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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걸어서 제주(濟州島) 속으로' - 세 번째 이야기

by 피안재 2022. 1. 27.

 

 

 

 

 

 

 

 

 

 

 

 

 

 

 

 

 

 

  ‘차를 가지고 가니까,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세 가지를 가득 싣고 돌아올래.’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챠밍여사는 여행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가져오고 싶은 세 가지에 설렘을 넘어서 약간의 집착까지 보였다.

  ‘내가 호암지를 돌때마다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억새를 한 아름 꺾어서 가지고 올래. 거실 한 구석을 수북하게 장식할 거야. 서해안의 조개껍질은 색깔이 뽀얗지 못했는데 제주도에 가면 소라랑 조개껍질을 한 보따리 주워 올 테야. 그리고는....... 올망졸망 예쁜 조약돌을 한가득 주워 올래. 알았지? 차의 공간이 허락할 때까지 가득 싣고 오는 거다?’

  이건 숫제 신신당부가 아니라 거의 협박성 강요 수준이다.

  ‘태리 할머니야. 자연보호를 생각해야지. 자연은 본래의 있던 자리에 그대로 놓여 져야 하는 거예요. 과도한 반출 욕구는 화를 불러 법에 저촉될 수도 있다고요. 그냥 눈과 가슴에 그득 담고 오세요.’

  ‘그게 또 그런가? 그럼....... 아주 쪼끔만 주워서 가지고 오면 안 될까?’

  ‘쬐끔이야 안되겠어? 그 정도는 내가 해 줄게.’

  어쨌거나. 여행에서 돌아와 있는 지금........ 우리 집에는 작은 소라껍질 몇 개, 조개껍질 깜장 작은 봉지로 하나, 조약돌 서너 개가 놓여있다. 억새는 계절이 한참이나 지나있어도 여전히 하얀 솜사탕 같은 것이 날리고 있기에 결국엔 포기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뭍에서도 억새를 강변에서 주로 많이 볼 수 있지만 제주의 억새는 어딘가 모르게 좀 색다른 것 같다. 특히나 성산포 부근의 두 번째 숙소는 거의 억새로 가득한 들판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진 서너 채의 펜션마을 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흐드러지다 못해 빼곡하게 들어선 억새숲이 들판이고 산자락이고 바닷가고 어디에서든 무리지어 장관을 이루고 있어서 상당히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가을의 끝자락에서는 그 풍광이 어땠으리라는 짐작이 그리 어렵지가 않다. 언젠가 한번쯤은 싸늘한 바람결이 폐부를 그대로 관통해버리는 가을의 뒷자락 즈음에 제대로 된 제주의 가을을 억새의 물결을 다시 찾아오고 싶다.

  우리 동네 호암지나 달래강변, 민둥산, 서천, 순천만의 억새밭을 보았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제주도의 억새는 그 질감 자체가 어딘지 모르게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우리에겐 억새에 대한 웃지 못 할 사연이 하나 있다.

  그것은 몰타여행의 추억에 담겨 있다. 몰타의 고조섬 트래킹에서 한 해변가 시골마을을 둘러보고 마을버스가 다니는 승강장까지 3km 정도를 걸어가야 했는데, 시골길 실개천을 따라 우거진 대나무 숲이 유독 눈에 뜨일 정도로 이색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흡사 담양의 어느 호젓한 마을 대나무 숲길을 걷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그렇게 한참을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바람에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대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사각대는 소리가 아니라, 가을 들판에서 들려오는 스산한 서걱대는 소리가 아닌가? 무언가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빼곡한 대나무 숲 저만치 꼭대기 위로 커다란 억새꽃이 만발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우리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심도 있게 연구에 들어갔다. ‘이게 시방..... 대나무여 억새여?’ 뿌리부분에서부터 줄기와 잎가지는 영락없는 대나무요, 정수리 부분에 솟아난 꽃술 부분은 영락없는 억새풀이다. 무슨 억새 줄기가 엄지손가락 마디만큼이나 굵고 짙푸른색을 띤단 말인가? 그런가하면 어쩌다 피는 대나무 꽃은 절대로 저런 억새 모습이 아닌 걸 내가 이미 알고 있다.

