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에비고사. 세계사 8번 문항>
8. 노르만족의 대이동이 중세 유럽사회에 끼친 영향은?
1) 어쩌구 해서 저쩌구
2) 저쩌구 해서 어쩌구
3)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다.
4) 저것도 이것도 모두 다 였다.
실제로 이같은 문제가 자주 시험에 출제 되었다. 그만큼 "노르만 민족의 대이동'은 서양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이 내용들을 소상히 알고 이해를 하는 사람은 세계사 선생님 정도였을뿐, 대다수의 학생들은 이해보다 그저 외워서 정답을 맞추는 정도에 그쳤다.
이번 여행에서 '십자군 전쟁'과 '요한 기사단'에 대해서 좀 더 그 실체에 접근해 보고자 했던 나의 바램대로 많은 것들을 실제로 접해보았고, 이론으로만 내 머리속에 있던 역사적 사건들이 거의 완벽에 가깝게 정리가 되었다. 하여 그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함에 있어서 전제로 '노르만 민족'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겠기에 '프리드리히 2세'에 대한 이야기 전에 노르만에 대해서 부연 설명을 살짝 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당장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시칠리아 역사'를 잠시 들여자 보고자 함에도, '비잔틴 제국이 명망하면서 시칠리아가 이슬람에게 넘어가고' '이슬람을 몰아내고 시칠리아 왕국이 들어섰음에도' '아주 잠시 후에 노르만 왕국이 들어서고' '또 다시 신성로마제국이 들어섰다'는 역사적 사건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여 이참에 위에 제기된 유럽의 중세역사 일부인 '노르만 민족'에게 관계된 부분만을 우선적으로 (동화책)을 읽는 수준으로 요약해서 설명해 보기로 한다.
* history&culture>
'노르만 민족'을 쉽게 이해하자면 수많은 영화에 잔혹하고 용맹한 저승사자와도 같은 모습으로 고대의 신화속에서 영국과 북유럽을 침략하며 해적질과 약탈을 일삼던 (바이킹)을 떠올리면 된다. 그 바이킹족이 바로 노르만족이다. 노르만이라 하면 그 괴기한 문신과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털옷을 걸치고 양쪽으로 뿔이 솟아난 귀신 모자를 쓰고 번쩍거리는 살벌한 도끼와 망치를 휘두르면서 커다란 돗이 달린 빠른 목선을 타고 폭풍우를 뚫고 바다를 건너다니던 최초 아이슬란드 얼음땅에 살던 원시부족이었다. 살기 위해서 아이슬랜드 겨울바다를 건너 마침내 유럽대륙을 발견한 바이킹은 처음에는 수시로 영국을 노략했다. 그리고나서 점차 대륙의 덴마크 네덜란드를 거쳐 프랑스와 독일의 북부지방을 침범했다. 그러면서 아이슬란드 얼음나라를 빠져나와 노르웨이와 핀란드 일대에 아예 눌러 주저앉아 버렸다.
노르만의 원시 부족이 노르웨이 핀란드가 된 것이다. 하여 각종 스포츠 경기에서 느르웨이나 핀란드의 응원단들이 주로 바이킹 복장을 하고 등장한다.
그러면 이 북쪽 극지방에서 해적질이나 하며 살던 바이킹족이 어떻게 서유럽까지 이동하게 되었느냐?
이 부분에 있어서는 중세 유럽의 봉건영주시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해를 쉽게하기 위해 동화책 정도의 짜마추기식 예를 든다면........... 유럽에는 유일한 종교의 최고 대장인 (교황)이 있었는데, 이 양반은 수시로 '군사력을 포함'한 실질적인 유럽 최고의 대빵(유엔 참모총장급)인 <지구방위 총사령관>이 되려고 안달이었다. 바로 아래로 왕들(유엔 상임이사국 대통령)들이 있었는데 영국.프랑스.독일.스페인 등이 강대국으로 항상 '교황의 권력 독식'을 제재하고 저항했다. 그 아래 도시국가 형태의 수많은 영주들이 있었다. 이 영주들의 숫자가 엄청나고 실제적 영향력이 엄청났기에 중세를 흔히 '봉건 영주시대'라고 한다. 이 영주들의 실체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일단은 자기가 속한 국가의 왕들에게 복종과 충성을 맹세하고 영주의 지위와 권한을 위임받은 처지였으나, 상당수의 영주들은 국왕과의 주종 관계에서 몰래 벗어나 '교황에게 별도의 충성'을 맹세한 자들도 많았고, 또는 아예 두 개의 국가 왕들에게 충성을 서약한 양다리파도 많았다. 그러니 대단히 복잡해 질수밖에........
같은 이해관계에 맞딱트린 영주들은 툭하면 전쟁을 일삼았다. 왕에게 보고해서 패거리들을 끌어 들였다. 한바탕 큰 싸움이 벌어졌다. 이 사움이 번져서 '30년 전쟁' '백년 전쟁' 등의 국가간의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싸움에서 불리하면 교황에게 돈보따리를 가지고 쫓아갔다. 이해득실에 따라서 교황이 설득도 협박도 어르고 달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황권)과 (교권)의 다툼이 생겼다. 그리하여 '카놋사의 굴욕'과 이어서 '아비뇽 유수' 같은 사건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이면에서 영주들 간의 피튀기는 전쟁은 그칠줄을 모르고 이어졌다.
바로 그 때였다.
땅덩어리가 큰 강대국(황소)에게 먹히기 직전인 소국(염소)의 왕자가 기발한 착상을 떠올린 것이다. 북유럽에 잔혹한 해적 바이킹이 나타나 해안 일대를 싹쓸이 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왕자는 왕국금고에서 금덩어리를 한자루 꺼내 싣고서는 말을 달려 북쪽으로 북쪽으로 덴마크의 해안마을로 말을 달렸다. 그곳에 바이킹족으로 부터 짐승의 가죽을 식량과 도자기와 향신료로 물물교환을 하는 장사꾼이 있다는 정보에 따른 것이었다. 여러날을 기다려서 염소국의 왕자는 마침내 동물 가죽을 팔러 온 바이킹족의 한 부족인 '무지막지 부족장'을 만나게 되었다.
'무지막지 족장님. 싸움을 기가막히게 잘 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좀 도와 주십시요.'
'싸움이야 눈 떠서 밥먹는 시간 빼면 항상 하는 일이니까 우리가 좀 하지. 아니........ 바이킹 중에서도 우리가 젤 쎄지. 근데 뭘 도와달라는 거야?'
'저희 나라가 지금 할아버지때부터 못된 황소국과 싸우고 있는 데 지금 사태가 좀 심각합니다. 싸움에서 이기게 좀 도와 주십시요.'
'싸우는데 도와달라면야...... 대충 몸푸는 정도겠지. 거 뭐 별거아니지만.......... 니네 나라가 어디있는데?'
'발칸 반도 중간에....... 그러니까 이틸리아 바다 건너편에..........'
'여기서 멀어? 얼마나 떨어져 있는데?'
'제가 말타고 죽어라 두 달을 달려서 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집도 여기서 멀어. 배 타고 한참 북쪽으로 가야 한다고............ 그리고 우린 주로 배를 타고 다녀. 그러니까 우리 땅에서 너네 땅까지 배타고 갈려면 얼마나 걸리냐고?'
'제가 배를 타고 오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저희 전함을 탔다고 치면 한 세달 정도는...........'
