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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르네상스 산책> 홀연히 중세(中世)에 피어난 한 떨기 들꽃 같은 도시 '피렌체'

by 피안재 2022. 2. 23.

 

 

 

 

 

 

 

 

 

 

 

 

 

 

 

 

 

 

 

오늘도 피렌체의 거리엔 비가 종일토록 주룩주룩 내린다. 어제도 그러했고 또 내일까지도 비가 예보되어 있다.

잔뜩 찌프린 날씨나 영상을 조금 웃돌고 있는 기온보다 도심의 골목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매서운 바람이 길을 나선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힘겹게 만들고 있다.

갑자기 피렌체가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불현 듯 알 수 없는 막연함이 결코 틀린 적이 없는 슬픔 예감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처음 피렌체를 방문했을 때의 날씨는 가히 예술이었다. 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으며 오렌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익어가고 있었다. 지난해 방문에서는 대체로 온화한 날씨였고 이틀인가는 비가 내렸지만 전혀 여행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는 아닌 흐린 날 정도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달랐다. 우선 춥고 이동이 극히 불편했다. 특히 여행의 상당부분을 주로 걸어서 하는 여행을 선호하는 우리에게 이렇게 춥고 사납게 바람이 부는 날씨는 치명적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날씨가 며칠이나 계속되고 있다. 유럽의 겨울이 대체적으로 우기(雨期)에 해당된다는 기후적 특성이야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대하고 보니 난감하다고 할 수 밖에 없을뿐더러, 익숙했던 피렌체가 상당히 낯설게만 느껴지기 시작한다.

비에 젖어 든 중세도시의 풍경이 우선 이제까지 내가 보고 느껴왔던 피렌체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런 현지의 날씨와 생활에 익숙하게 적응을 했음인지 도심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 중의 상당수가 우산도 쓰지 않고 달음박질치지도 않고 웃고 떠들면서 거리를 활보한다. 그들은 모두가 평온한 듯 익숙한데 왜 우리는 낡은 건물의 모퉁이에 숨어서 망설이게 되는 것일까? 익숙한 모습들은 현지인이거나 노련한 젊은 여행자일 것이요, 익숙하지 않은 표정들은 아마도 여행 초짜이거나 우리 같은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어느 정도 활기를 상실한 저물어가는 세대들이 아닐까?

갑자기 낯선 도시의 어느 모퉁이에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막막함이 발걸음을 가로막는다.

‘낯선 것들을 차차 낯설지 않게 만드는 것이 여행’ 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항상 길을 나섰다. 반복되는 일상행활 속에서 곧잘 이 막연한 낯설음이 그리움일 때가 있고 어떤 동경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 나에게는 그 낯설음이 현실로 부닥쳐 온 것이다.

싸늘한 기운이 피렌체 도심을 감돌며 흐르고 있고 흑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검은 구름덩이들이 건물들 위에 드리워 걸쳐져 있다.

우울한 하늘을 마냥 올려다보고만 있으면 점차 마음까지도 우울하지고 이내 심신이 어지러워지면서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그러다가 문득 전혀 다른 무엇인가를 우울한 하늘에서 발견했다. 잘 버무려진 떡고물처럼 생긴 새하얀 꽃잎 하나가 바람결에 나풀나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나가 아니다. 새하얀 꽃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울한 비에 눈발이 버무려져 내리기 시작한다.

영상의 날씨에 비에 버무려져 내리는 눈발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맞이하고 있다. 우울함이 어느새 어떤 벅찬 감동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였다. 불과 채 5분을 넘기지 못하고 날씨는 다시 우울함 속으로 되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이런 날씨와 이런 장소와 이런 시간과 이런 마음으로는 이런 노래를 들어야만 한다.

그야말로 ‘딱 죽기 좋은 날’이 아니라 ‘딱 이 노래를 듣기 좋은 때’가 아닌가!

내가 엄선한 노래는 바로 스팅(sting)이 애절하게 부른 이란 곡이다. 내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노래지만....... 이 노래는 어쩌다 꼭 이런 분위기에서 들어야만 딱 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이스탄불에 가면 보스포러스 해를 바라다보면서 항상 크리스 디 버그(chris de burgh)의 노래 를 들어왔듯이, 이제부터 피렌체에 오면 언제나 스팅을 노래를 듣게 될 것 같다.