  결국엔 버스를 타고나서 운전기사님께 물어보았더니 억새란다. 몰타의 억새는 저 정도가 표준이란다. 대신 대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른단다.

  헐,

 

  제법 추운 지역이라는 소리를 듣는 충청도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내 고향 충주는 사방으로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아도 바다 꼬투리조차 찾아 볼 수 없는 심산유곡이다.

  어린 시절 추억속의 겨울은 온통 새하얀 눈이 전부였다 해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아침에 눈을 뜨면 동네 골목길에 눈을 치워 길을 내고 집집마다 수소문해 지난밤에 태운 연탄재를 꺼내다가 비탈길에 부셔 깔았다. 그렇게 해야만 동네 사람들이 그나마 외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고 심지어 논두렁 얼음판도 눈을 쓸어내야 썰매를 탈 수 있었다. 삼촌이나 동네 형들을 따라 몇 번인가 토끼몰이를 따라나선 적이 있기는 하지만 정작 토끼를 잡았던 기억은 전혀 없다.

  어느 날 느닷없이 눈이 쏟아져 내리면 겨울이 시작되었고, 눈이 그치면 겨울이 떠나갔다.

  그러던 시절이....... 내가 어른이 되어가는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눈이 사라졌다. 겨울은 여전히 되돌아 왔지만 눈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한 해에 겨우 두어 번 흩뿌리다가 말고, 수북이 쌓여 불편을 초래하는 정도는 서너 해에 겨우 한 번 있을까 말까?

  그러한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제주도로 눈 구경이나 가볼까?’

  그러면 의당히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상태가 매우 안 좋구먼. 눈을 보려면 강원도 위쪽으로 가야지, 따뜻한 제주도에 가서 눈을 찾겠다고?’ 라고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가만히 사태를 직시해 보면....... 어린 시절 추억속의 눈은 북쪽에서부터 내려왔지만, 오늘날의 눈은 서쪽에서부터 날아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나라 눈은 백령도나 서쪽의 섬에 가장 먼저 내리고 가장 많이 내린다. 다음으로는 울릉도와 독도일 것이고, 그 다음이 아마도 제주도가 아닐까?

  뒤를 이어 서해안의 내륙 도시들에 자주 많은 눈이 내리고, 강원도는 아마도 그 다음일 것이다. 눈도 내리지 않는 평창 동계올림픽이라는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강행한 우리나라의 엉뚱함이 그 증거라 하겠다.

  그런 상황이고 보니....... 제주도로 눈구경 간다는 말이 전혀 허튼소리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물론 제주도는 눈이 많이 내리지만 금방 녹는다. 하지만 중산간 지대 위쪽의 한라산 자락은 온 겨울이 지나도록 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있다.

  어리목이나 어승생악 같은 한라산 등반 길목이나 관음사 지역, 그리고 와홀이나 산굼부리 주변의 숲과 들판에는 겨울 내내 쌓인 눈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이번 제주여행의 최우선 목표였던 올레길 트래킹은 모진 날씨와 바람에 막혀 거절당한 형편이고....... 여전히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뺨에 와 닿는 공기는 얼음장처럼 싸늘하기만 하다. 하얀색과 옅은 초록과 코발트빛 짙푸른 색을 기대하여 찾아 온 제주였고 거기에다 눈부신 햇살만 가득할 줄 알았더니만, 지금 제주는 탁한 하얀색에다 온통 어두운 회색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일단은 바람이 비켜가기를 기다리며 바닷가를 피해 한라산 자락으로 숨자.

  트래킹이 여의치 않다면...... 무언가 제주만의 문화생활을 찾아보자.

  그래서 한라산 1100 도로를 지나 제주의 겨울 속으로 눈 구경을 떠나기로 한다. 한라산 자락 북쪽에 위치한 관음사를 향했다.

