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기억이란 놈은 참으로 이기적이다.
아무래도 그놈에겐 조물주께서 제마음대로 편한쪽으로만 생각해도 좋다는 절대적인 신성불가침의 허락이라도 내려졌었던 모양이다.
N.카잔챠키스의 말에 의하면 분명 '망각' 이라는 것이 조물주께서 인간에게 베풀어주신 커다란 선물이라 했었는데, '기억' 이란 놈이 조물주의 선물인 '망각' 보다도 더 설쳐대대면서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들을 곧잘 만들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 세월이 우리들을 긍휼히 여긴다. 세월이 지우개처럼 지난 고통을 지워 버린다. 봄철의 새 잎이 무덤의 비석을 덮고나면 삶은 숨을 몰아쉬며 다시 상승을 시작한다' 라고 카쟌차키스는 말했다. 좋지 않은 기억들은 적당히 잊어버리며 사는것이 좋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하기는, '망각' 이란 놈이 '기억' 이라는 놈 보다 더 설쳐댄다면 이 세상에 끔찍한 일이 얼마나 많이 벌어질까마는....... 우리 아들이 엄마 아빠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태라도....... 헉! 안되는데.
- 도솔산 선운사 일주문 전경
- 이렇게 개울을 끼고 전나무 숲길을 걸어 들어간다.
오래전에 이곳 선운사에를 다녀간 적이 있다. 마치 오랫만에 외갓집이라도 찾는것 같은 정겨움으로 숲길을 걸어들어가며 말을 꺼냈다.
'전에 왔을땐 짱구가 요만한게 사방으로 뛰어다녔는데.......' 무심코 던진 말이었다.
'언제? 나 빼놓고 언제 아들만 데리고 여길 왔었어?'
'무슨 말이야. 난 오늘이 여기 두 번째인데, 첫번째가 당신하고 왔던거고.'
'그러니까 내말이 바로 그거야. 우리가 여기 지난번 왔을땐 아들 안데리고 왔어.'
잉? 세상에 어쩔꺼나.
부랴부랴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우리 아들이 여기저기를 사방으로 뛰어다니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는데.......
'우리가 여기를 언제 다녀갔는지는 기억해?'
'기억하지..........'
머릿속 깊은 한 구석으로 쳐박아두었던 기억의 낡은 비디오 테잎을 부리나케 찾아내서 열심히 최대한 빠르기로 해서 돌려본다.
꽤나 오래된 기억이었다.
당시 나나 왕짜증여사나 몹시 힘들고 안좋았던 시기에 바람이라도 쐬면서 심신을 추스려볼까 하고 남해로 여행을 떠났던 때였다. 남해의 편백자연휴양림에서 쉬면서 보리암이랑 다랭이논이랑 둘러보고 나서 올라오는 길에 선운사엘 들렸었다. 당시에도 사진을 찍기는 하였는데 제대로 나온 사진이 없어서 대부분 소각하고 그 중 한장을 왕짜증여사가 항상 간직하고 다니라며 아덜사진만 달랑 가지고 다니던 내 지갑에 크기에 맞게 오려서 강제로 끼어넣어준 사진이 바로 이 여행중에 노량의 충렬사 담벼락에 앉아 찍었던 사진인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지금도 내 지갑에 잘 모셔져있는 것까지 유추하여 대부분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아뿔싸! 기록테이프 어디에도 짱구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그렇다면 방금 전까지의 내 기억회로는 어떻게 되었던 거지?
'생각해 보니 아들이 없었구나. 이상하네......... 저쪽 주차장 입구에서 부터 여기 담벼락까지 빨간 꽃무릇들이 지천으로 깔려서.........'
'이사람 점 점 이상하네. 꽃무릇은 무슨 꽃무릇? 동백이 다 떨어졌었으니까 지금하고 시기가 비슷했는데.'
'무지 더웠단 말이야.'
'그래. 덥기는 무척 더웠었지. 그건 맞아. 그렇게 머리좋다고 자랑하는 당신이 그런것도 기억 못하다니 아무래도......... 누구 딴사람 하고 왔어나보지?'
'뭐야? 이 사람이 시방 멀쩡한 사람 잡으려고......... 거 참 이상하네.'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당신이 뭔가 이상한것을 숨기고 있는 것이지.'
