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펠리에(Montpellier) 에쿠송(역사지구)의 골목길을 걷는다는 것은 먼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조금만 걸어 들어가 보면 어느 사이 골목길 풍경 자체가 색이 바랜 듯 다소 빈티지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하지만 왠지 낯설다하기 보담은 어딘지 모르게 이내 친근한 느낌이 샘솟아 난다. 호흡기를 통해 폐부 깊숙한 곳까지 쏟아져 들어오는 공기에도 어떤 역사의 숨결이 배어있는 듯 느껴진다. 마치 매일매일 지나치던 이미 몸에 밴 익숙해진 기억처럼 이 골목 저 골목을 들여다보고, 맞닿은 처마 사이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걷는 길엔 결코 싫지 않은 즐겁고 편안함이 그 속에 있다. 라임 스톤으로 지어진 중세풍의 건물 숲속을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는........ 그런 꿈같은 도시에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일까? 우린 모두 그런 아름다운 도시에 살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몽펠리에는 더도 덜도 아니고 바로 그런 도시였다. 한 마디로 사랑스런 도시였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런 로망은 어느 순간 깨졌고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세월이 변한 것인지, 도시의 발전이 세월을 미처 따라가지 못한 것인지....... 몽펠리에는 시대에 뒤떨어졌고 점차 세상에서 밀려나 잊혀 져 갔다.
에쿠송(역사지구)은 몽펠리에 그 자체라고 해도 결코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곳에서 10km 정도 떨어진 해안지구의 어촌마을에서 시작되었으나 지중해 전역을 무대로 활개 치던 해적들을 피하기 위하여 내륙으로 쫓겨 와 돌무더기 언덕에 마을을 세웠던 곳에 주변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소도시로 발전한 것이 바로 몽펠리에였다. 지배계급이 거주하는 주위로 성벽을 쌓고 요새로 만들었다. 영주와 기사들과 성직자와 부자들이 성 안에 살았다. 요새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와 주택을 만들고 인근의 땅을 개척해 밀과 보리를 재배하는가 하면 들판에서 목축을 했다. 해안의 어촌마을에서 어부로 살던 사람들은 요새에서 남쪽으로 한참 떨어진 레즈 강변에 집단 거주를 하면서 물길을 이용해 바다를 드나들면서 여전히 어부 생활을 유지해 왔다. 이들 모두가 요새 정문 앞의 너른 광장에 모여서 잉여 생산물들을 교환 내지는 매매하기 시작했다.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며 그곳이 바로 코미디 광장인 것이다. 레즈 강을 통해 쉽게 바다로 나갈 수 있고, 이는 곧 바다를 통해 인근의 도시나 국가들과 교역이 가능하였고, 이곳의 지리적 특성이 동쪽으로 이탈리아 반도에 이르고, 서쪽으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 이르고, 북쪽 내륙으로 파리까지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였던 까닭에 상업의 발달로 이어져, 중세시기 수백 년 동안은 프랑스 전역을 통 털어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부자 도시로 급성장 했다. 그 길을 통해 새로운 문물과 새로운 학문이 들어와 대학이 유럽 최초로 생기기도 했다. 그런 만큼 요새 안쪽의 건물이나 지배구릅의 생활상은 결코 파리 못지않았다. 파리 왕궁에서의 권력 싸움에서 패해 밀려난 사람들이 이곳 몽펠리에에서 나머지 생을 화려하게 누리기 위해 찾아오는 첫 번째 피난처로 소문이 났을 정도였다.
한참 세월이 지나...... 아비뇽에 쫓겨 와 있던 교황청이 로마로 돌아가면서부터 급격하게 도시로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니 추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무심한 세월은 흐르고 또 흘렀다.
이제 몽펠리에는 유서 깊은 학문의 요람 몽펠리에 대학이 외부세계와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고 말았다. 특히나 몽펠리에 의과대학으로 유학을 오는 학생들만이 외부에서 이곳을 찾아오는 방문객의 전부였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몽펠리에를 아끼고 사랑하는 몇 몇 지식인들이 모여서 ‘마냥 이렇게 손 놓고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라고 생각한 끝에 ‘몽펠리에 개발 포룸’을 열었다. 동호회 수준의 모임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들의 헌신과 노력 끝에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수많은 현지인들이 모여들었다. 새로운 몽펠리에를 꿈꾸는 청사진이 만들어졌고, 그 일을 맡아 줄 책임자로 조지 프레쳐를 만나 기어코 시장에 당선 시켰다. 1979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전임 시장도 지극히 헌신적인 훌륭한 공인(公人)이었지만, 지금 몽펠리에에 필요한 것은 개선이 아니라 혁신이 간절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에쿠송(역사지구)은 오랜 세월동안 몽펠리에의 전부였지만, 이제 새로운 몽펠리에 건설에 있어서는 그 영역이 너무나 좁아서 부득이 따로 떼어서 정비 유지 보존해 나가야 할 것이며, 역사지구 주변에 흩어져 건설된 지금의 도심은 장차 역사지구 재정비와 보존 개발 정책에 포함할 것입니다. 하여 새로운 몽펠리에의 중심은 1km 밖에 있는 레즈 강 건너에 건설할 것입니다. 이곳 역사지구에서 레즈 강에 이르는 지역에 공원. 광장. 대형 정원. 스포츠 센터 등의 공공시설을 건설하겠으며, 사회 공익단체들의 사무실을 이곳에 둘 것입니다. 학교와 도서관을 지을 것이며, 친환경적인 소규모의 주거지역을 시험적으로 지을 것입니다. 역사지구와 신도심을 연결하는 거대한 문화공간의 터널 같은 통로가 만들어 질 것입니다. 그 주변의 숲과 유원지와 채소밭과 과수원과 농장들은 그대로 보존될 것입니다.’
