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과 같은 행사에 대해서 들어보신적이 있으십니까?
창덕궁 '달빛 기행'. 한성 백제 박물관의 '왕성과 왕릉'. 노들섬 '러브 썸머 페스티벌'.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서울 시청의 '하늘광장 갤러리'. 서울 연극제. 서울 국제 정원 박람회. 서울 평생 교육진흥원의 '알림 음악회'. 서울시 오페라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세종 문화회관 '지붕 위의 바이올린'. 서울 남산 국악단 '젊은 국악 도시樂'. 서울 시립 교양악단 '라흐마니노프' 등등의 공연이나 전시회에 대해 들어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혹여........ 열거해 드린 행사 중에서 참여해 보신 행사가 있으신가요?
아니시라면.......... 저렇게 많은 행사에 대해 들어보지도 못하였고, 참여하지도 못하였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위에 열거해 드린 행사들은 2021년 1월에서 6월까지 서울 지역에서 열린 문화 예술행사 중에서 지극히 일부분만을 거론한 것일 뿐입니다. 실제로 벌어진 모든 행사들을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어쩌면 지면이 부족하거나 정보력 부족으로 모두 올바르게 거명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왜 당신은........ 아니 저를 포함한 우리는 이런 수많은 문화 행사들을 먼 남의 일로만 여겨지는 세상에 살고 있을까요?
당신은 문화 생활의 주변인 입니까? 아예 '문화 생활' 이라는 분야에 문외한을 넘어서 부정적이신 분이십니까?
아니면 그 이유가 자신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문화 생활에서 소외당하고 거부당한 지방거주자(地方人) 이기 때문입니까?
화중지병(畵中之餠) 이라고나 할까?
오매불망(寤寐不忘)의 결과로 되돌아 오는것은 비참한 현실 체감과 속앓이뿐이다.
불가항력(不可抗力) 이라고 체념하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상당히 억울한 생각....... 공정과 기회균등과 평등은 대한민국에서 이젠 모두 사라지고 없는 공염불이란 말인가?
대략난감(大略難堪) 이라는 새로운 신조어로 '지방인들이 겪고 있는 문화생활에 대한 허와 실'을 대신해 본다.
지방 체류자들에게 있어서 '문화 생활' 이란 한 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 라고 표현 하겠다.
고인이 되신 이건희 삼성 회장께서 생전에 수집하시고 아끼시던 미술품들을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별도의 갤러리(미술관)을 설치하겠다는 발표가 있자 마자 대한민국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저마다 자신들이 유치하겠다는 지자체들의 대결양상이 점점 치열해 지고 있다. 열띤 유치경쟁의 순위는 얼핏 보기에 해당 지자체의 경제활동 인구 숫자와 지자체의 경제력에 맞추어 순위가 나열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라는 말이 있듯이, 저마다 자신들이 유치해야 하는 이유들도 구구절절 제각각이다. 헌데 내 생각엔 저들이 내세우는 명분 대부분이 거짓말이다. 양심과 상식의 선에서 타당한 명분을 내세우는 것을 거의 보지 못하겠다. 명예(허명)를 쫓고 돈을 쫓으면서 이름과 업적을 남기려는 사심에서 나온 거짓 명분들이 대부분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기행)을 하면서 한 인문학자가 당대의 내놓으라 하는 고위성직자와 권력자와 부자들과 천재 예술가를 상대로 일갈을 외쳤던 일이 떠오른다.
'백 년도 못 사는 것들이, 마치 자신은 천 년을 살 것 처럼 행세하고 있다. 가증스러운 행태들이다.'
딱 그러하다. 내 생각도 그렇다.
'아름다운 저녁이 있는 생활'
'예술과 문화생활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한층 엎그레이드 된 선진국형 대한민국'
'나라에서 시간과 돈을 주어서라도 휴가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미래 사회'
그런 세상을 안겨주겠놓라고 입에 개거품을 물고 떠들어 대던 파란 기와집이나 여의도에 사는 사람들이 벌인 꼬라지가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는가? 남에게는 '구태'라는 삿대질을 해대면서도 자신에게는 '오래된 관행' 이라고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가진것 이라고는 팔색조의 현란한 혓뿌리뿐인 자들을 어찌 믿을소냐?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김상용 시인의 말씀처럼.......... '그냥 웃지요.'
