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ia) 라는 나라를 아십니까?
- '조지아는 미국 남부에 있지 않습니까? 아틀란타가 주도(州) 아니예요?' 라고 오히려 반문을 해 오기도 한다.
- '아! Jazz 곡 (georgia on mymind)에 나오는 조지아요? 미국에 있잖아요' 라고들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조지아)는 미국의 한 주(州)에 속하는 지역을 말하는 것이고, 나는 (조지아)라는 국가를 말하는 것이다.
흔히 우리 모두가 무심한듯 지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못 이상한 일이 분명히 있다.
미국인을 만나거든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어보시라.
열명중에 한 둘은 '어메리카' 또는 '유에스에이'라고 답을 할 것이다. 그럼 나머지 여덟은 어디에서 왔을까?
'뉴욕' '엘에이' '플로리다' '마이아미' '아리조나' '오하이오' 이렇게 대답을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내 말이 틀리는지......
우리땅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충주' 라고 대답한다. 좀 더 소상하게 '충청북도 충주' 라고도 한다.
그러나 외국땅에서 외국사람이 물어오면 '코리아' 라고 분명하게 대답한다. 그게 정답이니까.
그런데도 미국인들은 왜 그런 뻔한 정답을 모를까?
나는 언뜻 두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하나는, (팍스 어메리카)를 부르짖을 정도로 거대 강대국이다 보니 그나라 국민들 마음속에 우월국가의 자부심이 넘쳐나서 미국과 다른나라를 1:1의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는 일개 주(州)를 다른 한 나라(國)와 비교하는, (팍스 어메리카)의 자부심에서 나오는 표현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들의 마음 저변에는 아직도 흑백 인종갈등 문제만큼이나 남북전쟁 당시의 양키와 비양키 지역에 대한 편견과 앙금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미국이라는 국가이름 보다는, 내가 조상대대로 살아온 남부 미시시피. 남부 오레곤. 남부 텍사스. 등등의 잔존하는 저항의식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혹시 (그루지아)라는 나라를 아십니까?
- 처음 들어보는데요.
- 그거 어디였드라. 저기..... 구 쏘련 어디엔가 있는 식민지 아닙니까?
이 정도면 어느 정도는 맞는 대답이다.
(조지아)는 1991년 구 쏘련연방의 해체와 함께 독립한 동유럽의 신생독립국가이다.
서구식 영어 표현으로는 (조지아)요, 과거 소련의 영향력 아래 있던 지역이나 슬라브 언어권에서 부르는 이름이 바로 (그루지아)인 것이다.
2008년 그루지아는 남오세티아 문제로 러시아와 한판 전쟁을 벌여서 대패했다. 러시아의 무자비한 폭격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항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사태로 그루지아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독립국가연합(CIS)에서 탈퇴했다.
당시 대통령이던 사카슈발리는 적국인 러시아 언어로 자국의 이름이 불리는것 조차도 불쾌하다 하여 국제사회를 향해 (그루지아)의 국가명칭을 (조지아)로 변경해 줄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반응은 냉담했다. 러시아의 영향력이 여전했을뿐더러, 미국에 있는 주(州) 조지아와의 혼동이 예상되기 때문이었다. 모든 국가가 '그건 다분히 너의들의 입장이다'라고 강건너 불보듯 물러서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2011년 동아시아의 한 나라가 외교문서를 통해 (그루지아)의 명칭을 (조지아)로 바꿔 불러주면서 공식 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조지아)의 명칭을 국제사회 속에서 세계최초로 인정해 준 나라....... 바로 (대한민국) 이었다.
한국의 우호적 조치에 조지아는 즉각 응답했다.
비자가 있어야 드나들 수 있는 국가에서 과감하게 비자가 필요 없는 우방으로 격상된 것이다. 어디 그것 뿐이겠는가. 자그만치 노비자로 조지아에서 마음껏 머물 수 있는 체류허가가 장장...... 359일이나 된다. 이는 여행자에겐 어마어마한 혜택이다. 비행기표만 있으면 그냥 무사통과로 들어가서 거의 1년가까이 마냥 머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뒤를 이어 수많은 나라가 국가명칭 변경에 동참했고, 현재의 우리와 같은 노비자 혜택을 30여개국이 누리고 있다.
자유여행자의 천국이 바로 조지아인 것이다.
분명 조지아는 지금 이 순간 자유여행자들로 부터 지구상에서 가장 뜨겁게 사랑받고있는 여행장소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 여행 중심에는 바로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가 있다.
