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와야 산천초목이 만화방창(萬化方暢) 하듯이, 세상의 모든 이치에는 다 때가 있느니라. 이를 순리라 한다.'
하였더니, 어느 옛성현의 말씀처럼 때가 되었음인지 주변에 온통 화사한 봄이 찾아들었다.
산천초목들이 푸른 싱그러움을 입에 가득 머금었으며 이름모를 꽃들이 사방에 피어났다.
' 아!!!!!! 정녕 이 봄을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바람 한 점, 햇빛 한 조각, 흙 한 줌, 파릇파릇한 새싹 하나하나, 이름모를 꽃 한 송이........ 예전엔 거들떠보지도 않았거나 무관심했던 것들이, 어느때부터인가 하나의 의미가 되고 하나의 관심에 대상이되고, 더 나아가 이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들로 바뀌어져 가고 있다.
그것이 순리요...... 그것이 때가 무르익어가고 있음일까?
결국은...... 결국은....... 나이가 제법 들었음이겠다.
바쁘게 쫏아다니고 있는데 일은 점 점 늘어만 가고 시간은 그 어느때보다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는 봄 여행과 캠핑을 한참 시작하고 있을 시기였는데...... 요즈음 기미로 보아서는 당장 어느때에나 캠핑을 시작할 수 있으려는지 기약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어떻게든 짬을 만들어서 여행이든 캠핑이든 꼭 다녀야만 했었는데, 벌어진 일들이 팀웍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다 보니 나 혼자만 쏙 빠져나갈 수가 없다.
파트너들 모두가 파김치가 되어있다.
그그저께 까지는 월악산이 바로 목전에 올려다 보이는 덕산면 수산리의 초등학교 폐교를 수리해서 캠핑장으로 조성하는 공사를 틈틈히 짬을 내서 해왔는데 헤아려보니 벌써 스므날 가까이 공사를 벌린중이었다. 지속적으로 한곳에만 매달릴 수 없는 처지이다 보니 마무리까지는 아무래도 한참을 더 가야만 할것같다.
그저께는 범바우 지나 발티의 석종사에서 또 다시 커다란 불사를 착공하게 되었기에 잘 가꾸어 놓았던 정원의 꽃이 모두 진 벚나무 수십구루를 캐서 옮겨심는 작업으로 정신없이 바빴다. 워낙 큰 사찰이다보니 조경 관리가 끊일날이 없다.
어제는 금가면의 공장 중축에 한나절을 매달렸었다. 21m 높이의 구 건물을 뜯어내고 27m의 새건물로 신축에 가까운 중축을 하는 일이다. 지난주에 지붕판을 떼어냈고 철골을 뜯어내고 바닦 기초공사를 마쳤다. 하여 어제 오전에 장비를 이용해 옆건물과 이어지는 벽면 판넬을 해체하는 작업을 오전중에 마쳤다. 다른 팀에게 철골 구조물 설치를 맡겼으니 한 일주일 정도는 텀을 가질 수 있게되어서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높이가 있는 작업은 안전이며 경험때문에 누구에게 맡기질 못해 잠시라도 빠져나올 수가 없다.
내일은 강원도 영월땅의 경치가 그야말로 절경인 계곡 깊숙한 곳에 농막 하나를 뚝딱 지어주러 가야한다. 별장이라면 모를까 농막은 손 안댄다는 사양에도 기어코 집요하게 파고드는 후배의 청을 못이겨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이 해치워버리기로 했다. 지난주에 하루 장비로 진입로를 내어 놓았다. 주변 경관이 너무나 빼어난 오지중의 오지 골짜기라 앞으로 내 오지캠핑의 장소로 평생사용허락 이라는 단서를 미리 달아놓았다. 허용된 기한은 단 3일. 바닦을 만들고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고 철수하기까지 단 3일의 여유밖에 없다.
그 안에 관급 조경공사를 시행할지 말아야할지 결정을 해야만 한다.
무조건 쉬고 싶다는 팀원 모두의 바램대로 벽면 철거작업을 오전중에 모두 마치고 나서 표정들을 살피니, 점심겸 술이나 한잔씩 하고 푹 쉬고 싶다는 생각들이다. 또 시즌이 시즌인지라 체육대회다 결혼식들이 많을 시기가 아니겠는가. 하여 점심을 먹고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까지를 모처럼 쉬어보자고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 즉시 나는 나머지 모든 일정을 깡그리 회피하고 쏜살같이 집으로 도망을 쳤다.