대한민국이라는 주권국가 안에서 동일한 자유시민으로서 동등한 법률제도 하에서 권리와 의무를 동등하게 행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임에도........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차별과 불합리성을 받아들여야만 한단 말인가.
위 표지에서 동그라미가 큰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선별된 특정국민이란 말인가?
차이가 나도 너무나 나지 않는가? 이걸 비교라고 할 수나 있는것인가?
'이건희 미술관(가칭)'을 놓고도 또 동그라미 크기가 큰 순서대로 가능성을 타진하는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균형 발전' '형평성' 등은 단체장이나 정치인들의 공약에서나 땜질용으로 거론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번을 새로운 계기로 삼아서........ 혓뿌리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한가닥 양심과 상식이 남아있다면......... '이건희 미술관(가칭)' 정도는 문화생활에서 절대적으로 소외되었든 세 군데(표지의 2014년 기준으로)........... 제주도(358). 충남(423). 충북(478) 중에서 선택되어지는 것이 나름의 명분도 있고 균형발전에 이바지하는것이 아닐지 싶다.
지방 사람으로서 '우리도 문화생활을 좀 가져보기나 합시다' 라고 외치고 싶다.
문화생활을 누려보자는 것도 아니고 즐겨보자는 것도 결코 아니다. '이런것이 문화생활 이구나' 하는 정도라도 좀 깨우치고 느껴보자는 말이다.
서울시가 이건희 미술관까지 가지고 싶다면....... 국립 중앙 박물관을 충주로 보내 주시던가....... 예술의 전당을 천안 독립기념관 옆으로 보내 주시던가........ 좀 나눠서 보고 느껴 봅시다.
'이건희 미술관(가칭)'을 충주에 설치해 준다면 좋은 점이.......
하나, 지리적으로 국토의 중앙에 해당되어 있으니, 도로망이 잘 확충되어 있는 마당에 한 지역으로 편중되지 않고 온 국민이 고르게 찾아와 관람할 수 있기에 공평성이 우선 확보가 되겠고
둘째, 내륙 깊숙이 국토의 심장부에 위치하여 지리적으로 고립되고 소외되었던 충주였기에 수도권 편중에서 벗어나 지방문화 활성화의 계기로 삼는 형평성으로 보아도 지극히 타당 할 뿐더러
셋째, 가뭄이 없고 홍수가 없으며 근자에 들어 그 위험성이 부각되고 있는 지진 피해에 대해서도 절대 안전한 지역으로, 빼어난 주변 경관과 유구한 역사와 온화한 성품의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평화로운 고장이 바로 충주이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하던 4대 사고(史庫) 중에 한 곳을 충주에 두었던 이유 또한 이러한 지리 환경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바쁜 일정으로 초여름의 무더위와 한바탕 전쟁을 불사하며 지내고 있는 요즘의 일상에서, 유독 심하게 오락가락하는 날씨탓에 번번히 골탕을 먹으며 지내고 있다.
맞을 때는 기가막히게 정확하고, 어긋날때는 '벌써 슈퍼 컴퓨터가 또 구닥따리가 된거야' 라는 푸념이 절로 튀어나오게 만드는 애물단지 기상에보에서 '내일은 벼락을 동반한 소나기가 하루종일 중부지방에 내리겠습니다' 라고 강하게 엄포를 놓았다. 허니 어쩌겠는가? 외부작업으로도 부족해 지붕 작업인데다가 중장비까지 동원해야만 했기에, 부득불 하루 쉬기로 했다.
어제 일을 마치면서 무조건 내일 하루는 쉬기로 하였으니........ 자정이 지나 맞이한 새로운 하루는 더없이 여유롭고 느긋하고 나름 즐길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었다.
얼씨구?
눈을 뜨니 새벽 3시 40분!
