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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체크 이슈> 왜곡된 진실과 편견을 넘어서면 이슬람이 보인다

by 피안재 2021. 11. 15.

 

 

 

 

 

 

 

 

 

 

 

 

 

 

 

 

 

 

 

 

 

 

 

  기독교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이슬람교는 평화를 외친다.

  이것을 전제로하여 재해석한다면  종교와 폭력은 본질적으로 양립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종교가 폭력을 수반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사실상 그것은 종교가 이미 종교이기를 포기했다고 밖에 볼 수 없게되는 것이다.  사랑과 평화를 최고의 가치이자 존재의 이념으로 생각하는 종교에서 어떻게 폭력을 끌어들일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자기부정을 넘어서 종교 존립의 정당성을 심하게 훼손하는 것은 물론 창조주이자 하나뿐인 신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은 과연 어떤가?

  인류가 이제껏 써내려 온 역사속에서 종교와 폭력은 과연 엄격하게 분리되어 왔는가?

  <개.뿔.>

  기록된 폭력의 역사중에서 거의 대부분은 종교 때문에 벌어졌거나,  거기에서 기인한 폭력 사태가 절대다수인 것이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하자면,  앞으로는 사랑과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종교가 뒤에는 군대를 양성하고 분쟁을 일으키고 수시로 폭력을 무기로 일삼아 왔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담긴 성스러운 전쟁'을 종교지도자들은 툭하면 써먹지만,  말짱 거짓말이다.  종교지도자들의 세속적 탐욕이 저질러낸 추악한 역사일 뿐이다.  거룩하고 성스러운 전쟁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런 폭력을 필요로하고 사용하기를 즐기는 자들은 신(神)의 장막에 거할 자격이 없는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무늬뿐인 종교인' 혹은 '종교 지도자'일 뿐이다.

  신께서 인간이란 존재를 아기고 사랑하사 자신의 형상대로 만들에 이 세상에 내놓으셨다.  창조주의 바램대로 되지 않자 구세주를 보내셔서 모든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형을 받으시고 부활하셨다.  이는 인간들이 더불어 사는 세상이 사랑이 가득하고 평화가 넘쳐나기를 간절히 바라셨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인류 역사를 가장 간단하게 대변할 수 있는 단어 두 개가 바로 (종교)와 (폭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종교가 존립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통해 세상 가득 사랑과 평화가 넘쳐나도록 만드는데 일조를(희생) 하라고 만드신 것이다.  그런 종교가 폭력을 양산해 내었고,  이제 이 세상에서 종교가 아무리 헌신하고 회개하고 노력과 희생을 한다해도 폭력이 근절되기는 물 건너 간것으로 판단된다.  종교는 폭력을 없앨 수 없다는것이 나의 견해이다.  왜?  인간세상에 벌어지는 폭력의 상당부분은(그 이상) 어떤 식으로든 어떤 이유로든 반듯이 종교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폭력이 없는 세상'은 상상을 뛰어넘어 허구이다.

  혹,  종교를 인류문명사에서 제거해 버린다면 폭력은 근절될까?  아마도......  근절은 아니더라도 절대적으로 줄어들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생명체의 존립을 위해서 언젠가는 종교를 없애는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하는 것은 아닐까?  종교를 없앤다?  그럼 장차 창조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만 하는 것일까?

  할.렐.루.야.아.멘.(난 가끔 이런 생각까지도 해보곤 한다)

  진정한 (교회)의 의미와 소임은 과연 무엇일까?

  기독교 신앙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다른 신앙들도 마찬가지로........

 

 

 

 

 

 

 

 

 

 

 

 

 

 

 

  이슬람의 사상을 동양적인 중용사상으로 모든 극단을 배격한다고 이야기하면 미쳤다거나 결단코 믿지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코란에는 광범위한 이슬람적 중용사상을 기술하고 있다.   이는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으로 각인되다시피한 무슬림 형제단의 사상적 이론가인 '까라다위' 조차도 현대적 이슬람 부흥운동의 가장 깊은 저변에는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슬람 세계는 동(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서(서구유럽) 사이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오랜 세월동안 질곡의 역사를 살아왔다.  찬란한 문명을 이루며 인류 문명사에 커다란 기여도 했지만,  종교를 앞세우거나 자원을 약탈하기위한 이민족과 국가들의 침략과 더불어 너무나 많은 핍박을 받아왔다.  18 세기 이후 앞서 근대화를 이룩한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침략 앞에서 당해야만 했던 고통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견디기 힘들만큼의 가혹한 것이었다.  결국 무슬림들의 유일한 선택은 초기의 이슬람........ 다시 말해서 모하메드와 정통 칼리프 시대에 가졌던 이슬람 공동체라는 정체성을 회복하고 하나로 뭉쳐서 서구열강들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독립운동을 전개해야 하겠다는 목표였다.  하여 모든 이슬람 세계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정신적 사회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과정에서 극소수의 급진파와 극단파가 생겨났고  그들로 인해서 폭력이 수반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생겨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극소수에 의해서 생겨난 이슬람적이라거나 결코 합법화될 수 없는 파행이라 하겠다.  이들 소수의 호전성이 모든 이슬람인들의 잘못이라거나 모든 분쟁과 폭력의 원인이라고 비약하는 것은 결코 옳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극소수에 머무르는 급진파나 극단파의 주장 또한 서구의 끊임없는 경제적 착취와 이슬람교의 종교적 성스러움과 가치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흠집내기에 열을 올린 결과에 대해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점차 폭력에 의지한 면이 적지않다고 할 수 있겠다.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가혹한 식민통치를 뼈저리게 경험하였으며 재산과 인권을 빼앗겨 왔던것은 아랍인 이슬람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 까지도 공히 빼앗긴 자의 한맺힌 응어리와 저항정신이 내면 깊숙히에서 자라나고 있었던것은 모두 사실인 것이다.

  처절하도록 고된 삶에 신음하면서 빼앗긴 억울함을 호소하는 저들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외면해 버리고,  자신들의 이익과 부의 축적에만 혈안이 되었던 서구유럽인들의 오만과 독선이 결국 이슬람 급진주의자들과 아프리카 민중해방군을 탄생 시켰으며 거듭거듭 그들의 급진적인 저항정신에 불과 기름을 부어왔던 것이다.

  서구가 앞장서서 성찰과 자기 반성을 통해서 지난 과오를 인정하고 빼앗긴 자들을 위로하고 더불어 살 길을 찾아야 했음에도,  여전히 그들을 능멸하고 테러리스트라고 몰아세우면서 이를 근절 시키겠다고 가공할 최첨단의 폭력을 동원하여 툭하면 전쟁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한 서구언론이 나서서 세상에 고하기를 '모든 이슬람이 테러리스트는 아니지만, 테러리스트는 모두 이슬람이다' 라고 대서특필 했다.  이는 다분히 미국과 서구의 시선과 시각이 고스란히 담긴 지극히 편파적이고 혐오스런 표현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나는 이들에게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단정짓는 자들은 모두 정신병자거나 정신병자의 하수인들 이다' 라고 말이다.

  지구상에 벌어지고 있는 분쟁과 폭력은 이루헤아일 수 없을만큼 무수히 많이 있다.

  미국 영토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교에서의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이나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사살 사건들도 분명한 테러이다.  영국에서 벌어지는 아일랜드 분리독립 무장폭력 사건 또한 분명한 테러이다.  러시아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에 의한 무차별 폭력이 벌어지는것 또한 테러가 분명하다.  남미를 위주로 마약전쟁에서 파생되는 요인암살들도 모두가 테러이다.  아프리카 빈민국들의 독재자에 대한 무력 항쟁이나 민족 분쟁들도 다분히 테러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따지자면 지구 전체가 테러가 항상 테러가 자행되고 있는 전쟁터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서구 언론은 특정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을 중심으로하는 서구를 대상으로 벌어지는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의 행태에만 촛점을 맞추고 천인공로할 만행의 테러리스트들이라고 공공연하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지구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과 테러 중에서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에 의한 테러는 오히려 차지하는 비율이 그리 높지 않은것이 명백한 현실이다.  다만 그들이 벌이는 테러의 대상이 오로지 미국이라는데는 특별함이 있지만 말이다.