시장의 취임 연설은 길어졌다.
‘무조건의 도시 확장을 위한 건설 사업은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건설에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더 높은 수준과 규제에 따른 환경중심의 생태도시를 만들어 꾸준히 유지 가능하도록 만들겠습니다. 애초의 도시 계획 속에는 토목과 건축은 물론 예술과 문화와 사회제도까지 염두에 두는 것은 물론 토지 이용에 있어서 도시라는 환경에 따른 생태학과 식물학은 물론 친환경에 입각해 에너지 절약 정책과 폐기물 처리와 오염 물질 억제, 수질 개선과 태양열 활용 및 모든 신축 건물의 단열 최적화 등을 최고 수준으로 적용할 것입니다. 반듯이 몽펠리에가 자랑스러운 지식과 역사의 도시를 바탕으로 최첨단 친환경적 도시로 지속해서 발전하고, 또 그것들이 합리적으로 늘 온전하게 유지 계승되도록 만들겠습니다........’
레즈 강을 따라 아름답게 조성된 공원들을 이어 걷는 듯한 산책로(land grant)를 걸으면서 나는 ‘몽펠리에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감동인가’하는 부러움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세계 어디를 가든 새로운 여행지마다 늘 21세기형 고민에 빠져있는 도시들을 만나곤 했기 때문이다. 해수면이 침수되고 있는 베네치아, 여행객이 너무 많이 찾아와 자신들만의 삶을 잃었다고 데모에 나선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유명 여행지들, 만년설이 녹아 스키장마저 점점 사라지는 스위스 산악 여행지들, 소음 공해와 도시 매연과 쓰레기로 몸살을 앓아 찾아오는 여행 방문자 수를 제한하고 여행자 세금을 걷겠다는 도시들이 속출한다. 따뜻한 지방에 눈이 내려 쌓이는가 하면, 비가 왔다하면 홍수로 범람을 하고,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혹한이 엄습하기도 한다. 연일 해외토픽을 통해 재난을 보고받으며 살고 있다.
그런데 여기 몽펠리에는 무엇인가가 다르다. 참 특이하다.
대부분의 도시들이 필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21세기형 고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에쿠송(역사지구)은 어린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는 놀이동산 같고 나머지 도심은 모두 아름다운 조각상들로 가득한 ‘조각 정원’ 이나 숲속 ‘조각 공원’ 같다는 느낌이다. 도시 전역에 고루 퍼져있는 녹음이 우거진 공원들 사이로 각각의 고전적 아름다움과 현대의 멋을 한껏 뽐내고 있는 다양한 건축물들이 전시된 장식품들처럼 사방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보아 온 흔한 도시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이 정원이 어찌나 너른지....... 산책하듯 걷든, 조깅을 하든, 자전거를 타든, 아니면 트램을 타고 다니든....... 상큼한 감동의 연속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다.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곳이 없는 거지?’
‘몇 사람이 모여서 합심해야 이런 도시를 우리도 가져볼 수 있는 거지?’
‘지겹도록 쌈질만 일삼는 정치판에서....... 프레쳐 같은 좌파 정치인을 찾을 수 있을까?’
‘아마 아닐걸? 시작도 전에 벌떼처럼 변호사 출신 정치인들이 몰려와 이쪽저쪽 무자비하게 난도질을 해댈 텐데....... 개발 연구 보고서가 완성이나 될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정치인들 저마다의 합법을 가장한 욕망과 이권다툼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이런 이상을 꿈꿔볼 기회나 가져볼 수 있을까?’(이상하리만치 난 대한민국의 정치만 생각하면 일단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거의 늘 그렇다. 제발.....)
그렇게...... 부러움과 아쉬운 한탄을 내뱉으면서 걷다보면, 도심을 가로지르며 흘러내리는 레즈 강변 저만치 위로 마침내 거대한 하얀 나무 한 구루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야말로 벅찬 감동이다!!!!!
우리나라의 자라나는 젊은 건축학도들과 도시공학과 학생들과 열정을 가진 젊은 관공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여기 몽펠리에에 와서 나처럼 그냥 여기저기 마구 싸돌아다녔으면 좋겠다. ‘선진문화 견학’이니 뭐니 하면서 (사기성 외유) 떠나지들 마시고....... 그냥 몽펠리에에 와서 며칠 푹 쉬다 갔으면 좋겠다. 생각하기 싫으면 생각하지 말고, 먹기 싫으면 먹지도 말고, 씻기 싫으면 씻지도 말고, 다만......... 산책을 하던 조깅을 하던 자전거를 타던 트램을 타더라도........ 도시 전역을 돌아다니기는 꼭 해야 한다. 나중에 세세하게 보고서 쓰라고도 안하겠다. 그냥 싸돌아다니면서 실컷 구경만은 제대로 하라고......... 어쨌거나 실컷 봐두기라도 하면....... 언젠가 필요해지면 생각이 날 것이고...... 생각이 나면 써먹을 방법을 찾을 테니 말이다. (사기성 외유)를 하느니....... 몽펠리에에 와서 그냥 푹 쉬고 놀다가 가라. 그게 훨씬 양심적일 테니까 말이다.
