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캠핑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로망하는 것이 바로‘불멍(火焰)’이라고 한다. ‘불멍’이야말로 진정한 겨울캠핑의 꽃이라는 것이 캠퍼들에게 하나의 진리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불멍(火焰)’이란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을 바라보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를 담은 신조어다. 2014년을 전후로 하여 비로소 국어사전에 새롭게 등장한 신조어인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멍 때리다’라는 용어나 의미가 쓰여 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하여 어느 때 부터인가 겨울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의 입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마냥 넋을 놓고 멍하니 바라보는 즐거움’에 대한 정의로 ‘불멍(火焰)’이란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신조어의 등장은 우리나라만이 아니어서 우리가 말하는 불멍을 중국어로는 (看着火焰发呆)로 표기하기 시작했고, 영어권에서도 (staring at the fire)란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기 ‘불멍(火焰)’이 가리키는 시작이자 근원은 바로 (모닥불)이다. 인간의 심연에는 자신들도 모르게 애초부터 불에 대한 짙은 향수 내지는 그리움이 내재해 있는 모양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종(種)이 지구상에 산재한 수없이 많은 생명체 중에서 유일하다시피 독보적인 존재로서 인간(人間)으로서의 발걸음을 막 떼어놓기 시작했을 때부터 불(火)은 한시도 떼어놓을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생존과 생활의 으뜸 조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불의 발견)은 인류 문명사에 있어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불이 있어서 맹수를 비롯한 온갖 재해로부터 인간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었고, 불이 있어서 음식을 익혀먹고 혹한의 겨울을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인간다운 의식주 생활에 일대 변혁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불이 함께하고 있었고 그 불은 바로 모닥불로 이어져 내려왔던 것이다.
문명이 발달하자 인간은 그 불을 점차 가리고 감추기 시작했다. 드러난 불꽃은 언제나 무시무시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인간은 모닥불을 아궁이에 가두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불이 필요하면 횃불을 만들어 부득이한 경우에만 사용하게 되었다. 이는 현대에 이르러서 난방과 조명 방식으로 거듭거듭 개선되고 발전해 온 것이다. 지금 활발히 사용되고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원자력 또한 이 모닥불의 후손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문명이 발달을 해도 인간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원시의 모닥불에 대한 향수가 진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최첨단의 문명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인간은 여가가 주어지면 대자연으로 달려가 원시시대에 가까운 방법으로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고 모닥불을 피우고 초막에서 잠을 청하면서 그것을 여가선용의 한 방편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기가 태어나 어른이 되고 훗날 노인이 되어서도 어머니의 품속을 그리워하듯이, 모닥불로 대변되는 초기 인류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나 향수가 마침내‘불멍(火焰)’이라는 신조어를 국어사전에까지 오르게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모닥불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아무리 크다 한들, 시대의 변화에 따른 환경보호와 화재예방의 높은 장벽을 외면하거나 그르칠 수는 없게 되었다. 사회적 제도와 제약이 없거나 무시할 수 있는 노지나 노천에서 불법성을 감안하면서 모닥불을 피우지 않으면, 이젠 어디서든 함부로 겨울에 마구 모닥불을 피울 수 없는 세상으로 변했던 것이다. 이는 결국 자연스런 모닥불이 허가된 제한적 장소에서 기구(화롯대) 위에서만 변형된 형태로 지펴지거나, 아니면 화목난로를 사용하게 제도적으로 바뀌어 버렸다. 현대에서는 아무나 함부로 피울 수 있는 모닥불이 최고로 위험한 재난이나 대재앙의 주요 핵심 원인으로 낙인찍혀 버렸던 때문이다. 이제 모닥불은 제한된 장소에서 허락된 방법으로만 피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나마 대부분의 사설 캠핑장은 화롯대나 화목난로를 허용하고 있지만, 국가나 지자체가 관리하는 공공 시설물이나 자연휴양림이나 캠핑장에서는 철저하게 모닥불(화롯대. 화목난로) 사용을 대부분 금지하고 있다.