  지구상에서 현실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분쟁중에서 과연 서구인들 주장대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직접적으로 연계된 분쟁이 얼마나 있는지 심도있게 살펴 볼 일이다.  확실한것은 미국과 이슬람 급진주의자 극소수간의 대립과 마찰이 있었을 뿐이다.  그것을 국제사회적 분쟁이라 우기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것은 이해당사자가 드러난 확실한 다툼이자 분쟁일 뿐이다.  그러나 세상 도처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분쟁과 전쟁에 이슬람의 다수가 관여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이유야 어찌되었던  지구상에 벌어지는 거의 모든 분쟁과 다툼에 미국이 관여하거나 참여하지 않는 분쟁은 거의 없는것이 현실이다.  미국의 지나친 간섭과 오지랍과 교만과 제국주의적 발상들이 온 세상을 혼란과 폭력전쟁으로 치닺게 만드는 원인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저들을 하지도,  아니 할 생각 조차도 없는것이 냉정한 현실인 것이다.

  왜?  무엇때문에 어떻게해서 9.11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는지에 그들은 애초부터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이슬람 불순분자들에 의해서 비극이 발생했고,  수단과 방법을 가지지 않고 보복하겠다'는 마음뿐이었다.  테러를 막기 위해서 그들은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시민권자인 오사마 빈 라덴을 내놓으라고 엉뚱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남의 나라를 점령은 했지만 어디에서도 오사마 빈 라덴의 그림자 조차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지 이번엔 이라크를 쳐들어 갔다.  지금은 분명 적이 아니지만 좀 더 두고보면 장차 미국에 강력한 적으로 부상할것 같애서 미리 싹을 자르겠다는 실로 허무맹랑한 명분을 앞세워 전쟁을 도발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경험한 히틀러 같은 미친 전쟁광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가공할 만행을 서슴치 않고 저지른 것이다.  극소수의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이 벌인 테러로 선량한 미국시민 약 2천육백명이 사망했다.  이를 보복하겠다고 군대를 이끌고 9.11 사태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 아프가니스탄을 무작정 쳐들어가서 점령했다.  의미없는 전쟁의 결과로 패퇴할 때까지 무고한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이 수십만명이나 전쟁통에 사망했다.  사망한 미국인 희생자는 거룩한 죽음으로 추모되었으나,  수 십만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죽음은 불가항력적인 폐해사례였을 뿐이다.  누구도 책임을 묻지 않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이것이 위대한 미국이 내세우는 정의(正義)인 것이다.  아프간 피해자들의 남은 유족들은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그들도 사람이기에.......  존엄성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기에.........  죽은자의 숫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복수를 다짐한다.  그들이 판단하는 복수의 대상이 누구이겠는가?  전쟁을 동원해 폭력을 근절시키겠다는 서구의 전쟁광들이 뿌린 씨앗이 언젠가는 다시금 새로운 폭력의 형태로......  종국엔 반듯이 누군가에게 되돌아 가게 될것이다.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훌륭한 교훈중에 한가지가 바로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사실을 저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테러 근절을 위한 거대한 전쟁을 성공리에 끝냈다고 자축파티를 벌이고 했으나.......  테러는 결코 끝난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산 일로에 접어들고 말았다.  미국이 가졌던 승리에 대한 확신과 자만은 결국 아프간에서 철수하면서 벌어진 비극으로 댓가를 치루게 되었다. 2조 달러가 넘는 돈이 날라가 버렸다.  2.500명 이상의 젊은 목숨들이 산화했다.

  결론적으로 지구 최강의 위대한 미국군대가 또 패배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내다버린 M1 소총으로 덤벼든 베트콩에 의해서 최신예 전투기랑 헬리콥터들이 추락했고,  땅굴을 파고 덤벼드는 게릴라전에 견디다 못해서 바다로 내빼서 도망쳤었다.

  일주일 깜도 안될것으로 판단된 탈레반 게릴라전에 20년을 소탕전만 벌이다가 되려 역습을 당해 줄행랑을 치게 된 것이다.  바다가 없는 깊숙한 내륙이었는지라 가진거 탈탈 털어서 내팽개치고 맨몸으로 겨우 비행기타고 어메리칸 솔저들이 내뺀것이다.  미군이 줄행랑친 카불에 입성한 탈레반.........  게릴라전 무기밖에 없던 그들 앞에 최첨단 미제 무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한 군사전문 기자가 논평하기를..........  분명 '탈레반은 게릴라전을 겨우 벌일 정도의 군사력뿐이었는데,  이제는 하루아침에 웬만한 경제력을 갖춘 한 국가의 군사력을 갖추게 되었다......아니 거져 주웠다' 라고 논평했을 정도다.  미국을 상대하느라 터득한 게릴라 전술에다가 미국이 남기고 간 무기를 합치면........  그들의 테러 능력은 이제 상상을 초월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우리 속담을 잘 새겼어야 하는건데.........

 

 

 

 

 

 

 

 

동서 냉전시대의 세계지도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소비에트연방을 중심으로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동서냉전의 시대로 정착되었다.  흔히들 이를두고 냉전(cold war)의 시대라고 표현하는데,  여기에서의 냉전은 표현 그대로 소름돋거나 치를 떨게하는 참혹한 전쟁이 아니라 경제나 외교를 수단으로 하는 간접적인 전쟁을 뜻한다.  온갖 무기를 꺼내들고 참혹하게 치고받는 전쟁은 냉전이 아니라 열전(hot war)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마무시한 위압감으로 다가오던 '냉전시대' 라는 것이 실상으론,  미국과 소련이 금방이라도 요절을 내거나 파탄을 불러올것처럼 으르렁대고 씩씩거리기만 했지 사실은 몽땅 개폼이었다는 뜻이다.  어차피 미국이나 소련이 잔뜩 핵무기를 쌓아놓은 마당에 자기들 끼리 싸우다가 초가삼간을 다 태울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말이다.  대신 그들은 세상을 양분해 나누어 자신들 앞에 줄을 세워놓고 요리조리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끔 요리하면서  최상층 포식동물들이 누릴 수 있는 포만감을 향유해 나갔던 것이다.  194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의 '동서냉전시대'를 다른 말로 굳이 표현해 본다면 나는 '핵무기의 공포로부터 인류가 찾아낸 짧은  평화의 시간' 라는 조금은 아이러니하고 역설적인 표현으로 답하겠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무기의 위력을 절감한 모든 국가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미국 아니면 소련의 핵우산 아래 몰려들었고,  핵의 공포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참고 인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핵의 안전고리(안전핀)를 움켜 쥔 미국과 소련의 역활과 영역은 절대적일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이나 소련의 말만 잘듯고 시키는대로 잘 따르면......  적어도 핵이라는 재앙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핵무기만으로 양분된 세계를 언제까지고 마냥 지속해서 지배할 수는 없었다.  비록 실질적인 전쟁은 배제된 냉전의 시대였지만  미국은 미국대로 소련은 소련대로 자신들이 진정한 이세상의 지배자라는 인식을 끊임없이 심어주어야만 체제가 유지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들은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꺼내들었다.

  미국과 소련이 전면전을 벌이게된다면 그것은 스스로 뻔한 자멸의 길을 택하는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양대 제국은, 전면전이 아닌 지속적인 대리전(Proxy War)을 통해서 자신들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기업활동으로 위장한 정보기관(CIA.KGB)을 시켜서 상대국의 헛점을 파고드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소련에 붙어있으면서도 소련에게 불만이 있는 국가나 민족을 찾아내 CIA가 비밀 공작을 펼쳤다.  미국에 속해있으되 나름 피해를 극심하게 겪고있는 국가나 민족에 KGB가 접근을 했다.  반정부 인사를 찾아내고 비밀결사 조직을 돕고,  게릴라 훈련을 가르치고 무기와 비자금을 제공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분쟁을 양산시키기 시작했다.  냉전시대 지국상에 벌어진 모든 분쟁에는 반듯이 미국과 소련의 정보기관과 방위산업체가 끼어들어 있다. 겉으론 근엄한 냉전의 시대였지만,  속으로는 바로 그 양대 강국이 조장하고 저지른 국지전 성격의 대리전쟁의 시대였던 것이다.

