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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걸어서 제주(濟州島) 속으로' <4>

by 피안재 2022. 1. 30.

 

 

 

 

 

 

 

 

 

 

 

 

 

 

 

 

  많은 현대인들 중에는 적지않은 숫자가 홀로 있을 때에도 타인을 의식하여, 혹시나 누군가의 시선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여 어느정도 행동거지에 제한을 받고 있다고 한다. 자유의지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잘 제도화된 세상에 살면서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전혀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들이 거듭 반복되어 일상이 되어버린다면, 그런 것을 병이라고 까지 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바람직한 현상이라거나 온당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원치 않는 마음의 병이 신독(愼獨)에 이르면 수기(修己) 라는 것이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된다’는 옛 성현들의 가르침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개개인의 지극히 은밀하고도 드러내고 싶지 않아 마음속에 새겨 놓은 가치관이나 사소한 욕망까지도 타인의 시선에 압도당하고, 혹시나 들춰지면 전혀 예측할 수도 없었던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스스로 옭아매지야 않았겠지만, 우리는 은연중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에 에워싸여 압도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유의지로만 당당하게 걸어가는 삶....... 그런 삶이 가능할까?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당신이 가로막고 서있는 햇빛이요. 그러니 대왕이시여. 제발 좀 비켜서 주시오.’ 라고 소원을 들어주겠노라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당신의 그림자나 치워달라던 디오게네스는 진정한 자유인이었을까?  공초 오상순 선생이나 중광 스님이나 시인 이상 선생이나 화가 이중섭 선생은 자유인이었을까? 어디에 예속되지 않으셨으니 영혼들이야 자유로울 수는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왜 하나 같이 자유의지로 살아간 사람들은 대부분 궁색한 모습일까?

  아침 산책길을 나서면서 오늘의 스케줄을 구상하던 중에 이번 여행에서 꼭 한번 들려보고 싶었던 장소를 생각하다보니 문득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자유인인가? 자유의지로 살아가고 있는가?(점 점 두통이 엄습하기 시작한다. 식전 댓바람부터 왜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지? 이럴려고 제주도까지 온 것이 아닌데?)

  아무래도 오늘은 <김영갑 갤러리>를 들러야만 하겠다. 가보면 뭔가 깨닫는것이 생기겠지.

  아주 오래전에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 <아메리칸 퀼트>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삶을 하나의 아주 커다란 무늬(벽화)라고 생각해 봐. 행복한 순간과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 모여서 정교한 무늬들이 양탄자에 수를 놓듯이 마침내 커다란 그림이 완성되는 거야. 그 그림이 너의 삶이되고 또 나의 삶인 것이지. 지금 흘리는 눈물과 이 순간의 시련과 고통도 그 큰 그림을 이루는 하나의 소재이며 재료인 것이야. 기쁨과 행복의 색채가 더 많이 수놓게 하거나 어둡고 슬픈 색채가 더 많이 수놓이게 하는 것은 오로지 너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야. 이 순간은 그저 하나의 작은 과정이자 한 조각의 무늬에 지나지 않아. 언젠가 우리가 삶의 끝자락에 서게 되었을 때, 네가 기뻐할 수 있는 너의 큰 그림이 완성되기를 바랄게.’

 

  대평포구 인근으로 아침 산책을 나왔다.

  하늘은 온통 흐리지만 곧 개일 것 같은 눈치가 쬐끔 엿보이는 옅은 구름밭이다. 거기에다 바다도 잔잔하고 그 매섭던 바람이 오늘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틀 동안 올레길 트래킹도 못하고 추위와 세찬 바람에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스케줄을 꿰맞추느라 나름 애를 먹었었는데 이거........ 오늘 아침 날씨 예감이 참 좋다. 곧 파란 제주 하늘을 만날 것만 같다.

무심하게 산책을 즐기고 있는데 언덕위의 한 카페에 벌써부터 손님 여러 명이 몰려들고 있다. 여간해서 TV드라마를 보지 않는 편이라 몰랐는데 모 드라마 촬영 장소였단다.

