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을이 있다.
비만 내렸다 하면 어찌도 그렇게 몽창스럽게 쏟아붓는지........ 그렇게 억수로 물이 차고 넘친다 해서 아예 마을 이름을 (억수리)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산골 동네를 가로지르는 풍광이 가히 절경인 골짜기가 있는데, 동네 이름에 덧붙여 그냥 (억수계곡)이라 불렀다. 이 계곡의 길이가 장 장 16km나 되는데 사람이 마냥 다 다닐 수 있는 계곡은 아니다.
쏘우 매니 매니 타임스 어고우...... 라고 해야할가?
지나간 시간의 오래된 한 시점에서 억수계곡을 다녀간 한 선비가 주자의 싯귀절에 있는 (무이구곡시)를 본따, 이 억수계곡에 들어있는 절경이 아주 빼어난 아홉곳을 선정하여 용하구곡(用夏九曲)이라 이름 지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지명인 곳을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혹간은 서로 다른 곳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천렵을 즐기거나 송이라도 채취하는 사람들은 그냥 억수계곡이라 하고, 여행을 하거나 역사탐방을 하거나 캠핑장소 헌팅을 책자에서 찾기라도 하면 용하구곡이라 한다.
하긴 나도 그런축이다. 누가 물가에 고기구워 먹으러 가자하면 억수계곡이고, 게곡으로 등산에 가까운 트래킹이라도 가자하면 용하구곡이라 저절로 말이 나오니 말이다.
그런데 말씀이다.
작금에 억수계곡에 가 보아도 용하구곡은 없다.
분명 없어진것은 아닐진대 사방 눈을 씻고 찾아봐도 용하구곡은 보이질 않는다.
문화탐방 여행을 아주 오래 다녀보신 어르신 중에 혹간 있거나, 아님 억수리나 송계 근처에 사시는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 아니면 용하구곡을 알고 실제로 모두 다 찾아본 사람은 좀체로 찾기가 힘들다.
꽤나 오래 전, 월악산국립공원이 지정되고 이 일대가 관광지로 변모되면서 어느 순간 용하구곡은 사라졌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 싶다.
억수계곡엔 용하구곡이 없다.
사라진 것은 아닐진대 사라진것이나 진배가 없다는 말이다.
그냥 아는 사람만 알고, 보는 사람만 본다.
제 1곡은 수문동폭포.
제 2곡은 수곡용담.
제 3곡은 관폭대.
제 4곡은 청벽대.
제 5곡은 선미대.
제 6곡은 수룡담.
제 7곡은 활래담.
제 8곡은 강서대.
제 9곡은 수렴선대.
전날, 야간조명을 밝혀야만 할즈음에서야 겨우 약 한달 보름간을 끌어오던 현장 하나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팀원들도 모두 지쳤고, 더구나 다음날이 일요일이고 해서 다시 정상적인 생활패턴으로 돌아가는 것을 겸해 회식을 하고 모처럼만에 휴일을 맞기로 했다. 다들 무슨 그렇게 밀린 대소사들이 많은지, 밀린 일거리들이 쌓였는지 푸념들이 대단하다.
새벽 다섯시.
평상시처럼 잠에서 깨어 일어나보니 '글쎄다. 뭘하지?'
구원파니 뭐니 세상이 시끄러우니까 높은곳의 그분도 내게 별로 신경을 덜 쓰실것 같고, 모처럼 홀가분 하게 쉬겠다는데 낮은 곳의 그분도 눈총은 안줄것 같고......
후다닥 일어나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대충대충 챙겨서는 차에 시동부터 건다. 시내를 한바퀴 돌고.....
시내를 벗어나면서 준비물을 살펴보니 너무도 간촐하다.
나의 주점부리 달팽이 과자 1봉지.
충주에서 제일 맛있는 맛나니김밥 2줄.
캔맥주 하나에 생수 작은것 한병.
카메라와 안경, 그리고 톰 클랜시 작 크레물린의 추기경 한권.
플라이 낚시와 릴선과 후크통.
그리고 나서는 신나게 페달을 밟으며 달려나간다.
팝의 디바 샐린 디온이 나 한사람을 위해서 신나는 비트가 있는 곡목으로 차안에 콘써트를 열어준다.
