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이야기
인생이란
아주 먼 길을 혼자 가야하는 기나긴 여정이다.
그 먼 여정에 좋은 벗 하나 있으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다름 아닌 우암 송시열 선생의 말씀이다.
또한 인근 단양지방 도락산의 이름에 얽힌 일화이기도 하다.
길.
내게도 길이 있었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운명적인 그런 길이 아니라
내 부모가 나에게 소망을 담아주고, 내 스스로가 희망을 고스라니 담았던 그런 길 말이다.
쉰 여섯해의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나름의 긴 행로에서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다보자니 그게 어느 때였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애초 가고자 했던 나의 길에서 너무도 멀리 벗어나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날, 그 순간의 당혹감이란.........
모든 것은 내 스스로의 숱한 선택들에서 빚어낸 결과였건만..........
차마 두 눈 제대로 뜨고 쳐다볼 수없는 참혹한 현실이 바로 내 두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있었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길을 읽었다.
아니....... 어느 순간에 길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시간은 때론 도도하게 때론 침묵 속에....... 그리나 대부분은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저 묵묵하니 침묵 속에 고요히 흐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다시 길 위에 서 있다.
세월이 할퀴고 간 뒤라 지난날의 늠름함도 거칠 것 없던 걸음걸이도 어느새 시들어버리고 초췌한 초로의 노인 몰골이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길 위에 서 있고, 나름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걷고 또 걷는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애초에 내가 걷고자 했던 길이 아니라는 것은 결코 부인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내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선택의 결과였던 아니던........ 지금의 이 길이 아름다운지 아닌지도 알 수 없지만......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은 분명.......... 나의 길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길 위에서 묵묵히 걸어가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
내 발길에 부딪는 돌부리 하나, 신발을 알싸하게 적시는 이슬방울 하나, 저녁노을을 더 아름답게 수놓으려고 마구 달려가고 있는 새하얀 구름조각 하나까지 모두가 조물주께서 내게 주신 감격할 만치 위대한 축복이라고 느끼면서 걷고 있기 때문이다.
참 어리석고 방자하며 숱한 사연으로 오랜 방황을 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 난 참 행복한 놈이다. 쉰여섯이나 먹은 아직도 철부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세월이 우리들을 긍휼이 여긴다고...... 세월이 지우개처럼 지난 시간의 고통들을 지워 줄 거라고.........
마치 봄철의 새로 난 잎들이 무덤의 비석들을 덮어 주고나면, 이내 우리들의 삶은 다시금 거친 숨을 몰아쉬며 새로운 상승을 시작할 것이라고...........
어제 저녁 무렵에 소싯적부터의 오랜 친구로 부터 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남산등산로자락의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농장으로 불알친구들이 제법 여럿이 모여들 있었다.
나와 통화가 이루어져 가고 있는 중이다 보니, 모인 친구들의 화제가 온통 내가 되었던 모양이다.
- 너네 집이 중파 옆에 하천가였지?
- 아니야 문화회관 옆이었다니까?
- 재네 집은 원래부터 야현동이었어.......
그러고 보니 모인 친구 녀석들 치고 그 옛날에 서너 번씩 우리 집에 놀러오지 않은 녀석이 없어보였다.
녀석들은 모두들 제 기억과 주장이 맞다 목청을 돋우는데....... 정작 난 옛날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50년 전쯤에 충주시 야현동 천주교 옆에 있던 내가 태어난 생가.........
아마...... 요즘의 어디 전망 좋은 곳에 번듯하게 지어 놓은 별장에 비추어도 그리 못할 것이 없는 정도였던 것은 분명하다.
파란기와지붕에 사과 포도 자두등 유실수가 한두 구루씩은 고르게 심겨져있고, 마당 한가운데 괴석으로 둘러 싼 작은 연못엔 잉어가 놀고, 등나무에 야외식탁가지 갖춘....... 뒷마당엔 사냥개가 다섯 마리나 되고, 옆으로 반지하의 5평쯤 되는 개인 온실이 있어서 한겨울에도 치자 꽃이 피던........... 사직산에서 건너보면 성탄절에 충주에서 단 두 곳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섰는데, 큰 것은 야현성당, 작은 것은 우리집......
거기에다 늘 고운 한복차림으로 꽃꽂이를 하며 자수를 놓던 그 집 안주인에다, 우르르 친구들 몰려오면 꿩고기 노루고기 장조림을 내어주셨으니........ 또 집안이 군인집안이다 보니 타이밍만 맞으면 미군 씨리얼 깡통을 따고 쵸콜릿에다 카레맛에 버터맛이 듬뿍 뭍은 낯선 과자들을 꺼내왔었으니..........
그러나 그 기억들은 모두 우리 아버지의 길을 따라 어느 날 어디론가 모두 사라져버렸다.
나쁜 동무들.
사람 불러놓고 면전에서 가장 꺼내기 싫은 꼭 꼭 숨겨놓은 아픈 부분을 콕 콕 찔러댄다.
가만히 하나씩 둘러보자니........ 지난 시절은 지극히 힘들고 불우했지만, 모두가 지금은 나름 일가들을 이루고 나름 성공한 녀석들........
아무리 따져보아도 지금 내가 가장 힘들고 가장 모아 논 것도 없고 다져 논 기반도 없지 않은가?
- 배낭여행 간다며?
- 응. 근데 너가 그걸 어떻게 알아?
- 00 딸래미 청첩장 보냈더니 너가 그때 예정된 일 땜에 부득이 참석 못한다고 찾아가 부조 했다면서..... 그래서 들었어.
- 응. 두 달 전에 티겟팅을 한 것이라.........
- 암튼 대단해. 우리 나이에 달랑 배낭만 메고 무작정 해외라니?
- 이거 왜 이래? 여기서 일 년에 한 두 번씩 해외 안 나가는 녀석 하나도 없는 것 내가 아는데....... 골프 치러 나가는 것 까지 치면 수시로들 드나들면서........
