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을 여행하면서 해안도로를 따라 동해안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은 정동진을 향하다 보면 들쑥날쑥 해안선을 지나 금진항 포구를 지나치게 된다. 산모퉁이 저편으로 정동진의 멋진 풍경이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해안선을 등지고 서서 산자락 위를 올려다보면 저만치 산중턱에 다소 초현실적인 건축물이 우뚝 솟아있음을 알아챌 수가 있다. 제번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고 또 오르면 비로소 나타나는 뜻밖의 낯선 건물을 마주치게 되는데 주차장 한 구석의 표지판에는 ‘하슬라 아트 월드(Haslla Art World)’라고 적혀 있다.
하슬라 아트 월드는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에 위치한 복합 문화 예술 공원의 명칭이다.
어느새 훌쩍 20년이 지나가버린 일이 되었지만, 2003년 조각가 박신정이 뜻을 같이하는 조각가 최옥영과 함께 자연그대로의 친화적인 정원 문화를 개척하기로 하고 바로 이 자리에서 함께 첫 삽을 떴었다. 자연 훼손을 최대한 자제하는 선에서 인간과 예술과 자연환경이 말 그대로 함께 공존하는 공원을 만들어가기로 애초 작정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 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작가와 관객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작업 공간을 달리하는 예술가들이 만나 서로 교류하면서 보다 나아지는 자연과의 교류를 추구해나가는 장을 만들고자 했다. 아울러 그런 노력의 너머로 일반 대중들과 자라나는 어린이들 체험의 장이자 놀이 공간으로 활용되고 이것이 또 다른 학습의 장으로 발전될 수 있기를 염원하며 설계된 공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곳에서는 작가와 관람객과 예술작품과 자연이 모두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보면서 이야기 나누고 함께 호흡하고 느낌을 나눌 수 있는 자연환경 친화적이며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려진 아주 특별한 공간과 시간이 제공된다.
하슬라 아트 월드는 복합적인 종합예술 공간으로 크게 나누면 조각 공원과 부대시설(전시실)로 나눌 수 있다.
이곳의 시작점이었던 조각공원은 ‘성성 활엽길’ ‘소나무 정원’ ‘시간의 광장’ ‘바다 정원’ ‘하늘 전망대’ ‘돌 갤러리’ ‘소똥 미술관’등의 각기 다른 테마를 중심으로 예술정원으로 꾸며졌다.
그런가하면 또 하나의 복합 공간인 전시실에는 200여점의 현대미술이 전시되어있는 ‘현대 미술관’과 유럽 전역에서 수집한 마리오네트와 피노키오를 소재로하는 ‘피노키오&마리오네트 미술관’이 있다. 아울러 이곳에서는 연중 수시로 기획 전시는 물론 초대전과 상설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 부부는 유럽을 여행하면서 특히 미술관이나 박물관 관람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간절할 만큼 절실하게 그리우면서도 아쉬웠던 것이...... 유럽의 어느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가던지 항상 아이들과 청소년들로 북적이는 모습이었다. 유럽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언제 어디를 가든지 항상 아이들의 학습장이자 놀이터였다. 청소년들의 쉼터이자 데이트 장소였다. 우리나라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풍경이었고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상당수의 미술관과 박물관이 미성년자(18세 이하)에게는 언제나 무료 개방이었다. 성인이나 노인이라해도 문화계 종사자나 예술분야 대학생과 선생님들에게는 언제나 완전 무료 개방이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쉼터나 놀이터가 아무 때나 되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 정서는 당연히 우리처럼 늘 바쁘고 쫓기듯 사는 사람들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늘 확신하는 사람이 바로 나 이다. 그러니 한없이 부러울 수밖에.........
나는 우리의 두 손녀가 저렇게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놀이터처럼 대하고 누릴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대학이나 대학원의 한 과정은 적어도 독일에서 공부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동안의 오랜 여행에서 얻은 결론이다.