난 기꺼이 몽펠리에에 희망을 가지고 투자하겠다.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든지 바로 이 순간 나처럼........ 몽펠리에가 심어서 가꾸고 있는 (하얀 나무)를 보게 된다면.......... 별반 내가 지금 느끼는 감동이나 생각에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 하얀 나무의 가지 끝에....... 당신의 소망이 담긴 엽서 한 장쯤 매달아 놓고 잊지 않아 주시기를......... 나와 내 주변 사람들과....... 우리의 뒤를 이어서 살아갈 자식들을 위해서 말이다.
저 하얀 나무를......... 당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벗들과 당신의 자식들이 살아갈 대지위에 한 구루 심어보려는 노력이 지금 우리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 이 놀라운 건축물의 제목은 L’Arbre Blanc (The White Tree)로, 우리에게도 아주 인기 화제였던 J. R. R. 톨킨이 발표한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형상화해서 현재 일본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건축가 후지모토 소우(藤本 壮介, Fujimoto Sōsuke)가 만들었다. 영화속에서 곤도르 족의 상징으로 바로 하얀 나무가 등장한다.
우리나라에도 김수근. 유희준. 승효상. 배병길 등 훌륭한 건축가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해외에서까지 널리 인정받지는 못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웃나라 일본에는 예전부터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훌륭한 건축가들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다. 건축에 지대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어떤 차이가 있단 말인가?
미노루 야마자키. 당계 겐조. 아라타 이소자키. 구로가와 기쇼. 이토 도요. 거기에다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가히 안토니오 가우디에 필적할 만큼 인정을 받고 있는 안도 다다오에 이르기까지, 어찌되었건 건축에 있어서는 일본이 앞서가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후지모토 소우는 이렇게 막강한 일본 건축계의 현재를 대표하는 젊은 건축가라 하겠다. 71년 생으로 도쿄대학을 졸업하였고, 2001년부터 도쿄대학에서 건축학 강의를 해오고 있는 명실상부 장차 일본을 대표할 차세대 대표주자 자리에 올라있다고 하겠다.
2024년 올림픽을 앞둔 상태에서 노틀담 대성당이 회재로 불타는 등의 악재를 만회하기 위해서 파리는 대대적으로 파리 재건사업을 펼쳤다. ‘파리의 재창조’를 내세운 프로젝트에 당대 최고의 건축가 23명을 선정 참여시켰는데 후지모토가 그 중의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머지않아 어쩌면 프리츠커상 수상자 명단에서 그를 찾게 될 날도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애초 이 프로젝트는 잘 정비된 레즈 강변의 언덕위에 조성된 공원의 일부로 주변의 녹지대에 잘 어울리는 현대적 주거형 건축의 상징으로 건설하기로 계획되었다. 새롭게 토목공사를 통해 생겨난 순화도로의 원형교차로의 경계에 출입문을 내고, 반대인 서쪽의 레즈 강변 쪽으로 볼록 튀어나오도록 설계하여 폭넓은 파노라마 풍광을 가능케 설계되었다. 이 곡선의 돌출 면을 이용해 자연스런 노출과 너른 시야확보가 가능해지고, 이는 다시 인접한 옆집 공간들의 시야 확보에도 크게 도움을 준다.
17층에 이르는 이 고층건물은 주거목적의 고급 빌라는 물론 호텔로 사용되고, 미술관. 레스토랑. 업무용 사무실과 기타의 공용공간으로 설계되었다. 무엇보다도 활짝 열린 시야확보를 통해서 굳이 루프탑에 오르지 않아도 몽펠리에의 스카이라인을 새롭게 디자인해 주면서 지중해와 피레네 산맥과 흘러내려가는 레즈 강의 숨 막힐 듯 멋진 풍경들을 파노라마로 펼쳐보여 준다.
조지 프레쳐 시장의 주도 아래 (몽펠리에 재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첫 사업으로 에쿠송(역사지구)과 코미디 광장 주변의 정비 사업이 시작되었다. 다음으로 쇼핑몰 건설이 이루어졌고, 안티고네 건설을 시작하고 나서 곧바로 이어 새로운 시청 준공에 나선 것이다.
시청 건물이 완공되고 나자 이어서 본격적인 3단계 사업으로 신도시(오디세움 지역. 포트 마리나 지역)을 동시에 대대적으로 재개발 사업을 펼쳤는데....... 그 3단계 사업의 시작이자 상징적인 프로젝트가 바로 (하얀 나무) 건설이었던 것이다.
프레쳐 시장은 (하얀 나무) 건설에 온 심혈을 기울였다. 신도시 사업 전체의 기조와 방향과 기대와 관심이 모두 이곳에 쏠렸기 때문이다. 이제 몽펠리에 재개발은 온 세계가 예의주시하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것을 넘어 유럽 최고의 단일 프로젝트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놀라운 건축물의 빼어난 아름다움은 2019년 건축분야 전문 웹 사이트 (ArchDaily)로부터 "그 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상을 받았다.
