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이야기

(알 럽 트래블 / 터키) 길 위에서만나는 아름다운 인연들......

by 피안재 2016. 10. 9.

 

 

 

 

 

 

 

 

 

 

 

 

 

 

 

 

 

 

 

  낯선곳을 여행하면서 갖는 막연한 두려움이나 걱정이 내게는 없다.

  우연히 격게될 무수한 일들과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어떤 설레임 같은 기대가 항상 가슴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미 격었던 일들이나 익숙해진 상황 보다는 낯선 풍경. 낯선 표정. 낯선 환경. 생소한 삶의 이야기와, 책에서나 읽었던 낯선곳에서 벌어진 아주아주 오래된 이야기들이 항상 내가슴을 뛰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것들 때문에 나는 길을 떠난다.

 

 

 

  메이단공원 벤치에서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있을 때였다.

  주변을 살피다가 우연히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긴 길을 나서면 항상 낯선 동양인을 지켜보는 현지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지만 말이다.  누군가가 나를 살피듯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꼬마였다.

  위쪽의 표지사진에 실려있는 꼬마(우측에서 두번째 사내아이) 였다. 초등학교 3학년이나 4학년 쯤 되었을까.

  히잡을 쓴 무슬림엄마가 세자녀를 데리고 공원에 산책을 나온 모양이었다.  그 중 둘째인 사내꼬마녀석이 내 작은 배낭에 붙어있는 태극기를 손으로 가리키며 엄마에게 무엇이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배웠던지 어떤지 분명 태극기와 코리아를 아는 표정이었다.

  장난기가 발동하여 꼬마에게 말을 건넸다.  나는 한국인(꼬레)인데 한국을 아느냐고 물어봤다.  외면하듯 고개를 돌려 엄마만 쳐다보고 있던 녀석이 잠시 뒤에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귀여웠다.

  꼬마녀석 뿐만이 아니라 네가족이 함께있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가족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사진 한 정 찍어도 되겠느냐고 엄마에게 여쭤봤다.  히잡을 쓴 무슬림이기에 좀 조심스러웠는데 의외로 흔쾌히 허락해 주신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돌아앉아 오늘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리니까, 그 꼬마 엄마가 다가오시는 것이 아닌가. 엄마는 영어로 자신의 아이들이 나랑 사진을 찍고 싶어한다고 하신다.  학교에서 한국을 배우긴 했는데 한국사람을 처음 마주대한단다.

  아이들과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엄마가 핸디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내 핸디폰도 건네서 더 찍어달라고 부탁도 했다.

  처음엔 약간 숙스러워 하던 녀석들이 그 찰라같은 짧은 순간에 그새 정이든 것처럼 살갑게 다가와 나란히 선다.

 

 

 

 

 

 

      --- 처음 찍었던 가족사진.

 

 

 

         ------  꼬마의 엄마가 내 핸디폰으로 찍어준 사진.

 

 

 

 

 

 

 

 

  거듭거듭 감사하다고 정중하게 인사를 내게 건네던 엄마가 세꼬마를 데리고 돌아선다.

  '나도 보름 후면 할아버지가 될 터인데.......'  오늘따라 아이들의 모습이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지는데 이대로 그냥 헤어지기가 너무도 아쉬웠다.  그냥 여행의 길위에서 스쳐가듯 잠시 만난것이지만, 이따끔 격었던 이대로 그냥 헤어지기에는 무엇인가 공허하게 생각될 만큼 아쉬운 느낌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꼬마를 불렀다.  의외라는 듯 아주 조금 당혹스런 표정으로 둘째녀석이 다가왔다.

  나는 서둘러 무거운 커다란 배낭을 풀었다.  손을 넣어 보았는데 쉽게 찾어지지가 않는다.  하여 주변의 상황을 의식치 않고 배낭의 옷가지랑 신발이랑 등등의 짐을 벤치에 그대로 꺼내 늘어놓기 시작했다.  배낭 맨 밑바닥의 신발옆에서 마침내 까만 봉다리를 찾았다.  혹시나 여행중에 쓸일이 있을까 하여 다이소에서 천원 이천원짜리 물품을 조금 사서 모아놓았떤 봉지였다.

  막내여동생에겐 동그란 깨지지않는 손거울을, 둘째에겐 만국기가 그려진 스티커를, 첫째에겐 미니수첩을, 엄마에겐 오색실 바늘쌈지를 선물로 건네주었다.  나는 난리 굿을 벌이며 찾아서 건네는데 이 꼬마녀석 도통 받을 생각을 안한다.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냥 마음에 선물이라 해도 눈만 멀뚱히 쳐다보고 있다.  저만치서 이를 지켜보던 엄마가 무엇이라 하자 그제서야 마지못해 내가 건네는 것을 받아든다.