다분히 부모님 덕분이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아주 유별나면서도 특별한 유전인자(DNA)를 물려 주셨다. 잠드는 시간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알람이나 자명종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서도, 애초 마음먹었던 시간에 정확하게 일어난다. 그것이 새벽 1시 50분이던, 4시 반이던, 6시던 전혀 상관없이 그 시간 이전엔 반드시 저절로 잠에서 깬다. 늦잠이란게 없고 낮잠이란게 없다. 자라면서는 별반 대수롭지않게 생각했었지만,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어보니 이것이 얼마나 특별하고 고마운 버릇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나의 이런 특이한 습관이 내 아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더라는 사실이었다. 아들을 낳아서 유치원을 보내고 초등학교를 지나 장가를 보낼때 까지 깨워서 씻겨서 입혀서 학교 보내느라고 신경질부리고 고함지르고 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로 고생해 본 기억이 전혀 없다.
아들 기르면서 유독 여행이나 캠핑에 주력했던 우리에게 '내일 새벽 4시반에 일어나 출발이야' 하면 어떻게 되었던 우리가족 모두는 4시반 전에는 벌떡 잠자리에서 저절로 일어났다. 내가 차에 시동을 걸고 장비와 물품을 실으면, 아내가 보온병에 물을 끓여 담고 침구를 챙기고, 세수를 마치고 옷을 입은 아들은 토끼 베개랑 장난감을 들고 먼저 뒷자리에 올라 앉았다. 기상에서 출발까지 20분 정도면 언제나 가능했다.
분가해서 멀리 떨어져 사는 지금의 아들과 녀석에게서 태어난 두 손녀까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유별난 습관을 주신 부모님께는 항상 고마움이 앞선다.
베란다 창밖을 내다보니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흐드득 떨어지기 시작한다.
커피 포트에 물을 담아서 버튼을 누른다.
'내꺼도 부탁해.'
'그렇게 해 놓았어.'
챠밍여사가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온다. 현관문과 화장실문 외에는 모든 문이나 서랍이 24시간 항상 오픈된 생활이라 종종 기척없는 다가섬에 화들짝 놀라기도 일쑤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다란 머그잔에 진하게 불랙으로 타서 한 잔찍 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날에는 머그 커피를 이어서 한 잔씩 더, 두 잔까지도 마신다. 점심시간 이후로 챠밍여사는 커피를 삼가하지만, 나는 밤에도 진한 커피를 무척이나 즐긴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잠과 커피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새벽이 진정 아름다운것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유럽 축구(EURO 2020) 경기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작년에 열렸어야 하는 대회가 바로 지금 열리고 있는 중이다. 나는 축구 경기에 광적일만큼 열광한다. 하지만 조금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지금 말하는 축구는 어디까지나 월드컵과 유럽의 축구경기에 국한해서 하는 말이다.
월드컵때는 거의 전경기를 실시간으로 본다고 해도 될 정도이지만, 요즘의 시기로 감안해서 새벽 1시와 새벽 4시와 저녁 10시에 열리는 예선 경기를 모두 보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형편이다. 하여 이번 대회는 새벽 4시에 열기는 경기에 일상적인 스케줄을 맞추어 열심히 보고 있는 중이다.
네덜란드의 예선 경기를 보았는데....... 영 예전만 못하다. 지난해 UEFA CUP에서 네덜란드 아약스 팀이 보여준 토탈 사커의 진면목이 한층 엎그레이드 되었을것이라 잔뜩 기대감을 가졌었는데........ 겨우 예선 경기는 이겼지만 16강 이상을 기대하기는 좀 그렇디 않나 싶다. 요한 크라이프, 루드 굴리트, 반 바스텐. 반 니스텔 루이가 펄펄 날아다니던 오렌지 군단이 그리워 지기까지 하는 이른 아침을 맞는다.
두 잔째 커피를 마시면서 마눌님의 눈치를 가만히 살핀다.
'여보야. 낮에 외출할까?'
'어디? 생각해 둔데 있어?'
'그런건 아니구......... 영화두 볼만한게 요즘은 없고........ 미술관이나 박물관 어때?'
'안돼! 저녁에 약속 있다니까? 서울까지 갔다가 오려면 너무 멀고 힘들어서 안돼!'