- 골프가 여행이냐? 사치스런 오락이지?
- 나도 정말 모처럼 나가보는 거야.
- 암튼 대단해. 우리 나이에 여행사 안 끼고 달랑 비행기 표만 사서 마누라 손잡고 무작정 나선다는 것이........
- 저 놈. 마누라도 대단한 거지.
- 몇 시까지 차량 대기 할 테니 늦지 않게 나오세요...... 1시간 동안 구경하시고 차에 오르세요. 늦으시면 그냥 갑니다. 식사 메뉴는 이렇고 시간이 없으니 30분 만에 드시고 나오세요........ 뭐 뭐....... 이런 게 체질에 안 맞아서 패캐지 여행은 죽어도 못해.
- 이제까지 네 애기 쭈욱 하고 있었는데..... 암튼 넌 여러모로 참 특이해. 어러 가지로 아---주 특이해........ 뭔가가 다른 것 같아........
- 다르긴 뭐가 달라. 내가 많이 부족한 거지. 여러 가지 이유로 힘겨웠고 넘어지고 부서지다 보니 너희들에게 여러모로 많이 뒤쳐졌고......... 그런 저런 이유로 자주 만나지 못하니까 나란 존재가 좀 낯선 것이겠지..........
- 뭐가 뒤쳐지고 모가 부족해? 우리가 보기엔 네가 젤 행복한 것 같아.
- 에이 그럴리가......... 너희들은 모두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루고 지금은 누리며 지내고 있지만........ 난 지난 시간의 댓가로 지금도 하루하루 그저 열심히 땀 흘리며 노력하면서 겨우 살아갈 뿐인데..........
- 그런 것은 가지고 덜 가진 것의 정도차야 있겠으나 너 경우는 아닌 것 같아........ 힘든 시간 가졌고 가진 것이 좀 부족하다면 이해하겠지만....... 세상에 가졌던 안 가졌던 매 순간 돈 때문에 고민 안하는 사람 있어? 그런데 그 점에 있어서도 너는 아니잖아?
- 아니긴...... 나도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면서 얼마나 마음 졸이며 땀 흘려 일한다고........
- 미친놈. 거짓말. 네 놈이 돈 걱정하는걸 본 적이 없는데?
- 내색을 안 하는 것뿐이야. 또 아예 가진 것이 없으니까 그런 고민에 억매일 필요도 없고.........
- 돈이다 일이다 쪄들어 매달리는 놈은 너처럼 서너 달씩 전부터 작심해서 배낭여행 준비하고 기다리고 못한다? 알아? 참 가지가지 특이한 놈이야.
- 그러냐? 그럼 앞으론 좀 덜 특이하도록 노력하마. 자주 만나게 되면 그런 생각이 차차 줄어 들거야.
- 지금 여기 모인 우리들이 죄 다........ 자식새끼들 땜에 머리에 쥐가 나고 골병들어 죽겠단다. 넌 그런 고통도 모르지?
- 자식들이 왜?
- 하나 같이 취직을 못해서 꼴 보기도 싫은데, 허구한 날 백수로 몰려다니면서도 눈만 마주치면 돈 내놓으라고 졸라대니 그렇지. 자식이 아니라 웬수여 웬수....... 그렇다고 어디 내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우리가 그 아이들만 할 때 생각해 봐. 우리도 다 말썽꾸러기였어. 그래도 지금 이렇게 다 어엿한 가장들이 되었잖아. 그때 생각해서 조금 시간을 더 줘봐.
- 언제까지........ 아예 싹수가 우리 때랑 달라......... 정말 내 술 마신 김에 하는 말인데.......... 자식만 없다면 세상에 더 이상 아무런 고통이 없겠어. 알어?
- ......................(무거운 침묵)
- 도대체 비결이 뭐냐? 너 힘든 일 하면서도....... 가진 거 없다 면서도 늘 여유만만 해 보이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 좀 갈켜줘라? 우리도 따라 해보게.........
- 울 마누라 덕이지 뭐.
- 우리마누라도 너 마누라처럼 일해. 돈 벌어 온다고........ 그런데 아니여? 나는 그냥 외면하고 못 본 척 하면 되겠는데....... 마누라는 절대 아니야. 허구한 날 마누라가 애들하고 전쟁이여. 이거 정말 미쳐. 미치고 팔짝뛴다고.........
- 마음을 비워.
- 어떻게.........
- 애들 영특해서 어른들 이야기 모두 알아들어. 불러서 이야기 해. 엄마아빠의 경험에 의하면 너희에게 지금이 대단히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이제부터라도 너희 미래를 위해서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 나가라고........ 엄마아빠는 이제부터 한걸음 물러나서 지켜보기만 하겠다고........ 대신 너희들 스스로 선택한 결과에도 자신들이 엄하게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아예 싹수조차도 안 보이는 애들을 어떻게 믿으라고........ 아이고 머리야.......... 그럼, 넌 그렇게 하니까 제대로 되었니?
- ..........................(또 침묵)
- 너도 아들 하나였잖아. 잘 키웠다는 이야기는 들었다만........ 너는 어떻게 키웠냐? 자문이라도 구해보자.
- 난...... 너희들보다도 못했어. 난 아무것도 아들에게 한 것이 없어. 정말로.........
- 미치겠네. 아빠가 아무것도 안했는데 아들이 저절로 번듯이 커서 공부 잘하고 취직 잘하고 장가 잘 들고 그러냐?
- 대신 엄마가 눈물 많이 흘렸겠지. 정말 내 경우는 그랬어.
- 그럼 내가 벌었다는 것 다줄 테니 네 아들하고 내 아들하고 바꾸자. 단 한 순간이라도 나도 너처럼 살고 싶어.
