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그러고보니 영화기행은 참 오랫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챠밍여사와 나는 거의 한 주에 한 편 정도는 영화를 감상하는 나름 영화매니아이다.
그랬음에도 이렇게 간만에 영화기행을 다시 쓰려고 하니 왠지 어색해짐을 떨치지 못하겠다.
이번엔 오랫동안 기다렸던 (레버넌트)를 개봉 다음날 저녁에 감상했다. 장장 런닝타임이 2시간반을 훌쩍넘기는 영화를.
(레버넌트)는 꼭 보시라고 강력하게 추천하고픈 영화이다. 그것도 영화관에서 대형화면으로 꼭 보시라 권하고 싶다.
지난해 가을 이후로 감명깊었던 영화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007 스펙터)와 이번 (레버넌트)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007 스펙터)를 꼽는 이유는 전편이었던 (스카이 폴)을 위시해 지난 몇 편의 007이 좀 진부했었는데, 정말 60년대 초창기 숀 코널리의 첩보영화로 완전하고도 완벽하게 회귀한, 그야말로 고품격 액션영화의 진수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미션 임파스불 시리즈)나 (본 시리즈)등 상상을 초월하는 액션영화판에서 (007 스펙터)는 '액션영화도 이렇게 품위있고 맛깔스러울스 있구나'의 진수를 듬뿍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초반 도입부의 카메라 롱 샷 테크닉은 감동을 넘어서 너무도 충격적인 영상미의 극치였다.
(레버넌트)라는 자막과 함께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안되어서 나의 뇌리에 스쳐가는 단어는 바로 이것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옴팡지게 고생하며 찍었겠구나' 였다.
출연배우나 스텝들이나 정말로 어마어마한 고생을 감내하고 완성해낸 영화라는 강렬한 느낌이 감동으로 승화되었다.
오스카를 염원하던 디카프리오는 '이거다 싶어 출연했다' 했지만, 아마도 나라면 이 영화의 대본을 받아보는 순간 당연히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끝에 사양했을것 같다.
이 영화에 비하자면, 오스카를 수상한 (늑대와 춤을)의 케빈 코스트너 패밀리들은 아마도 야외 캠핑을 즐기면서 찍는 기분 아니었을까? 그만큼 (레버넌트)는 힘들게 완성된 영화이며........ 대단히 감동적인 서사시이다.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
'어지러운 혼돈속에서는 배반과 동지의 차이가 날카로운 칼끝의 두께만큼이나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배반도 동지도 그 칼끝만큼이나 작은 틈새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차이에서 시작된 일들의 결말을 우리들 사람으로서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물주의 영역인 것이다.
하지만, 비록 조물주의 선하신 베푸심에서 시작된 우리들의 삶일지라도 그 선택은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몫인 것이다.
배반을 택하는 것도 사람의 일이요.
동지를 선택하는 것 또한 사람의 일인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레버넌트) 속의 주인공 휴 글래스를 추모하면서...............
바다를 건너 신대륙에 도착한 유럽의 백인들이 대자연의 재해와 싸우고, 대륙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부족들과 싸우고, 또 각기 다른 유럽에서의 출신지들 문제로 서로 혈투를 벌이며 생존과 정착을 위해 치열하게 삶을 꾸려가던 1823년 경.........
숲에서 사냥을 해서 거기에서 획득한 징승의 가죽을 생게수단으로 삼던 한무리의 사냥꾼들이 정착지를 벗어나 멀리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가 인디언지역의 영토 깊숙한곳까지 들어가 여러날을 머물면서 사냥에 주력하고 있었다.
이 사냥꾼무리의 길안내를 맡은 휴 글래스(디카프리오)는 인디언여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 호크를 동행하고 있었다.
한편 같은 무리의 사냥꾼인 피츠제럴드(톰 하디)는 다른 무리들과들 결코 원만하지 못하였으며, 특히 글래스와는 앙숙 관계로 그의 아들 호크를 유난히 멸시하고 천대하였다.
한편 아리카라 인디언부족의 족장은 자신의 딸을 납치해간 백인들이 바로 글래스의 사냥꾼 무리라 판단하고 이들의 사냥터를 습격한다.
인디언의 급습으로 대다수의 사양꾼들이 몰살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자들은 그동안 수집한 가죽들을 일부는 포기하고 일부는 숨겨놓고, 극히 일부만을 짊어진 채 그들을 구해줄 수 있는 백인들의 요새로 도망치기로 한다.
눈쌓인 광활하고 웅장한 로키산맥의 숲속에서 쫓는자와 쫓기는 자 사이에 처절한 전투가 게속된다.
