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아타튀르크공항 저녁 7시35분에 출발해서 약 1시간20분이 소용되는 비행이었다.
그런데 출발이 약 40분 지연되고나서 이륙하더니 트라브존에 도착해 짐을 찾고나니 밤 열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비는 내리고 있고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미니버스는 모두 끊겨있는 시간이었지만 택시는 이상하게도 싫었다.
트라브존에서의 모든 일상이나 여행은 (메이단 파크)에서 시작되고 끝이난다. 그냥 메이단 공원만 기억하면 된다는 뜻이다.
픽업을 요청한 여행객을 태우러나온 돌무쉬(미니버스)로 다가가서 여행객에게 양해를 구한다.
'비행기가 정시에 도착할줄 알고 픽업서비스를 신청을 안했다. 메이단 공원까지만 가면 숙소를 찾을 수 있겠는데 함께 타고 갈 수 있게 배려를 해줄수 있겠느냐? 허락을 해주면 운전기사에게 부탁을 하고 나의 이용경비를 따로 부담해서 지불을 하겠다.'
같은 여행자의 처지라 쉽게 수락을 해준다. 기사에게 부탁하니 손님의 동의만 있으면 문제가 없다고 하고...... 이용료로 5리라(약 2천원)을 말하기에 택시보단 한참 싼 가격이라 지불을 하고 돌무쉬 안쪽으로 들어간다.
'숙소가 없으니 기사에게 당신 호텔에서 묵을 수 있겠느냐' 할 수도 있지만, 픽업을 신청한 여행자가 별4개급 이상의 고급호텔 숙박자라면 뜻하지 않게 난감한 상황을 맞을 수 있기에...... 일단 메이단 공원까지만 가기로 한 것이다.
숙소를 찾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메이단공원에서 골목안쪽으로 100m쯤 위치한 작은 호텔........ 이스탄불 호텔을 추천한 분이 역시 이곳도 추천한 호텔이었다.
설마..... 아무리 배낭여행이라 하지만 두 번씩이나 하숙집(우리나라 70년대 최고로 허름한 숙박업소) 에서 재우기야 하겠어?
역시 3층이었는데 위치는 참으로 좋았다. 하지만 너무 낡고 협소했다. 지난밤 숙소랑 큰 차이는 없겠는데..... 바퀴벌레는 없었다.
그럼에도 젊은 주인이 참으로 친절했다. 주인의 아래 형제가 살림과 아침식사를 담당하는데 상량하리만치 친절했다.
'그래. 까짓 여기도 하룻밤인데 뭘.'
대신 내일 저녁까지 투어를 좀 할까 싶어 무거운 배낭을 키핑 좀 할 수 있느냐니까 '문제없단다' 이삼일도 보관해 줄수 있단다.
그래서 묶어가기로 하고 배낭을 벗은 뒤 곧바로 밖으로 나왔다.
허기진 배를 달래고 나서야 잠이 올것 같어서 메이단 공원의 푸드코트로 나갔다.
빗방울은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배가 많이 고팠던 상황이었음에도....... 이번에도 구미를 자극하는 확 땡기는 맛은 없다. 페낭의 거니드라이브가 새삼 그리워진다.
거기에 무슬립 식당이다보니 맥주조차도 판매를 안한다. 노 알콜 음식점........ 좀 끔찍하단 생각마져 든다.
터키나 조지아에서는 케밥. 아르메니아에서는 사슬릭. 근데 이것들이 한국의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연탄불에 안창살이나 끝살 구워먹는 것보다 못하다. 시골장터에서 돼지머리고기 대충 썰어서 소금뿌려가며 연탄불에 구워먹는 만도 못하다. 괜히 가격대만 높다.
식사를 하고 호텔에 돌아오니 매니저가 내일은 뭐할거냐 묻는다.
'내일은 오전에 슈멜라 매너스트리 가보고, 오후에 시간이 되면 우준골을 가보려 한다'고 대답해 줬다.