시원한 새벽아침 공기가 마구 쏟아져 들어온다.
--- 난. 이런 맛에 산다.
월악산의 북쪽 뒷면 골짜기라고 할 수 있는 억수계곡을 향해 가는 길은 끊임없이 맑게 흘러내리는 계류를 기고 달리는 아주 낭만적인 드라이브 코스이다. 물질을 따라 가면서 좌우로 펼쳐지는 풍광을 감상하노라면 어느사이, 본격적으로 억수계곡의 입구라 할 수있는 커다란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자 마자 삼거리에서, 직진을 하면 월악산 북쪽능선을 향하는 등산코스인 신륵사가 나오고, 좌회전을 하면 이제부터 비가 몽창스럽게 내려 억수루 물이 차고 넘친다는 동네이다.
단, 여기서부터는 조심조심 서행을 해야한다.
도로가 좁고 꾸불꾸불 하다. 포장은 되어있으나 아주 옛날의 시골길 그대로이다.
반대편에서 차가 보이면 기다려 주거나 아님 후진을 해야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골짜기에서 차를 세우지 않고 올라갈 수 있는 가장 깊숙한 골짜기 까지 내친 걸음에 그대로 달려 올라간다.
억수리마을도 그냥 지나쳐 한참을 들어가면 억수계곡(용하구곡)의 종점이라 할 수 있는 월악산국립공원이 관리하는 (용하야영장)이다.
비수기에는 열려져 있지먄, 송이채취계절과 여름 성수기, 가을 단풍철. 계울 산불조심 기간에는 오른쪽에 보이는 바리케이트가 설치되어 일반인 통행이 전면 금지된다. 하여 억수계곡의 종착지는 여기가지라 보면 된다. 거꾸로 생각하면 여기서 부터 억수계곡이 내려가면서 시작되는 시발점이라 생각 할 수도 있겠다.
여기 (용하야영장)은 내 취향에 다분히 흡족한 그리 흔하지 않은 야영장이다.
송계계곡의 야영장에 비교한다면 규모가 좀 작고, 동네 이름은 물이 억수로 흘러넘친다는 곳인데도 세상이 변해서인지 갈수기엔 이곳의 게류도 수량이 줄어들어 물놀이가 썩 즐겁지 못할때가 간혹 있었다는 정도.
하지만 너무도 골짜기 깊이 들어앉았고, 드나드는 도로도 협소하고, 요즘 캠핑에 가장크게 도움을 주는 전국 어디를 가도 한 방에 대부분의 필요를 해결해 주는 하나로마트(기타 대형슈퍼)가 차로 십분에서 십오분 걸리는 덕산면까지 나가야 한다는 등의 불편함 덕분인지 한 여름의 성수기를 제외하고는 나름 한산한 편이다. 조용한 골짜기, 우거진 숲, 투명하리 만치 맑은 계곡물, 잘 다듬어진 야영지. 너른 주차장. 계수대와 화장실은 깨끗하게 모두 잘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잡다한 편의시설은 없다. 국립공원 산하 야영장은 일단 전기사용이 안되니까. 오늘도 둘러보니 여덟 가족의 캠핑족들이 머물고 있다. 모두가 느긋하고 평화로운 모습들이다.
(용하 야영장)의 모습을 몇장 담아보았다.
한산한 야영지와 돌아서면 나타나는 계곡 물놀이장이다.
바리케이트를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본다.
어차피 그리 멀리 가지않아 막다른 길목을 맞딱트리게 된다.
이 안쪽으로도 휴계소를 겸한 식당과 민박집과 몇몇의 민가가 살고 있다.