트라브존을 떠나 4시간반을 넘도록 비가 쏟아지는 밤길을 내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멈추어섰다.
창밖을 내다보니 그야말로 차산차해였다. 버스 승용차 화물차들이 좁디좁은 도로위에 서로 맞물리듯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서, 앞으로나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터키 국경에 도착한 것이다.
쏟아붓던 비는 어느정도 잦아들었고, 경찰과 사람들이 몰려들어 막힌 도로를 뚫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마치 어느 분쟁지역의 전쟁을 피해 죽기살기로 국경으로 몰려든 난민들의 실황을 TV 영상에 보여주던 모습이 그대로 재연되고 있었다.
제법 시간이 걸리고 나서야 버스는 비로소 국경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섰다.
티키의 국경 출국장을 저만치 앞에두고서 나를 비롯한 모든 승객은 자신이 휴대한 물품들을 모두 챙겨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나도 무거운 배낭을 걸머메고 작은 배낭을 손에 들고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는 국경초소에서 내렸다. 모두가 걸어서 직접 국경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이다. 안내표지판을 따라 터키 출국심사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뿔싸..........
자정을 막 넘어서고 있는 터키 출국심사대 앞이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적어도 삼백명을 족히 넘고, 사백명은 안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넒고 길게 늘어서서 출국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국심사가 분명 진행은 되고 있었는데,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엄청나게 시간을 소요하고 있었다. 얼추 이런 진행이라면 날이새기 전에 출국장을 빠져나가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일 정도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성들이었고, 휴대한 짐들도 아주 간편한 정도라서 여행객으로 보이지는 않고...... 흡사 어디 공장이나 부두에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 신분 체크하는 모습 같았다. 그런데도 출국 심사는 대단히 까다로와 보였다.
어쩔 수 없어서 그 무리들 뒤에 줄을 섰다. 내 앞뒤로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시간이 걸려 겨우 서너걸음 나아갔을 때, 저지선 패널 밖에 있던 제복차림의 국경검문소 직원이 나를 불렀다. 작은 배낭의 태극기를 본 모양이었다.
- 어디서 오셨습니까?
- 아임 꼬레.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습니다.
- 이디 가시는 중입니까?
- 조지아 트빌리시에 가는 중입니다. 조지아 여행을 하고 다시 터키로 돌아올 에정입니다. 귀국 비행기편이 이스탄불 출발이거든요.
- 비지니스도 하십니까?
- 아닙니다. 여행..... 순수 자유여행자입니다.
- 일행이 있으십니까? 몇 분이나 되십니까?
- 저는 혼자 여행하고 있습니다. 트라브존에서 트빌리시로 국제 익스프레스를 타고 가다보니 여기 주위에 함께 버스를 타고온 이 분들이 일행이라면 일행이겠지요. 다 함께 다시 버스를 타야하니까요.
- 이쪽으로 되돌아 나오십시요. 함께 버스를 타고 오신 분들도 이쪽으로 나오십시요.
우리는 서있던 줄에서 이탈하여 오히려 뒤로 돌아서 가이드 라인 밖으로 나섰다. 대략 십서너명쯤 되었다.
검문소 직원은 우리를 접근제한선 밖으로 인솔하여 출국심사대 부스가 있는 옆까지 안내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원을 통제하던 다른 직원에게 뭐라고 하자, 진행하던 통로를 막고서는 우리 일행에게 출국심사의 우선권을 주는 것이었다.
우리 일행의 출국심사는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대충 여권에 스탬프 도장만 찍어주는 요식행위에 그치는 정도였다.
심사대에 들어서는 나에게 그 검문소직원이 말했다.
- 지난해 가을에 아내와 한국여행을 했습니다. 아주 인상 깊은 나라였고, 친절한 한국인들에게 여러가지로 도움을 많이 받았었습니다. 부디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시기를.........
- 고맙습니다. 신께서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 인샬라.
그 분에게 인상적인 친절을 베푼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라나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태극기를 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뜻밖의 고마운 경험을 또 하게되는 것이다. 어찌 이 순간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나는 내 조국을 사랑하고 있는 당당한 한국인이다.
어느 순간 어느곳에서든지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또 대한민국의 얼굴에 먹칠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작은 배낭에 태극기를 단 것이었는데 말이다........
배낭을 메고 사람들의 짐을 들어주기도 하고 밀어주기도 하면서 약 500여 미터에 달하는 국경지대를 통과하자 저만치 조지아의 입국 심사대가 보인다.