일단 씻고 간편한 복장으로 카메라를 챙기고 점심도 편의점의 패스트푸드로 때우고 차를 몰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봄을 만나러...........
수산의 캠핑장 조성공사나 석종사 조경공사는 그나마 큰 위안이 되는 것이, 위의 사진처럼 그곳은 주변이 온통 야생화를 비롯한 경치가 으뜸이며 가히 꽃의 천국이다. 그러하니 거기에서 커다란 위안을 얻으면서도 속으로는 어디로든지 얼마나 떠나고 싶었겠는가? 충주호 주변으로 만개한 벚꽃이 아침저녁 오가는 길에 하얀 꽃비까지 뿌려주었으니 말이다.
차를 달리다 이제야 도심과 빼곡한 일상에서 벗어났다고 생각될 즈음에 차를 세웠다.
운전석에서 마지막 남은 햄버거 조각과 남은 우유를 모두 마시고 나니 어느정도 허기도 사라졌고, 내게 허락된 자유에 대한 포만감이 가슴가득 차올랐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보니 길건너 강건너에 골짜기가 보인다.
내 외가쪽 조상이 되시는 임경업장군이 어린시절 무예를 닦으며 뛰어다니셨다는 삼초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그 골짜기 사이에는 아담한 암자가 하나 걸리듯 놓여있다. 쉬운듯 보여지나 겨우 오르고 나니 땀을 엄청나게 흘렸던 기억이 있다. 지금 이자리에서 암자를 올려다 보기 보담은, 암자에서 여기를 내려다 보는 풍치가 어떠했는지가 새삼 떠오른다.
'자. 이제 슬슬 다시 떠나가 볼까?'
여기는 현재 3번 국도 상..........
3번 국도는 경부고속도로가 생겨나기 전까지는 한반도 국토의 대동맥이자 척추신경 같은 길이었다.
그렇게 중요한 길이었다지만, 실은 내 어린시절 기억속의 3번국도는 형편없었다.
움푹움푹 패어나간 비포장도로에 강이며 벼랑이며 골짜기며 산언덕을 요리조리 꼬불꼬불 잘도 요상스러울만치 빠져나가던 괴상망칙하고 요상스런 그런 길이었다.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기다렸다가 겨우 건너야 하는 다리들은 협소하고 당장이라도 허물어져 내릴것 같던 그런 길이 바로 3번 국도였다. 사람이 손만 들면 아무때고 아무대고 정차하는 완행버스는 워낙 힘들고 온갖 일들이 생겨날 수 있기에 남자차장이 타고 있었다. 아마도 도로포장이 어느정도 되고 위험요소들이 줄어들어서서야 여자차장들이 생겼을 것이다. 이제는 그나마도 볼 수 없지만 말이다. 혹시나 빵꾸(타이어 펑크)라도 나면 운전기사와 조수가 함께 그 먼지 속에서 커다란 열십자 모양의 쇠뭉치덩이로 바퀴를 떼어내고 쇠막대와 곡괭이까지 동원하여 내려찍다시피하여 그 자리에서 펑크를 수리하고 낑낑대며 다시 그 커다란 바퀴를 굴려다 마추고...... 다시 출발을 했다.
지금에 다시 그 시절같은 운전기사를 하라 하면........ 대한민국에 버스회사 운수회사 택배회사는 운전기사를 구하지 못해 쫄딱 망할것이다.
노루목을 지나고, 홈실을 지나고, 살미를 지나고 나서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한다.
3번 국도는 삼거리에서 직진을 해서 수안보를 지나고 문경을 지나고 부산까지 이어지지만, 나는 삼거리에서 죄회전을 살짝 함으로써 새로운 도로로 옮겨타는 것이다.
여기서 부터는 36번 도로가 시작되는 것이다.
덕산 수산을 지나 단양까지 이어지는 36번 도로를 달려보려고 찾아온 것이다.
36번 도로변에 찾아온 봄을 마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지난밤에 내렸던 비로 인해 도로변 가로수의 벚꽂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좌우로 둘러보니 산골짜기 골짜기 마다 흐드러지게 피어났던 왕벚꽃나무의 꽃들도 모두 지고 옅은 흔적들만 드러내고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지고.........