'너네들이 세 달이면 우린 두 달이면 가지. 가는데 두 달......... 한 열흘 싸워서 해결해 주고........ 또 돌아오는데 두 달......... 안되겠네?'
'나라가 망하게 생겼습니다. 꼭 좀 도와 주십시요. 제발 살려 주십시요.'
' 맴이야 도와주고 싶지. 그런데 지금 여름이 끝나가서 우리도 해적질이라도 해서 겨울을 날 준비를 할 때거든. 그런데 너를 도와주러 나갔다 오면 한겨울이 된단 말이야. 남은 우리 마누라랑 자식들 다 굶어죽거나 얼어죽어. 그러니까 맴은 있어도 못도와주게 생겼다는 말이지. 언더스탠?"
'여기 제가 금를 좀 가지고 왔습니다. 이것으로 식량과 옷감을 사서 남은 부족이 겨울을 나게 하시면 안되겠습니까? 보상을 따로............'
'보상? 뭘 더줄건데?'
'숙식을 제공하겠습니다. 오고 가시는데 교통비도 별도로 드리겠습니다. 싸움에서 이기고 나면 성과급도 별도로 드리겠습니다.'
'뭐 나름 그만하면......... 알써. 내가 가서 부족들과 상의해 보지. 그래 쌈꾼 몇이면 되겠는데?'
'저희 형편상....... 한 삼백명이면 되지 싶습니다. 숙식제공에 매달 1인당 30유로씩 월급으로 지급하겠습니다.'
'매달 1인당 30유로씩 또 준다고? 그러면 그게 얼마야...........? 오브 코스 ............... 콜. 무조건 콜.'
'여기 제가 가지고 온건 선불입니다. 받아 주십시요. 하시면 언제쯤 출발하실건지.............'
'이 정도면 해적질 안하고 온 부족이 삼 년은 먹고 살겠다......... 언제 싸우러 갈거냐고?'
'네. 서둘러 돌아가 이 소식을 알리고 그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해서...........'
' 너 지금부터 죽어라 달려가도 두 달 걸린다면서?'
'네. 그러시면......... 일단 부족에게로 돌아가신 후에 차근차근 준비를 갖추시고 뱃길로 오신다면......... 넉달......... 다섯달만 기다리면...........'
'아녀. 기다리긴 뭘 기다려? 두 달이면 충분해. 어쩌면 내가 먼저 갈지도 모르니까........ 아부지 성함. 동네이름 잘 적어 놓고가. 약도를 그려주면 더 좋고. 알았지? 두 달 뒤에 봐. 약속은 무조건 지키는거다? 안지키면 알지?'
무지막지 족장은 죽어라 노를 저어서 3일만에 북대서양 바다를 건너 핀란드 땅 부족영지로 돌아갔다. 부족을 죄 다 모아놓고 300명을 추렸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 힘차게 남쪽을 향해 출발했다. 주특기인 해적질이 아니라 산업근로자가 아닌 전쟁근로자로 돈 벌러 해외에 정식으로 파견을 나간 것이다. 배에다 물하고 동물의 고기를 말린 육포를 실었다. 평상시의 복장이 전투복이요 허구헌날 몸에 들고 다니는게 도끼랑 망치였으니 별도의 출정준비가 전혀 필요치 않았다.
핀란드를 출발해 죽어라 노를 저었다. 대서양을 내려와 유럽대륙의 서쪽끝이자 리베리아반도의 끝자락인 호카 곳에서 힘차게 (좌현 앞으로)를 외치고 또 앞으로 앞으로 노를 저어 나아갔다. 바이킹 역사상 가장 먼 원정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기절초풍 놀라고 있었다. 1년 365일 중에 잠깐 동안뿐인 여름에만 꽃과 들판을 보던 바이킹에게 지중해는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에덴동산 이었던 것이다. 파란하늘 파란바다 푸른초원에 가득 차고 넘치는 풍요로움........ 육지엔 어디서건 오렌지와 포도와 온갖 과일이 지천으로 넘쳐나고, 사람들은 모두 말을 타거나 마차를 이용하고, 들판마다 밀과 보리가 여물어가고, 소떼와 양떼가 초원을 가득 채우고 바다엔 참치가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꿈속에서조차 상상도 못하던 세상이 여기에 널려있었던 것이다.
염소나라에 도착 해 보니 귀한 용병들께서 왕림해 주셨다고 성대하게 잔치까지 베출어 주는데........ 처음 맛보는 달콤한 와인에, 날고기를 장작불에 구워먹는것만 알았던 바이킹에 향신료와 야채가 섞인 가공식품이 음식이라고 나오니......... '이게 꿈이냐 생시냐?'
거기에다 알록달록 비단옷에 분내까지 풍기면서 금은 보화 장신구로 치장한 이쁜 아가씨들의 극진한 써비스까지.......... 먼 길 오셨다고 교통비로 1인당 20유로씩 금덩어리까지 지급해 주고나니.........
그때였다.
어디선가 요란하게 성당의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뢰오. 황소국의 일빠따 장군이 군사 1천오백을 이끌고 쳐들어 왔습니다.'
'뭐라고? 척후병은 다 뭘하고 있었단 말이더냐? 그래 어디쯤 왔더냐?'
'허우적 강을 이미 건넜다 하옵니다. 날이 새기 전에 성문 앞에 도착해 진을 칠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이런 이런........ 왕국 수배대를 모두 집결 시켜라. 날이 새기 전까진 무슨 수를 쓰던지 출정 준비를 마치고 저들을 맞이해야 할것이다. 알겠느냐?'
그러자 술에 적당히 취해서 취기가 돈 무지막지 족장이 나섰다.
'보소보소 영주님. 뭐가 이리 소란스럽소? 어디 불이라도 난거요?'
'이런 난처할데가......... 먼길을 이제 막 오셨는데........ 나뿐 황소국 놈들이 몰래 쳐들어 와서 벌써 이 성의 근처까지 도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수비대 모두에게 비상명령을 내렸으니 아침이 되기 전에는 싸움준비를 마칠 것입니다. 그러니 족장과 군사들께서는 맘 편히 쉬시면서 여독을 푸신 후에..........'
'밖에서 싸움이 났다는데 안에서 편하게 잠을 잘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적군이 코 앞에 왔다는데 아침이 돼서야 싸움 준비가 된다는 것은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거야 원.......... 한참 술 맛이 땡기는 판인데......... 그놈이 누굽니까? 이 판을 깨는 놈이? 한 싸움 하는 놈입니까?'
'여기 인근에선 젤 잘 싸우는 놈입니다. 일빠따라는 놈인데........ 14전 13승 1무의 전적을 가진 놈입니다. 1무가 우리 수비대장이었는데....... 그 날 싸움이후에 휴유증으로 지난달에 사망했습니다. 하여 당장 일대일로 내세울 사람도........'
'일대일은 무슨.......... 싸가지 없는 놈......... 모처럼 신나게 놀면서 취해볼려고 했더니만........ 내 이놈을?
'성님.'
'왜그러느냐? 육촌동생 막무가내야.'
'내가 지중해 바다로 들어서면서 몸살 감기로 이적지 노두 안젖고 그냥 푹 쉬었지 않습니까? 몸과 맴이 엄청 뻐쩍찌끈 해요. 이참에 지가 나가서 몸도 풀면서 손 좀 봐주고 올태니께 성님은 그자리에서 꼼짝말고 술이나 더 드시고 계시셔. 나 오기 전에 쓰러져 잠들면 안됩니다. 알았지유?
