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해변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베트남 최고의 휴양도시 나짱.
예상보다 1시간여를 단축해 아침 5시를 조금 넘어서면서 나짱 비치에서 한 불럭 떨어진 신 투어리스트 앞에 도착했다. 이제 여기에서 다시 슬리핑버스를 갈아타고 5시간을 더 달려야 목적지 무이네에 도착한다. 버스 출발시간이 7시. 그러니까 2시간에 가까운 여유 시간이 예정에도 없다가 갑자기 생긴 것이다.
투어사무실에 주저앉아 쉬고 있는 다른 여행객들과 달리 나는 잽싸게 지도를 펼쳐든다. 현 위치를 파악하고 나니 뜻밖에(어처구니가 없다고 해야하나) 해변이 불과 300m 정도밖에 안 떨어져있네?
배낭을 맡겨놓고 부리나케 해변을 향해 달려간다.
와!
일출이다.
이 멀고도 먼 나짱에 와서 마침내 제대로 된 베트남의 일출을 보게 되었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정말로 미치고 환장할 정도로 그렇게 너무나 멋지다.
거기에 그보다 더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기까지 한 더더욱 멋진 것은 새벽에 떠오르는 눈부신 햇살을 바다 속에서 맞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새벽 바다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보는 여기 이 말도 안 되는 씨츄에이션?
한국에서 내가 저녁바다는 들어가 보았어도 새벽바다는 들어가 보지를 못했다. 새벽바다의 쌀쌀함이란 결코 만만치기 않았기 때문이다.
남녀 불문 애에서 어른까지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새벽바다에 풍덩 풍덩이다.
조기 축구나 조기 배드민턴. 조기수영장이 아니다. 오리지널 조기 바다수영이다.
헐.
화교 문화권에서 흔하게 보는 공원에 모여서 하는 태극권 체조와 에어로빅 댄스를 하는 무리도 보인다. 조깅을 하는 사람과 일출을 보러 나온 여행객들도 많이 보인다.
현지인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에 5L 짜리 생수병 2개씩을 달고 나온 사람이 제법 많다. 바다수영을 마치고 나와서 생수병으로 그 자리에서 서서 대충의 샤워를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너무도 낯설고 생뚱맞은 광경.
바다구경이 슬슬 지겨워질 때 돌아오는 대로변 노상에서 마주친 길거리표 쌀국수 가계. 바로 그 거랑말코를 만나 쌀국수 맛있게 먹는 법을 전수 받은....... 베트남에서 최고로 맛있는 길거리표 쌀국수 바로 그곳이었다.
내가 다시 베트남에 간다면 나짱에 반듯이 가야하겠고, 나짱에 가는 최고의 이유는 바로 그 노점 쌀국수가 그리워서 일것이다.
새 보딩패스를 받고 시간 맞춰 온 무이네 행 버스에 마침내 올랐다.
아! 무이네.
나짱은 흡사 우리나라 부산 해운대다.
마지막 사진의 저 언덕길 아래 바닷가 마을이 바로 무이네다.
나짱에서 무이네에 이르는 5시간의 버스여행은 너무나도 멋진 드라이브였다. 상상부분은 해안을 끼고 달리는 낭만의 코스였고, 들판과 산을 넘는 고갯길도 그때마다 각기다른 멋진 풍광을 선물해주었다. 누구에게나 한 번 권하고 싶은 드라이브 코스였다.
무이네(Mui Ne0)
호이안에서 나짱까지 장장 11시간의 버스여행. 그리고 나짱에서 선택할 수 있는 코스로 4시간 거리의 달랏, 5시간 거리의 무이네.
달랏은 우리나라의 태백시 처럼 고산지대에 위치해 선선하면서 빼난난 명승지와 폭포등을 가지고 있어서 베트남 현지인들의 사랑받는 휴양지요 최고의 신혼여행지였다. 그러한 매리트가 충분히 있음에도 내가 기어코 무이네를 택한 것은 단 하나의 이유였다. 사막.
나에겐 아주 어릴 때부터 사막에 대한 묘한 로망이 가슴속에 가득 채워져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시작된 나의 사막에 대한 로망은 (바람과 라이온)의 숀 코널리에 의해서 각인되다시피 했다. 그래서 모로코 라는 나라를 기억하게 되었고, 지금도 모로코 여행에 대해 어떤 간절함에 가슴앓이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던 중에 나를 아주 사막이라는 벗어날 수 없는 늪에 빠트린 결정적인 것은 바로 일본 NHK 방송에서 제작한 (실크로드)였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밤을 중국 서안에서 출발해 돈황을 거쳐 파미르 고원을 넘고 마침내 이스탄불에 도착하는 실크로드 탐험의 꿈을 수천번은 꾸었던것 같다. 그런데 이젠 나이도 들고 체력도 예전같지를 않아 실크로드 탐험은 무린 듯 싶고, 모로코에서 붉은사막 사하라를 만나보고 싶다.