설사, 성수기 단속시즌이라 하였어도 나는 이 안쪽까지 드나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아주 오랜 지난날 한때, 내가 월악산국립공원 자원봉사자 활동을 한 적이 있기때문이다. 그리하여 지난날 국립공원이 유료입장료를 징수 할 때도 공짜였고 캠핑과 등산에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야생화 단지를 만들때도 협력하였고, 십사년전인가 국립공원내애 산불이 일어났었다. 지금 시기인 오월에. 산림청 헬리콥터가 여러대 뜨고 그야말로 한바탕 전쟁을 치를 때에 나도 참석을 했었다. 이틀간을 산골짜기 바위벼랑 사이로 불길을 피해다니며 진화작업을 했었다. 밤엔 매퀘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 골짜기 바위옆에서 쪼그려 자고 헬리콥터가 쌀자루에 담아서 던져주는 주먹밥과 으깨진 오이와 골짜기 까지 내려가 계곡물을 마셔대면서 벼텼던 기억이....... 바로 오늘 용하구곡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고나 할까?
민박집 마당에 차를 주차해 놓고 잠시 인사를 나눈다.
지난 겨울은 어떻게 보내셨냐고. 여기를 비워놓으시고 충주 아들네 집에서 겨울을 보내고 지난달에 다시 들어오셨단다.
캠핑 왔느냐고 하시기에 그냥 바람쐬러 왔다고 했다.
그리고는 바리케이트와 온통 경고문과 울타리가 쳐져있는 골짜기 안쪽으로 더 올라가 보기로 했다.
여기서 부터는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 외에는 절대 출입금지 지역이다.
억수계곡은 참으로 소박하고 깨끗한 계곡이다.
지금 계곡의 초입에서 억수리까지 사방으로 개발이 한창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거의 오지에 모습을 어느정도 간직하고 있는 흔치않은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개발과 보존은 양면의 칼날 같은 것이라서 나도 무엇이라 딱뿌러지게 말할 입장은 못되지만........ 이제 앞으로 내 유년시절 그 불편함과 다리품을 팔아가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가던 그 자연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런 복잡한 내 깊은 속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는 듯한 사진 한장을 찍었다.
바윗덩어리가 사방으로 널려있는 소나무 숲속 사진이다.
우리나라 어느 계곡을 가던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지난날 집안이 군인집안인 관계로 군수물자가 집안 곳곳에 흔하게 나뒹굴었는데 내것으로 만들면서 가장 기뻐했던 물건 두가지가 있었다.
비에 젖으면 제대로 한짐되게 무거워지는 군용 A형 텐트와 월남전에서 쓰던 장글刀 였다.
그렇게 해서 독자적인 나만의 캠핑은 고등학교때 시작되었다.
그리고 위의 사진속 바위투성이 솔숲이 바로 나의 캠핑 야영지였던 것이다.
억수계곡의 솔숲, 단양 상선암 위쪽의 솔숲. 양양 미천골의 솔숲. 지리산 달궁의 솔숲이 특히 좋았다.
계수대도 없었다. 화장실도 없었다. 매점도 없었다.
그래도 매력만점의 진정한 캠핑이 그곳에 있었다.
발치아래 투명한 계곡물이 넘쳐나고 어디 누구하나 의식할 사람도 없고........ 이틀 삼일씩 숲속에서 계곡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누드로 지내본 적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대한민국 어디를 가 보아도 저런 솔숲에 야영을 허락하는 곳은 없다. 텐트를 칠만한 자리를 남겨두지를 않았고, 심하다 싶을 정도로 지속적인 단속을 하고 있다. 대신 시설을 잘 갖춰놓은 곳으로 가서 일정 금액을 지불을 하고 쉬었다 가라는 것이다.
캠핑 주변 여건이 좋아지고 캠핑족도 무척 늘어났다. 자연이 아닌 시설과 장비에서 힐링를 찾는 사람들도 늘어만 가고 있다.
내가 초기에 겪었던 것처럼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마음대로 쉬는....... 노지 노숙 캠핑 같은 것을 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문명과 동떨어진 오지로 내몰리고, 부러 찾아다니는 세상이 된것이다.
그러나 관리와 단속이 지속되면서 자연이 원형을 보전해 나가고 숲이 우거지고 깨끗해 졌다는 점에선 또 공감한다.
자연의 개발과 보존........ 참 아이러니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일반인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억수계곡 최상류의 풍광이다.
아름답고 깨끗하고 조용하다.
예전에는 이런곳만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만약 오늘의 예를 든다면.......