더불어 우리들 중에 누구라도, 혹여 몽펠리에를 여행하게 된다면 라브르 블랑(L'Arbre Blanc,하얀 나무)을 언제든 쉽게 만나 볼 수 있을뿐더러, 원한다면 실제로 그곳에 머물러보면서 이제껏 설명한 그 모든 것들을 만나보고 느껴보고 즐겨볼 수 있다. 높은 층의 일부 구역이 현재 호텔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정말로 감격스러운 것은 온 세상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몽펠리에를 대표하는 건물임에도 의외로 저렴한 비용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몽펠리에라는 도시가 가진 매력이자 장점중의 하나가 이곳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여타의 여행지와 비교해 볼 때 매우 저렴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런 이유로 이곳에서 묵고자 하는 여행자가 많아서 좀 노력을 기울여야만 그런 행운을 잡을 수 있다. 결국 우리도 그런 기쁨을 누려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하여간 말이다. 어쨌거나.......... 몽펠리에는 그 기적과도 같은 새로운 역사를 결국엔 쓰고 말았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도시가 가지고 있는 자급자족의 경제성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기준으로 순위 25위권에 겨우 머물던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대표적 후진 도시로 꼽히던 몽펠리에가 어떻게....... 프랑스 역사를 통 털어 단일 프로젝트로 가장 규모가 크고 50년 이라는 시간이 소요되는 도시 개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단 말인가? 이 무모한 프로젝트는 결국 거창하게 요란을 떨며 여기저기 땅을 파헤치기 시작하겠지만 재정부족과 인력난과 기술 부족 등으로 머지않아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엄청난 프로젝트의 부실과 부도의 결과는 모두 프랑스 정부의 책임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고, 이는 다시 고스란히 프랑스 국민의 세금으로 떠안고 가야하게 될 것이 충분히 예측 가능한 너무도 뻔한 결과였다. 온 유럽을 넘어 세계가 그 귀추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온갖 루머와 부정적 여론이 프랑스 전역에 파다하게 퍼져나갔고, 결국 프랑스 정부가 나서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제재에 나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몽펠리에 시민들의 생각과 각오는 달랐다.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잘 알 수 없겠지만 그들은 어떤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주저하거나 멈출 생각이었다면 50년이나 걸리는 이런 원대한 꿈을 애초부터 꾸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태도들이었다.
역사지구(에쿠송)과 코미디 광장의 정비사업과 대단위 쇼핑몰 사업의 성공은 시민들에게 이미 커다란 자부심과 희망으로 화고부동하게 자리를 잡아갔던 것이다.
열정과 신념으로 가득 찬 젊은 시장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곧바로 안티고네(Antigone) 건설 사업을 시작했다. 동시에 청저하게 사전 준비한 마스터 플랜을 가지고 프랑스 정부와 협상 테이블에 나갔다. 하지만 철저하게 정부는 외면했고 사사건건 제동을 걸어왔다.
몽펠리에 프로젝트는 처음으로 아주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재정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국가정책이라는 자물쇠가 개발사업 곳곳에 재갈을 물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문 인력도 턱없이 부족했고 개발에 필요한 모든 원자재의 공급에 차질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무기한의 개발 지연 내지 어쩌면 중단의 수순을 밞게 될지도 모른다는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하기 시작했다. 몽펠리에의 위기이자 프로젝트의 위기였으며 모든 위기의 한복판에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했던 프레쳐 시장이 있었다.
도시 재정 자립도 25권에 겨우 머물고 있는 쇠락해질 대로 이미 쇠락한, 노쇠한 도시 몽펠리에가 가진 것이 이 순간에 더 무엇이 있었겠는가?
가장 아쉬운 것은 (몽펠리에)라는 도시가 가진 ‘브랜드 가치’가 당시로서는 거의 별 볼일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을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는가?
‘빛과 사랑과 낭만의 도시’ 파리(Paris), ‘식도락의 천국’ 리옹(Lyon), ‘지중해 최고의 휴양지’ 니스(Nice), ‘와인의 도시’ 보르도(Bordeaux), ‘아름다운 항구도시’ 마르세유(Marseille), 거기에다가 최근 들어 한참 떠오르고 있는 ‘평화로운 강이 들려주는 동화 같은 도시’ 스트라스부르(Strassburg)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대표적 여행 도시들은 저마다의 가치를 지닌 고유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이 브랜드들은 저마다의 헤아릴 수 없는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고, 그 브랜드 네임벨류 만으로도 얼마든지 투자를 끌어들이기도 하고, 활용도에 따라 얼마든지 관광객을 불러 모으기도 하는 보이지 않는 큰 손 역할을 해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당장 (몽펠리에)라는 네임벨류가 가지고 있는 브랜드로서의 가치는 전무했다.
최소한의 브랜드 가치마저 상실한 몽펠리에 프로젝트는 이만 여기서 멈추고 말 것인가?
절대 포기를 모르는 좌파급진 정치가 조지 프레쳐(Georges Frêche) 시장은 애초에 보고서 사본을 들고 찾아와 자신을 이 프로젝트네 끌어들인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흔들리고 있는 시민들을 향해 이렇게 설명하면서 지속적인 관심과 부단한 노력을 부탁했다.
‘안타깝게도 몽펠리에라는 브랜드(Brand) 가치는 이제 거의 제로에 가깝다. 몽펠리에가 가치가 전무한 브랜드를 내세워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다. 하지만....... 우리가 힘을 합해서 아무것도 없는 몽펠리에에 새로운 트랜드(Trend)를 제대로 접목시킨다면 머지않아 파리나 리옹이나 니스가 가진 브랜드 가치 이상의 놀라운 효과를 창출해 낼 수 있다. 나는 확신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여기 몽펠리에에게 ‘친환경적 이상적인 생태도시’라는 새로운 트랜드의 옷을 갈아 입혀야만 한다. 라고 역설했다. 급진좌파정치인은 프랑스는 물론 온 유럽과 세계의 학술회의나 환경문제 토론회들을 찾아다니며 몽펠리에를 소개해 나갔다.
그러면서 아무리 처한 환경이 절망적일 지라도 과감하고 지속적인 개발과 건설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갔다.