그래서 무이네를 선택했다.
붉은사막과 하얀모래의 사막을 만나보고자 했다.
하여 어쩌고저쩌고 일단 무이네에 도착은 하였는데..........
아뿔사. 무이네의 짧은 여정은 온통 우여곡절 투성이였다. 파란만장한 무이네에서의 1박2일.
무이네에 도착하면서 부터 이미 파란은 시작되고 있었다.
무이네에서의 첫번째 고난은 숙소문제였다.
여행지도 갑자기 택해서 무작정 16시간 버스를 타고 온 처지에 에약된 호텔의 바우처가 내 수중에 있을리가 만무했다.
떠나오기 전 무이네의 지낼만한 숙소 주소를 3근데 메모해 왔는지라, 무이네에 도착하기던 버스안에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왠지 느낌이 좋은 마리나 호텔을 점 찍었다. 처음 검색했을 때 그리 멀지 않았던 흐린 기억도 있고해서 수월하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징검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란 속담이 생각나 길을 물어보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며 여행사며 호객행위가 기승을 떠는데, 신투어 사무실 바로 길건너에서 여행안내와 가이드와 오토바이 대여를 해주는 젊은 사내가 그중 만만해 보여서 다가가 길을 물었다. 그 젊은이 영어를 썩 잘했다. 친절하게 그리 멀지 않다고 했다. 2km정도의 거리가 된다고 했다. 그날이 그해들어 가장 더운날씨라는데 늘어선 오토바이택시중 아무거나 골라서 태워달라면 금방 데려다 줄거란다. 그래서 좀 걷겠다고 하고 감사를 표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악몽이 시작되었다.
그날....... 정말 정말 더웠다. 그날따라 왜 그렇게 배낭도 무거운지...........
쥐어짜면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릴 정도로 흠뻑 젖어서 걷고 또 걸었는데, 딴에는 주변을 이잡듯이 샅샅이 뒤지며 걸어왔는데, 어디에도 마리나 호텔은 보이지 않았다. 이사람 저사람 붙잡고 길을 물어보는데 영어가 통하는 현지인 단 한 명도 없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멋적게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같은 여행객을 븥잡아보니 갸나 나나 여기서는 길치. 슬슬 힘겨울 정도의 상황도 지나가고 있었다.
분명 2km 정도라 들었는데 3km 도 더 지나온것 같다. 학교에서 파하고 귀가하는 학생들이 보인다. 아주 작고 썰렁한 학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다. 이건 아니다. 뭔가가 잘못되었다.'
주저앉고 싶은 심정을 달래며 발걸음을 되돌렸다. 일단은 처음으로 돌아가자. 돌아가면서 다시 찾아보자. 그래도 상당히 젊잖아 보였는데 그에게 돌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안되겠다 싶으면 마리나 호텔을 포기하고 신투어 사무실 근처에 나름 괜찮은 호텔를 추천해 달라고 하자. 어차피 돌아갈 때 그곳으로 다시 가야만 하니까.........
돌아가는 심정은 막막하기만 하고, 발걸음은 천근만근인데....... 얄미운 택시와 오토바이 호객행위는 더욱 극성을 떤다. 짜증이 난다.
'갸**들아. 난 죽어도 너거들거 안타.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죽었다 깨어나도 난 굴복 안하는 한국인이어........'
어쩌다 영어를 조금 하는 현지인을 만났다. 내가 마리나 호텔을 찾는다니까, 방금 되돌아온 방향을 가리키며 (파 어웨이. 쏘우 파 어웨이) 한다. 그래서 얼마나 하고 물었더니 한 25km 가야 한단다. 시방 야가 나 죽일려고 작정했나보다. 안 들은것으로 치자. ㅁㅌㅁㅌ.
어째어째 죽을똥살똥해서 처음 위치로 돌아갔다.
가계앞에 앉아있다 나를 발견한 그 젊은 가이드가 놀라운 표정으로 쫓아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냔다.
그래서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가다보니까 학교가 나오더라고........
다짜고짜 옆에있던 오토바이에 올라타더니 나보고 뒤에 올라 타란다. 나를 데려다 준단다. 무이네를 찾은 고마운 여행객이니 공짜로........
헐.(글쎄. 여행다니다 보면 이런 고마운 사람도 만난다니까........)
그런 수고 할 것 없이 그냥 여기 근처에 좋은 곳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어떻게 마리나를 찾게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곳이 자기가 추천해주고 싶을만큼 조용하고 훌륭한 곳' 이라고 한다. 어서 타란다.
그래서 내가 다시 그를 잡아 당겼다.
