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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변산 마실길 - 제주도도 아닌것이 올레길을 품었구나

by 피안재 2013. 5. 20.

 

 

 

 

 

 

 

 

 

 

 

 

 

 

 

 

 

 

 

 

       변산 마실길

 

  변산반도는 우리나라지형의 남서쪽에 툭하고 불거져나온 반도이다.

  분명 육지에 붙은 해안가이다. 저 남쪽으로 바다 저만치 뚝 떨어져 있는 섬이 아니다.  내변산을 둘러보면 육지가 분명 맞다.

  그러나 외변산 해안가를 가만히 둘러보다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여기가 우리나라 서해가 맞나?'하는 의구심이다.

  변산의 바다는 흔히들 갯뻘이나 탁하게 거품이 이는 바다로 연상되는 서해바다의 이미지와는 영 딴판이다.

  동해나 남해도 아닌것이 싯푸르게 투명한 바다를 간직하고 있다.  파도가 갯벌에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깍아지른 벼랑에 달려와 산산히 부서지고 있다.

  제주도도 아닌것이 해안가를 끼고 도는 빼어난 절경의 올레길을 품고있다.

  즈려밟고 걷다보면 걸을수록,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영락없는 올레길이 툭 하고 하나 이리로 이사를 온것만 같다.  서너 시간을 걷는 내내 잠시도 그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변산 마실길.

 

 

  처음에는 새만금방조제가 있는 서두터에서 시작하여 격포항에 이르는 16KM의 해안길을 3개 구역으로 나누어 변산 마실길이라 하여 세상에 내놓았던 것이다.

  이 마실길 안에는 새만금홍보관을 비롯해 변산. 고사포해수욕장과 이미 널리 알려진 적벽강과 채석강 등 경치가 뛰어난 명소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점 점 마실길이 널리 알려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만가자 부안군은 변산반도 해안가를 두루두루 돌아볼 수 있는 마실길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마침내, 14개 코스에 총길이 66KM에 달하는 (변산 마실길)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14개의 코스중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것은 역시 1.2.3코스이다.  그 중에서도 3코스야 말로 변산 마실길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이미 재작년 제주도 여행길에서 제 7. 8.12코스를 다녀온 적이 있는 우리는 이번 여정속에서도 마실길 3코스를 돌아보기로 애초부터 마음을 먹었었다.

 

  지난밤 새벽녁에나 도착하여 허겁지겁 캠프를 차리고 서너시간 숙면을 취한 상태였는데다가, 아침일찍 내변산 산행을 하였으며 오는길에 격포항까지 샅샅이 둘러본 터라 가히 컨디션이  정상이라고는 할 수가 없겠다.

  캠프로 돌아와 내일의 스케줄이나 점검하면서 좀 쉬려고 하였더니만.......  캠핑장의 분위기가 영 조용히 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연실 밀려들어오는 캠퍼들이 여기저기 어디든지 쬐끄만 공간만 보인다 싶으면 은근슬쩍 파고들어 집채만한 텐트들을 치고 있는데다가, 떼로 뛰어다니며 야단법석을 떠는 아이들과 대형마트 경매장에 온 분위기의 일부 아낙들이 쉬는 공간을 동네운동장이나 난전으로 만들고 있었다. 거기에 대낮부터 낮술에 취해 목청을 돋구고 있는 아자씨덜. 옆집 캠퍼 두 쌍은 아직까지도 캠핑장비 자랑과 자신들의 경험자랑에 멘붕상태였다.  대낮임에도 여기저기 화덕에서는 괴기들을 꿉고......... 오호라 통재라.

   '우리 아무대나 다시 나갈까?'

  달리 내색은 안하지만 왕짜증여사의 심기도 여간 불편해보이지 않는다.

  '그럼 점심은? 난 배고픈데.......'

  '당연히 점심은 먹어야지. 가면서.'

  '가면서? 식당 들리는 것이 아니고?'

  '웅. 가다가 아무데고 쉴만한데 있으면 거기서 먹자고.'

  '뭘 먹을건데.'

  '하나로마트에서 사온거 있잖아.  그거면 충분하지 않겠어?'

  '그건 간식아니었어?'

  '김밥을 살 때는 분명 간식이었지만, 거기에 과일 추가로 챙겼지. 커피 새로 타서 보온병에 담았지. 과자 한봉지 챙겼으면 훌륭한 한 끼 식사가 아니겠어?'

  '글쎄.......'

  '왕짜증표 캠핑코스요리 2!!!!!!'

  이거야말로 지금 웃어야 하는지 울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하니 작금의 이 상황에 더 어쩌겠는가.

  다시  둘 다 쪼그리고 앉아 다시 등산화 끈을 조여매는 우리를 바라보는 옆 캠퍼들의 시선이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다.

  '재네들 모니?  해변에 캠핑을 온거니? 변산반도 들쑤시러 온거니? 죽어라 쏘다니기만 하네.'하는 표정들이 역력하다.

