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이야기

안성맞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안성여행.

by 피안재 2014. 1. 5.

 

 

 

 

 

 

 

 

 

 

 

 

 

 

 

 

 

 

 

 

   '처녀 XX만 빼고는 다 있다.' 라는 시장이 있다.

   '제값만 쳐주면 탱크라도 만들어서 내온다.' 라는 시장도 있다.

   둘 다 항간에서 속설처럼 전하여져 내려오는 이야기 라는 점은 미리 분명하게 전제하여 둔다.

   전자는 성남의 모란시장을 말함이요, 후자는 남대문시장을 일컬음이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운 할 대표적인 시장이 아닐까 싶다.

   대표적 전통오일장으로 우선 모란시장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데,  모란시장은 6.25 사변 이후로 형성되어 발전해 오늘에 이른 역사 50여년 좀 넘은 명맥으로 볼 때,  이 땅에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전통오일장의 대표격으로 꼽기엔 어딘지 모르게 좀 주저하게 된다.  

   남대문 시장 또한  한양땅 도성앞에서 항상 장이서던 상시라는 점에서 전통오일장 범주에 넣기에는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인터넷이나 매스컴을 통해서 아주 유명해진 시장들도 여럿이 있다.

   어떻게 보면 요즈음의 항간에 가장 많이 회자되고 각종 행사로 넘쳐나고 여행처럼 관광처럼 사람들이 찾고있는 곳을 전통시장이라 할 만도 하겠으나  그러기엔 왠지,  어떤 이유에선지 가슴 한구석이 휑하지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충남 서천의 한산 모시시장에 가면 이나라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모시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다.

   화문석을 고르려면 멀리 강화도의 화문석 시장을 찾아야만 했다.

   삼면이  바다인  이 나라의 서해와 남해에서 나는 모든 수산물은 나주시장의 포구로 모여들었다.

   평안북도의 정주장.

   평안남도의 맹산장.

   구례장.

   봉평장.

   이런 정도쯤의 이름들이 나열 되여야 비로소 전통장..... 오일장.........

   그 가운데에 이미 거론된 이름들 만큼이나 절대적 당위성을 가진 전통시장이 또 있다.

   바로 안성장이다.

   방짜유기로 대표되는  안성맞춤의 고향 바로 안성이다.

 

   쇳덩이를 불에 달구고 내려치고 또 달구고 두들기기를  수도없이 반복하여 너른 널판지처럼 되면 또다시 달구고 두드리기를 거듭하여 흔히 놋쇠그릇이라 부르는 온갖 유기들을 만들어 낸다.

   쇳물을 녹여 틀에 부어 찍어내거나  선반에서 깎아서 만드는 그릇은 유기가 아니다.  유기는 오로지 달구고 두드려서 만드는 것을 비로소 유기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밥그릇 국그릇에 너른 세숫대야며 요강도 만들었다.  촛대와 같은 생활도구도 만들었고,  징이나 꽹가리 같은 악기도 유기로 만들었다.

   오로지 불에 달구고 두드려서 만들었지만,  그것들을 원한(주문한) 수요자의 욕구를 너무도 잘 짜듯 맞추어 주었기에 여기에서 (안성맞춤)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게 된 것이다.

   그 모든 방짜유기의 고향이요 대표생산지가 바로 안성이었던 것이다.

   안성맞춤 방짜유기와 전통오일장의 숨결이 느끼고 싶어지던 날에 예고없이 안성을 찾아 갔다.

 

 

 

 

 

 

 

 

 

 

 

 

 

 

 

 

 

 

 

 

 

 

 

 

   그러나 없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유기그릇 종재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장터 여기저기 사방으로 놋쇠그릇과 생활도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을 줄 알았다.

   없다.

   장터를 한바퀴 두루 돌아 나올때 까지 유일하게 그릇같이 보인것이 사진의 진열된 주전자들이 전부였다.

   명색이 안성전통시장 인데 어째 이럴까?

   요즘 그 어느지방의 전통시장이건 돌아다니다 보면 방짜유기가 놓인 골동품상의 좌판들을 심심찮게 구경할 수 있는데,  그 흔한 골동품상 좌판 하나도 안성장날의 장터엔 보이질 않는다.

   - 내가 그랬잖아.  말이 전통오일장이지 대한민국 어딜가도 오일장의 분위기는 다 거기서 거기라고....... 특색있는 오일장에 대한 기억이 어디 있었어?  없잖아.  정선장엔 산나물이 넘쳐났는데,  그래 당신이 보기엔 안성장엔 특색있는게 뭐가 있어어?

   - 특색 있는거?  글쎄?

   실망스런 표정으로 차를 세워둔 도로 주차장을 향해 가면서 왕짜증여사가 물어보는데 딱히  대답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 당신은 여행중에 항상 그 지방의 오일장에 미련을 못버리는데.......... 어쩌면 오늘이 그 중 최악이다. 그치?

   - 최악?  ㅎㅎㅎㅎㅎㅎ .......... 그래도 난 오늘 안성장에서 처음보는 것도 있었고 특색있는 것도 느꼈는데?

   - 이잉?  그게 뭔데?