  냉전시대와 함께 시작된 대단히 복잡했던 그리이스 내전이 있었고,  이어서 벌어진 동.서 베를린 사태와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이 냉전시대의 대표적인 대리전쟁이라 하겠다.  '통킹만 사건'으로 규명되는 미국의 베트남전쟁 참여 명분은,  그야말로 미국이 말하고자하는 정의(正義)가 얼마나 위대한 거짓이며,  테러 응징을 부르짓는 미국이 지구상에 벌어진 대부분의 분쟁에 실질적인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나타내 보여주고 있는 증거이다.  분쟁의 피해자가 갖는 분노와 외침이 테러가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분쟁을 조장하고 나아가 그 분쟁으로 인해 최대의 수혜를 보는 사람이 바로 테러리스트 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대리전쟁을 통해서 미국과 소련은 자국의 국내정세를 안정시키고 단합시켜왔고,  전쟁통에 급성장하는 다국적 방위산업체를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해 갔던 것이다.  자본주의 팻말과 자유시장경제 라는 허울좋은 명함을 내밀면서 다국적 방산업체는 합법을 가장하면서,  마치 중세시대 로마제국 군대를 오늘에 재현하고 있는것이다.  소련연방이 해체된 후에 급성장한 미국의 다국적 방위산업체의 자양분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지구상의 모든 분쟁인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에 전쟁을 벌여 쳐들어 갔다고 가정해 보자.(6.25 한국전쟁을 떠올리면서)

  미군 2만명이 전쟁에 참여했다면,  그 전쟁의 시작과 끝은 모두 미군에 의해서 주도된 전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미군 2만명이 참여했다면 대략 전투병력 1만에. 의료와 보급지원 부대가 1만명 정도로 편성될 것이다.  하지만......  이라크에서 전쟁에 관여하는 미국측은 군사력은 적어도 5만명 정도로 예측할 수 있다.  나머지 3만의 병력이 바로 미국 소유의 다국적 방위산업체의 직원들이다.  거의 대부분이 우수한 전직 군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미군이 사용하는 무기들.......  방산업체가 미국 본토에서 전투지역까지 택배로 배달해 준다.  의복도 무기도 비상식량도 모두 방위산업체가 생산해 택배로 납품해 준다.  물론 여기에는 위험성을 담보로 하는 특별운송비용이 첨부된다.  전투에 실제로 참여하는 헬리콥터, 특수장비의 정비사와 운전사까지도 비용만 지불하면 방위산업체에서 직원을 파견해 대행해 준다.  택배에 대리운전까지 모두 가능하다.  어디 그뿐인가?  높은 비용만 부담해 준다면 아주 뛰어난 용병들이 투입되어 전투를 대신해주기까지 한다.  이것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다국적 방위산업체의 막대한 자본력이 미국 정치가들의 든든한 후원금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세계가 평화롭게 되면 다국적 방위산업체들은 폭망하게 된다.  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아주 간단한 해결책은 후원금을 두둑히 안겨준 미국의 정치가들이 나서서 끊임없이 지구상의 어딘가에 반듯이 분쟁을 일으키고 미국이 관여하게 만들어서 직원도 파견하고 무기도 팔아먹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것이다.

  부시 부자가 2대에 걸쳐서 벌인 중동지역 전쟁의 내막에는..........  석유 확보,  그리고  거절할 수 없는 다국적 방위산업체의 강압이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정보기관과 다국적 방위산업체의 핵심 요원들이 세계를 누비며 창출해내는 모든 분쟁의 씨앗이야 말로.........  그것이 진정한 테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폭력을 근절시키겠다고 군대를 몰고가서 전쟁을 벌이면서도,  동시에 한밤중에 삥 돌아가서 그 반군들에게 무기를 팔아먹고 있는것이 미국의 백악관 수뇌들이었다.  그리고는 반군들이 미국의 젊은 아들 딸들을 죽게 만들었다고 대서특필한다.  미국의 젊은 아들과 딸을 죽인것은 더러운 돈에 눈이 먼 타락한 미국의 위선적 정치가들이 죽인것이다.  그들이 바로 테러리스트인 것이다. 

  지구상 어디에선가 분쟁이나 테러가 일어나서 뉴스에 대서특필되면  세상은 가장 먼저 백악관 대변인의 성명을 주시한다.  깊은 후려와 함께 조속한 후속조치로 사태 수습과 본래의 일상으로 평화가 회복되기를 기원한다는 항상.....  천편일률적인 성명서가 낭독된다.  하지만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그런 사태에 별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것은 우리 한국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인들의 관심과 시선의 높이가 미국 언론의 눈높이에 잘적응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혹여,  중동에 전쟁이라도 벌어져서 석유값이 치솟는 부정적인 사태만 아니라면 어디에서 무슨일이 벌어지던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하지만,  미국땅의 그 누군가의 입가엔 환한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게 누구일까?

  '강력한 응징(전쟁)을 통해서 무력을 근절시킬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이 있다.  그 응징에서 흩뿌릿 핏자욱 하나하나에서 복수를 다짐하는 전사들이 태어나고 있음에도 말이다.

  반듯이 뿌린대로 거두게 되리라.  더 늦기전에 새로운 방향을 찾지 않으면 말이다.

 

 

 

 

 

 

  20세기의 초엽에 서구는 아랍지역의 이슬람에게도 똑같이 이런 방법으로 접근을 해갔고 목적을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 나갔다.

  세상의 흐름에 동떨어진채 흩어져 유목민의 생활을 이어가던 이슬람에 다가온 서구 열강의 검은 손길은  점차 아랍지역을 갈등과 분쟁의 지역으로 만들어 버렸다.  낙후되었지만 오랜 세월동안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유지되어 오던 평화를 하루아침에 뜨거운 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영국과 프랑스와 독일과 네덜란드는 승리자였고 아랍지역의 모든 이슬람은 패배자였다.  침략자들은 아랍지역에서 서로간의 직접적인 정면대결을 한사코 회피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벌이면 미국과 독일이 큰 혜택를 볼 것이 뻔하고,  독일과 미국이 전쟁을 벌이면 영국과 프랑스만 좋아질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하여 이 잔인한 침략자들은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부족들을 앞세워서 재래식 대리전을 벌였다.  오아이스와 가축이 전부인 아랍인 부족들이 말과 낙타를 타고 몰려다니며 게릴라전 수준의 지역적인 소규모 전투를 지속했다.  서구 열강들의 꼬득임과 지원이 있었기에 그나마 가능한 전투였다.  지루하고도 허무한 소모전이 계속될 뿐이었다.  그 와중에 쓸모없어 오랜세월 내버렸던 사막에서 석유가 터지고 말았다.  서구의 열강들은 석유가 꼭 필요했다.

  열강들은 앞다투어 석유자원 확보 전쟁에 돌입했으며,  석유가 터진 지역마다 자기 국가에 우호적인 부족들을 중심으로 하는 왕조를 세우게하고는 중세방식의 봉건국가를 건설하게 했다.  그것이 중동에 우후죽순처럼 여러 국가가 들어서게 된 원인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는 아랍지역의 봉건국가가 왜 현대에 이르러 탄생했느냐?  그 또한 서구 열강들의 치졸한 노림수에서 생겨났다.

  20세기 이전에 중세식 봉건국가는 대부분 역사에서 사라졌다.  영국. 덴마크. 태국. 보르네오 등등의 명목상 봉건제 국가(왕)가 겨우 남았을 뿐이었다.  세계는 이미 민주주의 공화국이던 사회주의 공화국이던 새로운 정치체계가 들어섰고 완성되어가던 시기였던 것이다.  아랍을 침공한 서구열강 대부분이 이미 공화정을 새로운 시대적 정치체계로 완성시켜가던 20세기에,  자신들이 주도해서 세우는 중동국가들에 대해서는 구시대적 체계인 왕정시대의 복구라는 희안한 발상을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왜?  해답은.......  다루기 쉽게 하기 위해서 택한 고도의 방책이었다.

  석유가 나는 지역에 국가를 건설해주고 이후로 석유를 비롯한 온갖 이권을 지속적으로 빼가기로 계획했는데,  그 신흥탄생국이자 대상국인 공화제를 택한 민주국가라면  서구열강의 입김이 작용하기가 힘들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고 나름 똑똑한 인재들이 고루 등용된다면 침략자 입장에서는 상대해야하는 범위가 너무나 커지게 된다.  차라리 왕정국가를 세워서 좀 덜떨어지거나 뇌물과 향락에 쉽게 취하는 타락한 왕을 허수아비로 세워놓고서,  쉽게 부족한 왕의 서명만 받아낼 수 있다면  모든 일이 아주 수월하게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똑똑한 왕손이 태어나면 조기에 타락하게 만들면 될 일이니까 말이다.  자칙 공화제를 택해서 거듭거듭 똑똑한 지도자가 등장하거나 국민들을 설득해 강대국의 침탈에 반항하거나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실로 엄청난 손실을 보게될것이 너무도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느닷없이 중동에 거의 사라졌던 중세식 봉건왕조들이 무더기로 생겨난 것이다.  이란의 팔레비 왕조가 그렇게 탄생했고 역시나 미국의 보호와 장막속에서 잘지내다가 결국은 똑똑해진 국민들에 의해서 쫓겨난 경우처럼 말이다.

