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산 정상에 올라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잃고, 바다를 보고 강물을 보고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경탄하지만, 정작 인간 내면의 자신의 본질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 페트라르카.
'내 인생 최고의 시기에 문득 길을 잃고 뒤돌아 보니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 단테.
' Who am I ?'
그것이 르네상스의 시작이었다.
'귀하신분께서 이 누추한 곳까지 어쩐일이십니까?' 부르넬리스키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누추하다니요. 자유로운 영혼의 훌륭한 예술가가 계신곳이니 당연히 제가 찾아와야지요.'
'허명뿐입니다. 아무것도 이룬것이 없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요. 어찌하여 저를 찾으셨습니까?'
'건물을 하나 짓고자 합니다.'
'건축가라면 지금 이곳 피렌체에 차고 넘치는것이 건축가가 아니겠습니까. 잘못 찾아오신 듯 합니다. 광장에 가셔서 찾아보시지요.'
'수십년간 짓다가 만 두오모만을 쳐다보고 있는 그 흔한 건축나부랭이들을 찾고 있는것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부르넬리스키를 찾고 있습니다.'
'부르넬리스키의 건축물을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앞으로 곧 보겠지요.'
방문객이 내 뱉는 뜻밖의 대답에 그만 부르넬리스키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가 누구인가. 그의 지위와 가문의 명예를 봐서라도 그는 단 한마디의 말이라도 그저 덧없이 뱉어낼 사람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두오모에 돔을 얹어서 성전을 완성하시기라도 하실 의향이십니까?'
'그러한 신의 소명이 저에겐 아직 내리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그런 막중한 과업을 떠맡기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잣거리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곧 메디치가에서 나머지 두오모의 돔 작업을 맡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소문이겠지요. 저는 이제껏 두오모의 돔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나 결정도 내린바가 없습니다.'
'메디치가'라는 말을 '저는' 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는 바로 (코지모 메디치)였다.
'정녕 코지모님께서는 저에게 건축을 맡기실 의향이십니까?'
'두오모의 돔이 아니라서 실망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아주 작고 보잘것 없는 건물일지 몰라도 저에게는 아주 커다란 의미가 있는 건물이라면 선뜻 나서서 지어 주시겠습니까?'
'크기나 가치는 상관이 없습니다. 주위의 평판도 상관 없습니다. 다만 그 건물을 꼭 부르넬리스키가 지었으면 좋겠다고 코지모 메디치께서 생각하고 계시는지가 중요합니다.'
'여러 생각들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뻔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수도사나 수녀들이 기거하는 천편일률적인 작은 수도원의 모습일꺼라고....... 모두 고만고만 하거나 거기서 거기가 되겠지요. 하지만 나는 확연히 뭔가가 다른........ 좀 씸풀하면서도 무겁지않은 느낌의....... 실제 머물면서 사용할 아이들이 지내기에 편한 그런 건물을 짓고 싶습니다.'
'쉽게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고아원이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고아'란 말은 들어보셨어도 '고아원'이란 말은 못들어보셨을 겁니다. 근자에 휩쓸고 지나간 흑사병으로 온 유럽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추위와 굶주림 속에 길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여기 피렌체도 마찬가지이지요. 밖으로 나가서 주위를 돌아보시지요....... 좀 서둘러 완공하고 싶습니다. 다시 추위가 닥치기 전에요. 아이들이 쉬고 따듯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식사를 할 식당도 필요하지요. 학교까지는 못되더라도 가가운 곳에 교회도 다녀야겠고, 작게라도 글자를 가르칠 공간과 무엇이든 기술을 배울 공간도 필요하겠지요. 다만 엄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수도원과는 다른 모습이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마당도 중요하겠지요.......... 부르넬리스키. 당신이라면 그런 건물을 지어주시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맡아 주시겠습니까?'
'세상에서 처음 지어지는 고아원이란 말씀이시군요......... 코지모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최대한 빠른 시간에 짓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맡겠습니다.'
'가까운 곳에 장소도 이미 마련해 놓았습니다. 인근의 주거지 일부를 사들여서 헐어내고 지금 기초 다지기 공사에 있습니다. (산 시티마 안툰치아타 광장) 입니다. 성당 오른쪽으로 너른 터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광장도 마음대로 사용하셔도 무방하답니다. 이제부턴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고아원에 관한 일체를 당신에게 맡깁니다. 내일 아침부터 모든것을 맡아서 알아서 해주십시요. 저는 완공일에나 가볼 생각입니다. 어서 빨리 당신의 건축물을 보고 싶습니다.'