안티고네 건설 하나만으로도 재정난과 인력난과 자재수급난에 시달리고 있는 마당에, 그는 한 술 더 떠서 레즈 강 건너편에 건설하기로 계획했던 새로운 시청 건설의 첫 삽을 뜨고 말았던 것이다. 애초부터 안티고네 사업의 완성은 시청의 준공까지였다. 온갖 루머와 당면한 수많은 난관을 떠안은 채, 안티고네의 시작과 끝을 동시에 같이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온 세상의 관심이 집중된 채.......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뿔 고!!!!!
과연 얼마나 저렇게 지속할 수 있을까?
하지만 말이다. 신의 섭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알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이 종종 이 세상엔 벌어지고 있다.
하나의 물체나 하나의 사실에 대하여 모든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선과 생각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더러는 보다 깊게 그 물체나 사실의 본질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꿰뚫어 보는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구원의 손길 하나가 슬그머니 몽펠리에 시민과 프레쳐 시장에게 온정의 손길을 내밀어 왔던 것이다.
그러고 나자 이어서.......이런 걸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은(누군가 다른 한 사람의 몰락과 연관이 되니까 말이다) 갑자기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세상이 확 바뀌는 일이 느닷없이 몽펠리에에 들이닥친 것이다.
‘여러분은 <4차 산업혁명> 하면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우리나라 여의도 정치판에 가끔 등장하는 ‘미래의 먹거리로서의 4차 혁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4차 산업혁명’ 이라는 단어나 용어가 등장하던 시기의 세계 동향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 현재의 초일류 기업 내지는 부자들의 서열에는 당연한 듯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인물들이 대세로 등장하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 초기만 해도 지금과는 판세가 전혀 달랐다.
바로 그 <4차 산업혁명>의 초기를 주도하던 기업을 꼽으라면 지금과는 확실히 다르게 당시에는 빌 게이츠가 이끄는 MS(Microsoft)와 루이 거스너가 이끌어 왔으나 새뮤얼 팔미사노가 바톤을 이어받으면서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는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 Corporation)이 양대 산맥을 이루었고, 이들 뒤를 스티브 잡스의 Apple사가 무섭게 맹추격하고 있었다.
IBM(국제사무기기 회사, 國際事務機器會社, 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 Corporation).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초일류 기업 IBM 루이 거스너 회장이 몽펠리에가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트랜드인 ‘친환경적 미래 생태도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기 IBM은 주로 메인프레임을 위주로 한 하드웨어 업체였다고 하겠으나, 1990년대 이후로는 점차 소프트웨어와 다양한 서비스 분야로 보폭을 넓혀왔다. 그런 와중에 1990년대 초반부터 IBM은 에너지 절약과 환경 보호 프로그램을 통해 기후 변화를 해결하려고 꾸준히 노력을 해오고 있었다. 이런 노력은 계속 이어져 2021년의 경우 IBM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GHG) 순 배출량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수립 발표하기도 했다.
‘IT가 애플리케이션 성능이나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한으로 줄인다면 과연 얼마나 어디까지 줄일 수 있을까?’ 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IBM사 Client Engineering의 기술 엔지니어인 Gauthier Siri는 오늘도 연구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코미디 광장에서 영화도 보고 외식도 하고 카페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고 싶어요.’ 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는 지금 분명한 몽펠리에에 거주하는 현지인이다.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IBM Client Engineering 부문의 본부를 과감하게 몽펠리에로 옮겨 대단위 연구소와 개발실을 건설한 것이다. 미래지향적 최첨단 초일류 기업이 몽펠리에 개발현장에 처음으로 이전해 입주를 한 것이다. IBM Montpellier Data Center는 하이브리드 멀티클라우드 인프라와 심층적인 기술 전문 지식을 산업체 전반은 물론 인간의 실생활에 제공하여 IBM 연구 개발팀이 직접 고객의 비즈니스 요구사항을 지원하는 솔루션을 혁신적인 방법으로 신속하게 입증 지원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간다. 팀의 임무는 모든 다양한 고객과 기업의 공동 정보 교환과 협업을 통해 가치 창출 속도와 혁신을 새롭게 창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업내부에서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숙련된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하는 팀이 직접 나서서 다양한 산업분야 전반과 인간의 실생활 부문에서 새롭게 제기되는 모든 환경적 기술적 문제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모든 데이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외부의 현장과 실시간으로 협력하고 모든 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 연구와 공동 개발에 기꺼이 나서는 혁신적이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지금 그들의 주된 관심은 보다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과 탄소 발생을 줄여나가는데 있다.
이렇게, 다분히 미래지향적인 초일류 기업이 추구하고 개발하는 것들을 실생활이나 산업 전반에 적용하고 테스트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사안 사안마다 자신들의 연구실 안쪽 어딘가에 실생활과 똑 같은 환경을 만들거나 공장을 세우고 숲과 공원을 만들어 실습과 관찰을 계속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기업이 추구하는 미래지향적이며 친환경적인 도시가 실제로 생겨난다면....... 굳이 연구실 안에 빼곡히 실습 환경을 만들어가면서 관찰하면서 데이터를 축적하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IBM의 최고 경영자는 몽펠리에 개발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친환경적이며 이상적인 생태도시가 곧 다가올 머지않은 미래의 일상적 도시가 될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고, 과감하게 연구 개발과 데이터 축적 시설을 몽펠리에에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그 반향은 실로 엄청났다.
(IBM Montpellier Data Center)의 이전 소식은 모든 매스컴에 톱뉴스로 장식되었고, 세계의 모든 기업들이 몽펠리에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최첨단 초일류 기업이 굳이 왜 몽펠리에를 선택했을까?’ 심지어 세계 주식시장이 몽펠리에를 주시하기 시작했을 정도였다.
