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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그래도 변함없이 대한민국의 봄은 우리 곁에 머물고 있더이다. 한 가족 처럼......

by 피안재 2020. 4. 30.































  임시로 놓은듯한 작은 다리를 건너니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듯 계곡 물소리가 골짜기 가득 울려 퍼진다.  그리고 숲속  가득 새소리가 울려 퍼진다.  새들은 하루 중에서도 이른 새벽부터 아침나절까지가 가장 청아하게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고 누가 내게 말했었다.

  누가 더 청아하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박새, 쇠박새, 곤줄박이, 직바구리, 산비둘기들이 저마다 제 목소리가 더 청아하다고 이른 새벽부터 목청을 돋우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아직 그 새들의 이름을 구별할 줄을 모른다.  목소리도 구별 할 줄 모른다.  그냥 이른 새벽에 지저귀는 부지런한 새소리로 기억할 뿐이다.  솔직히 자못 미안할 따름이다.

  그렇게 산행은 시작되었다.

  생활 주변에서는 벚꽃은 이미 한참 전에 졌고,  개나리가 한창이며 머지않아 아카시아 꽃이 필것이라고 양봉을 하는 분들의 움직임이 부산한 지금에......  여기 깊은 산골짜기에는 아직 채 봄도 오지 않은듯 , 아직 한겨울인듯 싶게만 느껴진다.

  꽃송이가 유독 작은 깊은 산골짝의 진달래는 이제 수줍은 얼굴에 잔뜩 미소를 머금은 채 쉬이 지나갈 봄을 벌써부터 못내 아쉬워하는 듯 하다.

  저만치 계곡 넘어 높은 산등성이엔 아직도 만년설을 닮은 눈이 산등성이를 에워싸듯 수북히 쌓여있다.

  이런 상황을.......  이런 풍경을 기대하고 찾아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지극히 사소하게 잠시 일상에서 벗어난 작은 일탈이었을 뿐이다.

  주변의 산야처럼.........  올망졸망 파스텔톤의 한없이 고운 색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상큼한 그런 봄 풍경을 기대하고 찾아나선 발걸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계절의 풍경중에서 압도적으로 울긋불긋 화려하게 물든 가을 단풍 풍경을 최고로 꼽는다.  하지만 나는 결코 아니다.

  굳이 별다른 이유야 대지 않겠지만........  가을 단풍 보다는.........  나는 파릇파릇한 파스텔톤의 봄풍경이 훨씬 더 좋다.  사월말에서 오월 초순에 봄비가 내려 차분하고 깨끗해진 자연환경 속에서  펼쳐지는 대자연의 파스텔화 풍경이란..........

  보다 더 정확하게 시기를 꼭 집는다면......... 깊은 산골짜기의 왕벚꽃이 만개하고........  아카시아 꽃이 피기 직전의 대한민국 산하에 비가 내리면...............  이랄까?

  계곡 입구에서 올려다보는 골짜기는 여느 산골짝들과 특별히 다를바가 없어보이지만.......  그래도 여기는 내설악이 아닌가.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아서 졸졸 소리를 내며 발아래 고랑으로 흘러내려가는 물줄기가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다.  얼마만에 제대로 느껴보는 상쾌한 기분인가?  그리웠다는 마음만큼이나 소중함과 고마운 마음이 가득 피어난다.

  대한민국 어느 곳이던지 다 비슷한 산골짝 풍경이겠지만  군데군데 피어서 바람에 흔들리는 진달래 주변으로 무성하게 숲이 이루어져 있다.

  물푸레 나무 한구루가 가장 먼저 눈에 띄더니만 바위 옆으로 박달나무도 보인다.  계곡에서 올려다보면 유난히 파란하늘이 높게 내걸리어있듯이 게곡의 나무들도 키가 한참이나 크다.  그리고 역시나 졸참나무와 서어나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발걸음을 좀 더 재촉하다보면 돌계단이  시작되는 즈음에서 '역시나'하고 탄성을 지르게하는 '우리 소나무' 무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쭉쭉 뻗었는가 싶으면 마치 한폭의 추상화처럼 어찌 저리도 유연하게 휘어져 물흘러내리는듯 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하단은 거북등 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터진모양이지만  그 밑둥치를 지나면 선명하게 드러나는 붉은 비단을 둘러놓은 듯한 자태에 잠시 넋을 빼앗기기도 한다.

  하지만, 오르면 오를수록 게곡 깊은 산골짝은 아직도 한겨울이다.

  한계천 건너 가리봉 정상에는 아직도 지난 겨우내 내렸던 눈이 수북히 쌓여있다.














































  길은 앞서 간 사람에 대한 신뢰와  뒤에 오는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 생겨난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처음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깨닫게 된 생각이다.

