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밖을 보니 비는 그쳤다.
그런데 가만히 살피노라니 비가 그친것도 아니었다. 풀장 위로 간간히 빗방울이 아직 떨어지고 있었다.
따끈한 커피를 한잔 마시고 났는데도 이제 겨우 새벽 5시가 가까워지고 있는 시각이다.
호텔을 나서 골목을 지나니 다시 무이네 해변이다. 싱그런 아침의 상쾌한 바닷바람이 페부 깊숙히 마구마구 쏟아져 들어온다.
검은 먹구름이 온 세상을 내리 누르고 있듯이 바다도 여전히 거친 숨소리와 함께 성난 파도를 해변을 향애 몰아세우고 있다.
우기도 아닌 시기의 베트남 남부에, 온나라에서 거장 건조하고 비가 오지않는 지역이라 했는데....... 어쩌자고 하필이면 그 많고많은 날중에 내가 무이네에 힘겹게 찾아오던 날에 물폭탄 세례를 주시는것인지.......... 인샬라.
쪼리를 벗어던지고 해변 산책을 시작해 본다.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모처럼만에 시원한 느낌 을 받아보는것 뿐, 별다른 감흥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날에는 새벽 조업을 나가지 못한 것 같다.
여기저기 일단의 어부들이 해변에 나와 배를 끌어 올리기도 하고, 파도설것이(?)라 해야 하나? 배 단도리를 하고 있다. 밥벌이를 공치는 날이라 그런지 가까이 다가가 보아도...... 저네들 표정이 몹시 무겁고 어두워보인다.
아직 무이네에서 꼭 해 볼 것이 남아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해 볼 것이 많이 남았거나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서둘러 호텔로 돌아와 신발을 갈아신고 다시 오토바이에 올랐다.
그리곤 힘차게 오토바이를 타고 아직 물웅덩이가 여기저기 패인 무이네의 마을 한복판을 가로질러 달려나간다.
ㅎㅎㅎ
ㅋㅋㅋ
경찰과 약속한 (원동기라이센스) 유효기간이 지난 시점인 이 새벽에....... 되고말고로 또 오토바이을 힘차게 달려본다.
이번에 또 걸리면 아무런 변명도 호소도 못하고 그대로 벌금형이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또 달린다.
무이네의 마을 사이로 난 도로는 오직 외길 하나다. 그러니까 경찰이 병목현상이 펼쳐지는 오충지에 떡하니 파라솔까지 펼쳐놓고 엉뚱한 사업(?)에 열중할 수 있는 것이다.
북쪽으로 올라가면 나짱.
남쪽으로 내려가면 호치민(사이공).
이 외통길을 빠져나가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서 어제 밤에 식당에서 주인에게 자문을 구했었다. 그랬더니 마을 중간쯤에 샛길을 통해서 무이네 마을을 들리지 않고 외곽으로 지나가는 순환도로로 통할 수 있다는 소식을 얻었다..
언덕위의 마을로 올라가는 듯 작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같은 도로였는데, 바로 요정의 샘물을 찾아가는 시발점이 되는 지점이었다.
그 작은 길을 달려 올랐더니 이내 어제 씽씽 달리던 화이트샌드 가는 너른 도로와 연결되어 있다.
새벽공기를 가르며 신나게 한 5km쯤을 달려가자 도로 표지판에 우측으로 무이네 들어가는 길을 가리키는 안내 표지판이 나타났다. 마을에서 달려오면 여기로 나올 것이고, 또 재수없으면 경찰 단속에 걸리는 길을 삥 돌아 달려온 것이다.
ㅎㅎㅎㅎㅎ
융통성의 귀재.(채밍 표현으론 잔머리의 천재)
붉은 모래언덕이 왼편으로 솟아올라 있으니 (레드 샌드 듄)이다. 날이 흐려 일출을 기대하기란 애시당초 손톱아래 때만큼의 기대도 말아야 할 지경임에도 여행사의 투어상품을 신청한 아주 많은 여행자들이 벌써 붉은 모래언덕을 점령하고 있다. 5대는 넘지 싶은 관광버스와 지프투어중인 지프들이 빼곡히 주차장을 이미 가득 채우고 있다.
또 맨발로 도로를 건너 모래언덕으로 들어섰다.