여기 솔향기 캠핑장의 경우에도 화롯대나 화목난로 등 모닥불의 사용을 절대 금지하고 있다. 동계캠핑에 필수인 난방을 위해서는 결국 등유 난로나 팬히터가 사용될 수밖에 없고, 그나마 다행으로 전기가 시설되어 있어 용량이 작고 제한적인 전열기구 사용이나 전기장판으로 혹한의 겨울을 견뎌내야 하는 단점이자 아쉬움이 있다.
화목난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지피고, 그 위에 가래떡과 고구마를 굽고 떡볶이를 해 먹으려던 예쁜 손녀 태리와의 겨울캠핑은 어차피 이미 물 건너 가 버리고 말았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겨울 캠핑은 반듯이 다시 있을 것이고, 그 때는 무조건 화롯대와 화목난로 사용이 자유로운 장소여야만 한다. 그 다음 캠핑의 모든 전제조건은 오로지 우리 손녀들 태리와 세리 모두 함께하는 재미난 캠핑이어야만 할 것이다. 추위는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다. 부디 눈이 엄청 펑펑 내려 쌓이는 진짜 겨울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태리 세리야. 조금만 기다려 줘. 벌써 너무 보고 싶어.’
그렇다고 겨울캠핑에 ‘불멍(火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캠퍼들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신조어로 ‘물멍(水焰)’을 또 사전에 올렸던 것이다. ‘잔잔한 호수의 수면을 마냥 한없이 바라보며 멍 때리는 재미 또한 일품’ 이라는 데서 생겨난 용어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지금 우리처럼 마냥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멍을 때리는 ‘바다멍(海焰)’이나. 산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는‘산멍(山焰)’ 또는 하염없이 떨어져 수북이 쌓인 눈을 바라보는 ‘눈멍(雪焰)’ 또한 되지 말라거나 재미가 없는 가짜 멍 때리기 라고 폄하 할 수만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우리는 언제나처럼 아침 산책을 나선다.
어제까지 떠들썩했던 솔향기 캠핑장이 하룻만에 썰렁해질 정도로 한산해 졌다. 전체 시설의 30% 정도만 여행객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제 12월 31일의 경우 단 한 자리의 빈 시설이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꽉 찼었는데, 하루 이틀 상간에 마치 텅 비어있는 느낌이다. 무슨 상황이 벌어졌던 것일까?
다만 일본 지진 때문만은 아닌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일본 지진 재난문자를 받고 허둥대거나 그런 이유로 서둘러 철수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이제껏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어제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다만 사람들만이 썰물처럼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빠져나간 것일 뿐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오히려 다행이지 싶다. 우리는 이런 고요와 적막감을 은근히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 새해 이틀 째 아침, 솔향기 캠핑장의 숲속 산책로와 해변 백사장을 모두 우리가 통째로 전세를 낸 거야. 지금은 오로지 우리 두 사람만의 것이야. 앗싸!!!! 이런 게 우리 스타일에 꼭 맞는 여행의 맛이야.’
해가 떠오른다.
그런데 누구나가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전형적인 일출과는 전혀 다른 어중간한 일출이다.
오늘도 낮고 짙은 해무가 아침 일출을 가로막고 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어제는 완전 맹탕 일출이었는데, 오늘은 좀 뒤늦게나마 붉은 아침 일출의 섬광을 어렴풋이나마 느껴볼 수 있으니 말이야. 그런데 해변이 텅 비어있다.
어제 그렇게 맹탕이었음에도 해변을 가득 채우던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어제의 절반이라도 남아서 엇 비스무리 일출이라도 바라보면서 함성을 질렀어야 하는 것 아니야?
어제 떠오르긴 했어도 보이지 않았던 해와 오늘아침 슬쩍 뒤태만 드러내는 해가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다르다는 것이지?
헐!!!! 어제에 비하자면 오늘 일출이 열 배는 예쁘고 멋있는데 다들 어디로 간 거야?
성난 파도는 어제 못지않게 여전히 거칠기가 그지없다. 그랬음에도 이 추위와 강풍과 험난한 파도를 헤치며 집어등을 밝힌 어선들이 새벽 미명 속에 바다로 나가더니 지금은 바다 저만치서 옆으로 길게 늘어서 조업들을 하고 있다. 다들 제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삶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한참동안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면서 멍을 때리다가 텐트로 돌아와 따뜻한 스프와 빵으로 아침을 대신하고는...... 서둘러 늘 그래왔듯이 또 길을 나선다.