 

 

 

 

 

 

 

 

 

 

 

 

 

 

 

 

 

  나는 불자가 아니다. 때문에 불교에 대해서 아는바가 지극히 적을뿐더러 달리 어떤 이야기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자주 사찰을 찾는 편이다. 어떤 평안함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서툰 기독교인의 처지이지만, 부처님의 생애와 가르침에 커다란 존경과 감사함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이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종교에 대한 기본적 생각이기도 하다. 불교.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기타의 여러 종교와 심지어 무속에 이르기까지 나는 모든 종교의 숭고한 가르침과 고유성을 존중한다. 나와 다른 타 종교에 대해서 배타적일 이유가 없으며, 자신의 종교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을 아주 커다란 교만과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믿는 종교의 신(神)이 그토록 신성하고 거룩하다면, 그것을 타인에게 무조건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이 가르침을 내려준 방식대로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살려고 노력하며 모범적인 선행으로 가득한 실천적 생활태도로서 타인이나 타 종교인이 스스로 감복하여 동화되도록 하는 선행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나 스스로를 서툰 기독교인이라 고백하는 이유는....... 분명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 이기는 하나, 나의 기독교는 현재의 기독교 모습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순수를 잃고 왜곡된 기독교가 아닌 초대 기독교......... 코카서스 깊은 산자락에서 만났던 예수께서 함께하시던 시대와 닮은 본모습의 기독교가 나의 신앙인 것이다. 내 마음의 교회는 멀고 먼 코카서스 산자락에 외롭게 초라하게 옛 모습으로 서있다. 이것의 나의 고백이자 내 신앙의 아픔이다.

  나는 기회나 시간이 허락하면 사찰을 자주 찾는 편이다.

  챠밍여사는 지난여름에 찾아갔던 경북 봉화군의 청량사(淸凉寺)를 으뜸으로 치지만, 아무래도 내 마음속에는 강원도 고성의 건봉사(乾鳳寺)를 꼽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물론 지금의 건봉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막 30대에 접어들었던 삼십 년 전의 건봉사를 말한다. 한참이나 지난 날 어느 무더운 여름 우연히 찾아들었던 건봉사는 새롭게 중창되기 전의 옛 모습이었다. 지금의 대웅전도 없었고, 새롭게 단장되지도 못한....... 오랫동안 방치된 폐 사찰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나마도 불교적 역사 보다는 조선의 역사를 공부하다가 우연히 찾아간 길이었다. 엄청난 감동과 감흥이 몰려왔다.

  많은 사찰을 나름은 두로 돌아다녀보았지만, 적어도 사찰이란........ 그 시절의 건봉사 모습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훗날 다시 찾은 건봉사는 대웅전이 들어서고 놀라울 정도로 새로워져 있었다. 당혹스러움에 서둘러 발길을 돌린 나는....... 그 후로 다시는 건봉사를 찾지 않고 있다.

  그런 기억들을 되새기면서 아주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제주 관음사(觀音寺)의 경내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그냥 조용하게 살며시 경내를 살짝 둘러만 보고 나올 생각이다. 동안거에 드신 스님이나 선방에 기거하며 템플스테이를 체험하는 분들이나 사찰 관계자들에게 최소한으로 신경 안 쓰이시게끔 조용히 둘러 보기만 할 생각이다. 겨울 사찰의 정취를 잠시나마 느껴보고 싶었을 뿐이니까 말이다.

 

 

 

 

 

 

 

 

 

 

 

 

 

  '부처님. 저들의 간절한 염원을 꼭 들어 주세요. 저도 기원 드립니다.'

  '하나님. 하나님도 저들의 바람을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그들 모두가 당신의 자식들과 더불어 사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아시지유?'

  관음사를 돌아 나오면서 올려다 본 하늘........ 잔뜩 찌프렸던 하늘 사이로 겨우 드러난 파란 하늘이 오늘따라 그렇게 파랄수가 없어 보였다.

  사랑과 평화가 온세상에 가득하기를...........

 

 

 

 

 

 

 

 

 

 

 

 

 

 

 

 

 

 

 

 

 

 

 

 

  고창 선운사에서 보아왔던 동백이랑, 천관산 자연휴양림 올라가는 솦속 골짜기에서 만났던 동백이랑 제주도에서 만난 동백이 느낌이 다른것은 왜일까?