터키의 경우에 비교하자면 조지아의 입출국은 대단히 자유스럽고 너그러운 편이었다. 이것은 다음에 아르메니아를 다녀올때도 같은 느낌을 받게된다.
- 감마르조밧(안녕하세요)
사전에 공부해 둔 서툰 조지아어로 인사를 먼저 건네자 입국심사담당자는 멋적게 씨익 웃으며 쾅하고 여권에 도장을 찍어준다.
- 마들로바(감사합니다)
여권을 받아들고 입국심사대를 가볍게 통과했다.
출입국심사 담당자가 날보고 웃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해외여행에서 우리나라 심사담당자부터 세계 모든나라의 담당자까지 웃어주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지. 그 나라의 첫 얼굴이지만 가장 중요한 국제법에 준한 자국의 법률적 잣대를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들이대는 사람이 바로 그들인 것이다. 하여 서슬 시퍼렇게 근엄한 표정을 넘어서 저승 문턱을 지키고선 검찰수사관 같은 표정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출입국 심사에서 그들이 웃는 모습을 참 자주 본다. 내가 잘생겨서 인지 웃기게 생겨서인지는 잘모르겠지만 말이다. 이건 정말이다.
세관심사도 대충 통과되는 기분이 들었다. 너그러운것인지 개방적인 것인지...... 조지아에 비하면 대한민국 출입국 심사는 가히 검찰조사 수준이라 하겠다.
사람들이 터키에서 조지아 국경 통과하는데 순조로우면 대략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채 40분이 안걸려서 우리는 조지아 영토의 너른 국경검문소 광장에 도착했다.
자정을 넘긴 조지아 국경 광장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우리처럼 걸어서 국경을 통과해 타고 온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이고, 승용차나 미니버스나 화물차를 타고 온 사람들도 운전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걸어서 국경통과를 해야하기에 사람 찾으랴 차를 찾으랴 그야말로 나장판을 방불케 했다. 거기다 여기 국경에서 다른 도시까지 사람을 태우려 몰려든 택시와 미니버스 기사들의 호객행위까지 더해져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연실 다가와서 '택시' '택시' 하는 삐끼 때문에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또한 묘하게도 인간의 생존본능 때문인지, 함께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묘하게도 한 곳으로 모두 모여들고 있다. 참 신기하다.
몇몇 분식점도 열었고, 가장 많은 것은 환전소랑 렌트카사무실이었다. 모두가 24간 영업이 기본인 모양이다.
터키로 다시 돌아갈 형편이라 터키 리라는 지갑의 한쪽으로 몰아놓고, 비슷한 이름의 조지아 화페 라리로 아주 조금만 환전을 했다. 주점부리나 급하게 쓸 일이 생길까봐 국경을 감안해 소액환전을 했다.
빗방울은 멈췄다 떨어졌다를 반복하고 국경 특유의 스산한 바람은 사정없이 불어오고.........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국경초소의 버스출구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오매불망 우리의 로얄 클래스 메트로는 깜깜 무소식.
국경에서의 일이라는 것이 보통의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달리 아무런 할 일이나 방법이 없다.
하늘이 다 알아서 하려니 하고..... 순리에 따르듯이....... 그냥 마냥 기다리는 방법 밖에는........
어쩌면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사람에게도 달리 뾰족한 방법이 있을거라 생각되지도 않았다.
내가 환전을 마친 시점에서 부터 거의 1시간을 다 채웠을 즈음이 되어서야 마침내 우리의 메트로 버스가 초소에 모습을 나타냈다.
얼마나 기다림에 사무쳤었는지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러댔다.
부랴부랴 버스에 승차를 하고 출발을 기대했는데....... 또 아뿔싸..........
저쪽 국경에 내려준 인원과 국경 이쪽에서 다시 태운 인원 사이에 2명이 차이가 났다. 즉각 사태와 신원파악에 나섰는데...... 그 중 한명이 바로 여기까지 나와 같은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온 48세의 조지아 남자였다. 다른 한사람은 모르겠다.
나와 함께 온 사람은 조지아 바투미 남자였다. 사흘전에 터키에 건너가 지인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었다. 약간의 대화를 통해서 꽤나 건실한 사내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에는 나보고 자신을 따라오기만 하면 국경통과는 어려울것이 없다고 하더니 인파에 쓸려 어디론가 사라졌었는데.......... 오히려 지금 나는 쉽게 국경을 통과하고 버스에 올랐는데 그는 아직도 도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태를 파악한 안내원(여자)과 보조운전기사(남자)가 국경 사무소로 달려갔다.