도망치는 무리의 선두에서 홀로 길을 찾던 글래스는 숲속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거대한 곰의 습격을 받는다. 참혹하고 처절한 사투끝에 곰을 죽이기는 하였으나, 곰에게 전신을 할퀴고 물어뜯긴 글래스의 신체 역시 만진창이로 거의 죽은 시체와 다를바가 없었다. 들것을 만들어 시체와 다를바 없는 글래스를 끝까지 데리고 철수하려고 하였으나 눈쌓인 엄준한 로키의 깎아지른 벼랑은 이들에게 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리더인 헨리대위(돈놀 글리슨)는 총을 뽑아 글래스에게 안락사를 시키려 하였으나, 차마 오랜 동료이며 아직 눈을 뜨고있는 그에게 발사를 할 수가 없었다. 아키라카족의 추적을 받는 무리들인지라 마냥 지체할 수만은 없었기에, 헨리대위는 지원자 둘을 받아 글래스의 임종을 지켜본뒤 뒤를 따르면 커다란 보상금을 주기로 약속하게 되었고, 여기에 피츠제럴드(톰 하디)는 자의로, 브리져(윌 폴터)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남겨지게 된다. 지원자 둘에 시체와 다름없는 글래스와 그의 아들 호크, 이렇게 네명이 산골짜기 깊숙한 곳에 남겨지게 된 것이다.
이제 모두의 관점은 단 하나, 시체와 다름없는 휴 글래스의 에견된 죽음 뿐이었다. 그가 죽고나면 시신을 묻어주고 나서 앞서간 무리의 뒤를 따라가서 포상금을 받으면 모든게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글래스가 죽지를 않고 있는 것이다. 시체와 다를바 없는 상황은 분명한데 호흡이 멈추질 않고있는 것이다.
아무리 멀리 따돌렸다고는 하지만....... 이틀이나 지난 마당에 아키라카족의 말발굽이 금방이라도 들이닥칠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피츠제럴드는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게 된다.
글래스와 단 둘이만 남게된 시간에 피츠제럴드는 글래스에게 다가가 냉정하게 현실적인 문제를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듯이 제기하며 '어차피 죽을거라면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이쯤에서 죽어달라'며 자신의 손으로 글래스의 목을 졸라 죽이려고 시도를 하는데......... 돌아오던 길에 이를 목격한 아들 호크는 피츠제럴드에게 총을 겨누며 이를 저지한다. 당황한 피츠가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것을 호크에게 호소하지만, 방금 아버지를 죽이려한 자의 말이 호크의 귀에 들려올리가 없었다.
아주 잠시 호크가 아버지 글래스의 안위를 살피려 시선을 돌리는 순간 피츠제럴드가 호크의 총을 나꿔채고는 허리에 차고있던 칼을 뽑아 호크의 심장에 꽂는다. 호크는 그자리에서 절명한다. 식물인간의 상태이지만 분명하게 아들이 눈앞에서 죽는 장면을 목격한 글래스...........
피츠제럴드는 서둘러 호크의 시체를 숨긴다.
잠시 지나 돌아온 브리져에게 호크가 행방불명되었다고 태연하게 말한다.
사라인을 저지른 입장의 피츠제럴드 입장에선 당연히 브리져도 죽여버리고 시신과 다를바 없는 글래스까지 죽여 없애버리면 깨끗해질 문제인데........ 글래스 문제는 글래스 문제이고, 브리져는 살려서 함께 돌아가 헨리대위에게 임무의 완수를 증언해주어야 평생을 먹고살수 있는 보상금을 탈 수 있는 증인이었던 것이다. 함께 살아돌아가 증언을 해 주어야 할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루를 더 지난 피츠제럴드는 브리져에게 개울건너에서 아키라카족의 척후병을 목격했으니 우린 이제 죽을 목숨이라고 서둘러 이곳을 철수해야 한다고 거짓말로 윽박지른다.
호크는 행방불명되었고 아직 살아있는 글래스를 차마 떨쳐내지 못하는 브리져에게 피츠제럴드의 가혹한 추궁이 이어지고, 마침내 브리져는 시체와 다름없지만 아직은 살아있는 글래스를 구덩이에 대충 묻어주고, 그 위에 자신이 아끼던 수통을 남겨주며 명복을 빌어주고는 피츠제럴드의 뒤를 따른다.
숲속에서 살인이 벌어졌다.
전투에서 죽은것이 아니라 같은 백인이면서 동료에 의한 살인인 것이다.
피츠제럴드는 호크를 죽였으며 또한 글래스에게도 분명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브리져는 호크의 죽음과는 무관하나, 글래스의 살인에 타의에 의한 방조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신의 섭리였을까?
이대로 죽을 수 없는 인간이 가진 분노의 위대함때문이었을까?
구덩이에 파묻은 시체가 움직였다.
뒤덮은 흙더미를 헤집고 상처투성이의 손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어서 분노에 사로잡힌 귀신의 형상을 한 파란 눈의 사나이가 구덩이를 헤치고 기어 나왔다.