그렇게 된다면...... 고 녀석들의 정서는 틀림없이 온화하고 아름답고 정서적으로 풍성하면서도 확고한 자기만의 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태리야! 세리야! 할아버지가 너희에게 성취되기를 기원하는 최고의 바람이 바로 이것이란다.’
‘물론, 너희들의 삶은 온전히 너희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너희를 위한 너희들만의 것이어야지.’(아멘!!!!!)
프랑스 파리의 제 2구역에는 에펠탑만큼이나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은 아주 유명한 건축물이 하나 더 있다. 파리(Paris)를 통털어 노틀담 대성당 다음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장소가 에펠탑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라는 사실에 필자 또한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프랑스사람들은 평소 이곳을 ‘보부르(Beauxbourg)’라고 불렀다. 이 말은 ‘가장 아름다운 동네’라는 뜻인데, 정말로 이 동네의 풍경이 빼어나게 아름다워서 붙인 이름이냐 하면 결단코 아니다. 오히려 죽도록 아름답지 않아서 억지로 갖다 붙인 이름이라고 해야만 하겠다. 이곳은 파리 최고의 빈민가였으며 인근에 도축장까지 있어서 너무나 지저분하고 악취가 풍겨나던 최악의 동네였던 것이다. 그런 동네 한복판에 바로 파리 최고의 홍등가(윤락가)가 위치해있었기에 거리를 배회하는 거리의 여인들을 빗대어 ‘보부르’라고 불렀던 것이다.
조루즈 퐁피듀 대통령은 1977년 이곳 빈민가를 대대적으로 재개발하기로 하고, 홍등가 건너편의 너저분한 전통재래시장을 헐어내고 초현대식 건물을 짓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건물이 바로 ‘퐁피듀 센터(Centre Pompidou)’인 것이다.
퐁피듀 센터는 흔히 말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결코 아니다. 굳이 달리표현하자면 요즘 흔히들 하는 말로 (복합 예술문화 공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시시각각 변하고 발전해가는 진행형인 모든 문화와 예술을 생산하는 공장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현대 미술의 전시관으로서만이 아니라 이곳은 거리의 악사나 삐에로의 퍼포먼스에서 길거리 댄서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져 있는 문화예술 공간인 것이다.
실내공원 스포츠 시설에서 카페, 그리고 도서관 등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4층과 5층에 할당된 ‘국립 현대 미술관’ 입장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설 이용이 완전 무료다. 방문객 숫자에 있어서 노틀담 성당에 이어 두 번째라 하지만, 여행자를 제외한 파리현지인들의 방문 이용객 숫자로만 치자면 압도적 1위가 바로 퐁피듀 센터일 것이 확실하다. 거기에다 전체이용객의 65% 정도가 35세 이하의 젊은 층이다. 이곳이야말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파리사람들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보기에 더할 수 없이 좋은 장소가 아닐까 싶다.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과 여기 현대 미술관을 흔히들 (파리 3대 미술관)이라고 일 컷 는데....... 이는 결코 우열을 가려 순위를 먹일 수는 없는 일이다.
프랑스 정부는 저마다 특징적 우월성을 내세우는 미술관과 박물관을 중앙정부로 일괄 귀속시키고, 새로운 규정에 따른 할당과 전시 규정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하여, 루브르 박물관에는 고대 미술에서부터 르네상스를 거쳐 낭만주의 시대까지의 작품들을 소장케 하였으며, 오르세 미술관에는 1848년에서부터 1914년까지의 근대미술 작품들을 소장하고 전시하게 했다. 하여 1914년 이후의 현대미술은 온전히 국립 현대미술관의 차지가 되어 버렸다. 야수파의 마티즈를 시작으로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파, 이후의 표현주의, 추상주의, 설치미술로 대변되는 현대미술을 관람하려면 퐁피듀 센터로 향하는 수밖에 없다. 루마니아 출신의 현대 조각가 브랑쿠시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가 하면, 자랑스런 백남준의 대표작품도 바로 이곳에 전시중이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퐁피듀 센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보기에 따라서 더러는 혐오스럽기까지 하다는 초현실적인 건물의 외관이 아닐까 싶다.