간밤에 쏟아부은 많은 비 때문이었을까? 어제의 화이트샌드는 분명 모래언덕의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모래의 느낌이 전혀 없다. 어디 곱디고운 황토흙 언적에 물뿌리고 난 후 걸어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어제와는 너무도 다른 특이한 느낌이었다. 사막이 아니라 새벽 황토길 산책이라 해야 할까보다.
---- 사진속 마을이 바로 무이네.
--- 우리나라 비료푸대를 좀 가져갔다면 저기 비닐 쪼가리 타는거보다 훨씬 더 신났을텐데...... 무이네 가실 분. 비료푸대 필히 지참하시길.......
마지막 사진은 이번 여행중에 딱 한 번 마주친 (베트남 속도제한 표지판)이다. 정말로 정말로 압권이다.
이런 표지판 문제를 면허시험에 도입한다면 우리나라 예비운전자들 면허취득이 훨씬 수월해지지 않을까?
초등학교도 필요없이 만 5~6세 아동이면 다 알아보지 않을까?
규정속도 60km를 준수해야 한다는 뜻임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테고....... 베트남은 포장된 직선도로나, 심지어 고속도로까지 규정속도가 60km 이다. 한 번 위반하면 처벌이 엄격해서인지 아무리 도로가 한산하다해도, 일직선의 곧은 고속도로라 해도 도무지 60키로 이상 달릴 생각들을 아예 안한다. 새벽 밤길을 달릴 때, 아주 잠간씩 80km 가까이 속도가 올라가는 것을 딱 두 번 목격했다.
정말로 정말로 답답해지고 속이 부글부글 끓다가 뒤집히는 꼴들이란..........내가 후진으로 가도 베트남 고속버스 만큼은 달릴 수 있겠다.
거기다 좀 더 살펴보자.
120km는 병원가서 맴맴주사 맞는다는 표시와 140km이면 휠체어 타기가 십상이고, 160km를 넘으면 공원묘원 간다는 표시까지....... 내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본 가장 친절하고 자상한 교통표지판이었다.
돌아오는 길의 중간쯤에서 들린 (요정의 샘물) 또한 무이네의 자랑꺼리 명소이다.
하지만 사실은 별 볼일이 그다지 없어보이는 그저그런 정도의 장소라 말하고 싶다.
(레드샌드 듄)과 같은 곱고 붉은모래 입자들이 드덞은 들판을 만들었다. 그 들판 위로도 비가 내리고 물줄기가 흐르게 되다보니 점점 작은 골짜기로 패여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계곡 사이로 도랑이 흐르고, 주변으로 야자수나무롸 온갖 초목들이 자라게 되니 여기 이 골짜기 이름을 그럴싸하게 (요정의 샘물)이라 붙인것이다. 더 심하게는 여기사람들이 (리틀 그랜드캐년)이라고도 한단다.
패여나간 붉은 협곡과 봇도랑 같은 작은 물줄기는 다소 이색적이고 이국적인 정취를 풍기기는 하는게 사실이지만, 게곡의 높이나 길이가 우리의 마음을 장중하게 짖누를만큼 위용을 갖추지를 절대 못했다. 그냥 자연이 어쩌다 만들어낸 작은 열대공원 정도이다.
거기에 그 작은 협곡 안쪽으로 일부의 주거지역이 들어서 농사도 짖고 가축들도 기른다. 하여 그네들의 생활하수와 가축의 분뇨등이 그대로 그 도랑물에 흘러든다. 실제로 내가 걸어들어가 보았는데, 물이 흐르는 부분은 그런대로 보아줄만 하지만, 고여있거나 휘돌아 나가는 곳에는 물이 썪어가고 있고 악취가 풍겼다.
나처럼 골짜기에 내려들어가지 말고, 그냥 먼리 언덕을 따라 걷기만 하면서 풍광을 감상하는것이 더 나은 선택이지 싶었다.
굳이 뜨거운 한낮에라도 기어코 찾아가 보아야 할 정도의 명소른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새벽 내친 걸음에 (레드샌드 듄)과 (요정의 샘물)까지는 모두 둘러보고 나니....... 여기 무이네에서 더 무엇을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볼것 다 본것 같고 느낄것 다 느껴본것 같다.
'그럼 이제부턴 무얼하지?'
시계를 보니 아제 겨우 아침 7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 같은 여행자만 세상에 있다면 여행사들 대부분은 벌써 문을 닫았겠다. ㅎㅎㅎㅎㅎㅎㅎ
오토바이를 달려 무이네로 돌아온다.