해질녁쯤에 통제선까지 와서 최소로 줄인 짐을 내려 숲속에 숨겨 놓고 되돌아 차를 몰고 한참을 내려간다. 차를 세워놓고 걸어 올라와 몰래 짐을 지고 들고 걸머네고 통제구역 안으로 들어간다. 깊숙히 더 깊숙히...... 어디 은신할 만하고 풍광이 너무도 빼어난 곳으로 장소를 차지하고 앉아 한 이틀쯤 천국에서의 캠핑을 즐기고 나서 슬쩍 빠져나오는 방법이다. 그런 파라다이스 같은 곳도 제법 알고 있지만....... 이제는 그리하지는 않는다.
뭐 그렇게까지........ 생각이 드는걸 보니 아마도 나이탓인가 보다.
이제 통제선 밖으로 내려와 내가면서 다시 억수계곡을 감상해 보기로 하자.
내려서면서 보이는 골짜기 위로는 월악산 영봉이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사진 속에서도.
억수리까지 내려와서 보니 새로 들어선 사설캠핑장은 만원이다. 성업중이 아니고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이곳도 계류가 흘러내리는 물줄기 주면으로 너른 터만 있으면 여기저기 사설캠핑장 조성이 붐을 이루고 있다.
힘들게 농사짓는것 보다 나은가 보다. 하긴.........
왜 골짜기를 조금만 더 올라가면 훨씬 더 좋은(내 생각) 야영장을 두고 여기서 궁상(?)들을 떠실까?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도무지 찾을 길이 없다.
그때는 그래도 다 녹슬고 지워진 찰판에 안내표지판이라도 있었는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를 않는다.
그저 어느 골까기나 도랑 할것없이 죄다 들어가지 마라. 벌금에 처한다. 위험하다 라는 엄포성 안내판만 즐비할 뿐이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어느새 억수리 마을을 그대로 지나치게 되었다.
'이게 아닌데? 도저히 안되겠다. 마을 어르신이라도 찾아봐야지.'
마을을 기웃기웃 거리는데 구판장(시골의 오래된 슈퍼) 앞 들마루에 할아버지 두 분이 앉아계신다. 한 분은 다리를 다치셨는지 목발을 옆에 놓으시고.
"저기 어르신. 제가 병풍폭포를 좀 가려하는데 도무지 어느 골짜긴지 찾을 수가 없네요. 어째 안내 표지판도 하나도 없구요."
"거긴 보존지역이라 보호할려고 있던 표지판도 일부러 없애 치웠지. 거긴 함부로 갈 수없는 곳이여. 근데 우째 알고 거긴 왜 갈려고?"
"제가 십사년전인가 국립공원에 자원봉사를 하던 때에 만수골 넘어 골짜기에서 산불이나 이틀동안 산불 진화작없에 참여를 했었습니다. 그때 불을 끄고 걸어서 하산하던 곳이 바로 그 골짜기였고 거기서 처음 폭포들을 만났습니다. 너무너무 멋진 풍경들이어서 오래오래 기억을 하고 있었는데......... 언제고 꼭 한 번 다시 봐야겠다 하다가 이제서야 찾아왔는데........ 찾지를 못하겠습니다."
"맞어. 그때 산불이 났었지. 여기 이사람이나 나나 온 동네사람이 큰일났다고 죽자사자 매달리던 일이 있었어. 그러고 보니 참 좋은 일을 한 젊은사람이로구만. 거기라면 참말 다시 가볼만한 곳이지. 그나저나 오랜세월 방치해 놔서 길도 죄다 없어지고 수풀이 우거져 가기가 쉽지는 않어. 자주 와봤던 등산객이나 송이따러 나물뜯으러 다니는 사람이나 올라가 보지. 혼자면 무섭지는 않겠는가?"
"혼자 여행 등산을 자주 다니기에 본시 두려움 같은 것은 없으니 걱정 놓으셔도 되겠습니다. 그때 제 기억에 골짜기 7부 능선쯤에 화전민이 살았음직한 마당터랑 함석지붕이 그대로 있던데요. 아름들이 엄나무도 있었고........ 거기까지 누군가 일부러 돌을 쌓아 길을 냈던 흔적도 있었구요."