  좁고 가파른 협곡에 돌계단을 쌓아서 만든 손길에 산신님의 무한한 자비가 함께하시기를  기원하면서 한참을 올려다 보니  아뿔싸......  갈 지(之)자로 마치 숲속에 예술작품을 하나 만들어 놓은듯한 광경에.......  가파른 길을 오르는 여행자의 체력까지 안배해주신 그 깊은 마음에 저절로 숙연해지는것은 왜 일까?

  여기저기 바윗덩어리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첫번째 능선에 오르고 나니 기어코.......  설악산에도 '악(岳)' 글자가 붙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나라 산 중에서 '악'이 이름에 들어간 산 치고,  여행자에게 고분고분 깊은 품속을 쉬이 내어주는 산이 어디 있었던가?

  인고의 세월에 파이고 깎여나간 흔적이 깊어질대로 깊어지면 비로소 뾰죽뾰죽한 암봉들이 능선을 차지하고 들어 앉는다.

  예전에는 그 암봉들을 휘감듯 돌아가든가 기어코 타고 오르던가 돌틈바귀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하던가 해야만 했었지만,  세상이 좋아진 이후로는.......  오로지.......  줄곳........  사다리 계단이 등장했다.  어마나 고마운 일일줄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하지만.......  세상이 너무 좋아지다보니.........  이제는 사방팔방 아무데나 사다리 계단이 너무 과하다 싶을만치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처음에는 이것이 한없이 고마운 문명의 혜택이라 여겨졌는데........  이제 상당수의  등산객들은 그 사다리 계단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생겨나 버렸다.  너무나 많이 설치되었고,  가파를망정 흙이나 바위를 타고 넘을때는 말짱하던 무릎팍이  사다리 계단만 만나면  비 온다는 일기예보를 접하는 신경통 환자처럼 쑤시고 아파온다.

  거기에다 사다리도 사다리 나름이라고........  사다리가 요리조리 꽈리를 틀듯이 비틀어지기 시작하면........  저곳은 속칭 '깔딱 고개'가 틀림없다.

  하이고야,  이렇게까지 되리라고 시작한 나들이는 아니었는데.......

  소싯적에 백담계곡으로 오르다 옆길로 새어서 이곳으로 내려섰을 때 하고는 완전히 딴판이다.

  혹 내기억이 잘못되기라도 한 것일가?  왜 이리 낯설지?


  우리나라에는 참으로 멋지고 이름난 폭포들이 많이 있다.

  백두산 장백폭포는 아직 가보지 못한 처지이고, 한라산 천지연이나 장백폭포 또한 일품이라 하겠다.  설악산 토왕성 폭포나  여기저기의 구룡폭포를 비롯한 수많은 폭포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옛부터 (한반도의 폭포 3경) 하면 우선 개성에 있는 '박연폭포'가 으뜸이요,  금강산의 '구룡폭포'가 다음이라 했다.  더하여 설악산 자락 내설악에 위치한 폭포가 있는데 그 또한 천하절색이니 가히 일품이라고도 햏다.  하니 그 폭포가 바로 강원도 땅 인제군 한계령 자락에 위치한 '대승폭포'가 아닌가.





























































  모처럼 아주 잛게 가져보는 일탈인지라  대승이 전설이 어떻고,  엣날옛적에 양사언 선생을 비롯해 수많은 문객들이 이곳을 찾아 어쩌고저쩌고는 적어도 오늘만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설악을 오로지 내것인양 호젓하게 맘것 즐기고 누리다가 돌아간다는 이런 호사가 지금 내게 베풀어지고 있다는 사실뿐........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하기라도 했었나?

  어떻게 이런 호사가..........



  이제 나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한계령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당연히 양희은님의 '한계령'을 들으면서 말이다.


  저산은 내게 오지마라  오지마라 하고































  한계령은 개인적으로도 나름 많은 추억이 새겨져 있는 곳이다.

  지극히 인상적인 내설악의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한계령이 매혹적인것은  검은 빛갈의 휴계소 건물이 대한민국이 배출한 위대한 건축가 이수근 선생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자동차를 소유하게 되었을 때  이 멀고 외진 한계령을 처음 찾았던 이유도 바로 휴계소 건물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주변 환경과의 조화나 휴계소로 사용하고 있는 와중에도 건축학적 미나 가치를 충분히 느끼고 공감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운영의 묘가 사라졌고 절대적인 상업주의만이 만연해 버렸다.