  고맙다는 인사는 엄마가 저만치서 영어로 내게 건네온다.  두 손을 합장하고 인사를 받았다.

  정말 별거 아닌데 그들은 정말 기쁜가보다.  선물을 나눠들고 돌아서서 길을 건너면서도 연실 자꾸 나를 돌아다 본다.  나도 배낭 정리를 다시 하면서 몇번이고 몇번이고 되돌아 보는 그 가족에게 두 손을 모아 합장으로 인사를 하고 또 한다.

  기쁨은 내가 더 컸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어떤 벅찬 감회가 솟구쳐 올라왔다.

  나의 작은 성의가 누군가를 기뻐하게 만들다니........  먼 훗날 혹시 지옥에라도 가게되면 오늘의 사진을 필히 지참하고 있다가 '이런 날도 있었다니까요?' 하며 제시하고 싶을 만큼.....  더 더군다나 새싹처럼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을 방금 목격하지 않았던가.

  이런 만남과 이런 벅찬 기쁨이 가끔씩이라도 거듭거듭 나에게 다가온다면 난 기꺼이 지옥의 문턱까지라도 가 보련다.

 

 

 

  배낭을 메었단 놓았다 공원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모여든 많은 사람들 모습을 보며 시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어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략 한 20여분이 지났을 때 쯤이었다. 분수대에 걸터앉으려 게단을 오르는 내 앞을 가로막는 꼬마가 있었다.  다름아닌 좀 전에 만났던 가족의 첫째 꼬마였다.  정말로 깜짝 놀랐다.  아까 인사를 열번도 넘게 하면서 헤어졌지 않은가.  무슨 일일까?

  소년은 불쑥 나에게 비닐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그리고 몹시 수줍게 나에게 뭐라고 말을 건네오는데..... 내가 아는 언어가 아니었다.

  소년의 표정에서 어떤 전해오는 느낌은 있는데......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가 없는 말이고,  대꾸를 해 줄수가 없으니 답답해 미칠지경이었다.  동시에 형의 뒤에서 다분히 개구장이 같은 둘째가 나타나 뭐라뭐라 말을 하면서 내 팔뚝에 장남감 같은 스템프로 도장을 하나 꾹 찍고 달아나듯이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지금 이 소년에게 내 마음을 표현 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잔뜩 부푼 찐빵 같은 청년이 하나 다가오면서 말했다.

  '아저씨한테 받은 선물이 너무너무 고마워서  저희들도 아저씨에게 뭐 드릴께 없을까 하고 엄마에게 부탁을 했대요.  그 아이가 가지고 있던 약간의 용돈에 엄마가 보태줘서 자기들이 아주아주 좋아하는 축구팀의 양말을 하나 사왔다네요.  또 그 축구팀의 로고가 새겨진 스템프 도장이고요.  작은 선물이지만 받아주셨으면 고맙겠다고 하네요.'

  갑자기 가슴이 콱 막히고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할 말을 잃고 소년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돌아다 봤을때 소년은 저만치 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 뒤로  히잡을 쓴 여인과 두 꼬마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크게 허리숙여 인사를 받았다.

  그 순간의 감동은 지금도 너무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 다시 트라브존 메이단 공원에 가볼 기회가 된다면, 나는 꼬마들 사진을 꼭 가지고 가서 주위에 수소문을 해 볼것이다.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꼭 찾아볼 것이다.

  그 꼬마들이 기쁘게 이을룡 선수가 뛰었었고, 현재 곽현준 선수가 뛰고있는 (트라브존스 클럽)이 터키리그에서 매년 우승했으면 좋겠다.

 

 

 

 

 

 

 

 

 

 

 

 

 

 

 

 

 

 

 

 

 

 

 

 

 

 

 

 

  이스트 잔뜩 머금고 아랫묵에서 푹 부풀어 오른 모습으로 불쑥 나타나 꼬마들과의 중간에서 통역을 해주던 이 고마운 젊은사내.

  이 젊은이도 잊을 수가 없다.

  터키의 가장 북쪽 고산지대에 위치한 차(茶)의 산지 리제 출신으로 이름은 하야, 별명은 미니키 이다.

  상당히 정열적이고 활달한 청년이다.  사회봉사단체에서 일하고 싶은 바램을 가지고 지금은 여기저기서 다양한 일들을 하고있고, 결혼식이나 행사의 사회자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이다.  언젠가는 터키 방송국에서 인기프로 진행을 하겠다 한다.

  스위스 못지않은 터키의 알프스가 바로 (리제)라고, 시간내서 꼭 한번 방문하라고 강력하게 추천을 하면서 핸디폰 사진을 통해 많은 영상을 보여준다.  메이단공원에서 친구와 약속을 했는데 친구가 오는 차편이 길이 막혀 기다리는 중에 우리가 만났다.

  이 친구 한국의 아이돌 그룹에 빠져도 아주 푹 빠졌다.

