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치는 소리에 놀라 테라스에 나서보니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밤새도록 그렇게 하염없이 폭우가 내린다.
티비를 켜고 뉴스 화면을 찾으니 (기상 재난방송)이 나오고 있다. 스페인. 포푸투갈. 지중해에 걸쳐서 강력한 기압골이 형성되어 있다. 오늘 하루종일 온통 비가 내린다는 예보다. 어디 오늘뿐인가? 내일까지도 온통 비다. 일기예보 화면 어디에도 구름 표시가 없다. 온통 비 표시로 빼곡하다.
강물 범람이랑 해안에 불어닥치는 해일성 높은 파도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야말로 최악이다.
그나마 짧게 잡았던 포루투갈의 모든 일정이 산산히 부서져나가고 있었다.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여행을 계획하고 추진한 사람의 입장에서 어덯게든 이 곤혹스러운 상황을 타개 할 묘책을 찾아야만 한다.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것을 우리가 어떻게 해? 스페인도 온통 마찬가진데 뭐. 그러려니 하고 들어앉아서 티비나 보지 뭐.'
고민스런 내 표정을 보고 안심시키려 챠밍여사가 맘에도 없는 푸념을 늘어 놓는다. 적지않게 모든것이 걱정되는 표정이다.
'나에게 조금만 시간을 줘. 뭔가 타개책이 있을거야.'
'너무 마음 쓰지 마. 꼭 돌아다니는 여행이 다는 아니잖아? 뭘하든지 함께만 있으면 되는거지 뭐.'
내가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온갖 메모로 가득한 수첩이랑, 여행 스케줄 기록표랑, 지도랑, 여행 안내서를 가지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비상 재난사태다!!!
그리고 정확히 40분 후....... 화장실을 나오면서 내가 챠밍여사에게 외쳤다.
'우리 예정대로 오늘도 아침부터 여행을 계속할거야. 천천히 준비하도록 하셔. 아침식사도 나가서 어디 빵집에서 커피랑 해결하면 좋겠어.'
'이 빗속에 나간다고? 안그래도 되는데? 도대체 어디를 갈려구?'
'포루투. 우린 포루투에 갈거야.'
'포루투? 거긴 너무 멀어서 이번 여행에서 뺀다고 안했어?'
'날씨가 좋았으면 포루투는 빠졌지. 하지만 이렇게 비가 계속 쏟아지니까 새로운 플랜으로 다시 등장하는거지?'
'도대체 그 이유가 뭔데?'
'포루투는 여기 리스본에서 가는데 3시간반 오는데 3시간반, 도합 7시간 동안 이동만 해야 해. 그럼 하루중에 남는 시간이 별로 없잖아. 처음엔 거점을 포루투로 이틀 정도를 잡고 브라가와 함께 돌아 볼 생각도 했었는데....... 그럼 여기 리스본에서 시간이 너무 없어. 그래서 뺐지. 그런데 계속 비가 오잖아. 호텔에 죽치고 앉아서 온종일 밖에 비내리는 것만 쳐다보고 있기보다는 차라리 포루투라도 다녀오면서 계속 바뀌는 주변 경관을 즐겨보는 것이 조금은 더 낮지 않겠어? 포루투갈의 전원풍경을 즐기는 나들이 하는 날이 되는 것이지."
'빗길이라 위험하잖아."
'리스본에서 포루투는 버스나 기차나 똑같이 3시간반이 걸려. 오늘은 오가는 모든 운송수단이 고속열차야. 그럼 되겠지?'
'기차라니 버스 보다는 마음이 놓이기는 해.'
'거기에다 또 한가지 이유........... 리스본은 포루투갈의 남부에 해당하는 도시야. 그런데 포루투는 포루투갈은 물론 리베리아 반도의 중북부에 해당하는 도시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 멀리 떨어져 있으면 혹시........ 날씨가 좀 다를수도 있다는 나의 예지가 담긴 계획변경이야. 혹시 알아? 서울과 부산의 날씨가 많이 다르듯이?'
'그럴리야 없겠지만, 혹시 맞추면...... 어디 현대 타운에 돗자리 하나 깔아줄께.'
포루투(Porto).
그런 이유로 해서 이번 여행에서 빠졌던 포루투가 다시 여행의 전면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결과론적으로는........... Oh, Happy day !!!!!!!!!!!