  남들처럼 우리도 모처럼 모닝커피를 해변 카페에서 한 잔 마셔볼까 했더니만 챠밍여사가 옷깃을 잡아끈다.

  ‘방금 나오기 전에 모닝커피 마셨잖아. 카페에 들어가 보고 싶기는 한데..... 이런데서는 둘이 들어가 커피 한 잔 시키고 있으면 눈치 보여서 안돼. 또 어차피 펜션 돌아가면 아침 먹고 나서 또 커피 마실 거 아냐? 후식으로 커피 안마실거면 들어가 보든가?’

  허 참. 맞기는 맞는 말이긴 한데....... 커피가 우리에게는 기호식품이 아니라 거의 음식이다.

  새벽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커피를 마시는 일이다. 그것도 웬만한 텀블러 크기를 능가하는 커다란 머그잔에 각자 한 잔씩이다. 피곤한 아침이거나 쉬는 날이면 연거푸 두 잔을 즐겨 마시기도 한다. 그러면 챠밍여사는 정량이 채워진 것이지만, 나는 잠들기 전까지 대충 머그잔으로 다섯 여섯 잔을 기본으로 마신다. 현장이나 외부 약속에서 마시는 커피는 별도로 셈에 포함되지 않는다. 커피를 엄청이나 즐기는 편이다. 주로 인스턴트커피를 즐기면서도 아내는 구수한 풍미가 더한 맥심 애호가이고, 나는 좀 더 깔끔한 쵸이스가 좋다. 쉬는 날은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내려놓고는 하루 종일 식탁을 오가면서 마시고 또 마셔댄다.

  안덕면의 대평포구 해안에 많이 정이 들었는데........ 오늘은 이곳을 떠나 성산면으로 숙소를 옮기는 날이다.

  제주도 여행을 오면 항상 제주권이냐 서귀포권이냐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여행지가 서귀포 쪽에 치우쳐 있다고 쳐서 주로 대부분의 일정을 서귀포 중심으로 숙소를 정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 새벽의 일정 때문에 제주에서 마지막 일박을 그동안 해왔었다. 그런데 이번에 서귀포 일정을 절반으로 나누어 반은 서쪽 안덕면과 반은 동쪽 성산면으로 정했다. 결과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앞으로도 제주도에 오게 되면 그렇게 골라 선택을 할 것 같다. 또 안덕면의 펜션 또한 다시 찾고 싶을 만큼 모든 면에서 가성비를 따져보면 매우 우수한 편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숙소에서 샌드위치와 커피와 과일로 아침을 마치고 짐을 싸고 나름 정리정돈과 청소를 마치고 체크아웃을 한다.

 

 

 

 

 

 

 

 

 

 

 

 

 

 

 

 

 

  ‘도대체 저곳이 어디지?’

  ‘어디에선가 보기는 봤었는데....... 어딘가 제주도 같지가 않잖아?’

  어떻게 생각하자면 우리가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빼어난 경치의 제주도 보다 더 아름다운 제주도의 풍광이 그의 사진속에 담겨있다.

  시골 분교를 개조한 그의 미술관은 예사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대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 미로와도 같은 돌탑 군락지가 나오고 야생초와 덤불 숲 위로 조각가 김숙자 선생의 토우들이 올망졸망 놓여 져 있다. 결코 흔치 않은 분위기에 약간은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잠시 지나면서 누군가 한 사람이 살다간 흔적과 그의 꿈과 정성스런 땀이 이 정원을 모두 손수 가꾸었노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쉬이 어떤 잔잔한 감동과 함께 표현하기 어려운 평온함이 찾아들 것이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더욱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스산함을 넘어 애잔함이 낯선 여행자의 폐부를 그대로 관통해 지나간다.

 

 

 

 

 

 

 

 

 

 

 

 

 

 

 

 

 

 

 눈으로 보아도 보이지 않고, 귀로 들어도 들리지 않고,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것. 형상도 없는데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그 무엇이 중산간 광활한 초원에 존재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것은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그 무엇이다. 그것을 깨닫기 위해 나는 중산간을 떠나지 못한다. 안개가 일순간에 섬을 뒤덮는다. 하늘도, 바다도, 오름도, 초원도 없어진다. 대지의 호흡을 느낀다. 풀꽃 향기에 가슴이 뛴다. 살아 있다는 기쁨에 감사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도, 끼니 걱정도 사라진다.”

