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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카메라만 손에 들고 훌쩍 떠나는 '걸어서 제주 속으로' <2>

by 피안재 2022. 1. 12.

 

 

 

 

 

 

 

 

 

 

 

 

 

 

 

 

 

 

 

 

 

 

  내 고향 충주(忠州)에는 이미 널리 알려진 명승지가 차고 넘쳐날 정도로 산재해 있다. 그중의 하나인 남산성(南山城)은 마고성(麻姑城) 혹은 마고할미성으로 불리는데, 거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옛날 옛적 하고도........ 아주 먼 까마득한 시대에 금단산 수정봉에 선녀 하나가 몰래 숨어살고 있었다고 한다. 하늘나라에 살던 마고선녀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늘나라 계율을 기키지 않고 함부로 많은 사람을 죽여서 결국 천제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도망쳐 숨어 살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엔 천제에게 붙잡혀서 하천산 누독복으로 유배되어 혹독한 노동형에 처해졌다. 선녀는 500년간이나 낮이고 밤이고 힘든 노동을 하며 속죄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이를 기특하게 지켜보던 천제께서 마고선녀(麻姑仙女)에게 금봉산(金鳳山)에 들어가 7일 안에 북두칠성을 따라 성을 쌓으라는 명을 내리셨다. 그렇게 하여 금봉산(남산) 정상부분을 휘감아 도는 산성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그 다음부분의 이야기는 늘 그렇듯이 제각각 달리 전해진다. 7일 만에 성을 완성하여 하늘나라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어떤 기막힌 사연으로 끝내는 성을 완성하지 못하여 어떻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등이다. 나머지 부분이야 각자의 상상에 맡겨놓기로 하자.

  이렇듯 우리들 주변에는 전해져 내려오는 재미난 이야기를 보통 설화라고 부른다. 설화는 다시 신화와 민담과 전설로 구분된다. 거기에 더하여 민담에는 허무맹랑한 허튼소리나 심지어 진한 음담패설들까지도 추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런 설화는 노티가 팍 팍 묻어나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의 영역으로 전락해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핸디폰만 있으면 모든 정보가 쑥쑥 튀어나오고 어떤 난제도 쑥쑥 풀어내는 젊은 세대나 현대인들에게 마고 선녀나 산성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고 치자. 이런 대답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에이, 뻥이 심하시네요. 선녀가 어딨어요?’

  ‘7일 만에 산성을요? 대충 크레인 7대에다가 굴삭기는 한 백대쯤에다가 인부가 한 이천 명쯤 동원 가능한가요?’

  ‘3D로 뽑은 설계 도면부터 살펴보고 나서요.’

  ‘요새 누가 산성을 만들어요? 난개발해서 최고급 빌라라면 모를까?’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에 안덕면의 숙소를 나서서 동쪽을 바라보면 언제 어디서나 하얗게 눈이 쌓인 한라산이 보인다. 고개를 돌려 서쪽을 바라보면 언제 어디서건 항상 바위벼랑이 선명한 산방산이 보인다. 고개를 갸웃거리듯 한라산과 산방산을 몇 번이고 바라다보고 있으면 또 문득 설화 한 가지가 떠오르는 것이다. 이번 설화의 주인공은 설문대 할망이다.

따지고 보면 마고 할망구나 설문대 할망구나 다 거기서 거기이지 싶다.

  암튼 제주도를 만드신 장본인이라 전해지는 설문대 할망구께서 하루는 한라산을 만들다가 그냥 심심해서 한라산 꼭대기 부분을 당수 날리듯이 탁 쳤는데, 툭하고 잘려서 날아간 산봉우리 부분이 저만치 바닷가에 떨어졌는데 그 모양새가 마치 바다 속에서 둥실 떠오른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주워서 맞추어 놓을까 하다가 나름 떨어져 나간 모습도 괜찮다 싶어서 그냥 두었고, 덕분에 잘려나간 부분이 패어서 백록담이 만들어졌다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뻥이다.

  그런데 말이다.