'내가 여기 올 때는 유명한데는 다 돌아다니려고 왔는데....... 나는 여행사 투어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거든. 내가 다 찾아다니려고 생각했어. 그러자니 사실은 오토바이 렌트가 필요했어. 숙소를 찾으면 샤워하고 오토바이 빌리러 나오려고 했던거야. 그러니까 너가 지금 나에게 오토바이 하나를 빌려줘. 그리고 나서 안내를 해주면 내가 오토바이 타고 따라갈께.' 그가 흔쾌히 오 케이 했다.
24시간에 5$를 지불했다.
그리고 나서 금방........ 아주 금방 걸려서 호텔에 도착했다.
조금 전에 내가 두 번이나 지나치면서도 찾지못했던 골목 안쪽 깊숙히 자리한 조그만한 호텔이었다.
그는 골목에서 호텔 위치만 가르쳐주곤 쏜살같이 사라져 갔다. 정말 오늘 커다란 구은을 입었다. 멋진 젊은이였다.
호텔에 들아가 방이 있느냐 물었다. 후런트에 있던 아주아주 깔끔하고 교양있어 보이던 젊은 처자가 너무도 친절하게 대해준다. 내 표정을 보자마자 신께서 내려주시는 생명수 같은 아이스 티 부터 한 진 건네준다.
그리고 친절하게 2층의 방 하나를 소개해주었다. 깔끔하고 테라스가 있는 방인데 조금 작은 느낌이 들었다. 뭐 그만하면 감지덕지 할 그런 상황이었는데, 친절한 안내가 너무도 부담이 없어서 그냥 지나는 말처럼 다른 방도 보여줄 수 있겠느냐? 약간 엎그레이드라도 좋겠다고 하자........... 역시나 친절하게 새로운 방을 보여주겠는데 2$가 올라간단다. 안내해 주는 곳은 1층이었다. 그래서 속으론 '보기만 하고 그냥 2층을 하면 되지 뭐' 하는 맘이었다. 그런데 절대 아니었다. 새로운 방을 보자마자 나는 금새 맘을 바꾸었다.
이럴려고 내가 그 쌩고생을 했구나!
정말 마음에 쏙 드는 방이었다.
넓었다. 침대도 더블 침대 2개를 붙여놓아 족히 5명이 자도 넉넉할 정도였다. 물론 건물 자체나 가재도구들은 많이 낡았다. 하지만 꾸준히 정성껏 관리해온 손길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번 여행중 이용한 호텔의 방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방의 가재도구 배열이나 벽변의 화초를 매달아 놓은 인테리어까지 정말 정성스런 손길이 많이 간 그런 방이었다. 더구나 방 앞이 바로 풀장이었다. 작은 풀장이지만 거의 내 전용 풀장 느낌이었다.
이번 여행기 프롤로그에서도 이 호텔 이야기를 꺼내면서 가격을 나중에 가르쳐 준다고 했었으니 암시를 준다면.......... 2층 테라스 방이 16$ 이었다. 거기에 2$을 엎그레이드 비용으로 추가했다. 그럼 얼마였을까?
그럼 이 방은 어떻게 생겼을까?
한국에서였다면 당연히 15만원 이상은 불렀을 방값이 달랑 18$.(세금. 봉사료 포함)
ㅋㅋㅋㅋ
미티미티.
나의 짐정리는 항상 깔끔한 편이다. 이게 평생 (엄처시하 죄불안석) 하며 챠밍에게서 배운거다. 이거 대충하면 어청난 페널티가 따라온다. 이런면은 지덜 엄마를 닮아서인지 아들은 나보다 더 고수다. 평상시 가정교육이 중요한 이유!
짐 정리를 마치자마자 풀장으로 뛰어든다.
힘들고 지친다는거....... 뭐 있어?
힘들면 차라리 그 힘이 든다는 것을 즐겨라.
지치면 지친대로 또 그것을 즐겨라.
즐기는 것도 지쳐갈 때쯤 풀장에서 나와 골목을 빠져나가 허름한 식당에서 또 쌀국수에 맥주를 마신다.
호텔 뒷편으로 비치에 나가니 무이네의 멋진 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파도가 장난이 아니다.
무이네는 나짱처럼 해변이 아름답고 물놀이 하기 좋아서 유명한 곳이 절대로 아니다. 무이네의 해변은 사실 별 볼일이 하나도 없다.
야자수 늘어서고 푸른 바다가 펼쳐진 것은 맞지만, 7km 이상 길게 펼쳐진 해변은 백사장이 유난히 짧고 모래사장의 질 또한 볼품 없어서 해변휴양지라고 하기에는 뭔가 좀 그렇다. 그런 무이네가 유명해 진것은 오로지 사막 때문이다.
무이네에서 볼 것은 딱 4가지 뿐이다.
붉은 모래 사막인 (레드 샌드 듄), 하얀 모래 사막인 (화이트 샌드 듄), 그리고 (요정의 샘물) 이라는 계곡과 실제 대부분의 이곳 주민 생활터전인 어촌마을 뿐이다. 해변물놀이와는 아주 거리가 먼 무이네인 것이다.
