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첫날 아침에 우리는
희망과 배반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설레임에 대해서만 말해야 하는데
두려움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산맥을 딛고 오르는 뜨겁고 뭉클한
햇덩이 같은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않고
울음처럼 질펀하게 땅을 적시는
산동네에 내리는 눈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오래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느티나무에 쌓이는
아침 까치 소리를 들었지만
골목길을 둔탁하게 밟고 지나가는
불안한 소리에 대해서도
똑같이 귀 기울여야 했습니다.
새해 첫날 아침
우리는 잠시 많은 것을 덮어두고
푸근하고 편안한 말씀만을
나누어야 하는데
아직은 걱정스런 말들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올해도 새해 아침 첫날
절망과 용기에 대해 이야기 하였습니다.
--- 어느 이의 시집 ‘당신은 누구십니까’ 중에서
매우 낡고 오래된 메모장을 뒤적이다가 참으로 못 쓰는 글씨체로 적어놓은 시를 찾아냈다. 부분적으로는 겨우 되짚어 보아야 할 만큼 휘날리는 필체를 보아하니 틀림없이 내가 적어놓은 <덕담> 이라는 시다.
이렇듯 시를 인용했으면 시를 쓴 작가도 밝혀야 하겠지만, 예전에 내가 알던 그 시인은 현재 정치판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시며 좀 납득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에만 똘똘 뭉쳐서 한쪽 진영만을 극한까지 추켜세우고 계신다. 먼저 떠나보낸 아내를 몹시도 그리워하며 삶의 애환을 노래하던 그 분을 나도 한 때는 무척이나 좋아하고 존경했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정치에 발을 내딛던 순간부터 이제까지의 순수나 고즈넉함은 쓰레기통에 내팽개친 욕망의 화신 모습을 하고 있다. 정치가 ‘어느 이’는 내게서도 한참이나 멀어진 정치판의 진영 논리에 갇힌 꾹두각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시인 어느 이’로 살아가던 시기에 발표한 시집을 가끔씩 꺼내보는 사람이다. 때론 ‘사람이 저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으로, 때론 ‘그래 내가 끝까지 당신의 결말을 지켜보아 주지’ 라고 되 뇌이면서 말이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인용하면서도 작가는 표현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궁금하신 분은 검색을 통해 충분히 쉽게 찾아낼 수 있는 분이다.
금년 새해 첫 날에 그 시인은 무슨 덕담을 주위에 건넸을까? 아마도 '우리측 후보의 지지율은 왜 반등을 안하는 것일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조건 이겨야 하는데...... 지면 여럿 죽어 나자빠 지는거야' 라고 했을것 같다. 그 시인이 지금 시를 쓴다면 그 시에는 무슨 향기가 날까? 혹 정치판 썩은 냄새가 진동하지 않을까?
마음의 덧없음에 슬퍼한 옛사람들은 꿈을 통해 삶의 덧없음을 보았다고 했다.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추스르고 교만하지 않는 보편적인 삶을 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삶의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다른 옛사람은 꿈을 통해서 욕망의 덩어리에다가 차지하고픈 목록들을 하나하나 더하여 각인시켰다고 한다. 같은 마을에서 함께 자라고 같은 학교 같은 스승에게서 함께 배우고 함께 사회생활을 시작하였음에도, 정치판에만 발을 들이고 나면 가치관과 신념만이 다른 것이 아니라 태생적 유전인자까지도 전혀 다른 인물로 돌변하는 학생운동 출신들을 무수히도 많이 겪어 보아왔다. 나 역시도 깊이는 다르겠지만 나름 경험이 있기에 그런 현실에 대한 가슴앓이와 아픔은 더욱 크다.
‘백 년도 못사는 존재들이, 하는 짓은 마치 천 년을 살고도 남을 것처럼 행세를 한다. 오호라 통재로다!’
이정표(里程標).
찬란하게 떠오르는 새해를 바라보면서 나는 마음속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다. 어제와 다를 바가 없었던 똑같은 오늘, 그리고 오늘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내일, 무덤덤한 일상의 반복인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새해 첫 날을 맞이하면서 저마다 마음속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다.
소중한 존재로서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억지로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어제까지의 생활이나 마음가짐이 풍성하지도 만족스럽지도 못했다고 해도, 새해를 맞이하며 적어도 오늘 부터는 어제와 같지 않은, 어제 보다는 나은 미래가 펼쳐지리라는 기대와 소망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를 털고 새로운 오늘과 내일을 맞이하고픈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리라.
이날까지 거듭거듭 무의미했거나 헛수고로 지나쳐버린 이정표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을지라도........ 적어도 오늘 아침에 세운 새로운 이정표만은 먼 훗날 오래도록 기억하고 간직하고픈 행복과 성공의 첫 이정표가 되기를 간절하게 바랄뿐이다. 여행에서 돌아가면 가장 먼저 달력을 바꾸고, 표지에 2021년 이라고 적혀있는 바인더 북을 바꿀 것이다. 들춰보면 빈 여백이 너무나 많고 진한 아쉬움이 군데군데 배어있겠지만........ 그 또한 내가 지나온 발자취며 내 인생인 것을.........
어찌되었던 새 바인더 북에는 어떤 의미로든 금년에는 빼곡이 적어 넣고 기억하고픈 일들로 가득 채워지기를 나는 소망해 본다.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서 새벽같이 숙소를 나왔다.