건축물의 아주 중요한 기능적 역할을 하는 가스배관. 환기시설. 상하수도 시설. 전기 시설. 엘레베이터 등이 건물의 외관에 그대로 드러나는 아방가르드 건축의 효시가 된 건물인 것이다. 더하여 전기시설은 황색,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는 적색, 공조 시스템과 상하수도 시설은 청색으로 칠해져 있다. 지금에도 보는 사람을 놀라 게 만들 정도이니, 처음 이 건물이 일반에 공개되었을 때의 반응이야 그저..... 상상에 맡겨 볼 수밖에......
우리는 지난 파리 여행에서 이미 천천히 둘러보았지만....... 세세한 이야기는 다시 여행기를 파리로 되돌렸을 때 다시 살펴보기로 하고.........
급작스레 (하슬라 아트 센터)로 여행 계획을 수정하면서 마눌님에게 둘러댔던 핑계가 바로 이 ‘(퐁피듀 센터)가 강릉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다’고 뻥을 친 것이었다.
내가 하슬라 아트 센터를 검색하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바로 ‘이거 영판 퐁피듀 센터랑 닮았네? 닮은 정도가 아니라 새끼네 새끼. 영향을 상당이 받은 것 같아.’라는 느낌이었다. 자연친화적인 복합문화공간을 추구한다는 하슬라나 현재 진행형인 모든 예술을 복합적인 하나의 문화공간에서 재현 내지는 재창출한다는 프랑스 국립 현대 미술관이나 지향하는 목표는 같다는 생각을 나는 하게 되었다. 파리에서 여기 정동진 해변 인근만큼 아름답고 풍요로운 대자연을 소장할 수는 없을것이니 어쩌면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그런 이유로........ 그런 과정으로...... 마침내 우리는 (하슬라 아트 센터)를 찾았다. (퐁피듀 센터)를 찾아가던 파리에서의 그 설레임을 다시 꺼내 들고서 말이다.
‘하슬라 아트 월드(Haslla Art World)’라 불리는 이곳의 명칭은 예쁜 어감과 느낌으로 인하여 자칫 외래어가 아닐까하는 추측마저 불러일으키기가 십상이다. 굳이 우리말로 직역을 한다면 ‘강릉 문화회관’이라고 해야 할까? 그중에서 유독 ‘강릉’을 가리키는 ‘하슬라’ 라는 단어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마음이 쏠린다고나 할까?
하슬라(何瑟羅)는 강릉(江陵)의 옛 지명이다.
한반도에서 고대 삼국의 역사가 막 시작하려던 즈음에 반도 중앙의 동쪽 바닷가엔 이미 사람들이 모여들어 작은 부족단위의 도시국가를 이루며 살았으며, 그 중심을 예국(濊國)이라 불렀으니 바로 지금의 강릉(江陵)이다.
하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기 강성한 고대 국가로 성장 발전해 나감에 따라 결국 예국(강릉)도 어쩔 수 없이 강력한 누군가에게 복속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장 먼저 예국을 차지한 나라는 북쪽의 고구려였다.
미천왕 14년(서기 313년) 예국을 복속한 고구려는 이곳을 ‘하서랑(河西良)’ 그리고 하슬라(何瑟羅)‘라고 불렀다. 이렇게 해서 그저 단순하게‘강릉의 옛 지명’으로 통용되는 하슬라가 이때 등장하게 된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강릉 지방의 향토사학자들은 하슬라의 지명에 커다란 거문고를 가리키는‘슬(瑟)’이 들어간 사실에 주목해왔다. 하지만 끝내는 강릉지방과 거문고의 연관성을 찾는데 실패한 것으로 보여 진다. 아마도 고구려 시대에 부르던 지명이나 방언을 후대에 표기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떤 착오가 있었을 것이라 추론하고 있다.