  미국은 아랍의 가장 너른 영토에 석유가 뿜어져 나오자 대단히 친미적 성향의 부족장을 골라서 사우디아라비아 라는 나라를 건설하게 했다.  그저 중동에서 미국에 우호적인 세력을 규합시키고, 미국의 지시에 잘 따르고,  중동 전체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석유의 분량이 절대적일만큼만 잘유지시켜주면 되는 것이었다.

  미국은 수십년에 걸쳐서 부패할대로 부패한 존귀하신 왕자들에게 일정한 배당금 형식의 달러와 다이아몬드와 롤스로이스를 선물했다.  더하여 최신형 항공기는 물론 전투기와 미사일까지 제공했고,  그 댓가로 엄청나게 싸게 석유를 마구마구 퍼갔다. 부패한 왕자들이 차지한 재산은 가히 천문학적 숫자였지만,  드러내지 않은 미국의 거대 석유재벌들이 차지한 막대한 이익에 비하면 그것은 실로 형편없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석유 1갤론이 30 달러 라고 가정해 보자.  이 석유 1갤론이 시추되어 항구를 통해 유조선에 싣기까지 대략 7달러라고 가정한다면,  미국은 그 유전의 소유권자인 타락한 왕과 합법적 계약에 의해서 시추에서 산유량까지를 모두 미국의 석유업자에게 위임해 주고 1갤런당 4달러에 가격책정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석유회사 소속의 유조선으로 하여금 원유를 있는대로 미국으로 퍼 날랐다.  운송과 정제에 12 달러가 추가되었다고 치자.  완성된 석유 1 갤론에 미국 석유회사는 16 달러를 들여서 30 달러에 팔게되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19 내지 20 달러에 만들어 30 달러에 팔게되는 것이고.  남들은 석유 1 갤론에 10 달러 안쪽의 이익을 남길 때,  미국은 14 달러 정도의 이익을 남긴다.  동시에 사우디 왕에게 판매 수익의 일부를 제공해야 하는데,  전 과정을 미국 석유기업 달랑 혼자서 총괄했기에 회계부정 또한 제맘대로다.  갤론당 14 달러를 남겨놓고도 겨우 갤런당 6달러의 수익을 냈노라고 통보한다.  여기에는 서구 석유회사들 끼리의 회계담합이 이루어진다.  그들도 상납금을 내야만 하니까.

  갤런당 6달러 수입의 13%를 사우디 왕에게 헌납 약속을 했으니.......  대충 잡아서 갤런당 1달러 정도의 로얄티가 부패한 왕조에게 꼬박꼬박 입금되었다.  그 돈으로 사우디 왕자들이 세계 시장의 큰 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무섭게 변해갔다.

  사우디아라비아인들도 세상 돌아가는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거대기업으로부터 어마어마한 돈이 꾸준히 사우디로 쏟아져 들어오는데..........  해외토픽에 툭하면 사우디 왕자들의 호화사치가 등장하는데............  이십년 전이나 삼십년 전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국민들의 생활은 달라지는 것이 하나도 없게된 것이다.  점점 살기가 팍팍해져만 가는 것이다.  '지들이 언제부터 로얄 피밀리였어?' '왕자들이 우리와 다른게 무엇이야?  지들이 도대체 한게 뭐가 있어?' '왕을 없애든가 자본주의 공화체제로 가자' 하는 목소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라이벌인 옆동네 이란의 팔레비 왕조가 40년 전에 무너지지 않았던가?  '부패하고 거들먹거리고 미국의 눈치나 살피느라 정작 제나라 국민을 업수히 여기는 왕정을 뒤엎어?' 하는 목소리가 극도로 팽배해 있는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러자 사우디 왕자들은 이번에도 미국에 손을 내밀었다.  다국적 방산업체에다가 말이다.  사우디왕가 궁전을 요새로 탈바꿈 시켰다.  최신 무기가 계속 들어간다.  다국적 기업 소속의 초정예 용병들이 파견되어 왕실가족의 경호를 담당한다.  다국적 군사기업의 군조련사와 기술자들이 파견되어 왕실 수비대와 경찰들을 지도 훈련시킨다.  국민들의 원성과 불만이 터져나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경찰과 군대를 파견해 탄압하고,  주동자들을 색출해 감옥에 가두고 온가자 고문을 자행하고 있는 현실이다.  가히 부패왕국의 종결판이지 싶다.

  국민들의 땀과 피를 요구하는 사우디왕조의 파행 배후엔 바로 미국의 거대 군산복합체 기업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부피하고 타락한 사우디 왕가를 비판하던 국민들의 원성이  점차 배후에서 이 모든 사태를 조장하고 있는 미국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그런 시각을 가진 사우디아라비아인 중의 한 명이 바로 (오사마 빈 라덴) 이었다.

  오일달러의 축복이 모든 국민이 피부로 느껼질 수 있을만큼 따스하게 다가온 것이 아니라,  사우디왕가 사람들만의 배를 불리고 호화 사치향락의 도구로만 쓰여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소수의 탐욕과 권력유지를 위해 민주화와 자유시장경제를 억압하고, 더 나아가 이것이 코란에 쓰여진 바 대로 알라의 뜻에 합당한 처사인지에 대하여 진한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때 사우디아라비아인들의 머리에 떠오른것이 바로 '이슬람 원리주의' 였으며, 이것이 점차 '와하비즘(Wahhabism)' 이라는 이슬람식 사회 계몽운동으로 발전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와하비즘은 도대체 무엇인가?

  서구인들은 왜 와하비즘을 '만악의 근원' '악의 축' 이라고 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일까?  서구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목소리나 태도를 보면 마치 동서 냉전시대의 '마르크시즘'을 대하는듯한 태도를 엿볼수 있기 때문이다.  와하비즘이 자유시장 경제속의 민주주의를 위협할 정도로 인류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마치 세상의 모든 분쟁과 테러에 와하비즘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투로 하나같이 공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서구인들은 와하비즘을 경계하고 폄하 훼손 시키고 와해시키려 기를 쓰고 있는가?

  와하비즘을 나름 살펴보았지만  어디에서도 서구인들이 치를 떨만한 요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와하비즘은 결코 전체 이슬람을 대변하는 교리도 아니며, 사상이나 가치기준도 아니다.  오히려 이슬람 세계 자체내에서 호된 비판과 멸시와 천대를 받기까지 하고 있는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무슬림 안에서 뜨겁게 관심을 받아 온 계몽운동 성격인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결코 대다수의 이슬람 정신을 대변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극단적일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서구인들의 시선과 가치관이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내가 알고있는 와하비즘을 다른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한다면 나는 한가지 예로서 이를 설명하겠다.

  '(와하비즘)은 대한민국의 역사속에 들어있는 (3.1 운동 정신)과 같은 것이다' 라고 말하겠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펼치는 민족자결 운동의 일환인 것이다.  민족의 자주독립을 열망하는 민족정신의 발로인 것이다. 우리에겐 3.1 운동 정신이 있었고,  아랍인들에겐 와하비즘이 이었던 것이다.

  그런 자주독립의 열망을 간직한 사람들 대부분이 평화적인 독립을 추구했지만  거저 주어지는 평화와 독립이란 역사가 생겨난 이후로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것이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런 정신을 이어받는 극히 일부의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무장투쟁의 길을 걷게되었다.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같은 의거자에서 대대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한 광복군이 그들이다.  일본제국의 압제에 항거한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과 행동으로 드러낸 투쟁을 모두 테러라고 규정짓는다면 우리는 과연 받아들일 수 있는가?   독립투쟁과 테러의 구분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는가?

  와하비즘도 그러했다.

  이슬람 신학자이자 종교가인 '무하마드 이븐 압드 알 와하브(Muhammad ibn Abd al Wahhab)'는 외세의 침략 앞에 무력하게 주저앉아 처참한 식민지인으로 전락한 무슬림들을 바라보면서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찍 근대화를 이룬 서구유럽은  압도적인 물리력을 앞세워 아랍지역을 야금야금 식민지화 하는데 성공하고 있었다.  수세기 전만해도 유럽은 이슬람에 비하자면 비문명화된 원시나 마찬가지였다.  몇세기만에 상황이 역전되어 발전된 서구문명을 앞세워 물리적 침략을 감행해온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어떻게 하면 이슬람이 과거의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와하브가 찾아낸 해답은 자기반성 이었다.  이슬람 세계의 종교적 타락과 생활의 나태함이 지금의 모든 비극을 낳은것이라 판단했다.  와하브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찾아다니며  이슬람의 타락을 비판하고 경건한 삶을 외쳤다.  예언자 모하메드와 정통 칼리프들이 다스리던 초기 이슬람 시대의 정신을 되찾고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와하비가 주창한 이슬람의 자기반성 계몽운동이 무슬림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 '와하비즘' 이다.  그는 이와 관련된 책을 몇 권 써내기도 했다.  그게 전부다.  자기반성을 통해 이슬람은 본래 가치와 경건함을 되찾게되면 서구문명을 앞세운 외세의 침략 앞에서도 당당하게 본래 이슬람의 모습을 되찾고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와하비는 더도 덜도 아닌 그냥 한 명의 이슬람 학자였을 뿐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와하비가 식민지 시민으로 전락한 무슬림들을 바라보며 처음 운동을 시작하던 시기의 척결해야 할 대상은 서구유럽의 열강들도 아니었다.  와하비가 생각한 극복해야 할 대상은 바로 오스만 투르크 였다.  지금의 터키였던 것이다.  제국으로서의 위용을 모두 잃은 몰락 직전의 오스만 제국이었지만,  분명 명실상부하게 당시 이슬람 세계의 구심점이자 통치자는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이었기 때문이다.  수니파 이슬람의 종주국이었다.  