일출봉으로 향하는 모든 길목마다 몰려든 차량 행렬로 성산 일대는 완전히 교통마비 상태다. 그럼에도 일출봉으로 접근하려는 차량행렬은 완전 정지된 빨간 불만 켜진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데 돌아서 나오는 차량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연일 방송과 안전문자로 이 상황을 예보했음에도 몰려든 저 사람들은 도대체 뭐지?
현지인들과 숙소 주인분의 안내로 지난해도 똑같이 이랬음을 미리 고지 받은 우리는 어제 저녁 ‘모든 행사가 일제히 취소’ 되었다는 사실 확인과 동시에 이런 상황을 충분히 예측했다. 하여 부득불 일출을 꼭 보아야만 하겠다면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팁을 소개 받았었다. 구 도로를 따라 일출봉에서 섭지코지 방향으로 진행하다보면 군데군데 오름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에서 번잡하지 않은 정도의 조금이라도 바닷가와 가까운 오름에 차량이 주차되어 있고 오름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이면 틀림없이 멋진 일출을 볼 수 있는 현지인들만이 알고 있는 명소라는 설명이었다. 일출봉 일대와 해안이 전면 출입통제 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더 멋진 최고의 일출명소가 될 수 있다는 부연설명까지 들은 터였다.
완전 주차장으로 변한 로터리를 돌아서 차량행렬을 사열하는 기분으로 느긋하게 우리는 반대방향으로 나아갔다. 오름마다 우리와 같은 정보를 들은 여행객들이 적지 않게 몰려들고 있다. 붐비면 그냥 통과하면서....... ‘이러다가 죄 다 통과해 버리는 것 아니야’ ‘통과만 하다가 해가 떠올라 버리면 어쩌지’ 하는 은근한 조바심도 느끼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우리가 어제 돌아다며 본 부근에서 딱 마음에 드는 정도의 오름을 만났다. 큰 물메오름 이다.
차에서 내려 카메라를 챙기고 오름에 오르기 시작하는데 아뿔싸........ 여기에도 어김없이 ‘출입통제’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이 아닌가?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로 보아 이미 여러 사람이 올라갔음이요, 우리가 망설이는 사이 또 몇 사람이 옆으로 비켜 올라가고 있지 않은가? 이 같은 상황은 아마도 어디를 가든 똑 같을 것만 같은데......... 우리도 오늘만은 좀 어깃장을 놓아보자.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것이 꼭 어떤 나쁜 짓을 벌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름 코로나 19 예방조치에 입각해 마스크를 꼭 쓰고 사람들과의 직접 접촉을 좀 자제하면 되지 않을까?
하여 우리도 남들처럼 가쁜 호흡 소리를 느끼며 가파른 오름을 올라갔다.
그리고....... 참으로 멋지고 찬란한 새해 일출을 맞이했다.
이제까지의 그 어떤 일출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황홀한 감동의 새해맞이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새해 소망은 빌어야 하지 않을까?’
마눌님 새해 소망이야 내가 단박에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훤히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병환이 깊어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작은 언니가 평안하기를 바랄 것이고, 다음이야 당연히 우리 예쁜 손녀들 태리와 세리가 튼튼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는 것이겠고, 아들과 며느리와 나와 자기 자신이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 꾸려나가는 것이리라. 이걸 다 어떻게 아느냐? 그제 여미지 식물원에서 소망나무에 메모 적어서 걸어놓고 기도하는 것 훔쳐보았으니 알 수밖에. 다음으로 친정과 시댁 식구들의 평안과 행복도 바랄 것이다. 여보야 나도 ‘미 투’여.
그럼 내기 기도하는 새해 소망은 무엇이냐?
‘코로나 19야. 제발 좀 꺼져라. 이젠 떠날 때도 되지 않았니? 나 좀 살자.’
여기에서 ‘살자’는 ‘밥벌이 문제 해결’이 아니라 ‘나 좀 길 떠나게 해주라’라는 의미이다. 여행을 제대로 못하니까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하소연이다. 내 인생에 남은 시간적 여유가 얼마인지를 모르는 판에 오도가도 못 하게 막아놓으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이니? 도대체 언제까지 얼마를 더 기다려야만 하는 거니?
나 참 열심히 살잖니? 실컷 돌아다니려고 열심히 하는 거여. 격리와 제한이 다 뭐니? 숨이 막힐 지경이야. 이제고만 좀 하자. 슬슬 풀어주라.
제주도에 여행 와서 도중에 벌써 다음 유럽여행을 꿈꾸는 이 역마살을 어찌하면 좋겠니? 그건 말이야. 병이야 병. 그것도 구제할 수 없는 중병이야. 그런데...... 나도 알아. 내가 중병을 가진 심각한 환자라는 것을 말이야.
코로나 19 사태가 잦아들고 여행제한과 격리가 해제되면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떠날 것이다.