기적과도 같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우산을 쓰고 호시우 역까지 가서 겨우 표를 사서 기차에 올랐을 때 까지도 여전히 소낙비가 내렸다.
달리는 고속열차의 차창으로 세찬 빗줄기가 달려와 사정없이 부딪혔다. 그같은 상황은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심히 마음이 무겁기가 그지 없었다.
리스본 주변과는 너무도 다른 풍광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느낌으로 기차가 거의 포루투에 다가서고 있다고 느꼈을 때........ 갑자기 비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포루투 역에 기차가 멈추어 섰을때...... 하늘은 여전히 잔뜩 찌프리고 있었지만 분명 비는 멎어 있었다. 간간히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을 뿐.
차창 밖으로 포루투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동 루이스 1세 다리)가 지나간다. 정말로 비가 그친 포루투에 당도한 것이다.
세상에나..........
아마도 그것은 꿈이었거나........ 기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예정에서 배재되었던 (포루투)를 다시 만났다.
리스본을 대표하는 기차 역이 (호시우 역) 이라면, 여행자들이 꼭 들러야 하는 포루투의 명소인 (상 벤투 역)이 있다.
하지만 리스본의 호시우 역을 출발한 기차는 이제 상 베투 역까지 운행하지 않는다. 상 벤투 역은 새로운 도시계획과 역사의 문화적 가치성을 인정받아 기차 역으로서의 역활에서 반발짝쯤 뒤로 물러서 있다.
리스본에서 오는 모든 기차는 푸루투의 캄파냐(Companha) 역에서 멈추어 선다. 캄파냐 역이 포루투의 종착역이다. 이곳에서 택시나 트램이나 지하철을 이용해서 포루투의 각지로 이동하게 된다. 일부 여행자들도 이곳에서 하차하여 택시나 트램으로 상 벤투 역으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고 한다. 하지만 캄파냐 역에서 상 벤투 역까지는 아주 자주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고 겨우 10분 거리의 지척이다. 거기에다 이미 지불한 기차 티켙 요금에는 이 지하철 운임이 포함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캄파냐 역에서 상 벤투 역까지 모든 여행자에게는 공짜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노란 지하철에 오르면 아주 잠깐을 빼고는 거의 전구간을 지상철로 운행한다.
이동하면서 포루투의 풍광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포루투의 상징 (동 루이스 1세 다리)가 휙 하고 지나가고 만다. 그러면 내릴 준비를 해야만 한다.
이제 곧 (상 벤투 역)에 마침내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아름다운 기차역으로 세계적으로 톡톡히 명성을 얻고 있는 그 위대한 역사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포루투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알.럽.포.루.투.
세상에 이처럼 치명적일만큼 아름다운 도시가 또 있을까?
포루투는 얄밉고 자증날 정도로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여행자들은 저마다 낭만을 이야기 한다.
프랑스의 파리를 말하고, 체코의 프라하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중에는 여행의 고수들만이 알고 있는 포루투갈의 포루투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포루투)는 '부두'를 뜻하는 'Port'에서 유래된 지명을 가지고 있는 포루투갈 '제 2의 도시'이다.
도우루 강 하구에 위치한 항구도시로서 일찍부터 무역을 통해 교역의 중심지로 발돋음하였고, 또한 대항해 시대의 주역이었던 '엔리케 왕자'의 출생지이다.
포루투갈의 이야기 하거나 여행하거나 그들의 역사를 들여다 봄에 있어서 '엔리케'라는 이름을 알지 못하면 절대로 포루투갈을 알거나 이해 할 수 없다.
이 부분에서 여러 여행자들이 여러가지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엔리케. 엔리케. 어디를 가나 엔리케..........
아마도 가이드들은 정말로 열심히 제대로 설명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깊은 관심이 없었다면 이런저런 오해가 쉽게 생겨날 만도 하다.
포루투갈에서는 '대항해 시대의 엘리케 왕자'를 빼놓고는 이야기도 역사도 성립되지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엔리케가 그에게만 귀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 한명의 아주 중요한 엔리케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진짜 왕이었던 엔리케 이다.
하여 포루투갈을 제대로 알려면 '한번 엔리케 왕은 죽어도 엔리케 왕이고' '한번 엔리케 왕자이면 그는 죽어서도 끝까지 왕자' 이다.
