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남산위로 하얀 눈이 수북하게 쌓였다. 아침시간에 집에서 나올때와는 전혀 다른 풍광이요 한마디로 장관이다.
런닝머신 위에달린 작은 모니터에선 긴급뉴스를 통해 중부지방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는 방송이 나온다.
얼핏 그 대설주의보라는 자막과 함께 나오는 여러가지 상황의 화면이 왠지 나와는 전혀 동떨어진 딴나라이야기 같은 막연한 생각마저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왜냐면 나는 지금 4층건물 런닝머신 위에서 반바지차림에 땀에 흠뻑 젖어서 귀에는 이어폰 꼽고 비트가 강한 음악들으며 창밖으로 쏟아지는 함박눈을 신나라 좋아하면 구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귓전에 음악소리를 비집고 새치기로 들려오는 카톡왔다는 신호음.
- 어디야?
- 땀흘리고 있지.
- 아침부터 이적지?
- 아니. 아침엔 도서관 들렸다가 지금 한시간반 정도 되었을걸.
- 나 나갈까?
- 잉? 이 눈길에?
- 수주팔봉으로 강변도로 타고 나갈께.
- 그래 그럼. 언제?
- 지금 출발.
- 그럼 있다가 봐. 샤워하고 나갈께.
마눌님께서 데이트하자고 나오신단다.
갑자기 바빠진다.
마눌님이 지금 출발하시면, 시내서 14km니까 평소 걸리던 시간에 눈길을 더하면 한 25분쯤?
서둘러 마무리 체조하고 샤워하고 옷갈아 입고 밖으로 나오니 바람은 둘째치고 쏟아지는 함박눈이 장난이 아니다. 방금전까지는 남의 일이었는데, 내가 맞고 싸돌아다니려니까 이거 정말 장난이 아니다.
차 끌고 나올껄. 우산이라도 하나 챙겨 나올껄.
행인들은 눈 피하려 무단행단이 일쑤고 아기걸음마 걸음 차량들은 그냥 밀고 나온다. 금새 머리에 어깨에 수벅히 쌓이는 눈.
- 에고에고. 이 마누라가 이런날 기어코 나온다고............ 지가 지금 청춘이여? 눈 온다고 신나하게........ 에고 미끄러워 죽겠네.
마중가려면 공설시장 아케이트를 통과해서 기업은행 횡단보도를 건너 차없는 거리를 지나.........
현대타운 하천공사장 옆에 나가니 번쩍하며 마눌님이 모습을 드러낸다. 벌써 도착했다.
뭐. 세세하고 구차하게 요것조것 따지면서 약속하지 않아도 그냥 한쪽에서 말 꺼내면 나머지 이야기는 다른쪽에서 벌써 다 알아듣는다.
배시시 웃는다.
멍청한 표정으로 화답한다.
- 당신 또 그거 먹으려고?
- 아니?
- 근데 왜 이쪽으로 와?
- 당신이 요기쯤 왔을거라 생각했지? 딱 맞췄네.
- 나 아침도 안먹었는데 오늘은 뭐 먹을까? 1번? 2번? 아니면..........
- 문득 오늘같은 날은 양자강 짬뽕이 먹고 싶단 생각이 들었는데..........
- 내 차가 없으니까 당신 차로 가야겠네. 차 어딨는데?
- 대원사 옆길 언덕에........ 근데 이 눈길에 달천까지 가기 그러니까.......... 음......... 우리 떡볶이 먹자.
- 떡볶이? 어느집 떡볶이? 윗집 아랫집?
- 오늘은 윗집.
- 해물? 부대?
- 응.......... 해물 작은거에 밥 하나 볶아서.
- 그거로 될까? 중간거는 해야지?
- 나중에 이런저런 주점부리 하면 되지 뭐. 알았지?
- 알긴 뭘 알어? 결정권은 지가 쥐고선............
번개같이 해치운다.
냄비를 싹싹에서 모자라 벅벅 긁어댈 정도로 우린 참 잘 먹는다.
신흥상가들이 하루다르게 들어서는 연수동쪽으로 가면 데이트코스나 커피숖이나 음식메뉴가 확 바뀌는데, 영화를 보기에 유일한 여기 현대타운 부근에선 거의 해오던 방식이 있는데 오늘은 쬐끔 벗어나 떡볶이였다.
1번은 이태리음식을 약간 퓨전식으로 하는 곳인데 3가지 음식씩을 셋트로 묶여진 메뉴가 4~5가지 된다. 그래서 항상 a.b.c.d.e. 셋트를 돌아가면서 먹는것을 아주아주 즐기는 편이다.
2번은 레스토랑인데 치즈돈까스랑 샐러드돈까스가 아주아주 맛있는 집이다. 가끔은 작은 이태리피자까지 추가하면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다.
- 몇시 상영이야?
- 12시50분 하고 1시반 하고....... 지금 가면 앞에거 딱 맞는데 갈까?