우리의 첫 비행기 탑승권은 당연히 체코의 프라하 공항이 될 것이다. 오랜 챠밍여사의 버킷 리스트 1위가 부동의 프라하요, 다음이 부다페스트이니까 말이다. 프라하행 항공권 구입은 당연히 불변이다. 그런 다음 부다페스트까지는 기차로 이동할 것이고........ 내 여행의 특성상 짧은 기간 후딱 다니는 것은 안하니까 어디든 연계할 여행지를 찾아야 하는데......... 지정학적 위치상 이탈리아가 되지 않을까? 나야 이미 세 번이나 이탈리아 여행을 했고 챠밍여사도 한 번 했지만, 이 사람이 티비에서 이탈리아만 나오면 한숨을 푹 푹 쉰다. 지난 이탈리아 여행이 너무도 아쉬워 못 견딜 정도란다. 왠지 제대로 느끼지도 즐기지도 못한 이탈리아였단다. 재방문 1순위가 이탈리아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라고 하니....... 동유럽에 연계하기가 딱 이지 싶다. 2년이 되었지만 직전의 마지막 여행이었으니 그나마 여운도 채 아직 남아있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의 두 번째 여행은 작금에 내 버킷 리스트 최상단에 올라있는 프랑스다. 파리에서 한 1주일을 파리지앵으로 살다가 훌쩍 남프랑스 지중해 연안으로 떠나서 프로방스 투어를 하는 게 지금 당장 내가 열망하는 최우선 여행목적지다.
일단 그렇게 각자의 최우선 버킷 리스트 해결로 여행에 대한 오랜 갈증을 해결하고 나면, 세 번째로는 아마도 그리이스로 들어가서 배를 타고 터키로 건너가 카파토키아에서 벌룬에 챠밍여사를 태워주는 여행이 될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특이하면서도 독특한 풍경을 두 발이 성해서 맘껏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우선 해결을 보아야만 하겠다. 그때는 기다려 아직까지 나도 벌룬을 타지 않고 미루어 놓지 않았던가? 혼자 떠난 여행도 미안한데 재미있는 놀이까지 혼자 다 즐길 수는 없었기에 함께하려고 이제껏 미루어 놓았으니 이쯤에서 함께 타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 다음에야 뭐.......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던 바르셀로나 성가족 성당 준공에 맞춰 스페인을 다시 갈 수도 있고, 노틀담 대성당 재건 기념일에 다시 갈 수도 있고......... 시리아나 레바논을 못 가겠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못 가겠나? 외교부가 제재만 하지 않고 허락해 준다면 나는 지구상 어디든지 다 갈 수 있다. 내 두 발로 내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해 나가면서 말이다. 당장 쿠바나 멕시코는 마음 먹기에 달렸겠지만, 먼 남미여행은 상당한 시간과 준비가 필요하기에 막연하게 뒤로 미루어 두고만 있는 실정이 아닌가? 몇 몇 여행 동지나 작은 모임이라도 있으면 좀 더 쉽게 결행해 옮기겠는데 말이다. 아니면 경제적으로 풍부하게 로또라도 당첨이 되든가 말이다. 문제는 내가 로또를 사지도 바라지도 않는다는데 문제의 핵심이 담겨있으니 정말 문제겠지만 말이다.
2022년의 내 새해 소망은 오로지......... ‘나 좀 돌아다니게 해주라’
섬의 모양이 소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우도(牛島)다.
이쯤되면 섬의 여기저기에 쇠말뚝에 매어 풀을 뜯고 있는 소가 몇 마리쯤 보이고, 꼴을 가득 실은 우마차가 지나 갈 법도 하련만 야속하게도 어디에서도 소는 보이지 않는다.
바쁜 세상은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툭하면 한 해가 지나고 또 툭하면 또 한 해가 지나간다. 거기에다가 그 세월이란 녀석이 어찌난 편파적인지 사십대 중반쯤부터 시간을 빨리 돌리기 시작하더니만, 육십줄을 넘기고 보니 아예 모터 엔진을 달아서 쌩쌩 달려간다. 하지만 이것만은 세상 어디에도 하소연 할 곳이 없다.
기준이 없는 세상은 도대체 얼마쯤 가져야 부자인지 가르쳐 주지 않고, 어디쯤 올라서야 출세했는지를 알려 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죽어라 앞 만 보고 달려 갈 뿐이다. 먹어도 먹어도 여전히 배가 고프고, 오르고 도 올라도 정상은 늘 저만치 앞에만 있다.
'도대체 산다는게 무엇이지?'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거여? 아니면 시류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다니고 있는거야?'
'내 삶의 종점은 어디쯤이며, 내가 가진 삶은 어떤 빛깔의 무슨 그림일까?'
그런생각과 그런 느낌들이 쭈빗쭈빗 신경세포를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가 내 영혼까지 점령해 버렸을때, 나를 집어 삼킨것은 거부할 수 없는 불쾌함......... 전율과 공포였다. 그리고 그 깊은 수렁에서 나를 건져내 준것은 다름아닌 바로 여행이었다.
백 년도 못사는 존재인것을 망각한 채, 마치 천 년을 살것처럼...... 모든것을 가지고 이루고 족히 천 년은 누릴것 처럼 착각하며 사는 인생에 종지부를 찍게 만들어 준 것이 여행이었다.
내 인생은 단편 드라마처럼 여러편의 여행으로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처음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훌쩍 떠나고, 많은 시간과 경험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담아서 돌아오면서 첫 여행이야기가 완성되었다. 그런 여행은 두 번째, 세 번째, 열 다섯번째, 이백 스므번째로 이어질 것이다. 모두 다 다른 이야기와 다른 풍경들과 다른 색채들로 말이다. 언젠가 내 인생이 끝난다는 것은 이젠 더 이상 이어나갈 여행이야기가 없다는 뜻이고, 지나간 여행의 기록들이 하나로 꿰어지면 그것이 바로 내 인생인 것이다.