휴 글래스였다.
눈 앞에서 아들의 목숨을 빼앗아간 자를 절대 용서할 수가 없다.
설혹 신이 앞을 가로막는다 해도 기어코 그자를 쫓아 아들의 복수를 하고 말리라.
복수를............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
'고작 아들의 복수나 하겠다고 여기가지 이렇게 날 쫓아왔단 말이야? 그렇다고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 돌아올까?'
영화의 말미에 글래스의 복수 앞에 마침내 피츠제럴드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조롱거리듯 이렇게 떠벌린다.
참으로 충격으로 다가 온 대사였다.
순간이었지만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혼란스럽게 스쳐지나갔다.
마치 피츠제럴드가 악인에서 악마로 승화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또 그만큼 톰 하디의 연기가 멋졌다.)
복수에 일념으로 이토록 집요하게 쫓아온 글래스의 집념에 저렇게 조롱을 날릴 정도의 피츠제럴드라면, 죽기전에 살인도 불사할만큼의 자신의 탐욕에 대해서도 최소한 뭐라고 한마디쯤은 해주고 죽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도대체 정의란 뭐지?'
지지난 해를 떠들썩하게 했던 마이클 샌델의 (JUSTICE)가 갑자기 떠올랐다.
--- 피츠제럴드. 저 자식 정말로 나쁜놈이네............
복수의 앞에서 글래스는 독백처럼 피츠제럴드의 조롱에 대답한다.
'복수는 내가 아니라 신의 뜻대로 이루어질것이라고.........'
암튼 피츠제럴드는 참혹하게 죽는다. 글래스가 죽였는지 아닌지는 영화를 보면 알게될일이지만.......
내 오래된 메모장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있다.
'싸움은 오로지 이기기 위해서만 하는것은 아니다. 불의한 싸움은 오로지 이기는 것만이 목적이겠지만, 정의로운 싸움은 그 싸움 자체가 목적이다. 이기기만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불의를 결단코 용납할 수 없기에 싸우는 것이다. 거기에는 승산이 있고 없고가 그리 중요치않다. 끝까지 저항을 한다는 자체가 커다란 의미인 것이다.'
'힘의 뒷바침이 없는 정의는 허구이다. 정의의 구현에는 반듯이 힘이 요구된다. 힘 없는 정의는 그저 선의일 뿐이다.'
이런 관점 위에서 무덤을 헤치고 나온 글래스의 짐념은 무엇을 기반으로 했을까가 잠시 궁금해진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복수심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을까?
대자연의 위로가 그를 안내하고 치유하고 생존의 의지까지 선물한 것은 아닐까?
신의 섭리와 위대한 뜻이 그를 이끌었을까?
인간이 가진 위대한 불굴의 의지가 그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웠을까?
얼마나 억울했을까?
시뻘겋게 자신의 눈앞에서 아들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것을 목격했으니, 이대로 자신마져 죽어버리면 아들의 존재는 그저 흩날리는 먼지처럼 무의미하게 사라져가는 것일 뿐.........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선 살아야만 했고 그 보답은 처절한 복수라고 어찌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보수의 일념에 사로잡힌 사람이 얼마나 독하고 강해질 수 있는지를 글래스는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사람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경우나 탐욕에 눈이 멀었을 경우,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를 피츠제럴드는 여실히 증명해 보여주고 있다.
또한, 로키의 장엄하고도 웅장하면서 위엄마져 갖춘 대자연은 그 앞에서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를 가감없이 그대로 절실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우연히 벌판에서 만난 참혹한 몰골의 글래스를 받아주고 안내해주고 정을 나누어주던 그 역시도 커다란 상처를 가지고 있던 인디언이 인상적이었다. 세찬 눈보라속에서 이방인을 위해 나무를 꺾어다 움막을 지어주고 곪아터진 상처를 치유해주고 나서 음식과 물을 남겨두고 홀로 떠나던 그가 다른 백인(약탈자)들에 의해 '나는 야만인' 이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나무에 목매달려 죽임을 당한 장면에서는 신대륙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의 아픔에 대해서도 가슴이 아려왔다. 정말 가슴이 찡 해왔다.
그 인디언의 죽음장면에서 순간 나는 (라스트 모히칸)의 장면이 떠올랐다.
백인 고아인 호크아이(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데려다 길러준 인디언 추장 웅카스 생각이 떠올랐다. 자신의 유일한 핏줄의 죽음앞에 산정상에 서서 조상님들께 그 소식을 전하던 웅카스의 모습이 레버넌트의 그 멋진 인디언과 교차되어 떠올랐다.
(레버넌트) 진실로 웅장하고도 장엄한 대 서사시이다.