- 커피 마셔야지. 뒤에거.......... 신관이야 구관이야?
- 8관이니까 신관.
- 그럼 커피마시러 가자. 눈구경도 하고...........
연수동에선 브랜드커피전문점에서 한두시간을 수다로 보내기도 하는데, 현대타운에선 처음 개업때부터 드나드는 오로지 한 집.
창가에 옆으로 나란히 앉아서 밖을 내다보는 우리의 지정석이다 시피 한 자리도 있는 집. 아주익숙한 단골집.
역시 오늘도 우리자리는 비어있다.
오늘은 아메리카노 한잔만 시켜놓고 눈내리는 거리와 지나치는 사람들을 즐긴다.
(아메리카노 한잔에 이천원. 오늘은 주인아주머니가 혼자 주문을 받고 계신데 우리는 단골이고 이런경우 자주있음. 달랑 한잔.)
커피숖에서 보내는 시간의 절반은 무조건 아들 딸(며느리)에 대한 최근정황 내지는, 아빠만 엄마만 아는 갸네들의 비밀 털어놓기. 아들 딸 신상털어내기. 아빠는 아들 카스토리 검색중...... 엄마는 딸 카스토리 정밀조사중.......... ㅎㅎㅎㅎㅎ
-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에약해 놓은데가 휴양림은 아니지?
- 뭘 자꾸 물어봐? 그냥 가보면 안다니까?
- 휴양림 가자했는데 바다라며? 그래서 생각해 보니까 작년에......... 작년에 말하던 거 뭐냐?....... 캠핑카 있는데........ 맞지?
- 가보면 안다니까?
- 취사도구는 다 있는거야?
- 응. 다 있어.
- 춥지 않겠어? 기분내서 밖에 나갔는데 추워서 벌벌 떨기는 싫어.
- 안추워. 절대 안추워.
- 캠핑카라면......... 화장실이야 있겠지만......... 샤워도 돼? 설마 딴데가서.........
- 샤워도 다 돼. 누가 언제 캠핑카라 했어?
- 암만 생각해도 거긴거 같은 느낌이..........
- 가보면 알아. 무지 좋아. 먹고 마실거만 사전에 충분하게 준비 잘해.
- 나 준비 안할건데. 가면서 시장 조금만 보고 나머진 다 사먹을건데.
- 뭐.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난 당신 부탁대로 예약 해 놨으니까.......
일요일 오후에 동해에 여행가기로 예약이 돼있다.
담주에 여기 이 위대하신 분(?) 생일이 있어서 가벼운 나들이를 선물도 주신다나 뭐라라. 숙소예약도 내가 했는데 선물은 무슨........
그런데 이 쪽집게 마녀님께선 어찌나 내 속을 은근슬쩍 잘도 들여가보시는지......... 아니긴........ 맞어. 망상 오토캠핑장 카라반D.
시간에 맞춰서 밖으로 나왔는데 눈발이 좀 작아졌다.
근데 길을 잘 가던 챠밍 왈.
와풀이 먹고 싶단다.
그러니 어쩌겠나.
들어가서 와풀에 아이스티를 사고 계산은 당연히 내가 할 수 밖에. 커피값에 와풀값어 돈 억수로깨지는 날........
대신 영화보는 입장권은 챠밍이 사는게 영원한 불문율. 내가 옆에서 같이 봐주는 값.
우리는 한달에 평균 두 세편의 영화를 함께 본다. 연애할 때부터 영원한 영화 매니아다.
좋은 영화가 넘치는 시즌이면 한달에 다섯편이라도...... 종은 영화가 드문 시즌에는 마지못해 한편정도........
데이트 하는 날에 6할 정도는 영화 보는 날.
오늘 감상할 영화는 (내부자들).
<내부자들>
참 재미있는 영화다.
근자에 참 좋은 한국영화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 중에서 아마도 스토리가 가장 탄탄했던 영화다 싶었다.
중간에 스토리 전개가 한참 흥미진진 할 때는........ ' 이 대본 내가 쓴거 아니야' 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영화는 재미있고, 출연한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도 좋고, 감독의 연출의도도 충분히 공감이 갔지만.........
그 내용들을 물끄러미 바라봐야하고, 또 그 영화속에서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이용당하는 우리네 같은 절대다수의 대중들 시선에서 보자면 오늘의 정치판, 오늘의 세태는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다. 영화가 허구였더라면.......... 어쩜 그럼 우리가 사는 이 현실도 허구일지 모른다.
가진자들과 올라선자들의 세상........... 한마디로 세상은 아수라장이 아닐까?
내 경우에 애정소설과 이 영화 같은 현대 정치소설은 쓰지 않고 있다. 아쩌면 이점은 영원히 쓰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주 초기에 그런부류를 끄적여 본적이 있었는데........ 나를 오래 알아본 사람들의 시선이 그 소설속의 이야기가 어떤 일을 이야기 하는 것이며 등장 인물이 누구를 이야기 하는 것이지를, 내 신상을 뒷조사 하듯이 흩고있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절대 안쓴다.