인생도 일상이고 삶의 일부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인생이 삶의 전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삶에 단절되거나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더 열심히 더 알뜰하게 매사에 삶을 잘 단도리 해야만 즐겁게 떠날 수 있는 휴식이거나 재충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에 충실하지 않거나 사간과 삶에 쫓기거나 치어서 산다면 결코 즐거운 여행을 자주 할 수 없을테니까 말이다. 진정으로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열심인 사람은 여행을 충분히 즐길 수가 있으며, 언젠가는 여행이 곧 삶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다.
성산포에서 유람선을 타고 약 15분 걸려 마침내 우도에 닿았다.
들어오고 나가는데 있어서 미리 시간을 정해서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아주 가까운 섬인데도 불구하고 다들 무엇이 그리도 바쁜것일까? 어찌들 서두르는지 이리저리 떠밀리는 것이 이거야 완전 돗떼기 시장에 전쟁이라도 난 모양세다. 급한 사람들 먼저 가시라고 비켜나 주고 싶어도 비켜나 줄 데가 없다. 살짝 불쾌한 마음까지 생겨날 지경이다.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철수 동영상이랑 비슷한 느낌이다.
우도 선착장을 빠져나가려 방파제 길에 올라서려니 글쎄.......... 피식 웃음이 나온다.
김장철 오일장터에 커다란 덤프트럭이 배추를 하나 가득 싣고와서는 장터 한구석에 와르르 쏟아 부었다. 수북하니 배추무더기가 커다란 산처럼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배추가 푸른 개미처럼 살아 움직이더니 삽시간에 어디론가 죄 다 흩어져 버리고 다시 텅 빈 공터만 덩그러니 남은......... 그런 느낌이었다.
방금 유람선이 쏟아부었던 그 많은 사람들과 차량들이 삽시간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썰렁함만이 남았다.
와!!!!! 빠르다.
'우리도 우도를 한 번 건너갔다가 올까? 올레길 1-1 코스를 천천히 돌아보면서 말이야.'
그러면서 우리가 떠올린 것은 이탈리아의 오르비에토와 포루투갈의 오비두스 였다. 도시래야 마을보다 쬐끔 큰 중세시대의 성곽도시를 느릿느릿 산책을 하는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꼭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워낙 작은 도시라 시간 제한에서 벗어나야 하고, 지도를 내팽개 치는 무계획을 갖추어야만 한다. 그야말로 가진 것이라고는 배짱과 시간밖에 없는 우리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그런 도시였다.
어디를 향하던 성문 밖으로 나서지 않으면 언젠가는 중앙 광장에 도달할 수 있으니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도시에 거주하는 현지인 숫자가 지극히 적으며 그나마 대부분이 노인분들이라 마주치면 무조건 방긋 방긋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오랫만에 어릴 때 자라던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다. 화려한 상점가는 없어도 골목마다 빈티지한 아기자기까지 한 기념품점들이 올망졸망 들어서 있고 무척이나 친절하다. 군데군데 우리로 치면 동네 주막같은 소박한 현지인 레스토랑들이 숨어있다.
젊어서는 도회지로 나가서 치열하게 살고, 은퇴하면 한적한 곳에서 고단한 삶을 쉬게하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 보면서 회자정리를 하기에......... 딱 그런 곳이었다.
그럴 때 떠오르는 단어가......... '슬로우 씨티'와 '슬로우 라이프' 이다. 우리는 우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느림의 미학' '여백이 있는 삶' 등을 떠올렸다.
자연과 인간의 삶이 좀 더 조화롭고 오래오래 지속 가능하도록 이제부터라도 노력을 하자는 슬로우 씨티 운동에서 말하는 '느림(Slow)'은 단순히 '빠름(Fast)'의 반대 의미가 아니며, 그것은 소중한 존재로서의 인간성을 회복하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자연과 환경과 시대의 변화를 슬기롭게 조화시키면서 조금은 여유롭고 느긋하게 살아보자는 의미의 사회 계몽운동이다. 무한 속도의 디지털 세상에서의 삶에서 비켜나 조금은 여유로운 아날로그적 삶을 추구해 보자는 운동이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개념으로 느리게 살자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분이라도 혹은 가끔씩이라도 주변을 돌아보기도 하고 자신을 되돌아 보기도 하면서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를 잃지 않도록 하자는 운동인 것이다.
옆집의 가정 대소사는 물론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서로 알면서 지내던 우리가, 불과 몇 십년이 지나온 사이에 이제는 아파트 앞집에 노인이 숨을 거둔지 한 달이 지나도 모르는 시대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변화와 발전이 좋은것이라 해도, 사람에게는........ 사람이기에 사람만이 가지고 누릴 수 있는 '정' '그리움' '나눔' '배려' 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것들을 잃어버리지 말자는 것이다.
'열 한시에 딸래미 학원 선생님 면담, 열 두시에 학부형 모임, 병원 진료가 점심 시간이니까 넉넉히 두 시로 예약해 두고........ 학원은 차를 가지고 가는게 편한데 병원은 항상 주차장이 부족하니까 어쩐다? 마트에 들려서 시장을 봐야 저녁 준비를 하는데....... 배달 시킬까?' 라고까지 해야 한다면....... 벌서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그런 정도가 지극히 보편 타당한 선에서 벌어지는게 우리네의 일상이 아닌가?