세상에나........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뭐 서울에만 무조건 있는건가? 하긴 그럴만도 한게........ 내가 아직 용산에 있는 (국립 중앙 박물관)을 가보지 못한 사람이다보니, 아무때고 한 이틀이나 사흘 잡아서 중앙 박물관을 제대로 한번 관람하고 싶다고 여러번 이야기를 했었고, 예전에 영화 (동물원 옆 미술관)이 개봉되었을때 부터 과천 서울랜드에서 곤돌라 타고 단풍구경하면서 올라가 미술관에 갔던 이야기들을 엄청 해댔던 결과에서 나온 대답이었다.
'아니야. 서울 말고........ 그냥 산책이나 외출하는 기분으로 미술관 가는 폼이라도 잡아 보자는 것이지.........'
'개뿔......... 마드리드 프라다 미술관 갈 때도 그냥 산책 삼아서 유유자적 걸어가면 된다더니........ 사람들 줄 서기 시작했다고 잡아 끌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만든게 누구니? 그게 미술관람이니? 극기훈련이지?'
'지워버리라니깐......... 우피치에선 제대로 여유롭게 미술관을 맘껏 즐겼잖아........ 우피치를 즐기던 기분으로 가자.'
'뭔가 생각해 둔게 있는 모양인데....... 그림이 도대체 어디 있는데?'
'어딘가는 나한테 맡기고.......... 모네 어때? 모네의 (수련) 보여줄께.'
'모네는 프랑스 여행가서 코트다쥐르 가면 실컷 보여준다면서?'
'내가 사정 사정해서 아주 저렴하게 빌려 왔어. 모네 정도면 되겠지? 내가 당신 보여주려고 특별히 모네 작품을 빌렸어. 카라바조도 함께 빌려왔어. 어때 모네에다 카라바조 정도면 나름 휼륭하겠지? 내가 처음 의뢰할때 클림트하고 에곤 쉴레도 부탁을 했었는데 혹 운이 좋으면 만나볼 수 있으려나?'
이렇게 수작(?)을 부려서 점심에 함께 외출을 하기로 했다.
챠밍 여사는 모네의 그림을 좋아한다. 유럽을 다니면서 내가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또 가는데 마다 특별 전시회니 학술회의니 하면서 최근들어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것은 물론 카라바조 이지만 말이다. 고호의 작품 세계에도 함껏 매료되었었다. 요즘 들어서는 클림트와 에곤 쉴레의 작품에 관심을 갖기는 하는데...... 주된 관심은 인상주의 화가들이며, 그 중에서도 주된 관심은 언제나 모네 이다.
'우리 지금 문화회관 가는거야?'
차를 몰고 시내를 관통해 외곽으로 빠지지 않고 기웃기웃 시내로 들어가기 시작하자 마자 유별스러울만치 촉(?)이 좋은 챠밍여사가 벌써 남의 깊은 속을 꿰뚫어 보기 시작한다.
'응. 내가 가까운 곳에 전시실을 마련할려 하다보니 문화회관 밖에 생각이 안나더라고..........'
'지나다니면서도 미술 전시회 소식을 못들었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특별히 준비했다니까?'
'개뿔. 모네는 무슨......... S씨가 개인 전시회 하는구나? 그분은 한국화 잖아. 꽃다발이라도 사야 하는것 아니야?'
지인 중에 서예하는 분도 있고 화가인 친구도 있기는 하지만........ 오늘은 진짜 모네랑 카라바조인데........
이거 영 모양새가 안잡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오늘 마눌님 꼬득여서 미술 전시회에 왔다.
이쯤되면 결코 내가 실없는 농담을 던졌거나 광장된 거짓을 늘어놓은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초일류 전시장은 못되고 큐레이터의 안내 설명까지는 준비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모네도 있고 카라바조도 있고 마티스에다가 클림트와 고호까지 불러냈으니 말이다. 샤갈과 에곤 쉴레와 다비드까지 불러 들이려고 내가 얼마나 애쓸 썼는데...........
더군다나 사전 양해를 구하고나서 클림트의 작품에 손을 대어 작품의 질감을 직접 느껴보게까지 해 주었는데 말이다. 이 세상 어느 미술관에서 작품에 함부로 손을 대게 허락해 준단 말인가?
ㅎㅎㅎㅎ ㅋㅋㅋㅋㅋ 프프프프프프 헐!