통상적인 남국의 해변 모습을 한 무이네 해변을 거닐어 본다. 그런데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정말로 태풍이 막 상륙하기 직전의 표정이다.
여기 무이네가 베트남에서 유명한 것으로는, 가장 건조하고 바람이 심하게 많이 부는 곳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리고 베트남 전체에서 강수량이 가장 적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이런 2가지 이유가 바로 이곳에 사막(듄)을 생성시킨 주요 요인이라 보면 되겠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희귀하고 아름다운 사막(듄)을 가진 아주 작은 어촌마을인 무이네가 얼마전부터 아주 각광을 받는 유명 관광지로 탈바꿈하는 근본 이유이기도 하겠다.
무이네 여행사 투어도 오로지 딱 한가지 뿐이다. 새벽에 출발하는 일출 투어나, 오후에 출발하는 일몰 투어로 걸리는 시간이나 코스도 똑 같은 오로지 한가지 뿐이다.
화이트 샌드에서 일출을 보고 레드샌드와 요정의 샘물을 거쳐 어촌마을을 구경하는 것으로, 역순으로 진행하면 일몰투어가 되는 것이다.
익히 모든것을 알고 왔기에 직접 찾아다니려고 오토바이까지 렌탈을 해놓은 처지이고 보면, 일단은............ 가....... 봐야지...... 워.
부르릉..... 부르릉......... 붕... 붕.
출발!
무이네는 해변을 따라 약 7km에서 10km에 이르게 길게길게 늘어선 소박한 어촌마을이다.
전혀 정돈되지 않은 골목길 같은 비포장 길이 남북으로 해안선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고, 해변쪽으로 주로 비치호텔이나 식당들이 늘어서고 길 반대편으로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형태의 아주 작고 허름한 시골마을 같은 분위기 이다. 해안만 아니라면 어디 강원도 산골 면소재지 같은 분위기이다.
주도로인 마을을 남북으로 길게 관통하는 노면이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을 따라 북쪽으로 약 2km쯤 달렸을 때 였다.
앗.
경찰이다. 경찰이 길을 가로막고 검문을 하고 있었다.
도로한켠으로 열서너대의 빈 오토바이들이 서있고, 당장 눈 앞에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네대의 오토바이가 붙잡혀 있다.
음주 단속인가? 점심에 마신 맥주 한병이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
순경이 쫓아나와 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오 마이 갓. 베트남 여행의 최대 위기. 경찰에게 붙잡혔다.)
라이센스를 제시하란다. 마침 룩색에 넣어왔으니 꺼내 보여주겠다는데, 이 젊은 경찰 영어도 못하면서 그냥 라이센스만 외치며 다그친다.
내가 손에 라이센스(국제운전면허증)을 꺼내들자 무례하고 험악하기만 하던 젊은 경찰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다. 그러더니 한곳을 가리켰다. 저만치 파라솔이 놓였고 나이 지긋안 경찰 두 명이 앉아 있는데 그리고 가라는 말이었다. 가면서 보니 젊은 여행객들로 한명은 중국계 같아보이고 나머지 여섯은 러시아계통으로 보였는데,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그래도 자기나라를 찾아 준 해외여행객인데 이건 완전히 강력범죄자를 현장에서 체포한 것처럼 죄인취급이다. 눈쌀은 저절로 찌프려지고 속으로 욕설이 터져나오는데...... 당장은 나도 걱정이었다.
파라솔에 앉아있는 나이든 경찰 둘은 영어를 제법했다.
나의 라이센스를 받아들고 살피더니만, 이내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나도 이미 충분히 에견하고 있는 문제였다.
나의 라이센스를 자동차를 운전하기 위한 면허였지, 오토바이를 타기 위한 원동기 면허가 아니었다.
첫번째 칸이 원동기 면허고, 두번째 칸이 1종 면허고, 세번째 칸이 대형차량 면허인데 나는 두번째 칸에만 도장이 찍혔지 첫번재 칸에는 도장이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여기서 빠져나가지? 이건 마치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선 것 같은 느낌으로 전신을 긴장감속으로 파고들게했다.
경찰은 낡은 바인더 북을 펼쳐서 내게 보여줬다.
베트남어와 영어와 한국말로 번역된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내용은 대충.......... '당신은 국제법에 의해 정해진 운전면허의 규정을 위반했으며 이를 직시하고 인정합니까' 등등의 여러 확인 절차였다.