'열 한시에 학원 선생님 뵈어야 하고..... 모임이 있고...... 병원 진료가 있고....... 시장 봐야 하네......... 좀 일찍 나가서 걸어가지 뭐. 학원에서 약속장소까지는 거리가 좀 있으니까 걷다가 버스를 타도 되겠고....... 나오면서 근처 재래시장에서 미리 장을 보고....... 작은 배낭을 메는게 좋겠다. 병원에서 집까지는 좀 거리가 있지만 오다가 근처 화원이라도 둘러보려면 걷는데 좋겠어. 돌아와서 저녁 준비하다보면 식구들 올거고.......' 라는 후자의 삶을 우리네 생활 속에서 되찾아 보자는 이야기인 것이다.
'슬로우 라이프'는 말처럼 마냥 느려서는 절대로 이루어 지지 못한다. 택시를 탈 거리와 시간을 걸어서 가려면 더 부지런해야만 가능하다. 밀키트를 사다가 전자렌지나 오븐 하나면 해결되는 것을, 사다가 다듬고 씻어서 삶고 양념을 하고 다시 볶거나 끓이려면 몇 배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진다. 그럼에도 '느린 생활' '여유로운 생각' '여백이 있는 사고와 생활'이 그립고 해보자는 데에는........ 어느 순간 우리에게서 떠나간 그 '느림의 미학'이 더 없이 그립고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상황이 꼭 온다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순리라는 것이 늘 그렇듯이.......... 아마도 그런 것들이 몹시도 그리워 질 상황이 되면........ 대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시점들에 놓이게 된 것이라는 냉혹한 사실 때문인 것이다.
비싼것, 귀한것이 아니라 생각했지만..........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만 말이다. 바라기는......... 이제부터라도 더 늦기전에 하나씩 하나씩 되찾는 삶을 살아보자.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살다보면 아무리 헤아려 보려고 해도 헤아려 지지 않거나 꿈에서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일들을 종종 경험해 볼 때가 있다. 새해 첫 날 우리가 막 우도에 올라섰을 때 그런 일이 또 다시 우리 앞에 벌어졌다.
여객선에서 쏟아낸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포구는 썰렁 그 자체였다. 더러는 마을버스를 타러 뛰어 갔고, 대부분은 앙증맞은 우도의 명물 스쿠터를 타러 대여점으로 쫓아들 갔던 것이다. 이어서 우도의 선착장 주변으로 형형색색의 스쿠터들이 쏜살처럼 달려가는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풍경과 바쁜 움직임은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먼 남의 일이었다.
어찌되었거나 우리는 무사히 우도에 도착했다. 이제 오늘 하루 우리에게 부여된 사명은....... 종일토록 죽어라 걷는것 뿐이었다. 성산포로 나가는 마지막 배편 시간까지만 되돌아 오면 되는 것이다. 가다가 쉬다가 천천히 그냥 온종일 산책이나 실컷 하려고 찾아 온 우도였으니 말이다.
해안가 길을 따라 걷는데, 이거야 원......... 우리가 스쿠터들의 길을 가로막는 것인지 스쿠터가 올레길을 무단 점령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무리 눈을 씻고 둘러보아도 지금 우리가 가는 방향으로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은 달랑 우리뿐이 아닌가? 타인의 눈총을 의식한다면 아무래도 돌아가서 우리도 스쿠터를 하나 빌려야만 할까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봤자 이미 걷기로 작정하고 나선 챠밍여사는 요지부동 벌써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다.
그때 문득 나의 뇌리를 스쳐가는 노랫말이 있었다. 뜬금없이 스쳐지나는 옛 추억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냥 아무 의미없이 혼자 흥어거리듯이 노래를 읖조려 보았다.
힘들게 보낸 나의 하루에
짧은 입맞춤을 해주던 사람
언젠가 서로가 더 먼 곳을 보며
결국에 헤어질 것을 알았지만
너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
나를 어렵게 만드는 얘기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너를 잊겠다는 거짓말을 두고 돌아오긴 했지만
언제 오더라도 너만을 기다리고 싶어
다시 처음으로 모든 걸 되돌리고 싶어
이제는 어디로 나는 어디로
아직 너의 그 고백들은 선한데
너를 닮아주었던 장미꽃도 한 사람을 위한 마음도
모두 잊겠다는 거짓말을 두고 돌아오긴 했지만
너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
나를 어렵게 만드는 얘기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너를 잊겠다는 거짓말을 두고 돌아오긴 했지만
언제 오더라도 너만을 기다리고 싶어
다시 처음으로 모든 걸 되돌리고 싶어
이제는 어디로 나는 어디로
아직 너의 그 고백들은 선한데
너를 닮아주었던 장미꽃도 한 사람을 위한 마음도
모두 잊겠다는 거짓말을 두고 돌아오긴 했지만
이승환과 오태호가 '이오공감'을 결성하고 1992년에 발표한 첫 앨범에서 타이틀곡으로 삼았던 <한사람을 위한 마음> 이란 곡이다. 우리가 막 서른을 넘었을 즈음이자 아들 짱구가 유치원을 다니기 전후로 그야말로 캠핑여행의 광품에 휩쓸려 살던 시기였다. 프라이드에 온갖 캠핑장비를 빼곡히 싣고는 장소불문 계절불문 날씨불문으로 온 대한민국을 마구 쑤시며 다니던 시절이었다. 타프에 매어달아 논 코베아 가스램프의 고혹스런 자태와 운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흔치 않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여행을 떠날 때면 레코드 가계에 들려서 차에서 들을 카셑트 테이프를 매번 사고는 했는데, 그 시기에 접한 가장 대표적인 앨범이 이오공감의 <한사람을 위한 마음>과 이소라의 <처음느낌 그대로> 였다. 에밀루 해리스, 조르주 무스타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가 늘 우리 주위에서 노래를 불러 주었었다.