그가 약간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슈멜라 휘니시트"라고 한다.
그러려니 했다. 그도 호텔을 운영하면서 미니버스를 가지고 여행사도 겸할테니까 말이다. 하여 그의 여행사에는 인원이 다 찼나보다 하고 별로 대수롭지않게 생각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트라브존에서 맞은 새아침은 더없이 맑고 쾌청했다.
여행사들이 대부분 9시는 되어야 하루일과를 시작한다고 하니 그때까지는 새벽산책이나 하고자 했다.
거리로 나섰다.
호텔을 나서 골목 아래쪽으로 20여m만 내려가면 골목끝으로 바다가 보인다. 말로만 듣던 흑해다.
그리고 여기 가파른 억덕에 들어선 도시 트라브존의 외곽을 이루선 성채의 성벾이 모습을 드러낸다. 흑해지역의 이름난 해상무역도시였던 트라브존을 지켜온 성채이다. 돌아보니 성벽 안쪽으로 군대의 막사가 들어서 있다. 중세시대나 오늘에나 트라브존의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해가 떠오르는 트라브존의 항구. 곧바로 세관창고와 담당 경찰이 길을 막아선다.
여행자는 저리로 돌아서 내려가란다.
'메르하바'
'메르하바. 꼬레?'
'에스. 아임 꼬레.'
'꼬레 넘버 원........ 살~~랑~~~ 해요.'
'미투. 일럽 터키. 아럽 트라브존'
그 돌아가는 길목에서 만난 터키의 젊은이들.
식전댓바람부터 모여서 뭔가 오늘 진행할 즐거운 모의를 하는 모양이다. 젊고 해맑은 모습들이다.
이번 여행에서 놀란것중의 하나.
난 그동안 (보쉬)라는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처럼 오로지 전동공구만 생산하는 세계적 회사인줄 알았다. 그런데 유럽에서 보니 각종 가전제품에서 키친아트까지 판매하는 우리나라의 삼성이나 엘지같은 그룹이었다. 놀랐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정성이 듬뿍 담긴 간촐한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여행사 볼일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메이단공원 앞에 주차한 택시기사에게 (메트로 부스. 터키에서 가장 큰 버스여행사 사무실)을 찾는다고 하니 공원 가까운 고가도로 아래의 건물을 가리켜준다. 감사 인사를 하고 메트로 버스회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오늘 저녁에 조지아의 수도 티빌리시로 떠나는 버스티켓을 구입해 놓아야만 마음이 놓이고, 다음 스케줄을 선택할 수 있은 것이다.
트라브존에서 티빌리시까지는 심야 우등버스로 약 11시간이 소요된다. 국경을 넘어가는 국제 익스프레스인 것이다. 트라브존에서는 저녁 7시15분과 9시30분 하루 2차례 출발이 된다. 저녁 7시 티켓팅을 했다. 요금은 대단히 저렴해서 세금포함 50리라(약 2만원) 이다.
티빌리시 버스표를 확보했으니 갑자기 마음의 여유가 확 찾아든다.
그래서 벽에 내걸린 투어 상품들을 살펴보다가 (슈멜라 수도원)을 가고 싶다고 했다. 언제것을 예약하려느냐 물어온다. 그래서 오늘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휘니시트)라 한다.
그래서 오늘밖에 시간이 없어서 그러는데 그러면 어디 다른 여행사라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대답은 불가능 하단다. 모든 여행사가 이미 마감을 했단다. 유래없이 여행객들이 몰려와 적어도 이틀전에는 예약을 해야만 한단다. 모레것도 서둘러야만 하겠단다. 다른 방법이 없겠느냐 했더니...... 개별적으로 택시를 알아보는 수밖에 없단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우준골)을 물어봤다. 아주 조용하고 인상적인 전원마을이 우준골이다. 그런데 우준골은 가능하겠단다. 그런데 오늘 투어가 우준골 방문을 마치고 여기 메이단 공원에 도착하는 시간이 저녁 7시란다. 나는 티빌리시행 국제버스를 타기위해 저녁 6시에 이 사무실에서 나를 픽업하러 오는 돌무쉬(세르비스)를 기다려야만 하는데 말이다.