  앞서서 이슬람은 수니파와 시아파로만 구분해서 될 일이 아니라,  민족적 언어적 의미의 아랍계. 페르시아계. 오스만 투르크계로도 나뉘어 살필 수 있어야만 제대로 이해가 된다고 설명한 바가 있었다.  오스만 투르크가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면서 투루크계 수니파의 술탄이 이슬람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지배방식은 이슬람 전통에 따른  예언자 모하메드와 칼리프 시대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오랜 시간 오스만의 군사력과 통치력에 눌려 뿔뿔히 흩어져 유목생활에 치중했지만,  오스만이 몰락해 가면서 유럽 열강과의 세력다툼에서 계속 밀려나고, 아랍지역까지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지자.........  와하비가 나서서 종교적 타락과 부패를 척결하자고 외쳤으니,  그 대상은 바로 오스만 투르크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무기력해진 오스만은 서구열강의 침략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서구열강은 전체 이슬람을 자신들 입맞과 방식으로 식민지화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압제와 약탈이 심각해지면 심각해질 수록 피압제자로 전락한 무슬림들은 하나 둘 저항정신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저항정신의 시작은 자기반성을 우선한 와하비즘이 되어갔던 것이다.  이제 이 저항정신은 오스만 투르크 지역을 벗어난 전 아랍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이 시기에 와하비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비젼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진정으로 이슬람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더이상 오스만 투르크에 의존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오스만 투르크가 아닌.........  아랍의 정통적인 이슬람을 이룩하고 지켜나갈 새로운 개념의 존재로 하나의 국가를 생각해 낸 것이다.  이 시기의 역사적 배경을 실제적으로 담아낸 영화가 바로 (아라비아의 로렌스) 이다.  물론 서구의 사관과 시선으로 만들어진 영화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의 곳곳에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아랍지역의 역사와 진실을 약간씩은 엿볼 수 있는 아주 귀중한 자료이기도 한 것이다.  서구열강의 탐욕과 침탈이 펼쳐지는 영상을 슬쩍 뒤집어 보면 피압제자들의 심정을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영화속에서 아라비아 로렌스(피터 오툴)의 옆에서 정치에 크게 관심을 보이면서 나아가 아랍의 독립과 국가를 염원하는 인물(오마 샤리프)을 보게 된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  정통 이슬람의 부활을 염원하는 학자와  이슬람의 부활을 새로운 정치 체계를 통해 이루고 싶은 행동하는 투사(역사는 이븐 사우드라고 기록한다)가 만난 것이다.  와하비즘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용맹한 투사인 '무하마드 빈 사우드 알 무크린(Muhammad bin Saud Al Muqrin)'은 마침내 아라비아 반도 남쪽에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게 되었으니 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로 흔히들 '사우드 왕조' 라고 부른다.

  와하비즘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탄생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하지만 지금 사우디 왕조는 와하비즘과의 연결을 극도로 회피한다.  왜?  시대가 변해도 너무나 이상하게 변했으니까.  우리가 흔하게 해외토픽에서 보는 사우디 왕세자들의 호화 사치와 방탕이  바로 와하비즘의 최대 적이기 때문이다.  사우디 왕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적대적 시선을 가진 낙후된 생활의 무슬림들 마음속에 와하비즘이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오스만 투르크의 타락과 부패 앞에 무력해진 틈을 타서 서구유럽의 외세가 이슬람을 침략하고 식민지화 시켜 버렸기에 전개된것이 와하비 운동 이었다.  사우드 왕조의 타락과 왕세자들의 탐욕속에 미국의 침략과 식민지화로 무슬림들의 생활이 파탄되는 지경을 맞게되자,  사우드 왕조의 존폐 필요성과 미국타도의 기치아래 와하비즘이 다시금 팽배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미국과 서구의 시선은 와하비즘이라면 치를 떨고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럴때마다 서구 언론은 극소수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벌이는 테러의 배경으로 와하비즘을 끌어다 연계시키는데 혈안이다.  모든 분쟁과 테러를 와하비즘의 책임으로 떠넘기고자 하는 것이다.

  왜 테러가 생겨나게 되었으며,  긍국적인 해결을 위해 과연 서구가 무엇을 해야하는 지는 망각한 채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덮어씌운 뒤, 무자비한 폭력을 수반하는 전쟁놀음에만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와하비즘에서 모든 테러가 양산된다는 주장은 그 잘난 서구인들의 치졸한 거짓말이다.  테러는 무자비한 서구의 식민지 침탈과 약탈과 잔혹한 살륙에서 태어난 것이다.  서구인들이 와하비즘에 치를 떠는 이유는....... 아랍지역의 무슬림들이 하나로 뭉쳐진다는 사실을 두려워 하기 때문인 것이다.  하나로 뭉쳐지는 무슬림들의 정신속에 자기반성을 토대로 새로운 이슬람으로 거듭나자는 열망들이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이 하나로 뭉쳐서 제목소리를 내고,  미국이나 서구에 대하여 예스와 노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상황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서구인들 마음속에도 자기반성과 공생공존을 바라는 열망과 상대에 대한 배려와 최소한의 베풀려는 마음이 있다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인류는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이......  제국주의의 단맛에 푹 절어본 사람들에게는 보다 강렬한 탐욕과 극단의 쾌락을 추구할 뿐  더불어 살 생각이라는 개념 조차도 희박하다 하겠다.  르네상스 시대의 한 시인이 말했던것 처럼..........  '백 년도 못사는 것들이 마치 천 년을 살 것처럼 행세한다'는 비판은,  곧 '로마도, 페르시아도, 몽고도, 소비에트 연방까지.....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과 '언젠가는 뿌린대로 거두리라'는 교훈을 이제라고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무하마드 이븐 아브 알 와하비와 사우디 왕가의 초대 국왕 무하마드 빈 사우드 알 무크린.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에서  베두인을 시작으로 이슬람의 부활운동(와하비즘)을 벌여 마침내 사우디아라비아를 건국하였다.

 

당시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 포스터.

 

아라비아 로렌스 소령은 영국군의 실존인물 이었다.

 

 

 

 

 

18 세기 이슬람 세계의 지배자는 분명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이었다.  투르크족 출신의 수니파 지도자가 모든 이슬람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었다.  아라비아 반도의 드넓은 사막지대는 분명 오스만의 술탄에 속한 영역이었지만 이 불모의 사막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여기저기 흩어진 오아시스에 최소한의 베두인부족들이 근근히 상인이나 목동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흩어져 있는 베두인들은 이미 무슬림으로 개종한 뒤였지만, 너무나도 척박한 환경탓으로 오스만 조차도 이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스스로 포기할 정도였다.

  그런 불모지에 한 사람이 나타나 이슬람의 종교적 부활에 대하여 주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신은 오직 알라 한 분이시며,  모든 이슬람인은 코란에 기록된바 처럼 하나이신 신을 온전하게 섬겨야 한다.  또한 모든 무슬림은 에언자 모하메드의 계시가 세워놓은 율법에 절대 복종해야만 한다.  예언자 모하메드의 메디나 시대가 보여준 초기 무슬림들의 생활방식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 초기 무슬림들이 세워놓은 성스러운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것이 누구라도 신의 이름으로 제거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시의 와하비가 주장한 '신의 이름으로의 제거'는 어디까지난 이슬람 자체내의 부패하고 타락하거나 배교한 사람들에 대한 자체 정화의 의미를 담았는데,  이 주장과 상황이 아랍의 정적으로 점차 부상했던 오스만과 영국을 거쳐 차후의 미국을 중심으로하는 서구의 관점에서는 '이슬람을 제외한 모든 이교도 세력'으로 왜곡하고 확대 재해석함으로써, 마치 테러리즘의 근원인것 처럼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와하비즘은 본질은 어디까지나 자기반성과 자체정화를 본질로 시작된 사회계몽운동 이었음에도 말이다.