- 그건 정말로 너나 너희들이 잘못 생각하는 거야. 난 어찌되었던 지극히 운이 좋은 경우였고, 너희처럼 그렇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아빠가 못되었어. 그리고 너희와 너희의 자식들과는 현재진행형인거야. 아직 아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고....... 좀 더 노력하면서 지내다 보면 달라질 가능성은 얼마던지 있어.
- 당장 매일매일 저녁에 집에 들어가는 것이 괴로우니까 그렇지..........
- 너도 오래전엔 애들 보면서 핏줄이라고 끔찍이 아꼈잖아.........
- 그 결과가 이러니까 더 미치는 거지..........
- 세상에 부모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100%가 자기자식을 끔찍이도 사랑한단다. 아닌 사람은 아마도 없을 거야. 그런데 그 자식이 성년이 되도록 자라는 것을 지켜보면서.......... 부모의 마음에 흡족한 자식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 한 절반 정도?
- 에이, 80% 정도는 실망에 더해 포기 일 테고, 잘하면 나머지 한 20% 정도?
- 아니야. 부모니까 사랑하는 것하고, 마음속까지 흡족한 것 하고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문제야. 한 5%도 안 나올걸?
- 5%가 다 뭐야? 아예 없어. 내리사랑이니까 부모가 그냥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거지 속마음까지 만족스런 아들은 하늘의 별따기겠지. 아주 어쩌다 혹간 있으려나? 그러니까 겨우 1% 정도나 있으려나?
- 맞어. 맞어. 그건 아주 지극히 희귀한 경우나 있겠지. 생각해 봐. 자식이 자연스럽게 부모의 마음에 온통 흡족하다는 거.......... 여간해서 있기 힘든 일일거야.
- 그럼 너가 꺼낸 이야기였으니까 너도 대답해봐. 너는 네 아들 짱구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냐? 앞의 어디에 속하냐?
- 나? 어찌되었건 난 그 1%라는 희귀한 경우에 속하는 웃기는 아빠야. 내가 노력해서 된 것은 아니지만...........
순간 모두가 입을 떡 벌리고 벙어리가 되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이어지다가 모두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함성을 지른다.
- 그랬구나...... 그랬어....... 그래서 네가 늘 행복해 보이고 여유만만 했구나.
- 세상에서 젤 부러운 것이 너한테 있었구나........
심지어 눈물을 흘리는 녀석까지 있다.
아 !
애초 내가 가고자 원했던, 그리고 내가 노력해서 가꾼 길은 아니지만............
난 지금 분명 내 길 위에 서있다.
그리고 새로워지기는
아들이 성년이 되었다고 느꼈던 그 순간부터 사실은........ 나의 길 이라는 의미가 거의 유명무실 해져 버렸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꾸불꾸불 휘어진 나의 길에서 불쑥 곁가지처럼 튀어나간 아들의 길이었지만.........
어느새 아들의 길이 내 길을 앞질러 추월해 나갔기 때문이다.
녀석의 길은 눈이 부시도록 찬연하고 눈물이 나도록 아름답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이것이 내길 입네 하고 산 넘고 물 건너는 그런 젊은 날의 행각 같은 것은 모두 잊기로.........
난 지금 아들의 뒤 쪽으로 서너 불럭 남짓 떨어져서 녀석이 길을 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죽어라 그 뒤를 쫓고 있다.
나의 이미 낡고 피폐해진 엔진이 포르쉐 같은 녀석의 엔진을 따라 잡기가 심장이 터질 정도로 벅차지만........
그래도 난 내 엔진의 연료를 모두 태우고 정지해야만 하는 그 순간까지 온 힘과 마음을 다해 녀석의 뒤를 쫓아갈 것이다.
나는 녀석을 하염없이 바라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행복하니까.
녀석이 나란히 앉아서 눈을 마주치며 도란도란 이야기라도 나누어주는 날에는 정녕 내가 아직 살아있음에 신께 감사를 드리곤 한다.
- 아빠. 이제 말레이시아 갈 시간이 한 달도 안 남았네요?
- 그러네. 너가 이번에 다녀온 이탈리아가 그렇게 좋았다니 이참에 아예 아빠가 내년에 이탈리아 갈 계획을 또 세워볼까?
- 그러세요. 내년에 아기 낳게 되면 몇 년은 저희가 여행을 못 할 테니 엄마아빠나 실컷 다니셔요. 옛날엔 터키 얘기 자주하시곤?
- 그럼 아들 말에 용기 얻어서 심각하게 좀 더 생각을 해볼까?
- 다음 주에 엄마 편에 아빠 용돈 보내드릴 테니 여행에 보태세요. 모자나 선글라스도 새로 사시고요.
- 경비는 충분하단다. 환전도 이미 다 되어있고.
- 제 마음 이예요. 그리고 아빠 용돈은 제 비자금에서 몰래 보내드리는 거니까 며느리 알면 안돼요?
- 허허허. 아들, 장가든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비자금이야 비자금이?
- 아시잖아요. 남자가 밖에 일 하다보면 때론 비자금이 꼭 필요하다는 거요.
- 허허허. 이거 우리 아들 완전히 어른이 다 되었네. 어른이.........
- 이게 다 아빠한테 배운 거예요.
- 그런 건 안배우고 안 닮아도 되는데..........
- 아빠 핏줄이 어디 가나요? 부디 앞으로는 무조건 즐기면서 사세요. 저희들 삶은 스스로 알아서 잘 할 거예요. 실망 안 시켜드릴께요.
오늘도 나는 걷고 또 걷는다.
부러 배낭에 무거운 책을 몇 권 골라서 넣어 메고는 들로 산으로 뛰쳐나간다.
포르쉐 쫓아가려면,
내 엔진에 출력을 꾸준하게 유지시켜야만 하니까..........
오늘은 탄금대를 지나 가금면 탑평리 중앙탑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너무도 아름다운 가야금교와 돌아다 보니 지나온 탄금대의 전경 또한 무척이나 아름답다.
