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몰고 이른 아침의 36번 국도를 달린다.
딱히 어디를 가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막연하나마 얼마전부터 마음에 담고있었는데 아직 해결하지 못한 그 막연한 미해결을 오늘 해결해 볼까 하는 마음에......
약초 캘때 쓰는 괭이를 하나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그것도 꼭 덕산에서.......
공이대교를 앞두고 월악산 영봉에 걸쳐있는 아침햇살이 눈부시다. 상큼한 아침이란 바로 이런것을 말하는 것인가보다.
산을 생활터전으로 삼으며 사는 동생들을 쫓아다니며 (약초꾼들의 삶)에 대해서 어깨너머로 조금은 재미를 느껴가고 있는 중이다.
(산에 오른다)는 것은 오로지 (등산)으로만 여기고 젊어서부터 죽어라 쏘다녔는데, 오십 넘어서 동생들 꼬득임에 약초산행을 쫓아다니다가 보니 요즘은 (등산)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재미에 푹 빠진 상태이다. 길이 난(등산로) 곳을 다니는 것하고, 산야와 골짜기를 마구 헤집고 다니는 것하고는 질적으로 다르기에 약초꾼들을 쫓아다닌다는 것이 몹시 버겁고, 또 약초에 대해서 아는바가 없으니 수집하는 소득도 형편없지만, 그래도 어차피 운동이라 생각하고 죽어라 쫓아다니다 보니 산이나 약초에 대한 지식이 조금씩 늘어가면서 색다른 재미에 흠뻑 빠져있다.
산에서 약초를 캐자면 여러가지 도구가 필요하지만, 가장 기본이 기역자(ㄱ)로 굽은 끝이 뾰족한 괭이다. 그래서 하나 샀다. 충주에서...... 이거면 되겠다 싶어서 날이 작은것으로 \15.000원을 주고. 그런데 좀 사용하다 보니 너무 작고 얇아서 휘어진다. 약초꾼 중에 내것과 같은것을 쓰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다시 사기로 하고 처음 샀던 곳에 갔더니 \30.000인데 \25.000에 주겠다한다. 그런데 그날따라 웬지 이유도 없이 자꾸 망설여진다. 하여 결국엔 안샀다. 다음 산행에서 동생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사용하는 괭이가 덕산에서 \6.000원 이란다. 모처럼 참석한 선배가 구경시켜 주는데, 자신도 오전에 5개나 샀단다.
미티. 미티.
같은 한반도 안에서 이렇게 차이가 나나?
충주에서 1개가 덕산에서 5개 란다......... 덕산에서 떼다가 충주에서 괭이 장사나 할까? 그런데 수요가 있으려나?
내 이어코 오늘 덕산에서 3개 구입하련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덕산에 들어가면서 왼쪽으로 두번째 철물점.
동생들이 가르쳐준대로 찾아갔더니 아직 문을 안열었다. ㅋ
다시 수산으로 향하니 고개마루에 있는 좋아하는 약초꾼 동생네 집이 보인다. 나무장작을 때는 난로 덕분에 밖으로 난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잠시 들러 커피라도 한 잔 얻어마실까 하다가 아마도 아침식사할 시간 때 쯤인것 같아 다음에 들리기로 그냥 지나친다. 수산을 지나고 청풍대교를 건너서 좀 달리다가 샛길로 접어들었다.
마음이 끌리는 산을 하나 정하고 차를 세워놓고 배낭을 메고 벼랑을 오르기 시작한다.
한참동안 바위벼랑을 헤집고 다니다 잠시 숨을 거르며 내려다 보니 청풍에 있는 번지점프대 구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땀이 흘러 속옷이 젖는것을 느낄 즈음에 걸머 맨 망태를 뒤적거려보니........ 술 담글만한 크기의 도라지 하나, 작은 도라지 네 뿌리. 삽주 열 서너뿌리. 지초 두 뿌리를 건졌다.
'이만하면 되었지 뭐. 운동 제대로 했는걸?'
산에서 내려와 짐칸을 열어 본다.
지난번 산행에서 분명하게 괭이자루로 쓸 나무를 잘라서 실어놓았는데 보이지를 않는다. 이상하다.......
캠핑장비에서 간단한 연장 등 등......... 짐칸을 쓸어담듯 꺼내서 내려놓다보니 의자 아래에서 괭이자루가 나타난다.
'ㅋㅋ. 이제 나가다 덕산에서 괭이 날을 사서 콱 끼우면...... 끝!'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시 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뒤 의자의 바닥에서 낯익은 낡은 메모장이 하나 눈에 띈다.
평상시에도 메모를 많이하는 편인 내게 있어서 언젠가부터 사라져서 몹시 안타까웠던 그 메모장이 이제사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세상에나...... 여기 맨 뒷 의자 밑에 떨어졌었구나.'