이 여행이 끝나기 전엔 서로 다른 엔리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겠지만............
그럼 이제 상 벤투 역사 안으로 들어가 보자.
리스본으로 돌아가는 기차표도 서둘러 예매를 해야 하니까..........
왜 그토록 수많은 여행자들이 (상 벤투 역) 노래를 해 대는지 어디 한번 들여다 보기로 하자.
아줄레주(Azulejo)는 '윤을 낸 돌' 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시리도록 차가울것만 같은 푸른빛의 타일 그림으로 벽면을 장식하는 포루투갈만의 매우 독특하고 아름다운 예술이다. 이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는 동안 들어온 모자이크 문양의 타일들을 통해서 포루투갈만의 새로운 전통 문화로 발전시킨 한 예이기도 하다.
성 베네딕토 수도원이 화재로 소실된 자리에 새로운 시대의 산물인 기차가 들어오게 되자, 카를로스 1세는 이곳에 기차역을 세웠다.
포루투갈 최고의 건축가인 마르케스 디 실바가 설계와 건축을 맡고, 최고의 아줄레주 화가인 조지 콜리코가 약 2만개의 타일에 정교하게 아줄레주 그림을 그렸다. 장장 12년이나 걸려서 완성된 위대한 아줄레주 작품이다.
2만개의 타일을 늘어놓고 그림을 그렸다고 치자. 가마에 넣고 굽는 도중에 서너장 금이가고, 또 이송 도중에 서너장 파손되고, 벽에 붙이는 동안에 또 서너장 파손되었다 치자. 그러면 다시 2만장의 타일을 펼쳐 놓고 다시 크기와 비례에 맞게 그려야 한다? 아님 처음부터 한 다섯셑트를 그려서 시작해? 헐.
이 아줄레주 벽화를 가만히 살펴보노라면 포루투갈의 역사가 그대로 생생하게 담겨져 있다.
에스파냐로 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독립 전쟁이 있고, 십자군의 지원에 힘입어 리스본의 무어인들을 몰아내고 최초의 포루투갈 왕국을 성립하는 그림이 있다. 그리고 대항해 시대의 주인공으로 모로코의 세우타를 점령했던 엔리케 왕자의 그림도 보인다.
거기에다 포루투갈 백성들의 일상적 생활 모습과 당시의 풍경이 살아있는 듯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야말로 보배이다.
그야말로 포루투갈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포루투갈 하면 '아줄레주'가 있고, 아줄레주 하면 왜 '상 벤투 역'을 꼭 찾아봐야만 하는지 알것만 같다.
그렇게 그렇게 한참동안을 머물면서 천천히 아줄레주의 향연에 취할만큼 취해본 연후에 겨우 상 벤투 역사를 빠져 나온다.
와!
어쩌면 이렇게..........
와!!!!!!!!
'어쩌면 좋아? 이게 정말 현실이야?' 챠밍여사가 탄성을 연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앙증맞고 깜찍한 포루투가 내 시야 가득 한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포루투는 얄밉다 못해 짜증이 날 정도로 정말로 아름답다.
구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보존될만큼 매혹적이다. 이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도시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중에서도 포루투 여행의 백미는 바로 빌리 노바 지 가이아 지구(Wine spot) 라고 해야만 하겠다.
이 지역은 한마디로 한 폭의 수채화 처럼 화사하고 아름답다.
너르고 푸른 도우루 강을 끼고 강의 양쪽의 언덕 위로 빼곡하게 주황색 지붕의 집들을 저마다 개성 넘치는 형형색색의 벽들이 떠받치고 있다. 강변 광장에는 카페와 와이너리로 가득하고 기리게 늘어선 파라솔마다 여행자들로 가득 차고넘친다.
강 건너에는 역시 주황색 지붕을 가진 제법 너른 공장이나 창고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 있는데 대부분이 포도농장을 직접 운영하면서 언덕의 동굴속에 어마어마한 양의 포도주를 보관하고 있는 와이너리들이다. 바로 포루투의 보물창고다.