   - ㅋㅋㅋ  좀 전에 꽃게랑 미꾸라지 파는 어물전 봤지?  거기에 새끼손가락만한 물고기가 놀기도 하고 일부는 수북하게 건져 놓았지?  그레 바로 빙어야 빙어.  저수지에 얼음 위에서 구멍 뚫어서 잡는........ 암튼 올들어 빙어를 안성장에서 처음 봤고.......  다음으로는 유독 신발가계가 많았어.  털신이랑 털장화랑....... 시장난전에 아마 열군데도 넘어 보였어.  안성이 강원도 산골 오지도 아닌데 왜 유독 길거리표 털신파는데가 그렇게 많을까?  암튼 그것 을 사서 신는 사람이 여기에 많으니까 그렇겠지?  아다가도 모를 일이네?

   - 팔리고 장사가 되니까 생겨났겠지.  아무리 그래도 크게 실망이야. 장날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여기가 다 깨버렸어.

   - 그건 나도 그래.......  어서 가자.  나  배고파.

 

 

 

 

 

 

 

 

 

 

 

 

 

 

   4대째 대물림 해오고 있다는 안성장터국밥.

   안성지방에 대한 인터넷 검색에서도 창에 뜨는 명소다.

   안성오일장터에서 그리 멀지않은 다리하나 건너면 있다기에 배도 고픈 김에 찾아갔다.

   주차장에 차량들이 가득한게  너른 가계였지만 실내는 거의 손님들로 가득찼다.

   그랬음에도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을 넣자마자 곧바로 음식이 나왔다.  아마도 장날이고 때가 점심무렵인지라 미리미리 준비를 갖추어 놓은 듯 했다.

    아!  소머리국밥.

   애초 찾아가면서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소머리국밥이 뜨겁게 말아져 나왔다.  향이 벌써 달랐다.

   우시장(소시장) 장터자리에서 먹어보는 소머리국밥 치고는 소탈한것이 나름 먹을만 했다.

   가격이 저렴해서 였을까?  아님  오랜 전통과 장터사람들을 배려해서 나름 소탈한 맛과 소박한 상차림으로 음식을 내어놓은 것일까?

   여기까지 유명하다는 그 맛을 찾아왔는데......

   적어도 역사가 유구한 장터음식이라면........ 어쩔수 없이 가격이 좀 더 오르더라도  좀 더 껄쭉하고 진하고 그윽한 맛과 장터사람들을 위해 푸짐한 음식으로 꾸며졌어야 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장터라는 것이 본래 힘들고 지치고 배고픈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니까.

   단조롭다 할 정도로 맛과 향이 적고  음식의 양도 적은........ 쇠고기 국물맛만은 분명한 소탈한 음식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시대가 변해 담백하고 우러나는 맛을 원하며 음식의 양도 무척이나 줄어든 현대인 취향에 맞추다 보니 였을까?

   장터는 거칠고 드센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푸짐한 음식을 우적우적 먹어대고 막걸리 잔이 연실 돌며 때론 고함소리가 울려나오는 곳이 아니었던가?

   4대가 대물림 된 곳이라는데........ 초대나 이대의 주인분께  장터음식에 대한 나의 이런 궁금증을 여쭈어보고 싶었다.

   그래도 찾아드는 손님들이 꾸준히 이어졌다.

   내가 전통에 맛을 이해하지 못함일까?

   나름 맛은 있었다.  이름 난 소고기 국밥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내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먼거리까지 여행을 가서 굳이 꼭 찾아가면서까지 먹어보라고는 권하지는 않겠다. 

 

 

 

 

 

 

 

 

 

 

 

 

   온길과 반대방향인 평택쪽으로 길을 달렸다.

   각종 여행안내서와 인터넷에도 소개된 안성목장을 들려보고자 해서였다.

   너른 주차장엔 절반가량 차량들로 가득찼다.

   기대를 가지고 매표소를 향하는데  왕짜증여사가 손을 잡아 끈다.

   겨울치고 날씨가 너무나 포근한 때문이었을까?

   매표소에서 가까운 눈썰매장에만 사람들로 무척 붐비고 있었다.  그나마도 좀 어정쩡한 풍경으로......

   눈 덮인 들판을 기대했는데,  여러날 포근한 날씨 덕분(?)에 여타의 다른 관광이나 여행을 하는 사람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목장쪽으로 한참을 두리번거리다보니 아주 저만치 두쌍 정도의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거기에 군데군데 눈이 녹아 질척였을 때문일까?

   미끄러져 넘어질뻔한 그런 자세가 아닌  무엇인가 비켜서 겨우 빠져나가는 모습들이 들어온다.

   -  다음에  푸른 들판으로 변했을 때 다시와서 둘러보자.  아무래도 후회할 것 같애.

   안성팜랜드(안성목장) 입구의 건물들을 살펴조고 발걸음을 돌려야만 되었다.

   안성맞춤은 이런게 아닐텐데...............

   치즈 피자점.  치즈를 판매하는 대형마트. 식당가를 둘러본게 전부다.