  산방산을 좀 멀리서 바라보는 해변가에 서서 한라산과 번갈아 계속 쳐다보면서 허풍 가득한 뻥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면, 장난삼아서 그냥 한번 산방산을 번쩍 뽑아다가 한라산 백록담 위에 올려놓으면 기가 막히게 잘 맞아들어 갈지도 모르겠다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망상이 솔솔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도대체 누가 이 어처구니없는 설화를 처음 만들어 낸 거야? 위대한 작가인거야?  아님 원조 사기꾼인거야?

  이쯤 되니까 온갖 우리나라 설화에서 시작하여, 유럽과 아시아를 갈라놓은 헤라클레스의 기둥 설화에서부터 느닷없이 ‘열려라 참깨’까지 줄줄이 이어져 떠오르는 통에 두통이 다 생길 지경이 되고 말았다.

  이제 하루를 시작하려는 식전 댓바람부터 말이다.

  헐!!!

 

 

 

 

 

 

 

 

 

 

 

 

 

 

 

 

 

 

 

 

 

 

 

 

 

  우리가 외돌개를 찾은 것은 올레길 7코스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아주 오래전 첫 제주여행에서도 이곳을 기점으로 막 생겨나기 시작한 올레길 7코스를 첫 제주트래킹으로 삼았던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다. 새록새록 옛 추억을 되살리며 어제의 10코스에 이어서 오늘의 목표는 올레 7코스였다.

  바다에 홀로 외로이 서 있어서 붙은 ‘외돌개’는 우리나라 바닷가에 무수히 많이 솟아있는 바위봉우리중의 하나겠지만, 동해의 ‘촛대바위’ 만큼이나 차지한 자리가 실로 명당이어서 널리 각광을 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위치나 주변 경관과의 조화가 자신의 가치를 극한으로 높이게 된 결과이지 싶다. 어찌보면 그저 흔한 바닷가 바위봉우리 싶지만, 적어도 150만 년 전에 화산 폭발로 생겼다고 하니...... 거기에다가 처음부터 불쑥 20m 정도 높이로 솟아난 것인지, 아니면 안쪽의 암석벼랑에 붙어 있다가 오랜 풍화작용으로 떨어져 나간 것인지...... 볼수록 신기한 것이 사실이다. 계절만 좋으면 그 아래 짙푸른 바다 웅덩이를 개인용 수영장 삼았으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좌우로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제주 올레길 6코스의 종착지 부근이라고 할 수 있다. 왼편으로 향하면 새섬이 있는 서귀포항구가 나오고, 오른편으로 가면 공원과 외돌개가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에 <대장금>이 촬영되었던 장소로 지금도 여전히 이영애씨의 거대한 포스터가 놓여있다.

  오늘은 제주 올레길 7코스를 트래킹 하는 날로 잡고서 외돌개까지 어쨌거나 오기는 왔다만.......

  아뿔싸!

  바람이 정말로 장난이 아니다. 거세다는 표현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이번 여행을 출발하기에 앞서 이틀 동안 제주도에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남해안 일대까지 폭설 예보로, 주위에서 지인들이 과연 제주도 여행이 가능하겠느냐고 우려서린 걱정들을 많이 들었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신과 자신이 있었고, 이제까지의 우리 여행 이력에서 실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 수시로 있었을 만큼 날씨는 항상 우리에게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무조건 강행을 했던 것이다.

  아침 뉴스에까지 제주도와 남서해안 일대에 눈이 내리고 있다는 일기예보가 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씩씩하게 차를 몰고 완도로 출발했다. 다만 서부해안 고속도로를 택하지 않고 대전을 거쳐 내륙을 관통하는 호남고속도로를 택했다. 내 어린 시절 겨울철 눈은 추운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내려왔지만, 내가 어른이 되고부터 눈은 대부분이 서쪽 해안지방에서 중부지방으로 올라왔다. 대관령의 폭설 소식보다는 서해안 군산지역의 폭설 뉴스가 더 자주 들려왔다. 하여 서쪽 해안지방만 피하면 자동차 운행에는 지장이 없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남해안에 이르러 월출산 부근을 지날 때에만 약간의 눈구경을 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도로의 제설작업은 완벽했다. 제주도에 도착하니 지대가 높은 지역엔 눈이 쌓였지만 해안가에는 모두 녹고 난 다음이었다. 폭설이야 내리겠지만 날씨가 워낙 따뜻하다보니 한나절을 넘기지 않고 대부분이 녹는다. 한라산 자락을 가로지르는 도로변엔 눈이 수북했지만 노면만은 제설작업이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었다. 지인들의 걱정스런 전화는 계속되었지만...... 우린 오히려 눈이 쌓인 길을 겨우겨우 가보고 싶을 정도였다.