 

 

Why are these women here dancing on their own?

Why is there this sadness in their eyes?

Why are the soldiers here

Their faces fixed like stone?

I can't see what it is they despise

They're dancing with the missing

They're dancing with the dead

They dance with the invisible ones

Their anguish is unsaid

They're dancing with their fathers

They're dancing with their sons

They're dancing with their husbands

They dance alone They dance alone

 

It's the only form of protest they're allowed

I've seen their silent faces scream so loud

If they were to speak these words

they'd go missing too

Another woman on the torture table

what else can they do

They're dancing with the missing

They're dancing with the dead

They dance with the invisible ones

Their anguish is unsaid

They're dancing with their fathers

They're dancing with their sons

They're dancing with their husbands

They dance alone They dance alone

 

One day we'll dance on their graves

One day we'll sing our freedom

One day we'll laugh in our joy

And we'll dance

One day we'll dance on their graves

One day we'll sing our freedom

One day we'll laugh in our joy

And we'll dance

 

 

 

 

 

 

 

 

 

 

 

 

 

 

  피렌체의 중심은 누가 뭐라고 해도 역시나 두오모 라고 하겠다. 대성당이라는 의미이고 보다 정확하게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그러니까 ‘꽃의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된 교회’ 라는 뜻을 담고 있다. ‘꽃의 성모 마리아 교회’를 품고 있는 도시라 해서 피렌체를 사람들은 ‘꽃의 도시(Florence)’ 라고 이름 지었다. 암울했던 중세시대에 화사하게 르네상스를 꽃피운 유서 깊은 도시이지만, 어쩌면 피렌체는 그 도시 자체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인 것이다.

  피렌체의 어디에서나 두오모가 보인다. 어쩌면 피렌체는 두오모를 위해서 계획되었으며, 두오모를 중심으로 건설된 중세의 도시라 할 수 있겠다. 피렌체에 관한 모든 사진들 속에서 언제나 중심엔 두오모가 놓여 있다. 모든 사진 속에는 커다란 돔을 가진 성당이 둘이 등장하는데 중심의 커다란 성당이 두오모이고 작은 돔이 산 로렌초 대성당이다. 그리고 두오모 옆에는 항상 커다란 지오토의 탑이 지키고 서있다. 혹시나 두오모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곳은 아마도 피렌체가 아닐 것이다.

  그러자 문득...... 에펠탑에 관해 전해져 온 이야기가 불쑥 생각이 난다. 파리 박람회(엑스포)를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에펠탑을 당시의 파리 시민들은 지극히 혐오스러워 했단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도시에 뼈대뿐인 철탑이 무엇이냐고 철거를 주장했었다. 이런 불평은 거센 여론으로 점점 악화되었다. 그래서 나온 소문이 ‘파리에서 제발 에펠탑 좀 안보고 살고 싶다. 에펠탑이 너무나 커서 안 보려면 지하에 들어가든가 에펠탑에 올라가야만 안 볼 수 있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피렌체에서도 두오모를 보지 않으려면 부르넬리스키의 전설이 담겨있는 돔의 지붕에 올라가면 된다. 그리고 꼭 한 군데....... 이곳 두오모에 서면 두오모가 보이지 않는다.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에서 내리면서 비로소 피렌체 여행은 시작된다.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기차역을 나서면서 가장 먼저 눈길이 쏠리는 곳은 당연히 두오모다. 피렌체 여행은 두오모에서 시작하고 두오모에서 끝난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이드나 여행안내 책자에서나 입을 모아 외치기를 ‘피렌체에서는 어디에서나 두오모가 보인다. 두오모를 기억하게 되면 피렌체 여행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라고 분명히 했는데, 막상 기차역을 나서면 두오모가 보이지 않는다.

  ‘어? 두오모가 없는디? 혹 여기가 피렌체가 아닌거 아니여? 기차에서 잘 못 내렸나?’