오늘은 눈멍(雪焰)에 빠져보는 날이다.
이틀 동안이나 대설주의보 속에 강원도 인근에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했다. 물론 강릉을 비롯한 해안지역에는 눈이 거의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병풍처럼 둘러쳐져 흘러내리는 태백산맥 전체에 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있는 풍경을 언제라도 찾아 볼 수가 있다.
날씨는 여전히 흐리지만 바람이 거의 느껴보지 못할 정도로 포근한 상황이니 눈 구경을 떠나기는 최상의 기상조건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알지도 못하는 아무 골짜기로 무턱대고 산등성이를 더듬어 올라가 볼 수도 없는 처지이니.......
가장 쉽고 안전하면서도 편리하게 설악산의 설경을 제대로 만끽하기에는 당연히 설악산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權金城)에 올라 장엄한 설악의 설경에 재대로 취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아직 정초 연휴중이라 일찍 서둘러야만 길게 줄을 서지 않고 케이블카에 오를 수 있다는 그간의 충분한 경험으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차를 몰아 설악산을 향해 달려 나갔다. 약 한 시간쯤 시간 소요가 예상되는 거리다.
설악산에는 우리의 애틋한 추억이 많이 새겨져 있다. 근 십 년을 훌쩍 넘겨서 겨우 함께 다시 찾아온 경우였던 터라 감회가 새롭고 반갑기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주차장까지는 비교적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제설작업은 되어 있었다 해도 케이블카까지 오가는 길은 녹았던 눈이 다시 얼어붙어있었기에 무척이나 미끄러워서 애를 먹었다.
아울러 일찍 서둘러 온 길이었기에 주차장도 한산했고, 기다리지 않고 표를 끊어 케이블카에 올라타고 권금성으로 올라갔다. 우리처럼 정초에 서둘러 권금성에 오르고자 찾아 온 여행객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아주 약간의 혼잡스러움 속에서 정상에 이르는 계단 길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그야말로 빙판길이나 다름없었다. 여행자들 행렬을 비집고 뛰다시피 올라오는 사람들은 모두 아이젠을 챙겨 신은 사람들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난간을 부여잡고 오매불망 매달리거나 엉금엉금 기다시피 올라가는 방법뿐이었다. 챠밍 여사도 절반은 난간에 매달려서 절반은 엉금엉금 기어서 올라갔다.
권금성에까지 오르긴 올랐지만 정상 꼭대기까지 오를 생각은 도무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폭설에 뒤덮인 산봉우리와 절벽의 아찔한 풍경을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는 낭떠러지 근처에는 감히 어느 누구도 접근조차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을 지경이었다. 지극히 포근한 날씨였는데, 좀 머물러 있으려 하는 찰라 구름떼가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바람결부터가 쌀쌀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기념사진 몇 장 찍고 나서 아래로 내려가려는데 어절씨구........ 우리보다 조금 늦게 몰려오기 시작한 인파로 넘쳐나서 내려가는 길이 엄청 지장을 받을 정도가 되었다. 휴게실에 당도하니 이곳은 어느새 방금 올라온 사람들과 내려가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나름 일찍 서둘러 올라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부득이 차례를 기다리면서..... 느닷없이 여기 이분 태리 할망구께서 어제처럼 오뎅 꼬치에 뜨끈한 국물을 마셔야만 하겠단다. ㅎㅎㅎㅎㅎ
헐!!! 여행 중에 언제나 항상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시간과 배짱뿐임이 설악산이라고 어디 가겠는가? 몰려드는 사람들 틈새에서 먹을 것 다 먹고 느긋하게 주변을 감상하다가 내려가는 케이블카에 올랐다.
