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eyond '
내가 참 좋아하는 단어이다.
'~ 너머에........ ~ 저편에.......'
강물이 가로질러 흘러가는 저 들판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운무 가득한 골짜기를 지나 높은 바위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쌍무지개의 꼬리가 잡혀있는 머나먼 지평선 저편의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동자 너머에는 과연 무슨 생각들이 담겨져있을까?
세상 누구에게나 공평한듯 하면서도 공평하게 느껴지지 않는 시간의 너머에는 또 다른 무엇이 있을까?
지금 내가 걷고있는 인생의 너머에는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런 상념들 속에서 오늘도 나는 시간 위를 걷고 또 걷는다.
그것은 내가 알지못하는 그 어떤......... 언젠가 닥쳐올 종착지를 향해서 거듭거듭 내딛는 발걸음.......... 나만의 여행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이었을까?
이토록 '여행'이란 글자가 새삼스럽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애초의 예정대로였다면 아마..........
이 시간쯤에는 사천을 지나 막 고속도로에 올라서서 귀향중인 시간인것 같다.
그제 낮에 통영에 내려가서 미륵도 트래킹에 케이블카도 타고, 밤에는 통영의 야경과 먹거리에 흠뻑 빠져보고, 어제는 매물도와 소매물도를 여행하면서........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경험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있을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이번에도 우리는 떠나지 못했다.
마음속에는 젊은날부터 로망으로 가지고 있는 '흐르는 강물처럼'의 (브래드 피트)가 되어 대자연의 푸르름 속에서 플라이 낚시를 즐길 정도의 여유를 염원하면서도, 현실은 대부분의 누구나들 처럼 도심과 시간속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구름 잔뜩 낀 도심 뒷편의 하천가에 피어난 노란꽃들을 잠시나마라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과, 잠시 도심을 벗어나 이동중에도 구름사이로 드러난 파란하늘에 기뻐하고, 담배를 따고 고추를 따고 폭염속에서도 묵묵히 고된 일상을 이겨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노력에 충분한 보상이 있기를 바라는 염원도 담아본다.
그리고 들판과 산골짜기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자동차들의 힘찬 내달림을 바라보며........ '곧 나도 떠나게 되겠지'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그나저나........ 여행을 떠나본것이 언제였지?'
여행에 환장한 사람처럼 살아간다는 소리를 듣던 내가 맞나? 내가 갸 맞어?
지난해 말에 남도여행 다녀온 이후로 도통 어딜 다녀온 기억이 없다.
오십 훌쩍 넘긴 나의 사춘기 이후의 삶에서 이렇게 여행을 등한시 하면서 살아온 기억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
2015년에 나에게..... 우리에게 과연 무슨일이 있었나?
글쎄다.
그런데 어쩌다 이 모양새가 되었을까?
가만히 되짚어보자니
시작은 분명 국토순례를 떠나지 못하면서 부터였다.
금년 2월에 20일에서 25일 잡고....... 목포에서부터 바닷가 길을 끼고 부산까지 국토순례를 계획했었다.
세부계획까지 짜고 추운 겨울의 한파속에서 몇차례에 걸쳐 장거리 걷기 동계대비훈련까지 했었다.
그러던 중에....... 결국은 대장정을 떠나지 못했다.
뭐 특별한 일이 있었다면 있었고, 없었다면 없었는데........ 아무튼 남도순례을 떠나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이래저래 어쩌다보니 벌써 가을의 초입인 지금에 이르렀다.
거 참 시간 한번 빠르다. 점 점 빨라지는것 같다.
뭐가 이리 바빴지?
아무리 되돌려 생각해 보아도 그리 바쁠일도 바빠했어야 할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어느 비가 쏟아지던 여름날.
시내에서 10여km 떨어져있는 한적한 숲속의 펜션에 차량 두 대가 나란히 서있다.
잠시 지나자 안에서 삼겹살 굽는 냄새가 은근하게 퍼져나온다.
맛깔나게 구워진 삼겹살을 먹고있는 두 남녀의 모습이 너무도 정겨워 보인다.
얼핏 본다면 '혹시 불륜?' 하는 의심이 생겨날 정도로 다정스럽게 놀고(?) 있다.
