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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알 럽 트래블 / 르네상스 산책) 오늘 또 나는 이정표 하나를 다시 세운다.

by 피안재 2020. 5. 17.

 

 

 

 

 

 

 

 

 

 

 

 

 

 

 

 

 

 

 

 

 

 

 

 

 

  내가 즐겨 자주 쓰는 말이 있다.

  '길(路)은 앞서 간 사람에 대한 믿음과  뒤에 오는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 생겨난다.'

  아마도 내가 세상 이치에 대해 깨닫기 시작하고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사용한 말이었다고 나는 기억한다.

  인생(人生)이란 낯설고 머나먼 길을 스스로 헤쳐나가는 외롭고 힘든 여정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그 낯설고 먼 길에 벗(동반자) 하나쯤 있으면 덜 힘들고 덜 외롭지 않겠는가?

  지금 이순간에도 나는 길 위에 서 있다.  원했던 원치 않았던 이미 꽤나 머나먼 여정을 거쳐지나 이 순간(현실) 위에 서 있다.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남은 길을 마저 당당하게 걸어가려 한다.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들은 많이 있었다.  어찌 그렇지 않았겠는가?  사람이라면......  오히려 사람이기에 그럴 수 있는 것임을........ 나는 안다.

  그리고 그 여정속에서........  그리운 사람과 소중한 추억과 차마 손에서 놓치고 싶지 않았던 시간 등,  나름의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여러 경험들을 체험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하나둘씩 나만의 이정표를 세우고는 했다.

 

  '이정표(里程標).'

  사전에는 명사로서 이정표에 대해 이렇게 해석을 달아놓고 있다.

  (1.주로 도로상에서 어느 곳까지의 거리 방향을 알려 주는 표지.  2.   어떤 일이나 목적의 기준.)

  길을 가다 보면 사방에서 나부끼는 형형색색의 각기 다른 이정표들을 우리는 만나 볼 수 있다.  아마도 사람들이 저마다 세우는 이정표도 그것들처럼 저마다 다 내용도 제각각이요 형형색색의 다양한 형태를 기지고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내 젊은 날 내가 만든 이정표들은 아마도 색깔도 그린이나 블루 칼라였을 것이고,  그 내용들도 어떤 기념적이거나 다분히 어떤 소망을 담고 있는  그런 이정표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어느 날인가부터 내가 만드는 이정표의 색깔은 노랑이거나 아니면 빨강이 되어있었다.  그것은 곧 스포츠 경기에서 옐로 카드나 레드카드가 담고 있는 의미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날인가부터 내가 만드는 이정표엔 (그쯤이면 깨우쳐야 하지 않겠니?)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해, 다시는 안돼.) (궤도에서 벗어났잖아.  이쯤에서 돌아가야 하지 않겠니?) (다신 실수하지 마.  더는 기회가 없어.)라는 식으로 내용이 바뀌어 있었다.

  기념일을 기억하고  어떤 소망을 담아놓고 삶의 목적지를 가리켜야 할 이정표가,  더는......  그 이상은  어긋나거나 벗어나면은 안된다는 경고판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언제 어디쯤에서부터 이정표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나 스스로 한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정확히 언제 어떤 이유로 본래의 길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는지는........  지금도 생각하기 조차 기를 쓰고 회피하려는 스스로를 본다.  아직 인생 수양이 부족한 모양이다.  가슴 아프고 고통스럽고 후회가 막 급이기에 그런 것만은 결코 아니다.

  여전히 나는 지금도 길 위에 서 있고, 내게 남아 있는 여정을  성실히 수행할 자신이 있다.  그러다 보면 머지않아 지나온 아픈 과거조차도 회피로 일관하지 않고 보듬고 어루만져 줄 기회가(시간이) 찾아오리라 생각하고 있다.

  하여 오늘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다.

  내가 여정을 멈추게 되는 순간까지 어떤 한 사람의 손을 놓치지 않을 만큼만의 힘을(건강) 꾸준히 유지해야겠다는 바람이다.

  우리의 아들과 그 녀석의 가족들이 살아가는 삶을 좀 더 가까이서 많이 보고 싶다는 바람이다.

  더하여 우리 가족 구성원들에게 소중한 존재로 오래 기억될 수 있는 그런 나머지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챠밍 여사와 내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두 발로 스스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더 많은 곳을 함께 여행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지금 그런 내용이 담긴 이정표를 새로이 이곳에 다시 세운다.

  여기는 몰타의 수도 발레타 해변,  시간은 2020년 1월 1일 이른 아침........  떠오르는 신년 새해 아침을 맞으면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기에 이보다 좋은 장소와 시간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번  이정표만은 제대로 이루도록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아. 멘.

 

 

 

 

 

 

 

 

 

 

 

 

 

 

 

 

 

 

 

 

 

 

 

 

 

 

 

 

 

 

 

 

 

 

 

 

 

 

 

 

 

 

 

 

 

 

 

 

 

  사방으로  온통 바다뿐인 몰타에서 멋진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은 많이 있다.