'내가 갈려구 한건데....... 저눔이 내 육촌동생 막무가내이니데 웬만한 군사나부랭이는 한자리에서 한 스물쯤 아주 작살을 내버립니다. 저 놈의 쌍도끼가 춤을 추기 시작하면 그냥........ 알았다. 내 안자고 기다릴께. 퍼뜩 나녀와라. 몇 명 딸려 보내줄까?'
'몇 명이 뭔 필요 있겠수까? 술 안챈놈 중에서 내처럼 몸이 근질근질한 놈들은 자진해서 나를 따라오면 된다이.......... 나 간다?'
현대판 군대의 '5분대기조' 보다도 훨씬 빨랐다'
술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놔 두었던 도끼와 망치를 집어들고 마당 옆에 매두었던 말에 그냥 풀쩍 뛰어오르면 그만이었다. 말 안장도 필요가 없었다. 삽시간에 번개처럼 성문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꾸역 꾸역 마지못한 듯 하더니만 금새 오십여명이 용병이 막무가내의 뒤를 뜨랐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막무가내 일행이 돌아왔는데 그들과 함께 피비린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성문을 통해 들어 오는 그들의 한사람 한사람의 손에 몸체가 잘려나간 머리통들이 하나씩, 누구는 세개씩 들려 있었다. 막무가내의 손엔 바로 적장 일빠따의 목이 두려움에 떨며 차마 눈을 감지 못한 표정으로 들려 있었다.
'야. 막무가내야.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그리고 뭐 그딴걸 들고 다니냐? 술맛 떨어지게. 저리 치우고 어서와서 같이 한잔 더하자.'
막무가내가 일빠따의 목을 마당 저편으로 내동댕이 쳤다. 말에서 내리면서 피로 범벅이된 가죽옷을 홀라당 벗어 버렸다. 남아있던 부하 하나가 얼른 새로운 털가죽을 하나 가져다 치부를 가려 주었다. 그리곤 아까 마시다 남겨 두었던 술잔을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 죄다 죽여 버렸니?'
'아이고 도끼질도 힘든거 아시지 않습니까? 하다하다 힘들어서 그냥 한 오십명은 그냥 잡아왔습니다.'
'그냥 내버리고 오면 되지 뭐하려 힘들게 끌고와? 먹을것만 축내게스리.'
'그럼 그냥 보낼까요?"
'그냥 보내면 나중에 또 덤비지 않겠어? 각서라도 받고나서 보내주던가?'
'각서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보내는 주되 우리식으로 뽄때를 한번 보여서 보내면 되지요.'
'그럴까 그럼? 간만에 뽄대 구경 한번 할까? 그럼 누구 시킬거여?''
'뽄때 하면 망나니 아니겠습니까? 어이. 망나니 어딨냐? 이 자식들 모두 풀어주기 전에 확실하게 뽄때 한번 보여줘라. 보냈다가 다시 까불지 못하게."
덩치가 태산만하고 얼굴에 온통 칼질로 난도질 당한 표정의 지옥에서 온 사자의 몰골을 한 망나니가 앞으로 나와서는 길게 도열한 포로들 앞에 섰다.
' 느그들 스스로 한 놈만 골라. 나머지는 모두 곱게 돌려보내 주겠다. 알었지? 전체를 대신해서 한 놈이 대신 죽는거여. 어서 골라 봐.'
한참 시간을 주었는데도 한명을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 누가 자진해 죽으려 하겠는가 말이다.
'이 쌍*들 봐. 살려 주겠다는데도 하나를 못골라? 그럼 하나만 살려주고 싸그리 죽여버릴테니까 살려 줄 한 놈을 골라볼래? 안되겠어. 1.2.3.4.5.6.7. 해봐. 계속 돌아가다가 133번 걸리는 놈이 모두를 대신해 죽는거야. 어이. 너 부터. 하나~~~~~'
한 명이 끌려 나왔다. 133번 이었다. 마당가의 올리브 고목나무에 팔을 벌린 채 매달렸다. 망나니가 도끼를 꺼내 들고 다가 섰다.
망나니의 힘찬 도끼질이 133번의 정수리를 향해 정확하게 내리쳤다. 퍽 소리와 함께 133번이 절명했다. 하지만 망나니의 도끼질은 멈춰지지 않았다. 도끼질은 이미 내려친 위에 다시 내려쳐졌고 또 그 위에 다시 내려쳐졌다. 그리 오래지 않아 133번의 몸은 절반으로 나누어 졌다.
이 광졍을 목격한 염소 국가의 모든 군병들도 기절초풍 초죽음이 되었다. 하니 포로로 잡혀온 5십명의 심정은 어떠했을까마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허리춤에서 날카로운 단도를 꺼내 든 망나니는 시체로 다가가더니 시체의 일부분을 잘라내서는 입으로 가져가 질겅질겅 씹기 시작했다.
인육을 먹기 시작했던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군대는 몽골군이었다고 말한다. 항복하지 않으면 살아 있는 생명은 모두 죽였다. 가축은 물론 어미의 뱃속에 든 아이까지 꺼내서 죽였다. 이 소문이 퍼지자 모든 적들은 전투 이전에 이미 공포에 질려 사기가 떨어졌다. '어떻게 하든 기어코 이겨야 산다' 에서 '혹시나 붙잡히게 되면....... 혹시나 패하게 되면........' 그들은 저절로 오금이 펴지지 않았고, 다가오는 적을 똑바로 바라보기 조차도 두려워 하게 되었다. 공포를 야기해서 상대를 무력화 시키는 전쟁의 한 방편이었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에서 가장 가공할 공포를 동반한 군대는 바로 바이킹이었던 것이다. 학자들은 바이킹이 몽골군 보다도 훨씬 잔혹했다고 적고 있다. 그들은 포로들을 잡아다 놓고 축제를 벌이면서 실제로 포로들이 보는 앞에서 인육을 먹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 행위를 '카니발리즘'이라고 한다.
살아난 포로들은 사방으로 이 잔혹한 실상을 세세하고도 재빠르게 전했다.
그 신속성과 효과는 카카오톡이나 유튜부 동영상보다도 엄청나게 폭발적이었다.
울던 아이도 '바이킹' 하면 울음을 뚝 그쳤다.
바이킹은 이제 '죽음' 자체 보다도 훨씬 무섭고 두려운 존재로 누구나가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노르만족의 대이동은 실제로 앞의 이야기와 똑같은 상황으로 시작되고 전개 되었다. 이렇게 노르만은 서유럽 지중해에 마침내 첫발을 내딛었던 것이다.
*travel>
두오모(팔레르모 대성당)는 처음 비잔틴 제국하에서 건설되었다.
그러다가 이슬람이 시칠리아를 점령하고 사라쿠사와 카타니아를 파괴하고 새로운 이슬람 도시로 재건하면서 성당을 이슬람식 예배당인 '모스크'로 개조해 기도장소로 사용했다. 이슬람을 시칠리아에서 몰아낸 시칠리아 왕조와 노르만이 세운 제국시대에는 다시 기독교 대성당으로 또 한번의 변신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렇게 전혀 다른 종교의 색채가 반복되면서 복잡한 당시의 시대상 만큼이나 성당건축 자체도 다양한 양식이 혼합되게 되었다. 그 후 유럽의 시대가 르네상스와 바로코가 생겨나면서 (팔레르모 대성당)은 거듭거듭 새로운 시대에 양식이 도입되고 재건축 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는 딱히 어떤 양식이다 라고 잘라 말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하여 극히 일부의 학자는 너무 혼란스럽고 기괴하기까지 한 흉물덩어리라고 까지 혹평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아름답다. 여행자의 눈엔 그저 황홀하리만큼 아름답기만 하다. 이제껏 보았던 교회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성당의 내부 또한 외형만큼이나 여러차례 복원을 거쳤지만, 사실 내부는 큰 특징도 적어 보였고, 생각보다 단촐하다는 느낌이었다.