                                                                            -- 김영갑作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중에서.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사무치는 외로움.........

  진한 페이소스(pathos)가 그가 남긴 사진마다 절실하리만치 묻어난다.

  한라산 자락 중턱에 머물면서 제주의 자연에 파묻혀 자유로운 영혼의 삶을 살고자 추구했던 고인이었지만 그의 육신은 고달픔과 배고픔에서 한시도 자유롭지 못했다. 카메라 필름을 구입할 돈이 없어서 전전긍긍해야만 했던, 어쩌면 참으로 비루한 순간들의 연속이 그의 삶이 아니었을까?

  그는 헤어날 수 없는 외로움과 벗어날 수 없는 가난과 굶주림,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간 속을 살다가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런 그가 떠나고 나서야 나는 그런 사람이 이곳에 한동안 살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는 왜 그를 둘러싼 굴레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을까?

  그가 이승에 기억으로 흔적으로 남기고자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가 지금 여기에 찾아 온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과연 무엇일까?

 

 

  

 

 

 

 

 

 

 

 

 

 

 

 

 

 

 

 

 

 

 

  하늘에서 내려 온 선녀에게 홀딱 반한 용왕신의 막내아들에게 지극정성을 다해 100일 치성을 드리고 나면 혼인을 허락해 주겠다는 옥황상제의 하교가 내려졌다. 막내아들은 치성을 다했지만 이를 부족하다고 여긴 옥황상제는 선녀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슬픔에 빠진 막내아들은 섭지코지의 바닷가에서 선녀가 다시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다가 끝내는 이루지 못한 사랑의 설음을 떨쳐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선 채로 돌이 되어 버렸다. 섭지코지 바닷가 바위벼랑에 우뚝 솟아나온 선돌에 서린 전설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틋함이 서렸음인지,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이 선돌 앞에서 사랑을 맹세하고 혼인을 하면 그 자녀가 빼어난 인재로 성장한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대목에서 쉽게 간구할 수 없는 하나의 사실이 드러난다.

  남성 중심의 유교사상에 깊게 뿌리를 둔 우리나라의 민담에 나오는 망부석은 99%가 여성이 돌아오지 않는 남성을 기다리자 지쳐서 돌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어쩌자고 섭지코지의 망부석은 남성이 여성을 기다리다 돌리 되었다는 결코 흔치않은 사연을 담고 있어서 특이하다. 혹 선녀를 여성으로 치지 않았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용왕의 아들은 그냥 평범한 남자였다는 말인가?

  하여간...... 옛날에는 뻥이 심한 사람들이 많이 살았었나 보다.

 

 

 

 

 

 

섭지코지 해안 절벽과 선돌과 등대

 

 

 

 

 

 

  제주도의 동쪽 해안을 달리다 보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우리 시선 가득 채워진다. 우리에게 이미 너무나 익숙해진 일출봉의 풍경이지만 보는 날씨와 계절과 시선의 각도에 따라 제각각의 빼어난 정경을 연출해 내는 정말로 황홀하리만치 멋진 장소라 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일출봉에 올라 일출이나 일몰을 보는 것도 나름 일품이기야 하겠지만, 아무리 그렇다해도 일출봉의 절경의 으뜸은 들머리의 신양 해변 백사장에서 올려다 보거나, 한 발자국 더 물러서서 섭지코지의 언덕에서 끝머리 언덕 위에 펼쳐진 유채밭이랑 여유롭게 풀을 뜯는 조랑말들을 바라보며 배경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일출봉의 보습이 가히 최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섭지코지에 발을 들여 놓게되면 항상 (개발)과 (보존) 이라는 명제 앞에서 자시 혼란스러워 지기도 하지만........ 작금에 섭지코지만큼 전형적인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대부분의 여행 안내책자나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자면 (섭지코지) 라는 지명의 '섭지'에는 '재사(才士)가 많이 배출되는 지세'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들 하는데, 현지인들이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자면 '작고 비좁은 지역'을 의미하는 협지(狹地)에서 유래되었다 하며, 나 역시도 후자에 더 신빙성을 두고 싶다. 