  하지만,  내가 찾아낸 가장 멋진 일출 포인트는  바로 슬리 에마 지역의 포인트 몰 뒤편에 숨겨져 있는  약간 비밀스러운 장소다.  아마도 이곳의 고급 빌라나 고층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현지인들만을 위해 일부러 살짝 숨겨놓은 장소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몰타의 바다와 풍경을 가만히 바라다보고 있으면 (이건 도저히 현실적이라 할 수 없어)라고 외치고 싶을 만큼 흔치 않은,  또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더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멋진 풍경들에 절로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한다.

  묵은해를 보내는 지난밤에는 발레타를 중심으로 떠들썩하게 '송년의 밤과 신년 맞이 음악회' 축제를 열었다고 TV에 밤새 생중계까지 했었지만,  거세게 쏟아지는 겨울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우리는 숙소인 호텔에서 조촐하게 자축 파티를 즐겼었다.

  그런데 이 아침의 날씨와 풍경은 어젯밤이었으면 도저히 상상하거나 예측할 수 없었을 만큼 맑고 상쾌하고 싱그러웠다.(이것도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숱하게 지나가버린 그  어떤 날들처럼 몰타의 아침은 고요하고 도심의 모든 골목엔 적막감마저 감돌고 있다.  어디선가 부서지는 파도소리뿐.......

  세상에서 제일 게으른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나는 거닐고 있다.

  인구 45만 명이 채 안 되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에 속하는 몰타에서는 하루를(일 년을) 서둘러 바쁘게 시작하는 사람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카톨릭 국가이면서 새벽에 기도를 다녀오는 사람들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새벽 종소리도 오늘은 듣지 못한 것 같다.

  '도대체들 모하고 있지?'

  '이 나라는 이러고도 밥은 먹고 사나 보지?"

  그제야 아직 헤드라이트를 밝힌 채 이제 막 운행을 시작한 시내버스가 한 대 골목 앞을 스쳐 지나간다. 방파제 위로 난 도로를 따라 해안으로 설치된 인도에 아침 조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서둘러 버스에 오르거나 바쁘게 어디론가 움직이는 사람들은 차림새나 행동거지로 보아 아마도 우리 같은 여행자이지 싶다.

  얼씨구?

  해안도로 곳곳에 있는 간이 카페에는 벌써부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여럿이나 앉아있다.  느긋한 것인지 여유로운 것이지 아님 게으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

  섬을 에워싼 풍경도,  세월을 담고 있는 건물들도, 생활환경도,  저들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들도........  모두가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이해하기엔 좀 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 자신을 알라.(know yourself)'를 소크라데스가 남긴 명언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아주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그렇게 전해져 내려왔을 뿐,  하지만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남아있는 것이 없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에 근거해 보자면....... 그리이스 신화에는 델포이 아폴론 신전 프로나오스(앞마당)에 가면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문구가 분명하게 벽면에 새겨 있었다고 한다. 델포이 신전의 벽면엔  '그리이스 7현자'의 가르침이 적혀있는데,  그중에 밀레토스의 탈레스 가르침에 적혀있는 말이 바로 '너 자신을 알라' 였다.  어찌되었던.....  이 말이 소크라테스가 처음 사용한 것이 아닌것은 사학계의 정설이다.  탈레스는 저작권을 빼앗겨 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이스 신화에 등장하는  '헤라클레스' '아킬레스'와 더불어 3대 영웅으로 불리는 '지혜의 영웅 테세우스' 신화를 보면 델포이 신전에 적혀있던 '너 자신을 알라'에 대하여 신화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델포이 신전을 찾아 간 테세우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문구를 보고는 자기 자신.....  그러니까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태어났기에 사람들은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걸까?  도대체 아버지는 누구란 말인가?  어머니는 왜 그토록 아버지에 대해서만은 입을 굳게 다물고 계신단 말인가?  도대체 내가 누구이기에........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어머나 아이트라는 장성한 아들의 물음 앞에 더는 진실을 감출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테세우스의 아버지가 아이게우스이며 어디엔가 태어날 아들을 위해 신표를 감추어 두었으니,  이제 그 신표를 찾아서 아버지를 찾아 떠나라고 말해주었다.  결국 테세우스는  아주 커다란 바위 아래 아버지가 숨겨두었던 신표를 찾아냈다.  신표는 바로 칼과 가죽신이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델포이 신전의 문구는  테세우스에게 있어서 새로운 자신의 인생을 찾아 나서게 되는 하나의 이정표였던 것이다.

  그리고 신표(칼과 가죽신)는 테세우스가 자신의 '존재'와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에 꼭 필요한 과정(준비)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또는 어떤 깨달음이나 어떤 수양을 통해서 테세우스 처럼 뜻밖의  인연(이정표)을 만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칫 우연한 기연으로 '수주대토(兎)'의 함정에 빠지지 말란 법도 없으니,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 개개인의 노력과 열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지 않을까?