내가 노래를 중얼거리자 챠밍 여사도 다가오면서 함께 흥얼 거린다.
이 노래의 하일라이트는 당연히 "왜 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나" 부분이다. 다른 국내 음악의 '머피으 법칙'과는 다른 느낌과 다른 뉘앙스로 살며시 다가온다. 왜? 도대체 왜?
얼씨구? 웬일인지 챠밍여사의 입에서 이오공감에 대한 찬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오태호까지.....
그때까지도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
어쩌면 느닷없이 떠오른 이 노랫말이 결코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알 수가 없었다.
차량이 주로 다니는 올레길 1-1 코스가 마을 안쪽 언덕으로 향하는 갈래길에서 우리는 가던길 그대로 해안도로쪽으로 접어들려는데 길모퉁이에 파란 커피숖이 눈에 들어 온다. 젊은 여행객들이 몰려드는데 문어빵으로 널리 알려진 우도 명소쯤 된다고 알려준다.
산토리니 여행중에 아메리카노 한 잔에다가 문어빵 하나씩 먹어 본다고 여기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은 엉성해 보이지만 가벼운듯 상큼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잠시 찬바람을 피하고 창가로 투과해 들어오는 햇쌀의 따사로움을 만끽해 본다. 커피는 좀 밍밍한 듯 너무 연하고, 문어빵은 역시나 젊은이들의 주점부리에 딱이다 라는 느낌이다. 이럴때 우리에게는 달지도 무엇이 잔뜩 들지도 않은 그냥 유럽식 아침 식사대용 담백한 빵덩어리가 따스하며 구수한 향기를 품고 있으면 딱일텐데 말이다.
그때였다. 챠밍여사의 핸디폰 벨이 울렸다.
작은 처형네 조카에게서 온 전화였다. 순간 불현듯 훅 하고 스쳐지나가는 어떤 불안감........... 슬픈 예감.......
'이모. 엄마가 돌아가실것 같애. 이모를 찾아.........'
그리고는 동영상 통화의 영상에 창백하게 석고처럼 굳어있는 표정의 처형 모습이 나타났다.
딱 거기까지 였다.
우도 산책도 제주도 여행도 딱 거기까지였다.
밖으로 뛰쳐나온 챠밍여사는 땅바닥에 주저 않았고 대성통곡이 이어졌다. 일시정지........ 세상은 여전히 변함이 없는데........ 우리의 움직임과 행동만이 그대로 멈춰 서 버리고 만 것이다.
'집에 가자.'
챠밍여사를 잡아 세우고 선착장으로 향한다.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발걸음이 빨라지는 마눌님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쫄래쫄래 뒤를 쫓아간다. 여객선 안에서 이 갑작스런 사태를 어떻게 대처하고 타개하여야 하는지 골똘히 생각해 보지만......... 상황이 상황이고 때가 때인지라 해답이 떠오르지를 않는다.
오늘이 1월 1일로 온국민의 국가 공휴일이요, 내일이 일요일이다. 대략난감일 뿐더러 진퇴양난이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나?'
여객터미널과 여러 여행사에 연락을 취해 보지만 어느 한 곳에서도 연락이 닿지를 않는다. 그저 인터넷 고객요청 창구에 글을 남겨 놓으라는 메세지 뿐이다. 서둘러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성산포에 들려서도 또 다시 글을 올렸다. 하지만 어떤 반응도 없다. 어떤 여행사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사람만이라도 먼저 가려고 인터넷 검색으로 항공권을 알아보니 연휴기간 완전 매진이다.
차를 달려 곧장 제주여객터미널로 향했다. 간이 매점 한 군데만 열려있고 여객 터미널 자체가 거의 폐쇄 상태다. 실례를 무릅쓰고 관리실을 찾으니, 자신들은 선적과 운송객 출입통제만 할 뿐 다른 업무에 대해서는 권한이 없다는 답변뿐이다. 상황을 설명해도....... 시기가 시기인만큼 연휴가 끝나고 정상출근이 이우러지면 그때 어떤 조치들이 가능하겠다는 답변만 되돌아 온다.
헤엄을 쳐서 바다를 건너지 않는 한....... 우리는 그만 제주도에 갇혀 버렸다.
상황을 직시한 챠밍여사는 점점 허물어져 갔고 집으로 가는 길은 점점 요원해져만 갔다.
한참을 텅 빈 대합실에 앉아서 챠밍여사가 정신을 차리기를 기다렸다가 물에 빠져 썩은 새끼줄이라도 붙잡아 본다는 생각으로 가까운 해양경찰소에라도 들러보려 주차장으로 나섰는데...... 주차장 저만치 공무원 근무복 차림으로 지나가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를 차에 태워놓고 무작정 쫓아갔다. 무엇을 어저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냥 누구에게라도 하소연이라도 해야만 직성이 풀릴것 같아서 였다.
우리 보다는 좀 젊은 중년의 남자가 허겁지겁 쫓아오는 나를 돌아다 본다.