  한겨울에 주차장에 사람키 이상으로 미쳐 다 치우지 못한 눈이 쌓이고 또 쌓이고,  대충 여기저기 주차를 하고 후다닥 세찬 눈보라를 피해 안으로 들어서면 뜨거운 오뎅국물을 덤으로 주던 아주머니며,  우리아들(짱구)이 그토록 좋아하던 버터를 발라서 구운 후에 설탕을 잔뜩 뿌려주던 감자구이를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혹한의 추위를 피해 들어가서는 이리저리 이수근 선생님의 건축을 찬찬히 둘러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온통 진열된 상품들로 가득하고,  한계령을 멋지게 조망할 수 있는 안쪽의 전망대 유리문은 철저하게 단단히 잠구어 놓았다.  건축가 이수근 선생의 작품은 시류에 뭍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세월에 빛바랜 그저 어디서나 흔하디 흔한 너저분한 휴계소가 달랑 서있을 뿐이다.(어디가지나 오랜세월 그곳을 다녀본 나만의 지극히 사적인 감흥일 뿐이다.  휴계소 당사자분들께 누를 기칠 마음은 전혀 없다는 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지난날 내가 한계령 혹은 한계령 휴계소에 가졌던 진한 향수나 추억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하여 화장실 이용하고 숩관처럼 주변 사진 몇장 직고 나서는 서둘러 고개를 내려간다.

  한계령 정상은 아직 깊은 한겨울의 풍경이다.

  이 시기만 아니라면 사계절 어느때나 눈을 떼기 힘들맍큼 아름다운 풍경을 실컷 구경할 수 있으련만.......  하필 택하고나니 가장 볼것이 없는 계절이다.

  아쉬운 마음속에 꾸불꾸불 고갯길을 한참을 내려가면 우측으로 기가막히게 아름다운 계곡이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그리고 챠밍여사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꼽기를 전혀 주저하지 않는 아주 멋진 명소가 바로 그곳에 있다.

  등산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외설악의 수렴동을 지나서 천불동 계곡을 최고의 절경이라 꼽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지만서도.......  나는 천불동 보다도 더 빼어난 절경이 바로 여기.........  흘림골에서 시작해 등선대에 오르고 나서 주전골로 내려서는 트래킹이라고 생각하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이다.

  가을 단풍이 아니어도 좋다.  봄 여름 가울 겨울을 통 털어서  흘림골에서 주전골로 이어지는 등산로만큼 아름다운 코스를 나는 대한민국에서 찾아 볼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립공원 등산로는 모두 입산금지 초치로 통제되고 있다.  해마다 겨울이면 산불방지 차원에서으례히 행해지는 조치이다.  하지만 곧 갈수기가 지나면  모든 입산금지 조치는 해제될 것이다.  늦어도 5월 안에는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내설악산 흘림골에서 주전골로 넘어가는 등산로'만은 계속 입산금지 조치로 통제된다.  우리나라에서 강제로 입산을 금지시키고 있는 곳으로는 이제 단 한군데 밖에 남아있지 않다.

  오래전에 여름 태풍 피해가 너무 커서......  산사태로 무너져버린 등산로를 채 정비가 되기도 전에 그 다음해의 태풍이 또 들이닥치고 말았다.  그 피해가 너무도 엄청나서 선뜻 복구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혹 복구가 이루어진다 해도  머지않아 또 산사태가 발생할것이 너무도 뻔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산세가 험악하고 등산로 자체가 가파르기로 정평이 난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지형이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기가막히게 아름다운 풍경을 고스란히 고이 간직하고 있는 절경지이기도 하다.

  운이 좋아서인지  2013년 초여름에 챠밍여사와  이 절경코스를 다녀왔었다.  그해에 수마가 덮쳤고,  그 이후론 지금까지 복구를 차일피일 미룬 채 입산이 통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마도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해도 몇 번은 구했지 싶다. 우리는 흘림골을 다녀 온 사람들 임........  ㅎㅎㅎ


  이제는 아스라니 먼 과거속의 추억이지만.......   2013년의  온전한 흘림골의 모습은 대충 이러했다.













































  이 정도였으니.......  그날의 흘림골 트래킹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곘는가?

  우리는 충주에서 밤 열시쯤 출발했다.  한게령 휴게소에 차를 주차시키고  차안에서 쪽잠을 잤다.  새벽 4시쯤에 일어나 컵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고나서  흘림골 입구로 이동을 하고난 후,  본격적인 흘림골 산행에 나섰었다.

  설악산이 온통 우리 둘만의 차지가 되었다.

  등선대에 오르니  아침 안개가 몰려왔다가는 삽시간에 어디론가 사라지는 황홀경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등선대에서 한참을 내려서니가 오색에서 서둘러 올라오는 여행자 부부를 만났다.

  명승지를 호젓하게 독차지하고 누려본다는것..........  다소 번거롭고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 참으로 해볼만한 일이다.


  지난날 산사태 피해가 났을 대 등산가들이 심하게 다쳐서  국립공원 관리공단과 법정 다툼까지 갔었다고 한다.