  시간 위로 머나 먼 여정의 여행이 계속되는 것을 인생(人生)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거기에는 반듯이 과정(준비)이 제대로 갖춰져야만 보다 유익한 여행이 될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테세우스는 과정(준비)으로 인하여 '지혜'를 얻었다.

  이 시대의 우리에게는 과연 어떤 신표(과정)가 필요한 것일까?  테세우스가 칼과 가죽신을 얻었다면........  나는 기꺼이 '책'과 상식을 기반으로 하는 '이성'을 가지고 싶다.  책을 통해 깨달음과 지혜를 얻고,  세상 속에서 타인과 교류 하며 여행을 계속함에 있어서 하늘을 우러러보매  부끄러움이 없을.......  그런 여행으로 나의 남아있는 시간들을 채워나가고 싶다.

 

  텅 비어있는 듯한 몰타의 슬리에마 지역 골목길을 거닐면서 느껴지는 것은 공허함이나 적막감 보다는,  앞서 흘러간 시간의 숨결 속을 거닐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스스로를 추수르는 어떤 겸허지는 기회를 내게 부여해주시려는 지극히 높은곳에 계신분의 배려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싱그러움으로 가슴속을 가득채우며 이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이 순간의 내 앞에 여러 의미로서의 길(路)을 내어주신 분들에게 감사하고  나의 뒤를 이어서 따라 올 여행자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 무엇이 있을까를 잠시나마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런 시간과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나에게 거듭거듭 반복되기를 간절하게 원해본다.

  좀 더 덜어내고  작은것이라도 나누고.......  조금은 마음으로나마 여유로움을 가지고........ 조금 더 느릿느릿  오랫동안 먼 길을 어떤 사람과 함께 걷고 싶다.

  가도가도 끝나지 않고  모두 다 돌아볼 수 없음을 알면서도.......  더 돌아보지 못할것 같아 작은 조바심이나  안타까워 할 마음을 늘 간직하고 싶다.

 

 

 

 

 

 

 

 

 

 

 

 

 

 

 

 

 

 

 

 

 

 

 

 

 

 

 

 

 

 

 

 

 

 

 

 

 

 

 

 

 

 

 

 

 

 

 

 

 

 

 

 

 

 

 

 

 

 

 

 

 

 

 

 

 

 

 

 

 

 

 

 

 

 

 

 

 

 

 

 

 

 

 

 

 

 

 

 

 

 

 

 

 

 

 

 

 

 

 

 

 

 

 

 

 

 

 

 

 

 

 

 

 

 

 

 

 

 

 

 

  몰타의 아침은 한없이 한산하고 너무도 평온하다.

  거기에다 해변 산책로 간이카페에서 마시는 1.5유로 짜리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은 나를 파라다이스로 안내하기에 충분하다.

  슬리애마 골목 안쪽 언덕배기에서 만난 동네 성당은 이제껏 내가 보았던 그 어떤 성당보다도 고고했고 아름다웠다.  우리는 작고 소박한 그 성당에 들어가 현지 어르신들과 새해 덕담을 나누었고  잠시나마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성당을 나오면서 챠밍여사의 눈을 쳐다보니 촉촉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슬며시 속내를 들여다보니....... 어쩜 우리는 새해 첫날의 기도 내용도 거의 비슷했다.  살다보면 닮는다 닮는다 하더니......  참 많이도 어느새 우리는 닮았다.  남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했다.  '남매 사이가 아니면.....  틀림없이 불륜 사이일 것이라고......  절대로 부부는 아니라고.......  헐.  그럼 진짜로 우린 무슨 사이지?  그럼 할 수 없지 뭐.  당신은 짱구엄마 해.  난 태리 할아버지 할래.'

 

  공영 주차장 옆 건물 벽에는 내가 '몰타 최고의 그래피티'라고 인정하는 벽화가 그려있다.  여전히 인상적이다.

  그런데 웬걸?  엉덩이 부분이 달라져 있다.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피티란 저렇게 새롭게 변형이 가능한 작품이구나?  지난 앨범을 뒤져서라도 작년 방문때의 온전했던 그림 사진을 찾아서 다시 올려 비교해 봐야만 하겠다.

  '몰타에서 무엇을 가져가고 싶냐 하면........ 난 그렇게 말하고 있는 너를(벽화) 가져가고 싶어.'

  호젓하게 동네 산책을 하다보니 작은 갤러리들이 늘어 선 골목이 나온다.

  모두 문이 잠겨있었지만......  이런 곳을 그냥 지나칠리가 없는 나 아닌가?  한참을 서성거리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본다.  저절로 신이 난다.