마치 동유럽의 어느 이름난 휴양지를 연상시킬 정도로 매력과 아름다움이 넘치는 이곳의 풍광에 난 한참을 머무르면서 연실 셔터를 눌러야만 했다.
가다보면 황금박쥐 서식처가 있다. 이곳의 보존문제로 인근의 도로공사가 엄청난 난공사로 큰 애로를 겪었다.
남한강변을 끼고 끝없이 이어지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길.
새로 생겨난 웅장한 새 길에 뒷전으로 밀려나 앉았지만, 구길도 나름대로 연전히 꿋꿋하게 서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도 아름다운 옛길.......
차마 이 아름다움을 그냥 두고 돌아서기가 너무도 아쉬웠던 풍경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야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소원) 이야기.
내 경우는 대략 한 세 가지 정도의 소원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고 있다.
이 경우가 모두 왕짜증여사와 연관이 있는 소원들인데 마주보고 앉아서 진지하게 이 소원에 대해서 논해 본적은 없다.
첫 번째 소원의 경우는 가슴 아주 깊은 곳에 꼭 꼭 숨겨놓고 단 한 번도 입 밖에 꺼내본 적이 없기에 그냥 패스........
두 번째 소원은 분명하게 왕짜증여사가 눈치로 쨘 하게 파악을 한 느낌인데, (불가! 그러니 기대를 접으시는 게........) 하는 표정이다.
내 맘속에 내 멋대로 소원이라고 담고 사는 거........ 그거야 말로 완전 엿장수 맘대로 지. 칫....... 눈치는.........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소원은 요게 생각하기에 따라 좀 웃기는 소원이다.
웃기다 못해 수시로 바뀌는 소원이니 말이다. 여기서는 그 웃기는 세 번째 소원 이야기를 하고 싶다.
본시 소원이란 게 간절함을 담는 열망이요, 여간해선 이루어지기가 힘들어서 소원이라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간혹 그 간절한 열망이 이루어지게 되면 소원성취란 이름하에 그 소원은 소멸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세 번째 소원은 툭하면 새로워지고 잘도 이루어지고 또 항상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그러는 이상한 소원이다.
그럼 소원이 아니라고 치부해 버려도 좋으련만 난 죽어도 그것이 소원이라 우기며 늘 그 소원을 빌고 또 빌어본다.
지나간 8월의 중순쯤에 지금 열망하는 소원이 모두 다 성취되었다. 그 세 번째 소원이란 놈이 벌써 공소시효를 다 했다는 말이다.
그 소원은 지금 한창 열심히 진행 중이며 거의 완료형으로 변해가는 중 이건만,,,,,,,,, 내 마음속에는 차마 아직 꺼내지 못하고 있지만 벌써 다음번 새로운 소원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뛰쳐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
이번 페낭여행에서 네 번째 밤쯤 지나고 나면 슬쩍 새 소원을 꺼내야겠다고 작정하고 있었는데, 이참에 말이 나왔으니 지금 진행형의 소원이 아닌 다음번 차례를 기다리는 소원 이야기를 해보아야 할까보다.
- 여보야. 네 말대로 나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가는 것 같아. 우리 여행가자.
- 가. 아무 때고....... 며칠 전에만 계획 이야기 해 주면 스케줄 조정해서 가면 되지 뭐.
- 멀리 가자. 아들놈만 맨 날 뱅기 타고 다니냐? 우리도 뱅기 타자.
- 우리도 뱅기 타면 되지. 어디......... 또 제주도?
- 아니....... 페낭.
- 웬 페낭? 거 어디 말레이시안가 어딘가 하는데?
- 응. 페낭 가고 싶다.
- 지쳐서 쉬고 싶다면서........ 그 먼데를 이 더울 때 가려고 해? 차라리 발리나 푸켓이나 가지?
- 소원이야. 페낭 가고 싶어.
- 또? 에라이 그 아무짝에도 쓸데없이 수시로 이랬다저랬다 하는 소원....... 툭 하면 소원......... 소원....... 무슨 넘의 소원이 그렇게 헤퍼?
- 그것도 내 맘이지....... 암튼 소원이야...........
- 소원? 할 수 없지 뭐 소원이면 가야지......... 그래 가자...........
순전히 이런 식이다.
그 세 번째 소원이라는 것이 죽으나 사나 온전히 여행에만 한정되어있는 간절함의 반복인 것이다.
그 이틀 뒤에 출장 중에 우연히 집에 들른 아들을 컴 앞에 앉혀놓고, 아빠는 열심히 여행스케줄을 설명을 하고, 엄마는 미련 없이 카드를 꺼내어 건네주고, 아들은 인터넷을 통해 뱅기 표를 티겟팅 하는 순간.......... 그 순간까지 가졌던 내 간절한 열망은 무사히 맡은 소임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원 성취.
사나흘 고심하면서 역시 마눌 카드로 호텔들을 예약하고 바우처를 프린트 하면서......... 어느새 내 가슴은 또 다른 새로운 소원을 꿈꾸기 시작하고 있었다. 단 그 외의 나머지 경비는 기꺼이 아빠가 쏜다. 이미 환전도 완료.
이 글을 모두 마칠 때면 들통이 날 수도 있겠으나....... 별반 걱정은 안한다. 거부권이 행사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왜냐면....... 소원이니까............
아마도 다음 달 한 6일 저녁쯤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새 소원을 밝히는 시점이..........
노을이 붉게 물들어가는 페낭의 수상가옥 테라스에서 주점부리를 하면서 운을 뗀다.
- 여보야. 여행이 절반쯤 지나가고 있는데 이번 여행에 대한 소감이 어때?
- 어떻긴 뭐가 어때? 본인이 원했던 여행이 절반이상 지났으니까 이쯤에서 또 다음 소원이 생겼느니 어쩌니 수작 부리려 하는 거 아냐?
- (움찔)............