  조선시대 역사에서 가장 힘겨운 대표 유배지였던 만큼 가끔 한양에서 권세가들이 당쟁에서 밀려 귀양살이를 하기야 했겠지만, 이 유배지에서 배출할 수 있었던 벼슬아치라면 당연히 문과(文科)적인 인재들 보다는 이과(理科)적인 품계가 다소 낮은 인재들이 주로 배출되지 않았었을까? '코지'는 바다쪽으로 툭 튀어나온 지형을 가리키는 곶(串) 또는 갑(岬)을 가리키는 제주 방언이다. 

  섭지코지는 화산송이 언덕의 등대가 랜드마크 처럼 우뚝 서 있지만, 본래 이 언덕을 치지하고 있었던 것은 봉수대였다. 바다 건너 쳐들어 오는 왜구를 방비하기 위하여 최남단의 화산송이 언덕에 봉수대를 설치하고 협자연대(峽子煙臺)라 불렀다. 이 봉수대에서 북쪽의 오소포연대를 거쳐 제주 관아를 지나 남해안의 봉수대로 불과 연기로 외적의 침입을 알렸던 것이다.

  아울러 섭지코지는 붉은오름 주위로 펼쳐진 낮은 구릉지대라 하겠다. 조면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섭지코지는 본래는 성상 일출봉과 함께 육지에서 떨어진 섬이었으나 사주(모래톱)가 발달하여 지금처럼 육지에 연결된 육계도인 것이다.

 

 

 

 

 

 

 

 

 

 

 

 

 

 

 

 

  (개발)과 (보존) 이라는 결코 병립할 수 없는 난제 속에서 어찌되었든 제주도가 결국에 선택한 것은 (개발) 이었다. 최대한의 자연환경 보존을 위한 노력과 최소한의 자연환경 파괴를 전제로 하였다고는 하지만, 일단 개발이라는 녀석이 전면에 등장하고 나면 그때부턴 보존이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 섭리다. 무분별한 개발이 다반사가 되고 나면....... 한 번 무너진 자연환경을 복원하는 데는 무수히 많은 시간과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당장 개발에 눈 먼 투자자들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의 책임일 뿐이다.

  시대는 변했고 삶의 질을 논하는 사람들이 늘다보니 관광산업의 특수가 도래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몇 몇 드라마와 영화에 이국적인 제주도의 빼어난 영상이 등장하면서부터 제주관광 특수가 열풍처럼 불어 닥쳤다.

  대규모 시장 자본이 몰려들면서 순전히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제주 관광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리조트, 호텔, 골프장, 해변 위락시설 들이 제주의 지형과 환경을 몰라보게 변화시켜 갔다. 대부분이 여행자들의 입맛에 맞게 급격하게 변해갔다. 이제 환경이니 보존이니 따지는 사람은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칠푼이’ 쯤으로 인식되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진짜 제주도 현지인들의 삶과 생활은 환경의 변화나 물가의 급상승만큼 질적으로 향상되고 좋아졌을까?

  제주도를 개발시키고 유지시키는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거대 외부자본이다. 그중에 상당수는 중국자본이다. 그들은 투자 이상의 수익을 거두어 가려고 혈안이다. 덕분에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생활 물가가 솟아올랐다. 잠시 다녀가는 여행자들이야 제주도에 가서 돈을 실컷 써 볼 각오로 찾을 테니까 별반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고, 그냥 오래 전부터 그냥 토박이로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런 생활경제 환경의 변화는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을까, 아니면 점 점 살아가기가 버거워지는 것일까?

  물론 여행업에 종사하는 현지인이나 커다란 오렌지 농장이나 목장을 운영하는 부자들은 관광특수를 반길만도 하지만, 진정한 현지 토박이들의 삶도 그러할지가 궁금해진다.