  제주 도착하고 다음 날, 인덕에서 맞이한 제주의 첫 아침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속된 표현으로 ‘참 제주 스러운 아침’을 맞았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나섰던 올레길 10코스 트래킹이었는데....... 오후를 지나 저녁까지의 날씨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거칠고 싸늘했다.

  다시 새로운 아침을 맞아 한껏 기대를 품고 올레 7코스에 도전하는 중이었는데....... 아뿔싸! 날씨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잔뜩 흐린 하늘에 강풍주의보에다가 한파주의보까지 겹쳤다.

  외돌개에서 해변으로 내려서서 본격적으로 올레 7코스 트래킹을 시작하려는데........ 거칠고 세찬 바람에 발걸음을 옮기기 조차 힘이 들 정도이다. 우리를 앞서 내려갔던 두 팀이 손사래를 치며 되돌아 올라온다. 갈 데 까지만 가보자고 용기를 내보지만, 아무래도 이 상태로는 무리를 넘어 불가능 할 것만 같다.

  결국, 이 날 우리의 올레길 7코스 트래킹은 포기를 해야만 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서귀포항 포구 안쪽의 새섬으로 돌렸다. 포구가 약간 굽어진 안쪽이라 바람이 어느 정도는 잦아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지고 말이다.

  새섬은 근자에 들어 여행객들 사이에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핫 플레이스다.

 

 

 

 

 

 

 

 

 

 

 

 

 

 

 

 

 

 

  새섬은?

  제주도를 찾는 거의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새섬’을 ‘새가 많이 서식하는 섬’ 이라 생각하여 조도(鳥島) 라고 오해들을 하고 있다. 단순하게 쉽게 생각하자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오죽하면 제주 현지인들 중에도 새섬을 초가지붕을 잇는 새(띠)가 많이 나는 곳이라 하여 초도(草島)라 부르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실제로 그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보다 정확한 ‘새섬’의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자면 ‘모도(茅島)’가 맞는 표현이다. 모도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에 위치한 섬으로 억새풀로 엮은 띠를 가리키는 새(茅)가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귀포 항구가 한국에서 내놓으라하는 아름다운 항구라는 수많은 여행가이드북의 표현이 내게는 그리 썩 내키지 않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초라하고 옹색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저 어느 한구석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옛 영화가 쓸쓸하게 무거운 여운으로 다가오고 있을 뿐이다.

  서귀포 항구 앞바다에는 새섬 외에도 범섬, 문섬, 섶섬, 서건도 등이 놓여져 있는데, 그중에서 새섬은 항구의 코앞에 위치하면서 천연방파제 역할을 해왔다. 본래는 몇 가구가 거주하는 섬이었지만 60년대 이후로 모두 떠나고 무인도로 전락하게 되었다.

  일부 낚시꾼들이나 옛 방파제와 새섬 사이의 ‘새섬목’을 건너 드나들었던 무인도였다. 그러던 것을 제주도가 새섬을 공원화하기로 시작하여 2009년 ‘세연교’를 준공하면서 새섬은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을 위한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던 것이다.

  서귀포의 바닷바람을 온 몸으로 가득 맞으며 ‘새연교(某連橋)’를 건너면 새로운 인연이 생겨난다고들 말한다. 하여 새로운 인연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건너가고 다시 되돌아온다.