  나보다 좋은 최신형 삼성 핸디폰으로 k-pop 현재의 인기순위와 걸그룹들의 동영상을 연속해서 보여주는데....... 내가 아는 가수들이 없다.

  이름 마져도 생소하다.

  하야는 '대한민국에서 사는게 얼마나 좋으냐' 면서 다분히 걸그룹을 실컷 볼수 있어서 같은 표정을 짖는데  정작 나는 아는 걸그룹이 없다.

  왜냐면........  올드맨 이니까........

 

  먼 이국땅에서 헤어졌던 동포가 재회하듯이 한참을 둘이서 수다를 떨다보니  마침내 하야의 친구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 친구 또한 걸물이다.

  터키의 전통악기인 A키 카발(kabal) 이라는 우리나라 피리 비슷한 악기를 연주하는 뮤지션인데, 연주단 발표 앨범이 제법 팔렸을 정도로 이곳 트라브존에서는 제법 이름있는 젊은이란다.  곧 개인 앨범도 발매에정이란다.  트라브존을 떠나 이스탄불로 가면 더 유명하게 출세를 할 수 있을텐데 도무지 트라브존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하야의 아쉬움이 짙게 배인 설명이었다.

  그 친구는 한국의 불교명상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친구들이다.

 

 

  그리고는 공원에서 만난 104세의 할아버지와  한국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도 생각이 나고.....

  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온 젊은 사람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

  히잡을 쓴 아내와 유치원 정도의 아들과 함께였는데,  아들이 분수대 마당에서 솟아 오르는 물세례에 빠져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엄마는 아들을 돌보느라....... 모습이 에뻐서 사진을 찍으려 하니  아빠가 흔쾌히 허락해 준다.  그래서 아이랑 엄마 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나중에 가족사진을 찍고싶다고 하자 점잖게 사양을 한다.  느낌에 그 사람의 직업과 어떤 연관이 있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중히 양해를 구하는데 자신의 사진만은 안된다고 오히려 내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자기 아내나 아들의 사진이 잘나오면 E-mail로 보내주지 않겠느냐고 하기에 그러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그에게서 명함을 받았다.  여행 마치고 사진보내주려 명함을 살피다 보니 사우디의 국영기업체 직원으로 '그래서 그랬구나' 싶은 사람이었다.  사진을 보내주었다.

  세련되고 자상하고 배려심 깊었던 사우디의 한 가장......  언제 사우디 리야드 가게되면 이 명함들고 한번 찾아가 봐야겠다.

 

  조지아 트빌리시 대형슈퍼마켓 여직원에게 평생 잊지못할 신세를 졌다.  그런데 정말 아쉽게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 아가씨 이야기는 조지아편에서 다시 할 것이고......

  에레반에서 다시 조지아로 넘어오는 길에 함께 미니버스를 타고 동행한 나라상(일본인). 크리스(필리핀인) 도 기억에 남는다.  이스탄불 공항을 벗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본 동양인이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렇게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만난다.

  그 짧은 인연들이 오래오래 지속될 수는 없을지라도,  단지 살아가는 여정중에 한 순간의 짧은 기억일 뿐이라도 그 한순간 한순간의 추억들은 모두 소중한 것이다.  그 짧은 추억들이 모여서 긴 스토리로 이어지는 것이 인생이 아니겠는가.

  적어도 내 스토리에는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만남들이 무수히 쌓여있고, 또 앞으로 쌓여나갈테니까 말이다.

  그 외에도 기억에 남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예레반 벼룩시장의 화가할아버지들,  내게 히치하이킹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해 준 친절한 아르메니아 남자.......

 

  메이단에서의 기억을 되살려 반가운 모습들을 좀더 만나보고 서서히 터키를 떠나 조지아로 가야할 까보다.

 

 

 

 

 

 

 

 

 

 

 

 

 

 

 

 

 

 

 

 

 

 

 

 

 

 

 

 

 

 

 

 

 

 

 

 

 

 

 

 

 

 

 

  11시간 버스를 타고 가려면 역시나 우선은 배가 든든해야........

  그래서 우아하게 먹었다.  역시 터키식으로 케밥을........

  그런데.......

  그런데도 난.......  길거리표 체질인가보다.  또 갑자기 동남아가 그리워진다.......

  동유럽이 아무리 좋아도 허기가 몰려오면 동남아가 갑자기 그리워진다.  '내 식성은 언제나 습관처럼 싼티를 부른다'

  메트로 사무실로 가니 약속된 정확한 시간에 쎄르비스가 나를 픽업하러 온다.

  세르비스를 타고 해안 언덕길을 달려 오토부스(터미널)로 간다.

  조지아 트빌리시까지 가는 국제 익스프레스 (로얄 클래스 메트로)는 보이지 않는다.  40분이나 남았다.