  베네치아나 바르셀로나 같은 세계적인 관광명소의 예에서 드러난 뼈저린 교훈이 생각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외부의 거대 자본이 몰려와 새로운 자본시장중심의 환경이 완성되면서, 소음과 쓰레기와 치솟는 물가가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돈벌이 되는 숙박업이나 외식업이나 관광 상품은 모두 거대 외지투자 자본들이 독식해 버렸고, 현지인들은 청소부나 알바생으로 전락해 버렸다. 내 집을 팔고 인근으로 싼 집을 찾아 전세를 떠나기 시작했다. 토박이들은 모두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옛 도시는 뜨내기 장사꾼들의 소유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들은 옛 도시에 애착이 없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관광객을 상대로 떼돈을 벌고는 다시 고향이나 새로운 투자 장소로 언제든 떠날 생각뿐이다. 옛 도시는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 가고 있다.

  베네치아나 바르셀로나 등 세계적 관광명소의 현지인들은 입을 모아 외치고 있다.

‘우리의 고향을 그대로 두어 달라. 물가가 너무 비싸서 그냥 눌러 살기도 버겁다. 여행자가 돈을 싸들고 와도 싫다. 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의 최소한의 여행자 수만 받아들이자. 더 이상 망가지지 않게 보존에 국가가 나서달라.’

 

 

  성산 일출봉을 바라보기에 최적의 장소이자 제주에서 자연환경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고 이국적 풍광이 빼어난 절경지로 손꼽히는 섭지코지를 제주도는 기어코 외지의 거대자본에게 팔아버리고 말았다.

  (개발)과 (보존)의 극명한 대비를 가장 여실히 잘 드러내 보여주는 장소가 섭지코지가 아닐까 싶다.

  우리 아버지가 섭지코지를 방문하셨을 때는 그저 황량한 억새만이 가득한 바닷가 바위 벼랑 위의 들판과 오름이었다고 들었다. 언덕 위에 등대 하나가 전부였다고 하셨다. 다만 그곳에서 건너다보는 성산 일출봉의 풍경이 가히 절경이었다고 감탄사를 늘어놓으셨던 기억이 내게는 있다. 아버지의 로망이었던 멋진 말을 한 마리 기르다가 섭지코지에서 실컷 들판을 달려봤으면 하는 바램이 강하게 드셨다고 했다. 우리 아버지는 끝내 말을 가져보지는 못하셨지만 말이다.

  그 섭지코지에 개발열풍과 함께 많은 건물들이 들어섰다.

 먼 과거의 섭지코지 모습을 알지 못하는 나 에게나 이곳을 찾아 몰려드는 여행객들에게는 그저 지금의 이국적인 풍경만으로도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만들기에 충분한 그런 장소일 뿐이다.

  이 압도적 풍광 속에선 아마 누구도 지금 당장 (개발) 이니 (보존) 이니 하는 의제의 고민을 떠올리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한정된........ 제한된 길을 따라 왔다는 사실과 방금 전까지 걸어 온 먼 길을 되돌아보면 아주 쬐끔은 개운치 못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풍경의 사유화’ ‘자연환경의 사유화’ 라는 부정적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자동 수식어처럼 떠오르는 뉴스에도 여러 번 화제꺼리로 등장한 한 대기업의 안방마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분의 행위 제스처와 함께 거친 표정까지도 말이다.

  내가 첫 제주 가족여행에서 머물렀던 숙소가 (K 호텔) 이었다. 그 호텔은 비행기 하면 떠오르는 (ㅎ재벌그룹)의 소유였다. 그리고 그 유명한 그 안방마님께서 ‘풍경의 사유화’ ‘국가 명승지의 자연환경 사유화’의 대표적 사례를 남긴 분이시라는 유명한 일화를 내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존)과 (개발)은 결코 병립할 수 없는 영원한 난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부득불 최소한의 훼손을 전제로 개발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는데..... 이 개발이 알고보니 몇 몇 부자들의 사유화를 위한 방편이었다고 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절망적인 비극이 아닐까?

 

 

 

 

 

 

 

 

 

 

 

 

 

 

 

  2021년 11월 26일자 파이낸셜 뉴스지에 “제주 올레 6코스 사유화 논란 일단락. 호텔 산책로 개방”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랐다.