오호라. 통탄할 일이로고.......
하루만 일찍왔더라면..........
그때, 은연중에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스멀거리듯 피어오르는 tv 학생 퀴즈프로그램의 한 장면 처럼.......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 그래. 괜찮아. 까짓 뭐 벚꽃 없다고 봄이 아닌가? 다른 봄을 실컷 만찍하고 벚꽃은 내년에 다시 보지 뭐........
아! 난 참 속도 좋다.....................
휴계소에 들러 자판기 커피 한 잔하면서 잠시 쉬어본다.
충주호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마침내 월악산이 첫 모습을 확연하게 드러냈다.
이곳에서 올려다 본 월악산 정상의 모습이 마치 누워있는 여인의 모습이라는데....... 글쎄.
이제부터 내가 찾아가려 하는 곳은 이번 나들이에서 가장 중요하게 꼭 찾아가 보고 싶다고 생각한 곳이다.
이곳의 겨울도 좋아하지만, 왠지 이번에 만은 이곳의 봄을 꼭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몇날전부터 해왔던 때문이다.
그곳은 공이 골짜기이다.
충주댐이 생겨나고 길이 새로 뚫리기 전까지는 충주인근의 오지중의 오지로 꼽히던 곳이다.
어린시절부터 나의 부친은 나를 데리고 이곳으로 꿩사냥을 나오시곤 했다. 이곳엔 정말로 꿩이 많았다.
월악산자락 송계계곡의 한줄기 뒷편이라 할만한 곳이기에 본시부터 풍광이 빼어난 곳이었지만, 댐이 생겨나면서 이곳의 풍광도 많이 바뀌었다. 잃는것이 있다면 생겨나는 것도 있다고...... 내 어린시절의 기억에만 남아있는 이곳의 풍경은 이제 시야에서 모두 사라져버렸지만, 예전엔 생각할 수 조차 없었던 새로운 풍경들이 생겨난던 것이다.
깊디 깊은 숲이 가득 우거진 골짜기며 맑은 계곡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던 곳이, 이제는 계곡물이 많이 줄었지만, 계곡 초입까지 커다란 호수가 들어섰으며, 거기에 젊은 낚시꾼들이 몰려왔다.
루어낚시로 요즘 쏘가리 잡이가 제철이란다.
이 드넓은 호수와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한 멋진 계곡에서 쏘가리와의 한판 승부라.........
가히 대자연과 봄이 주는 커다란 축복이리라.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시다는 그분께서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느라 지친 인간의 삶에 베풀어 주시는 위로이리라......
비록 오지이긴 하였지만 공이계곡은 결코 작은 골짜기는 아니다.
드나드는 길목 외에는 갖혀있는 골짜기이기는 하지만 수십가구의 주민들이 살고있는 커다란 마을이 들어있다.
한 때는 분교도 있었고, 보건소 지소는 지금도 있다.
골짜기 협곡이긴 하여도 땅이 기름져서 제법 부를 이룬 농부들이 모여 산다.
초입으로는 무속인들이 모여 굿을 하는 굿당이 있는데, 영험하기로 이름이 높다.
그리고 또 하나 유명하기로는 서낭당(성황당) 아래로 아주 커다란 바위가 둘이 마주서 있는데 그 주변 경관이 아주 빼어나서 소위 아는사람만 아는 여름 휴양지로서 아주 이름이 높다.
내 학창시절까지도 여기에 와서 천렵을 즐기곤 하였는데........ 현재는 월악산국립공원 산하에 귀속되어 취사가 허용되지 않으면서 그저 일부 여행객들만 찾아올 뿐이다. 천렵명소는 사라졌지만 어찌보면 그 때문에 현재의 풍경이 지속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바위를 어느이는 '암소바위' 라 하는데, 두개가 마주서 있는 것이 '암수바위'로 부르는 것이 맞지 싶다. 한쪽 바위 위에는 바둑판이 새겨져 있으니........ 그 옛날 이곳에 와서 주변의 이 빼어난 경치속에 신선놀음처럼 바둑을 두었다니.......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썩어나간 도끼자루는 몇이었으며, 혹 서낭당 뒤의 커다란 느티나무는 도끼자루를 꽂았더니 싹이나서 자란것은 아닐까?