"맞어. 맞어. 그 골짜기. 그 길 흔적은 일본놈들이 거기까지 도로를 내서 아름들이 소나무를 싸그리 베내간 산판 길이었어. 그 근처에 화전민이 몇가구 우리가 젊었을 때까지 살았구. 그리고 그 골짜기가 본시 구한말에 의병투쟁하던 군인들이 차지하고 들어앉았던 유래가 있는 골짜기겨. 거기가."
"기억은 생생한데 입구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미 지나쳐 왔어. 되돌아 올라가서 작은 도랑 말고 좀 더 가다보면 우측으로 처음 다리가 나올거여. 죄다 울타리를 쳐서 막아놨지만."
"아. 그 댜리건너 길이 굽으면 왼쪽에 커다란 농산물 보관창고 있는 곳이요?"
"맞어. 맞어. 그게 우리 부르콜리 집하 창고여. 차는 거기다 주차하는게 젤 편할거여. 그 옆으로 전봇대 옆에 소독하느라 경운기 한대가 서있는데 길건너편으로 보면 산길 하나가 나 있을거여. 그게 그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이여. 본래 길을 다 막아놨으니까. 골짜기 안에 내 양배추 밭이 있어서 그리로 길을 낸거여. 쪼금만 돌아가면 옛날길이 나와. 근데 거기서 올라가면 바로 위에 감시카메라가 있어. 그러니까 그냥 내 밭으로 도랑을 건너. 거기서 조금만 그냥 도랑을 따라 올라가서 카메라를 지나쳐 둑을 오르면 다시 옛날길이여. 올라갈 수록 길이 없어졌을테니 아니다 싶으면 도랑 이쪽 저쪽을 잘 살펴봐. 흔적은 남았을거니까."
하하하하.
이건 완전히 공모자의 수준을 넘어 사주를 한 공범이다.
내 그렇게 숱하게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소상하게 길(?) 안내를 범죄의 수준에서 친절하게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자. 이제 슬슬 갈 수 없는 길을 올라가 볼까?
숲은 신들의 정원이다.
모자람도 넘처남도 없는 자연의 향연이다.
열린 가슴으로 숲속을 거닐며 페부 깊숙한 곳까지 푸르른 공기를 한껏 들여마셔보면 발걸음은 어느덧 선인이 된다.
지금 내가 내 주위의 모든 푸르름을 내것이라 한들 누가 무어라 하겠는가. 굳이 소유의 개념이 무엇이겠는가.
세속의 갖은것과 갖지못한 것이 다 무엇이겠는가. 지금 내가 이 푸르름 속에 분명 살아 숨쉬고 있음이 소중할 뿐.
저 푸르름이 나를 가여이여겨 내치지 않고 무한함으로 기꺼이 반겨주니 나는 그 베푸어주심에 또는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할 밖에.
숲은 신이 인간의 나약함에 베풀어 주시는 최대의 관용이 아닐까?
나는 지금 이 순간 신이 베푸시는 자비에 대한 이 세상에서 최대의 수혜자일듯 싶다.
계곡을 이리 건너고 저리 건너기를 얼마나 하였을까?
길은 아주 옅은 흔적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그 흔적들을 유심히 살피며 골짜기 안쪽으로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다.
수정유리구슬처럼 맑디맑은 물줄기가 끊임없이 흘러내리며 작은 폭포를 만들고 물웅덩이를 만든다.
노란 꽤꼬리가 날아가고 꿩 두마리가 푸드득 소리와 함께 날라간다. 어디선가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가 들린다.
푸르른 계곡 가득 새소리와 물소리 뿐이다. 더 한다면 조릿대 숲을 헤쳐나가는 내 발걸음이 내는 사그락거리는 소리까지.
어떤 난처한 상황에 처해도 당황해 하지않고, 어떤 경우에도 무서움을 모르는 배포를 가지고 태어나게 해주신 내 부친께 저절로 감사함이 생겨나온다. 또래에 비해 유독 강건한 신체조건을 만들어 주신 내 모친께도 눈물겹게 감사를 드린다. 그 분들 덕분에 나는 지금 이 깊은 골짜기를 아무 서스럼 없이 즐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주 가끔 혼자 하는 농담처럼 '조물주께서 내게 아주 커다란 관용을 베푸셔서 하늘나라에 있는 한 사람이 내 눈을 통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을 한번만 나와 같은 시선으로 보게 해주시면........ 아니 딱 두번만 볼 수 있게 해주시면........" 해 본다.