  도도하기가 그지없는 담홍색 고운 한복을 입은 조선시대 여인의 고고한 절개일까?

  우리 어머니가 유독 좋아하셨던 목련이지만, 꽃이 질 때의 그 퇴색하고 얼룩덜룩한 뒷모습이 나는 싫었다. 하긴 어느 꽃인들 한 잎 한 잎 속절없이 떨구다가는 초라하게 시들기가 마련이지만........  도도하기 그지없는 동백은 꽃잎이 시들기 시작하기도 전에 툭 하고 꽃송이를 통째로 길바닥에 떨어트리고 만다. 나에게 매달려 있을 때까지는 어디까지나 나의 일부인 동백이지만, 떨어지고 나면 나와는 상관없는 떨어진 꽃봉오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끝까지 늙고 추한 모습을 결코 들키지 않겠다는 어느 유명한 늙은 여배우의 전설 같은 이야기 처럼 말이다.  동백은 그런 꽃이다.

  제주에는 겨울에서 봄까지 하염없이 거듭거듭 동백이 꽃을 피운다.

  세차게 들이닥친 한줄기 찬바람에 후드득 후드득 동백이 꽃송이를 떨군다.  동백으로 수를 놓은 붉은 카펫의 길이 깔린다. 겨울도 이처럼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

 

  개뿔!!!

  도도하고 요염한 동백은 무슨..........  죄 다 얼어 죽어버렸는데 붉고 고운 카펫은 무슨 카펫.............  헐.

 

 

 

 

 

 

 

 

 

 

 

 

 

 

 

 

 

 

 

 

 

  폭망!!!!!!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이런 상태면 차라리 몇 일간 폐장을 해야 하는 것 아니야? 거기다 무슨 입장료는 최고수준까지?

  이러니 우리나라 제주도. 독도 여행 경비 정도면 차라리 서유럽의 파리. 런던. 로마. 바르셀로나 여행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들 하지. 특히나 제주의 유명관광지 입장료는 서유럽을 훌쩍 상회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유럽의 내놓으라 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가면......... 단순하게 지나치는 미술품 하나 가격이 수백억에서 일천 이천억을 호가한다. 아예 가격 책정이 불가능한 작품들이 버젓이 섞여서 전시되고 있다. 그런 작품들이 수천점이나 전시되어 있다. 더러는 두 세 시간에 관람할 수 있지만, 대부분이 반나절 내지는 한나절은 족히 걸리는 방대한 소장품들을 자랑한다. 루브르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의 경우는 하루 가지고는 절대로 부족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입장료는 보통 일 이만 원에서 사만원 안쪽에서 책정된다. 거기에다 일요일이나 휴일인 경우 무료입장을 선물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우는 처음부터 오로지 경제적 논리의 바탕위에서 다소 억지로 강요당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30분에서 한 시간이면 훌쩍 둘러 나오고, 사진이나 몇 장 찍을 뿐인데...... 요구하는 입장료는 유럽을 상회한다. 그럼에도 길게 줄을 선다. 풍요로움이 차고 넘쳐나는 대한민국의 현실반영이라 생각된다. 말로는 살기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남들이 하는 것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현대적 물질적 중병 탓이다. 사회적인 공감대 속에서의 최소한의 문화 공간이나 문화 활동을 오로지 돈을 위한 사업의 일개 방편으로만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혈안인 느낌이다.

  제주도에는 동백꽃을 볼 수 있는 장소가 넘쳐난다. 언제든 무료로 찾을 수 있는 곳들이 제법 많이 있다.

  하지만, 전문적인 솜씨로 잘 가꾸어진 동백을 구경할 수 있는 공간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현실이다. 하여 망설이다가....... 이왕 날씨 때문에 계획했던 스케줄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활짝 피어난 동백을 만나보아야겠다는 바람으로 관광안내센터의 도움을 받아 추천받은 동백꽃 농장으로 향했다.