날씨는 초겨울을 방불케하고, 하늘은 잔뜩 지프린 채 간간히 빗방울을 떨구고 있지만, 여기저기 거리의 악사들의 노래소리가 울려 퍼진다.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겨울 점퍼를 꺼내 입은 수많은 여행자들이 옷깃을 여미면서도 파라솔 아래 앉아 여행의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모습 또한 대단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리고 어느 사진 어떤 그림에서도 항상 포루투의 상징처럼 우뚝 서서 무한한 위엄을 과시하며 포루투를 지켜주고, 여행자에게는 포루투를 각인 시켜주는 장엄한 위용의 (동 루이스 1세 다리)가 배경처럼 우뚝 솟아 있다.
그런데 이 거대한 다리를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어딘가 무척 낮이 익다. 무엇인가와 많이 닮았다.
이 다리를 설계하고 건축한 사람은 '테오필 세이리그'라는 건축가다. 그리고 그는 바로 에펠탑을 설계한 '쿠스타프 에펠'의 제자이다. 거대한 철구조물 덩어리에 연결 부위에 쓰인 커다란 리벳을 쳐다보게 되면 무조건 (에펠탑)이 떠오르는 데에서 떠오르게 되는 고정관념 처럼 되어버린 인식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베트남 후예에 설치된 에펠의 '짱뚱교'와도 매우 닮았다.
'여기 와인이 무척 유명한가봐?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와인을 마시고 있어.......'
'포트 와인(Port Wine) 이라고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와인이 있는데 바로 여기 포루투가 최초 발상지야.'
'품종이 다른거야?'
'굳이 표현하자면....... 품종이 다르다기 보다는 제조 과정이 좀 다르다고 해야겠지?'
'포도주는 다 거기서 거기 아니야? 수확해서 불순물을 걸러내고 거품이 사라지면 오크통에 넣어서 한동안 더 자연발효를 시키고, 거의 발효가 어느정도 이루어 졌다고 싶으면 유리병에 넣어서 코르크 마개로 막고 밀납을 해서 지하 창고에 먼지가 수북히 쌓이도록 장시간 보관하는것........ 아니야?'
'응. 모두 맞아. 그런데 여기 포루투 와인은 그 제조 과정에 실수로 사람이 약간 장난질을 쳤다고나 할까?'
'와인 제조과정에 장난질? 무슨 장난질?'
'이야기 하자면 좀 길어 질 수도 있는데......... 그럼 오늘은 아예 본격적으로 와인에 대해서 이야기 해줄까? 포트와인이 탄생한 장난질부터.........'
'이번에도 옛날 이야기야?'
'웅. 재미난 옛날 이야기........ ㅎㅎㅎ. 내가 옛날에 이미 이야기 해주었던 걸 아직 기억하나 몰러?'
'뭔데?'
'그리이스나 아르메니아나 또는 이집트 처럼 포도주를 처음 만든것이 자기들이라고 주장하지만....... 포도주를 세계적으로 퍼트린 일등 공신은?'
'로마. 로마의 군인들 아니야?'
'맞았어. 로마의 군인들이 자신들이 점령했던 대제국의 영토 안에 모두 포도나무를 심었거든. 소 아시아에서 시작해 북쪽의 영국과 스코틀랜드에도 심었고 프랑스를 지나 리베리아 반도의 에스파냐(스페인) 땅에도 포도나무를 심었지. 지중해 건너 모로코 튀니지의 영토에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들도 모두 로마의 군인들이었어. 포도주를 즐겨 마시는 애호가들은 포도주를 발명한 신에게 감사 할 일이 아니라 바로 로마의 군인들에게 감사해야 해. 나 처럼 말이야.'
'맞아. 그렇게 들었어. 기억 나.'
'그런데 로마의 지배를 받기는 했는데 중요 점령지가 아니었기에 로마군이 포도나무를 심지 않은 지역이 있었어. 바로 포루투갈 지역이야.'
'왜?'
'로마에서 리베리아 반도 지역에 들어서면 남쪽으로 비옥하고 광활한 너른 평야 지역이 있는데 바로 안달루시아 평원이야. 연중 햇쌀이 풍부하고 알맞게 비가 내리고 지중해성 시원한 해풍이 불어오니 포도 재배에 얼마나 적합한 땅이겠어. 그곳을 지나 여기 포루투갈에 와 보니 척박하기 이를데 없고 대서양성 기후로 비가 잦고 허구헌날 차가운 바람이 불어대니 모하러 이런데다 포도밭을 일구겠어? 안달루시아에서 나는 포도만으로도 차고 넘치는데. 그래서 일부러 포루투갈을 외면해 버렸던거야. 생산성과 효율성이 한참이나 떨어졌던것이 이유였지.
