알.럽.시.칠.리.아.알.럽.와.인.
행복하다. 이 순간 여기에 내가 있어서 행복하고, 나로 하여금 이 순간 여기에 머물수 있게 해준 지나간 나의 시간들에 감사했다.
이것저것 나름 장을 보았는데........ 대략 한국 돈으로 2만구천원이 들었다. 동네에서 내가 슈퍼 갔을때 수준인데....... 손에 들고 있는 무게가 달랐다.
어디 적당한 일거리 없을까?
밥 굶을 수준만 아니라면 어디 옥탑방이라도 좋으니 나 여기 이대로 눌러앉아 살래.
모든것 내려놓고 그냥 푹 쉬어보기로 한 팔레르모에서 맞이한 첫 날......... 정말 쨩이다. (힐링이 뭐 별거겠어? 이게 힐링이지.......ㅎㅎㅎ)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면서 내가 머물기로한 건물의 외관 실체를 가만히 살펴보자니 참으로 가관이 아닌가 ....... '이거 호텔 맞아?'
'어휴'
어떠신가요? 낯선 이런 곳에서 하룻밤 머물러 보시겠습니까?
ㅋㅋㅋㅋㅋㅋ
아무렴 어때?
비 안맞고 춥지않으면 다 머물수 있는 곳이지.......... 다 내집이야. 내집.
--- 나는 늘상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난 집이 없어. 집도 절도 없어. 다 털어먹어서 거지 신세야. 하지만 뱅기만 타면 여러군데 집이 있어. 빌려줄께. 어디를 가고 싶어? 바다에 떠있는 수상가옥을 빌려줄까? 수영장 있는 리조트 같은 집? 대리석으로 된 궁궐 같은 집? 숲속의 오두막? 세계 유명 도시의 낭만적인 다락방? 동굴집도 있어. 필요하다면 어디 사람없는 빈 교회당도 빌려줄 수 있어. 두바이 같은데만 빼고...... 친구니까 그냥 빌려 줄 수 있는거야. 다 내집이야. 내 이름대고 가면 그냥 써도 돼. 단 청소 관리비로 삼 사만원은 내야해.' 라고......... (실제는 그 금액에 그런 곳을 소개해줄 수있는 거지만)
그럼 이제 나만의 식도락을 즐겨보기로 하자.
쉿.
비밀인데.........
'배낭여행이 아니면 절대 죽어도 이런 재미 못느껴본다.'
다음날 저녁.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번엔 다른 마트엘 들려보았다.
시칠리아 요리중에 소의 내장 요리가 유명하다. 우리 한국사람처럼 여기 시칠리아 사람들이 내장요리를 무척 즐긴다는 것을 알아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몇가지를 새로 장을 보았는데 오늘 금액은 약 2만천원 정도가 나왔다.
그리고는 이 두번 장본것으로 팔레르모를 떠나는 날까지 푸짐한 저녁과 간단한 아침을 풍요로운 행복감으로 소화해냈다. 단 와인은 추가로 더 샀다.
내가 직접 이국땅 멀고먼 타지에서 혼자 해먹는 요리이지만........ ㅎㅎㅎ. 정말로 맛있다.
(국민교육 헌장)의 말씀처럼 내 소시적에 '타고난 저마다의 능률과 소질을 개발하고.......' 나섰다면 ....... 요즘 케이블 티비에 나오는 쉐프들 다 죽었어.
난 이렇게 하고 돌아다닌다.
이게 내방식의 자유여행이다.
태양의 땅, 시칠리아.
시칠리아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팔레르모.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
--- 본격적인 시칠리아 여행은 팔레르모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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