  굳이 이름난 세계적인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아니어도 상관 없다.  그곳에 걸린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도 한 때는 지금 여기 골목에 창가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작품들과 모두 비슷한 경험들을 가졌을 테니까.......  초기작품들은 대부분 그런 시간들을 담고 있으니까 말이다.

  유명 작가의 진품이라는 꼬리표가 달리고  그림의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높이 책정되었다고 해서 결코 좋은 그림은 아니다.  이런 후미진 골목에 허접하게 내걸려 있다해도........  그림은...... 웬지 자연스럽게 내 가슴속으로 스며들어오는 듯한 그 무엇인가가 느껴지는 그림이야말로 참 좋은 그림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다.  짝퉁이나 모조품이어도 나는 좋다.  자연스레 내 곁에 두고 늘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그림이 나에게는 (명화)다.

  누가 여기가 몰타 아니랄까봐?

  잠시 해안가 벤치에 앉아서 지중해를 바라보고 바닷바람에 쉬어갈까 했더니만.......

  성난 파도가 쫓아와 사정없이 부딪쳐 산산히 부서지는 이 정월 초하루의 식전댓바람부터........  바닷물에 수영을 하는 일가족을 만났다.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 몇 분과 와 엄마인듯 중년 여성과  아들 딸이다.

  오메. 기죽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에 속하는 인구 45만명이 채 못되는 우리나라 강화도 보다 아주 조금 더 큰 나라 몰타.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나라 몰타.

  유럽의 젊은이들이 신혼 여생지로 첫손가락에 꼽는 몰타.

  은퇴한 사람들이 나머지 여생을 여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가고픈 지역으로 첫손가락에 꼽은 몰타.

  그런가하면  세계에서 단위면적당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 유산이 가장 많은 나라로 꼽히는 곳이 바로 몰타다.  그야말로 섬 전체가,  나라 전체가 문화유산 덩어리라고 부를만 하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우리 아예 몰타로 이주해서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 법도하다.  사실은 우리도 그런 똑 같은 생각을 했더랬다.  그것도 여러번이나.  우리는 정도를 조금 넘어서  '우리가 몰타에서 이런이런 일을 하면 나름 살아갈 수 있을것 같다'는 구체적인 생각까지도 했다.  그러자면 우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닌데............  머니(money)가 좀 많이(much) 필요하다.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는데  우리 처지엔 무리라는 결론이 나왔다. 또 그정도 마니가 많이 있다면.......  ㅎㅎㅎㅎ.  지금보다 여행이나 더 자주 다니면서 그냥 대한민국에 눌러 살지 뭐.........   ㅎㅎㅎㅎ

 

  몰타는.......... 그런곳이다.  현실인 듯, 혹은 현실 세계가 아닌 듯.........  우린 지금  그런 몰타에 있다.

 

 

 

 

 

 

 

 

 

 

 

 

 

 

 

 

 

 

 

 

 

 

 

 

 

 

 

 

 

 

 

 

 

 

 

 

 

 

 

 

 

 

 

 

 

  몰타는 나라 전체가 성채(城砦)라고 보아도 무방 할 것이다.

  모든 거점이나 도시는 중세 이후에 등장한 화약무기 시대에 대처하는 최첨단 시설로 철저하게 계획하에 만들어졌다.

  이 작은 섬나라의 철저한 방어체계를 나폴레옹도 두려워 했다고 한다.  아프리카로 진군하던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는 혹여  유럽의 다른 국가가 여기 몰타를 차지하고 자신들의 배후에서 보급로를 차단하고 장기전을 치르자고 나온다면 엄청난 손실은 물론 절대적으로 치명타를 입을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하여 나폴레옹은 먼저 몰타를 침공했다.  이 상황에서 몰타의 '요한 기사단'에게는  역자적으로 태생적으로 한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십자군 전쟁 당시 요한 기사단이 처음 손에 칼을 들게되는 순간부터  그들은 기사로서 신 앞에 서약을 한 것이 있었다.  '이교도로부터 기독교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칼을 드는것이지,  절대로 같은 기독교인을 향해서는 칼을 들지 않는다'는 성스런 약속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을 향해 쳐들어 오는 프랑스 군대는 엄연한 로마교황청에 속해있는 카톨릭 국가의 군대였던 것이다.  만약에 이 때에 교황이 나서서 나폴레옹과 프랑스 군대를  카톨릭에서 파문해 버렸다면........  요한 기사단의 대처는 분명히 달랐을 것이다.

  무지막지 쳐들어 오는 프랑스 군대에  요한 기사단은 일절 대항하지 않고 항복했다.  오랜 전통이자 신과의 약속을 그들은 지키고자 했다.  다만,  그것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에  사전에 몰타의 귀중한 보물들과 책들과 인재들은 프랑스에 대항하고 있는 유럽의 각지로 사전에 이관하거나 대피 시키고 난 후였다.