  아니다. 피렌체가 맞다. 당신이 내린 역 명칭에, 그리고 주변 포지판에 (SMN) 이라고 적혀있다면 이곳이 틀림없이 피렌체가 맞다. 여기에서의 (SMN)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지금 역사 앞 광장 건너에 웅장하고 높은 병풍처럼 가로막고 서있는 무척이나 위용이 크고 장엄한 고딕식 건축물의 명칭이다. 피렌체의 관문인 ‘산타 마리아 노벨라 기차역’ 이름 또한 바로 이 성당에서 따온 것이다.

  어쨋거나 이곳에서만은 두오모가 보이지 않는다. 노벨라 성당이 가로막고 서 있기 때문이다. 도심의 역사지구로 들어가려면 어차피 노벨라 성당의 후면 담벽을 돌아가야만 한다. 광장과 트램이 오가는 도로를 건너 노벨라 성당의 모퉁이를 돌아서면 그제서....... 그토록 갈망하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돔이 우뚝 솟아있는 정경이 한 눈에 가득 차온다.

 

 

 

 

 

 

 

 

 

 

 

 

 

 

 

 

 

  피렌체에 오면 들르는 두오모 옆 카페에서 커피를 즐기며 하늘만 살피다가 자유배낭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중앙시장 로컬 푸드 코트로 향했다. 나는 내장 버거가 환상적일만큼 훌륭한 맛인데, 마눌님은 순대골목에 가면 저절로 튀어나오는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정통 이태리 요리에서 퓨전 요리가지 중앙시장 로컬 푸드 마켓은 식도락의 천국이라는 동남아 야시장을 방불케 한다. 이곳저곳을 살피면서 여러 가지 음식을 즐기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밖으로 나오니 비는 그쳤지만 세찬 바람은 여전하다. 중앙시장 노점 상가에서 아이 쇼핑을 가져본다. 오늘의 여행 스케줄????? ‘우리 여행에 정해진 것은 없다’ ‘가진 것이라고는 시간과 배짱뿐이다’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할 뿐이다. 누리자. 즐기자.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여행자들이 피렌체를 찾는 이유는 도시의 곳곳에 문화와 예술이 찬란하게 꽃피었던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와 숨결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서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암울하기만 했던 중세 시대의 잔해가 곳곳에서 묻어나고 그것을 극복한 르네상스가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런가하면 새로운 시대사조인 근대의 역사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흔적들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곳이 바로 피렌체다.

  피렌체 도심을 걷다보면 다른 여행지에 비해서 유독 젊은 아시아 여행자들이 많이 눈에 띤다. 한국인이나 중국인들도 많이 있지만 아마도 일본인 숫자가 유독 많아 보인다.

  어쩌면 젊은 일본 여행자들에게 있어서 피렌체는 절대적 유럽여행의 성지가 아닐까? 젊은 일본여행자를 필두로 많은 아시아권 여행자들이 앞 다투어 찾아가는 곳은 바로 두오모의 쿠풀라다. 피렌체 대성당의 돔 지붕에 있는 전망대에 기를 쓰고 앞 다투어 올라들 간다. 그들은 그곳에서 두오모 건축의 위대한 예술성이나 부르넬리스키의 천재성이나 발아래로 펼쳐진 전경에서 피렌체 도심에 녹아든 르네상스라는 시대사조를 찾아내고 느껴보는 것이 아니라......... <냉정과 열정사이>에 등장하는 준세와 아오이의 시선과 발길을 따라 잔잔한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다. 피렌체나 르네상스는 젊은 남녀 청춘들의 러브스토리에 배경일 뿐이다. 어디까지나 지극히 내 주관적인 판단이겠지만....... 나는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준세와 아오이가 함께 쿠풀라에 올랐고 훗날 약속의 장소로 쿠풀라를 선택했기에 피렌체 두오모의 쿠풀라는 어떤 의미와 가치를 비로소 지니게 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느껴졌다면 이것은 내 지나친 우려와 판단에서 나온 결과일까?  하긴, 영화 속의 준세와 아오이가 재회를 분명 재회를 하였으니,  지금 피렌체의 어딘가에 살면서 여전히 미술품 복원에 종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많은 아시아권 젊은 여행자들의 바램도 그럴것만 같다.  <냉정과 열정사이>에 등장하는 도심 풍경은 많이 단순화 시킨 러브스토리의 배경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은 느낌이 강했다.  쿠풀라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장소의 의미 외에는 굳이 그 배경이 피렌체일 이유까지도 퇴색되게 느껴지는...........