'그런데 말이야. 나 궁금한게 있어. 레플리카(replica)가 뭐야? 어떻게 이런 전시회가 가능해?'
전시회장을 나오면서 챠밍여사가 무슨 큰 비밀스런 이야기라도 있는것 처럼 주변까지 살펴가면서 조심스럽게 레플리카가 무엇이냐고 물어 온다.
나의 생활에 있어서 행복한 엔돌핀이 팍 팍 솟아나오는 순간이다. 짜릿짜릿한 전율이 샘솟는다.
내가 많은 관심을 갖는 분야 중에서 나름으로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거나 한동안 몰입하듯이 관심을 집중했던 사안에 대해서 마눌님께서 진정어린 눈빛으로 나에게 질문을 해 오면.......... 그때는 진정 삶의 활기가 마구마구 샘솟듯 올라온다.
'레플리카(replica)는 고대 그리이스의 조각작품에서 생겨난 말인데........... 카피(copy)나 리프로덕션(reproduction)과 같은 의미로 함께 쓰여진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복사품) (복제품) 이라고 보면 되겠고, 조금 부정적인 의미로는 (위조품) (모조품)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해.'
어쨌거나 레플리카 라는 말이 의미하는것은 분명 정품이 아니라 짝퉁이라는 사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플리카에는 다소 애매모호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허용되는 레플리카가 있고 결코 용납되지 않는 불법적인 레플리카가 있다. 조금만 가만히 둘러보면 현재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이런 레플리카에 대한 합법과 불법의 구분이 점점 까다로워지는가 하면, 극단의 이윤 추구를 위하여 마구마구 불법적인 레플리카가 행하여지고 있는 사실 역시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하다보면 베키오 궁전 입구에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의 다비드 상은 진품이 아니다. 레플리카 작품이니까 쉽게 표현해서 짝퉁 내지는 모조품 이다. 실물과 똑같은 크기로 미술감정사가 아니면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완벽하게 심혈을 기울인 복제품이다. 진품은 인근의 아카데니아 미술관 특별실에 전시되어 있다. 왜 최초에 설치되었던 역사적인 현장에 복제품을 놓아 두었을까?
보존 때문이다. 인류 문명사 관점에서 볼 때, 어떻게 해서든지 진품을 잘 보존해서 후세에게 꼭 고스란히 물려주어야 하는 위대한 예술작품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리석은 기후 환경 변화와 대기오염과 비둘기 같은 동물의 배설물에 매우 취약한 단점이 있다. 하여 당대 최고의 조각가를 데려다가 원본과 똑같은 복제품을 만들어 본래의 자리에 전시하고, 진품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소중하게 보관하게된 것이다.
유럽의 유명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다니다가 그곳에서 보았던 작품이 광장이나 분수대나 교회나 여타의 다른 장소에서 똑같은 작품을 본 기억이 난다면, 외부에 전시된 작품은 100% 레플리카 작품이고 실내에 고이 모셔진 작품이 진품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이는 조각품에서 시작되어서 지금은 회화(미술)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티칸 미술관에 가야 볼 수 있는 (벨베데레의 아폴로)나 (라오콘 동상), 러브르 박물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밀로의 비너스)나 (니케의 여신) 조각상, 그리고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을 비롯한 수많은 그리이스 시대의 조각상들이 거의 대부분 레플리카 작품이라고 한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복제된 짝퉁 작품들이다. 고대 그리이스 조각가들은 대리석이 보존성이 취약하다는 단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대부분의 조각상들을 모두 청동으로 마지막에 완성시켰다. 라오콘 동상이나 비너스 조각상도 진품은 모두 청동상이었으며, 극히 일부의 작품은 청동주조 대신에 색을 입혀서 채색 조각상을 만들었었다.