'아녀. 절대 그런일은 없는데 뭔가가 이상하기는 혀. 이상혀. 혹시.......... 당신이 나 말고 어떤 놈하고 다녀간 기억이 막 섞여있거나, 또 내가 어떤 뇬하고 다녀간 기억이 섞여 있어서 우리가 여기 다녀간게 세번 째인데...........'
'당신은 몰라도 난 아니여. 그리고 그딴것에 관심도 없어. 그러니까 괜한 어깃장으로 남 심사뒤틀리게 하지말고, 다 지나간 이상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어. 찜짐한거 있으면 난 괜찮으니까 아들 생각해서 스스로 반성하고.........'
'아닌데...... 그게 아닌데......... '
혹시 치매 초기인가?
'신이시여! 어찌되었던 간에 일단 뿅 망치로 왕짜증여사의 뒷통수를 한 방 먹여주셔서 작금의 상황에 대한 기억을 일단은 지우개로 지우듯이 말끔하게 조치 좀 해주십시요. 아멘.'
하늘은 온통 희뿌옇게 흐리고 아주 조금씩 비를 뿌려대고 있었다.
여행 떠나오기 전 일기예보에는 분명 이틀째 오후에 흐리고 약간의 비가 올 확률이 좀 있기는 하였는데, 막상 이틀째 밤이 깊어가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어서는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거기에 심하게 바람까지 몰아쳤다. 텐트가 비바람에 떨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지만, 미리 싸이트 주변을 잘 정리해 놓았던 관계로 별걱정은 되지 않았다. 모처럼만에 들어보는 텐트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적당히 음미하고 있는 왕짜증여사를 보자니 '여자도 나이를 먹으면 간덩이가 커지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십수년 전 지리산 달궁 캠핑에서 태풍으로 인해 계곡의 급류가 무섭게 불어나기 시작하고 관리소 안전요원들이 사방으로 쫒아다니며 긴급철수를 외쳐대던 때가 생각이 났다.
계곡의 물이 붉게 변하기 시작하면서 물살이 점 점 빨라지고 수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폭우로 한동안 쏟아부었으니 슬슬 그치겠지 했었는데, 안전관리요원의 확성기 방송이 '태풍의 진로가 이곳 지리산으로 향했으니 무조건 모두 대피하시요' 였다. 계곡에 빠른 어둠은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하고, 우리는 마침내 철수를 결심했다.
아들을 가슴에 끌어안고 왕짜증여사를 잡아 끌며 어느새 험악하게 변해버린 계곡의 급한 물살을 가로질러 헤치며 끝내 건넜다. 급류가 허리춤을 넘어서고 있었다.
차를 가져와서 시동을 걸고 히타를 켜주고는 아들과 아내가 일단 마른옷으로 갈아입게 하고는, 다시 계곡의 급류를 건너갔다. 손에 손전등(후레쉬) 하나만 들고.
당시 추위와 겁에 질린 왕짜증여사는 장비를 모두 포기하던지 아침까지 차에서 기다리자고 하소연 하고 아들은 '아빠 가지마' 라고 절규하듯이 울어댔다. 그런 만류를 뿌리치고 게곡을 건너 싸이트의 장비를 대충 그냥 텐트안에 밀어넣고는 둘둘 말아 둘러메고 다시 급류를 건너왔다. 일단 통째로 트렁크에 몰아넣고는 다시 한번 더 계곡을 건너려는데, 아내와 아들이 창문을 열고 함께 대성통곡을 하며 애걸복걸 하는 것이었다. '이런것이 가족이구나!'
그러나 기어코 다시 한번 건너가 그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남은 짐들을 가지고 어느새 가슴팍까지 차오른 계곡의 급류를 건넜었다. 마침내 차 안에 들어가 마른옷으로 갈아입으려니, 두 사람이 눈물로 범벅이 된 채로 멋적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그 길로 그 야심하고 폭우가 내리 퍼붓는 지리산계곡을 빠져나와 기어코 집에까지 왔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지금까지도 '참으로 대단한 사람, 대단한 아빠'로 회자되고 있다. 그랬던 왕짜증여사가 요즘은 도통 웬만한 일에는 눈도 껌뻑 안하고, 아들은 이제 나 보다 키도 더 크고 휄씬 건장한 청년이 되었으니 오히려 점 점 나만 쇠락해져 가고 있는 느낌일 뿐.