한 20여분 지나서 그들이 돌아와 핸디폰으로 어디론가 통화를 하고 나서 버스는 그대로 출발을 했다.
잠시 후, 상황 설명을 하는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한명은 터키측 출국심사에서, 한명은 조지아 입국심사에서 제지를 당한 상태라했다.
당사자들이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을 할 것이고, 해결이 되면 2시간 뒤에 오는 다음 버스편에 탈 것이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해당 국가의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연락해서 국제법에 준해서 조치가 될것이란다. 그 이상은 누구도 알 수가 없단다.
새벽 2시를 넘어서 버스는 다시 출발을 했다.
이때부터 약 3시간 가까이 어쩌다 지나치는 챠량의 불빛말고는 그 어떤 불빛도 볼 수가 없었다.
분명 터키 트라브존에서 조지아 트빌리시까지를 잇는 국제운송 노선이 분명했다.
헤드라이트에 비친 노면은 최근에 포장을 한 아스팔트 왕복 2차선 도로였다. 가운데로 분명하게 흰색 실선이 그러져 있다. 그런데 가드레일이 어디에도 없다. 어설픈 아우토반이다. 우리나라 고급외제차 폭주족들은 이곳으로 가라. 한적하다 못해 적막한 도로가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3시간 가까이 어디에도 불빛이 없다. 가로등도 없다. 주유소도 없다. 불을 밝힌 도시도 없다.
한 40KM 마다 하나쯤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아니면 어쩌다 갈라서는 교차로쯤에 아주 간단한 표지판 정도이다.
어떻게 말로는 더 이상 이런 묘한 분위기를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굳이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나라 70년대 이전의 새마을사업 막 시작하기 전의 시점에 도로만 포장이 된 상태라 할까?
그런데 버스는 이런 도로를 막힘없이 달린다.
도대체 무얼 보고 무엇을 근거로 어디로 가는지 슬슬 불안해질 정도로....... 버스에 내비게이션도 당연히 없다. 그래도 버스는 달린다.
중간에 산억덕길에 딱 한번 섰다.
휴계소라고 화장실 가라고...... 네온사인 간판 당연히 없다. 백열전구 대여섯개 켜진 포장마차 정도였다.
기차가 지나갔다.
고개를 앞으로 팍 숙인 전방 외눈 헤드라이트는 있다. 그런데 기차가 산골짜기 저 깊숙히 사라질때까지 기타의 어떤 불빛도 없다. 맨 뒤 차장실 꼬치불 하나 없다. 완전히 2차대전때 적의 공습을 피해 야간에 몰래 숨어서 가던 기차의 폼새 딱 그모양이다.
새벽이 되어서 채 날이 밝기전에 버스가 멈춰섰다.
세갈래 길이었다. 어디에도 인가가 없었다.
칠흙같은 어둠속에 버스가 멈춰 서고 서너 사람이 내렸는데..... 창밖을 살피니 낡은 구소련식 승용차 두대가 사람을 마중하러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버스는 출발하고 한참을 가다 처음 만난 주유소(매우 허접)에서 또 사람을 내려주고........
날이 밝아지면서 산맥을 넘어서자 비로서 산자락과 중턱에 시골 농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로소 마을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런 허름하고 왜소한 마을들을 지나 하염없이 달리다 보니 이번엔 초원과 평원이 나타났다.
이때부터는 대단히 놀라운 풍광이 펼쳐졌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평원을 달리다 보니 도로도 여기저기 나타나고 커다란 마을도 나타나고 표지판들도 여기저기 자주 나타났다.
놀라운 풍광들에 한참을 감탄하고 있을 때, 마침내 어디선가 낯익은 듯한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제서야 우리가 살고있는 오늘날의 한국의 중소도시 같은 느낌이랄까?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무려 14시간 가까이 걸려서 트빌리시에 도착하는 순간이었다.
트빌리시는 아름답고 현대적인 모습을 가진 역동적인 조지아의 수도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면서 바라본 조지아의 모습은 전혀 현대적이지 못했다. 대단히 놀라운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적어도 한세대 이전의.... 아니 훌쩍 그 이전의 모습이었다.
그런 내용들은 차차 또 거론하게 되겠지만........
많은 과정들을 과감히 생략하고.......
마침내 나는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 도착을 했다.
메트로 로얄 클래스가 마침내 (오르촬라 터미널)에 멈춰선 것이다.