'실례인것은 알지만 지금 제 상황이 하도 딱해서 그러는데.......' 거두절미하고 요지를 먼저 이야기 한 후에, 그사람의 표정을 살펴가며 장황하게 우리가 처한 상황과 우리에게 필요한 도움에 대해서 마구마구 쏘아 붓듯이 늘어 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제 소관이 아니네요' ' 잘 모르겠네요' 하고 지나가도 전혀 원망을 할 수 없는 상황에........ 그분이 끝까지 내 하소연을 들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슬픈 예감은 이번에도 영락없이 들어 맞았지만....... 그 와중에 불현듯 솟아나는 어떤 희망의 빛........
장황한 내 설명은 상당히 길었으리라. 그런데 그 분은 내 말을 중간에 자르지도 않고 모두 들어 주었다.
'어디 어디에 문의해 보셨나요? 당연히 그런 급박한 상황이라면 이런 저런 절차에 따르시면 방법이 있을텐데요.'
'말씀하신 방법들은 이미 모두 해 보았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신정연휴가 끝나고 월요일에 정상출근을 해야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답을 하네요. 사람이라도 빠져 나가보려 했는데 비행기표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초면에 죄송하지만........ 어떻게든 도움을 좀 받고 싶습니다.'
'새해 첫 날 여행 도중에 모든걸 포기하고 돌아가시려는 딱한 상황이야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만 해당부서들이 모두 불통이라면 마땅한 타개책이.........'
그분의 표정이 모든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당장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도 고마웠다. 이 답답한 심정을 토할 수 있어서, 그리고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어서 고마울 수 밖에 없었다.
그분의 크나 큰 배려에 감사하고 돌아서려는데 가던 길을 가시던 그분이 돌아보면 이렇게 말했다.
'전화번호를 하나 알려 드릴께요. 자신할 수는 없지만 저 보다는 손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것입니다. 저에게 하셨듯이 상황 설명을 소상하게 해 보세요. 혹시 누가 가르쳐 주었느냐고 물으면........ 퇴근하던 사람이 지나가면서 가르쳐 주더라고 해 보세요.' 나는 얼른 불러주는 번호를 받아 적었다.
고마운 분이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자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짜고짜 내 상황을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길어졌음인지 이 여성분이 중간에 자르면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지 그랬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이미 다 해보았는데 전혀 해결 기미가 없다고 하자...... 그려면 자신으로서도 달리 방법이 없는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체념의 늪에 빠져 허우덕 거리며 끊으려는데 불쑥 들려 오는 말......... '이건 사무실 저의 개인 업무 전화인데 이 번호를 어떻게 아셨어요?' 하시기에 '제가 상황이 하도 딱해서 지나가는 어떤 분을 붙잡고 하소연을 했는데....... 퇴근하던 분이시라고 한 것 같았어요'
전화기 속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찍혀 있는 번호가 손님 전화번호가 맞나요? 이 번호로 걸면 다시 통화가 연결되나요? 잠시 뒤에 제쪽에서 다시 전화 드리도록 할께요.'
전화가 끊겼다. 그 여성분이 마지막에 보내준 이야기가 거듭거듭 머리에 맴돌기 시작했다. 저쪽에서 다시 전화를 걸어준다는 말이 무슨 뜻이겠는가?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차로 돌아가서 상황 설명을 하고 챠밍여사를 안정시키려고 애썼다. 희망이 보인다고 힘내라고 말이다.
몇 분이 지나서 벨이 울렸다.
'제주도에서 나갈 수 있게 해드릴 수는 있겠는데..... 제 권한 밖의 부분이 조금 있어서 상황에 따라 금전적으로 약간 손해가 날지도 모르겠네요.'
절망이 희망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꼼짝없이 갇혔던 제주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 생긴것이다. 섬이라는 아주 특수한 환경에서 벗어나게만 된다면 그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무엇이든 다 해결할 수가 있다.
'저희가 가진 예약분을 모두 포기하고서라도 일단 육지로 나갈 수만 있다면 하고 바라고 있던 상황입니다.'
'바로 그부분 인데요. 여행사나 관련부서가 다 휴가중이라 제가 가진 권한으로는 해결에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배편 운항계획을 살펴 본 결과로 새로운 예약으로 수정하면 내일 새벽에 출항하는 배에는 타시게 해드릴 수 있겠습니다.'
'나갈 수만 있다면 기존 계약은 포기하고 새로 예약을 하겠습니다.'
'그러시면 기존 계약을 취소한것으로 무시하고 새로운 계약으로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계약 취소에서 차량부분은 제 직권으로 취소와 새로운 예약이 가능하겠기에 최소한의 수수료 공제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곧바로 환급이 될것입니다. 다만 두 분의 승선권에 대한 권한은 제가 갖지 못해서 일단 새로운 두 사람의 승선권을 구매하신 후에, 제가 여행사측에 알림을 넣어놓고 휴가 후에 여행사측에서 양해가 있으면 환급이 될것이고, 만약 여행사가 취소 사유에도 불구하고 환급을 거절한다면 감수 하실 수 밖에 없겠습니다.'
참으로 친절하고 사려깊은 배려가 묻어나는 안내와 조처였다.
모든것을 포기하려고 마음먹었던 처지에....... 예약 운송비의 대부분이 차량 운송비이지 사람 운송비는 얼마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서 챠밍여사 핸디폰에 돈이 들어왔다는 안내 문자가........ 챠량 선박운송비에서 1만원 정도 공제된 금액이 환급되었다.