- 뭐, 하루 이틀 겪어보냐? 그래 이번엔 몬데........ 뻔하지 뭐. 이미 들통 다 난거 아니야?......... '여보야, 우리 내년엔 그렇게 고대하던 터키나 가자. 이번엔 절대로 편안하고 느릿느릿 힐링 맘껏하게 내가 지극한 정성으로 편안하게 잘 모실 테니 한 열이틀쯤 잡고 내년엔 터키가자' 이러려고 지금 개폼 잡고 있는 거 아냐. 아냐? 아냐?
- (와!).......... (이 여자 정말..........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 교회 다닌답시고 어디 몰래 굿당 만 찾아 댕기는 거 아녀?)
- 까짓 꺼. 여기까지도 이렇게 다니는데 못갈 것 있나? 가자 가. 내년엔 터키로 가자고. 됐지? 이 말 하려고 그런 거 아냐?
- 아......... 아닌데........... 그게 아니고...........
- 아니야? 그럼 뭔데........ 답답타? 그냥 시원하게 까발려봐라?
- 터............ 터어.......키가 아니고........
- 터키가 아녀? 그럼 어딘데?
- 돌.로.미.테...........
- 돌로 메치기는 뭘 메쳐? 그래 좋아....... 그 돌맹이가 어디 있는데?
- 이.태.리.
- 이태리면 아들이 수도 없이 칭찬 하드만....... 이제껏 여행 중에 로마가 최고라고. 그럼 어디 그 돌맹인가 뭔가가 로마 인근이여?
- 아녀. 북쪽으로 한참 떨어진 국경지대 산악지방.........
- 한참 북쪽? 그럼 거긴 뭐가 있는데?
- 산...............
- 산? 세상에 맨 천지가 산인데....... 산 말고 또 뭐가 있는데?
- 사방으로 나 있는 환상의 트래킹 코스들.............
- 아이고 잉간아. 죽어라 하고 걸어 다니는 것, 나한텐 지겹도록 힘들다니깐........ 이젠 아예 외국의 깊숙하고 험한 골짜기로 끌고 다니려고? 그래, 그 돌맹인지 뭔지 거기는 며칠이면 돌아보는데?
- 제대로 돌아다니려면........... 한.......... 두 달쯤......... 그래서 한 이십일 정도만 갔으면 하는데........
- 이탈리아에서 이십일? 이십일? 거기 물가 디지게 비싸다면서 이십일씩이나? 당신 그 경비 충당 쉽게 되겠나?
- 글쎄 그게 가장 큰 고민이기는 한데............
- 항공료만도 엄청날 텐데.......... 물가 비싼 유럽의 선진국에서 이십일을 돌아다니자고? 당신이 이렇게 말을 꺼낼 정도면 벌써 대충의 스케줄에 견적이 나왔다는 말인데......... 결국은 시방 나랑 여행경비 반땅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야? 결론은 그거지......... 그래, 내 몫이 얼마면 되는데?
- 반땅이 뭐냐? 반땅이......... 마누라도 능력이 있으니까 쬐금씩 서로 도와서 행복한 여행하자는 거지. 당신이 한 300만 부담해 주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야.............
- 개뿔. 책임은 무슨 책임......... 계산기 뚜드려보니까 대충 견적이 한 600 나오더라는 이야기지. 내가 모를 줄 알고........
- 더 연구해서 줄일 수 있는 부분에서 줄여보면 그만큼 부담도 줄어드는 거고...........
- 시방 나한테 이렇게 통보하는 것은 어찌되었건........... 죽어도 가기는 간다는 말이잖아. 시방 통보하는 거잖아?
- 통보라니........ 어디까지나 상의 하는 거야 상의. 협조를 구하면 안 되겠냐고..........
- 개뿔. 그럼 내가 안 간다고 하면 안갈 꺼야? 또 소원이니 어쩌니 하면서 기어코 갈 거잖아....... 그게 당신 속셈이잖아?
- 이게 어디 나만의 욕심이니? 다 우리가 함께 육신 멀쩡하고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너에게 좋은 구경 많이 시켜주고 싶은 내 소망 이자 애정표현이지.............
- 개뿔. 그럼 어디 가까운데 라도 반땅 없이 그냥 초대하듯 모시가 봐. 한번이라도..........
- 어허. 그건 어디까지나 마눌의 능력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에서 조금만 서로 협조하자는 것이지....... 내가 언제 돈 내라고 한적 있어?
- 같다 붙이기는........ 그런데 정말 내 부담금이 그거면 되겠어? 이탈리아 이십일이면 한사람이 500이나 600 가져야 하는 것 아니야? 당신 견적 잘못 계산한 것 아니야?
- 그건 내가 나름으로 최선 최대의 방범을 찾아내서 아주 근사치까지 산출한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 돈이면 충분히 다녀온다. 계산착오면 그 나머지는 내가 다 부담한다. 내가 다 책임 져.
- 당연히 패케지는 아닐 테고......... 혹시 죽어라 값싼 민박집만 찾아다니느라 여행이고 뭐고 뒤지게 발품 파느라 쫄쫄이 굶고 맘고생만 시키는 것 아녀?
- 에헤이 에헤이....... 노 프라블럼.......... 마이 레이디. 트러스트 미......... 플리이이이이이이이즈.............
- 그럼 세세한 여행 스케줄과 예상경비 지출계획을 언제 오픈할거야?
- 일단 금년 지나서........... 미리미리 살피다가 프로모션이나 다른 행사라도 있으면 즉시 티켓팅을 하고....... 그리고 나면 또 즉시 오픈할께......
- 개뿔. 또 그러고 나면 오픈하나 마나지......... 다 저질러 놓고 배 째라 이거 아니야? 내 의사는 반영이고 뭐고 없고.......
- 날 못 믿어? 그렇게 함께 다녀 놓고? 내가 언제 고생만 죽어라 하는 안 좋은 여행 데리고 간적 있어?