  나에게 피렌체는 르네상스 자체이자 거대한 도서관이며 박물관이며 미술관이다.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숨결이다. 도심을 걷다보면 지오토.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와 단테. 마키아벨리. 기베르티와 부르넬리스키. 그리고 도나텔로를 만날 수 있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에 등장하는 피렌체가 조금은 빛바랜 수채화 같았다면 영화 <인페르노>에 등장하는 피렌체는 색채나 표현 기법이 아주 강렬한 한 폭의 유화 같았다.

  인류 멸망이라는 대재앙 앞에 한 가지 자신만의 해결방안을 들고 나온 천재 생물학자 조브리스트가 괴한들의 추격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피렌체의 도심의  좁은 골목길을 이곳저곳으로 도망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속도감 넘치는 장면 사이사이에 피렌체의 도심 고풍스런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 어느 중세 건물의 종탑 위로 도망친 조브리스트는 막다른 종탑의 옥상에 막혀서 회유를 당하던 중에 결국엔........ 종탑 아래로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음을 택한다.     그가 택한 죽음의 장면에 까지도 피렌체의 아름다운 전경이 따라다니며 수를 놓는다.

  영화<인페르노>를 감상한 사람 중에 많은 사람이 조브리스트가 떨어져 죽는 장면에 등장하는 장소가 베키오 궁전의 타워라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떠올리며 영화를 다시 보니 그럴 것도 아닐 것도 같아 충분히 헷갈릴 수 있겠다 싶어졌다. 그것은 아마도 피렌체의 중앙 광장에 우뚝 솟아있는 베끼오 궁전의 위용에서 생겨난 선입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 본 피렌체 풍경이나 아니면 다른 하늘에서나 아주 멀리서 바라본 피렌체 풍경에는 하나 혹은 두 개의 둥근 지붕(돔)을 가진 교회(성당)가 보인다. 큰 돔이 바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꽃의 성모 대성당)라 불리는 두오모이고, 작은 돔이 흔히 메디치 가문의 개인적 채플로 알려진 산 로렌초 성당이다. 그런가 하면 피렌체 전경에는 하나 혹은 둘의 종탑이 등장하는데, 큰 것이 두오모에 붙어있는 지오토의 종탑이요, 작은 것은 피렌체를 다스리던 관공서인 베키오 궁전의 타워이다.

  하지만, 영화 <인페르노>에서 조브리스트는 여기 베키오 궁전의 타워가 아니라 조금 떨어진 골목 저쪽의 바르젤로 미술관과 마주하고 서 있는 ‘피렌체 산타마리아 수도원( Abbey of Santa Maria)’의 높이 70m 종탑에서 추락한 것이었다. 현지인들은 쉽게 ‘바디아 피로렌티나(Badia Fiorentina)’라고 부른다.  이런 사실들을 하나하나씩 찾아가면서 골목길을 거니는 재미 또한 상당하다.  여행만이 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영화에 등장하는 피렌체의 도심과 골목길 풍경은 아주 강렬하다.

 

 

 

 

 

 

 

 

  ‘피렌체까지 오셨는데 전망이 형편없는 방에서 머무실 수는 없지요. 우리가 방을 양보해 드리겠습니다. 전망이 아주 뛰어난 방이랍니다. 우리는 이미 여러 날을 그곳에서 머물렀기에 이제 그 익숙한 풍경에서 벗어나도 될 것 같습니다. 방을 바꿔드리지요. 전망이 좋은 방에서 머물도록 하세요. 여긴 피렌체니까요.’

 

 

  아르노강과 베키오 다리가 내려다보이는 호텔의 식당에서 벌어진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흔한 말로 깐깐하기 이를 데 없는 사촌 샬롯의 불만과 불평은 이미 극에 달해 있었다. 어렵게 피렌체까지 여행을 왔는데 겨우 힘들게 찾아 든 숙소의 전경이 형편없었던 것이다. 허름한 도심 뒷골목의 전경이 창을 통해 보일 뿐, 너무도 당연한 피렌체만의 충경이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두오모도 베키오 궁전도 심지어 아르노강이나 베키오 다리 조차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 분통이 식당에서 터져 나왔던 것인데........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노신사와 그 아들이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선뜻 방을 바꿔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양보 받은 방에 들어선 루시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피렌체의 모든 것이 창문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더없이 전망이 좋은 방이었다.