불확실한 미래에도 살아남고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몽펠리에와 IBM 사이의 드러나지 않은 내막을 알아내야만 한다고 떠들썩해졌던 것이다.
거기다가 상황이 이쯤 되었으니........ 이제 프랑스 내부의 사정은 또 어땠을까?
브랜드 가치를 상실했던 몽펠리에(Montpellier)가 새로운 트랜드를 주도하면서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실로 엄청난 트랜드 파워를 발휘하기 시작하였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또 하나의 행운(?)이 슬그머니 몽펠리에와 프리쳐 시장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던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맞붙은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의 중도우파 정권을 프랑수아 미테랑(François Maurice Adrien Marie Mitterrand) 전임 총리가 이끄는 중도 좌파 정권이 물리치고 승리한 것이다. 지스카르 대통령 치하에서 총리에 취임하였으나 사사건건 정책 마찰을 빚어 중도에 사퇴했던 미테랑의 새로운 승리였다. 미테랑 하면 유독 예술과 문화에 지대한 관심이 차고 넘쳤으며 지속적 후원을 마다하지 않은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그런 임기 7년의 미테랑이 대통령직을 연임까지 했으니....... 매번 퇴짜를 당해 온 몽펠리에와 프레쳐에게는 마치 구원의 동아줄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IBM의 뒤를 이어 수많은 기업들이 몽펠리에 이전을 타전해 왔다. 하지만 몽펠리에에 정착할 수 있는 기업은 극소수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무조건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설은 올 수가 없다. 더불어 실생활 전반을 모두 일반의 현지인들과 똑같이 몽펠리에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녹아들 수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근무하는 회사여야만 했던 것이다. 아울러 기업이나 생산시설은 절대로 역사지구나 새로운 신도시 가까이에는 건설될 수 없다. 포트 마리나를 벗어난 해안지역에 세워져야만 한다. 대신 시당국은 잘 정비된 깨끗한 환경의 대지를 제공하고 맑고 풍부한 수자원은 물론 완전한 도로망과 편리한 트램 시설을 사용에 불편이 없도록 연결 제공한다. 학교. 도서관. 병원과 체육시설과 공원과 시장과 마켓 등, 쾌적하고 안락한 일상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현대적 생활 근린시설을 신도시 영역에 꾸준히 건설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세계적인 건축가와 학교와 연구소들이 앞다투며 몽펠리에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다고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에 의해서 모두 다른 개성과 추구하는 성향이 제각각인 다양성 가득한 21세기 최고 최대의 건축 박람회가 지금 몽펠리에세서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지상 낙원이 아니겠는가?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일당 독재의 공산주의에서도 그나마 지극히 한시적으로 가능한 일이라고나 할까?
자유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유토피아적인 도시계획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조지 프레쳐는 연임에 연임을 거쳐 몽펠리에 시장으로 24년을 재임하면서 그에게 맡겨졌던 퐁펠리에 왕국을 어느 정도 현실적 반석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몽펠리에를 벗어나 보다 더 레벨이 높아진 지역 개발을 위해 도지사를 추천받고 떠났을 때, 오랜 시간 프레쳐의 시장업무의 지지자이자 동반자였던 헬렌 망드루(Hélène Mandroux) 여사에게 넘겼고 그녀도 이 프로젝트를 더욱 계승발전 시켰다. 헬렌은 연임에 성공했고, 다음으로는 필립 사우렐 (Philippe Saurel)이 바톤을 이어받아 활발하게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필립은 무릎 부상이 심해 더 이상 재선에 나서는 것이 불가능해 졌고, 이는 결국 교사 출신의 미카엘 들라포세 (Michaël Delafosse)라는 젊은 정치가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보자면 참 몽펠리에는 복이 많은 도시가 아닌가?
참신한가 하면 열정적이고,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신선함을 추구하는 능력 있는 정치가들이 꾸준히 이어서 등장하니 말이다. 어느 하나도 부패나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이 없다.
거기에 더하여 지금 현재 몽펠리에가 얼마나 축복받은 도시인가를 가능해 볼 수 있는 사례를 현직을 수행하고 있는 미카에 들라포세 시장의 연설 중에서 짧게 간추려 소개해 보겠다.
‘저는 지금 안티고네 펠리니 미디어 도서관의 에셸 드 라 빌(Échelles de la ville)에 ’몽펠리에 프로젝트의 방‘을 만들고 있습니다. 몽펠리에 도시를 그대로 축소해 놓은 미니어쳐는 이미 완공해 놓았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그동안의 개발 사업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보고서 형태의 공간이 추가로 보태질 것입니다. 아울러 앞으로 펼쳐질 몽펠리에 개발의 청산진과 마스터 플랜이 모두 아주 상세하게 누구나 보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그곳에 만들어지고 재현될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 룸은 금년 12월(2024) 크리스마스 전후에 모든 사람들에게 무한 개방될 것입니다. 아울러 차후로 저나 혹은 실무 담당자들이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몽펠리에 시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하여 질문하고 응답을 받고, 또는 앞으로의 개발에 대하여 의견을 제시하고 함께 토론하면서 실제로 함께 참여하고 이룩해 나가는, 우리 모두가 실제로 모든 프로젝트의 주인이 되는 새로운 장을 펼치게 할 것입니다. 당신의 생각과 의견이 고스란히 앞으로의 프로젝트에 반영되고 곧 실물로 만나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또 한 가지를 간절하게 바라기로....... 프로젝트 룸이 공개되는 그 정도의 시점부터 몽펠리에를 실업률 제로의 도시로 선포하고 싶습니다.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언제든 항상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도시를 만들고 싶습니다. 역사상 그 어떤 왕도 황제도 감히 이룰 수 없었던 실업률 제로의 역사를 여러분과 함께 여기 몽펠리에세서 이룩해 내고 싶습니다. 시간. 수치. 실제적 사실로 따지자면 그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겠으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부당하게 쫓겨나거나,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할 직장을 찾을 수 없거나, 직장이 없고 수입이 없어서 행복하지 못하고 범죄에 빠져드는 그런 아픔이 없도록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모두가 합심해 더불어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고, 일터와 노동자 사이에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 내지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저를 포함하여 잘 훈련된 실무자를 양성하고 또 영향력 있는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여, 오늘 비록 부당한 일로 해직을 당했다 해도, 당일이던 하루이던 이틀이던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일을 하고자 한다면 언제든 새로운 보다 좋은 일자리를 즉시 알아보고 연결해 줄 수 있는........ 부당하게 억지로 가져야 하는 고통과 좌절의 실업 시간을 최대한 극한까지 줄여나갈 수 있는 실업률 제로의 도시를 여기 몽펠리에에서 꼭 이루어내고 싶습니다.’