  제주도 특유의 뗏목인 ‘테우’를 형상화 해서 만들었다는 세연교는 길이 169m의 사람만이 통행할 수 있는 보도교로서 테우의 돛을 형상화한 높이 45m의 주탑이 설계 포인트였다고 하는데........ 별로 특색 있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근자의 건축 추세가 그러하기 때문인지 다른 여러 곳의 건축과 교량 건설에서 이와 아주 유사한 모델들을 흔하듯 접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빼곡한 소나무 숲길과 수북이 자란 억새밭 사이를 가르며 빼어난 풍경의 산책로를 걷는 시간은 모처럼 ‘느림의 미학’을 되새기며 제대로 힐링을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그토록 모질고 세차게 불어대던 바람도 세연교를 지나 숲길에 들어서니 언제 그랬냐 싶게 아늑한 아주 특별한 공간과 시간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었다. 서귀포층 이라 불리는 패류화석지라 마음대로 이곳저곳 다닐 수는 없고, 주로 산책로에 국한된 새섬 탐방이었지만 모든 사람에게 권장하고픈 제주다운 장소였다고 하겠다.

  되돌아 나오는 길에 세연교에 이르니 언제 잠잠했었느냐는 듯이 강하고 세찬 바람이 걷기가 힘들만큼 몰아쳐 왔다. 혹여 모자가 날릴까봐 아예 벗어서 주머니에 넣고 겨우 겨우 건너왔다.

  인근에 천제연 폭포와 정방 폭포가 있지만, 본래는 우리의 관심사 밖이었다. 예전에 본 적도 있을뿐더러 해외를 다니며 어마무시한 폭포들을 여러 번 접하다보니 그만큼 이미 알고 있는 폭포에 대한 기대가 덜해짐 때문이다.

  이번엔 무조건 올레 길을 죽자살자 열심히 걸어보려고 마음먹었었는데.......

  모질게 불어오는 세찬 바람 때문에 기어코 올레 7코스 트레킹을 접게 된 마당에....... 갑자기 스케줄 변경을 하자니 좀 그렇고 해서 잠시 숨을 고를 겸해서 인근의 천제연 폭포를 잠시 들르고, 기념품 판매점도 들르고, 편의점 아메리카노를 한 잔 하면서 다음 행선지를 골라본다.

 

  제주 바람이 우리의 올레길 트래킹을 가로 막는다면...........?

  어디 해변만이 제주이겠냐. 한라산에서 내려다 보는 섬의 풍경도 분명 제주이겠지.

  제까짓 아무리 세찬 바람이라도 산자락에 막히면 잦아지겠지 뭐.

  우리는 중산간 지역으로 간다.

  한라산이야 오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겨울 등반 준비를 갖추지 못한데다가.......  60세를 넘기면서 부터는 해마다 등반에 대한 자신감이 뚝 뚝 떨어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해.........  인정 할것은 인정하고 살자.

  우리는 1100 도로로 간다.

  마음은 '눈 덮인 윗세오름까지'를 외치면서......

 

 

 

 

 

 

 

 

 

 

 

 

 

 

 

 

 

 

 

 

 

  세상에나..........

  대한민국의 중북부에 해당하는 내고향 충주에서도 제대로 눈구경하기가 쉽지않은 마당에.......

  하루를 꼬박 걸려서 죽어라 내달려온 따뜻한 남쪽의 제주도에서 눈을 구경해야만 하다니......

  이게 무슨 웃기는 씨츄에이션도 아니고서리.........

  헐.

  그제까지 이틀동안 어마어마한 폭설이 내렸다더니 참말이었구나!

  음메. 그런데 왜 이렇게 추운거여?

  추위를 피해 도망쳐 온 처지로 이러다 제주도에서 얼어 죽은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난 이번 여행에 한겨울 방한복 안챙겨 입고 왔다구? 바람막이 뿐인데.......  장갑두 없는 처지에 난감하네.........

 

 

 

 

 

 

 

 

 

 

 

   --- 다음 이야기에서 이어지겠습니다. 좀 바쁜 시기를 보내느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