  입구부터 긴 행렬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다가서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입장료에 또 놀라고....... 어쨌거나 이대로 되돌리기는 싫어서 티켓팅을 하고 입장을 했다.

  그런데 아뿔싸!!! 폭망!!!

  제주도에 드리운 연이은 한파 속에서도 유난히 화창하게 도도한 자태를 뽐내며 동백꽃이 유독 아름답게 가득 피어났었다고 한다. 야말로 인산인해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연인 매스컴과 방송에서도 찾아왔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제와 그 그제...... 이틀에 걸쳐서 제주도에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한나절 만에 해안 쪽의 평야지대는 대부분의 눈이 녹았지만, 30cm가 넘는 폭설에 뒤덮인 가녀린 동백꽃잎들은 차가운 얼음 같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한순간에 꽃봉오리를 모두 땅바닥 위로 내동댕이치고 말았다고 한다. 오늘 겨우 꽃봉오리를 터트리려는 작은 동백 몇 송이와 동해를 입은 상처투성이의 동백 꽃봉오리들이 드문드문 매달려 있을 뿐....... 사나을 전의 그 화사하고 화려했던 동백꽃 가득한 숲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채 눈이 다 녹지 않은 질척한 길 옆으로 인파에 밟힌 상처투성이 꽃봉오리 잔해들이 나뒹굴 뿐이었다.

  애잔함에다가 황당함이 넘쳐나는 동백 농원.

  연말연시 대목시장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장삿속 때문일까?

  이 정도 상황이면 며칠 폐장을 했다가 동백꽃이 어느 정도 새롭게 피어나 화사해 졌을 때 다시 열던가, 아니면 자세한 안내문과 설명을 전제로 할인 행사를 하던가, 그것도 아니면 찾아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며칠간 무료 개방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눈이 내려 그런 걸 어떻게 해? 그래도 돈 싸들고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왜 막아? 이게 다 겨울 한 철 장사라고, 우린 땅 파서 장사하나?’

  아마도 그 분들은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리 장사라지만...... 상품을 파는 사람은 자신이 팔고자 하는 상품의 상태를 소비자에게 진실 되게 알려서 진정한 거래가 성사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책무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전제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기’다.  숙성을 필요로 하는 밀가루 반죽의 준비된 양이 떨어졌다고 일찍 손님을 사절하는 영세상인이 운영하는 음식점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들에겐 좀 덜 숙성된 밀가루 반죽으로 음식을 만들어서라도 더 돈을 벌고싶은 욕심이 없었을까?  유대인 상인들이 가진 최소한의 기본 덕목은 장사하고자 하는 누구나가 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장사꾼 이전엔 인간성의 본질을 회복하는게 우선 아닐까? 

 

  다만...... 온실 정원 속에 내걸려 있는 <카밀리아 힐 가드너>의 편지글 같은 인상적인 안내 문구가 그나마 이날의 참상과 처참한 심정을 어느 정도 위로해 주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이날의 동백 농원은 우리를 실망 시켰지만 누군가로 부터 고결한 교훈을 대신 얻고 돌아가는 심정으로 우리는 발걸음을 돌렸다.

 

 

 

 

 

 

 

 

 

 

 

 

 

 

 

 

 

 

 

 

 

 

 

 

  오메! 오메! 이게 시방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시츄에이션?

  ‘태리 할망구야. 환갑이 지난 나이로 시킨다고 진짜로 점핑 샷을 하냐? 무릎 고관절 고장 나면 어떻게 하냐? 아직도 지가 청춘인줄 아는 거여?’

  세상에나....... 렌즈에 잡히는 그림이 점핑 샷 찍기에 딱 좋아 보인다고 했더니만 촌각도 망설이지 않고 폴짝폴짝 뛰어대는 이 할망구의 열정을 어쩐다? 도가니가 이미 다 닳아서 별로 안남은 처지일 텐데...... 아니나 다를까? 이내 ‘아니고야. 남들 죄 다 하는 점프 샷이 만만한 게 결코 아닌가벼’를 연발한다.