말을 마친 코지모 메디치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그곳을 떠나갔다.
부르넬리스키의 가슴이 어떤 새로운 희망으로 다시 힘차게 요동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부르넬리스키는 피렌체에서 자리를 잡고 비로서 건축가로서 인생의 제2막을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이 때 등장하는 (코지모 메디치)는 르네상스가 활짝 피어나도록 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사람이다. 이탈리아 최고의 금융가문 '메디치가'의 초석을 굳건하게 다져놓은 (조반니 메디치)의 아들로 어릴적에는 예술가적 자질을 보였으나, 아버지로 부터 금융가문을 이어갈 후계자로 낙점 받으면서 예술가의 길을 접었다. 코지모 대에 들어서 '로마 교황청'의 모든 재정과 재산을 담당하는 금융가로 유럽 최고의 자리에 오로도록 한 인물이 코지모 메디치였다. 새로운 사조로 물밀듯이 밀려드는 '르네상스'의 가치를 일찍 깨닫고 수많은 예술가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수많은 건축물과 조각과 회화를 발주 했다. 하여 '르네상스' 하면 메디치가가 소장한 미술품들을 제외하고는 논의 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코지모는 '르네상스 예술품 수집광' 이었다.
코지모가 이렇듯 르네상스를 대표할 만큼 유명해 지자...... '미켈란젤로의 후원자 메디치' 하면서 코지모를 연계하는 사람과 책자들이 있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오류이다. 코지모 메디치와 미켈란젤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미켈란젤로)를 발굴하고 교육을 시켜....... 자신의 휘하를 떠나면서부터 비로서 위대한 천재 에술가 반열에 오르게 한 사람은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로 흔히 로렌초가 붙는 두번째 서열(로렌초가 무척이나 많다)의 메디치가문 사람으로, 바로 코지모 메디치의 손자이다. 그러니까 한참 후의 일이다. 이 '로렌초 메디치'의 시기가 코지모의 시대와 함께 '메디치 가문의 최고 전성기'로 불린다. 그리고 이 시기를 지나면서 천하의 메디치 가문도 서서히 기울어 지다가......... 종국에는 '메디치가문이 보유한 모든 건축물과 미술품을 절대 피렌체 밖으로 반출하지 않는 다른 조건' 하에 남은 전재산을 피렌체 시에 헌납하고 파산한다. 가장 위대했던 한 금융가문이 하루아침에 몰락해 버린 것이다.(그 과정은 너무도 긴 이야기가 있어서 이번 여행기에서는 생갹하기로 한다.)
그럼 이제 다시 가던 걸음을 옮겨서 피렌체 여행을 계속해 보기로 하자.
광장 옆으로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이 있다. 아주 가깝다. 이곳에 '천국의 문'과 '동쪽문' 진품이 전시되어 있다.
또 '로마카드' 처럼 피렌체 여행자를 위한 '피렌체 카드'가 있는데, (두오모) (지오토 종탑)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이 통합입장권제도에 해당되니 아까워서라도 꼭 들려보아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마어마하게 귀하고 많은 미술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이곳만은 꼭 들려보는 것이 좋겠다.
물론 세례당과 두오모 본당도 둘러보아야만 한다.
어이쿠 시간이 어느덧 제법 흘러가고 있다. 서두르자 바쁘다 바빠.
비가 그치자 광장에 여행객 모습을 그려주는 화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인 여자와 남자가 모델이 되어 캐리컬쳐를 그리고 있었다. 나는 옆에 서서 구경을 하다가 그만 짓굿은 본성이 되살아나서, 화가 뒤에 서서 모델을 보면서 거짓말을 했다. '화가가 너무 거짓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모나리자 보다도 더 우아하고 기품있고 너무 너무 예쁘게 그리고 있어서...... 아마도 이건 사기성이 농후한 거짓 그림 같아 보인다'고 짖굿게 과한 표정에 커다란 액션까지 섞어서 말해주었다. 그러자 모델 여자가 알수없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그림이 너무도 에쁘게 그려지고 있다는 말에 어찌할바를 몰라 기쁨을 억지로 감추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바로 옆의 남편인지 남자 친구가 박장대소 하며 떠나갈 듯이 웃어재꼈다. 그친구와 나는 그 너무도 예쁘게 나오는 그림을 보고 있었거든........ ㅎㅎㅎㅎㅎ(우린 알고 있지롱)
---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 입구.(꼭 보자)
'로렌초 기베르티'가 제작한 산 조반니 세례당의 북문(천국의 문)과 공모전에 음모했던 동문의 진품이 여기 오페라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오래전에 우리나라에도 왔었다. '르네상스 미술대전'의 행사에.......