  몰타는 프랑스 군에 절명당했고,  요한 기사단은 해산되었다.  나폴레옹은 몰타를 아주 심하게 훼손 시켜 버렸다.  혹시나 하는 후환이 두려웠던 것이다.  아프리카를 점령한 나폴레옹은 러시아 제국을 침공했다가 패전했고,  재기를 꿈꾸다가 마침내 영국에게 패망하였다.  프랑스의 패망과 함께 몰타는 해방되었지만, 자급자족이 원활하지 않은 몰타를 원하는 연합국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여 승리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이 그 후로 현대에까지 몰타를 영국령으로 지배해왔던 것이다.

  어디를 가나 요새화하면서 만든 성곽들이 놓여져 있다.

  그 위에 현대화된 건물들을 짓고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  이 시간에도 몰타는 여기저기 사방에서 아주 활발하게 새로운 도시들이 생겨나고 있다.

  현대식 건축자재로 새로운 양식으로 들어서는 초현대식 건물들이 웅장하면서도 늘씬한 모습으로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몰타 건축은 예방식 그대로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편이다.

  옛 성곽들도 여전히 건재한 낡은 건물들도,  그리고 새롭게 들어서고 있는 건축물들도 대부분 여전히 화사한 라임스톤(화산암)으로 짓고 있다.

  라임스톤은 참으로 신기하고 신비롭기만 한 돌덩어리이자 건축 자재이다.

  시간에 따라 빛깔을 달리하고,  그러면서도 그 안에 켜켜히 세월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참으로 묘한 여운처럼 살그머니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렇게 라임스톤 차체만으로도 신비롭고 아름다운데........  사방으로 온통 라임스톤으로 지어진 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황홀한 선물이라 할까?

  작은 섬에서 개발을 하여야 하지만........  개발을 위해선 어느정도의 옛 것을 치우거나 훼손시켜야만 하지만........  이들은 그 옛 것의 훼손을 최소화 하면서,  그 지나온 역사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창조를 심각하게 모색하고 있다.

  내가 그것을 느껴볼 수 있는 장소가 바로 '포인트 몰' 인근 지역이었다.

  라임스톤으로 기반을 닦은 지역은 몰타의 시간과 역사를 담고있는 해변 성채지역 이었다.  어디를 둘러보나 옛 성곽과 접근로와 기타의 방어시설들이 널리어 있다.  그 튼튼한 성곽을 기초로 하여 그 위에 크고 웅장한 초고층 건물과 최고급 맨션들을 지었다.  외벽을 온통 라임스톤으로 감싼 현대식 대형 백화점도 들어섰다.  이 건축에 사용된 라임스톤의 상당부분은 해변 바위벼랑 위에 성곽으로 쓰였던 돌덩이들이다.  그들은 부득이 들어내야 하는 돌덩이 하나하나에 표식이나 번호를 남겼다.  그것들의 원형이 어떤 형태였는지를 찾아내고 기록했다.  그런 기초작업 위에 새로운 건물을 건축하면서  가능하면 옛 원형의 형태를 복원하고자 했고,  그 자리에 있었던 자재들을 찾아내 본래로 되돌리려 애썼다.  무너졌거나 심하게 훼손된 부분은 현대의 새로운 라임스톤을 깎아서 대체하였다.

  하여 지금의 이 일대는 현대식 초고층 건물들로 가득하게 되었지만,  전체적인 풍경과 모습은 과거의 건물들을 마치 승계한 듯한,  인근의 세우러을 머금은 낡은 건물들과 대립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멋지고 고풍스런 도심으로 창조해 냈던 것이다.

  흔히 말하는 (신 구의 조화)란 이런것이 아닐까?

  멋지게 변하고 재창조된 도심을 거닐면서도  지나간 역사와 세월이 느껴진다.  한마디로 황활한 느낌마져 든다.

  마냥 아름답고 부러울 따름이다.

  이런곳에 살았으면.........  몰타는 사랑이며  그리움이다.

 

 

 

 

 

 

 

 

 

 

 

 

 

 

 

 

 

 

 

 

 

 

 

 

 

 

 

 

 

 

 

 

 

 

 

 

 

 

 

 

 

 

 

 

 

 

 

 

 

 

 

 

 

 

 

  몰타의 수도는 발레타다.

  하지만 수도 발레타의 전지역이 세계문화유산 보존지역으로 등재 된 이후에 더 이상의 개발은 그리 요원한 일이 아니었다. 하여 어느때부터인가 몰타 경제의 중심은 인근의 슬리에마 지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리고나서 지금 현재는 다시금 새로운 개발의 변화가 인근 세인트 줄리안 지역으로 급속도로 전환되고 있는 모습이다.

  슬리에마를 중심으로 우측에 발레타가 있고 왼편으로 세인트 줄리안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세도시는 비록 도시계획상 구분짖고는 있지만 페리나 버스등의 대중 교통을 통해 원활하게 오갈 수 있는 인근의 붙어있는 도시들이라 보면 되겠다.