짐 정리를 끝내고 차에 올라 메모장을 뒤적여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리고, 메모장 뒷부분에 커피가 흘러 얼룩마져 진 상태로 휘갈려 쓴 시가 한편 아직 남아서 숨쉬고 있었다.
알프레드 드 뮈세의 (시월의 밤) 이라는 시다.
사춘기 시절, 친구들이 김춘수나 워스워드나 롱펠로우의 시를 읽을 때, 나는 알퐁스 도데의 (별)이나 황순원의 (소나기)에 더 마음이 끌렸었다. 그러던 시절에 우연히 교생으로 오신 국어선생님이 잊어버리고 가신 남겨진 문학지에서 시를 한편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시가 바로 (시월의 밤)이었다. 지금도 시를 떠올리면 나는 조금도 주저없이 (시월의 밤)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제껏 이 시를 알거나 기억하는 사람을 만난적이 없다.
(그 문학지도 지금은 내게 없다. 세계의 명시를 찾아보니 거기엔 수록이 되어 있었다. 하여 제법 긴 이 장문의 시를, 내가 기록으로 남겨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여기에 적어내려가보고자 한다.)
시월의 밤
----- 알프레드 드 뮈세
시인이여, 그만해 두오. 그대를 배반한 여인에 대한
그대의 환상이 단 하루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해도
그녀를 말할때 이 날을 저주하지 말아요.
그대가 사랑받기 원한다면 그대의 사랑을 존중하시오.
타인으로부터 받은 고통을 애써 용서한다는 일이
약한 인간으로서 너무나 힘든 일이라면
적어도 사람을 미워하는 괴로움만은 피하시오.
용서를 할 수없다면 차라리 잊어버리도록 하시오.
죽은 자들이 땅 속에서 평화로이 잠자듯
우리들의 꺼진 감정도 잠자야 합니다.
심정의 유물들도 유해를 가지고 있으니
이 성스러운 시체위에 손대지 맙시다.
그대는 왜 이 쓰라린 고뇌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의 꿈, 배신당한 사랑만 보려합니까?
신의 섭리가 동기 없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까?
그럼, 그대를 매질한 신이 그렇게 소홀한 분이라고 생각합니까?
도리어 그대가 불평하는 그 타격은 오히려 그대를 지켜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젊은이여. 바로 그로 이니해 그대 마음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배우는 자, 고통은 그를 가르치는 스승
고통을 당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알 수없습니다.
우리가 고난의 세례를 받아야 하며
이 슬픔의 값을 치르고야 모든것이 얻어진다는 것은
가혹한 법칙이나 절대적 법칙이며
이 세상이나 운명과 같이 오랜 것입니다.
곡식이 익기 위해선 이슬이 필요하며
인간이 살고 인생을 느끼기 위해선 눈물이 필요합니다.
기쁨이란 아직 비에 젖고 꽃으로 덮인
한 대의 꺽어진 풀잎이 그 상징입니다.
그대는 어리석은 잘못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요?
그대는 젊고 행복되고 어디서나 환영받지 않나요?
인생을 사랑하게 하는 이 쾌락들도
만일 그대가 눈물 흘린적이 없었다면
이런것들의 가치를 얼마나 인정했을까요.
해 저무는 석양의 잡목 우거진 광야에 앉아
정다운 친구와 함께 한가로이 술 마실 때
그대가 만일 기쁨의 댓가를 치러보지 못했다면
말해봐요. 그대가 기쁜 마음으로 잔을 들 수 있을까요?
그대는 꽃과 풀밭과 초목의 푸르름을
페트라르카의 소네트와 새들의 노래소리,
미켈란젤로와 예술을, 세익스피어와 자연을 그대는 좋아 할 수 있을까요?
만일 그대가 그 속에서 옛날 그대가 체험한 오열을 다시 보지 않았다면
만일 그대가 그 어는 먼 곳에서 몸의 열기와 못 이루는 잠으로 인해
영원한 안식을 희구한 적이 없었다면
천상의 오묘한 조화를, 밤의 침묵을
중얼거리는 파도 소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대는 무엇이 불만입니까? 불멸의 희망이
불행의 손길 아래 그대 맘 속에서 다시 잠겨진 것입니다.
어째서 그대는 젊은날의 체험을 싫어하며
그대를 보다 훌륭하게 만든 이 고통을 미워하려 합니까?
오, 나의 젊은이여! 불쌍히 여겨요. 한 때 그대를
눈물 흘리게 한 이 아름다운 변심의 여인을
불쌍히 여겨요. 이는 여자이며 신께서는 그녀를 그대 옆에 둠으로써
고통을 통하여 행복된 자의 비결을 그대에게 깨닫게 한 것입니다.
그녀의 역활은 괴로운 것이었으며 그대를 아마도 사랑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운명은 그녀로 하여금 그대의 가슴을 찢도록 원한 것입니다.
그녀는 인생을 알았고 그것을 그대에게 알게 한 것입니다.
다른 여인이 그대의 고통의 열매를 거두었지요.