시칠리아 왕국의 금은 세공품을 포함한 귀중한 유산이 보관된 보물실이 따로 있으며, 시칠리아 반도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쟁의 결과로 숨진 영혼들을 위로하는 공간이 별도로 만들어져 있다. 황족과 귀족들의 무덤이 놓인 석관실이 따로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비운의 영웅'이자 '최초의 근대인'으로 불리는 (프리드리히 2세)의 석관이다.
프리드리히 2세를 만나보기 위하여 첫날 팔레르모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 들렸었고, 이틀 뒤 도시 투어에서 또 들렸고, 마지막으로 카타니아로 떠나는 기리에 또 잠시 들려 보았다. 하지만 나는 끝내 프리드리히 2세를 만나보지 못했다. 황제의 석관실이 페쇄된 채 내부 수리공사 중이었다.
간절했떤 이번 여행의 소망중에 하나가 물거품이 되었다. 하지만 인근 근처에서 뜻밖의 '단테'를 만났던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밖에...........
-- 프리드리히 2세 무덤. (퍼옴)
-- 프리드리히 2세 동상. (퍼옴)
* history&culture>
지중해 연안의 서유럽에 등장한 바이킹은 그 첫걸음부터가 엄청난 충격이었다. 공포 그 자체였다.
'카니발리즘'의 실현은 유럽의 역사와 문명사에서 인간으로서, 또는 신의 피조물로서 꿈에서 조차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극악의 정점이었다.
어느 나라 어느 군대도 노르만족(바이킹) 앞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러자 여기저기 사방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염소국에서 한달에 30유로를 주고 있는데, 숙식 제공에 50유로를 주겠다는 제의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런데 이 복잡한 상황속에서도 야만족으로 치부되던 바이킹의 우두머리 '무지막지 부족장'은 대단히 현명하고 예리한 판단력을 가진 뛰어난 지도자였다.
그는 당시의 현실을 직시하였고 먼 미래를 내다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두배 세배의 스카우트 제의들을 모두 거절했다. 자신들은 은연중에 멸시하거나 천대하는듯한 서유럽 왕족이나 귀족들의 곱지않은 시선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싸움을 대신하는 용병으로만 필요로 하는 것이지, 그들의 시선과 마음속에는 '미개인' 또는 '야만인'으로 이미 각인되었던 것이다.
하여 무지막지 족장은 '금화 몇 닢에 팔려다니는 맹수' 쯤으로 인식되고 싶지 않았다. 하여 대신 이렇게 제안을 꺼냈다.
'사람이면 의리가 있어야지. 염소국과 계약 기간이 남았는데 그깟 은화 몇 닢 더 준다고 날름 자리를 옮기면 그게 아디 사람이겠어? 짐승새끼지? 안그래? 어디 유럽 사회에서는 고귀한 인간이척 하면서도 그렇게 돈이면 의리고 뭐고 막 내팽치고 배신하고 그러나? 우린 절대 안그래. 사람이면 의리가 있어야지?' 라고 대놓고 잘난척 하는 왕족과 귀족들을 힐책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끝까지 의리를 지킬거야. 다만......... 우리는 당연히 계약 기간을 잘 지키겠지만........ 그 전에라도 당신들이 우리같은 용병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방법은 있어...............'
무지막지는 말끝을 적당히 흐렸다.
'의리' '계약기간 보장' 이라는 말에 모든것이 물건너 갔다고 여겼던 서유럽의 왕족 귀족들에게 내던진 '방법은 남아있다'는 발언은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바이킹의 위력을 이미 충분히 경험 하였기에 모두가 서둘러 조건들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묵묵히 기다리던 무지막지 족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직접 여러분들을 모두 도와드릴 수 없어서 안타깝지만.......... 핀란드에 있는 우리 마을에서 산 하나를 넘으면 내 외사촌 '막휘둘러'라고 있는데, 갸가 또 쌈 하나는 기가막히게 잘해. 갸가 거느린 패거리들이 한 오백쯤 되는데.......... 당신들이 원하면 불러다줄수 있어. 내 말이면 금방 뛰어올거야.'
여기저기 사방에서 계약 체결을 요구해왔다. 강남 유명아파트 분양권 마감일 비슷했다. 난리였다. 난리.
'단. 전제 조건이 있음.'
무지막지가 문방구에서 계약서 양식을 사다가 되 다 한장씩 나누어 주면서 단호하게 외쳤다. 모두가 주시했다.
'당신들이 원하는 만큼 우리나라에서 내 친구와 친척들과....... 원하는 만큼 용사들은 구해서 보내주겠는데......... 모든 거래 창구를 나. 딱 한사람 나를 통해서먄 계약이 이루어 져야해. 모든걸 내가 관장한다고. 대신 모든 책임도 내가 질꺼구....... 그리고 하나만 더........... 우리 애들 불러다 주면 어디로 데려가서 어떤놈들하고 쌈을 벌이던 아무런 상관이나 제약이 없어. 그냥 아무데나 편하게 써 먹어. 무지무지 잘 싸우니까. 단....... 우리끼리는 안 싸워. 방금 내가 말했듯이 오는 애들이 죄다 내 형제요 조카요 친구인데......... 우리가 미쳤다구 이 바다 멀리까지 와서 우리끼리 싸우다 죽으려고 왔겠어? 하여 계약서에 젤 먼저 써 넣는것이 어떤 상황에서건 우리 바이킹끼리는 안싸운다는게 계약 전제조건이야. 나머지는 너희들 맘대로 해. 그럼 요청서들 작성해서 제출해.'
현대에 '무기판매상'이나 기업의 '헤드 헌터'가 있듯이, 인류 최초의 '용병 중개업자'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이다.
9세기 말엽부터 이렇게 노르만족들이 서유럽으로 속속들이 진출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100% 용병들이었다.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도 유럽사회는 영주들간의 암투가 계속되었고, 노르만족은 계속 용병으로 내려왔다.
십자군 전쟁이 한창인 11세기 무렵에 발칸반도를 중심으로 서유럽에 파견되어 있는 용병의 숫자가 5만을 상회했다. 어마어마한 규모였던 것이다.
'사자' 나라와 '호랑이' 나라가 국가의 사활을 걸고 한바탕 커다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사자나라엔 바이킹이 700명, 호랑이 나라엔 자그만치 1천오백명의 용병이 있었다. 대서양의 하리케인과 사막의 폭풍이 맞부딪치듯이 전투가 한첨 벌어지고 있는데 그 한복판에서 (쨘)하고 양측의 바이킹 부대끼리 맞붙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시에 도끼와 망치를 일시에 내리더니 서로 다가가서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이산가족 상봉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싸움에서 밀리던 호랑이야 숨을 돌리게 되어서 다행이지만, 겨우 승기를 잡았던 사자 입장은 그게 아니었다. 단칼에 결정을 내 버려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조카야. 오랫만이다. 그래 아침은 먹고 쌈판에 나왔냐?'