그런데 결단코 불륜은 아니다.
차를 살펴보자니 하나는 분명 내 차임이 분명하고, 다른 하나는 왕짜증여사의 차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 뭐하러 부부가 외곽지까지 삼겹살 먹으러 나가면서 각자 차를 끌고 다니느냐고?
그게 또 그렇게 되는가?
그런데 분위기 좋은것은 마직막 삼겹살이 막 구워져서 내 입에 쏙 들어갈때 까지 뿐이었다.
정겨운 분위기?
개뿔 ~~~~~~~~~
곧바로 사다리 펴들고 지붕에 올라가 처마끝에 물받이 비 새는것 보수공사하고........
마당 군데군데 삐죽 나온 풀 뽑아주고.........
펜션 뒷쪽에 있는 풀장에 날아든 나뭇잎이며 이물질 제거하고.........
정원에 개나리 덤불 다듬어주고...........
화목보일러 땔감 기계톱질하고..........
개뿔....... 노가다도 상노가다가 기다리고 있는데.........
노년에 이 왕짜증여사가 벌써 노망이 들었나?
쏙아서 시골의 과수원집 장남에게 반강제로끌려와 결혼생활을 시작했다고....... 평생을 나를 그렇게 구박하더니만.......
내가 소조령의 숲속에서 전원생활에 흠뻑 취해있을때도......... 시골은 죽어도 싫으니 나올래면 나오고, 나중에는 먹거리 보급도 안해주면서 죽어도 더는 소조령에 안오겠다고 버티더니....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친정 작은오빠하고 짝짜꿍을 해서 번개불에 콩구어 먹듯이 시골의 펜션을 하나 사고는 오빠네 가족의 귀농에 덥썩 합류해 버리고 말았다.
물론 내면의 그럴만한 이유는 있고 내가 이해하고 허락을 했지만서도.........
이러다 보니 어처구니 없게도 이제는......... 왕여사는 시골 펜션에, 나는 시내에...... 아들은 그 당시도 직장 기숙사였으니 분가한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 나와 왕여사의 처지와 입장이 바뀌어 버렸다.
졸지에........ 요상한 모양새의 기러기아빠가 되고만 내 처지.
가련하다고? 가련한가? 가련할까?
아님.
절대 아님.
난 이제사 완전 해방 된......... 자유로운 영혼이여 !
그런데 그 자유로운 영혼도 잠시........
수시로 드나들며 이것저것 시중들어야 하는 21세기형 트랜스 포터여.
포터는 모양새고 한 마디로 나이들어 시집살이 하게 된 무저항 심부름꾼임.
여름계절 특수상 페션에 손님이 끊이질 않아 남들의 즐거운 휴가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라만 보는 입장이 되어 보았고.......
여름의 끝자락에서 그동안 노력봉사의 보상으로 통영여행을 시켜준다더니만.........
내가 어디 펜션 심부름만 했나?
왕짜증여사가 유치원 그만두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는데.........
디지게 바쁘다. 너무도 잘해나가고 있다.
그러니까 본 직업에 펜션에 투잡을 해나가고 있는데........ 낌새가 수입도 나보다 훨 나은것 같다.
이런 사실을 알고있는 친구녀석은 드디어........ '짱구엄마가 나를 내치려고 본격적인 작전에 착수해서 실행중'이라 하는데........ 그럼 내가 시방 해방이 아니라 쫓겨난거란 말씀이여?
해방되니깐 이제껏 좋더니만.........
쫓겨난거면 이거........ 안되는데..........
이제 믿고 길댈곳은 아무리 닮는다 닮는다 해도 너무도 닮은 나의 유일한 분신. 그리고 이쁜 새로 얻은 딸.(며느리)
왜냐면.........
왕짜증여사가 아들에게만은 꼼짝도 못하니까!!!!!!!!!!!
나에겐 왕짜증여사 통제란 절대 불가능.
아들은 이제껏 통제해본적도 없고 해볼 생각도 없고 엄두도 못내어보았지만......... ㅎㅎㅎ
녀석이 장가를 들더니 아빠를 보는 눈빛과 태도가 엄청나게 달라졌어......... ㅎㅎㅎ
암! 내가 심혈을 기울여 설계하고 맹글었는데........... ㅎㅎㅎ
아들이 내 곁에 있는 한........... 왕여사. 나 너 겁 안나!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내 여행에 대한 한을 대신 풀어주기라도 할 녀석처럼....... 요넘이 또 나간다.