그리이스 말기에 오랜 내전을 겪는 과정과, 그리이스를 정복한 로마가 정복 전쟁을 계속하면서 무기를 만드는데 절대적으로 청동이 필요하게 되어서 조각상들을 녹여 청동으로 무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대부분 소멸되게 되었다. 후대에는 기독교 등장과 함께 이교도 문화를 말살시키는 과정에서 또 한번 고대 그리이스와 초기 로마 시대의 미술품(조각. 도자기) 등이 수난을 격으면서 지상에서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이스를 정복한 로마는 정치 경제 군사 법률 등에서 압도적 우세를 보였지만, 해군력과 시와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만은 감히 그 격차를 줄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그만큼 그리이스 문화가 로마를 절대적으로 앞섰던 것이다. 특히 조각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포기를 할 정도였다. 하지만 로마가 왕정을 거치고 공화정에 들어서면서 부터 장차 제국으로의 발전을 꿰하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정치력, 법률, 막강한 군사력으로만은 천년 제국을 이룩할 수 없다는 자각을 하게된 것이다. 오랫동안 번영을 구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시대를 앞서가는 문화와 예술이 뒷바침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것이다. 이를 위해 로마는 법률을 완성하고, 로마의 군사들을 만능인(맥가이버)으로 둔갑 시켜 나갔다. 로마의 군대가 앞서서 정복을 하고나면, 그 군인들이 도로를 닦고 도시를 건설하고 수도교를 놓고 신전과 다리와 성벽을 만들었다. 로마이 군인들은 전투요원이면서 토목 기사였고, 건축 설계자였고, 엔지니어이자 발명가이면서 예술가들 이었다. 덕분에 세상은 급속하게 로마화 되기 시작했다.
로마는 모든 분야를 스스로 극복해냈는데....... 단 한분야....... 조각에서만은 감히 그리이스를 흉내조차 내지 못하였다. 예술가의 솜씨나 장인의 숙련된 기술이 하루아침에 뚝딱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닌 이유였다.
그러자 로마의 통치자들은 고대 그리이스의 조각을 뛰어넘기 위한 방편으로 로마가 정복해서 세운 수많은 도시들에 학교(아카데미아)를 세우고 조각. 미술. 도자기 교육을 적극장려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그리이스 식민지의 장인들을 로마로 징발해서 훌륭하고 뛰어난 고대 그리이스의 조각품들을 똑같이 복제해 만들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벨베데레의 아폴로) 조각상이 한 1.000개 만들어 졌고, (라오콘 동상)이 한 200개, (원반 던지는 사람)이 500개 정도, (비너스)도 150개. (니케의 여신상)도 한 70개 등등등........ 진품과 크기에서 부터 질감에 이르기까지 원본과 결코 다를것이 없는 복제품들이 수없이 만들어져 전역의 아카데미아로 보내져 교육 자료로 활용되었다. 아카데미아의 학생들은 처음 그리이스의 조각상을 복제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배출된 조각가들이 후에 거대 로마제국의 문화 예술을 풍성하고 위대한 경지까지 끌어올리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는...... 살아가다 보면은 더 보존 상태가 좋은 아폴로나 라오콘 조각상이 새로이 발굴될지도 모른다. 두 팔이 온전하게 붙어있는 비너스가 나올 수도 있고, 아름다운 여신의 머리가 붙은 니케의 여신상을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처럼 레플리카가 합법성을 인정받는 분야로는 교육을 위한 복제로서의 의미를 뜻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레풀리카에는 보존을 위하고 교육에 활용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복제품이라는 긍정적인 제조 이유가 분명히 있다.
이렇게 그리이스 조각에서 시작된 복제(레플리카)가 같은 이유로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회화(그림)을 넘어서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 역시 처음에는 보존과 교육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 시작이었지만........ 점차....... 불법적인 거래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하여 '저작권' 이라는 용어가 여기에서 생겨났다, 처음에는 조각과 미술에 국한되어 사용되던것이 점차 음악, 문학, 번역, 상영, 전시, 방송 등으로 확대되더니 종국엔 온갖 비싼 명품 산업에까지 레플리카가 확장되었던 것이다.
카라바조의 (홀로페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라는 작품이 있다고 치자.