  터미널을 기웃기웃하며 어슬렁거려 본다.

  미국에서 온 배낭여행자 젊은이와 노닥거리다 (트빌리시 지하철 승차권 카드)도 공짜로 얻는다.  조금 남았을 거란다. ㅎㅎㅎㅎ

  지방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모녀를 만났는데 딸이 예쁘다.  모녀 사진을 찍고 나자 엄마가 나서서 이쁜 우리 딸만 따로 한장 찍어 달랜다.   내가 부탁 하기도 전에 말이다.  딸도 기꺼이 수줍은 미소를 띄워준다.  땡큐다.

  할아버지에게 인사건네니 빵을 반 뚝 잘라서 주신다.  또 땡큐다.

  도심만 벗어나면 인심도 물가도 참 착하다.

  그때 말로만 듯던 버스가 들어왔다.  어마어마 하게 크다.

  화물차도 아닌것이 앞 뒤 바퀴 사이에 바퀴가 하나 더 달려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버스다. (로얄 클래스 메트로)

 

 

 

 

 

 

 

 

 

 

 

 

 

 

 

 

 

 

 

 

 

 

 

  국경을 넘어가는 이 메트로 버스는 우선 크기가 무척 크다.

  그런데 여기서 크다라는 의미는 다분히 객실 아래의 창고(트렁크)가 크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될것 같다.

  왼만한 화물트럭 한대 분량의 화물칸이 버스 아래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국경을 넘는 사람 운송만큼이나,  우리나라의 택배사업이랄까,  화물운송을 통해서 더 짭짤한 수익을 내고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여행객이나 여행객 소지의 물품 보다는 화물이 실리고 또 실렸다.  이중 상당수가 보따리 장사들의 짐이었다.  이는 곧 국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

  버스는 길이도 커서 약 50명을 넘어서는 정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큰 버스가 베트남에서의 야간익스프레스 처럼 간이침대의자가 아니다.  우리나라 고속버스와 비슷한데 쿠션만 좀 보탰다.  야간 장거리 운행인 만큼 좀 누워서 가면 좋겠다 싶었건만,  그냥 고개 숙이고 비실비실 떨면서 자야되는 버스다.  이건 실망이었다.

  국가와 국가를 넘나드는 버스라는데서 가졌던 기대에 비해서는 좀 당혹스러울만치 황당하다.

 

  승차권을 구입할 때 비행기 타는것처럼 여권을 제시하여야 하고(국경을 넘어가니까),  좌석 배정을 받고나면 여기저기 빈자리가 있어도 옮겨 갈 수가 없다.  비행기는 승무원에게 양해를 구하면 바꿔주기도 하는데.......  이 버스는 좌석만은 그대로 지켜야 한다.  왜냐면......  도로사정이 열악하다 보니 혹시나 대형사고가 나면 그 좌석배정 내용에 따라 신원을 파악하기 때문이란다.  뭐 국경 다 넘고 목적지 가까워지면  그때는 옮기던 말던 상관을 안하더라만은.......  중간 중간에 생리현상과 맞춰서 허접한 휴계소 같지 않은 휴계소에 쉬어간다.

  물(생수)는 무한제공 하는데........  11시간이나 타고 가면서 페낭행 버스처럼 밥은 안준다.

 

  터키 트라브존에서 조지아 트빌리시로 가는 국제버스가 예전엔 (metro) 회사 단독이었는데, 지금은 (metro) 외에 (Ulusoy) 회사도 운행하고 있으며,  시간대도 비슷하다.  단 신규진입 회사인 만큼 (Ulusoy)회사의  차량상태와 써비스가 좀 더 좋다는 평이었다.  다음에 혹 가게되면 그때는 (Ulusoy)를 타봐야겠다.

 

  마침내 시간이 되자 육중한 로얄클래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굿.바.이.트.라.브.존.

  37명인가가 탄 버스가 조지아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지나지않아 어둠이 짙게 내렸다.  그리고 빗방울이 오락가락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웃기는거.......  여권까지 제시하고 탄 국제버스가.......  좀 가다가 어느 시골의 허접한 버스승강장에서 멈춰서더니 승객을 태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가다가 멈춰서서 또 태운다.  ㅋㅋㅋㅋㅋㅋ

  뭐 시내버스 정도는 아니지만서도........ 가다 들리고 가다 들리고 하는 직행버스 같은 느낌이랄까........

  한 2시간 지나고 나서 서너번 서서 태운 승객으로 좌석이 다 차고나서야 제대로 달리기 시작한다.

  칠흑같은 터키의 밤을 뚫고 조지아를 향해 달린다.  빗줄기가 거세진다.

 

  그.래.도.국.경.을.넘.나.드.는.국.제.버.스.아.이.가........

 

 

 

 

 

 

  -----------  다음은 조지아편에서.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