- 많지? 허구한 날 죽어라 고생만 시켰잖아. 물론 죽어라 고생한 여행 추억이 더 오래 강렬하게 남았지만........
- 고생 시키려 부러 그런 게 아니라니깐? 추억에 오래오래 남기려고 부러 그렇게 계획한 거라니깐............."
- 개뿔. 항상 말로만 번지르르해............. 종아. 내년여행은 돌맹인지 어딘지로 결정 난거다? 내 부담금 300. 그럼 됐지?
- 오 케이. 돌맹이가 아니라 돌로미테....... 돌로미테 트레치매로 트래킹을 간다고......... 푸하하하하하
이건 안 봐도 파노라마다.
여하튼 우리는 내년에 이탈리아로 간다.
이쯤 되면........ 새 소원도 어느새 반쯤은 또 이뤄지는 것이다.
이것이 나만의 독특한 세 번째 소원이다.
여기가 돌로미테 이다.
이탈리아 북부 국경지대의 산맥으로, 쉽게 다시 표현하자면 알프스산맥의 동남쪽 끝자락쯤이라고 할까.
* 각주 : 내가 아직 돌로미테 여행을 하지 못하였기에 당연히 아직은 가진 사진이 없다. 하여 나에게 돌로메테의 아름다움을 각인시켜준 앞선 여행자들의 블로그에서 사진들을 퍼서 옮긴다. 다른 일체의 상업적임을 포함한 의사가 없이 단지 돌로미테의 아름다움을 옮겨보고 싶어서였으니 부디 이해와 배려가 있으시기를.......... 대신, 나의 여행이 끝나면 많은 아름다운 사진들을 올려서 충분히 공유 할 것이다. 나의 블로그에 게재한 모든 사진들에는 어떠한 조건들도 달리지 않았다. 누구나 퍼가도 좋다.
이번 말레이시아 여행도 아직 코앞에 남아있는 시점에서 나는 이미 내년의 돌로미테 여행을 꿈꾼다.
왜냐면....... 소원이니깐 !!!!!!!!!!!!!!!!!
최소의 경비로 물가 비싼 이탈리아를 20여일에 걸쳐 여행하려는 나의 속내는 별반 특별할 것 없이 지극히 간단하다.
유럽의 크고 작은 항공사의 프로모션들을 잘 살피다가 이 정도다 싶으면 무조건 태켓팅 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목적지는 이탈리아 밀라노나 베네치아 중에서 더 유리한 프로모션이 내걸리는 지역으로....... 그럼 절반은 이미 성공.
시기는 2016년의 8월말쯤이나 9월 초순,
우리는 단풍여행이 성수기이지만, 유럽 사람들은 여름휴양시즌과 겨울스포츠시즌을 위주로 성수기가 형성되니까 비수기의 시작쯤을 이상적인 여행시기로 판단해서........ 그리고 여행기간은 최소 20일에서 며칠 넘겨도 무방하리라.
그리고 나면 흔히들 남들의 경우 항공권만큼이나 중요시하는 여행기간내의 이용할 호텔들을 고르고 골라서 예약을 해야만 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호텔예약 일정이 전혀 없다. 여행도중 피로누적이나 건강상 이유로 한두 번 호텔을 찾을 경우야 생길수도 있겠으나, 애시당초 내 이탈리아여행 스케줄에는 호텔이 통째로 빠져있다.
대신 내 방에 붙은 또 다른 한 칸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들어앉아있는 소중한 캠핑장비들 중에서 최우선 주안점을 무게(부피)에 두고 최선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과제가 대신 남겨져있다.
물가 비싼 이탈리아의 호텔 숙박비와 매 끼니마다의 레스토랑 이용을 대신할 최선의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캠핑여행 뿐이다.
항공기 수화물 기준에 맞춰 캠핑 장비를 줄이고 또 줄이고......... 부피가 나가는 꼭 필요한 것은 현지에서 구입하기로 한다.
다음으로 그 무거운 장비들을 미고 메고 들고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다녀야만 하느냐?
아니다. 이 부분은 렌터카가 대신한다.
캠핑카가 더 좋겠지만....... 캠핑카는 호텔숙박비에 못지않게 높은 비용을 필요로 하고, 또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기동성면에서 많이 뒤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하여 어느 정도의 짐을 넉넉하게 싫을 수 있는 렌터카를 선택했다. 렌트비와 보험문제를 완벽하게 커버한다 해도 애초 내가 생각했던 비용보담은 훨씬 저렴했다.
그리고 나면 이제 이탈리아여행 준비도 마무리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베네치아나 밀라노 비행장에서 내려 입국수속을 마치면, 곧바로 공항에서 렌트카를 인수하고 가져간 장비들을 싣는다.
공항을 빠져나와 대형마켓을 찾아 나머지 필요물품과 식품들을 챙기고.......... 다음으로는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무조건 이탈리아 반도의 북쪽을 향해 달려 나가면 된다.
볼차노의 자이저 알름 캠핑장으로 갈까? 그러면 다음날 알펜 디 시우시 트래킹을 할 텐데........
코르티나 담페초로 갈까? 최고로 가고 싶었던 트레치메 트래킹을 곧바로 할 수 있을 테니까..........
에이. 아무려면 어때...... 모두가 다 돌로미테 품안인걸.
그리고 어떻게든 꼭 다 둘러보고야 말 것인걸.........
한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는 여기 돌로미테에서 지겹도록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어보자.
그러다 정말로 돌로미테가 지겨워질 즈음이면 텐트를 걷고 다시 길을 떠나기로 하자.
알프스산맥에 걸쳐있는 악명 높은 3대 드라이브코스를 아찔함을 즐기며 맘껏 달려보자.
스위스로 넘어가 마터호른. 융프라우. 그리고 몽불랑을 찾아가 보자.
스위스 쪽의 알프스를 두 눈에 가득 넘치도록 담아보자. 인스부르크나 인근의 소도시도 둘러보고........