나는 지금 내 어머니 보다 십년 이상을 더 살아가고 있다. 내 어머니에겐 50대가 없었다.
50대에 살아있다면 과연 어떤 세상이었을까 하는 모습으로 지금 내가 이 숲속에서 두 눈으로 보고 있는 여기를 보여드리고 싶다. 예전에도 푸른 숲속이야 있었겠으나....... 오십줄의 시선으로도 여전히 있는 그대로의 푸르름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다음으로는 짱구를 보여드려야지. 아들은 부족한 아들이었으나 그래도 손주 하나는 제대로 맹글었습니다.(?)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전혀 부끄럽지 않을 손주를 어머니께 보여드립니다.
사막에서 혼자 밤을 맞게 되거나.........
칠흑 같은 어둠과 고요속에서 혼자 있게되면..........
간혹 인간은 조물주(신)을 만나게 된다. 그 조물주는 냉엄한 표정으로 인간을 노려보면서 나타나게 된다.
깊은 숲속에서도 간혹 조물주를 만나게 된다. 그날은 온통 따사로움과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와 더불어 거닐곤 한다.
오늘은 후자에 속하는 그런 날이다.
일전에 나의 글에서 이런 표현을 한 적이 있다.
'길은 앞사람에 대한 믿음에서 생겨난다'고.
애초에는 길이 없었다.
어느 고개를 넘어야 할 처음의 필요를 느낀 사람은 조금 수월하게 가려면 짐승이 다닌 발자욱을 쫓아서라도 그리로 가면 고개를 넘을 수 있다는 바람과 믿음으로 처음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허나 이때는 그냥 발걸음이나 발자취일 뿐, 길은 아니다.
다시 고개를 넘어야 할 필요를 느낀 다른 사람이 앞서 나 있는 그 누군가의 흔적을 살피고는 흔적을 따라가면 고개를 넘을 수 있겠구나 하는 믿음에서 같은 발걸음이 반복되고, 마침내 고개를 넘었을 때 비로서 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그 누군가가 남겨놓은 흔적을 살피며, 이렇게 계속 올라가면 반듯이 폭포에 다다를 것이라는 믿음에서 숲속길을 마냥 오르면서도 전혀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얼마를 올랐을까?
숲속이었어도 가파른 언덕을 오르노라니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겠다. 초여름 날씨였으니.
쏴아.
어디선가 점점 요란해져 가는 물줄기 소리가 귓전에 진동을 한다.
아니난 다를까?
수곡용담(水谷龍潭).
용하구곡의 제 2곡인 수곡용담이 나타난 것이다.
이곳에 살던 용이 숭천했다 하여 용소 라고도 부른다.
또 고을에 큰 가믐이 들면 이곳에서 개를 잡아 그 피를 뿌리면 용이 하늘에서 비를 뿌려주었다는 전설도 전해온다.
용이 꼬리를 잡아 틀듯이 묘하게 물줄기가 휘돌아 내려가는 주변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예전처럼 혈기왕성한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기꺼이 장비 둘러메고 올라와 사나흘 머물다 내려가고 싶은 곳이다.
계곡물에 세수를 하고 나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수문동폭포까지 오르려면 아직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한다.
수문동폭포는 나도 아직 구경을 하지 못하였다. 예전에 불을 끄고 하산을 하면서 이 골짜기를 택했던 것인데 산자락을 마구 타고다니다 골짜기로 내려선 곳이 바로 병풍폭포가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용하구곡의 제 1곡인 수문동폭포는 이제 여기 수곡용담에서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병풍폭포를 만나게 되고, 다시 병풍폭포에서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움이 드는 것은 요즘이 봄가뭄이 심한 시기라 전체적인 계곡의 수량이 좀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 우려는 수곡용담에서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전해 들었던 바에 의하면 병풍폭포와 수문동폭포의 경우 장마철이 지나서 올라와 보면 가히 그런 장관이 없다고 들었었다.