나는 서둘러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풀어헤쳐 카메라 부터 챙겼다. 비도 오고 국경을 넘느라 귀한 카메라를 배낭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터라 오면서 사진을 하나도 찍지 못한 때문이었다. 배낭을 다시 둘러메고, 이곳까지 함께 우여곡절을 격으며 달려온 동지들과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그리곤 다시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트빌리시의 옛 향기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올드시티를 향해서...........
걷다보면 처음 이런 풍경이 나타난다.
마침내 도착한 여기가 바로 트빌리시인 것이다.
국경을 넘어서 조지아에 첫발을 내딛던 그 처음의 순간에........
톡 톡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려고 하늘을 올려다 보던 그 순간에 나는 국경 검문소 위로 바람에 나부끼는 커다란 조지아 국기를 보았다.
하얀바탕에 커다랗게 빨간십자가가 그려져있으니 흡사 스위스국기를 닮았다싶지만, 조지아 국기에는 그 십자가의 가름으로 생겨난 네군데 여백에 다시 빨간 작은 십자가 네개가 그려져있다. 기독교 국가인 조지아의 역사를 이미 나는 어느정도 알고 찾아갔던 때문이었을까?
어떤 알수없는 감흥이 북받쳐 올라왔다.
' 아! 내가 마침내 오기는 왔구나. 조지아에.......................'
그때.......
아무 이유없이 불현듯 더오르는 노래가 하나 있었다.
'그대 없이는......... 그대 없이는....... 그대 없이는........ 그대 없이는............ '
그 노래의 가사가 분명히 가슴 깊이 간직한 (연인)에 대한 노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에 불현듯 떠오른 그 노래속의 (그대)는 (연인)이 아닌 (신:창조주)에게 무엇인가를 하소연하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밤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싸늘한 한기를 느끼면서 나는 조용히 혼자 그 노래가사를 읊조리고 또 흥얼거렸다.
왜 였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버스가 출발하면서 나는 작은 배낭에서 이어폰과 핸디폰을 꺼내 그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이번 나의 조지아 여행은 온전히 그 노래와 함께였다.
그 노래는 바로 <U2>의 (with or without you) 였다.
나의 여행기 이번 조지아편을 읽어주시는 분이시라면, 함께 보노가 신에게 애절하게 하소연하는 노래도 한번 들어봐 주십사 권하고 싶다.
이번만은 (연인)이 아닌 (절대자)에게 호소하는 느낌으로 말이다.
See the stone set in your eyes
돌같이 굳어진 당신의 눈을 봅니다
See the thorn twist in your side
당신의 허리에 휘감긴 가시덤불을 봅니다
I wait for you
나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Sleight of hand and twist of fate
교활한 속임수와 운명의 어긋남이
on a bed of nails she makes me wait
내겐 마치 형틀에 묶여있는 듯한 고통입니다
And I wait without you
당신 없이 나는 여기서 기다립니다
With or without you
당신 없이 혹은 당신과 함께
With or without you
당신 없이 혹은 당신과 함께
Through the storm we reach the shore
폭풍을 헤치고 우리는 해변에 도착합니다
You give it all but I want more
당신은 모든 것을 다 주지만 나는 더 원합니다
And Im waiting for you
그리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With or without you
당신 없이도 당신과 함께도
With or without you
아아, 당신 없이도 당신과 함께도
I cant live
나는 살 수가 없습니다
With or without you
당신 없이도 당신과 함께도
And you give yourself away
그리고 당신은 스스로를 드러냅니다
And you give yourself away
그리고 당신은 스스로를 드러냅니다
And you give
And you give
And you give yourself away
그리고 당신은 스스로를 드러냅니다
My hands are tied
내 두 손은 묶이고
My body bruised,
내 온몸은 갈갈이 찢겼습니다
shes got me with
운명은 더 이상 나를
Nothing to win and
Nothing left to lose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상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And you give yourself away
그리고 당신은 스스로를 드러냅니다
And you give yourself away
그리고 당신은 스스로를 드러냅니다
And you give
And you give
And you give yourself away
그리고 당신은 스스로를 드러냅니다
With or without you
당신 없이도 당신과 함께도
With or without you
아아, 당신 없이도 당신과 함께도
I cant live
나는 살 수가 없습니다
With or without you
당신 없이도 당신과 함께도
With or without you
당신 없이도 당신과 함께도
With or without you
아아, 당신 없이도 당신과 함께도
I cant live
나는 살 수가 없습니다
With or without you
당신 없이도 당신과 함께도
With or without you
당신 없이도 당신과 함께도
---- 다음편에서는 아름다운 트빌리시를 좀 더 소상하게 안내해 드립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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