일전에 우리가 권금성을 찾았을 때는 정상에 오르는 초입에 카페가 있었다. 그 유명한 설악산 권금성 털보 할아버지가 따끈한 커피를 내어주시던 추억의 장소가 있었다. 어느 방송에서인가 아주 오래전에 털보할아버지께서 너무 연로하셔서 속초출신의 한 젊은이를 후계자로 받아들이셔서, 당시에는 그 젊은 후보 사장님이 카페를 실제로 운영하고 있다는 방송을 보았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그런데 이번에 찾아보니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만이 아니라, 아예 그 카페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등산로 주변이 완전히 새롭게 조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주 소중했던 우리의 추억 하나가 세월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무심한 세월의 흐름이 마냥 야속하게만 느껴지고......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덧없이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갔다는 말인가?
설악산에서 내려 와 잠시 토왕성 폭포 계곡을 조금 올라가 볼까 생각해보았지만, 저만치 다리 건너서 계곡으로 향하는 제설작업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 길을 건너다보고 있노라니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렇다면 비선대 길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렇다고 신흥사까지만 다녀올까 하자니 왠지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예전에 설악산을 여행 오면 항상 다음 코스로 당연하게 찾아가게 되는 장소가 바로 대포항 이었다. 어차피 오늘 저녁에는 회를 중심으로 해산물 파티를 기대하고 있던 터라 대포항으로 가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었는데....... 오늘은 캠핑장 인근에 있는 주문진항에서 해산물을 준비하기로 이미 마음먹었던 터라 이참에 내려가는 길에 주문진항으로 향해서 차를 몰고 내려갔다.
가는 길에 설악산만큼이나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추억이 듬뿍 담겨있는 양양 죽도 해변에 또 들렀다. 우리의 추억 속에 아로새겨있는 죽도와 지금의 죽도는 완전히 다른 별세계라 하겠다. 우리 머물렀던 민박집도 사라졌고 해변도 그 해변이 아니다. 산책을 나갔던 외곽 언덕길로 사라졌고 바다를 내려다보던 야트막한 해변 언덕도 이제는 모두 아스라한 기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현대식으로 잘 꾸며진 해변 카페에는 이미 젊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느긋하게 성난 바다를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멍 때리기를 바라던 우리의 희망은 무참하게 깨져버리고 말았다. 완전히 우리 취향과는 정반대의 상황을 맞닥뜨렸음에 황망한 마음으로 커피를 마시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죽도 해변을 벗어난다.
주문진 수산시장.
강릉 음식점 공사로 거의 6개월 가까이 인근에 숙소를 마련해 머물렀으면서도 중간에 딱 한 번, 그나마 겨우 주문진항에 다녀왔던 무척이나 아쉬웠던 기억이 새삼스레 되살아난다. 많이 바빴던 탓도 있지만, 바다가 없는 내륙 한복판에 사는 산골 촌놈의 처지로 함께 일했던 동료 대부분이 회를 포함한 해산물에 그리 친근하지 않았던 것이 근본 이유였었다. 공사 중에 회식은 여러 번 있었으나, 회식에는 언제나 고기를 구워먹는 것을 선호했다. ‘산골 촌놈들은 무조건 고기여 고기. 해산물은 안주가 안 돼. 우리는 삼겹살이 더 좋아’라는 것이 항구를 갈 필요가 거의 없는 당당한 이유였던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었음인지, 어느 날부터인지 음식을 대하는 태도나 취향이나 선호도도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 아닌가? 특히 유럽의 이곳저곳을 싸돌아다녀 본 이후로는 ‘굴’ ‘문어’ ‘생선회’에 대한 호감도와 욕구가 새롭게 솟아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행 중에 비싸서 그동안 못 먹었던 생굴을 실컷 먹고 싶어. 레몬즙을 살짝 뿌려서 말이야.’
그런 이유로 어제 저녁에 살짝 이미 주문진 수산시장을 다녀갔었다. 오로지 잘 손질해 놓은 생굴을 사기 위해서였다. 오로지 생굴만 두 판을 사서 돌아갔는데, 정작 마트에서 술을 사는데 정신이 팔려서 그만 레몬을 빼먹고 말았다. 그랬음에도 ‘달아. 너무나 달아. 입에 살살 녹아. 유럽에서 못 먹은 아쉬움이 단숨에 다 달아나는 딱 그런 맛이야.’ 하면서 정말로 게눈 감추듯이 맛있게 먹어치운다. 어째 마셔도 술도 안취하고...... 자정 가까이에 라면을 끓여먹기까지 말이다.