'그럼 지금 사람들이 마시는 저 많은 포도주는 다 뭐야?'
'그러기에 이제부터 슬슬 옛날 이야기를 시작하게되는............'
<와이너리 방문을 생략했던 이유로 아래 넉장의 사진은 와인 이해를 돕기 위하여 타 사이트에서 퍼 왔음.>
영국인들의 와인 사랑은 아주 특별하다. 그중에서도 레드와인을 유독 즐긴다.
역사와 민족간의 분쟁 결과로 스코틀랜드 같은 북쪽에서는 위스키가 유명하지만,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는 것이다.
최고급 와인 한 병을 위해서 결투를 서슴치 않거나 심지어 전쟁을 불사 할 수 있는 사람들도 바로 영국인이다. 온 유럽을 한동안 대재앙으로 만들었던 잔다르크가 등장하는 백년전쟁도 따지고 보면 그 배경에 '와인 때문에 혹은 포도밭 때문에 생겨난 전쟁' 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의 군인들은 험악한 도우버 해협을 건너 영국과 스코틀랜드 지역까지를 점령했다.
그곳에 성을 쌓고 군대를 주둔 시켰다. 용맹을 앞세워 온 유럽과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 지역까지를 점령한 위대한 로마의 군인들은 병사 1인당 하루에 약 3리터 정도의 포도주를 소비했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결론적으로 로마 군인들의 용맹은 어느정도 술기운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로마 군인이 진군하고 주둔하는 모든 지역에 그 어마어마한 양의 포도주를 지속적으로 공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로마의 군인들은 군댕의 보급물자 마차에 대량의 포도나무를 싣고 진군 했다. 전쟁에 이기고 주둔지가 건설되면 그 인근에 밭을 일구고 포도나무를 심고 가꾸었다. 포도주를 자급자족하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영국 지역에서는 포도나무가 잘 자라지 못했다. 스코틀랜드 지역의 포도나무는 혹독한 추위에 얼어 죽어버렸다. 나머지 잉글랜드 지역에서는 긴 겨울과 항상 습하고 연중 비가 내리는 날이 너무도 많아 일조량이 지극히 적어 포도나무 재배에 최악의 조건이었다. 결국 그들은 포도 농사를 포기했다.
로마가 멸망하고 중세에 들어서서 영국의 귀족들은 물론 일반 평민까지 온통 포도주에 흠뻑 빠져 있었지만 쉽게 포도주를 얻을 수는 없었다.
온 유럽이 왕족들간의 혼인으로 서로 얽히고, 이런저런 이유로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왕이 죽으면 그때마다 한바탕씩 영토를 두고 각축전을 벌였다. 영국은 이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방법을 통해 프랑스 영토의 보르도 지방을 차지하게 됨으로써 포도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로마 이후의 유럽을 보면 이탈리아는 여러 도시공국으로 분열되어 자기들 스스로 반목하고 다투느라 정신이 없고, 에스파냐(스페인). 프랑스. 영국이 영토와 지배권을 놓고 강력하게 대결하던 시기라 하겠다.
결국 이 포도밭 쟁탈전이 영국 프랑스간의 백년전쟁으로 확대되게 되는 것이다.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또다시 영국인들은 포도주를 접할 수 없게 되었다. 진 이나 위스키 같은 몰트 증류주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영국인들은 포도주 획득을 위해서 에스파냐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 하필 이 시기가 에스파냐가 급격하게 성장을 해나가면서 프랑스를 위협하기가지 시작했던 시기였다. 바로 (스페인 무적함대)가 등장 하였으니, 에스파냐의 입장에서 영국이 별로 두려울 것이 없던 시기였다. 에스파냐는 영국의 포두주 무역 제의를 단박에 거절해 버렸다. 프랑스와 에스파냐에서 거절당한 영국으로서는 이제 단 한병의 와인도 구할 수가 없게된 것이다. 실로 영국의 위기였다.