채석강야영장을 떠날때에도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선운사 주차장에 도착하고나니 그저 빗방울이 느껴지는 정도로 변해있었다. 우산을 들을까 하다가 매점에서 일회용 우비를 혹시나 해서 두 개 구입해서 륙색에 넣고는 그냥 걸어 들어갔다.
푸르름은 항상 좋다.
지난 밤새 내린 비로 세상은 온통 더 청아하고 싱그러운 푸르름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마냥 그 푸르름에 젖어들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일주문까지 걷는 길도 좋았고, 일주문을 들어서자 나타나는 숲길은 황홀할 지경이었다. 여행객도 전혀 보이지 않아, 선운사 일대를 그냥 내집 정원으로 만들어 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제의 내소사 입구 숲길 보다 여기 선운사 입구 숲길이 열배는 좋게만 느껴졌다.
내소사 숲길엔 사람의 발자욱들만 가득하였으나, 선운사 숲길엔 신선의 발자취만이 푸르디 푸른 나무들 사이로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년)에 검단선사에 의해 창건된 천 년 고찰이다.
대웅전을 병풍처럼 들러 감싸며 군락을 이루고 있는 동백나무 숲으로 유명한데 높이 6m의 수령이 자그만치 500년 식이나 된 이 동백나무숲은 천연기념물 184호로 지정되어있다.
수많은 신화와 역사를 간직한 이 천년고찰은 오늘도 고즈넉히 이 도솔산 기슭에 자리잡고 앉아서 그윽한 시선으로 그저 말없이 세상을 내려다 보고만 있다.
또한 이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선사에 대해서는 소금에 관한 전설까지 전해내려오고 있다.
검단선사가 여기 선운사를 세우시고 해안(변산반도)을 돌아보시다 보니 백성들의 삶이 참으로 피폐하여 말이 아니었더란다. 제 한 목숨 부지하려고들 빼앗고 싸우고 한마디로 아비규환 속이었다 한다. 하여 검단선사께서 서로사우고 도적질이나 하는 사람들에게 먹고 살 방도를 하나 가르쳐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소금을 만드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현재의 천일염이 생산되기 전까지는 바닷물을 퍼다가 커다란 솥에 넣고 끌여서 소금을 만드는 방법을 택하였는데 이를 자염이라 하고, 바로 검단선사께서 이 자염만드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었고, 그 자염을 만들던 사람들이 살던 마을을 검단리라 하여 오늘까지 남아있다. 아울러 해마다 이 검단리에서 생산한 소금을 선운사에 보은염이라 해서 시주를 계속해 오고 있다.
선운사를 찾는 신도이든 여행객이든 누구든지 잠시 선방에 들어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천년고찰의 품에서 잠시 쉬기를 원한다면 바로 대웅전 앞에 있는 전각에 조용히 신발을 밧고 들어가면 된다.
찾아오는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다방이 준비되어 있다. 커피아시는 다방이 아닌, 차를 마시는 다방 말씀이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다도체험의 기회는 물론 공짜이다.
보성 같은 곳에서 재배한 차가 아니라, 선운사 인근의 야생차밭에서 수확한 보다 더 깊은 차향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선운사를 벗어나 숲길을 오른다.
도솔암으로 가는 길이다.
지난날 이 도솔산에는 50여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도솔암을 포함하여 네개의 암자만이 남아있다.
선운사의 담벼락에서 시작된 도솔암에 오르는 길은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넓직하게 잘 다듬어져 있으나, 우리는 숲으로 난 옛길을 따라 오르기로 하였다.
신선들이 오르내리던 그 길을 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숲 속으로 난 길은 정겹다.
더군다나 이렇게 적당히 사람의 발자취가 느껴지는 옛길은 더욱 정겹다.
넓게 잘 닦여진 자동차 도로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도랑을 따라 언덕길을 올라간다.
도랑을 이리 저리 건너기도 하고 흐르는 맑은 물에 세수도 하면서 쉬엄쉬엄 오른다.
하늘은 여전히 흐려있고 간간히 나뭇잎들이 머금고 있던 빗방울들이 툭 툭 얼굴위로 떨어진다. 그러나 하늘이 흐려있건 말건 적당히 환한 빛을 품은 숲속은 온통 푸르름의 향연을 맘껏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 야트막한 숲길에도 고도 차이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점 점 골짜기 깊은 곳으로 접어들었음일까.