 

  단 한 번의 서툰 입맞춤 때문에 인생이 바뀌고 역사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쉽게 깨닫지 못한다.

  참고 견디기 힘들만큼의 보수적인 관습과 옥죄어오는 것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루시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는 방편으로 여행을 선택했고 지금 피렌체에 왔다. 그리고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의 배려로 꿈에 그리던 전망 좋은 방을 얻었다.

  방을 선뜻 양보한 자유로운 영혼의 다소 충동적이며 타오르는 열정으로 뭉친 조지는 여성을 그냥 하나의 소유할 수 있는 미술품처럼 생각하며 수집하려는 망나니라고 해야 할까?

  전혀 다른 두 사람이 피렌체에서 만났다.

  루시가 걸어가는 발걸음 하나하나마다 피렌체의 아름다운 전경들이 사뿐히 즈려 밟히며 스쳐 지나간다.

  지금 루시는 시뇨리아 광장의 란치회랑을 지나가고 있다.

  내 발걸음과 시선 또한 루시의 발걸음과 시선을 따라 걷고 있다.

  피렌체는 언제나 꽃이며 사랑이다.  언제 까지나..........

 

 

 

 

 

 

 

 

 

 

 

 

  <전망 좋은 방>의 여주인공 루시의 발걸음을 따라 피렌체 도심을 둘러보던 나는 시뇨리아 광장의 란치 회랑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루시는 가던 발걸음으로 마가지니 도로를 거슬러 단테의 생가로 향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나는 서둘러 포르타 로사로 향하는 골목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두오모 광장의 복작함을 피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택한 것이다. 아무래도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베네치아에 다녀올 수 있는 기차표를 예약해 두어야만 하겠다고 마음먹은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기차표는 항공권 구입과 마찬가지로 사전에 미리 예약해 두는 가격과 당일 시간이 임박해 구입하는 가격 사이에 크게 차이가 있다. 심지어 같은 날짜에도 크게 차이가 나기도 한다. 피렌체에서는 베네치아가 당일치기 여행으로도 가능하기에 많은 여행자들이 이런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반면 베네치아에 머물면서 피렌체를 당일치기로 여행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모레 베네치아를 다녀 올 수 있는 왕복 기차표 두 장 예매를 마쳤다.

  이런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는 날에는 어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푹 파묻혀 보내는 것도 좋은 여행의 한 방편이라 생각하고 있는 터라, 이쯤에서 우리는 오후를 우피치 미술관 관람으로 정하고 막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을 나서서 우피치 미술관으로 향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역사 밖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참으로 낯선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검은 챙 모자를 쓴 남루한 차림의 노인이 노벨라 역의 계단을 내려서고 있었다. 모자 밑에 드러난 흰 머리와 주름진 얼굴로 보아 연세가 족히 구십은 되어 보였다.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는 노인은 아무래도 계단을 내려서는 모습이 젊은 사람들에 비해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체 없이 노인에게도 달려가 팔을 잡고 계단을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내려설 수 있도록 부축을 했다.

  ‘고마운 젊은이구려. 그나저나 어디 짐을 운반해 줄만한 짐꾼을 한명 불러줄 수 있겠소? 그림을 하나 우피치 미술관까지 옮겼으면 한다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차역 안쪽에서 허겁지겁 역무원 복장의 사내 둘이 제법 커다란 사각형의 짐을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무게는 그리 무거워 보이지 않지만 귀중한 물건인양 대단히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들이 분명했다. 누구라도 그것이 캔버스 그림을 단단히 포장한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 볼 수 있었다.

  ‘선생님 택시를 불러드릴까요?’ 역무원이 노인에게 물었다.

  ‘미술관까지는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거리라고 들었다오. 처음 찾아 온 피렌체라서 가능하다면 좀 천천히 걸어가면서 여유를 가져 보았으면 한다오. 누가 이 짐만 날라준다면 말이요? 셈은 넉넉히 하리다.’