'아이고 삼촌. 지중해 바람이 좋긴 좋은가 봅니다. 신수가 훤해지셨네요?'
'그래? 오늘처럼 운동 적당히 하고 잘 먹고 다니니까........ 아참 조카야. 우리 동네 와인이 기가 막히드라. 몇 통 실어서 보내줄까?'
'우리 동네선 마을 애들이 배타고 나가서 기똥차게 큰 참치를 잡아와요. 그게 날로 먹으면 소고기 보다 기가막힙니다. 삼촌. 오늘은 저희랑 가셔서 며칠 쉬시면서 참치나 좀 드시고 가시지요?'
야들 전쟁터 한복판에서 실제로 이렇게 했다. 어쩌다 한번이 아니었다. 늘 상 그랬다.
불같이 화가 치민 사자왕국 총사령관이 쫓아와서 전쟁을 다그치면......... 계약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이 되어도......... 바이킹 끼리는 절대 안싸움.'
'교권'과 '황권'의 싸움에서 일시적일망정 교황이 승리했다.
이제 전 유럽은 교황의 말 한마디면 모든것이 그대로 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교황은 가장 먼저 국가와 영주들 간의 싸움을 중지 시겼다. 싸움이 멈추고 경제가 살아나야 수거해갈 재화가 생기지 않겠는가. 암튼 전쟁이 멈췄고 세상살이가 좀 나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대로 아주 골치아픈 일이 생겨나기도 했다. 서유럽의 모든 왕들과 영주들이 계속해서 교황에게 탄원서르 올렸다.
'바이킹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싸움이 끝났으니 사방에 흩어져 있는 이들이 무엇을 하겠는가? 허구한날 술에 취해서 사고를 쳤던 것이다. 천하무적 용병에서 처치곤란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교황이 무지막지에게 서신을 띄웠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는데........ 이제 전쟁이 모두 끝났으니 슬슬 보따리 싸서 고햐으로 돌아가지.'
무지막지가 교황에게 답신을 보냈다.
'목숨을 담보로 돈 좀 벌어서 가족을 부양할라고 이역만리 타국까지 와서 뺑이치게 고생을 옴팡지게 했는데.......... 왕과 영주들이 밀린 임금과 성과금을 주지 않아 돌아갈 수가 없네유.'
교황이 왕과 영주들을 불러서 회의를 했다. 그래서 사방에서 있는대로 급전을 있는대로 긁어 모았다. 하지만 바이킹이 제시하는 금액에는 터무니 없이 적었다. 양측의 셈 법이 달랐던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재화였다. 이를 건네주면서 절충을 원했지만...... 일단 가지고 온것은 무조건 받고 나서 바이킹은 깎아주기는 하겠는데 가져온것만큼은 더 가져와야 겠다고 우겼다. 교황은 시간을 달라고 했는데....... 여기저기에서 말썽이 계속 일어났다.
하여 고심 끝에 착안해 낸 방법이 바이킹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놓고 관리하는 방법이 채택되었다. 교황이 무지막지에게 다시 편지를 보냈다.
'돈을 모으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니, 너희도 사방에 흩어져 말썽이나 피우지 말고 한곳에 모여서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나 하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교황은 몰타를 집결지로 권했다. 그러자 무지막지가 거절했다. 몰타는 생산되는 것도 없을 뿐더러 혹시나 유사시에 운신할 곳이 없다. 너무 협소하다고 판단한 무지막지는 교황에게 시칠리아에 모여서 쉬면서 배를 수리하겠다고 했다.
교황이 서둘러 시칠리아 왕에게 사신을 보냈다. 바이킹들을 모조리 시칠리아에 모이게 할 터이니 너가 고생 좀 해서 어떻하든 애들을 잘 달래서 말썽이 안생기게 하라고. 조만간 돈을 좀 더 줘서 돌려보낼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교황에겐 이제 더 긁어모을 돈도 없었고, 줄 마음도 없었다.
입장은 무지막지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보상받은 돈 만으로도 이미 보상은 충분했다. 하지만 이 풍요롭고 따스하고 모든 물자가 넘치는 지중해를 두고 추운 고향으로 돌아가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르는 척 하고 그냥 시칠리아에 드러누워 버렸다.
유럽사회의 아주 커다란 근심덩어리가 시칠리아에 있는 5만의 바이킹이 되었다.
은밀하게 교황은 서유럽의 왕들을 불러 음모를 꾸몄다. 시칠리아의 바이킹을 정벌해서 몰살시키자는 음모였다. 제 아무리 바이킹이지만 이미 오랫동안 그들과 함께 전쟁을 치르면서 어느정도 바이킹의 전투력이 파악 되었고, 당장 십자군 원정이 중단된 상태에서 유럽의 정예군 30만 쯤을 모아서 '바이킹 원정'을 치룬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정보가 무지막지에게 흘러나갔다.
'돈 도 안갚는 주제에 오히려 남의 뒷통수를 쳐?'
무지막지는 그날부로 팔레르모의 시칠리아 왕궁을 점령했다. 시칠리아를 바이킹이 차지해 버린 것이다. 무지막지가 '노르만 왕국'을 세우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사실은 애초부터 이렇게 하려고 준비하면서 때와 구실을 기다렸던 것이다. 교황과 유럽이 무지막지의 계략에 빠진 것이다.
이젠 대결 밖에 없었다. 실제로 '바이킹 원정대'가 꾸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새로 역사에 등장한 '노르만 왕국'의 사신들이 무지막지의 서신을 품에 앉고 유럽의 강대국 왕들에게 달려갔다.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프랑스.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폴랜드. 오스트리아 왕들 보아라. 나는 노르만의 무지막지 왕이다. 근자에 내가 듣자하니 너희들이 모여서 나를 정벌하겠다고 작당들을 했다고 들었다. 까짓 너희들이 가진 조무래기들을 죄다 싹슬이하듯 끌어모아 겨우 30만을 채우겠다는데, 우리 일당백의 용사 5만을 감당해 낼 수가 있겠느냐? 아서라. 내가 너히를 어여삐 여기고 있을 때 그 쯤에서 중단하고 교황에게 내는만큼의 세금을 나에게도 매달 꼬박꼬박 보내면 용서해 주겠노라. 그래도 순순히 따르지 못하겠다 싶으면 어디 한번 이리로 와 보라. 박살을 내 주마. 하나만 더......... 노파심에서 미리 충고 하는데........ 하나만 더......... 너희가 가진 군병 죄다 끌어모아 여기 시칠리아로 오면 텅 텅 비어있는 너희의 왕궁은 누가 지키지? 우리고향 핀란드에는 내가 손가락만 까딱하면 배에 올라 노를 저을 10만의 내 친구들이 대기중이거든. 한번 만나 볼텨? 워디 누구네 나라부터 보내줄까?'
교황의 음모는 산산조각이 났다.
죽어라 준비를 해서 시칠리아 원정을 가서 5만명 바이킹과의 싸움도 장담을 못하는데....... 그 와중에 자신들의 왕국에 바이킹 본국의 후진이 덮친다면 왕조가 하루아침에 몰락할 판이었다. 더는 누구도 시칠리아를 치자고 말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해도 노골적으로 눌러앉겠다고 선언한 '시칠리아의 노르만'은 골칫덩어리였다.
교황이 이번엔 사신을 보냈다.