오. 마. 이.갓.
조지아를 가는 방법중에 여기 트라브존을 들린 이유가 오로지 (슈멜라 수도원)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서, 슈멜라 수도원 방문이 불가능해 진것이다. 티빌리시 버스티켓과 슈멜라 티켓 사이에서 천당과 지옥을 거의 동시에 맛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쩐다?
아! 슈멜라 수도원.
어째 이번 여행은 하나하나가 이렇게 우여곡절 투성이 일까?
그 하고많은 시즌 중에서 절대 비수기 시작을 고르고 골라서 왔는데, 유례없는 성수기를 맞고 있다니........ 오. 마.이.갓.
망설이던 끝에 길게 늘어선 여행사 돌무쉬 무리로 찾아가 여기저기 기사들과 직접 대화도 해보고 도움을 청해보지만...... 방법이 없다.
모두의 똑같은 대답이 지금 상황에선 택시밖에 별 도리가 없단다.
어쩔수 없이 늘어선 택시로 가서 모여드는 기사들과 흥정을 해 보았다.
슈멜라수도원을 왕복하는데 처음엔 300리라를 부르더니 나중엔 협정가격이라고 가격표를 보여주는데 250리라(약 십만원)를 최종제시한다.
여행사의 6인~8인 미니버스 왕복 이용료금이 30리라(만 이천원)인데............(티빌리시까지 50리라와 비교하니 억장이 무너진다)
갈까?
말까?
여행비로 갈무리한 것이 제법 넉넉한 편이었으므로 전혀 부담이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버젖이 두 눈 뜨고 이런 사기 비슷한 것을 당하는 자신을 나는 용납하지 못한다. 일행이 있으면 그만큼 배분이 줄어들기에 다시 돌무쉬 옆으로 와서 혹시나 에약못한 슈멜라슈도원 여행자가 있을까 하고 좀 더 기다려 보았는데........ 전혀 없다.
이런 나의 상황을 약점으로라고 생각한 택시 기사들이 계속 다가와 찝쩍거린다. 서서히 기분이 상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슈멜라 수도원을 포기하기로........
사기 당하는 기분으로 다녀오기 보담은........ '까짓 다음에 다시오면 되지?' 차라리 이게 나의 방식이다.
언젠가 터키 남동부를 꼭 가보고야 말것인데..... 그때 반에서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여정에 트라브존을 다시 찾으면 되지 않겠는가?
어떤것이든 선택이나 결정을 하고 나면 나는 그 순간 지난것은 모두 잊는다.
이제부터 다가올 새로운 앞으로의 선택을 해야만 할텐니까 말이다.
그렇게 (슈멜라수도원)을 떠나 보냈다.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배낭을 다시 꾸려서 보관실에 맡겼다.
다시 거리로 나섰다. 적어도 6시간 정도의 여유가 생긴것이다. 이제부터 그 6시간을 새로운 방법으로 더 즐겁게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래. 또 걷자. 힘들게 온 트라브존을 맘껏 누려보고 즐겨보자.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이야기 나누어 보자. 새로운 추억꺼리를 만들어 보자. 까짓 여행이 뭐 별거여? 부딪쳐보는게 여행이지......... ㅋㅋㅋㅋㅋㅎㅎㅎㅎㅎㅎ헐헐헐........'
트라브존의 메이단공원에는 거의 사람 실물크기에 달하는 인형에 옷을 입히고 목에 동아줄을 걸어서 교수형에 처하는 모습이 사진처럼 걸려있다. 허리 아래로 무엇인가 써서 붙여놓았기는 했는데, 나가 아는 글자가 아니라서 해독이 불가했다.