나는 심호흡으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이내 그 경찰관을 빤히 쳐다보면서 천천히 진지하고 단호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no. 적어도 나는 국제교통법을 위반하지 않았다. 여기 이렇게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고 휴대했으며 당신에게 제시했다. 당신이 말하는 부분에 대해서 알아듣겠는데, 한국에서는 다음 레벨의 라이센스에는 그 이전의 라이센스 레벨을 이미 포함하고 있다. 버스면허를 가지고 있다면 승용차나 트럭을 운전할 수 있는 경우와 만찬가지임을 말하는 것이다. 하여 오토바이의 경우도 승용차 면허를 소지하고 있다면 당연히 허용이 되고있다. 단 한국에서도 오토바이의 특별성에 대한 규정으로 250cc 이상의 오토바이를 운행할 때는 당신이 말하는 경우처럼 별도의 원동기 면허를 소지하게끔 되어있다. 그러니 당신의 이해를 바란다.' (그냥 갖다붙인 것이지. 한국에서도 오토바이를 타려면 당연히 원동기 면허를 별도로 취득해야 한다. 다만 정부와 경찰이 너무도 흔한 오토바이 운전이기에 눈감아 주고 있는 것이다. 일단 사고가 나면 무면허로 교통법에 저촉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장 여기서 살아나가야만 했다.
경찰 또한 단호했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던 경찰은 그것은 내가 잘못 알고있는 것이라 분명하게 말했다. 내가 위반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를 잡아먹을 듯이 뚫어져라 쏘아보며 번개불 보다 빠르게 머리회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거짓말 처럼 빠져나갈 타개책을 마련했다.
'나는 오늘 여기서 이대로 죽지 않겠다. 어떻게든 기필코 살아서 무사히 빠져나가겠다.'
나는 방금 전에 했던 말도안되는 해명을 똑같이 반목해서 목청을 돋우고 보다 힘을 주어서 다시 설명했다.
마주 앉은 나이 든 순경들의 표정도 점점 굳어졌고, 옆에 있던 다른 순경들도 가세했다. 방금 전 보았던 바인더 북에는 벌금이 80만동~130만동 으로 적혀 있었다. 베트남 상황으로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배낭에서 돈을 꺼내 벌금을 내고 있던 러시아 청년도 나의 상황을 저만치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그 벌금집행의 상황에서도 나는 재빠르게 한가지 껀수를 떠올려 머릿속으로 활용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당신은 분명 국제운전면허법을 위반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고 재차 다짐을 해온다.
'그럼 내가 당신에게 문고 싶다. 내가 여행하면서 보니 여기 베트남에서는 사람이 횡단보도로 고속도로를 지나가고 가축이 도로를 무단횡단하더라. 오토바이는 당연한 듯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한국에서는 절대 안된다.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도 절대 안된다. 심각한 교통 위반이다. 그런데 당신이 한국을 여행하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한적하기에 너른 도로에 올라탔는데 그곳이 자동차전용도로였다고 치자. 그때 당신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몰라서 평소 해왔던 대로 한것 뿐인데....... 바로 지금의 나와 같은 심정이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이렇게 다른 베트남과 한국의 교통문제에 대해서 베트남대사관이나 한국 대사관이나 정부나 항공사 관게자가 그렇게 세세한 것까지 설명을 해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 어디에서도 그런 상황 비교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런 국가간 이해의 차이나 아니면 어느선까지 묵시적인 조항들이 있는지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다만 이렇게 당장 벌어진 상황에 대해선 진정으로 당신들의 이해를 바라고 싶다.' 라고 말해줬다. 베트남의 낙후성도 약간 비꼰것이고, 나는 절대로 여기서 묵과하지 않고 얼마든 사태를 확대할 수 있다는 암시를 넌지시 던진 것이다.
베트남의 형편이나 대사관 이야기나 양국의 정부란 표현을 쓸때는 부러 더 강조를 했다.
나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
이 경찰이 더 공격을 해 온다면, 나는 다음으로 무이네의 오토바이 대여점들을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이런 사태를 미연에 예방하는것이 정말 저들의 바램이라면, 평소 오토바이 대여업자들을 불러다 라이센스를 꼭 확인해서 렌탈을 해주라면 더이상 불거져나올 문제가 아닌 것이다. 붙잡혀서 벌금을 내면 오토바이는 압수해서 그 옆에 그대로 세워놓고 저녁쯤에 대여해준 업자들이 와서 제오토바이를 귀신같이 찾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나는 이 부분으로 끝장을 볼 심산이었다. 지덜끼리 짜고치는 고스톱에 애매한 여행객들만 손해를 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당연히 나는 이길 것이다.
다음으로는 벌과금 징수 문제였다. 저들은 바인더 북의 벌과금 리스트를 보여주고 즉석에서 현금으로 징수해서 그냥 쓱 하고 지덜 주머니에 넣고마는 것이었다. 그러면 여행객은 죄인처럼 아무말도 못하고 훈방되는 것이었다.
지난날 한국의 도로에서 행해지던 교통경찰들의 인 마이 포켓 행태와 너무도 닮은 처사가 아니겠는가?