그러다 또 지겨워지면....... 프랑스 쪽의 알프스도 둘러보던가........
아님 미친척하고 크로아티아로 달려 가보자. 두브로니우크의 빨간 지붕이 아름다운 그곳까지도 달려 가보자.
운전이라면 지금도 지구 몇 바퀴쯤은 논스톱으로도 달려갈 자신이 있으니까.........
나머지 며칠의 여행기간이 남으면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와야지.
베나치아든 밀라노든 입국한 곳에서 출국해야만 하니까, 그 곳에 머물면서 느긋하게 며칠 인근을 여행하든가........
훌쩍 피렌체을 다녀오던가........
그것도 아니면 또 한 번 미친척하고 먼 중부의 로마가지 내달려 보는 거지 뭐.
아들이 극구 찬사를 보내던 로마를 한 이틀쯤 돌아보는 것도 좋겠지 뭐.
그리고, 그때쯤엔 또......... 이미........
그 다음해의 새로운 소원이 내 가슴 가득 들어차 있을 것이고.........
마눌님은 또 푸념을 잔뜩 늘어놓으면서도......... 결국엔 또 지갑을 열겠지?
맨 날 반땅이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난 앞으로도 늘 그런 말도 안 되는 억지의 소원을 꾸준히 꾸며 살아갈 것이다.
슬며시 내가 내미는 손길을 그녀가 거절하지 않는 순간까지는 말이다.
적어도 함께 살아 숨 쉬는 날까지는........
위의 사진들 속 산허리에 실선처럼 그어진 흔적들을 따라 마냥 걷고 또 걸으면 장엄하고 위대한 대자연의 품속으로 파고들어가는 것이 이곳 돌로미테의 트래킹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함난한 길.........
나는 그 보이지 않는 끝까지 가보려 한다.
돌로미테 트레치메트래킹.......... 이 순간 내가 가진 소원이다.
거기에다 한 10년 후 쯤에는 아주 더 기가 막힌 소원을 나는 꿈꾸고 있다.
이 10년 후의 소원이 이루어 지고나면....... 어쩌면 그 후로는 더 이상 이 소원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해도 아쉬울 것이 없을 것만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대하신 조물주의 은총으로 나의 생명선을 10년은 연장 받아야 하고........
최소한 지금 정도의 건강과 체력을 꾸준하게 10년 이상 유지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시간만 나면 어디로든 배낭을 꾸려 메고 걷고 또 걷는다.
그렇게 열심히 걷는 내 발걸음엔 10년 후의 소원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예쁜 딸(며느리)가 말했다.
- 내년에는 손자이던 손녀든 꼭 보여드릴께요.
-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또 하나의 원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정말 기가 막힌 소원 하나가 파노라마처럼 완벽한 스케줄까지 잘 꾸며진 상태로 순간처럼 내 눈앞을 스쳐갔다.
아들 부부가 자식을 낳아준다니........
당연히 딸 아니면 아들일 것이다.
딸이면 7년쯤 후에 왕짜증여사와 며느리를 불러놓고 소원을 피력하면서 내가 34% 왕여사가 33% 며느리 33% 뿜빠이 하자고 젊잖게 사정해야겠다.
아들이면 왕짜증여사와 아들을 불러놓고 내가 34% 왕여사 33% 아들 33% 뿜빠이 하자고 협박을 해야만 하겠다.
태어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해에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멀고 긴 여정의 여행을 할 수 있기를 너무도 간절하게 나는 소원한다.
이 할아버지가 손녀 혹은 손자에게 이 세상에서 남겨주고 싶은 마지막 선물일 수도 있겠다.
아마도 나의 일생에서 가장 간절하게 소원하는 유일한 여행은 바로 그 여행이 될 것이다.
꼭 손자나 손녀와 단 둘이 하는 그런 기나긴 여행..........
혹, 그때도 마눌님이 총경비의 절반을 부담하면서까지 죽어도 따라 나선다면이야 계산기를 다시 두드려보고 나서야 결정하겠지만........
녀석들도 제 몫의 배낭을 스스로 메고 여행 내내 제몫의 역할을 수행해야만 하는 그런 진정한 트래킹........
아마도 여행 내내 보여주고 남겨주고픈 이야기가 내겐 너무도 많을 것만 같다.
손녀이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레킹이라는 따뜻한 뉴질랜드의 남성에 있는 밀포드 사운드 트래킹을 선택할 것이다. 오일정도 대자연속을 걷겠지.
아!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아름다운 여행이 될 것만 같다.
손자이면 트래킹의 세계3대성지라 불리는, 건장한 어른들에게도 결코 만만치 않다는 북부 스웨덴의 쿵스레덴 트래킹에 도전할 것이다.
426km의 원시에 가까운 순수 대자연속에서 추위와 눈보라와 비바람도 겪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생존을 전제로 앞으로 나가야만 하는 몹시 힘겨운 트래킹 코스다. 그 중에 최소한 110km 정도를 25kg 정도의 배낭을 메고 1주일에 주파하는 코스를 선택해서 손자의 손을 꼭 잡고 걸어보는 감격을 소원해 본다.
어쩌면 손자가 살아가면서 그 때의 할아버지를 평생 동안 원망하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난 기꺼이 감내할 준비가 되어있다. 손자가 따라나서 주기만을 간절하게 바랄뿐..........
아직 태어나지도..... 어쩜 아직 생겨나지도 않은 녀석들을 대상으로 나는 벌써 소원을 간직하기 시작하고 있다.
신이시여! 저의 육신과 가슴속의 용기가 그때까지 만은 온전함을 잃지 않고 잘 견뎌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소서.
온 마음을 다 받쳐 엎드려 기도합니다.
스웨덴의 쿵스레덴 트래킹코스.
뉴질랜드 남섬 밀포드 사운드 트래킹코스.
그리고 (챠밍) 이야기
엇 그제 대청소의 수준을 지나쳐 수술정도의 정리 작업을 했다.