아! 어찌 평안하고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사회주의가 내세우는 평등한 사람들의 공평한 지상 최고의 낙원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이것이 바로 몽펠리에가 지금 ‘가장 살고 싶은 도시’가 된 이유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몽펠리에 신도심의 풍경이다.
푸른 녹지로 가득한 대지 위에 잘 정돈된 도로망이 형성되었고, 드문드문 여기저기에 이렇게 예쁘게 만들어진 건축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야말로 다양한 건축물이 전시되고 있는 살아있는 자연 전시관인 것이다.
이들에게 건축은 매력이 넘친는 공학의 결정체인가 하면, 다분히 하나의 예술인가?
내가 로마(Roma)를 진정으로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는......... 역사. 정치. 법률. 예술과 문화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로마가 세상에 널리 남겨놓은 로마 특유의 건축물을 유독 사랑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도시와 성벽과 로마 가도와 수도교까지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것을 모두 건설한 로마 군인들의 땀과 노력과 헌신을 더욱 아끼고 존경하기에 기꺼이 나는 로마를 사랑하게된 것이다. 로마의 군인 하나 하나는 용맹한 지상 최고의 전사이면서 동시에 최첨단 매카니즘으로 무장한 맥가이버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앞으로 나가면서 세상을 정복하였고, 돌아서서는 도로를 만들고, 성벽을 쌓아 도시를 건설하고, 수도교를 만들어 먼 곳에서 물을 끌어오고, 분수와 신전과 원형경기장과 로마극장을 손수 만들었다. 더하여 오랫동안 주둔하게 되면 가장먼저 포도나무를 심었고 이어서 오렌지와 올리브 나무를 심어 가꾸었다. 물론 그 이면엔 정복활통을 통해 얻은 노예라는 특수한 집단의 피와 땀이 바닦에 깔렸지만 말이다.
유럽의 문화는 고대 그리스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들 하지만....... 나는 로마군대의 발자취 자체가 또 하나의 진정한 유럽 문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유럽의 어디를 여행하든지 가장 먼저 로마를 찾았고, 이어서 르네상스를 찾아다녔는데........
로마도 르네상스도 없는 몽펠리에서서......... 나는 지금 샹그릴라((Shangri-La)를 떠올리고 있다.
나에게 실로 이런 어처구니가........... ㅋㅋㅋ
이들에겐 결코 멋진 건축물의 외형이나 유형무형의 가치만이 관심의 대상은 아니다.
건물의 외형 못지않게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더없이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가하면 건축물 내부의 한 뼘의 공간도 허툴게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 없다.
내부의 공간 또한 멋지고 아름답게 꾸미면 좋겠지만, 이들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그 작은 공간을 그냥 장식장이나 비싼 조형물의 전시장으로만 쓸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 모든 공간은 건축물의 일부일뿐더러 당연하게 필요한 생활공간으로 재창조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곳은 모두 하나의 전시공간으로서의 의미와 역할을 넘어서 실생활에 유익한 공간이어야만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쉼터의 공간이어야 하고, 두 걸음 더 나아가서 무럭무럭 자라나야 할 아들들을 위한 놀이터로 언제든 변모할 수 있어야만 하는 공간인 것이다. 모든 건축이 다분히 미래지향적이고 진정한 가치를 가지고자 한다면 그 몫은 어디까지나 미래 세대의 주역인 아이들 차지인 것이다. 건축이나 예술이나 문화를 넘어서 지금 그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놀이터인 것이다.
이들은 고부가 가치의 영속성을 가진 조형물을 원하지 않는다. 실생활 속에서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서 그들에게 즐거움과 꿈이 자라나게 하고, 놀이의 과정에서 훼손되거나 파손이 된다면 기꺼이 언제든 새로운 것으로 그 공간을 다시 채울 것이다. 그것이 변화이며 재창조이며 진정한 가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왜 현실적인 우리의 일상에서는 이런 마인드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일까?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는 건축하면 일단 대부분이 부동산으로 먼저 인식하지 않는가. 그 부동산은 곧바로 투자가치 평가로 이어지고........ 역세권이니 재개발 지역이니 하는 수식어들이 의례히 따라붙지 않았는가?
도대체 이런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런데 다른 누군가는........ 건축을 다양한 최첨단 매카니즘 공학의 결정체로 보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하나의 예술로 보고 있지 않는가?