  노인이 걷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자 나이 든 역무원이 길 건너편에 모여 있던 짐꾼들 중에서 한 명을 지명해서 불렀다. 호명된 짐꾼이 과일이나 농산물 등을 운반할 때 쓰는 작은 손수레를 끌고 달려왔다.

  ‘신원이 확실하고 이곳의 지리를 잘 아는 인부입니다. 선생님과 미술품을 안전하게 미술관까지 모셔다 드릴 것입니다.’ 라고 말을 마친 역무원은 이번엔 수레에 짐을 싣기를 마친 짐꾼에게도 당부를 마지않았다.

  ‘자네는 우피치에 물품 배달을 여러 번 했었지? 어르신께서는 미술관까지 걸어서 가시고자 하시네. 자네가 어르신과 미술품을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도록 하게. 자네도 알베르토 마스카니(가명) 큐레이터님을 알고 있지? 그 분을 찾아가시는 손님일세. 최선을 다해 모셔주게.’

  짐꾼은 손수레를 밀며 앞장을 섰다. 그리고 수시로 뒤를 살폈다. 노인과의 보폭을 맞추기 위함이었다.

  ‘내 걱정은 마시고 가시게나. 내가 힘에 벅차면 잠시 쉬어가자고 하겠네. 그래 강변길을 따라 가실요량이신가? 아니면 골목길로 가실요량이신가?’

  ‘초행이시라면서 어찌 많이 다녀보신 분처럼 말씀하십니까? 강변길은 곧바로 통하기는 하나 자동차와 사람들이 붐비고, 골목길은 좀 돌아가기는 하나 조용합니다.’

  ‘그렇다면 조용한 길로 가고 싶네.’

  ‘알겠습니다. 제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탈리아 분은 아닌 듯싶은데 어르신은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그렇게 보이셨는가? 생 폴(Saint-Paul-de-Vence)에서 왔다네.’

  ‘생 폴이라면 저 프랑스 남부의.........’

  ‘그렇다네. 프랑스 남쪽의 지중해 연안이지. 생 폴드방스 라고들 부른다네.’

  ‘그렇다면 프랑스 인 이시군요?’

  ‘프랑스 사람이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이탈리아 사람이 아닌 것 분명하네.’

  ‘그러시면 마스카니 큐레이터님 하고는 어떻게 되는 사이십니까? 친척이십니까? 그 분은 조상대대로 이탈리아 가문의 사람이라고 들었으니까...... 혹 외가 쪽 친척이십니까?’

  ‘아닐세. 우리는 전혀...... 아무런 관계도 아닐세. 삼 년 전에 니스의 한 미술관 개관식에서 잠시 만난 것이 전부라네.’

  ‘네에? 설마요? 삼 년 전에 니스 미술관에서 만난 것이 전부인데 지금 이렇게 피렌체까지 일부러 찾아오신 것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그때 우리는 한 미술작품 앞에서 우연히 만나서 그 작품과 당시의 미술사조에 대해서 나름 깊이 있는 이야기를 꽤나 오랜 시간 나누었었지. 헤어질 쯤에서야 그가 우피치 미술관에서 큐레이터 생활을 막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지. 내 평생에 못 이룬 꿈 중에는 분명 우피치 미술관을 한 번도 다녀오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었다네. 아쉽게 헤어지고 난 후에, 한 달쯤인가 지나서 편지를 한 통 받았네. 초대장이었지. 아무 때고 피렌체에 와서 우피치 미술관의 모든 작품을 마음껏 보아도 좋다는 초대장이었지. 바로 달려오고 싶었지만 산다는 것이 어디 그렇게 내 마음대로만 되겠는가?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겨우 이제야 찾아오게 된 것이지.’

  ‘그럼 제가 지금 나르고 있는 이 미술품은 그 니스의 미술관에 전시되었던.......’

  ‘아닐세. 혹시라도 우피치를 가게 된다면 마르카니에게 무엇이라도 선물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근자에 새롭게 한 번 그려 본 것이라네. 마르카니가 기쁘게 받아주고 혹시 우피치에 내걸어서 전시라도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저만치 우피치 미술관의 입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서둘러 몇 걸음 앞서 걸으면서 짐꾼은 혹시라도 노인이 들을까 싶어서 앞만 쳐다보면서 몰래 혼자 중얼 거렸다.