위대한 자연에 대한 존경이자 숭배이며, 그 안에서 좌절하지 않고 처절함속에서도 꿋꿋하게 생존해 나가는 거룩한 인간의 의지에 대한 찬양이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보편적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리 썩 호감을 갖게하는 그런 감독은 아니다.
컬트 색체가 강한 독특한 취향의 영화감독이자 연출자이며 시나리오작가이며 제작자이다.
하지만 일찍부터 그의 뛰어난 재능은 정평이 나 있었다. 나의 소견으로는 언제고 훗날 스탠리 큐브릭에 버금갈만큼 이주 특출나고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감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런 그가 이번에 아주 놀라우리만치 감동적인 선물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던 것이다.
알레한드로 감독이 만든 (레버넌트)에 정말 최고의 찬사를 드리고 싶다. 감사하다고.
그의 영화 연출에는 아주 특별한 기법이 있다. 그만의 특징이자 멋인것이다.
그는 대본을 완성하고 나면 그 대본의 순서에 입각해 아주 충실하게 촬영에 임한다. 가령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 시작과 끝부분이 이루어진다면 대다수의 감독들은 한 시기에 그 두장면을 상황설정을 다시해 동시에 찍는다. 시간 경비 일정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레한드로에겐 예외란 없다. 각본의 순서대로 직어야 한다. 위의 경우라면 마지막에 죄 다 다시 끌고와 기필코 찍어야 한다. 그러니 제작자들 입장에선 아니꼬울밖에......
또한 그의 촬영에는 별다른 조명팀이 없다. 그저 태양빛과 그때그때 시간과 사기에 따른 빛의 강도에 그대로 순응한다. 주인공의 포카스를 강조하기 위한 조명따위가 아예 없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우리의 눈이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그런 정도의 명도와 채도가 자연스레 녹아있다.
그리고 그는 롱 롱 롱 테이크 샷을 극단적일 만치 추구하는 사람이다. 컷트 컷트 컷트 해서 짜집기로 주안점을 강조하는 그런 편집이 아니라, 그냥 한번 시작한 화면을 가능한 그대로 오래 끌고가는 그런 영상미를 지나칠 정도로 추구하는 사람이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그의 영화를 감상한다면......... 여타의 영화와는 매우 다른 아주 색다른 맛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의 연기도 정말 멋졌다. 그의 연기중에서 단연 압권이었다.
나는 평소 디카프리오의 연기를 별반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번 만큼은 과감하게 찬사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정말 정말 고생 많이 했다는 것이 영화 전편 내내 느껴졌다.
(톰 하디)의 피츠제럴드역은 정말 압권이었다. 조연이 아니라 트윈 주연이라 해도 전혀 손색될것이 없었다. 정말 명연기였다.
섬뜻섬뜻한 그의 완벽한 악역이 이 영화를 더욱 살아나게 만들었다. 이 영화의 빼어나게 아주 특별했던 점 두가지를 꼽으라면, 그중 하나로 나는 톰 하디의 명품 연기를 꼽겠다.
또 하나의 아주 특출한 이 영화만의 명품을 꼽으라면 그것은 당연히 촬영이다.
이젠 인간이(영화가) 이런 정도의 장대한 스퀘일과 웅장하고도 엄숙한 장면을 화면속에 담을 수 있게 된것이라고 감탄해마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보여준 엠마뉴엘 루베즈키의 촬영은 이 간단한 줄거리의 복수극을 장엄하고도 위대한 대 서서시로 꾸며나간다.
오직 자연광만으로 정복할 수 없는 대자연의 위용을 그대로 전달하듯이 로키산맥의 웅장함을 카메라 렌즈에 담아낸 그의 위대함은......... 가히 인간의 시선으로가 아닌 조물주의 시선으로만 내려다 볼 수 있는 그런 영상을 우리 눈앞에까지 가져다 선물해 준것 같아 눈물겹도록 고마운 생각이다. 단연코 최고의 영상이었다.
대부분의 촬영이 진행되었다는 카나다 알버라 로키산맥을 꼭 한번쯤은 가보고 싶다.
끝으로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결코 빼놓을 수가 없다.
두 눈으로 대자연의 감동과 그 안에서 인간들의 처절한 다툼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나의 귓전에 울려퍼지던 때론 잔잔하고 때론 너무도 웅장하던 그 음악소리를 잊은적이 없었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 전편내내 흐르는 음악소리를 기억하느 영화가 이제껏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 영화만은 눈은 영상을 보고 귀로 대사와 효과음들을 들으면서도 시종일관 항상 그 화면에 너무도 잘 녹아든 음악소리가 항상 귓전에 들려왔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역량에 새삼 감동하던 그런 영화였다.
The Revenant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
멋진 영화 입니다.
꼭 관람해 보시기를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2016.01.20.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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