  와하비즘은 무슬림들의 정신은 물론 생활전반에 걸쳐 철저한 자기반성을 지나칠 정도로까지 강요했다.  특히 우상숭배 금지에 대한 지나친 해석과 집착은 초기부터 이슬람 세계에 많은 우려와 비판을 자아냈다.  초기의 베두인들 조차도 이미 자신들이 무슬림이었음에도 새로운 종교적 가치관으로 짖눌러오는 와하비즘에 대하여 비판적이거나 거부반응을 보이기까지 했다.  와하비즘을 받아들인 개혁성향의 부족장인 이븐 사우드가 그려나가는 꿈은 '아라비아 반도의 통합' 이었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통합은 다분히 '정복' 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정복'을 통한 '아라비아의 대통합'이야 말로 '새로운 이슬람 세계의 건설'이라는 원대한 꿈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부족 중심의 이슬람 세계는 국가라는 새로운 개념을 아직 수긍하지 못하였고,  와하비즘 이라는 것이 한 학자의 주장일뿐,  이슬람의 본질 자체는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아울러 거기에는 거대 세력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이븐 사우드에 대한 견제심리와 그가 동조하는 와하비즘에 대한 거부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 와하비 운동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와하비즘' 이라고 불리며, 처음엔 오스만투르크에 의해서 질시와 경계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이슬람 세계 대부분이 관심을 갖거나 호응을 보이는 대대적인 운동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한,  아랍의 식민지 경쟁에 뛰어든 영국과 프랑스와 독일로서도 와하비즘이 자칫 이슬람 민중들의 저항정신으로 번질까바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1766년 아라비아의 대통합을 추구하던 개혁가 이븐 사우드가 암살 당했다.  하지만 암살을 거행한 적들의 바램과는 다르게 이븐 사우드에게는 아비 못지않은 현명한 아들이 있었다.  이븐 사우드의 아들 압둘 아지즈가 와하비즘을 계승 발전시키며 아라비아 반도의 통일을 실현시켜 나갔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1792년 이븐 와하비가 사망했다.  와하비가 사망하였음에도 순수한 이슬람이라는 그의 비젼은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전 이슬람 세계에 퍼져나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시기에 세상도 많이 변하고 있었다.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와 합병되어 대영제국이 탄생했다.  그리고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국제사회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프랑스 혁명가들은 자유. 평등. 박애의 인권 선언을 했으며,  제임 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이 산업혁명은 보다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하게 만들었고,  이를 위해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 약탈 전쟁이 극한까지 펼쳐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촉발한 이 대변혁의 시기가 채 아직 멀고 먼 사막의 아랍인들에게는 너무나 동떨어진 꿈결같은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아라비아를 통일한  압둘 아지즈는 스스로를 에미르(amir) 라고 칭했다.  에미르는 '총사령관' '총독'의 의미를 가진 말로써,  이로써 아지즈는 자신이 아랍인들에 의한 순수한 이슬람의 진정한 통치자임을 천명한 것이다.  이는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에 대응하는 직위에 올랐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진정한 이슬람은 예언자 모하메드와 3명의 정통 칼리프가 이끌던 아랍인들의시대로 반듯이 돌아가야 한다는 정통성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여전히 아지느는 와하비즘을 신봉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1802년 압둘 아지즈는 군대를 이끌고 시아파의 성지인 카르빌라를 침략했다.  예언자의 손자이자 4번째 칼리프였던 알리의 아들인 후세인이 순교했던 장소였다.  와하브가 남긴 교훈중에는, 시아파가 본래의 이슬람을 변형시키고 부패시킨 장본인이라고 적혀있었다.  압둘 아지즈는 이 가르침을 실행에 옮기고자 했던 것이다.  압둘 아지즈는 카르빌라를 침공해 파괴하고 시아파 약 2.000명을 그자리에서 학살했다.

  여세를 몰아 성지 메디나를 침략했으며,  군대를 시켜 초기 예언자 모하메드의 측근들 무덤을 모조리 파괴했다.  이어서 성지 메카를 점령하고는 예언자 모하메드의 생가에 건립된 사원을 철저하게 부숴버렸다.  코란은 우상숭배를 절대 금지하고 있으며,  설사 예언자 모하메드라 하더라고 우상으로 섬기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메카의 카바 신전에서만은 겸손하게 코란에 적힌바 대로 순례자의 의식을 거행했다.  실질적인 아랍세계의 맹주로 부상한 압둘 아지즈는 이제 서서히 소아시아 지역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곳은 모든 이슬람 세계의 실질적 통치자인 술탄의 직접적인 관할지역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이것은 명백한 도발이자 도전이었다.  그때까지 늘 승승장구해 오던 아지즈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드넓은 세상에 저마다 한가닥씩 하는 빼어난 인재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신께서 늘 아지즈의 승리를 지원하고 계신다 믿고 있었지만........  적어도 이번 싸움에서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비록 하루가 다르게 급격하게 몰락해 가는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었지만  그에게는 아직도 충성스러운 부하가 조금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압둘 아지즈와 그의 군대가 이룩한 용맹을 전해들은 술탄은 고심끝에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술탄에게는 오스만 제국에 대한 남다른 충성심으로 똘똘 뭉쳐진 노련한 장수가 아직 남아있었던 때문이다.  술탄은 이집트 총독으로 파견되어 있던 모하메드 알리를 불러들여 소아시아를 건너오는 베두인 군대를 막도록 명령했다.  술탄의 명을 받은 모하메드 알리는 자신의 최정예 군대를 이끌고 아라비아 반도로 진군했다.  연전연승의 여세를 몰아 급격하게 몰아닥치는 압둘 아지즈의 군대를 유인하여 고립무원의 지역에 가두어 놓고는 돌아가면서 양파를 하나씩 벗겨내듯이 도륙하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전투가 펼쳐졌을 뿐이었으며  아랍의 군대는 완전하게 궤멸되었다.  오스만의 완벽한 승리였다.

  압둘 아지즈는 모하메드 알리의 포로가 되어서 밧줄에 묶인채 이스탄불로 끌려갔다.  이스탄불 군중들의 조롱속에 끝내는 참수형으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븐 사우드 왕가는 2대 만에 단절되었고, 베두인 중심의 아라비아는 다시 오스만 투르크에 편입되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라비아 왕국은 사라졌고 사우드 왕가도 몰락했고 와하비도 죽었지만........  와하비 운동은 여전히 살아 남았던 것이다.  사우드 왕가의 서슬시퍼런 권력이 여전했을때도 지탄과 비난을 무수히 받았던 모하비즘이 어지된 일인지 사우드 왕가와 와하브와 아라비아 왕국이 모두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살아남아서 무슬림들의 가슴속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와하비가 저술한 책 '키타브 알 타우히드(통합의 책)'에 66개의 장으로 수록된 와하비의 생각과 주장 뿐이었다.  그나마 그의 글에는 정치적인 내용이 전혀 없었다.  코란에 대한 주석과 이슬람의 교리와 법률과 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아주 세세한 사항까지가 기록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어디까지나 지극히 그의 주관적인 생각과 주장일 뿐이었다.

  자신의 주장에 오히려 정치적인 생각이나 색채를 완전히 뺏다는 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 것일까?

  '율법이 곧 이슬람이며 이슬람이 곧 율법'이라는 와하비의 주장은 지속적으로 모든 무슬림들에게 커다란 울림으로 작용했다.  올바른 무슬림이 되기 위하여는 우선 올바르게 이해하고 점차 완전하게 알아야 할 것이며, 다음으로는 정확하게 따르는것만이 신앙의 전부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와하비의 주장들은 점차 좀더 구체적으로 가다듬어 졌으며 시대 변화에 맞게끔 새로운 교의가 추가되기도 했다.

 < 이슬람에 있어서 인생의 목적은 오로지 율법에 따르는 것이다.  그 바탕 위에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삶의 목적으로 율법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는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다.(참으로 쉬운 듯 하면서도 더더욱 어려운 난제로 느껴짐)  이상적인 공동체 건설의 위대한 과업을 훼방하는 자는 그 누구이던지 모두 이슬람의 적이다.  무슬림의 의무 중에는 이슬람의 적들을 무찌르기 위한 투쟁인 지하드에 참여하는 것도 신성한 의무에 포함된다.  기도와 단식과 자선과 순례와 더불어 신의 유일성을 증언하는 것 만큼이나 지하드 역시 모든 무슬림의 신성한 의무이다. > 라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와하비즘의 정체성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가장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이겠는가?  와하비즘의 정체성이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규명된 이상 그것이 우리에게......  혹은 서구 중심의 비이슬람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것인지를 살펴 볼 필요가 대단히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를 에둘러 말 할 필요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제기한다면 바로 이렇다 하겠다.