  일련의 사건이 종지부를 찍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안도감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여전히 ‘거대자본의 횡포’와 ‘부자들의 부패’ 라는 사그라지지 않은 현대적 병폐에 대해서 개운치 않음과 동시에 가슴이 아파온다.

  제주 연합뉴스의 백나용 기자나 서귀포 연합뉴스의 고성식 기자가 그동안 꾸준히 제기해 온 ‘올레길 6코스의 부분 페쇄’ 기사를 여러 번 접해왔기 때문이다.

  제주 올레 6코스는 2007년 새롭게 개척되었다. 당시 개장시에는 검은여에서 서귀포 KAL 호텔의 정원을 가로질러 한라궁 호텔로 이어지는 코스였다. 하지만 2009년 느닷없이 KAL 호텔측이 정원으로 들어오는 입구와 나가는 출구를 봉쇄하고 경비원을 두며 출입을 제재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지 결국 올레길 6코스는 KAL 호텔을 우회하여 한참을 돌아가는 코스로 변경될 수 밖에 없었다. 여행자들과 제주도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비난 여론이 일다 KAL측은 ‘공공도로 확충과 호텔 건설사업 확장으로 사고의 위험성이 높아져서 부득불 통행을 제한하게 되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거짓 해명이었다.

  내부 고발자를 통해 드러나 상세한 정황이 고스란히 실린 기사에 따르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부인 이명희씨의 갑질이 원인이었음으로 드러났다. KAL 호텔 정원의 해변가 산책길 전망이 올레 6코스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는데, 이명희씨 역시 이 산책로를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

  어느 날 아침 이명희씨가 호젓하게 산책을 즐기고 있는데, 느닷없이 여러 명의 올레길 순례자들이 불쑥 나타난 것이다. ‘저것들 뭐야? 누군데 허락도 없이 불쑥 남의 땅에 들어 오냔 말이야? 당장 길을 틀어막아.’ 라고 명령했고, 그로인해서 호텔관계자들이 허겁지겁 올레 길을 폐쇄시키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 분은 뉴스에 등장하는 패턴도 참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요지부동 등장하는 핵심요소는 줄 곧 오로지 한 가지다. 혹 앞으로 또 가지고 나오실 ‘갑질’은 어떤 것일까 자못 궁금하고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나는...... 또 대부분의 우리는 ‘못마땅하기는 하지만 가진 자들의 횡포를 무슨 수로 막으랴’ 하면서 먼 하늘만 올려보며 장탄식을 할 뿐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 양반의 갑질이 하늘에 까지 소식이 닿았음인지, 만백성의 울분이 기도가 되어 하늘이 감복했음인지......... 2018년 제주지역 한 시민사회단체가 ‘국유재산 무단점유’로 KAL 호텔과 지주들을 상대로 고발장을 접수한 것이다. 이는 다분히 ‘이명희씨의 갑질에 대한 국민고발’이라고 보아야 타당하겠지만 말이다.

  법적 검토를 거쳐 재판에서는 ‘KAL 호텔측의 국유재산 무단 점유 사용’이 입증 확인되었고, 37년간 무단 점유 사용한 위법성에 대하여 8천430만원의 벌금을 부과 했다.

  결국 갑질 메이커께서는 멀쩡한 국민의 땅을 제 것인 양 차지하고 들어 앉아서 그동안 갑질을 해온 것이다. 말뚝까지 박아놓고 정당한 국민들의 접근까지 막고서 자신만의 전용 산책로로 호들갑을 떨어온 것이다.

참으로 가지가지 온갖 추악한 갑질로 점철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의 오염된 심뽀를 상징하는 기념물이라도 올레 길을 찾는 국민들의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그 기념비적인 장소에 건립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래의 지도가 모든 사실을 여실히 잘 드러나게 해 준다.

  위의 지도는 갑질 여사의 횡포로 그동안 삥 돌아다녀야 했던 길이고, 아래 지도는 이제 국민의 길을 되찾아 당당하게 질러갈 수 있는 원래의 길이다.

 

 

 

 

 

 

 

 

 

 

 

 

 

   

 

 

 

 

  --  다음 장에서 계속 제주여행 이야기를 이어나가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