그 여인을 불쌍히 여겨요. 그녀의 슬픈 사랑은 꿈같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녀는 그대의 상처를 보았으나 그것을 아물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녀의 눈물이 다 거짓은 아니었습니다.
설사 다 거짓이었다 해도 그녀를 불쌍히 여겨요.
이제 그대는 사랑할 수 있어요.
돌아나오면서 벼르고 벼르던 괭이를 두개나 샀다.
예전 보다 더 싸게...... 하나에 \5.500원씩에.......
평생 산에 다니다 보면 이 괭이 두개가 다 닳토록 다닐 수가 있을까?
시내에 나와보니 점심때가 조금 지난 시간.
그대로 차를 몰고 시립중앙도서관으로 향한다.
내가 정말로..... 정말로 아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는 안식처다.
이곳에 들면 왠지 푸근하고 여유롭고 어떤 느긋한 자유로움이 가득하다.
내게 있어선 더없이 소중한 곳이다.
한시간 정도를 도선관에서 보낸다.
휴식처이기도 하고 산책길을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기분이기도 하고 궁금증을 해결하는 해우소이기도 하다.
나오면서 다섯권의 책을 2주(15일)동안 대여를 한다.
밖에 나오니 허기가 몰려온다. 하여 처음으로 도서관 구내식당을 들어가 보았다.
\4.000원에 돈까스가 나오는데....... 도서관의 주이용객인 학생들 입맛에 가격이나 음식의 질을 맞추었는지 좀 아쉽다.
참, 도서관은 내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여 도서관 밖을 이리저리 잠시 서성거려보며 지나온 여러가지 생각들을 돌이켜보았다.
어린시절부터 도서관은 늘 내가 즐겨찾는 안식처였고, 어떤 갈증에 대하여 해결해주는 신기한 곳이었다.
아마도 내가 소설을 쓰면서 필요로 하는 자료의 절반은 도서관에서 찾거나 얻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초등학교때 부터 책을 한권 빌리기 위해서는 십리길도 마다않고 쫓아다닌 이력을 자랑스럽게 가지고 있다. 그런 처지에 도서관이라는 드넓은 지식과 정보의 보고를 알게되었으니 그 심정이야 오죽했겠는가?
도서관에서 어떤 사료를 찾아내고 그것이 적지않게 유용하다 싶으면 기어코 그 책을 책방에서 구입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내 방에 쌓여있는 책만도 제법 상당한 수준이다. 언제고 이 책 모두를 어디든 보내게 되겠지..........
또한 내가 자료를 목적으로 책을 열심히 탐구하는 것을 주위에서 알고 많은 도움을 준다. 특히 문화동에서 자원재활용사업(고물상)을 하는 친구에 도움을 많이 받는다. 좀 오래되거나 귀한 자료이다 싶으면 '당장 쫓아와'라고 연락이 온다. 그래서 얻게된 귀한 책들이 많이 있으며 그 중......... 70년대 중반의 (뿌리깊은나무)를 열 일곱권을 한꺼번에 구해준 일은 두고두고 잊지못하고 있다. 고마운 친구다.
다음으로는 예비역 장성인 큰형의 서고에서 여러가지 분야로 상당히 많은 자료를 얻고있다.
전술학자이자 실제 역사학자이기도 한 형의 서고에는 엄청난 자료와 책이 쌓여있다.
그리고 난 그 형의 서고를 항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혜택을 부여받았다.
거기에, 형과 함께 연구하고 자료와 지식을 나누고 있는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역사학자와 교수님들이 여럿 계시다. 나 역시 이들의 자리에 참석하며 교분도 쌓고 많은 자료와 정보를 구한다. 세상밖에서 접하거나 구경할 수 없는 자료들도 살펴보며 많은것을 얻고있다.
이런 여러 경로의 도움이 있어 될수있으면 고증에 가까운 소설을 써 보려고 나름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형이나 형의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분들은 다분히 학자적 입장에서 역사를 보는 견해가, 어디까지나 실질적인 고증에 입각한 단도직입적이고 정설 위주이다. 거기에 비하자면 나는 정설에서 조금 비껴나 두루두루 주변을 둘러보며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해 상황을 살펴보거나 그려보고자 하는 다분히 야설적이다.
집으로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보니.........
무언가 허전하다.
차를 정리하고 세차 할까?
책장 정리를 새로해볼까?
이참에 대청소를 한번 해?
그래도 모처럼 내맘대로 휴식인데......... 뭔가 안하던 짓꺼리를 해볼까?
그래. 호떡이나 만들어 먹자.
장날 장터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먹던 그 맛나보이는 호떡을 포기하고 돌아섰는데.......
ㅋㅋㅋㅋㅋㅋ
ㅎㅎㅎㅎㅎㅎㅎ
기어코 난 호떡을 만들어 먹는다.
맛이 기가막히다.
호떡 만큼이나 참으로 달콤한 휴식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왜 사냐고' 묻거든........ 그냥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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