'그래. 그동안 죽어라 고생해서 시칠리아까지 차지했는데.......... 그래. 그냥 거기서 살아. 대신........ 국가라는게 말이야......... 한 나라의 왕조가 시작된다는게 말이야......... 격식이 있고 교양이 있고......... 상류사회 끼리의 매너와 규율이라는 것이 있는거야........ 하여 이번에 막무가내 너를 한 국가의 왕으로 임명해 줄터이니....... 제발 앞으로는 말썽 좀 부리지 말고........ 국제사회 속에서 그 일원으로 책무를 다하렴. 알았지?'
'콜'
'그럼 이제 나라 이름을 하나 지어야 하는데........ 그래야 교황의 이름으로 세상에 공표를 해서 하나님 이름으로 축도를 내려주거든........ '노르만 왕국'으로 해줄까?'
'싫어. 겨우 노르만 왕국이라니....... 세상에서 젤 쎈 나라...... 젤 멋진 나라......... 당연히 로마겠지? 그럼 난 로마로 할래. 새로운 로마....... '신성 로마제국'으로 할꺼야.'
'로마도 그렇거니와 니 맘대로 제국이야? 다른 왕들이 삐쳐. 그냥 노르만이라고 해.'
'시러. 다른 왕들과 비교하지 마. 나는 황제야.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다른 왕들은 이제 내 아래 줄을 서라고 해.'
이렇게 해서 신성로마제국이 탄생했다. 그리고나서 유럽의 제후국가나 영주들과 되거나말거나식 정략 결혼들이 이루어졌다.
'나하고 전쟁을 한 판 치룰래? 아님 너네 고모를 내 후처로 줄래? 내 조카딸을 줄테니 너네 황태자와 결혼을 시키고 왕비의 친정 여동생을 내 조카한테 보내.' 이렇게 해서 유럽의 왕실 족보가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한다.
스페인 왕이 어디어디 소국의 왕도 겸직하고, 프랑스 왕이 죽자 다음 서열이 어쩌구 저쩌구 해서 명의는 스페인 왕이 갖고, 통치는 한참 조카뻘인 프랑스 왕자가 계속 통치하고........... 등 등. (노르만, 바이킹. 신성로마제국. 여기서 중략..........)
*travel>
아쉬움속에 팔레르모 대성당을 나와서 가던 길을 마저 가다보면 그리 오랮 않아 왼편으로 멋진 공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공원 어귀에서 앞으로 곧게 뻗은 빗토리오 에마뉴엘 거리를 바라보면 바로 코 앞에 (포르타 누오바)가 (노르만 궁전)과 함께 멋진 포즈를 하고 여행객을 맞는다.
보나노 공원(villa bonanno)은 한마디로 노르만 궁전의 정원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열대나무 야자수가 가득한 이 공원은 여타의 다른 공원에 비해 탁월한 아름다움과 균형미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공원 한가운데로는 지금 모습의 노르만 궁전을 건설한 (루제로 2세)의 동상이 화려하면서도 웅장한 미를 한껏 뽐내며 정말 멋진 포즈로 서있다. 푸른 열대야자수 공원과 시칠리아 특유의 파스텔톤의 하늘과 주변 경관들과 정말 멋드러지게 빼어난 조화미를 선사해 준다. 한때 소아시아와 지중해 일대를 통털어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평가를 받았다 하니 실로 이 특유의 아름다움에 역사와 기품까지 더해지는 기분이었다.
공원을 거닐다 보면 파괴된 이슬람 유적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모자이크 건물 바닦들은 흐릿하지만 무척이나 화려하고 뛰어난 예술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신성로마제국의 휘장이 선명하게 조각되어 현판처럼 내걸린 (노르만 궁전)의 시작은 이슬람인 이었다. 카타니아와 사라쿠사를 중심으로 저항하던 비잔틴 세력을 뒤로하고 시칠리아에 처음 이슬람 도시를 세우기 시작한 이슬람은 팔레르모를 도시로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을 관리할 이슬람 총독의 거처로 지은 건물이 바로 노르만 궁전의 시초였다. 다음 시칠리아왕국이 되찾으면서 총독관저를 왕궁으로 중측하였고, 후에 노르만족이 차지하면서 다시 새로운 양식으로 개축되어 오늘에 이르르고 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궁전 안에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소성당인 팔라티나 소성당이 있다. 처음 찾아간 날은 휴관일이어서 들어가 보지 못했고, 나머지 기간엔 다른곳을 여행하느라 아침에 이 앞을 지나가고, 또 저녁에 돌아오다 보면 폐관을 하는 등 시간대를 맞추지 못했다. 많이 아쉬운 노르만 궁전이라 하겠다.
공원에서 궁전을 바라보면서 우측으로 궁전의 담벼락처럼 포르타(성문)가 서 있는데, 팔레르모에서 가장 유명한 포르타 누오바(Porta Nuova)가 그것이다.
신성로마제국의 (카를로스 5세)에 의해서 세워졌는데, 정작 이 성문이 유명하게 된것은 성문 위쪽의 좌우로 두 명의 아랍인 복장을 한 부조가 커다랗게 장식된 점에서 유래했다. 그들은 바로 아프리카 튀니지 알대를 무대로 활약하던 해적들로 카를 로스 5세가 해적을 소탕하고 돌아와 기념으로 성문을 만들면서 상징으로 실제 해적의 모습을 조각해서 올린것이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가장 획실하고 가장 오래남은 '현상범 포스터'가 아닐까 싶다.
이슬람의 일부(무어족)이 리베리아반도의 상당 부분을 점령하고 오랫동안 지배를 했었다. 바로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역이다. 카톨릭의 국토회복운동을 전개한 (이사벨 여왕)에 의해서 리베리아 반도에서 쫓겨난 이슬람인들은 주로 튀니지와 모로코의 해안지방으로 달아나 해적질을 하면서 엄청난 위세를 떨쳤던 것이다. 그 해적들을 소탕하고 그들에게 경종을 울리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포르타 누오바인 것이다.
-- 포르타 누오보의 성문 안쪽 모습.
-- 포르타 누오보의 성문 밖 모습. 양쪽에 내걸린 해적님(?)들.
* history&culture>
십자군 원정은 대외적 명분이야 아주 간단했지만, 아주 복잡한 여러가지 속내를 내포하고 있는 전쟁이다.
대외적 명분은 아주 간략했다.
'성지 순례를 떠나는 기독교인들을 보호' 한다는 대의명분 하나로 이 거대한 사기극이자 처참한 싸움이 벌어졌던 것이다.
성지순례는 아주 오래전부터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고, 그 언제나 처럼 간간히 사건사고가 터져나고 있었다. 유럽에서 오가는 거리가 수천 km요. 수많은 국가와 수많은 부족들의 영지를 통과 해야만 하는 멀고 힘든 여정이었던 것이다. 중간에 강도들도 있었고, 다른 종교 집단에서 생겨나는 반목도 있었다.
그렇다 해도 '국제적 분쟁'으로 치닫을 사건은 절대 없었다.
솔직히 당시의 유럽 정치판에서는 그 멀고 먼 변방의 (예루살렘)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던 것이다. 유럽 안에서 저들끼리의 영토분쟁으로도 바쁜데.........