' 천국의 문'은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하는 아담과 이브. 카인이 아벨을 살해한 사건. 술에 취한 노아. 이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 에서와 야곱의 탄생. 요셉이 이집트에 노예로 팔린 사건. 모세가 여호와로 부터 십계명을 받는 장면. 유대민족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는 사건. 다위이 골리앗을 이기는 장면. 솔로몬과 시바여왕을 아름다운 조각으로 수놓고 있다.
주로 검은빛의 공모전 동문은 제작기간이 1년이었지만, 황금색 북문(천국의 문)은 무려 20년의 제작기간이 걸린 기베르티의 대표 명작이다.
그리고 옛날부터 위대한 예술가들은 대부분 짖꿋은 개구장이이거나 장난꾸러기 였던것 같다. '레오나드로 다빈치'가 '다빈치 코드'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자신의 작품에 여러군데 애교스런 장난을 꾸며 놓았었는데, 기베르티 역시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으로 장식' 하라는 청동문의 내용에 슬며시 자신의 얼굴을 조각해 넣는 익살스런 씨츄에이션을 선보이고 있다. 젊은 모습과 노년의 모습이 정겹다. 당시 발주한 사람들은 저 모습을 성경속의 누구로 생각했을까?
정말 끝가지 몰랐을까? 혹시 들통 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익살은 다분히 '레오나드로 다빈치'가 너무도 유명한데....... 이번 글의후반부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켈란젤로의 익살'을 한번 살펴 보겠다. ㅎㅎ
----- 도나텔로 (다윗) . 자료가 없어서 부득이 퍼 옴.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조각가 (도나텔로)를 그냥 건너 뛸 수는 없었다.
고대 그리스 조각에 심취했던 도나텔로는 인간의 신체란 고정된 조형물이 아니라 항상 움직이며 운동할 수 있는 관절을 가진 구조물이라 생각했다. 하여 몸에 걸치는 옷의 주름은 밖에서 만들어진 멋진 무늬가 아니라 옷속의 육체의 형상, 즉 근육의 움직임에 의해서 결정되는 부차적인 별개의 요소라고 보았다. 결국 그의 작품속에 나타난 옷의 주름은 정말로 살아 움직이며 금방이라도 벗어버릴것만 같다.
도나텔로가 청동 나신상 '다윗'을 발표했을때 세상은 다시한번 떠들썩한 전쟁을 치루어야만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예술은 '오로지 찬미 하나님을 위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지배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아담과 이브가 살던 에덴 동산은 그냥 에덴 동산 이었다. 선악과를 따 먹은 후부터 포도나뭇잎으로 자신들의 치부를 가렸다는 그냥 전설 같은 이상향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더 이상...... 그렇다면 그들이 벌거벗은 누드의 상태로 살았느니 어쩌느니 하는 부연 설명이나 상상이 첨가될 수 없었던 시기였다. 자칫하면 '신성 모독'이란 철퇴가 어디선가 날아들 그런 시기였다.
나체 조각이나 그림의 육체적인 아름다움은 사악한 이교(異敎)의 부패하고 타락한 일면을 추구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우상(偶像)의 또 다른 단면으로 여겼다. 그런 시기에 고대 이래 처음으로 전신을 그대로 드러낸 등신대로서 완전히 독립된 하나의 나체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 충격이야 오죽했으랴만은, 실제로 이 작품을 (코지모 메디치)가 구입하였고, 훗날 '신성 모독죄' '이교 숭배'로 재판에 회부당하기 까지 한다.
하지만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변화의 길목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자 작품이라고 하겠다.
이런 소란때문이었는지 도나텔로는 피렌체를 떠나 파도바로 갔다. 그곳에서 베네치아의 장군이자 영웅인 '갓타멜라타의 기마상'을 제작했다.
거의 10년이 지나서 피렌체로 돌아온 도나텔로가 다시 한번 세상을 놀랜킨 작품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상' 이다.