골짜기 바윗덩이에 엎드려 세수도 하고 흐르는 물도 마셔본다.
계곡에 들었음이요........ 사방으로 온통 화사한 봄이 가득 내려앉았도다.
이 꽃은 누구이며 또 저 꽃은 이름이 무엇인고................
이것이 예쁘고 저것 또한 아름답게 느껴지지........ 오호라. 아직은 내가 제대로 살아있음이 느껴지는구나.
아울러...... 아직은 더 살아야 하겠구나...........
꽃은 향기가 없는 꽃일수록 꽃 모양이 화려하고 크지만 쉽게 지며, 향기가 진한 꽃일수록 꽃송이가 작고 실하다는 말이 있다. 길고 추운 겨울을 견뎌낸 봄꽃이 그렇고 야생화가 바로 그렇다.
향수나 스킨의 냄새로 나름 좋겠으나.......
나름 내 신체와 인품 자체에서 은근하나마 자연의........ 봄의 향기를 느끼게 하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싶다.
그저 늙은 남정네의 냄새만 아니었으면 그나마 다행일까?
공이계곡에서 나와 월악나루에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여기에서 부터 이제 어떻게 한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여기저기 쏘다니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제법 흐르고 난 후였다.
어느새 저녁무렵이 가까와 오고 있었고, 한낮과는 달리 매서운 바람이 불어대는 것이 마치 어설픈 겨울로 되돌아가는 느낌마져 들었다.
'어쩐다?'
우선으로는 봄나들이를 이정도 했으니 여기서 그냥 집으로 유턴하는것이 한방편이요.
다음으로는 다리 건너 우회전을 해서 송계계곡을 마저 둘러보고나서 어둑어둑해지면 수안보로 나가는 방법이었다. 마침 오늘부터 수안보온천제가 시작한다는 포스터를 보았던 기억이 났다. 온천제 전야제까지 보고 갈까?
'어떻하지?'
망설임 끝에 나는 유턴을 하지도 우회전을 하지도 않고 그냥 내친걸음에 가던길을 좀 더 가보기로 했다.
월악대교를 지나고, 요즘 캠핑장 조성작업을 하고 있는 수산리의 현장도 스쳐지나가고 덕산을 지나 장외나루터까지 가보기로 작정을 하고 시간상 페달을 힘껏 밟았다. 풍경은 되돌아 오는 길에 하기로 하고 일단은 목적지로 정한 장외나루까지 서둘러 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 월악대교에서 올려다 본 월악산 전경.
- 월악나루터와 충주호 풍경.
-덕산면 수산리 전경. 뒤로 월악산 하봉 중봉 영봉이 병풍처럼 서있다. 보이는 마을과 우측의 비닐하우스 사이의 언덕위의 분교자리에 캠핑장을 조성중이다. 또한 월악산 등반 수산리 코스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하봉 중봉 영봉 사이에 두 개의 구름다리가 설치되었다 한다. 곧 올라볼 예정이다.
36번 도로는 계속 이어진다.
덕산을 지날때면 항상 느끼게 되는 다른곳과는 다른 두 가지의 색다른 특색이 있다.
첫째는 바로 위의 사진에 있는 노간주나무 군락지이다.
사투리로 그냥 노가지나무라고도 부르는데 유독 이 덕산 지역의 야산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얼핏보면 정원수인 주목나무나 향나무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메마른 고원지내나 바위벼랑 또는 석회암지대에서 자라는 측백나무과의 식물이다.
척박한 땅에 자라는 나무인데 잎사귀가 가시처럼 억세고 따갑다. 또 불길만 스치면 따다다다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삽시간에 후르르 타버린다.
이 노간주나무가 덕산 일대의 바위야산에 군락을 이루며 사는 모습이 여타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특이한 풍광이다.
다음으로는 덕산면에서 수산면으로 넘어가는 녹녹치않은 고갯길이 있는데, 이 고개마루를 넘어서기만 하면 마치 강원도의 고냉지 채소를 재배하는 지역같은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인근 모든 산의 허리나 옆구리까지가 아니라 어깨여 관자놀이까지 개간을 해서 농사를 짓고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마치 강원도 태백의 바람에 언덕에 와있는 느낌이랄까?