  ‘하이고 영감님. 우피치 미술관이 무슨 동네 벽보판인줄 아세요? 아무 그림이나 낼룸 걸어주게? 아무리 마르카니 큐레이터님하고 번쩍 통하는 사이가 되었다 해도...... 꿈 깨세요. 혹 피카소라면 모르겠는데.......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피카소 닮은 구석이 쥐뿔도 없으시면서...........’

  우피치 미술관 입구는 대단히 번잡했다.

  미술관에 입장하려고 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고, 또 미술관이 있는 이 길은 평소에도 수많은 현지인들이 오고가는 번잡한 도로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도 역시 입구에서 제지를 당했다. 표를 구입하려는 행렬에 일단 먼저 가로막혀 버렸던 것이다. 짐꾼이 관리자에게 다가가 상황을 설명해보지만 그렇다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노인으로부터 큐레이터가 보내준 초청장을 건네받은 짐꾼이 노인과 짐을 한쪽 구석에서 기다리게 해놓고, 다시 관리자에게 다가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한 후에야 겨우 안으로 혼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미술관의 가장 심장부에 있는 사무실로 향했다.

  계단 기둥에 겨우 기대다시피 서있는 노인을 여행자와 관람객들이 툭툭 치면서 지나갔다. 하지만 그 누구도 노인에 대한 배려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무도 이 노인을 알아보지 못했다. 곁에 서 있는 캔버스 포장으로 보아 아마도 이젠 힘에 겨워 붓조차 마음대로 놀리지 못하는 은퇴 시기가 지난 피렌체의 길거리 화가쯤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포장을 풀어놓고 계단에 주저앉아 구걸을 할지도 모른다고들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미술관의 안쪽으로부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맨 앞장서서 달려 온 사람은 틀림없는 알베르토 마스카니 큐레이터였다. 그의 표정은 흡사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어떤 환희와 경이로움에 떨고 있는 표정이었다.

  미술관 앞쪽에 모여 있던 많은 사람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신문과 잡지와 방송에 연일 등장하고 있는 완전히 달라진 우피치 미술관의 위상과 그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젊은 큐레이터를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는데, 지금 그가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는 모습이 범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어서 오십시오. 선생님.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려왔습니다.’

  ‘죽기 전에 우피치의 미술작품을 꼭 보고 싶어서 왔네. 자네의 약속이 여전히 유효한가?’

  ‘그럼요. 우피치 미술관의 모든 것이 선생님 앞에 열려져 있습니다. 오붓이 둘러보고 싶으시다면 우피치의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선생님께만 열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고맙네. 난 다만 나이가 있는 만큼 좀 천천히 느릿느릿 감상해도 좋게 시간적 배려만 있었으면 좋겠네. 가끔 스케치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말일세.’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아닐세. 자네야말로 위대한 미술품들을 돌보아야 하는 항상 바쁜 사람이 아닌가? 이왕 왔으니 혼자 천천히 구경 좀 하다가 조용히 돌아가고자 하네. 오는 김에 내 그림을 하나 선물이라고 가지고 왔네. 어디 우피치의 가장 구석진 자리라도 좋으니 내 그림 하나쯤 걸어 줄 수 있겠는가?’

  ‘아무렴요. 이제야 우피치 미술관이 선생님의 그림을 소장할 수 있게 되었군요. 다행이고 영광입니다.’

  마스카니는 노인의 팔을 부축하고 미술관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을 에워싸고 이들의 움직임과 대화를 엿들었던 사람들의 의아해 하는 표정들이 하나같이 역력했다.

그런 것을 마스카니가 눈치 챘음일까? 발걸음을 잠시 멈춘 마스카니가 고개를 돌려 군중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시간 이후로 우피치 미술관에서 샤갈의 그림을 볼 수 있다고 세상에 알려주세요. 여러분은 지금 마르코 샤갈 선생님을 만나셨던 것입니다.’

 

 

 

샤갈과 영원한 그의 연인 벨라.