무질서 하게 쌓아 놓고 이제는 별반 필요치 않게 생각되는 책들도 어느 정도 버려야만 했고, 서랍이나 여기저기에 쌓아둔 노트며 메모들도 뒤적여 보고나서 과감하게 버릴 것은 버려야만 했다.
버리려고 쌓아놓고 있는 쪽으로 아주 오래되고 낡은 표지의 낙서장 하나를 툭 하고 던졌는데, 순간적으로 어떤 알 수없는 느낌이 순간처럼 스쳐지나갔다. 하여 내던졌던 낙서장을 다시 집어 들고 한 장 한 장 넘겨보는데............
낙서장 뒤쪽 끝부분의 한 페이지에서 아주 낯익은 필체로 빼곡하게 써내려간 편지 하나가 두 눈 가득히 들어왔다.
난 이 글씨체가 누구의 필체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내가 메모해 놓고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 글씨를 내가 잘 읽지 못 할 정도의 악필인 내 노트에 가지런히 써내려간 이 필체는 다름 아닌 우리 왕짜증여사의 글씨이다.
편지에는 그 시기가 언제였는지 기록이 없지만, 난 그 해가 밀레니엄이었던 2000 년이었음을 너무도 생생하게 잘 기억하고 있다. 이 편지는 2000년 가을............. 나에게 닥친 엄청난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고 체념하다 못해 삶 조차도 포기하고 싶어서 집을 뛰쳐나와 생을 마감할 시기와 장소와 방법을 모색하던 바로 그런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나도 없는 내 임시거처에 찾아와서 적어놓고 간 왕짜증여사의 메모 같은 편지였다.
그리고 왕짜증여사가 다녀가기 한 주일 전에는 먼 곳까지 찾아온 아들을 만났었다. 아직도 나에겐 모두가 바로 엇 그제 같은 생생함으로 남아있다.
좌절과 체념으로 오래전에 뛰쳐나간 아빠를 어찌어찌 수소문해서 아들이 찾아온 것이다.
모날 모시에 모 터미널에 아들이 도착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는 순간부터 온통 내 가슴을 차지하고 들어앉은 것은 미안함과 부끄러움과 두려움이었다. 그날의 그 기억을 난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버스에서 내려 촉촉해진 눈망울로 다가와 말없이 내 품에 안기던 아들. 거의 8 개월여 만의 부자상봉..........
다음날 다시 터미널에서 집으로 돌아가면서 아빠 손을 잡고 아들이 하던 말.........
- 아빠 저도 이제 다 컸어요.(당시 고1) 그래서 이제 세상일에 대해서 다 알고요. 제 스스로 세상 잘 살아나갈 자신도 있어요. 그런데요......... 저에겐 아직 아빠가 필요해요. 꼭 돌아오세요.............
그래서 난 다시 돌아왔다.
아무런 이유도 명분도 없이 난 그냥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험난한 여정이 내 앞에 놓이고 아무리 감당할 수 없는 댓가가 내 앞에 놓아졌다 해도 난 돌아와야만 했고, 아직은 꼭 살아있어야만 했다. 아들이 허락하지 않고서는 난 어디에도 갈 수가 없었다.
애초의 길로 다시 되돌아 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살아서 꾸준히 나머지 길을 가야만 했다.
부단한 노력으로 본래의 길에 가깝게 다가가야하기도 하겠지만..........
최소한은 아들의 마음에 기꺼운, 더 이상은 녀석이 실망과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되는 그런 길까지는 어떻게든 가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되돌아 왔고 오늘 이 순간까지 계속 살아서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편지가 내가 다시 발걸음을 돌려 되돌아온 내 임시거쳐의 책상위에 놓여있던 편지였다.
이 편지 이후 되돌아 온 나에 대한 완짜증여사의 고문은 더욱 심해졌다.
참견과 지적과 재촉이 끊이지를 않았다.
그래도 나는 견뎌내고 이겨내야만 했다. 왜냐면 그녀의 생각과 선택이 대부분 옳았으니까......... 또 아들이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왕짜증)이었다.
그 후로 이 순간까지 나는 아내를 왕짜증여사라 불러왔다.
처음엔 정색을 하고 싫어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포기했는지 체념했는지 (왕짜증여사)를 자신의 고유명사 내지는 애칭으로 받아들이는 표정으로 이제껏 지내왔다.
31년 전.
1984년에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났었다.
솔직히 아주 예쁜 모습은 아니었지만 168cm 키에 허리까지 자란 긴 머리를 세겹으로 감아 묶고 나타난 그녀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는 한 웅큼 움켜 쥔 프리지아 꽃다발의 향기가 났다.
그녀에게 챠밍(charming)이라는 별명을 지어줬고, 챠밍 챠밍 하고 쫓아다니면서 작업을 걸었다.
결과로, 우리 사이엔 짱구라는 31세가 된 멋진 아들을 하나 두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녀의 e-mail 주소에는 charming 이라는 영문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그제 우연히 그날의 편지를 다시 읽게 되는 순간부터 이제 (왕짜증여사)라는 호칭은 치워야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내에게 챠밍이라는 옛 이름을 다시 되 돌려주어야 만하겠다.
이제 사 가만히 생각해 보니.......
처음부터 (왕짜증여사)라는 별명은 그녀에겐 아주 안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이제 그녀의 이름은 다시 (챠밍)이다.
훗날 아무 때고 내 성질 건드리고 못되게 굴면 그땐 다시 왕짜증여사가 되는 거고........
암튼 지금은 다시 (챠밍)이다.
가만........ 그렇게 되면........
우리 집 명패에 적혀있는 내 별명이 산적인데............ 마눌님이 영문으로 개명을 하게 되면, 나도 당연히 영문으로.........?
싼초.
페르디난도 싼초.
싼초 이스 마이 내임.
- 끝. 2015.10.04.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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