산아래의 밭은 경운기로 갈아 업는다. 트랙터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경사가 진 밭은 경운기의 바퀴에 논에 모내기 할때 쓰는 쇠로 된 좀 더 크고 보폭이 넒어진 바퀴로..... 한마디로 신발을 등산화쯤으로 바꿔신고 겨운기로 밭을 간다.
여기에 경사가 조금 더 지면........ 위의 등산화 신은 경운기에 언덕쪽으로 끈을 매서 한 사람이 위쪽에서 잡아 당기면서 경운기로 밭을 간다. 거의 묘기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럼 그 이상의 경사는 어떻게 하느냐?
별 수 있겠는가. 조상때부터 전수되어온 비법밖에는........
거의 대부분의 밭은 지금도 소가 갈아업는다. 이곳에서의 소는 요즘의 식당에서 찾는 그 소가 아니다.
소는 가족이요 또 한 사람의 일손이다. 아니지 서너명 정도의 인력이 되고도 남는다 해야겠다.
소가 가파른 언덕의 밭을 가는것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이 언덕위에 바로 자르락 마을이 실제 있다.
36번 도로를 달리다 보면 이런 언덕길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눈을 들어보면 웅장하다 못해 장엄하기까지 한 무한이도 아름다운 풍경이 시야 가득 들어온다.
그리고 이 언덕의 정점에서 나는 앞뒤를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한참을 기다리다가 급기야 허겁지겁 유턴을 한다.
고개를 넘으면 얼음골 골짜기를 볼 수 있겠으나, 오늘 내 나들이의 초종 종점은 여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언덕을 내려가는 속도는 더욱 느리게 느리게 천천히 한다.
바로 우측으로 발아래 펼쳐지는 놀라운 풍광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장외나루터 이다.
등 뒤로 제비봉을 등지고, 강건너로 금수산을 바라보며, 충주호로 흘러드는 물줄기 옆으로 깍아지른 바위벼랑이 지키고 섰으니 구담봉과 옥순봉이다.
가히 천하에 내놓아도 견줄것이 그 얼마나 있겠는가. 절경이다. 압권이다.
언제 찾아와도 늘 새롭고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장외나루터 인근을 돌아다니다가 지금의 높고 커다란 다리 아래로 그 옛날 사용되다가 댐 건설로 수몰된 온전한 모습의 다리 하나를 발견했다.
'그래. 저거서이 바로 36번 도로의 원형이다.' 라고 느끼고 나니 반갑기까지 해서 셔터를 눌러댔다.
내 어린시절 내 부친께서 나를 데리고 바로 저 다리위를 지나다니며 사냥을 즐기셨었다.
수산과 단양 사이를 이어주던 그 유일한 통로의 한복판에 놓여졌던 다리가 바로 그곳에 남아 있었다.
그 모양새와 크기가 마치 장난감 놀이에 나오는 다리 같았다.
한때는 그 얼마나 많은 사람과 차량이 지나갔을까?
그러던 것이 이ㅣ제는 물이 차면 수몰되고, 가물면 겨우 제 모습을 드러내면서........ 예전처럼 찾아주는 사람이나 차량도 , 간혹 수리나 보수를 해주던 손길도 전혀 없을터인데......... 저 다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장외나루를 뒤로하고 귀가길에 올랐다.
호수주변을 둘러보며 달리다보니 저만치 강변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이 적지않게 늘어서 있다.
텐트까지 친것을 보니 밤낚시를 하려는가 보다.
저녁식사로는 조금 이른시간인것 같은데........ 한잔씩들 하시는가 보다.
월악나루 인근에 오니 어느새 땅거미가 길게 골짜기 가득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하고 있다.
여행계절이라 그런지 오가는 차량 행렬이 끊이지를 않는다. 행렬 틈새에 끼어서 느릿느릿 가다서다를 반복하면서 곡예운전을 하고 있다.
'좀 천천히 가면 어때?'
화사한 봄의 여운이 아직 가슴에 남았는데........
'오늘은 봄에 맘껏 취한 날이다. 살아있어 내 의지대로 움직인다는 것이 정녕 행복한 날이다.'
- 봄이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던 날에.............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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