이제 또 선택을 해야반 한다. 무이네에서 다 할것이 없으면 어디로든 떠야야지 뭐. 어쩌긴 뭘 더 어쩌겠어?
국내여행을 하던 아니면 해외여행을 하던 내가 아주 즐겨찾아다니는 곳이 바로 (시장)이다.
시장이야 말로 그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생활(삶) 자체를 가장 적나라하게 그대로 드러내보여주는 곳이라는 생각때문이다.
시장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곳에 오랜시간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그 사람들의 삶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네들의 웃음과 눈물과 땀과 노력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그래서 나는 그런 시장의 한가운데 서서 그네들의 시간을 들여다 보고 그네들의 생활모습을 바라다보는것을 아주 커다란 의미있는 기쁨의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장이 있다고 하면 만사를 재쳐놓고라도 꼭 찾아가보는 그런 타입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시장)은 이제 많이 식상해진 느낌이다.
전국적으로 수없이 많은 지자체 축제들이 생기고, 축제마다 따라붙는 야시장이 천편일률적인 볼성사나운 1회성 투기잡상인 단지처럼 변질되어 갔듯이, 5일장으로 대변되는 재래시장 내지는 전통시장들도 너무나 천편일률적인 모습으로 급격히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과연 지역특색을 고이 간직한 특별한 전통시장이 몇군데나 남아있겠는가?
어디를 가나 다 똑 같은 스타일에 똑 같은 물건을 늘어놓고 똑 같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어디를 간나 그게그거인 정말 멋대가리 없는 그런 시장으로 변질되어 갔다.
그러다 보니 해외의 이국적인 시장은 그래도 나에게 있어 아직은 제법 매력적이다.
무이네 아침 오토바이투어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자 마자 다시 시장을 찾아 나섰다.
이 작은 마을에도 아침시장만은 성황을 이루고 있다니 궁금하기도 했고, 또 아침식사를 재래시장에서 여기 사람들처럼 지극히 보편적인 것으로 해결해 보고자 함이었다.
숙소에서 시장은 아주 가까운 지척에 있었다.
(함 태엔 재래시장)이었는데, 흡사 우리나라의 수산물이나 야채 공판장 같은 분위기로 어두침침한 거다랗고 높은 창고건물 같았다.
새벽형사람들인 여기 베트남에서 아침 7시면 제법 늦은 시간일 터인데, 시장은 역시나 몹시 분주하고 붐볐다.
- 그래. 이게 바로 여기에도 사람들이 사람냄새풍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진정한 삶의 현장인 것이야.
- 이것이 바로 베트남의 모습인거야.
베트남이나 대한민국이나 사람들이 모여사는 모습은 크게 다를것이 없어 보인다.
그렇게 닮은듯 하면 다르고, 다른듯 하면 또 그모습이 다 그모습인듯 닮아있고........ 바로 그곳에 그네들의 삶이 있었다.
소박하고 순수한 사람들.
그네들의 소망과 바람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무엇인가를 위해서 부지런히 땀을 흘리며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이따금 내비치는 미소가 더없이 해맑아 보인다.
가진것 없고 내보일것 없는 모습에서도 은연중에 풍겨나오는 현재의 여건에 만족해고 나름 행복해하는 그네들의 모습이 자못 부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아마도 욕망이 줄어들면, 그 줄어든 크기만큼 모자람이나 부족함 속에서도 어떤 자연스런 여유가 생겨나는 모양이다.
이 날도 나는 재래시장 한 가운데서 그곳 사람들 틈에 끼어 길거리표 쌀국수로 아침을 해결했다.
역시 맛이 기가막혔다.
또 여행중에 구경만 했지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들도 포장을 해서 들고 돌아와서는, 내 숙소의 테라스이자 전용 풀장 앞 야외테이블에서 맛나게 먹어 치웠다. 왜냐면....... 역시나 쌀국수 하나로는 뭔가가 부족하니까........ 주점부리들 또한 기가막히게 맛있다.
그리고 나선 훌러덩 벗어버리고 풀장으로 풍덩 뛰어든다.
-- 나. 오늘 무이네를 떠난다.
달랏으로 떠났다가 1박을 하고 나서 나짱을 거쳐 다낭으로 향할 생각이었는데 새벽에 오토바이를 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달랏 보다는 후에(훼)가 마음에 걸렸고, 또는 베트남 도착에서 부터 마음 한구석에 늘 남아있던 (베트남 기차)가 타고 싶어서였다.