오늘 저녁은 해산물 파티가 아닌가.
오징어에 해삼 멍게에 광어와 도미까지........ 그동안 무슨 회에 걸신이 들렸음일까?
다섯 명은 충분히 먹고 남을 거라는 회를 모둠으로 구입을 했는데...... 그날 밤에 둘이서 깨끗하게 끝장을 냈다.
아마도 먹거리에 대한 우리의 계량 단위와 세상 사람들의 계량 단위에는 엄청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횟감을 고르고 나서 자리를 옮겨 중을 서서 회를 뜨는것을 지켜보며 기다리는 동안........ 나는 혼자 주문진 수산 시장의 주변을 둘러 본다.
방금 잡아 온 물고기를 챠량으로 날라와서 퍼 내리고 있는 사람........ 옆골목에 늘어선 구멍가게에서 오뎅 국물에 핫도그도 하나 사서 주점부리를 해보고........ 뒷마당엔 온통 그물 가득 매달려 있는 양미리를 떼어내는 작업을 하는 할머니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여기도 저기도 그야말로 양미리 천국이다. 주차장 건물을 지나니 포구 한 복판에 고장난 어선을 수리하는 아주 작은 조선소가 보인다. 기술자들 서넛이서 스쿠류를 쇠망치로 두드리며 손질을 하고 있다. 그분들의 작업을 한참동안이나 넋놓고 지켜 보았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것 같아서 되돌아 가보니........ 커다란 비닐 봉다리를 서너개나 들고 막 횟집을 나오는 아내의 표정이 유난히 밝아 보인다.
'그래. 오늘 저녁엔 해산물 파티다. 인생 뭐 있어? 가고 싶으면 가보고, 먹고 싶으면 실컷 먹으면 되는 것이지. 즐거운 인생이 뭐 별거여?'
그리고 어디 그뿐인가?
다음날 캠핑을 마치면서도 또다시 주문진 수산시장을 한 번 더 찾았다.
회를 좋아하는 처가집 식구들 생각이 났고, 요즘 방어가 제철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커다란 방어를 골라 회를 떴다. 커다란 용기로 네 개에 나누어 담길 정도로 컸다. 귀가해서 처남집에 두 개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와, 밤에 캠핑 여행을 무사히 마쳤음을 스스로 자축하면서 우리도 또 방어회 파티를 열었다. 실컷 먹었음에도 하나를 고스란히 남겼고, 다음날 또 한 번 자축파티를 벌여서 끝내 끝을 보고야 말았다.
그 다음날 아침, 어제 미뤄놓았던 설것이를 하면서 마눌님 왈........ '겨울캠핑 재미있네. 우리 다시갈까?'
헐!!!!!!!
수산시장을 돌아나오는 길에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있기에 한 상인에게 물어보니 '6시의 내고향' 녹화중이란다. 슬쩍 지나치며 얼굴을 들이밀어볼까 하다가........ 그냥 이대로 착하고 조용하게 살자...........
2024년 새해의 세 번째 아침을 연곡 솔향기 캠핑장에서 맞이한다.
오늘도 첫 날처럼 아침 날씨가 엉망이다. 바다는 잔잔해진 편이라 하겠지만 낮게 짙게 깔린 바다 운무와 금방이라도 눈이나 비를 쏟아낼 것 같은 하늘은 새벽 공기를 한층 우울하게 만들어 버렸다.
솔숲을 한 바퀴 돌고 해변을 따라 강릉방향으로 한참을 걷다가 돌아왔지만 거의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다시 캠핑장에 들어서도 간혹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사람 외에는 설치된 텐트들이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
뜨거운 커피로 몸을 녹이고 나서 잠시 오늘의 스케줄을 고민하다 살피니, 종일 잔뜩 흐린 날씨에 낮부터 내륙으로는 제법 많은 눈이 또다시 내릴 것이라는 예고가 뜬다. 아무래도 눈길은 좀 불편하지 않겠는가? 한계령을 넘어 인제에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다시 찾아가 보려던 기대를 아무래도 접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진다. 거기에다가 나중에 집에 가서 생고생을 하지 않으려면 비나 눈이 떨어지기 전에 싸이트 정리를 마쳐야 하는 것이 순리가 아니겠는가? 하이고..... 나중에 집에 가서 이걸 다시 펼쳐서 말리고 접고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야 말로 캠핑에 있어서 가장 끔찍한 안 좋은 결과일 테니 말이다.