그러니 어찌하겠는가. 일단은 오르고 봐야지.
얼마를 그렇게 더 오르고서야 다시금 물소리가 거세게 진동으로 귓전에 소란을 떨 무렵, 저만치 앞에 물줄기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래. 바로 여기야. 이 모습이었어.'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서있고 그 가운데로 폭포수가 흘러내린다.
14년 전 오월 중순엔 수량이 이보다는 풍부했었든것 같다.
'그래. 내 주위에, 가까운 주위에 아직 이런곳이 남아 있다는 것이 놀랍고 감사할 뿐.'
주변을 둘러보니 천상의 정원이 따로 없다.
세수를 하고 신발을 벗어 발도 적셔보고........ 지난 겨울에 다쳐서 고생했던 오른발 발등의 상처마저도 귀엽다.
세상에 아무도 없으니 훌러덩 벗고 폭포수에 목간이라도 할까 망설이는데.......
'아니지...... 오늘이 혹 그날이라서 천상에서 선녀님이라도 목간하러 내려오시면 낭패가 아니겠는가?'
'그냥 내가 가해자가 되어서 배째라 하면 별반 문제가 될것이 없겠으나........ 혹시나 선녀가 나를 범하고 무조건 자기가 책임지겠노라고 우겨대면 그때눈 워쩐대? 아무래도........ 목간은 참아야 하겠다. 하늘나라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용산동까지 기어코 가서 사온 맛나니 김밥 두 줄이랑 캔맥주를 꺼내서 먹노라니........ 살맛 난다.
한참을 쉬다가 이제 다시 수문동폭포까지 올라가려 신발끈을 조이는데......... 꿈도 야무지게 선녀가 어쩌구 저쩌구 농담을 한것을 하늘이 알아채셨음일까?
그때까지 줄굿 침묵을 고수하던 핸디폰이 울어댄다. 막역한 선배이니 안받을 수도 없고........
"너 금가면 일 끝냈대면서."
"네. 어제 늦게까지 해서 겨우 마쳤습니다."
"고생했다. 근데 너 지금 어디냐?"
"힘들게 마치고 해서 잠시 바람쐬러 밖에 나왔습니다."
"그래. 전화 해 봤더니 쉰다고 해서 핸디폰으로 했다. 그나저나 지금 좀 와줄 수 있냐? 어딘데?"
"수산 쪽으로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신데요?'
"형이 지금 병원에 왔다."
"네? 병원에요?"
"농장에 가는데 누가 내 차 옆구리를 냅다 박았어."
"교통사고요? 어디를 어떻게 다치셨는데요?"
"당장 어디 터지거나 뿌러진데는 없는데, 교통사고라는게 다 그렇잖니. 멍하고 사지가 여기저기 다 욱신거리느것 같아서 일단 병원에 왔다. 엑스레이 찍고 기다리는 중인데 아무래도 너가 좀 와주었으면 싶다. 와 줄 수 있겠니?"
"그게....... 시간이 좀 걸릴거예요. 산에 올라왔거든요."
"산에 갔어? 멀면 천천히 오구. 급한대로 내 친구 부르면 되지 뭐."
"아닙니다. 내려가는 길이었어요. 그래 어디 병원이세요?"
내려가는 길은?
다 올라가지도 못한것을.........
그뿐인가?
모처럼 플라이 낚시 해보려고 준비까지 해 온것을.
'에고 에고. 덕산천의 물고기들아 니들 오늘 운수대통했는 줄만 알어라?'
"그넘의 선녀 목간 타령은 왜 해가지고서리............"
나머지 일정 모두 쫑(?) 치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향했다.
가보니.......... 아무것도 아니고 지극히 가벼운 타박상 이란다.
형이 미안스러운지 병원 나오자마자 횟집으로 향했는데......... 그날 술맛이 어땠을까? ? ? ? ? ? ? ?
멀지않은 날에 단단히 무장에 가까운 채비(?)를 갖춰서 수문동폭포까지 기어코 오르리라. 수량이 풍부한 날로 골라서........
그날, 핸디폰은 차 속에서 종일 쉬고 있을 것임.
----------- 좋다 말은 어느 날에......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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