호치민에서 하노이로 연결되는 남북종단 통일열차 노선이 여기 무이네와 달랏에서는 해당이 안된다.
결론은 일단 나짱(나트랑)으로 가야만 한다. 나짱에서는 베트남의 어디로든지 기차가 연결된다.
나짱에서 후에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하고, 후에를 투어 한 후에 다시 기차로 다낭으로 이동을 하든지 버스로 이동을 함으로써 이번 여행을 멋지게 마무리 할 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무이네 여행사에 연락을 취했다.
나짱에서 다낭이든지 후에든지 (기차표 예약)을 핼줄 수 있느냐고. 대답은 노우.
기차가 다니는 지역의 해당여행사에서만 예매가 가능하단다. 방법이 없겠느냐고 재차 물었더니...... 같은 여행사 나짱 지사에 부탁을 해보겠단다.
- 땡큐. 나짱 다낭도 좋고, 나짱 후에도 좋고, 침대칸이고 에어컨 소프트 좌석이던 선풍기 하드좌석이던 아무거나 다 좋겠으니 무조건 기차만 타게 해달라고 부탁을 해놓았다.
11시 30분에 호텔 체크아웃하고....... '내년 쯤에 이쁜 마누라 데리고 꼭 여기 다시오고싶다'고 후런트에 감사 인사를 표함.
오토바이 가계 가서 렌탈 반납하려다....... ㅎㅎㅎ ..... 배낭만 맡기고 '오토바이 15분 정도만 더 타자'고 허락받고는 무이네 도로를 죽어라 달리다가 저만치 경찰단속이 보여지는 지점에서 급하게 U턴을 하고는 줄행랑을 친다. 남쪽의 무이네 끝까지를 힘차게 달려보고 나서 속이 아주 후련해 질때 쯤 오토바이를 반납했다.
오토바이를 반납하고 여행사에 사람들 틈에 끼어서 버스를 기다리려니 영 내체질엔 안맞는것이 슬슬 무료해진다.
밖은 폭염인데도 아랑곳 않고 나와서 주변을 어슬렁 거린다. 그러다 눈에 띄는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곳이 있다.
무이네 1급 자동차 정비공장.
흔히 자동차가 한 두바퀴쯤 굴렀다고 치지. 우리나라 1급 정비공장에서 반파쯤 되었다면 당장 수리를 하고, 그 이상이면 수리를 해도 모양새나 성능이 예전만 못할것 같으면 폐차의 수순을 밟는다. 그런데 여기 서는 아니다. 열바퀴를 굴러 완파가 되었어도 무이네 1급정비공장에서는 완벽한 원상복귀를 목표로 수리에 들어간다. 이 얼마나 놀라운 광경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여기 이 (무이네 1급정비공장) 이라는데가 말이다..........
공장은 한 8평 정도? 기능종사원 달랑 1명 뿐이다. 연장도 산소용접기와 망치만 보인다.
푸하하하하하하하.
난 정말정말로 탄복했다. (아! 위대한 베트남이여!)
그리고 그 공장 안쪽으로 완전 쪽빡이 된 아주아주 오래된 클래식 모델의 부품용으로도 못쓸것 처럼 보이는 차량이 하나 더 있었다.
아마도 여기 공장장이 언제든 부품만 구할 수 있다면 수리를 해보려는 심사인듯 한데.........
고거 수리만 마친다면 내가 가져다가 대한민국 도로에서 타고다니고 싶다. 정말 탐나는 모델이다.
참으로 신기한 풍경.
역시 산적 포스가 묻어나는 여기 1급공장 공장장을 카메라에 닮아보려 하니 손사래를 치며 쏜살같이 밖으로 내뺀다.
아!!!!! 정말 요지경 속, 알 수 없는 신기한 나라 베트남..........
알.럽.베.트.남. 알.럽.무.이.네.
우이네와의 아쉬운 작별을 맛난 점심식사로 대신하고 오후 1시 나짱행 슬리핑 버스에 몸을 실었다. 5시간을 달려가야 한다.
굿.바.이.무.이.네.아.일.비.백.
다시 빗방울이 뚝뚝 떨아지기 시작하는 가운데 나짱을 향해 슬리핑버스는 출발을 했다.
나짱에서 후에(훼)까지는 베트남 통일열차 침대칸 1층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가슴벅찬 기대속에서.........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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