예수의 유일한 여제자이자 숱한 소문과 전설같은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 였다. '로마 카톨릭의 정체성 확보'를 위해서 더럽혀지고 지워지고 매도당한 비운의 성녀 라는 소문이 항상 꼬리에꼬리를 물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어쩌면 그녀가 '초대 교황'이 되어야 했는지도 몰랐다.(이런 이야기를 댄 브라운이 다빈치 코드를 통해서 밝혀보고자 했던 것이다)
목재로 만들어진 막달라 마리아는 덥수룩하고 초췌하다 못해 창백해 보이기까지 한다. 예수의 발을 씻기고 향유 단지를 들고 무리에 앞서 늘 예수 가까이에 있던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심지어 제목이 아니었다면 그 모습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이 안갈 정도이다.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사조의 상징과 너무도 동떨어진 느낌이다.
하지만(나는 정말로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작품이 그의 평생동안 이룬 작품생활과 전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고들 말한다. 도나텔로 자신의 인생 역정과 어떤 종교적 체험이 작품에 반영된 것일 뿐, 그는 여전히 '르네상스 최초의 고독한 천재' 였다.
부르넬리스키와 그가 두오모 돔 공사에 사용했던 공구들도 전시되어있다. 또 여러곳의 성당 쿠풀라(돔)의 설계도면과 도형들도 별도의 방으로 전시되어있고 수많은 부조와 조각상들이 잘 전시되어 있다. 맨아래쪽에 사진으로 보는 (미켈란젤로)가 노년에 접어들어 만들다 중도 포기해 버린 '피에타(성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가 아닌)'는 정말 뜻밖의 만남이었다. 다소 놀라운 충격이었고, 미켈란젤로 최후의 작품인 '론다니의 피에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신곡'을 소개하는 (단테)의 모습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제법 오랜 시간을 머물다 오페라 박물관을 나왔다.
피렌체까지 새벽같이 달려온 보람이 충분히 있었다.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광장을 벗어나려 발걸음을 옮기는데 또...... 깜비오와 부르넬리스키의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가 한참을 바라다 본다.
깜비오의 시선은 두오모의 동쪽문을 건네다 보고 있다. 거기까지가 자신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부르넬리스키는 고개를 쳐들고 두오모의 지붕 쿠풀라(돔)를 올려다 보고 있다. 자신의 업적이 신통했음인지 표정이 지극히 평온해 보인다.
이젠 정말로 발걸음을 옮길때가 되었다. 어서 시뇨리아 광장으로 가야만 한다.
굿바이 두오모. 굿바이 부르넬리스키.
흑사병이 온 유럽을 쓸고 지나간 후 결국 피렌체 공국은 두오모의 완성(돔)을 메디치가의 (코지모 메디치)에게 맡기기에 이르렀다.
메디치가 역시 힘들게 위기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지만, 코지모는 결단을 내렸다.
공적인 종교지도자로서의 책무 보다는 사치와 흥청망청 돈을 쓰며 놀기를 더 좋아하던 교황은 교황청의 모든 재산의 관리와 금전업무를 메디치 가문에게 맡겼는데, '이자놀이'를 엄하게 금지하던 종교 규율을 은근슬쩍 비켜가면서 '십일조'라는 명목으로 메디치가에게서 교황청이 총 맡겨놓은 금액의 10%씩을 꼬박꼬박 받아서 교황 혼자서 꿀꺽 해오고 있었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자(십일조)가 제때 상납되지 않으면 곧바로 특사를 보내 독촉을 일삼았다. 흑사병(페스트)의 창궐로 로마나 페렌체를 비롯한 온 유럽의 경제가 땅바닥을 치고 있음에도 교황의 이자는 한푼도 줄어들지 않은 채 독촉만 계속되고 있었다. 이대로는 해를 넘기기도 전에 파산할 지경이었다.
코지모는 교황에게 편지를 썼다. '교황청에 올려야 하는 십일조 보다도 더 중요하고 시급한 하나님의 사업이 있다고' 해놓고는 고아원을 짓고, 두오모 완성(돔 공사)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순 배짱이었다. 이미 동네방네 소문이 자자하게 났으니....... 성스러운 하나님을 위한 사업에 돈을 먼저 쓰겠다는데....... 교황도 더는 우길 수가 없었다. 메디치는 서서히 어느정도 자금 운용의 숨통이 트여갔다. 반면에 교황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홧병이 다 생겨버렸다.
(코지모 메디치)는 두오모의 증축. 돔의 완공 계획을 온 유럽에 알렸다. 최대한 판을 크게 벌려야 교황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돔의 완공 프로젝트'를 공모에 붙였다.