  그동안 슬리에마가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몰타 상업의 중심지 역활을 톡톡히 할 수 있었던 것은,  몰타 최고의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비르키르카라 라는 도시가 슬리에마의 뒷쪽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명동. 종로. 소공동 등의 인접 상권이 나란히 있는데,  이들이 각기 하나하나의 도시이며 그 중 발레타가 수도이고  슬리에마가 명동 쯤이라고 하면 이해하기가 쉬워질려나?

  이 순간 몰타 스카이 라인의 변화는 거의 대부분 세인트 줄리안 지역이 차지하고 있다.  대형 호텔들과 유흥시설들이 여기저기 한참 공사중이다.  몰타에서 세인트 줄리안의 뜨겁고 화려한 밤문화는 전유럽에서도 무척이나 유명하다.

 

  그리고 지금처럼 호젓하게 몰타의 골목길을 산책하고 있노라면 가끔씩은 혹여 이곳이 아랍의 어느나라 이거나 아니면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골목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저절로 생겨나게 마련이다.  온통 라임스톤으로 지어진 주택들과 발코니와 벽에 내걸린 화분들을 보면 문득 문득 그런 생각이 난다.  다가가면 갈수록 좁아지는 느낌의 휘어굽어진 골목들은 한결같은 모습들이라 생각에 따라서는 단조로와 보일수도 있겠으나,  가만히 살펴보면 똑같은 집이나 똑같은 골목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인가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고 있기에  슬쩍 그곳에 살고있는 사람의 인품을 짐작하게끔 만들어주기도 한다. 모양과 색깔이 제각각인 개성이 아주 뛰어난 발코니와 대문,  그 대문에 매달려 있는 손잡이들은 차라리 하나의 조각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이른 아침의 새벽 산책길엔 현지인들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지만 그곳엔 그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오랜 시간을 버텨온 라임스톤으로 만든 집들이 길게 늘어 선 골목길에는 그네들의 오랜 역사가 고이고이 담겨있다.

 

 

 

 

 

  굳게 잠겨진 포인트 몰에서 보았던 곰돌이 인형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던 때문일까?

  그 곰돌이는 상품이 아니라 그 팬션 브랜드의 인테리어 소품이라고 그렇게 가르쳐주었던만......... '우리 손녀 태리에게 선물하면 참 좋아할 곰돌이'라는 푸념을 챠밍여사는 늘어놓고 또 늘어 놓는다.  윤태리가 뭐 자기만의 손녀인가?

  여기저기 다녀오느라 조금은 힘도 들었고 피로가 느껴지기 시작할 즈음의 오후가 되자........  숙소에서 좀 쉬었다가 아침에 본 포인트 몰 주변을 돌아보면서 쇼핑을 좀 하고 싶단다.  아무래도 손녀의 선물에 필이 꼽힌것 같다.  이제까지는......  그리고 이후로도 쭈욱 ~~~~~~  빨간 피노키오 인형에 넋을 빼앗길거면서 말이다. ㅎㅎㅎ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각자의 여가시간을 가져 보기로 했다.(하긴 다른 여행에서도 각자의 시간을 특별히 따로 가져본적은 없으면서)  지갑을 열어 유로화를 듬뿍 챠밍여사의 손에 쥐어 준다.  다른것도 아니고 우리 하나뿐인 손녀에게 쓴다는데 아까울리도 없고서리........ ㅋㅋㅋ

  밖으로 나와 발레타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라탄다.  발레타 입구 시내버스터미널에 내려서 칼카라행 시내버승 환승한다.  일정 시간내에 환승은 당연히 무료다.  몰타 전지역을 안벽하게 커버하는 시내버스 노선과 저렴한 대중교통비는 몰타 여행이 선사하는 또 하나의 기쁨이다.

  칼카라행 버스노선을 이용한것은 오로지 이번 기회에 '쓰리 씨티'를 제대로 한번 더 돌아보기 위함이었다.

  해안 방어기지인 포트 리넬라 요새에서 거꾸로 걸어나오면서 스리 씨티를 시간이 허락하는만큼 찾아다닐 각오였는데,  첫 방문지인 포트 리넬라 요새가 정초라선지 문을 닫았다.  하여 리넬라 해변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도무지 현실적이지 않을것만 같은 몰타를 호젓하면서도 고즈넉하게 즐기기엔 쓰리 씨티만한 곳이 없을 듯 하다.

  현지 국민의 숫자는 지극히 적지만 연중 세계 도처에서 찾아드는 여행객이 날로 급증하는 몰타에서 이제 조용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장소는 그리만치 않으며,  그래도 나는 그 중에서도 쓰리 씨티 산책을 강추하고 싶다.