해서 마지막엔 나도 벌금을 제시하고........ 확실하고 분명한 영수증을 원할 것이다. 베트남의 경찰청장 이던가 국세청장 이던가, 아니면 베트남 대통령의 싸인이 박혀있는 제대로 된 정식 영수증을 요구할 생각이었다. 왜? 대한민국의 당당한 여행객이 베트남에서 국제법을 위반해 벌금을 내야한다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정식 영수증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영수증 뒷면에 지금 법을 집행하고 있는 경찰의 직분과 소속과 싸인을 요구할 생각이었다. 그리고나서 우리 대사관을 찾아가 영수증을 제시하고 당당하게 문제제기를 하겠다고 말하려 했다.
그 정도까지 가면 누가 죽던 끝장을 보자는 뜻이고, 나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이 양반이 눈치를 챘나보다.
내가 결코 호락호락 물러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둘 중 하나는 오늘 완전히 골창에 빠져야 끝이나리라는 것을 이제야 눈치를 챘나보다.
나이든 경찰 두 명과 모여든 젊은경찰들 서넛이 자기들끼리 뭐라뭐라 한참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그러더니 슬그머니 내 라이센스를 내쪽으로 밀어 놓으면서 '고(go)' 한다.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야가 지금 분명히 나에게 가라고 하는게 맞나?
어서 가란다. 손을 흔들어 대면서 말이다.
그래서 라이센스를 챙기면서 다시 물었다.
'오토바이를 가져가라는 말이냐?' 아니라면 다시 피터지게 싸움을 계속해야 하니까 말이다.
가져 가란다.
와!!!!!!!! 내가 이겼다. 오 마이 갓.
그냥 가려다 확인 사살을 한 번 더 하고 싶어졌다.
'당신의 배려에 감사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제부터 마음대로 오토바이를 타도 된다는 말이냐?'
'no.'
야가 시방 뭔 말을 씨부렁 거리는 거여? 방금 타고 가라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경찰이 다시 나에게 묻는다. 언제 무이네를 떠날 예정이냐고? 그래서 내일 떠날 에정이라 했다. 그랬더니 아주 확실게 쩌렁쩌렁 울리는 어조로 나에게 말했다.
'오늘 까지만 타. 내일은 안돼. 특별히 봐주는 거란 말이야. 알았지? 오늘만 타.'
휴!!!!!! 우선은 저승문턱에서 살아나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내 자신이 참으로 기특한 넘이다. ㅋㅋㅋㅋ. 의지의 한국인. 맞다.
그리고 이내 어떤 알 수 없는 짜릿함이 전신을 휩쓸고 지나갔다.
야호!!!!!
다시 북쪽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내달렸다.
33년만에 다시 타보는 오토바이 드라이브였다. 아들이 오토바이 탈 때는 혹시나 가문의 대가 끊어질까봐 무릎꿇고 통 사정하듯이 절대 못타게 말려놓고는, 내가 다시 타 보니 이렇게 좋을 수가........ 돌아가면 오토바이 하나 새로 살까?
무이네에서 (화이트 샌드 듄)까지는 대략 40km. 백리 길이다. 그래도 간다. 왜냐면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니까.......
대~~~ 한~~~ 민~~~ 국~~~.
마침내 사막에 발을 들여 놓았다.
사막!!!!!!!!!
무이네의 자랑. 무이네의 명물. (화이트 샌드 듄)
아!
사막이란게 바로 이런 느낌이겠구나.
이런 똑같은 분위기와 모양새겠지만 며칠몇날을 가도가도 끝이없이 드넓게 펼쳐져 있겠구나. 거기엔 신기루가 보이겠지? 거기엔 오아시스가 있겠지? 여기엔 낙타도 없잖아. 베두인이나 다른 유목민들도 보이질 않찮아.
그러니까 무늬와 느낌만 사막이구나...........
무이네의 (화이트 샌드)나 (레드 샌드)는 모두 듄(dune)이다.
사막(desert)가 아니다. 물론 먹는 디저트는 더더욱 아니다.
사막이란 기후변화와 연관하여 비가 전혀 내리지 않고 바람만 불어 동식물들이 하나 둘 죽어가서 종국엔 대지마저 죽어가는 황페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몽고에서 사막화가 점점 늘어난다는 말처럼 수분공급이 단절되어 죽어가는 대지의 면적이 점차 늘어난다는 말이다. 이것이 사막이다.
듄이란, 흔히들 우리나라 서해안에도 있는 사구라는 떠밀려온 모래가 쌓인 언덕이라고 보면 되겠다. 태평양에서 끊임없이 밀려나온 모래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서 거대한 모래언덕을(사구) 만든것을 듄이라 한다.
그러니까 모래덩어리 모양새는 비슷한데, 생겨난 원인은 전혀 달라서 다르게 부르는 것이고....... 암튼 보기에는 비슷하다.