이 사기극에 불을 지핀 장본인은 바로 비잔틴제국의 (알렉시우스 1세)였다. 알렉시우스 1세는 이미 오래전 자신이 황제에 등극하기 전에 정적들에 의해 위기에 직면하자 교황에게 엄청난 금액의 배상을 약속하면서 군대를 파견해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 그가 가지고 있는 돈은 전혀 없었다. 나중에 황제가 된 후에 값겠다는 무담보 무보증 약속어음을 발행하려던 것이다. 그가 무일푼으로 공수표를 남발한다는 것을 눈치 챈 교황 우르반 2세는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렸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어찌어찌 우여곡절 끝에 알렉시우스 1세가 덜컥 비잔틴 황제에 등극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정치 기반은 여전히 미약했다. 하루하루가 위기였다. 숱한 암살 시도에 시달렸다. 거기에 신흥 강국인 셀주크 투르크와의 전쟁에 연전연패하다보니 마침내 이집트. 예루살렘. 아르메니아 평원 등을 모두 빼앗기고 이젠 달랑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하나만 남은 제국이 아닌 고만고만한 도시국가로 주저않고 말았던 것이다.
자신의 안위가 실로 위태롭다고 느낀 알렉시우스 1세는 이번엔 직접 로마로 달려 갔다. 교황 앞에 무릎꿇고 선처를 부탁했는데 교황은 여전히 묵묵무답이었다. 그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알렉시우스 1세는 기발한 한가지 꾀를 생각해 냈다.
'성지를 이슬람에게 빼앗겼다. 신성한 기독교의 성전을 이교도들이 파괴하고 성지 순례자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있다. 나는 지금 교황님께 기독교의 성지를 되찾게 도와달라고 청하러 왔다.'
알레시우스는 사방으로 목청이 상하도록 외치고 돌아다녔다. 유언비어 유포죄에 해당했다.
헌데 엉뚱하게도 즉각 대부분의 사람들 반응이 열화와 같이 피어 올랐다.
'성지를 되찾자. 이교도를 몰아내자.'
한편 교황 우르반 2세는 나름의 계산을 이전부터 하고 있었다.
유럽을 보다 확고하게 자신의 손아귀에 쥘 궁리를 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고, 남들에게 말은 안했어도 교황의 권위를 확실하게 보장받는데 있어서 어떤 방법으로든 예루살렘과 확실하게 해결한 문제도 이미 심중속에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다급하고 어리석은 알렉시우스가 그만 교항에게 찬스를 만들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1095년 12월 27일 (교황 우르반 2세)는 '프랑스 클레르몽'에서 교단회의를 열고 선언했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하나로 뭉쳐서 기필코 성지를 탈환해야만 한다. 하여 이 시간부터 이교도를 물리칠 성스런 군대를 모집하니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기독교인은 모두 앞다투어 참여하라.'
십자군 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성지 순례'가 무엇이냐? 언제 어떻게 생겨났느냐? 도대체 정체가 뭐냐?
'성지 순례'도 짚고 넘어가야만 해서, 이 대목에서 다시금 동화 수준으로 각색해서 이야기 설명을 간략하게 해볼까 한다.
그러면서....... '제 1차 십자군 원정'의 내막은 중간중간에 거론하기로 하고 우선은 여행을 계속 할 생각이다.(역사가 너무 길어져서.........)
‘황제에게 이 어미가 청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시옵소서. 소자가 어머니께 무엇인들 못하여 드리겠습니까?’
‘혹여 무지몽매한 어미라고 나무라실까 걱정입이다.’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의 어머니이십니다. 이 세상에 어머님의 바람대로 되지 않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소자에게 말씀하여 주소서.’
‘사나흘 째 밤마다 이 어미의 어미와 아비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하여....... 나 죽기 전에 고향엘 꼭 한번 다녀오고 싶어졌습니다.’
‘어머님의 고향엘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 먼 곳을 지금..........’
‘이제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아들이 황제에 오르고 제국이 안정을 찾아 평화로우니 어미에게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저 죽기 전에 고향이나 한번 찾아가서 부모님의 묘지라도 둘러보고 내 어린 시절 뛰어 놀던 마을과 언덕과 들판을 한번 보고 싶을 뿐이랍니다. 철부지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려 나들이를 나갔던 예루살렘의 시장도 한번 다시 보고 싶습니다.’
‘그러시겠지요. 고향을 떠나신지 반세기가 지났을 테니까요. 하오나 어머님............ 팔레스타인은 여기 로마에서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몇 달이 걸릴지 모르는 아주 먼 여정입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하고 산을 넘고 사막을 건너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사방으로 이교도와 야만족들이 들끓고 있는 마치 전쟁터와 같은 곳을 지나가셔야 합니다. 어머님의 연세와 건강을 생각하시면 무리일 듯싶습니다. 다시 생각을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지금 당장으로는 제국의 운영상 소자가 직접 어머님을 모시고 다녀오기가 좀 어려울 듯하옵니다. 차라리 로마의 인근에 예루살렘 성을 똑같이 하나 만들어드리면 아니 되겠습니까?’
‘황제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 아직 어렸던 이 어미는 한 남자의 손에 이끌려 방금 황제가 말한 대로, 사막을 건너고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서 멀고 낯선 대륙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음속엔 오로지 그 남자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찼었고, 그 사랑이 멀고 힘든 고난의 여정을 담대하게 헤쳐 나가게 했었지요. 그리고 그때 그 사랑의 결과로 여기 이렇게 늠름한 황제를 아들로 얻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황제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이 어미는 어떤 고난이나 역경이 닥친다 해도 헤쳐 나갈 자신이 있습니다.’
‘그렇게 고향이 그리우십니까?’
‘늙은 어미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그럼 다녀오시지요. 소자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도록 하겠습니다. 떠나고 싶으신 날자만 택하셔서 소자에게 일러주십시오.’
‘고맙습니다. 황제. 소란까지 피워가면서 준비를 할 필요는 없을 듯싶습니다. 지금 나를 받드는 시종들 정도면 되겠습니다. 타고 갈 마차와 배편 정도를 준비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것만은 소자가 따르지 못하겠사옵니다. 제국에서 가장 훌륭하시고 가장 귀하신 하나뿐인 어머니이십니다. 여느 궁궐 밖의 여염집 아녀자 출타하듯이 행차하실 수는 없사옵니다. 그것만은 소자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는 대로 고향엘 다녀오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소자에게 맡겨주십시오.’
어머니의 처소에서 나온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원로들과 장군들을 소집했다.
‘성지 순례를 준비토록 하시오.’
‘성지(聖地)라 하시면...........’
‘내 어머님의 고향이 팔레스타인 땅 예루살렘 성문 밖 언덕이오. 노년으로 접어드신 어머님께서 고향을 그리워하시니 무사히, 그리고 먼 여정에 불편하시지 않게 다녀오실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주시기 바라오.’
‘폐하. 예루살렘이라 하시면 여기 로마에서 3.000km나 떨어져 있는 머나먼 이국의 영토이옵니다. 혈기왕성한 젊은 군인이라 해도 만만한 여정이 아닐 것인데........ 나이 드신 마마께서 다녀오시기에는........... 더하여 이교도와 이민족들의 다툼이 잦은 지역을..........’
‘어머님의 마지막 소원이시라 하셨소.’
‘폐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수행할 사람들을 모집해서 선발해 주시오.’
‘발칸에 나가있는 제 4군단을 불러들이시지요. 4군단을 메시나로 보내시고, 메시나에 있는 6군단으로 하여 예루살렘까지 모시도록 하심이........’