아침을 해장라면으로 든든하게 해결하고 나서 서서히 싸이트 정리에 나섰다. 그제야 여기저기서도 서둘러 우리처럼 싸이트를 정리하려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대충 정리를 어느 정도 해 놓은 상태에서 텅 비어가는 캠핑데크에 앉아서 한잔 더 커피를 마신다. 한계령 방향으로 가려던 계획을 접고, 예정에 없던 주문진 수산시장에서 한참 제철이라는 방어를 큰놈으로 하나 잡아서 회를 떠가서 처남네 집이랑 나누어 먹고 싶다는 차밍여사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냉동 포장을 해서가면 가는 동안에 오히려 적당하게 숙성이 잘 될 것이라는 의견에 일치를 보았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넘의 방어가 어마무시 크다는데 있었다.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도 스티로폼 작은 포장으로 가득 네 개나 나오는 엄청난 양이다. 집에 도착해 처남네 두 개, 우리도 두 개로 나누었는데....... 먹다먹다 다 못 먹어서 이틀에 걸쳐 저녁마다 방어회 술파티를 벌였다.(캠핑보다도 이넘의 방어 술 파티가 더 압권이었던 것 같다)
다시 강릉에 들려 폼 나는 카페도 들려보고, 삼년 전에 내가 손을 댔던 아쉬운 건축물로 둘러보고 나서(이제라도 내가 제대로 마감에 손을 대면 훨씬 좋은 건물이 될 텐데)...... 이번 여행의 마지막 데미지를 장식하기 위해 그동안 몇 번이나 벼르고 미뤄두었던 (하슬라 아트 쎈터)를 향했다.
‘유럽만 가면 맨날 죽어라 쫓아다닌 게 미술관 아니면 박물관인데 국내 여행에서도 또 미술관이라고? 싫어, 난 안 갈래, 다빈치야? 미켈란젤로야 아니면 카라바조야? 제주도에서처럼 이중섭이나 천경자 작가는 또 아니야? 현대 미술은 우리랑 안 맞는다며? 당신은 죽어도 르네상스 아니야? 그런 마당에 여기 강릉에 도대체 뭐가 있는데? 무슨 특별전이 지금 강릉에서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전혀 없는데?’
헐!!!
정말로 안 따라나설 기세다. 그래서 궁리 끝에 딱 잘라서 이렇게 말했다.
‘퐁피듀 쎈터 기억나지? 파리에 있는 거. 지금 강릉에서 출장 전시회 하고 있거든.’
‘그 가스배관 수도배관 밖으로 고스란히 드러내놓은 쪼끔 해괴한 미술관?’
‘웅.’
이건 어디까지나 모조리 거짓말이었다. (하슬라 아트 센터)와 프랑스 파리 (퐁피듀 센터)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다음 회에 다시 소상하게 설명하겠지만, (퐁피듀 센터)라는 새로운 사조의 하이테크 건축물이 온 세상에 지대하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으며, (하슬라 아트 센터) 기사를 오래전에 접하게 되었던 순간에 내 뇌리에 떠올라 스쳐지나간 것이 바로 (퐁피듀 센터와 거기에서 파생된 씨앗들) 이라는 생각이었기에 순간적으로 그렇게 내뱉고 말았던 것이다.
하여, 이번 여행의 대미로 우리는 (하슬라 아트센터)를 방문했다.
나의 생각과 느낌이 모두 그대로 들어맞았다는 사실에 나는 또 한 번 전율하고 말았다.
아직 가보지 못한 여행자들에게...... 그리고 조금은 늦은 우리와 같은 세대들에게 한 번은 꼭 가보시라고 강력추천하면서.........
--- 다음 이야기에서 (하슬라 아트센터) 방문기를 계속하기로 하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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