 

  동백꽃 농원의 아쉬움이 너무나 컸기에 그 아쉬움을 달래보려고 <여미지 식물원>을 찾았다.

  30년 전에 처음 제주도를 여행했던 시절에 가장 인상이 깊었던 추억의 장소다. 평소에도 유난히 꽃과 푸른 식물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여미지 식물원만한 휴식의 공간이 또 있을까? 그 당시에 제주도 여행하면 무조건 떠오르는 것이....... 용두암. 성읍 민속마을. 정방폭포. 산굼부리. 여미지 식물원 아니었을까? 요즘처럼 자가용이나 렌터카가 넘쳐나는 시대도 아니었고 해서 접근성과 미처 개발이 덜 되었기에 요즈음의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 관광 명소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던 시절이었다. 영화 <쉬리>와 드라마 <대장금> <올 인>이 방송되면서 제주여행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성산 일출봉. 섭지코지. 신라호텔 쉬리의 언덕. 용머리 해안. 갤러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어서 여러 오름들과 다양한 올레길이 관광명소로 등장하고 인근의 섬들까지로 퍼져나갔지 싶다.

  유럽 여행을 계획하면..... 어떻게 이스탄불을 경유할 수 있을까를 늘 궁리하듯이, 이탈리아를 생각하면...... 늘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을 찾을 방도를 찾듯이, 제주도에 오게 되면 늘 여미지 식물원을 찾는다.

  제주의 토종 식물들과 세계 각지의 열대식물들이 테마별로 나뉘어진 온실에서 서식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 이탈리아, 프랑스식 야외정원이 조성되어 있지만 겨울철에는 거의 유명무실한 존재라 여겨도 무방하지 싶다. 높고 푸른 열대수림이 우거져 있고 실제로 열대 과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이국적 풍경이 펼쳐진다. 야자수 못지않게 우리 대나무 숲도 빼어난 운치를 자아낸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겨울이라는 계절을 망각할 수 있을 만큼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선인장 온실은 우리가 마치 우유니 사막 한가운데 바위섬에 서있는 느낌을 선사해 준다.

  그제 내린 폭설과 세찬 바닷바람을 피해 찾아든 여미지 식물원에서 우리는 모처럼 여유와 푸르름에 맘껏 취해 본다. 제대로 만개한 동백꽃도 식물원 외부 정원에서 만났다.

  여미지 식물원의 겨울은 온통 크리스마스 기간이다. 긴 겨울이 다 가도록 식물원의 실내 정문은 언제나 크리스마스와 근하신년으로 가득 채워진다. 아마도 봄이 만연해져 모든 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 재칠 때까지 그럴 것 같다.

  성당의 종탑처럼 생긴 전망대를 엘레베이터를 타고 오르면 서귀포의 모든 정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가 하면, 눈덮인 한라산의 위용이 한폭의 그림처럼 멋드러지게 나타난다. 그야말로 감동적이다.

  우리말고는 아무도 없는 멋진 전망대를 온통 차지하고 앉아서 보온병에 가지고 온 커피랑 제주 감귤을 까먹으면서 한참을 넋을 놓고 가이없는 상념속에 빠져들어 본다.

 

 

 

 

 

 

 

 

 

 

 

 

 

 

 

 

 

 

  새해 소망의 나무 앞에선 챠밍여사는........ 병환중인 작은 언니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고, 우리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글을 적어 소망의 나무에 매달아 본다.  하루빨리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생겨난 모든 아픔과 고통이 해소되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모두가 열심히 예전처럼 노력한만큼 행복한 시간이 다시 오기를 간절하게 기도해 본다.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해지기를.......

  여미지 식물원 별관에서는 <남녁의 서정> 이라는 미술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천경자. 이중섭 선생님이 포함되어 있는.......  작고 소박하지만 정서 가득 진지함이 묻어나는 소중한 전시회였다는 기억으로 남을 것만 같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들를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던...... 참으로 감사함이 솟아나는 시간이었다.

 

 

 

 

 

 

 

 

 

  --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제주 여행을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