그 작품을 보려면 우피치 미술관을 찾아가야만 하는데....... 직접 가서 보니 그야말로 미치고 환장할 정도로 마음에 쏙 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 아니겠는가? 천 억원이 될지 이천 억원이 될지 모르는 그림을 두고 속앓이를 해보니 별 수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체념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베키오 다리를 건너다 보니 근처의 고미술상 점포 안쪽의 작업실에서 우연히 카라바조의 같은 작품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복제품이었지만........ 크기와 색채와 질감하며........ 영락없는 진품이라 해도 믿어질 지경이었다. 피렌체에는 이렇게 합법적으로 레플리카 작품을 만드는 곳이 아주 많이 있다. 허가는 보존과 교육을 위한 재생산 이지만, 이면으로는 불법 거래가 성행한다. 흥정을 해 보니 삼천 만원 이라 한다면........ 이런 거래가 여러곳에서 자주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미술품 시장이 놀라 까무러칠 정도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현실의 한 이면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다. 돈이 많은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든 만족을 얻고 싶고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이 레플리카의 부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얼마전에 거론했던 바 처럼 작금의 시대는......... '원본이 없는 복제품'이 등장했고, 또 그런것들이 엄청난 고부가가치를 지니기 시작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으니 말이다.
<세계 명화와 함께하는 색깔 여행전> 이라는 제목으로 행해지고 있는 이번 전시회는 얼핏보아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정도의 미술에 소질이 있거나 관심을 가진 꿈나무들에게 있어서는 나름 대단히 유익한 전시회가 아닌가 생각된다.
도안에 색칠을 하거나, 오려붙이기를 통해서 각각의 색상이 품고 있는 느낌이나 특징들을 나름의 체험 학습을 통해 충분히 느껴보고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전시되고 있는 레플리카 작품들의 완성도에 대한 이야기는 불필요하지 싶은 생각도 든다.
완성도하고는 전혀 별개로........... '아! 이작품 이구나' '다비드의 그리이 이만한 크기였구나' '에게게...... 샤갈의 그림은 나도 그릴 수 있을것 같애' '고호에 그림은 이런 붓 터치를 하고 있구나' '마티스는 뭔 얘기를 하고 싶은거야?' 정도의 생각과 느낌만으로도......... 이 공간 안에 있는 동안에는 정말로 행복하지 않은가?
물론 마음 한구석으로는......... '아니, 내가 왜 이정도의 전시회에 감격해야만 하지?' 하는 안스러움도 분명히 있다.
여행을 하면서 유럽의 곳곳에서 경험한 길거리 뮤지션들의 버스킹에도 감동하고 감격해 했던 것처럼......... 핑크 플로이드나 U2가 꼭 내고향 충주에까지 와서 콘서트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어느정도 가다듬어진 아마츄어 밴드라도 자주 충주에서 핑크 플로이드나 U2의 노래들을 불러주는 콘써트 행사라도 열린다면 만사 재쳐놓고 참석해서 나름 즐겨볼텐데 하는 아쉬움이 항상 남게되더라는 말을 하고 싶은것이다.
우리가 전시회장에 제법 오랫동안 머무는 시간동안에......... 우리와 전시회측 관계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소중하고 유익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거듭 전시된 레플리카 작품들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하고싶은 말이 없다.
더하여........ 여행기에서 여러 작가들에 대하여도 조명하고 있는 만큼, 이번 여행기를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마칠때 까지도 아직 많은 미술작품을 만나볼 계획이므로......... 이번 전시회에 등장하는 화가들에 대해서도 생략하기로 한다.
그냥 분위기에 심취했었고....... 그런 분위기를 전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부연 설명없이 이번 <색깔여행 레플리카 전시회>에 나온 작품들에 대한 사진을 첨부하면서 모처럼의 나들이를 서서히 마무리 하기로 해야 하겠다.
이것뿐 이었다고 해도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록 좀 옹색하고 완성도가 뒤떨어지는 문화 행사 일지라도 거듭거듭 이런 기회가 자주 접할 수 있기를 나는 온마음으로 간절하게 바래 본다.
이 행사를 정성껏 준비하고 마련해주신 손길들 위에 신이 가호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한다.
참.으.로.감'사'했'습'니'다'
챠밍 여사와 약간의 인연이 있는 돈까스 전문점엘 모처럼 들려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한다.
워낙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이 가계의 음식의 맛과 엄청난 정성과 퀄리티는 누구에게라도 자신있게 권하고 싶을 정도이다. 언제나 한결같이 깔끔하고 맛있다.