  발레타의 어퍼바라카 가든에서 그랜드 하버 저편으로 건너다보이는 세 개의 돌출부분이 바로 쓰리 씨티이다.  간혹 옛지명인 '비르구(Birgu)'로 불려서 여행자를 헷갈리게 하는 '빗토리오사(Vittoriosa)'와 라발렛이 몰타 공방전에서 요한 기사단을 총 지휘하던 본부인 쎄인트 안젤로 요새가 있는 '쎙클레아(Senglea)', 그리고 초현대식 마리나 항구가 들어서 전형적인 지중해 항구의 빼어난 풍경을 뽐내고 있는 '코스피쿠아(Cospicua)' 가 바로 그곳이다.

  이토록 아름답고 평화로운 해양도시가 400년전 그 피바람 나부끼던 참혹한 전쟁터였다고는 상상하기 조차 어려울 정도로 지금 쓰리 씨티의 풍경은 평온하고 여유롭다.

  이따금씩 지나가는 현지인은 환한 표정으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온다.  손에 작은 봉지를 들고 스쳐 지나간 노인이 궁금해서 고개들 되돌려보니........  저만치 노천카페에(선술집) 벌써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부둣가에 배를 정박시키는 쇠말뚝에 걸터 앉아 사색을 즐기는 사람도, 해변길을 따라 산책을 하는 사람도  여행자 차림새다.  바닷가가 조금은 단조롭고 지겹다고 생각될 쯤에 다시 언덕의 골목길을 따라 오르니,  발레타에서 혹은 이제껏 슬리에마에서 보았던 비슷한 풍경인지 싶었던 것들이.......  글쎄다.  뭔가가 더 아기자기하다고 할까?  굳이 비슷하다고하면 더 할말이 없겠지만서도.......  쓰리 씨티 골목길의 풍광은 무엇인가가 좀 다르게 슬며시 다가온다.

  라임 스톤 숲속에 갖혀버린 것일까?  다른 시공간의 미로속에 빠진 기분마져 생겨난다.

  더는 안되겠다.  서둘러 언덕을 내려가 다시 해변을 찾는다.

  소형 요트들이 빼곡히 줄지어 늘어서 있다.  지중해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래 이게 바다야.

  바다를 더욱 바다답게 만들어 주는 풍경이라고 할 수 있겠지?

 

 

 

 




 

 

 

 

 

 

 

 

 

 

 

 

 

 

 

 

 

 

 

 

 

 

 

 

 

 

  몰타에는 두 종류의 전통적인 배(船)가 있다.

  하나는 수상 택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실어나르는 배로 '디사(dghajsa)'라 부른다.  슬리에마 페리 선착장에서 발레타 선착장까지 운행하는 노선과  발레타 그랜드 하버 선착장에서 쓰리 시티의 빗토리오사 선착장까지 운행하는 두 개의 노선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가격도 대중 교통인 시내버스나 수상 교통버스인 페리에 비해서 조금 높을 뿐이다.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번 쯤 아무런 부담없이 타 볼만 하다고 하겠다.  그 또한 몰타 여행의 즐거움이 될것이다.  쉽게 예를 들어서 베네치아의 곤돌라를 생각하면 모양과 용도는 쉽게 이해가 될것이며, 베네치아 곤돌라 승선료에 비하면 완전 공짜라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베네치아에선 그 가격에 놀라 우리는 결국 곤돌라를 타고 산타루치아 노래를 부르지 못했었다.  베네치아 곤돌라를 타느니,  차라리 카파토키아에서 벌룬을 한번 더 타겠다.)

  다른 하나는 전통적인 고기잡이 배로써 '루쯔(Luzzu)'라고 부르는 주로 가까운 내해를 오가며 고기잡이에 사용하는 작은배이다. 이 전통배는 선데이 피시마켓(Sunday Fish Market)으로 유명한 마샤슬록(Marsaxlokk)에 가면 원없이 만나 볼 수 있다.

  빗토리오사를 돌아보던 중에 나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우루르 모여서 전통배를 방파제 위로 끌어올리려는 장면을 목격했다.  물 위에 떠다닐 때는 아주 작은배였지만 뭍으로 끌어올리는데는 제법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작업으로 보였다.  무심코 지나치는 여행자였지만,  평소 오지랍이 넓기로 소문난 내가 이런 광격을 목격하고 그냥 지나칠리가 없질 않겠는가?  그들의 도움요청은 없었지만 벌써 나는 배낭을 벗어놓고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들의 작업에 합세해 힘을 쓰느라 기합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낯선 불청객의 참여에 다들 아주 잠시 놀란 표정이었지만 그것도 잠시 모두가 고함을 질러대며 힘을 쓰기 시작했다.  뭐 등치나 힘으로야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꿀릴것이 전혀 없는 내가 아닌가?

  배 밑창의 뾰족하게 각진 부분엔 자르고 다듬은 받침목이 미리 길게 늘어서고 혹 옆으로 넘어질까 쐐기목을 따라가며 고인다.  한참만에 공터에 도달하자 길고 둥근 나무조각을 바닥에 여러개 펼쳐놓고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배를 예정된 장소까지 끌고간다.  배가 흔들림 없이 고정된 것이 확인되자 힘을 모았단 모두가 한꺼번에 환호성을 지른다.