가장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하면서 초강국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고구려 영역이었던 하슬라는 결국 신라에게 점령되고 말았다. 선덕여왕 8년에 하슬라는 북소경(北小京)으로 이름을 바꾸어 버렸다. ‘북쪽의 작은 도읍’ 이라는 북소경은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는 다시 명주(溟州)로 바뀌게 되었고, 후삼국의 역사 속에서 명주는 궁예와 왕건의 발자취 속에서 수없이 여러 번 다시 거론되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다시 고려 말기에 이르러서 비로소 지금의 지명인 강릉(江陵)으로 불리게 된다.
어쨌거나 지금 미술관 관람을 시작하면서........ 이곳의 명칭이 ‘강릉 문화회관’이 아니라 ‘하슬라 아트월드(Haslla)’라는 사실이 어딘지 모르게 알 수 없는 어떤 묘한 여운과 함께 어느 정도의 안도감이 생겨나는 것은 왜일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생겼다.
적어도 (하슬라 아트월드) 하면은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명소로 젊은 여행자들에게는 꽤나 잘 알려진 명소였기 때문이다. 유명한 (사진 맛 집) 이었기에 당연히 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경포대 인근의 옛 작업현장을 돌아보다가 그만...... 지붕에서 쏟아져 내린 눈 더미를 그만 홀랑 뒤집어쓰고 말았던 것이다. 카메라를 열어 둔 채로 말이다. 급하게 긴급조치는 했기에 그러려니 했다. 하슬라 아트센터로 이동하면서 써브 카메라를 꺼내려 시도는 하였는데....... 트렁크에 짐 정리를 이미 차곡차곡 해버린 후였기에, 서브 카메라를 찾아서 꺼낼 수가 없었다. 하여 응급조치만 한 상태로 하슬라에 도착해 관람을 시작한 한참 후에서야 찍은 사진이 별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화장실에 쪼그리고 안아서 살펴보는데........ 한술 더 떠서...... 또 아뿔싸!!!!!!
이번엔 안경을 놓고 가져오지 안았다. 안경도 차에 갈무리 해 두고 나와 버렸으니....... 시력이 많이 나빠진데다가 난시까지 있어서....... 신체적으로 좀 피로하거나 그늘진 곳에서는 거의 신문을 보지 못 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거기다가 피곤하면 그나마 모든 것이 두 개로 겹쳐져 잔상처럼 보인다. 카메라의 조절 장치도..... 이미 내가 찍어 놓은 사진의 상태로 흐린 잔상처럼 흔들릴 뿐........ 살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마눌님에게 고백할 수도 없고....... 그러다간 큰일 난다. 대형사태가 벌어진다. 당장 병원 갔다가 안경 바꾸러 가고, 어쩌면 렌즈 낄지도 모르게 된다. 평소 내가 꼭 잡혀 사는 것처럼 말(?)은 늘어놓지만........ 실상은 거의 반대이지 싶다. 마눌은 충주에 있고 내가 강릉에 일 왔다가 술을 마셔서 못 간다고 데리러 오라고 하면........‘이젠 뒈졌다고 썰은 풀지만 실상은 아니다.' 울마눌....... 그 전화에 정말로 나를 데리러 강릉까지 날라 왔다. 그리고 다시 월요일 새벽에 날 강릉까지 다시 태워다 줬다. 한 대도 안 때리고 말이다. ㅎㅎㅎㅎ....... 아무리 그래도 난 이 정도는 하고 산다.
하여...... 경험에 비추어 짐작으로 대충 조정을 하고 다시 태연하게 관람을 시작한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안경을 찾아서 오늘 찍은 사진을 검색해 보고는.........
헐!!!! 후회막심. (하슬라 아트월드)를 제대로 담지 못하다니........
어쩌겠어? 다음에 손녀들 데리고 다시 사진 찍으러 가야지!!!! 그땐 제대로 찍겠지 뭐. 마눌도 아니고 손녀들인데....... ㅎㅎㅎㅎ
---- 강릉 여행을 가시면 (하슬라 아트월드)는 꼭 가보세요. 참 예쁘답니다. 그럼...... 다음 여행에서 만나요. 감사합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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