‘어머님께서는 조용히 다녀오시기를 바라고 계시오. 한데 군단을 동원한다면 군인의 숫자만 6.000명이 되는 대규모 인원을 동원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소. 너무 규모가 크오.’
‘하시면 성지순례를 제국의 이름으로 공식 발표를 하시옵소서. 예루살렘까지 이 행사의 중요성을 미리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 기회에 성지순례 행렬에 스스로 합류하고 싶어 하는 왕족이나 귀족들이 있을 것입니다. 참여자 스스로가 안전에 만전을 기할뿐더러 그들이 황후마마를 받들어 모실 것입니다. 전례가 없었던 성지를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될 터이니까요. 이 행렬의 규모가 커지고 세상에 알려지면 오가는 여정에 놓인 나라들이 먼저 나서서 호위를 할 것입니다. 자기 지역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게 되면 곧 로마가 나서서 직접 징벌을 내릴 것이라는 두려움을 알고 있을 테니까요. 이런 이유로 이교도와 이민족도 공개적인 이 행렬을 감히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메시나에 있는 6군단 중에서 최고의 정예 백부장을 뽑아서 백부장으로 하여금 600명의 휘하 군사 중에서 절반을 선봉에 세우고 절반을 후위에 세워 행렬을 호위케 한다면 별 무리 없이 예루살렘을 다녀올 수 있을 것입니다.’
‘장군의 생각대로 하시오. 아울러 성지 순례를 세상에 공식 발표하도록 하시오.’
이것이 ‘성지순례’가 역사에 등장하게 되는 실제 사례였다. 오늘날 종파를 가리지 않고 매우 중요한 신앙생활의 일부로 생각하는 ‘성지순례가 생겨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 장본인은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AD.313년)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친인 (헬레나)에게서 시작되었다.
헬레나의 출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분부하다. 콘스탄티누스의 업적 기록물에 보면 근거도 없이 어느 귀족의 딸이라고만 기록되어있다. 콘스탄티누스의 정적들의 기록을 보면 팔레스타인 지방의 창녀였다고 까지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역사학자들의 견해는, 헬레나는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예루살렘 성문 밖에 기거하였으며, 그의 아버지가 예루살렘 성 안 저잣거리에서 정육점을 했었다고 믿고 있다. 푸줏간집 딸이었던 것이다.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식민지로 다스리던 로마 수비대의 젊은 장교 콘스탄티누스 클로루스와 예루살렘에서 우연히 마주치자마자 첫눈에 두 사람이 사랑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클로루스는 로마의 귀족이었음에도 이들의 사랑은 신분의 높은 벽을 타넘었다. 로마로 복귀하는 클로루스는 헬레나를 두고 차마 떠날 수 없었음이지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로마로 돌아갔다. 임지를 떠돌다가 오늘날의 세르비아와 불가리아 국경 부근인 나이수스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콘스탄티누스 대제였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클로루스는 헬레나를 버리고 정적이었던 막시미아누스의 딸 테오도라와 결혼한다. 이렇게 하루아침에 버림을 받은 헬레나는 이때의 분을 뼈 속까지 새겨 넣게 되었다. 하지만 이내 클로루스가 영국 원정길에 사망하고 아들 콘스탄티누스가 아버지의 제위를 물려받아 로마제국을 다스리는 네 명의 황제(4두 정치)중 한명으로 등극한다. 4두 정치는 곧 내전으로 치닫고 또 다시 권모술수와 권력암투가 벌어지게 된다. 권력쟁탈이 극에 달하자 위기에 처한 콘스탄티누스는 아버지에 이어 또다시 정략결혼을 하게 되는데, 본부인을 버리고 막시미아누스의 작은 딸 파우스타와 결혼한다. 헬레나를 쫓겨나게 했던 테오도라와 파우스타는 막시미아누스의 배다른 자매였던 것이다. 결국 이 정략결혼들은 아주 커다란 비극을 잉태하게 된다.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상처를 가슴에 새기고 살아 온 헬레나는 아들 보다도 큰손자인 크리스푸스를 몹시 아꼈다. 크리스푸스는 바로 콘스탄티누스와 첫 부인과의 사이에 태어간 장남으로 이미 장성하여 아버지 콘스탄티누스가 (4두 정치)를 정리하는 내전에서 실제 군대를 이끌며 전쟁을 치뤄 승리하는 등 가히 일등 공신이었다.
마침내 콘스탄티누스는 내전을 평정했고, 혼자서 제국을 다스리는 유일한 황제가 되었다.
기독교가 313년에 공인되었고,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종교적 내분을 수습하였고, 330년에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기게 되는 것으로 보자면......... 아마도 이 시기, 그러니까 327년이나 328년에 처음으로 ‘성지순례’가 행해지지 않았을까 싶다.(어디까지나 나만의 견해)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AD.326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 가정 사에 아주 커다란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헬레나는 손자 크리스푸스를 너무도 끔찍이 아꼈다. 어떤 면으로는 할머니가 손자를 아끼고 사랑하는 수준을 넘어서도 보였다. 손자에게서 어떤 남성적인 매력을 보았는지도 알 수 없다. 그만큼 남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손자를 사랑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런 할머니에 대해서 손자의 반응은 냉랭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손자 크리스푸스는 항상 새어머니인 파우스타와 함께 있기를 좋아했다. 파우스타도 그렇게 살갑게 구는 크리스푸스와 잘 어울려 다녔다. 점차 이상한 소문이 파다하게 로마에 나돌아 다니고 있었다. 크리스푸스와 파우스타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소문이었다. 황제의 아들과 새어머니인 황비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정작 황제는 정사를 돌보느라 바빠서 어머니도 아내도 아들도 잘 챙기지를 못하고 있었다. 시중을 떠도는 소문도 감히 황제에게까지는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헬레나는 아니었다. 소문을 접한 할머니 헬레나는 치를 떨며 분노했다.
언니인 테오도라는 헬레나에게서 남편을 빼앗아 갔다.
동생인 파우스타가 이제 헬레나에게서 또 사랑하는 손자마저도 빼앗아갔던 것이다.
뼛속 깊이 새겨놓았던 한(恨)이 시뻘건 앙심이되어 솟구쳐왔다. 이내 복수심에 눈이 멀어졌다.
크리스푸스는 황실 경호대에 체포되어 지하 감옥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 새어머니인 황비와의 불륜 자백을 강요받았다. 가혹한 고문 끝에 그는 흉한 몰골로 지하 감옥에서 죽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우스타 또한 자신의 목욕탕에서 머리를 물속에 처박히는 방법으로 처형되었다.
아우쿠스투스 황제와 더불어 로마를 대표하는 위대한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가정사에 이런 비극이 실재했던 것이다. 완전한 인간은 없는것일까?
아마도 이 비극적인 사태를 직접 겪고 나서 어떤 삶의 허망함이나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 로 인하여 종교에 귀의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로 ‘성지순례’를 감행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이렇게 시작된 ‘성지순례’는 그 후로 아주 높은 왕족이나 귀족들의 전유물로 극소수이긴 하였으나 꾸준하게 명맥을 이어져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9세기에서 10세기에 들어 봉건영주시대가 도래하면서 ‘성지순례’는 온 유럽에 거대한 열풍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왕족은 물론 귀족들과 더불어 상업발달로 거금을 움켜쥐게 된 부자들까지 합류해 ‘성지순례’는 바야흐로 상류사회로 올라가는 필수코스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너도 나도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외쳐대기 시작했다.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으로...........’
------ 다음에서 계속 이어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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