그러니까, 사막의 황페화 되어가는 지역에 붙어있는 나무는 지질이도 운이 없게 태어나서 비참한 최후를 목전에 둔 경우이고, 여기처럼 듄 지역에 살아남아 있는 나무는 지독하게 끈질긴 생명력으로 죽은 대지를 살래내는 녀석들인 것이다. 환경은 비슷해도 앞으로 살아갈 처지는 너무도 다른것이다. 인간들 세상사도 또 이렇지 않겠는가?
샌들마저 오토바이 트렁크에 넣어놓고 맨발로 (화이트 샌드) 언덕을 오른다.
유명세를 타고있는 만큼 여행객들이 무척이나 많다. 호젓한 산책 정도를 기대했는데 아예 틀려버렸다.
샤륜오토바이와 지프투어로 모래언덕을 관람하는 사람들로 매우 북적댄다.
구경하러 온 자와 먹고 살려고 온 자의 극명한 대비가 이곳에서도 여실히 보인다. 현지인들의 삶은 보기나름이겠으나 여전히 버겁고 힘들게만 느껴진다.
여러 봉우리 중 한곳의 언덕을 올랐는데 들판에서 사막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우선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리고 아주 미세한 모래알갱이들이 머리며 콧구멍이며 옷깃 안쪽이며 주머니며 사방으로 파고들어온다. 도저히 막아 볼 방법이 없다.
언덕의 비탈면에 서면 이 작은 모래알갱이들이 아주 작은 얼음덩어리로 변한다. 차갑고 매섭게 변한 모래알갱이들이 다리종아리며 얼굴에 날아와 부딪치는데 작은 얼음덩어리처럼 사늘하고 따끔따끔 아파올 정도다.
나는 지프와 사륜오토바이 투어가 정점을 이루는 가장 높은 언덕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아! 이래서 사막유목민들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허름한 천으로 몸을 둘둘 감아입는 옷차림을 하는구나. 그런차림에 선글라스 하나만 착용하면 사막에서 버텨나기 완전무장이 될것 같다.
정말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사막이란 것을 맛을 보기는 봤다.
구름이 많이 끼어서 일몰은 전혀 기대할 수 없었고, 저녁무렵이 지나가고 있어서 였을까? 내가 모래언덕을 중간쯤 내려섰을 때는 대다수의 여행객들이 썰물처럼 일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대부분 지프와 사륜오토바이를 이용했으니 순식간에 철수가 가능했다.
나처럼 맨발로 걷던 여행자도 제법 있었는데 내가 언덕아래로 내려오니 대부분의 그들 마저도 기다리던 관광버스가 싣고 떠나며렸다.
갑자기 적막과 고요가 찾아들었다.
샌드 입구에 들어선 커다란 건물에 이곳에서 투어를 관장하는 젊은 종사자들만 수십명 장비들을 점검하면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힐끗 힐끗 뒤돌아 보면서....... '아무도 없는 어둠이 내리는 모래언덕을 한번 더 올라가봐?' 하는 유혹에 고심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정말로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세찬 광풍이 불어오기 시작하더니, 하늘이 금새 영화 (십계)에서 바다가 갈라지기 직전의 험상굿은 표정으로 성깔을 부리기 시작했다. 저쪽 들판 아주 먼곳에 마른 번개가 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세상에나.
(잇 내버 레인스 인 무이네 사우스 베트남) 이라며? 일년 중에 비가 오는 날이 실로 며칠 안된다며? 왜 하필 오늘이여?
총알 같이 달려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한산하다 못해 인적이 끊긴 도로로 나왔다.
그리고 달렸다.
죽어라 달렸다. 거의 풀로 달렸다.
언덕 하나를 넘고나니 빗방울이 점점 거세진다.
'에이 조졌다. 한마디로 *됐다.'
잠시 멈춰서서 카메라와 핸디폰을 트렁크속에 비닐로 싸서 넣어야만 했다.
간간히 트럭들이 지나간다. 그래도 이게 무이네를 거쳐 호치민시로 연결되는 주요 도로인데도 아주아주 한산하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비를 피해 황급히 집으로 돌아가는 현지인들 오토바이가 오기도 하고 나와 같은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사방 어디에도 여행객은 단 한명도 업고, 이 사간에 빗속으로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를 탄 타국에서 온 미친넘은 더더욱 없다.
속으로 씨익 웃으며 내 자신을 위로해 본다. 위대한 한국인이 이정도 난관쯤이야.......
이 와중에도 인증샷을 하나 찍어서 보니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80년대 미드 (스타스키와 허치) 중에서 고속도로 순찰대를 하던 허치의 포스와 영판 닮은 나 자신에 쓴 읏음만이 슬슬 나온다.
남은 거리 대략 35km.
헬멧과 썬글라스로 가린 나머지 얼굴 부분이 따갑다. 잘려 날아갈것만 같다.