그때 실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누군가가 '기가막힌 포도주를 발견했다. 프랑스도 에스파냐도 아닌 독립 지역이라 그곳의 포도주를 독점 수입하면 모든것이 해결된다'는 뜻밖의 기쁜 소식이 날아 들었다.
그곳이 바로 포루투 였다.
로마군이 포기했던 이 척박한 반도의 끝에 어떻게 포도나무가 재배되게 되었느냐?
11세기의 유럽은 <십자군 전쟁>으로 대변된다.
소아시아 지역에서 오스만 투르크가 급성장하면서 비잔틴 제국에 위협을 가해오자 알렉시우스 황제는 '성지 순례자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성지 예루살렘의 탈환을 위해 군대를 보내자'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처음엔 단호하게 불가를 외쳤던 교황이었지만, 황권(皇權)과 교권(敎權)의 살벌한 대립속에서 활로를 모색하던 교황의 욕심으로 결국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게 된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리베리아 반도에서는 '레콩키스타(카톨릭에 의한 국토 회복운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아프리카 튀니지 모로코 지역에서 건너온 무어족(이슬람)의 리베리아 반도 대부분의 지배가 수백년 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스페인의 전지역에서 국토회복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하지만 세력이 미미했던 포루투갈 지역의 국토회복 운동은 그리 활발하게 전개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 일대 전환의 기회가 찾아 왔다.
교황의 속셈을 미리 알아차리고 '예루살렘 성지 탈환을 위한 십자군'에 가담하지 않은 일부 유럽의 귀족과 기사들이 십자군 이라는 이름하에 리베리아 반도의 무어족(이슬람) 소탕작전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포루투갈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리더가 바로 포루투갈의 귀족이었던 (엔리케)였다. 바로 이곳 포루투 출생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돕기 위하여 프랑스의 한 귀족 후예가 군대를 이끌고 달려왔다. 수많은 전투에서 용맹을 떨친 그 프랑스 기사의 이름은 '앙리 드 부르고뉴' 이다. 그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프랑스의 아주 유명한 포도주 산지 출신이었다.
엔리케와 앙리는 합심하여 이슬람의 소탕에 누구보다 앞장을 섰고, 마침내 리스본을 점령하면서 포루투갈 지역의 국토회복 운동에 성공하게 되었다.
엔리케는 포루투갈 사람들의 추대에 의하여 초대 포루투갈 국왕에 취임한다. 첫 포루투갈인의 새로운 왕조가 등장한 것이다. 그가 바로 엔리케 왕이다.
엔리케 왕은 혁명의 동지인 앙리 드 부르고뉴에게 백작의 지위를 선사하고 자신의 고향 포루투를 그의 영지로 하사했다.
앙리는 곧 프랑스의 고향에서 포도나무를 들여왔고 이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는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냈다. 가파른 산비탈을 개간하고 대서양의 차가운 바람과 척박한 환경을 모두 견뎌낸 포루투의 포도나무는 유독 향이 강하고 쌉쌀하면서도 깊은 풍미를 간직한 훌륭한 와인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포트 와인의 시작이었다.
영국은 이제 '와인의 갈증'으로 비로소 해방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새로운 재앙과도 같은 장애가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바로 운송과 보관의 방법이 거대한 장애로 새롭게 부각되었던 것이다.
프랑스의 와인을 벨기에나 네덜란드 지역에서 배에 싣고 짧은 시간에 도우버 해협을 건널 때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달랐다. 포루투에서 배에 선적한 와인을 멀고 험한 대서양의 파고를 넘어서 서너달이 걸려서 영국까지 운송하기에는 여러가지 장애가 너무도 많이 생겨났던 것이다. 선박에서 고른 온도와 습도를 유지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 했다.
거기에다 와인은 특성상 미세하나마 끊임없이 발효와 숙성을 계속하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당시까지는 아직 코르크 마개가 발견되기 이전이어서 요즘처럼 유리병에 담고 코르크 마개로 막아서 아주 더디게 발효를 지속시켜주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어디가지나 오크통에 담아서 운송하는 것이 그나마 최선을 방법이었다. 습도와 온도 조절 실패로 포도주의 맛이 변질되거나 심지어 부패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더하여 험한 파도에 흔들리는 배를 이용하다보니 잠자던 발효가 급격하게 재가동되면서 끓어오르는가 하면 꽉막아놓은 오크통은 폭발하기에 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코르크 마개를 이용하여 유리병을 사용하게 된것은 한참 뒤인 17세기에나 가능해진 것이다.