  '그렇다면 누가 이슬람의 적인가?'

  '와하비즘이 자하드를 통해서라도 제거해야 한다고 지목하고 있는 이슬람의 적(敵)은 과연 누구인가?'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정치가들과 언론이 앞다투어 와하비즘을 모든 '악(惡)의 근원' '악의 축' 이라고 지목하면서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테러리즘의 배후가 와하비즘' 이라고 연일 확대해석과 비판을 일삼고 있는 '망상적 피해자 고스프레'를 떨고있는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만 할까?  어쩌면 서구의 제국주의적 폭력 수단인 전쟁의 합리성을 포장하고 치장하기 위해서라도,  극소수 극단주의자들의 폭력적 행위를 극단의 테러리즘으로 몰고가려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며 이율배반적인 국가차원의 가증스러운 만행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떤 폭력이던.......  이 세상에 정당하고 유익한 폭력이란 있을 수 없다.  좋은 폭력과 나쁜 폭력을 내세우고 주장하는 사람이 바로 무지막지한 양아치 폭력배이다.  '폭력을 없애기 위하여 거대한 폭력(전쟁)을 감행한다'는  미국 정치가들의 발상과 실행은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있다고 우기던 중세 교황들의 행위와 영판 쏙 닮았다.

  미국과 서구의 정치가아 언론들이 이렇게 엎어씌우기로 나올것을 와하비는 알았음일까?

  노련한 이슬람 율법학자는 와하비즘을 피력한 자신의 저서에서 이부분에 대하여,  와하비즘이 적으로 규정하는 자들에 대해서 분명하게 기록을 남겨 놓았다.  서구의 뻔뻔함을 미리 예견한 것처럼 말이다.

  '이슬람을 믿지 않는 이교도들을 잠재적으로는 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실제적이거나 심각한 적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이슬람의 교리가 이교도에게 강제적으로 배교를 강요할 수 없게 되어있듯이,  비록 이교도라 할 지라도 무슬림의 규율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평화롭게 더불어 사는것에 동의만 한다면 그들과의 관계는 같은 무슬림끼리의 관계와 다를 바가 없다.  진정한 이슬람의 적은 바로 (태만한 자), (변절자), (위선자), (부정한 혁신론자) 이다.' 라고 적어 놓았다.  어디에도 기독교인 이기에, 미국인 이기에, 유럽의 백인 이기에 지하드를 통해서라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오히려 평화와 공생과 공존을 이상적인 목표로 설정해 놓고 있는 것이다.

  와하비즘이 생겨나서 세상에 퍼져나가기 시작했을때,  그 시기에 태만한 자, 변절자, 위선자, 부정한 혁신론자로 지목되고 적(敵)으로 제거대상이 된 사람들은 바로 오스만 투르크(터키)의 통치자들이었던 것이다.  같은 이슬람 내에서 자기반성과 자각적 혁신을 요구했던 것이다.

  '태만한 자'는 말만 앞세우면서 행동하지 않는 비겁한 이슬람인을 가리켰다.  기도 할 시간에 파티를 벌이고 사냥을 즐기며 점차 서양인들의 풍습을 배워나가는 이스탄불의 오스만 투르크 지도층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변절자'는 무슬림으로 태어났지만 서구인들의 풍습에 젖어 출세와 향락을 위해 이슬람을 저버린 사람들을 가리켰다.  코란을 암송하고 있지만 서구인 처럼 행세하기를 좋아하고,  유사시엔 이슬람 공동체를 배반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잠재적인 배신자들이다.

  '위선자'는 소위 서구를 위해 숨어서 일하고 있는 간첩들을 가리켰다.

  '부정한 혁신론자'들은  바로 오스만 투르크의 통치계급을 지칭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과 편리함을 위해서 숭고한 이슬람 율법을 자꾸만 뜯어 고치려는 자들을 가리켰다.  필요에 따른 율법의 수정은 곧 이슬람을 타락으로 몰고갈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와하비즘이 적으로 삼고 경계하는 것들은 모두가 이슬람에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자기반성과 자체정화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수니파와 시아파가 따로 구분되지 않았다. 사파비 왕조가 분해되고 와하비가 사망하면서 사라질것으로 예견되었던 와하비즘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모든 이슬람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유목민족인 아라비아 사막의 베두인을 중심으로 처음 시작된 와하비 운동의 사고 방식과 열정은 마침내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서 전파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인도지역에서 크게 번성했다. 이과정에서 배교자에 대한 처우방식이나 지하드를 받아들이는 자와 받아들이지 않는자 등의 여러 부류로 나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와하비주의자 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는 '이슬람의 핵심은 율법이며, 율법이야 말로 이슬람의 전부다' 라고 하는 공통분모를 모두가 가슴속 깊이 담고 있었다.  그 율법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생활공동체가 무슬림이며, 진정한 무슬림의 삶의 원형은 알라께서 축복해 주신 예언자 모하메드가 실천한 메디나 시절의 이슬람공동체가 모범적 사례였으며, 와하비즘을 실천에 옮겨 적어도 네 명의 정통칼리프가 이끌던 시대로 되돌아 가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와하비즘이 모든 테러리즘의 배후에 있다?'

  '이슬람이 모두 테러리스트는 아니지만,  테러리스트는 모두 이슬람이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이런 무지몽매한 주장들이 서구인들의 시각에서는 당연한것처럼 받아들여 지는 것일까?  극소수의 무장투쟁단체가 바로 미국과 서구 열강의 침략과 약탈과 무고한 시민을살륙함으로써 그 결과로 인해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저들을 전혀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깡짜를 부리는 것일까?

  서구의 방산업체들이 호황을 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산업체가 숨어서 지구 곳곳에 분쟁과 소요를 만들고 테러를 양산시키고는 그 테러를 진압하고 근절시키기 위한다고 군대와 최첨단 무기를 싸들고 쳐들어가 전쟁을 벌인다.  그렇게 방산업체가 벌어들인 달러의 상당액수가 미국의 정치권에 흘러들어 간다.  짜고치는 고스톱 내지는 패륜적 전쟁 도발 행위에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매번 정당성을 보장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21세기에 진행중인 인류의 역사다.

  오사마를 잡겠다고 쳐들어간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 동안 1조 달러를 쏟아부으며 왕초 노릇만 일삼다가 패가망신을 당하며 쪽팔리게 도망치는 미군들의 모습이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웠다.  1조 달러를 쏟아부으면서도 도로개설 포장도 못했고,  대형 병원과 학교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  발전소를 건설하고 전기를 끌어다가 도심에 가로등과 수도시설 조차도 하나도 하지 못했다.  1조 달러가 모두 어디론가 증발해 버렸다.  2.500명의 미군이 사망했다고 통렬하게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30만 명의 무고한 아프간 민간인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사과도 없다.  무조건 모든것이 탈레반 책임이라는 말 뿐이었다.

  아프간을 10년 동안 탈탈 털었지만 끝내 오사마를 찾아내지 못했다.  엉뚱하게도 오사마는 미국에 우방이자 적극적 지지자였던 파키스탄엣 발각되었고 처리되었다.  그랬음에도 그후로 다시 10년을 아프간에 죽치고 들어앉아 왕초 노릇을 미국이 했다.  아프간 20년 동안 미국이 한 일은 무엇이 있을까?  4명에서 5명째 대통령이 바뀌어 가면서 미국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인류에게 치명적인 생화학무기를 이라크가 가지고 있다고 오로지 쳐들어갈 생각만으로 일관한 부시의 미국은 세계 여러나라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이라크를 쳐들어 갔다.  이라크를 박살을 내고 나서 미국 주도의 사후 사찰단이 조사에 들어갔지만,  끝내 치명적인 무기는 하나도 발견조차 되지 않았다. 뻔뻔한 부시는 변명하기를 '생화학 무기가 당장 이라크에 있다고 이야기 한 적은 없다.  불량국가인 이라크가 언젠가는 반듯이 치명적인 생화학무기를 개발해 보유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장차 언젠가 미국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부득불 예방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 입장에서는 정당한 전쟁이었다' 라고 발표했다.  한 마디로 규정짓는다면 '부시는 개새끼다.  부시 부자가 다 도그다' 라고 나는 당당하게 외칠 수 있다.