이제 세 밤 자고나면 우리의 아들과 딸이 또 뱅기를 타고 나간단다.
이번엔 이탈리아란다.
대학에서 모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서 후원사 도움으로 동유럽 5개국을 여행갔다가 그 여정에서 눈빛을 교환해서 3년 후에 마침내 결혼을 한 녀석들이........ 눈치를 보니 아들 본사가 있는 일본으로 슬쩍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더니만........ 지난 해는 호주.
이번엔 이탈리아....... 그럼 내년엔...........
아들말로는 (프라하)가 그렇게 종더라 하던데........
우리도 가 봐???????????
'젊어서 한푼이라도 더 벌어서 모아서 후일을 대비해야 한다'는 주변의 조언도 있었지만......... 미래에 대한 유달리 확고한 계획과 신념을 가지고 사는 녀석들이기에 난 기꺼이 성원을 보낸다.
지들꺼 지들이 쓰고, 왕여사꺼 왕여사 쓰고........ 내꺼는 내맘대로 쓰는 우리집만의 독특한 가풍. ㅎㅎㅎㅎ
절대 노 간섭, 노 타치.
거기다 이번 여행에서 나를 쏙 뺀 녀석이 저를 닮은 2세를 맹글어서 올 계획이라는데........
푸하하하하하하.
내년 여름이면 나도 할아버지가 된다. 왕여사도 할망구가 되고...........
나 - 정말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는거야? 종국에 뭘 보려고?
나 - 싫다. 그냥........ 살아간다는게 싫다.
무지무지 덥던 날에 너무너무 지쳐서 무심코 이런 푸념을 왕짜증여사에게 늘어 놓았다.
농담이라도 이런 표현이나 상황을 극도로 싫어하는 왕여사에게서 당연히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왕여사 - 그렇지? 너무 싫다. 우리 왜 살지?
나 - 잉? 당신 입에서 그런 말이........ 뭔 일 있냐?
왕여사 - 아니? 당신도 나도 너무 지쳐있는것 같아서............
나 - 아무리 그렇기로 나야 그런다 하지만, 짱구모친께서 그런 험악한 말씀을 입에 올리시면 쓰나?
왕여사 - 어떻게 하면 우리가 활기를 되찾을까? 당신 뭐가 하고 싶어?
나 - 글쎄........
왕여사 - 여행갈까? 어디 가고 싶은데?
나 - 기차타고 느긋하게 여수 다녀올까? 아니면 차 가지고 통영갔다가 소매물도 가는 배를 타던지..........
왕여사 - 그러자. 펜션 시즌 끝나는것 봐서 통영 가자. 배도 타고........
나 - 그럼 이번 여행에 경비는 당신이 대 주는거지? 여지껏 부려먹은 것도 있으니.........
왕여사 - 점점 째째해져 가는것 같어 당신. 벌어서 다 어디 쓰니?
나 - 어디 쓰긴....... 내가 너 밥 사주지...... 이런저런 소소하게.........
왕여사 - 그게 몇푼이나 든다고....... 남들은 아직도 월급을 꼬박꼬박 마누라 통장으로 잘도 들어오게 한다는데......... 당신은 나한테 한푼이라도 재대로 줘 본적이 있냐?
나 - 어허. 어험. 우린 각자의 경제문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기로 협정을 맺은거 벌써 잊었나? 부부간에도 상호간에 맺은 협정은 꼭 지켜나가는 것이 가정 평안의 제 1 덕목이여. 어험........ 내가 다 나중에 해외여행이라도...............
왕여사 - 개뿔! 꼬부랑할머니 되고 나서?
나 - 아니라니까? 아무때고 너가 가고싶다고 하면 곧바로 콜!
왕여사 - 그럼 아들 다녀와서 우리도 갈까? 정말로 당신 바빠도 갈테야?
나 - 암. 당신이 가자면 내일이라도 가고말고. 가..... 가...... 아들만 뱅기타냐? 우리도 타자. 타.