  하여........  국립공원의 입장에선  무조건 흘림골을 무제한 통제하고 싶은 눈치다.  하지만 등산가들과 오색 인근의 주민들은  정치권을 앞세워서  꾸준히 복구와 개방을 요청하고 있다.  하여 여러 이야기들을 전해듣고 조합을 해보니......  아마도 후년 즘에는  흘림골이 복구 재개방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물론 재개방이 되면 나부터 서둘러 뛰어가보겠지만 말이다.

  흘림골.........  대한민국에서 가장 빼어난 비경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쯤이면.......  예정에 없던 짦은 일탈 치고는 뭐.........  하면서 다시 현장 숙소를 향해 내려가려는데..........

  처음엔 그대로 오색을 지나쳤었다.

  프랑스의 유명 생수 못지않은 명품 약수라고?  오색 약수가 그 정도일 줄은 굼에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래도 나는 조지아의 보르조미 약수를 실컷 퍼 마셔본 사람이 아닌가.

  구 소련(소비에트 연방)에서는 사람이 얼마나 출세를 했는가의 가치 척도를.......  '평소 집에서 식수로 보르조미 약수를 사용하고 있는가'로 평가 했다고 하니  새삼스레 그 보르조미 생수의 품질을 재론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아무리 관직이 높고  돈을 벌어 출세를 했어도  집에서 보르조미 생수를 생활음료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제대로 출세한 것이 못된다고 여겼단다.

  하여 오색 입구를 그대로 지나쳐 지나왔는데.......  자구만 시선이 뒤돌아 보게되고,  누군가가 뒤에서 잡아당기는것만 같다.

  허니 어쩌겠는가?

  기어코 차를 돌리고 말았다.  하여 오색 약수 번화가 공터에 차를 주차 시켰다.

  한계령 정상과 산골짜기는 아직도 한겨울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오색에 들어서니 벚꽃이 만개하고 산수유가 아직 피어있다.  한참 봄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고향 충주랑은 적어도 보름 이상 기후시계 차이가 나지않나 싶다.

  올망졸망사람들이 모여있는  오색 약수터는 그대로 지나친다.

  오색 약수터 대문에 발길을 돌린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내친 걸음으로 곧바로 주전골 탐방로로 올라섰다.

  흘림골은 어차피 포기할 수밖에 없겠지만........  주전골의 깊은 곳에서  흘림골이 시작되는 이정표까지는 가 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흘림골에 대한 짙은 아쉬움이 끝내 내 발길을 돌려 주전골로 향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주전골.......  옛날 아주 먼 옛날에  도적패들이 이곳에 은거하면서 가짜 엽전을  몰래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말짱 거짓말이다.  이런 오지중에 오지에서 가자 엽전을 만들다가는 패가망신이 아니라 졸졸 굶어죽기 안성맞춤이다.

  역사소설을 쓰는 내 입장에서 살피자면.......  우리나라에서 가짜 돈을 만들만한 장소라면.......  의정부나 개성,  아니면  안성 인근이나 황해도 해주나,  평안도 의주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가 생각된다.  돈 만드는 기술은 물론  일단 철광석이 있어야 하고,  주조 시설이 필요하다.  어찌어찌해서 일단 만들었다고 치자.  가자 엽전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자가 돈은.......  일단 물자가 풍부한 시장이 있어야 하고,  온갖 재화가 빨리빨리 통용되는 곳에서 진자돈에 슬쩍슬쩍 섞여서 유통이 되어야만 한다.  여러 곳에서 이것저것 나누어 사고,  또 바꿔치기를 하고(요즘말로 돈 세탁), 구준히가 아니라 한탕 하고 수었다가 뜸해지만 불쑥 도 한탕하고  해야 그 사업(?)이 오래 갈 수 있는 것이다.  오색 산골에서 어쩌다 엽전을 십만냥을 만들었다 치자.  어디서 뭐에 쓸것인가?  아이들 놀잇감으로?

  기것 주막에서 열 냥 정도 쓸려고 주전골에 숨어서 가짜돈을 만든다고?  가짜돈 한 궤짝 지계에 지고 강릉장날 사기치러 가다가는 중간에서 쓰러져 죽는다.

  주전골(鑄錢)은 무슨 얼어 죽을...........  술 먹고 취해서 나뒹굴다가 극락가기 딱 좋은 골짜기(酒轉) 라고 하면 또 모를까?

  그리하야.......  슈퍼에서 캔맥주 큰것 하나를 사서 마시고는........  주전골 안자락으로 스며들어 갔다.















































































  짧은 일탈은 여기서  끝.

  다시 일상으로 복귀............  흑.


  언제나 처럼 아름다운 우리의 봄은 여전히 화사하게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한........  시련과 고초 속에서......  모두모두 건강하시고  승리하는 생뢀이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