  번번히 있지도 않은 적을 만들어 무기를 싸들고 쳐들어 간다.  전쟁에 미친놈들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다국적 방산업체가 만들어 잔뜩 쌓아놓은 무기를 소진하여다시 일거리를 창출하고,  그렇게 사태를 만들어 주어야 워싱턴에 든든한게 자금이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가만히 두고보면 언젠가 커다란 적으로 성장할 것 같아서 미리 싹을 싹뚝 자르려고 전쟁을 통해 미연에 방지한다'는 말을 서슴치 않고 뻔뻔스레 내 뱉는 부시 부자다. 그러면서도 '핵무기를 이미 가졌으니 배째?' 하는 북한을 앞에두고는 어르고 달래기에 여념이 없다.  북한의 핵을 문제 삼으면서 미.영.불.소.중은 연일 신형 핵무기를 개발하고 비축 수량을 늘려간다.  약소국의 핵무장에는 온갖 압력과 폭력을 서슴치 않고 자행하면서도,  이스라엘이 보유한 약 200여기의 핵무기에 대해서는 무관심 무대응이다.  미국이 수시로 꺼내드는 비장의 카드인 '핵사찰' '핵 확산 방지조약'에서도 이스라엘은 언제나 면제다.

  이것이 미국의 시각이고 미국의 진면목이다.  서구는 그런 사태에 완전한 공범이다.

  지구상에서 분쟁과 전쟁이 사라지고 나면..........  전쟁광들이 유지하고 있는 미국이라는 거대제국은 즉시 소멸된다.  전쟁 때문에 먹고 살면서도.......  평화를.......  핵무기 감축과 인류의 공존과 번영을 외치는 나라가 팍스 아메리카이며 유럽은 그 끄나풀들이다.  그들의 횡포에 못지않은 폭력성을 갖춘 중국이 도전하고,  전력의 열세를 만회하려고 인도를 끌어들였다.  동서냉전의 붕괴로 주저않았었지만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소련의 추격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  아랍지역의 분쟁과 중앙아시아 신생독립국들의 이해다툼이 심상치 않고,  내전과 분쟁의 아프리카는 10년 후를 예측불허로 만들어 가고 있다.

  자원의 고갈과 환경 문제와 30년 후면 극에 달하게 될 물부족 사태는 인류의 앞날을 불안하게만 이끌어가고 있다.

  암울한 인류의 미래에 관한 문제를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모두 뒤흔들어 놓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닌것이다.  오히려 미국과 서구의 야만적 약탈행위가 세계를 분란으로 쓸어넣고 있나고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도 매사에 '미국의 국익'을 내세운다.  미국의 국익만을 오로지 우선하겠다는 발상은 곧 미국이 아닌 모든 이해당사국의 손실 강요를 전제로 한다는 강대국의 횡포임을 초지일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속에서 '장남이 재산에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그 집안은 당연히 폿삭 망하게끔 되어있다' 라는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이야기가 있다.  미국이 지나치게 욕심을 내면 중국이 인도가 러시아가 가만 있겠는가?  그럼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들은 어쩌라고?

  나는 미국의 일방적 처사를 규탄한다.  서구의 둘러리도 싸잡아 규탄한다.

  그들의 그릇된 가치관과 언론플레이 대로 와하비즘이 미국에 엄청난 피해와 인류의 미래에 거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면........  현실적으로 정말로 와하비즘이 서구에 치명적 타격을 입힐 수 있다면.........  서구의 못된 버릇을 고치는 부분적 가능성에 대하여는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고픈 심정이다.

  세상이 어지러운것은 와하비즘이라기 보다는...... 그릇된 서구의 가치관과 욕망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찌보면 와하비즘은 작은 시작이었을 뿐이다.

  이슬람의 근대화는 이제부터다.

 

  이슬람의 개혁에 대한 열망은 결코 와하비 운동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사이이드 아마드에 의하여 알리가르 운동이 새롭게 벌어졌는데, 이는 이슬람의 세속 근대주의를 지향하고 있었다.  와하비즘이 이슬람의 전통에 준한 율법 준수를  최고의 덕목으로 요구한데 반해서,알리가르 운동은 전통은 고수하되 유럽인들과의 교류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조금은 열려있고 어느정도의 타협이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무슬림에 의한 이슬람 세계만이 전부가 아니라, 이슬람이 아닌 비이슬람적인 세상과 소통과 교류를 해야만 하는 세상이 다가왔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사이이드 아마드는 아랍계 무슬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오스만 투르크 계통의 무슬림도 아니었다.  또 하나의 다른 이슬람 민족인 페르시안 무슬림도 아닌 인도의 무굴제국 시대에 지배계급에 해당하는 가문에서 태어난 인도계 무슬림이었다.  더군다나그의 집안은 대대로 인도를 식민지화 하는데 앞장 선 동인도 회사의 고위 관리집안 이었다.  이렇게 실로 이해하기가 힘든 환경속의 사이이드 이마드가 독실한 무슬림 가문 출신의 어머니에게서 이슬람의 학식과 경건함을 고스란히 교육받으며 자랐던 것이다.  인도의 영국에 대한 독립항쟁 당시에 사이이드는 놀랍게도 영국의 편에 섰었다.  동인도 회사의 적법성을 옹호하는 듯한 책을 발표하면서 영국 통치자들에게 호의를 사게되고  덕분에 한동안 영국을 여행하고 여왕으로부터 훈장을 받기에 까지 이르렀다.  사이이드가 영국에 머무르는 시점에 예언자 모하메드를 극히 혐오하는 수준으로 폄하된 일대기를 접하게 되었다.  사이이드가 받은 충격은 대단히 컸다.  그제서야 어머니가 헌신적으로 가르쳐온 이슬람의 경건한 지식과 존엄성을 새삼 깨닫게된 것이다.  무엇이 이슬람을 저토록 서구의 백인들이 혐오하고 못마땅하게 여기게 되었을까?  사이이드는 그 핵심이 무엇보다도 무슬림들이 이슬람에 대하여 해석하고 이해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슬람은 거의 마술적인 수준의 사고방식에 지배되고 있으며,  현실인식을 억지로 거부해야만 신성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순투성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교육의 부재에서 생겨난 문제들이었다.

  종교는 태생적으로 끊임없이 인간 스스로가 탐구하고 원대한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특별한 분야이며,  예술이나 농업, 그리고 기술발전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진화해야만 한다고 역설했다.  이는 다분히 와하비즘과는 완전히 대립되는 주장이었다.

  이슬람이 가지고 있는 근본 원리들은 최종적 완성본이 결코 아니라는 주장인 것이다.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부정이 결코 코란의 계시를 잘못해석함으로써 발생된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코란의 계시가 무슬림 공동체 안에서 실천됨에 있어서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하나의 윤리체계로서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하루 다섯번 기도하고 코란을 암송하고 성지 메카를 순례하는 사람만이 훌륭한 무슬림이 아니라,  진정한 무슬림은 거짓말하거나 사기치거나 도둑질하거나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자신이 가진 장점을 개발해 훌륭한 능력으로 공동체 사회생활에 이바지하고,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며 남을 위해 배려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며, 책임감 있게 행동하면서 불의에 저항하고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이며,  선의와 최선을 다해 남을 돕고 자선을 베풀며 약자와 병자에 대해서 연민과 자비를 베풀줄 아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최고의 무슬림이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최선의 방편으로 그는 과학협회를 만들었고  곧 대학으로 승격 발전 시켰다.  그가 서립한 '알리가르 대학교'를 이슬람 세계의 캠브리지로 만들기 위해 헌신했다.  알리가르 대학을 통해 능력있는 수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배출되어 전 이슬람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들로 인하여 '이슬람의 세속 근대화 운동'이 시작되고 전파되었다.

  이들에 의해 시작된 이슬람의 세속화 운동은 뒤에 힌두교 중심의 인도에서 이슬람 중심의 파키스탄이 분리독립되는 것으로 결실을 맺기 시작한다.

  더불어 오스만 투르크 제국으로까지 퍼져나간 아리가르 운동은 오스만 정부의 근대주의 정당인 '탄지마트(개혁)'를 탄생시키게 된다.  유럽 방식의 학교를 세우고 유럽식 관료체계와 행정기술을 도입하여 이슬람을 근대화 시키자는 열망으로 퍼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와하비즘과는 상반되는 주장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는 격분했고,  서구 사회는 이들의 주장을 반길 수 밖에 없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 이쯤이면 와하비즘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소명되었으리라 생각되는 바,  다음 이야기에서는 서서히 아프가니스탄 분쟁으로 발걸음을 옮겨보기로 하겠습니다.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