죽어라 달렸다. 물웅덩이에 살짝 비틀거리기도 하면서 죽어라 달려서 마침내 앞서가던 현지인을 따라잡았다. 현지인의 라이트 불빛만을 쫄쫄 거리면서 따라 달린다. 가다보니 오토바이 몇대가 더 합류했다. 이런 상황에선 누구도 이탈해서 달려나가지를 않는다. 그냥 일렬로 길게 늘어서서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어둠속을 달맀다. 그것이 최선이자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야...... 바야흐로.......... 살아서 무사히 무이네에 들어왔다.
그런데...........
또 그런데............
무이네가 칠흑같은 어둠속에 잠겨 있었다.
무이네는 거대한 물폭탄 세례에 침몰되어가고 있었다.
비포장도로는 사방으로 물웅덩이였다. 괜찮을거라 믿고 함부로 오토바이를 앞으로 나아가기가 겁이날 지경이었다.
앞서가는 현지인 오토바이를 따라 곡예를 하듯이 숙소쪽으로 나아갔다.
무이네가 칠혹속에 잠긴것은 내가 조금전에 무이네에 진입할 즈음에 정전이 되었단 것이었다. 도심전체가 어둠속에 갇혔다. 여기서는 매우 흔한일이란다. 무이네 거리를 반쯤 들어섰을 때 하나 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일제히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흔한 일이다 보니 자가발전 시설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호텔과 리조트들, 그리고 이름난 식당들이 자가발전기로 전기를 되살리고 있었다.
허름한 노점식당들은 아예 점포를 닫고 있다. 처마밑에 후레쉬나 촛불을 켜놓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호텔주차장에 들어서니 주인남자가 쫓아와 별일 없냐고 안부를 물어온다. 간략하게 화이트샌드에 갔다가 비를 만났다고 해줬다.
그사람 이내 감격한 표정을 짖는다. 그 정도는 여기 현지인도 배짱을 필요로 하는 일이란다. 뜨거운 차를 한잔 끓여준다기에 사양했다.
저녁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본래 무이네 일정에서 주안점을 두었던 것이 있었다. 무이네는 해산물이 풍부하고 싸고 맛있기로 정평이 나있었다. 하여 오늘 저녁만은 여행비 걱정없이 푸짐하게 해산물을 먹어볼 요량이었던 것이다. 랍스터에 타이거새우를 먹고싶었다. 헌데 이런 지경이 되었다.
우선 씻고나서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우산을 쓰고 제법 떨어져있는 해산물 푸드코트까지 번거롭지만 찾아가면 되었다. 그런데 주인 말씀이 이런날은 밖에나가지 말랜다. 사방 웅덩이에 빠지거나 안보이는 유리조각이나 쇠붙이에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단다. 그런가하면 곧 조치가 되어서 전기가 들어오고나면 물고인 웅덩이에 곧잘 감전사고가 뒤따른단다. 간혹 있단다. 결론은 랍스터에 타이거새우는 벌써 저만치 물건너 갔다는 말이다.
젖은 옷차림 그대로 골목을 나갔다. 바로 옆에 제법 알려진 식당이 있기때문이다. 흠쩍 젖었다고 양해를 구하고 더럽히지 않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허기나 면하려고 음식을 두가지 시켰는데....... 고생을 옴팡지게 한 후였기 때문일까?
오늘도 맛있다. 베트남음식은 항상 맛있다. 너무너무 맛있다.
같은 양을 더 시켜도 거뜬히 해치울수 있을것만 같았는데......... '저사람들이 한국인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나라걱정하는 마음에서 2% 부족함을 참기로 했다.
대신 호텔에 들어가면서 와인 한 병이랑 문을 닫고 있는 가계에서 반미를 두개씩이나 샀다. 베트남의 명물 빠게트샌드위치라 해야할 반미를 식사가 아닌 안주로 사서 오늘에야 비로소 맛을 보게 생겼다. 2% 부족함도 채우고......... ㅎㅎ
그때 무이네 전체에 불이 들어왔다. 정전이 해결된 것이다.
역시나 썩 마음에 드는 깔끔하게 정돈된 숙소가 나를 맞는다.
샤워를 하고 와인 한병을 마셔주고 나서 잠자리에 들었다. 아직 무이네에서 할 일들이 남았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야만 했다.
그리고 자면서, 무이네에서 1박을 더 할까 말까....... 남은 일정을 결정해야만 했다.
여기 숙소가 너무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1박을 더하면서 종일 풀장에서 실컷 놀고, 그넘의 랍스터에 타이거새우를 배가 터지게 먹어볼까? 까짓 뭐 어때?
이렇게 편한 잠자리가 하루에 18$ 이라니......... 쉿.
ㅎ
굿. 나. 잇.
------ 에피소드 7에서 무이네 나머지 일정과 또 타게되는 슬리핑버스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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