온 유럽에서 내노라하는 건축가들이 벌떼처럼 몰려 들었다. 석달의 사간을 주고 응모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십수년전의 그 희대의 사건이 또다시 재연되고 있었다.
'천국의 문'을 막 완성한 (기베르티)가 하늘을 찌르는 자신의 인기에 힘입어 '돔 건축 응모전'에 뛰어든 것이다. 평생 건축이라곤 해 본적이 없는 기베르티 였지만 자신의 천재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울러 (부르넬리스키)가 건축가로 응모전을 준비중이라는 사실도 작용을 했다.
부르넬리스키는 이미 코지모 메디치를 만나 고아원을 건축하면서, 누구나가 불가능하다고 인정하는 사상초유의 (피렌체 두오모 돔) 공사에 대해서 나름 연구를 마쳐놓고 있었던 터였다. 그는 도나텔로의 도움을 받아서 설계도와 작업 시방서와 설계모형을 장장 90일에 걸쳐서 완성하여 제출하였다.
공청회와 코지모의 선택에 의해서 당당하게 부르넬리스키가 건축가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논란이 그치지를 않았다. 이 세상에서 이제껏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새로운 공법으로 이 위대하고 거대한 공사를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흔히 작은 아치형의 다리를 놓는 방법은 대략 두가지가 있다. 비계(지지 구조물)를 세워 놓고 그 위에 실제크기의 모양을 목재로 만들어 놓고 그 위에 다듬은 돌이나 벽돌을 짜맞추어고정 시킨 후 비계를 철수하는 방법이다. 아니면 비계 대신 흙이나 모래를 같은 방법으로 쌓아 놓고 돌이나 벽돌을 고정시킨 후 다시 파내는 방법이다. 그런 방법으로도 로마 판테온의 지붕 하중을 견디지 못하여 결국 구멍을 남겨 놓았는데, 더 크고 더 높은 피렌체 두오모의 돔을 완공하자니, 비계를 설치한다 해도 상부의 비계 무게를 하부의 비계가 도저히 견뎌낼 게산이 나오질 않았다. 높이가 114m에 이르는데......
그런데 지금....... 비계 설치 없이 허공에 돔을 완공하겠다고 부르넬리스키가 나섰으니..........
우주에서 쓰는 어마어마한 기중기라도 있으면 지상에서 돔을 정교하게 만들어서 번쩍 들어다 턱 덮어버리면 그만일텐데.......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성스런 신의 사업을 놓고 장난질 하는 것이라고들 놀렸다.
하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부르넬리스키는 시작 했다.
'어쩌면 부르넬리스키 라면 해낼지도...........' 코지모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사건이 또 벌어진다. 부르넬리스키의 당선으로 이번엔 멋진 복수전으로 끝났다고 여겨졌던 기베르티와의 전투가 아직 끝난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부르넬리스키가 코지모 메디치에게 요청을 했다.
기베르티와 공동 작업으로 돔을 완성하고 싶다고. 그리고 코지모가 승낙을 해서 기베르티에게 초청장을 보냈는데.......
1차전에서 '차라리 팔을 자르겠다'고 한 부르넬리스키와 다르게 기베르티가 혼쾌히 승낙을 하고 공사에 참여를 한 것이다.
ㅎㅎㅎㅎ
무슨 생각에서 였을까?
실제 공사에서 자신이 더 훌륭하게 공적을 쌓고 널리 알려서 또다시 완승을 기대 했을까? 아님 현장에서 사사껀껀 물고늘어져 공사를 망치고자 했을까?
둘 다 서로 좋은 생각으로 한솥밥을 먹기로 한것만은 분명했다.
공사 총책임자 부르넬리스키. 공사 부책임자 기베르티.
세상의 관심은 불가능한 돔의 완공 만큼이나 이 두사람의 역활과 대결에 관심과 눈길이 쏠렸다.
부르넬리스키는 기베르티가 있으나 없으나 개의치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사람들을 시켜 일을 진행해 나갔다. 헛바지 역활에 신물이난 기베르티는 피렌체 공회와 코지모에게 달려가 통탄할 일이라고 규탄 대회를 열었다. 이 같은 일이 연일 반복되고 있었다.