왕여사 - 어디 데려갈건데?
나 - 페낭. 페낭 데려가고 싶다고 옛날부터 말했잖아. 더 돈 모으면 터키랑 그리스도 가고.......
왕여사 - 여행사 끼고 가이드 붙여서 편안하고 즐겁게 다녀오게 해 주는거지?
나 - 아니? 편안하고 느긋하게는 해주는데, 여행사 끼고 가이드 붙여서 빽빽한 스케줄로는 나는 죽어도 여행 못해.
왕여사 - 못 믿겠으니까 그렇지. 맨날 쉽다고 간단하다고 해놓고 죽어라 고생바가지만 씌웠잖아.
나 - 그렇다고 나하고 가서 좋지 않은 여행 있었냐?
왕여사 - 그건 아니지만......... 고생 옴팡지게 한 기억이 더 생생하게 추억으로 남긴 했지만........
나 - 그러니까 이번에도 날 믿어.
왕여사 - 좋아. 그럼 당신 맘대로 다 하는데.......... 나도 경비를 댈테니까 제발 느긋하고 편안한 여행을 시켜 줘.
---- 흐잉? 당신 스스로가 여행경비를 선뜻 내놓겠다고? 오우 ~~ 마이 ~~~~~~ 갓 !!!!!!!!!!!!
즉시 미션 임파스불에 도전.
3일간 밤을 세워 인터넷 써핑을 한 결과로 페낭 여행 스케줄 확정.
이제 뱅기표를 사고 호텔을 예약해야 하는데........
여기에 제동이 걸렸다.
비자. 마스타. 어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가 있어야만 해외여행 결제를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해당 카드가 없다.
그러자 왕여사가 나섰다. 자신의 주거래 은행이 NH이고 우리의 새딸(며느리)이 NH에 연관이 있기에 자신이 비자카드 발급을 신청하겠노라고...........
그리고 이틀 뒤에 왕짜증여사 명의의 비자카드가 도착했다.
출장길에 집에 들른 아들을 앞세워 인터넷으로 뱅기 티켓팅을 하는데........... 중간 대목에서..........
아들 - 엄마. 왜 통장의 잔고가 이것밖에 없어?
(갑자기 엄마가 내 눈치를 연실 살핀다. ㅎㅎㅎ)
엄마 - 어디다 써서 잔고가 줄어든게 아니라........ 몇 군데다 분산을............
아들 - 그랬구나. 투기성 투자는 안된다고 했어?
(이런 이런....... ㅎㅎㅎㅎㅎ 아들은 아빠도 모르는 엄마의 재정상태까지 알고 있구나........ㅎㅎㅎㅎ 그럼 조금전에 들여다 본 통장의 잔고가 다가 아니라는 말씀인데......... 적어도 현금만도......ㅎㅎㅎㅎ ㅋㅋㅋㅋㅋ........ 푸하하하하)
아들은 기특하게도 아빠가 계획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여행 프로그램까지도 칭찬을 해주면서 뱅기티켓팅을 대신해 준다.
엄마 카드로..........
* 11월 2일 인천 발 ~ 쿠알라름푸르 2장.
* 11월 8일 페낭 발 ~ 쿠알라름푸르 2장.
*11월 8일 쿠알라름푸르 발 ~ 인천 도착.
그리고 이틀 뒤.
쿠알라름푸르에서 호텔 2박. 페낭 수상가옥에서 2박. 해변 리조트에서 2박을 모조리 예약 했다. 바우쳐도 받아 놓았는데..........
중요한 것은......
호텔예약도 모두 왕짜증여사의 카드로 결재를 마쳤다는 것...........
해외여행은 우선 뱅기표가 대부분 젤 많이 비중을 차지하고........
다음이 숙소 비용.
혹 유럽의 유명여행지라면 어느정도 체재비용이 들겠으나.......... 동남아라면.........
이제 남은 고민은 단 한가지...........
몇 딸라쯤 환전을 할까?
아!!!!!
떠나고 싶다.
딱. 두 달 남았다.
설마........
아들내외가 환전해 가는 딸러 이탈리아에서 깡그리 다 쓰고 오지는 않겠지?
--- 2015.09.01.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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