'환급확인 되셨으면 이제 다시 새로운 예약을 하겠습니다. 차량번호와 두 분 인적사항은 앞 전의 예약과 동일하신 거지요? 예약 마쳤습니다. 안내 문자가 곧 핸디폰으로 전송될 것입니다. 내일 새벽 선박편에 두 사람과 차량이 승선할 수 있게 조치해 놓았습니다. 제가 돈을 수임할 권한이 없어서 현장 결제로 처리해 놓았습니다. 조금 빠르게 항만터미널에 도착하셔서 관계자에게 문자를 보내드리면 현장에서 대금 결제가 이루어 지도록 조치해 놓았습니다. 이젠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큰 일을 당하셨는데 집까지 조심해서 무사히 돌아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 내가 한 것이 아니라 그 여성분과 주차장에서 만난 퇴근하던 은인이 해 주신것인데 오히려 나에게 수고했다고 위로를 보내 주신다. 그리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툭 끊어버리신다. 끝가지 전해오는 상대에 대한 깊은 배려가 느껴졌다.
무엇인가가 가슴을 치고 올라오면서 눈물이 핑 돈다.
차를 몰고 펜션으로 돌아오면서 한참동안 아무말도 없이 무거운 침묵에 젖어있다가 챠밍여사가 입을 열었다.
'참 고마운 분들이다. 그치? 저분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난 방금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우리 여행엔 참 고마운 분들이 유독 많이 등장하는것 같아. 복 받은 거지? 시칠리아 아주머니도 그랬고........'
참 신기한 일이다. 나도 지금 지난 여행속에서 만났던 고마운 분들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오늘부터는 퇴근하는 남자랑 목소리만 들려준 여성분을 새롭게 추가하여야만 하겠다.
시내버스에 올라타고 환전을 미처 하지못해 당황하던 차에 선뜻 버스요금을 대신 내주던 조지아 트빌리시의 할머니, 팔레르모에서 우리가 잘못된 예약으로 곤란한 지경에 빠졌을 때 약속에 가던 중에도 20분 이상을 여기저기 전화하면서 애를 써준 멋진 젊은이, 택시가 보이지 않아 길을 여쭈어 봤을 뿐인데 대통령이 방문하는 행사때문에 도심이 통제되었다면서 한참이나 먼 길을 안내를 넘어서 데려다 주고 끝가지 택시를 잡아주던 학교 선생님 기풍의 아줌마 등등 고비 때마다 참 많은 분들의 친절과 배려를 받으면서 이제까지 세상 밖으로 잘 쏘다니고 있다. 그분들 덕분에 우리는 아무런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아무때나 당당하게 어디로든지 여행을 또 떠날 수 있는 것이리라. 또 만날 인연들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날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새벽에 짐을 챙기고 사용한 숙소 정리는 나름으로 해 놓고 나서 서둘러 여객터미널로 향했다. 항만 담당자에게 예약 문자를 보여주고 옆 사무실로 안내되어 결재를 마쳤다.
차량을 선적하고 선실에 들어서니 비로소 마음이 놓이고 긴장이 풀렸다. 배가 이안되어 제주도를 떠나고 있다고 느껴질 즈음에 살펴보니 챠밍여사는 지쳤음인지 스르르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럴려고 제주도를 찾아 온 것이 아니었는데?
다행히 이렇게 제주도는 떠나게 되었는데....... 우리가 갈때 까지만이라도 처형이 버텨주셔야 하는데........ 언니를 직접 대하지 못하고 혹시라도 이대로 떠나버리시면 이 사람 그 후유증 한참 갈텐데..........
잠든 모습을 두고서 밖으로 나와 갑판에 선다.
멀어지는 제주도가 보이고 막 떠오르는 일출 전경이 시야게 가득 찬다. 상황이야 어찌되었던 어제 보았던 새해 첫날의 일출보다 훨씬 더 멋짓 광경이 펼쳐친다.
이제 여행은 어찌되었던 마쳤다. 서둘러서 무조건 집에까지 빨리 가야만 한다.
무지하게 달렸음에도 교통위반 통지서가 하나도 날라오지 않았다.
이승에서의 그 어떤 아쉬움이 아직도 간절하게 남아 있었음인지 처형은 숨결을 유지하고 계셨다.
챠밍여사가 도착하자 어떤 영문인지 눈을 뜨고 막내 동생을 알아 보기까지 하신다.
다음날 낮에 처형이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마지막 임종은 막내동생인 챠밍여사가 지켰다.
살아서는 장기기증을 하셨고, 죽어서는 의사선생님의 길을 걷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신을 기증하시고 떠나셨다. 위의 큰처형도 장기기증을 하셨고 이다음에 돌아가시면 시신기증 신청을 가장 먼저 해놓으셨다. 구정에 이런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동영상이 YTN 방송을 통해 종일토록 방영이 되었다.
삶과 죽음의 길은
여기에 있으매 머뭇거리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하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리저리 떨어질 잎같이
한 가지에 나고도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아아, 극락세계에서 만날 나
도를 닦아 기다리겠노라
짧고 아쉬웠던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다시 (르네상스 이야기)로 되돌아 가야하겠습니다.
언젠가..... 다시 제주도를 찾아 갈 기회가 생기겠지요.
아마도 확실하기는........ 유럽이 좀 실증난 후에나 가능한 일이 되겠지만 말입니다.
-- 다음 이야기는 이탈리아 피렌체로 떠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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