IS와 전쟁중이라서 그런 의미인지,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것인지, 이 부근이 유명한 카페촌이다 보니 맛없는 음식을 내놓는 세프는 저 꼴이 될거라는 자신감의 표현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이 유명한 관광지에 해외에서 오는 관광객도 많고 청소년과 어린아이들이 모여드는 공원 광장에, 어찌보면 혐오스러울수 있는 저런 조형물이 버젓이 내걸려 있고, 또 아무도 이를 철거하거나 뭐라하지 않는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었다.
트라브존의 가장 높은 지역인 보즈테페 언덕길을 걸어서 올랐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먼저 (메르하바)라고 인사를 건넨후 말을 걸었다. 여간해서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내가 서서 말을 건네면 그네들도 친절하게 마주서서 무엇이라고 자기네 언어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전해오는 느낌은 있었다.
그래서 많이 걸었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 길에 트라브존 사람들의 모습이, 그곳에 터키인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있었다.
언덕 중간에 만난 빵집 아저씨. 굉장히 친절하다. 터키인들이 주식으로 먹는 이 빵이 실제로 그렇게 큰 은 그때 알게되었다. 엄청 컸다.
내가 궁금해 하자 손을잡아 끌며 안으로 들어가 빵을 내가 직접 만져보게 해주었다. 방을 굽는 오븐도 보여주고 가족들도 소개해 줬다. 내가 블로그를 만들고 있다고 하지 쫓아나와 자기 가계 사진좀 올려달라고 한다. 트라브존에서 제일 맛있고 멋진 빵집을 소개한다.
언덕은 꽤나 가파르고 높았다.
바로 위의 골목사진을 찍으려고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이었다.
골목중간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아래사진의 폴리스 맨이었다. 사진을 찍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면서 '메르하바'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도 같은 말로 대꾸를 하면서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마주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그런데 이 양반 잡은 내손을 놓아주지 않는것이 아닌가. 웃으면서 연실 '뒤로 뒤로 뒤로'를 연발했다. 결국 손을 잡은채 좀 전에 사진을 찍으려 하던 지점까지 되돌아온 꼴이 되었다.
그제서야 손을 놓아주면서 찍던 사진을 마저 찍으라는 것이었다. 그는 영어를 썩 잘했다.
어디서 온 여행객이냐 묻기에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반갑다면서 북한으로 인해서 생겨난 한국의 긴장사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국제사회가 염려해 주는만큼 심각한 사태라는 것에는 공감하고 있으나, 실생활에서는 어느때와 같이 그 긴장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지극히 평온한 상태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대답해 줬다.
그러자 그는 '한국은 터키의 절대적 우방이고 관광객 또한 어느나라보다도 많이 찾아주는 나라인데, 근자에 쿠데타와 Is의 테러에 대한 전쟁선포 등으로 터키 또한 긴장이 고조된 상태다. 그러나 치안에 대한 경게가 강화된 것일 뿐, 실제의 일상은 에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에 한국의 여행객들은 터키의 상황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냐?' 고 묻는다.
'다분히 매스컴에서 다뤄지고 있는 만큼 상당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들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와서 잘 돌아다니고 있지 않는냐. 무장 경찰과 군인들을 많이 만나기는 하지만, 터키 국민들과 여행객들의 표정은 더 없이 차분하고 평화로와 보였다. 돌아가면 터키여행은 그다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많은 사람이 평화와 안녕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더라 전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다시 내 손을 꼭 잡으면서 '꼭 그렇게 전해달라고''자신도 한국을 많이 사랑한다'고 하고는 기다리는 동료와 함께 다른 곳으로 갔다.
이런 만남 때문에 여행은 계속되고 또 다음 여행을 다음 만남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멋진 경찰이었다.
하나하나 모두가 소중한 기억들.........
결코 잊지못할 만남들..........
못다한 만남들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이어서...................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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