현재에 느끼는 그런 생각들을 아주 오래전의 역사속에 반추하느 일은 게속할 것이다.
(내부자들)에 나오는 그런 실제 이야기들을 나는 많이 들었고 또 실제 아는 부분도 좀 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오프 더 레코드)가 전제된 하에서 내가 듣고 알게된 것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영화의 스토리가 더욱 공감이 갔다.
기회가 된다면 연출한 감독과 술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번 속시원하게 나눌 기회가 있었음 좋겠다.
한마디만 더 하자면........ '이병헌의 연기가 참 좋았다.'
영화를 감상하고 밖으로 엄청나게 폭설이 쏟아진다. 대설주의보가 맞는가 싶다.
뭘할까 생각하면서 걷는데 카톡이 하나 날라온다. 친구였다.
- 임마. 너 바람피냐? 바람피면 내가 너 가만 안둔다?
- 이 눔이 미쳤나? 뭔 소리여?
- 녀 지금 영화관 앞에서 어떤 여자랑 팔짱끼고 사진 찍고 난리부린다면서
- 너가 그걸 어떻게 알어?
- 부처님 손바닥 안이지? 이번만 눈감아 줄테니까 얼른 그 여자 보내고 집에 들어가. 성질 나면 짱구엄마한테 전화한다? 나 번호 알어?
- 지랄두. 넌 어딘데?
- 어딘진 알아서 모해? 딴 맘 먹지말고 착하게 살어 임마.
- 이넘이 점점. 난 원래 착하게 산 놈이야. 너나 잘해 임마.
글자쓰는 란에 + 기호를 누르고, 갤러리를 누른다음 방금 찍은 사진들을 두장골라서 전송을 했다. 그 나쁜 협박범에게.
잠시 뒤에 답신이 새로 왔다.
- 지랄 부르스를 해요. 강아지들도 아닌데 이 눈오는 날에. 얌마 부부끼린 그렇게 노는거 아니다? 남들한테 물어봐라. 그렇게 하고다니면 다 불륜이라 그러지. 이런 사진 우리집이나 친구부인들한테 날라가 보라. 바로 싸그리 죽음이지.
- 냅 둬. 우린 이렇게 살껴.
- 지랄 꼴깝들을 떨어요. - 끝-.
하늘을 올려다 본다.
뭐 어쪄. 우린 우리 스타일로 사는거지.
그나저나.......
날씨가 맨날 이꼴이면.......... 이 겨울 날 수 있으려나?
뭘 먹고 살지?
우선 먹고 살아야 다음으로 스타일도 스타일 아닌감?
헐!
걱정되네............
후기 <눈 녹아내리던 날에>
다음날이니까 바로 오늘.
two job을 하시는 챠밍여사는 일보러 나가고, 일거리 없는 나는 빈둥빈둥.
지난달 페낭에서 사온 커피를 요리조리 살피다가 에라 하고 밀봉을 뜯었다.
페낭여행을 떠올리면서 분위기를 뛰워보려 하였건만, 내려서 들이킨 한모금의 커피는 달달한 페낭의 올드타운 앤 화이트커피랑은 맛도 질도 너무나 다르다. 헐.
일리커피는 이미 내손에서 아주 저멀리 떠나버리고 없는 지금........ 에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내렸나보다. 이걸 다 어째?
어제 비슷한 때 되니까 자동으로 울리는 카톡소리.
- 뭐하고 있어?
- 슬슬 운동나가볼까 하고.......
- 점심 사줄께.
- 어제 당신이 샀으니까 오늘은 내가 사야지?
- 당신은 오늘 일이 없었고 나는 벌었으니까 오늘 점심도 내가 살께.
- 잉? 그려?
그래서 기어코 어제 못간 달천의 양자강에 갔다.
5분 줄서서 기다려서........
탕수육 중간. 군만두 하나. 차돌배기 짬뽕 하나. 요렇게 둘이서 기어코 해치웠다. 말끔이.......
점심 사먹여 놓고는.......... 운동 시켜야 한단다.
그래서......
E 마트랑 롯데마트 죽어라 쑈핑하는거 쫓아다니고 왔다.
낼도 점심 사준다 하면..........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나마 충주엔 면세점은 없으니까 다행........... 휴.
양자강 짬뽕 정말 정말 강추입니다. 원조는 홍합짬뽕이 절대강추였습니다.
꼭 예약하고 가세요.
주말 휴일엔 1사긴 이상 줄서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나저나, 에고에고 이번 겨울에 살빼기는 다 틀렸다.
헬스장에서 땀흘리면 뭐해. 저렇게 사육하려 드는데.........
혹, 나 살찌워서 어디 팔아먹을데가 생겼나?
?
?
?
?
갈 때 가더라도............
낼은 뭐가 먹고 싶다고 말해야 하지? 고민되네................................................................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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