헐!!!!!!
크기가 모두 제각각인 라면박스 형태의 건물들로만 빼곡한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과, 애니메이션에 등장할 법한 아기자기한 건물들로 가득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심성과 행복도는 같을까?
라면박스의 도시엔 온통 번쩍거리는 네온사인과 간판들로 시야가 어지러운 데 반해, 아기자기한 도시엔 맑은 강물이 흐르고 주변으로 온통 숲과 공원이 가득하다면, 우리의 어린 자녀들은 어디에서 자라는 것이 좋을까?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이나 구겐하임 미술관과 호주의 오페라 하우스, 파리의 그랑 루브르나 9.11 사태의 결과로 탄생한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나 파리의 퐁피듀 센터나 안도 다다오는 물의 교회 같은 건축들과 같은 현대 건축의 표본과도 같은 건축물들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가? 물론 우리나라 건축 수준이 뒤떨어졌다거나 우리나라 건축가들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뜻이 결코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창조는 모방에서 나온다'라는 아주 오래된 낡은 명언이 떠오른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모방이던 짝퉁 비스무리가 되었던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을 잡아끄는 인상적인 현대적 건물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일까? 물론 따지고 보자면 곳곳에 뛰어난 건축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놓은 건물이 상당히 많이 있다는 사실까지 부인하려는 의도 또한 아니다. 왠지 무엇인가가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다는 의리하고 해야겠다.
젊은 건축가이자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 모교수의 강의를 경청을 하고, 공감하고, 깨달음을 많이 얻고, 그분의 강의에 등장하는 제주도와 여러 곳의 건물을 실제로 찾아다녀 보기도 했다. 설명을 듣고 찾아가 느껴보는 감동은 정말로 크게 다르다. 그런데...... 강의를 듣고 그런 건물들만 보았으면 나름으로 공감과 감동이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의외의 장소에서 전혀 뜻밖의 상황에서 실로 입이 떡 벌어지기에 충분한 건축을 상당히 자주 접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왜 우리나라에는 라면 박스들 밖에 없는 것일까?’라는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 의문이 거듭거듭 생겨 난다.
지금 몽펠리에 신도시 지역을 걸으면서 드는 기분은 극한의 부러움과 현실적 상실감이다.
왜 우리에겐 이런 공간이 꿈이나 상상이란 말인가?
나는 아니어도 좋지만, 우리의 손녀들이 살아갈 미래는 여기 몽펠리에 같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건축은 시대의 거울’ 이라고 했다.
건축을 보면 그 시대의 사회상을 알 수 있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알 수 있고, 그 시대의 문화적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 식민시대와 개발도상국을 거쳐 한강의 기적을 달성해 세계 경제 8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지금의 대한민국을 여실하게 나타내 줄 수 있는 건축은 어떤 것일까? 이 시대의 자화상은 과연 어떤 것일까? 한강 변에 즐비한 라면 박스 형태의 아파트 빌딩 숲이 지금 우리의 모습일까? 아니면 롯데 타워가 이 시대의 우리의 얼굴이자 가치관이자 본모습일까? 이 시대 우리의 본모습이자 가치관은 결국 돈(money)이란 말인가?
아무리 멋지고 친 환경적인 건물이면 뭐해?
사람들이 쉽게 몰려드는 역세권이 우선이고, 일단 간판을 붙이기 쉽고 멀리서도 잘 보이게 해서 오로지 장사가 잘되게 하는 게 최우선이야. 모양이니 유행이니 다 필요 없어. 큰돈을 들여야 하는 만큼 크고 확실하게 투자 효과를 극대화하면 되는 거지, 도시환경이니 문화니 하는 문제가 돈벌이와 무슨 관계야?
그런데 정말 그럴까?
정말 그게 전부일까?
직장인들은 하나같이...... 정년 퇴직하면 시골에 가서 농막 하나 짓고 텃밭이나 가꾸며 살고 싶어.
오로지 돈벌이에만 눈이 멀었던 사람도 하나 같이........ 고향에 아담한 초가집 집 하나 짓고 여유롭게 쉬면서 살고 싶어. 각박한 도회지는 이제 지겨워. 좀 게을러지고 싶어.
느즈막히 그게 다 이루어질까?
긍국의 목적이 정말로 그렇게 단순하고 쉬운것일까?
세상엔 돈 가지고 안되는 일들이 정말로 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지 않을까?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인본주의 정신을 되살리고, 우리 모두의 자각과 미래 비전에 대한 공동의 꿈을 꾸고, 우리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버릴 것은 버리고, 되살릴 것은 되살리고, 봉사와 헌신을 하지 않는 이상, 점점 심하게 부서지고 망가지고 회복 불능한 암울한 미래환경이 우리 앞에 닥칠 것은 필연인 것이다.
<몽펠리에 프로젝트>의 일부분 일부분이라도 내 고향 충주로 가져다가 접목시켜 보고싶다. 그 접목한 꽃눈에서 어떤 새싹이 피어날는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싶다.
개성있는 아름다운 건축을 통해 사람 살기에 유익한 도시환경을 만들어보고 싶다.
매일같이 지나다녀도 늘 새롭게 느껴지고, 골목길 안쪽에서 늘 어린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자연스레 들려오는 그런 도시였으면 좋겠다. 그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건강한 노인들이 사는 그런 친환경적인 건강한 도시였으면 더 좋겠다.
몽펠리에는 충주 시민인 내가 꿈꾸는 충주의 미래 모습이다.
-- 찾아주시고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몽펠리에 여행)에 관해 계속 이어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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