 

 

 

  이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어느 날 불쑥 90세 연세의 샤갈이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나타나 자신이 그린 자화상을 기증했다. 파블로 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마르코 샤갈이 직접 자신의 작품을 기증했던 화제의 일이 1976년 실제로 벌어졌었다.

  하지만 나 역시도 우피치 미술관에서 아직 그 작품을 직접 만나 보지는 못했다. 우피치가 보관한 모든 작품이 늘 전시되는 것도 아니고, 순회전시나 복원 수리중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머지않아 복원 공개 될 (바사리 회랑)에 전시될 목록에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피치에 기증된 샤갈의 그림을 찾아냈다.  다음 여행기 (우피치 미술관 관람기)에서 그 샤갈의 그림을 보여드리도록 해야겠다.

 

 

  여전히 빗방울은 오락가락 하고 싸늘하고 세찬 바람결은 옷깃을 세우게 만든다.

  이런 날은......... 딱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제격인 날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피치 미술관에 왔다.

  르네상스의 성지라고 할까?

 

 

 

  우피치 미술관을 관람하고자 한다면 우선 코시모 메디치 1세와 지오르지오 바사리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피치 미술관은 코시모 메디치 1세의 요청에 의해서 당대의 뛰어난 건축가이자 화가이자 미술사학자 이기도 했던 바사리에 의해서 건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시모 1세는 끝내 우피치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피렌체의 실질적 통치자이자  르네상스 운동(문예부흥)에 지대하게 공헌을 한 메디치 가문에는 두 명의 코시모 메디치가 있는데 우피치는 나중의 코시모 메디치에 의해서 바사리가 애초에 관공서 건물로 설게 완공하였다.  이쯤되면 메디치 가문의 이야기를 약간은 설명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메디치 가문의 중요 인물 몇 몇을 거론하지 않고는 이탈리아를, 피렌체를, 르네상스를 이야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미술품의 보고라고 불리는 우피치 미술관에는 아직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장소와 작품들이 무척이나 많이 산재되어 있다.  코시모 1세 메디치는 사망하기 전에 바사리로 하여금 메디치 가문 후손들의 안전을 위하여 약 1km에 이르는 거대한 회랑(출퇴근용 전용 복도)을 만들도록 하였다.  이 회랑의 벽면을 온통 귀중한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초상화 위주)으로 가득 채우도록 하였던 것이다.  우피치 미술관은 2022년 5월 27일에 오랫동안 페쇄되었던 바사리 회랑을 정식으로 다시 문을 열기로 약속을 해왔는데........  코 앞에 그 시기가 다가왔음에도 코로나 19 사태의 여파로 어떻게 될지가 자못 궁금해진다.  전해 오는 일설과 SNS에 따르자면 이미 회랑은 오픈되었고,  피렌체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이미 대단히 중요한 투어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전해지는데........  언제고,  바사리 회랑을 꼭 한 번 보기 위해서라도 피렌체를 한 번은 더 방문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코시모 1세는 왜 굳이 이런 회랑을 필요로 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코시모 1세의 한참이나 앞선 선조 중에서 메디치 가문을 유럽 최고의 가문으로 일으켜 세웠던 로렌초 메디치에게 닥쳤던 비극적인 사건과 연관이 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지다 보니,  다음 순차의  (우피치 미술관 관람기)에서 우피치와 연계된 많은 이야기들을 다시 짚어나가기로 해야만 할 것 같다.

 

 

 

 

 

 

 

 

 

 

---  다음 이야기에서 피렌체 여행은 (우피치 미술관 관람기)로 다시 이어지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피안재.

 

 

 

조르지오 바사리 作 (우라노스의 거세).&nbsp; 피렌체 팔라초 베키오 소장.

 

 

  우라노스는 그리이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우라노스가 있어야만 신화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한다.

  화가 바사리는 장대한 대서사시 그리이스 신화를 이 그림을 통해 펼쳐내기 시작했다.  이 장면의 다음은.......  우피치 미술관에서 어쩌면 가장 유명한 그림이랄 수 있는 보티첼리의 <비너스 탄생>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겠다.

  신과 인간들이 더불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세상이야기........  그것이 바로 (르네상스)다.

  우피치 미술관을 찾아가면.........  사방이 온통 그렇게 르네상스로 가득 채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