모처럼의 문화생활?
아니지, 예정에 없었던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갑자기 궁금해 지는 것이 있어서 슬쩍 물어 본다.
'마눌님아. 화가를 여러명이나 만나고 돌아가는데........ 다음 그릴 작품은 누구야?'
'작품은 무슨? 어디 레플리카임네 하고 끼워 넣을수나 있겠어? 그냥 나만의 취미생활인 것이지.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아직은 모네야. 프랑스 가서 코트다쥐르 걸어다니면서 모네에 질릴만큼 빠져보기 전까지는 무조건 모네야. 모네.'
'난 모네는 별론데...... 카라바조 라면 모를까?'
'저녁 굶으려면 자꾸 깐죽거리고 그래............. 이 마트 안들리고 그냥 집으로 간다?'
헉!
사실 그림은 나의 취미이자 특기였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필이 꽂히면 한동안은 무조건 그 필에 죽기 살기로 매진하는 성격이다.
특별히 잘 하는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 세상에 남들이 다하는것 치고 내가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지 못한 분야 또한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떤거든 제대로 한 가지만 잘해야 출세하지 이것저것 다하려들면 쪽박차기 쉽상이여 이눔아' 라고 우리 막내 고모는 항상 나에게 잔소리처럼 똑같은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하셨더랬는데........ 결국 요모양 요꼴로 살고 있는 내 처지........... ㅎㅎㅎ
학창시절엔 미술부 활동도 했었는데......... 결혼하고나서 이런저런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느라 그만........ 그림과 만리장성을 쌓고 말았다. 나이들어 챠밍여사에게 늘 그림을 그리면 여가선용이나 정신생활에 좋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 부추겼었는데....... 어느날 정마로 마눌님께서 유명 작품을 모사하는 재미에 푹 빠져 버리고 말았다.
쉬게되면 며칠이고 방에 콕 쳐박혀서 책 읽고 글 쓰는 재미에만 마냥 몰두하는 나에게 하도 잔소리를 해대기에, 마눌님도 콱 가둬놓으려고 벌였던 수작이었는데 그만.......... 정말로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꼴두 새벽에 일어나 나는 서재로 나와 아침 독서에 빠져들고....... 새벽 기도 아니면 안방 책상에서 성경 읽기에 여념이 없던 마눌님이 어느날부터 새벽이건 한낮이건 저녁이건 시간만 나면 그림 그리는데 빠져버리고 말았다. 한 두개 그림을 완성해서 자꾸 들여다 보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스스로 신통하기도 하더니만...... 아예 작정하고 덤벼드니 이젠 걸어 놓을데가 없어서 아무데나 포개서 걸쳐놓을 정도이다.
우리짐은 그야말로 마눌님 갤러리다.
평소 꽃을 좋아하니 당연히 거실과 베란다는 마눌님 전용 꽃밭이고, 집안의 빈 공간은 온통 마눌님의 레플리카 작품 전시장이다. 안방과 거실은 절대적인 마눌님의 공간이고, 작은방과 서재는 오로지 나만의 자유 공간인데........ 내 방 서재의 벽면엔 온통 마눌님 여행사진 갤러리다.
새로운 여행지를 다녀 올 때마다, 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서재의 마눌님 사진도 바뀐다.
ㅎㅎㅎ
이런것도 내게 있어서는 문화생활의 한 단면이라고 해야할까?
난 이렇게 산다. 충주에서...........
--- 찾아 주시고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동안 소원했던 캠핑을 다시 시작합니다. 내일은 아내랑 실로 8년만에 모처럼 캠핑을 다시 떠납니다. 다녀와서 뵙지요. 피안재.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check issue) 오늘의 시선으로 재조명해 보는 이슬람. (0) | 2021.10.24 |
---|---|
<Check Issue> 이슬람(Islam)은 누구인가? (0) | 2021.10.12 |
(그래피티) 누가 그들을 하찮은 길거리 미술가라고 말하는가 (0) | 2019.07.27 |
과연 신(神)은 다시 올 것인가 - 1부 (신은 하나다) (0) | 2017.08.23 |
소조령(문경새재)에서의 2년반..... (0) | 2017.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