  그런 시선들을 나몰라라 하며 다시 륙색을 걸머매고 태연하게 손을 꼭 잡고 유유히 걸어나간다.

  '어머머머. 재들 도대체 모니? 틀림없이 불륜이야. 불륜이 아니고서는 저럴수가 없어. 재네들 부부인척 하는 불륜관계야. 틀림없어.'

 

 

 

 

 

 

 

                                   

 

 

 

 

 

 

 

  약 7천만년전 중생대  백악기에서 시작되는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놀라운 풍광들이 서서히 그 모습드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대자연의 경이로움 속에서 풍광을 구경하러 오는 여행객이 있는가 하면, 풍광을 배경 삼아 바다낚시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도 있다.

 

 

                                 

 

 

                                 

 

         

 

        

 

        

 

 

 

 

 

   변산마실길의 제 3코스는 2코스가 끝나는 성천포구에서 부터 시작된다. 이 성천포구의 바로 전 단계가 송림이 우거진 해변길인 고사포해수욕장이다.

  옥녀가 머리를 감았다는 성천에서 출발하여 - 하섬전망대 - 반월마을 - 작은사당구 - 적벽강 - 채석강 - 격포항으로 이어지는 7km의 구간으로 대략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싸이트를 구축한 곳이 격포해변의 야영장이었기에 부득이 코스를 거꾸로 타고 내려가 성천에서 고사포해수욕장을 둘러보며 다음날 조개잡이 할 곳을 물색한 다음 마을버스나 택시를 타고 되돌아 오자고 계획을 하였는데,  왕짜증 여사께서 부득불 왕복주파를 피력하신다. 우쩔꺼나. 14km인디.

  대명리조트 후원의 나무계단을 이용해 바닷가로 내려서서 적벽강으로 이어지는 바위벼랑 길을 걸었다.  낚시하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고동을 줍는 사람들 구경도 하면서 바위벼랑 아래를 걷다보니 작은사당구가 모습을 보이고 해변 벼랑길이 막다른 곳에 다달아 부득이 순환 도로로 나갔다가는 마실길 팻말을 기어코 찾아내고는 다시 마실길에 들어섰다. 

  그렇게 밭고랑 사이로 난 길로 잡초수풀이 우거진 길을 지나 다시 비탈 산길로 들어서자니 그때서야 알게되었다. 이 마실길이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 어떻게 조성되었는지를.

 

 

 

 

 

 

 

  마실길은 본래 군인들이 해안에 곳곳에 초소를 세우고 철조망을 친 안쪽으로 난 순찰용 방공호들을 기본 베이스로 하여 약간 보완을 거쳐 만든 산책로였다.

  웅덩이 같이 생긴 방공 초소들이 해안을 감시하기 좋은 길목마다 만들어져 있고, 어느정도 간격을 두고는 시멘과 벽돌로 조성한 해안초소들이 마실길을 따라 늘어서있다.  그런가 하면 분대급 이상의 병력이 파견나와서 근무했음직한 막사를 겸한 초소도 곳곳에 있고,  마실길을 돌다보면 군 주둔지와 맞닥트리거나 우회하여 지나치게 되는 곳도 있다.

  해안을 통해 몰래 침투하려는 적을 감시하고 막아내기 위하여 만들었던 군사용 순찰로가 세월이 변해 일부 마을과 관광지를 연계하여 여행객들이 즐겨찾는 관광로가 된 것이다.

 

 

 

 

                             

                             

                             

                             

                             

                                                                    

 

 

 

   한시도 푸른바다에서 시선을 뗄레야 뗄 수가 없는 제주도의 올레길, 바로 그 올레길이 이곳 변산에 있었다.

  길을 가다보면 여기저기서 아주 진한 더덕냄새가 곧잘 전해져 오고는 한다.

  슬쩍 한 번 수풀속을 들여다 보려고 해도 금방 앞에서나 뒤에서나 다른 여행객들이 나타나기에 은근슬쩍 무언가를 해 볼 짬을 허락하질 않았다.

  찔레덤불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을 지나치다 보니 저절로 장사익님의 노래 '찔레꽃'이 그슬프게 흥얼거려지기 시작했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나의 선창에 따라오듯 슬며시 찔레꼿 향기를 읊조리던 왕짜증여사가 갑자기 '당신, 장사익님 씨디 구워서 가지고 있지?' 한다.

  '웅.'

  '내 놔. 내가 제대로 한 번 들어볼텨.'

  '알써.'

  슬픈 노래는 사람을 너무 칙칙할 정도로 가라앉게 해서 안듣겠다며 가벼운 비트가 있는 노래만 찾던 사람이....... 이건 발라드도 아니고 억장무너지는 신세타령을 들어보시겠단다.

  심적 변화일까?  다양성을 갖춰가는 것일까? 이도저도 아님 내 씨디가 탐이나서.......... 오호라. 고거였구나. 그렇다면 이제부턴..........

 

 

  부안땅 변산반도에는 참으로 뽕나무가 많다.