  빨간 티셔츠의 배 주인이 다가와 맥주 작은병을 건네주며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온다.  함께했던 모든 사람들이 한사람 한사람씩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이 다 디사를 소유하고 수상택시를 운영하고 있는 기사사장님들이었다.  전통배는 수시로 이렇게 뭍에 끌어올려 수선을 하고 바닦부문의 이끼를 제거하고 말려줘야만 한단다.  하여 이들은 늘 돌아가면서 서로 품앗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배에 대해서 소상하게 설명을 하면서 배 엎어진 배난간에서 이것저것 하나하나씩 분해를 해나가는데....... 이 전통배가 글쎄.......  뱃전을 제외하면 모두 조각조각 힘안들이고 분해가 되는것이 아닌가?

   이 배도 택시처럼 번호판이 있었다.  대를 물려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는 사업이었던 것이다.  허가를 취득해야만 디사를 소유할 수 있고 영업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내게 아주 소상하게 디사에 대해서 설명을 하려하는데......  내 언어실력이 지극히 일상적인 여행을 위한 부분까지는 허용되지만,  전문적인 용어가 들어가기 시작하면 곧 한계가 드러난다.  하여 난 곧 인사말을 건네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이 여행기와 내 얼굴이 나온 사진을 들고 아래 전통배 번호를 찾아가 보여주면......  한번쯤은 공짜로 태워줄터인데.........  ㅎㅎㅎㅎ)

  그런데.......  이틀 뒤에........  마샤슬록에서  이 일로하여 아주 써프라이즈 한 경험을 하게될 줄이야........

  오.마.이.갓.

 

 

 

 

 

 

 

 

 

 

 

 

 

 

 

 

 

 

 

 

 

 

 

 

 

 

  이넘의 오지랍은 이 세상 어디에 내놔도 기죽거나 수그러드는법이 없다.

  그동안 친구도 많이 사귀고 또 직업적인 스카웃 제의도 참 여러번 받았지 않은가?

  이렇게 쓰리시티를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가는 줄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랜드 하버 건너편 발레타 도심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 쯤이면 서서히 챠밍여사가 걱정을 꺼낼 시간인 것이다.

  비시토리오사 페리 선착장을 향해 왔던 길을 달려갔다.  수상 버스인 페리가 정박해 있었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게 페리에 올랐다.  그랜드 하버를 가로질러서 일단 발레타까지 간 후에  발레타 시티 게이트 앞의 몰타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슬리에마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랜드 하버를 페리를 타고 건너면서.........  사방으로 눈에 쏟아져 들어오는 몰타의 풍경이 너무도 아름답지 않은가?

  아!!!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또 아름다움이란 항상 찰라 같은 순간인 것을.........

  그 순간.........  태리할망구가 잊혀져 버리고 말았다. ㅎㅎㅎㅎ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것을  나보고 어쩌라고.........  뒤지게 혼나는 것은 잠시고,  이 순간은 놓쳐버리고나면 영원히 후회될것만 같은......... (쉿.  비밀임)   그땐 정말 그랬다.

  발레타 선착장에서 서둘러 왼편의 계단과 언덕길을 이용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해야만 하는데..........  정작 난........  오른쪽의  요한 기사단이 만들어 놓은 까마득히 높은 철옹성 아래 숨겨놓은 비밀 통로를 통해서 어퍼 바라카 가든으로 해서 발레타의 도심 속으로 향하고 있었으니........

 

 

 

 

 

 

 

 

 

 

 

 

 

 

 

 

 

 

 

 

 

 

 

 

 

  그날을 내가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해 줄 말이 없다.

  걱정할 것을 뻔히 알면서 그 시간에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는게.......

  숙소로 돌아가 어떤 액션을 취했느냐?  내가 살아있는 동안엔 절대 비밀이다......  천기누설 수준.........  ㅋㅋ

  아여간 어찌되었건  내가 지금 여행기를 복기하고 있다는 것은........  그날 무사하게 살아남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앞으로 여행중에 같은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뭘 어떻게 해?  당연히 없어야지......  그런 일이 다시는.........  그러나.......  또 생겨난다면?

  쉿........  상황 타개하는 방법이야 언제나 무궁무진한게 아니겠어?

 

  몰타는 그런곳이다.

  의도를 했던 하지않았던........  몰타는 사람을 사로잡아 꼼짝못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곳이다.

  나는 발레타의 매혹적인 속삭임에서 결코 벗어 날 수가 없었다.

  발걸음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발레타의 씨티 게이트를 들어서고 있었다.

 

 

 

 

 

 

 

 

 

 

     ---  다음 이야기에서 몰타 여행을 계속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