   보태자면  요즘 보기가 힘들어진 조그만한 크리스마스 트리랑  구입해서 아주 잠시 사용한 간이 화덕을 싸게 팔려고 내놓은 것이 전부랄까?

   화덕은 탐이 나기는 했는데........  갖다 놓을만한 전원주택이 아직 없으니......... ㅋㅋㅋㅋ

 

 

 

 

 

 

 

 

 

 

 

 

 

 

 

      < 칠장사 >

 

 

   이 부근을 셀 수 없이 지나다니면서도,  한번 들려보고자 마음먹었던 숫자를 헤아릴 수 없으면서도  들려보지 못한 칠장사를 찾았다.

   안성맞춤에 대한 기대가 산산히 부서진 마당에,  '설마 여기마져 우리를 실망시키지는 않겠지' 하는 염원과 함께.

   칠장사는 수많은 설화와 전설을 간직한 천년고찰이다.

   궁예나 임꺽정이나 어사 박문수의 전설과도 연계되어 있다.

   또한 거기에 내가 접했던 많은 역사서 속에도 등장하는데,  그 점에 있어서 나는 칠장사와 여주의 신륵사를 비슷한 맥락에서 같고 또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

   칠장자와 신륵사에는 공히 역사속에 대환란이나 변혁기에 많이 등장한다.

   일제때 독립운동가들이 국내활동을 은밀히 행하다 잠시 은둔하던 처소이기도 했고,  왕조의 위기때마다 선비나 재야의 덕망있는 인사들이 모여 앞날을 걱정하던 곳이기도 했고,  혁명같은 것을 은밀하게 모여 숙의하던 곳이기도 했다.

   거기에는 이런 이유들이 작용했을 것이다.

   일단 한양의 도성에서 적당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유이다.  정세에 불리한 어명이 떨어지고 토벌대가 한강나루를 건너더라도 적어도 하루 이상 걸리는 나름의 지형적 이로움이 있겠고,  뱃길을 이용해 한강상류를 통하고 새재를 넘어 온갖 물류와 소식들이 오가는 중간인 여주에 있는 신륵사나,  팔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안성장을 지척에 둔 칠장사나  새로운 정보를 얻기에 수월하고  수많은 인파들 속에 숨거나 옮겨다니기에 용이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지리적 여건과 당시 유교탄압속에  산속으로 서민들 속으로 숨어든 불교사찰이었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다른점으로는  신륵사가  찾아오는 사람이 머무는 요사채만도 백칸이 넘는 대저택이었다면,  칠장사는 산중턱 계곡에 얹힌 오두막 정도라 표현한다면 무리일까.  그런 바탕 위에서 신륵사는 신륵사대로 제 몫을 다 한것이고,  칠장사는 칠장사 나름의 제 몫을 다 한 것이리라.

   오늘도 여전히 칠장사의 모습은  그 역사속에 수도없이 거론되던 이름에 비하면 초라해 보이기 그지없는 모습과 차림새로 여전히 그자리에 서있다.

   뜻모를 숙연함이 가득 배어나온다.

   모처럼,  우리도 여행치고는 아주 드물게 저만치 떨어져서 경내의 이곳저곳을 조심스런 걸음걸이로 세세하게 살펴보았다.

   극히 드문 경우이다.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가득 배어있는 천주교성단 내부를 둘러보는 그런 마음과 표정으로 말이다.

 

 

 

 

 

 

 

 

 

 

 

 

   조그만한 한 전각 섬돌위에 아이들의 눈에 젖은 신발들이 수북히 늘어서있다.

   함부로 문을 열어보지 말라는 팻말도 내걸려 있다.

   경내를 둘러보다보니 조금 시간이 지나서 우루루 몰려나오는 아이들 손에 저마다 직은 책자랑 메모장들이 들려있다.

   아마도 어떤 불교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나오는 모양이다.

   참으로 이쁜 모습들이 아닌가.

   모든것이 풍요롭고 물질만능주의가 극한으로 팽배해 가는 오늘의 삶에서  그와 반대로 어쩌면 인간의 머리와 가슴들은 점점 메마르고 허기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을.........

   나는...... 그것이 기독교든지 천주교든지 불교든지 것도 아님 이슬람이든지............  사람이 신앙 하나쯤은 가지고 사는것이 그 어느것보다 커다란 축복일 수 있겠다고 믿는 사람이다.

   어린시절 부터 가슴속에 자리한 신앙이,  그 신앙 본래의 본질처럼 숭고하게 오래오래 간직되기를..............

 

 

 

 

 

 

 

 

 

 

 

 

 

 

 

 

 

 

 

 

 

 

 

 

 

 

 

 

 

   안성여행에서 안성맞춤의 의미를 되새겨불 기회를 모두 잃고난 후여서 적지않은 실망감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여 마지막 개대로 찾은 칠장사였다.

   어떤 숙연함이 폐부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왔다.

   앞으로 자주는 아니겠지만  꾸준히 찾아오는 곳으로 많은 새로운 생각과 감회의 글을 다시 쓰게될 것이다.

   칠장사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은 다음기회에 다시 써내려가야겠다.

   서서히 땅거미가 내려앉는 칠장사를 뒤로하고 칠현산 계곡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