  그리고 이 마실길에도 지나는 곳곳마다 뽕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해안초소가 있는 이 벼랑길에 마을이 있었거나 사람이 살면서 양잠을 하였을리가 없었으련만, 여기저기 뽕나무가 참으로 많다.

  파랗게 새로 돋아나는 뽕잎들 아래로 마치 송충이 같은 머지않아 짙은 자줏빛 오디로 영글어질 꽃봉오리들이 주렁주렁 넘치도록 매달려있다.

 

  중간에 두 번을 쉬면서 왕짜증여사표 캠핑코스요리2로 허기를 달래면서 오르고 내리기를 거듭 거듭 하였건만, 어찌된 영문인지 종점이 나타나지를 않는다.  나중에 알아낸 결과로는 부안군에서 설치한 부실한 표지판이 사람의 진을 더욱 빼앗아 간 꼴이 되었다.

  기운이 어느정도 고갈되었을 언덕길에 나타난 '성천 0.*km' 표지판. 앞에 0(영)과 .(쩜)이라는 부호는 분명 제대로 붙어있는데, 뒤에 숫자가 떨어져 나가고 붙일 때 썼던 본드 자욱만 남아있다. 그런데 그 본드자국을 냉정한 시선으로 정밀 감식하여 보니 틀림없는 '3'자 뒤에 붙었을 본드 자국이었다.  그러니까 성천까지는 '0.3km'만 더 기운을 차려서 올라가면 된다는 말씀이렸다.  그런데 어지된 영문인지 종점은 안나타나고 다시 깎아지른 벼랑길로 우리를 내 몬다. '모가 잘못된 것이여?  시방 길을 잃었나?' 그렇게 기진맥진하며 겨우겨우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때 다시 나타나는 표지판 하나.  틀림없이 종점이라 새겨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성천 0.4km'!!!!!!!!

  시방 뭐라 고라고라고라고라고라고라고라요?

  기럼 아까 '성천 0.3km'라고 정밀 분석한 표지판은 실은 '0.8km'였단 말쌈이라 고라고라고라고라고라요?

  미티미티미티미티미티.

  어쩌겠는가.  또 다시 죽기살기로 오르고 내리고 하여서 겨우 겨우 성천에 도착하여 보니........ 아무것도 없다.  달랑 표지판에 '성천' 이렇게만 써 있고 무슨 휴계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차장이나 정류장이 있는것도 아니고, 그 많던 사람들 마져 다 어디로 가고 없다.

  슬쩍 곁눈질로 살펴보니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진작에 알아봤어야 하는건데..... 잉간아. 니가 하는 일이........' 뭐 이런 표정이다.

  '칫. 자기는........ 왕복해도 꺼떡없다고 할 때는 언제고........' 차마 입밖으로 내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크게 크게 외쳐본다.

  격포까지 걸어서 되돌아 가던가,아니면 고사포까지 마저 걸어가서 교통편을 해결해 보던가 결정을 해야만 한다.

  결국 '고사포해수욕장 아이스크림이 전국에서 시원하고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하더라'고 사기를 쳐서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그 길이 얼마나 멀게만 느껴지는지...... 이제껏 온 길보다 더 멀게만 느껴진다.

  어쩌구저쩌구 해서 결국 고사포해수욕장에 도착을 했고, 공원관리소 직원을 만나 교통편을 알아보려는데, 아 글씨, 이양반 겨우 꺼내시는 말씀이.

  '한 십분만 일찍 오셨으면 격포까지 그냥 모셔다 드렸을텐데요.  그리 가는 차편이 있었는데....... 다른 방도가 없겠습니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다시 큰 길가 마을까지 한참을 걸어가서 버스를 기다리니 시간이 지나도 한참 지나도록 오리무중.

  수박을 사려고 노점에 드른 택시를 겨우 탔는데 어지나 반갑고 고마운지........

  텐트에 들어가서 누워계신지 십오분쯤 되었을라나.  나의 싱거운 장난끼가 또 발동을 한다.

  '짱구모친아. 우리 안면도 꽃찌에서 끝내 일몰구경을 못했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격포에 가면 '해넘이채화대'인지 몬지가 있는데, 거기서 보는 낙조가 또 일품이라고 하더라. 거기가면 꼭 봐야 한다고들 하더라.'

  '그래. 거기가 어딘데? 시방 거기를 또 가보자는 거여?'

  마지 못해 억지 대답을 하며 몸을 일으킨다.

  '내가 또 멀면 이야야기 꺼내지도 않는다. 엎어지면 코 닿을데지.  요 앞 해변 전망대가 바로 그 해넘이 채화대 아니니. 힘들면 내일 볼 수도 있고.........'

  '지금 심심하다 이거 아니여 시방. 우이 씨.'

  투덜투덜 대면서 기어코 다시 운동화를 신는 장한 짱구어미.  또다시 해변을 향해 앞장을 선다.

 

 

 

 

 

   격포해변의 낙조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변산마실길 제 3코스 여행도 마무리가 되었다.

 

                                                            ----------------- 2013. 05. 17.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