결국 기베르티의 하소연에 지친 코지모와 공회는 부르넬리스키를 불러 기베르티를 좀 중용해 달라고 타협을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다음날,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부르넬리스키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오랜 시간 기다리고 기다렸던 순간이었을까? 기베르티가 총책임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순간부터 공사는 단 한걸음도 앞으로 더 나가지를 못했다. 아니 나갈 수가 없었다. 그것은 결코 기베르티가 감당할 수 있는 그런 분야가 아니었다. 밤 잠을 설쳐가면 고심에 고심을 해보았지만..... 기베르티로서는 더 이상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결국 기베르티는 사표를 내고 멀리 떠났다.
기베르티가 떠나고 나자, 언제 무슨 일이 있엇냐는 듯이 부르넬리스키가 태연하게 돌아와서 공사를 재개 했고...... 결국 불가능했던 돔을 완공했다.
기베르티와 부르넬리스키는 결국........ 선동렬과 최동원 선수의 영원한 승부 처럼 1승 1패를 나누어 가졌다.
자고로 천재들이란..............
두오모를 뒤로하고 2천년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있는 보도블럭 길을 따라 걷는다. 이런 울퉁불퉁한 돌길이 나는 정말로 부럽다.
보행자 전용도로인 칼차이우울루 거리 양쪽으로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의 상점들이 길게 들어서 있다. 전혀 화려한 상가가 아니다. 고풍스런 옛건물들 사이에 고즈넉한 자세로 마치 품에 안겨있듯이 점포들이 들어서있다. 브랜드 명칭을 확인하지 않는다면 결코 세계적 명성에 걸맞지 않는 작은 구멍가계 모습이랄까? 페르가모. 베르사체. 구찌.........
인파에 휩쓸려 가듯이 천천히 사람들을 다라 걷다보면 골목이 끝나는 지점에 환하고 넓은 광장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 이다. 피렌체에서 가장 Hot 한 중심가이다.
아니 시뇨리아 광장은 (르네상스) 그 자체이다. 시뇨리아 광장을 보지 않고서는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수 조차 없다. 르네상스는 바로 이 광장에서 시작되었고, 1천오백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시점에도 여전히 르네상스의 모습으로 같은 그자리에 서 있다.
아!
크게 쉼호흡을 해본다. 기어코 내가 여기에 왔구나. 세상과 전혀 다른 이곳. 그리고 지구상에서 유일한 이곳.............
광장에 들어서자 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것이 거대한 청동 기마상이다.
바로 '르네상스의 대부' '르네상스의 후견인' (코지모 데 메디치)의 동상이다. 조반니 메디치의 아들이며 메대치 가문을 유럽 최고의 금융가문으로 만든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아버지 조반니는 '항상 강한자(권력) 앞에서 겸손하며 결코 나란히 서려 하지 마라'하며 생존이 기술과 방법을 가르쳐주었으나, 코지모는 강한자(교황. 권력)과 툭하면 대결을 자초하곤 했다. 신성모독 재판과 추방과 암살의 공포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소신대로 밀어부쳤다.
오늘날까지도 손에 꼽히는 위대한 금융가 이자 평소 예술을 너무도 사랑하여 수많은 예술가들을 교육시키고 지원하고, 또 가장 많은 미술품을 사들여 소장한 거부이자 거물이었다. 하지만 코지모와 미켈란젤로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코지모 사후 11년이 지나서 미켈란젤로가 탄생했다.
시뇨리아 광장을 빼놓고는 (르네상스)를 논할 수 없듯이, (르네상스) 하면 세 명의 천재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가 없다.
레오나드로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지극히 서로 다른 개성과 천재성을 가진 실로 위대한 인간들이라 하겠다.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를 비롯한 연작들로 현대에 들어 다빈치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과 더불어 아주 인기있는 인물로 새롭게 부각되었다.
히여 나는 이번에 이름만 어마무시하게 유명할 뿐, 대표작 몇개 외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미켈란젤로를 중심으로 하여 나머지 두 사람과의 관계들을 슬쩍 들여다 보는 이야기를 다음편 여행기에서 이어나가고자 한다. 그러면서 서둘러 로마와 피렌체를 벗어나려고 한다.
아직 갈 길이 한참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시칠리아가 기다리고 있다. '프리드리히 2세'를 찾아가 알현해야만 한다.
그리고나서 고대하고 고대하던 몰타에 가야만 한다. 위대한 그랜드 마스터 '라발렛'과 만나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이스탄불에서 '피에르 로티'도 만나야 하고, 위스큐다르에서 진한 터키식 커피를 마셔야 한다.
서두르자.
------ 로마와 피렌체 여행은 다음번 여행기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그 다음은 시칠리아로........ 감사합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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