하늘도 숲도 점 점 어두워져 가고 있다. 서서히 옅은 연무가 숲속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와 시야를 희뿌옇게 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빗방울들이 점 점 소리를 내며 숲을 가득 울리기 시작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니, 오호라. 연무에 감쌓인 숲이며 기망괴석들이 또다른 절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도솔암에 가까왔다고 느껴졌을때, 커다란 동굴 하나와 독특하게 위엄을 뽑내고 있는 나무 한 구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통 반송이란 나무는 키가 작고 가지를 옆으로 뻗어서 정원 한구석을 채워주는 나무인데, 도솔암장사송 이라 불리는 이 와송은 수령이 600년에 높이만도 23m에 달해 사진에 제대로 담기도 어려웠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뒤에 신라의 징흥왕이 머물렀었다는 진흥굴이 있다. 아마도 이 선운사를 거점으로 활약했던 산적들의 아지트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마침내 희뿌연 연무에 휘감싸인 도솔암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 이른 시간이라 스님께서 직접 예불을 드리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는데, 그 신기하고 귀한 인연에 한동안 먼 발치에서 물끄러미 바라다 보았다.
도솔암 마애불도 구경하고, 내원궁과 낙조대를 올라가 보려는 데 그만, 왕짜증여사가 발목을 삐긋하였다.
아여서 아쉽지만 도솔암 경관을 잘 구경하고 하산하기로 하였다. 암자에 수리공사를 하는 차량이 여러대 있고 관리소 직원들도 올라왔기에 차량제공을 부탁해 보려하였더니 만, 이 아짐씨 죽어도 제발로 걸어서 내려간단다. 못보고 올라온 경치 좀 더 감상하신다고.
찔룩찔룩 하는 걸음거리로 느릿느릿 올라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내려간다.
그렇게 하산하여 고창 선운사 여행을 마무리 하였다.
선운사 주차장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에 제법 잘 꾸며진 야영장이 있었다.
그리 많은 숫자를 수용할 수는 없겠으나, 나름으로는 꽤나 의미있고 운치있어 보이는 좋은 야영장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언제고 다시 기회가 되면 그때는 이곳에서 야영을 하면서 내원궁과 낙조대 까지도 올라 보리라.
고창 학원농장 청보리밭
이미 각종 예능프로그램이나 여행잡지 등에, 그리고 사진작가나 여행을 좋아하는 블로거들 사이에 명소로 각인 되어진 농장이다.
허나 여기까지 왔다가 들르지 않고 그냥 돌아가기에는 무엇인가 허전하여 선운사에서 약 24km 쯤 떨어진 학원농장을 향하여 더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달려내려간다.
우리를 앞서 사셨던 세대에겐 '보릿고개' 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것을 내포하여 표현할 수 있던 그런 지난 시대에서, 이젠 보리밭이 관광명소로 떠올라 깊게 각인가지 되었다니 새삼 새대의 변화에 절로 고개가 절래절래 흔들어 질만큼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약 10만평의 대지에 보리를 재배하였었는데, 그 빼어난 풍광을 알아보는 일부 사진작가들이 찾아와 찍어서는 작품을 하나 둘씩 세상에 내놓았었다 한다. 그러면서 점차 알려지기 시작하여 이제는 웬만한 여행가들이면 고급 사진기를 들고 꼭 들려봐야만 하는 성지가 되어 버렸다.
어쩌면 이제는 보리수확이 그 근본의 목적이 아니라, 시기에 맞춰 보리밭의 정취와 풍경을 감삼할 수 있게 끔 다분히 상업적인 측면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것 같다.
보리밭 뿐만이 아니라 유채꽃도 단지를 만들고, 또 온갖 대단위의 면적에 무리지어 군락을 이우어 더욱 멋을 뽐내는 그런꽃종자들로 사시사철 연중으로 장관을 연출해 내고 있단다.
보리밭농장에서 관광사어버장으로 멋있게 탈바꿈을 한 것이다.
시대적인 시류에 잘 편승하여 놀라운 씨너지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하여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보담은 그냥 두루 돌아보면서 나도 여기저기 셔터를 눌려대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이번 변산반도 여행도 마무리 되어갔다.
----- 2013. 05. 19.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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