영국의 선박회사는 오늘날의 (소몰리에) 비슷한 와인 제조과정 전문가들을 양성하여 배에 오르게 하였다. 이들은 포루투에서 포도주가 선박에 실려지는 순간부터 영국에 도착해 하역시까지 철저하게 와인의 상태를 체크하고 문서에 기록하게끔 등장한 새로운 와인 전문가들이었다.
어느날 포루투 항구에서 영국의 한 대형선박에 어마어마한 양의 포도주가 가득한 오크통들이 수없이 많이 선적되었다.
선박회사의 명운을 건 도박 같은 포도주 운송작전이 개시된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는 이 배에 함게 탄 포도주 관리 전문가가 엄청난 '주태백이'였다는 사실이다. 술기운이 떨어지면 아무짓도 못할 정도의 중독자였다.
허나 어쩌겠는가?
와인을 그득 실은 배는 영국을 향해 거친 파도를 헤치며 씩씩하게 대서양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다가 그만 중간에 태풍에 휘말리게 되고 말았다.
배는 기우뚱 기우뚱 아슬아슬하게 파고를 넘실거렸고 오크통 속의 포도주들은 다시 왕성하게 발효활동을 재개했던 것이다.
주태백이 전문가는 밤잠을 설쳐가면서 살아요동치기 시작하는 오크통들을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달래야만 했던 것이다.
하루는........
피곤에 지친 전문가는 규정을 어겨가면서 선실 바닦의 포도주 저장고에 독한 브랜디를 병나발을 불면서 내려갔다. 가스가 가득한 오크통들의 마개를 잠시동안 열어서 가스를 빼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마개가 열려진 아주 커다란 오크통 위에 브랜디 병을 잠시 올려놓고 반대편 통로에 쌓아둔 오크통의 마개를 딸려고 하는 찰라...... 거친 풍랑에 배가 요동치면서 그만........ 올려놓은 병이 쓰러지면서 남아있던 브랜드가 모두 열려진 오크통 속으로 흘러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다.
주태백이 전문가는 그만 앞이 캄캄해져 버렸다. 배가 영국에 도착하면 그가 어떤 댓가를 치루게 될지를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배가 도중에 대서양에 침몰해 버리지 않은 이상 자신이 이 사태에서 헤어나거나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오크통의 마개를 닫고 선실을 빠져나갔다.
'이대로 바다에 뛰어들어 차라리 죽어 버릴까?'
마침내 오랜 항해 끝에 배가 무사히 영국의 항구에 정박했다.
선박회사에 속한 와인 전문가들이 가장 먼저 서둘러 배에 오르고 있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이 바로 싣고 온 오크통 하나하나를 전수조사하여 와인의 상태를 체크하는 일이었다. 이제 머지않아 자신의 실수를 그들이 눈치채게 될 것이다.
'이대로 도망쳐야 하나? 어디로?'
'차라리 진즉이 죽어버렸어야 했어. 잠시 뒤면 지하 독방에 갇혀서 영영 밖을 볼 수 엇는 신세가 되겠지? 오. 주여...........'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그럴수록 주태백이 전문가의 속은 타들어만 갔다. 이제 곧 불호령이 자신을 향해 날아올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수만은 거룻배들이 항구로 부터 쏟아져 나오고 뱃전에 오른 사람들이 서둘러 선실 아래 창고로 쏟아지듯이 몰려 내려갔다. 간간히 안면이 있는 선박회사 최고 관리자들과 세관 직원과 귀족 신분의 차림을 한 사람들까지 몰려 온 것이다. 사단이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처음 포도주의 상태를 점검하러 올라왔던 세명의 검사원은 지금 주태백이가 작성한 관리 일지를 검사하느라 난리였다. 그 앞에서 선장은 이번 항해에 대해서 소상하게 설명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었다.
모두가 단 곳의 오크통 앞에 몰려서 그야말로 난장판을 이루고 있었다. 저마다 그 오크통에서 나온 포도주를 한모금씩 맛을 보고는 경악의 표정들을 지었다.
'어떻게 된 것인가? 이유를 찾았는가?'
'아닙니다. 찾지 못했습니다. 관리 일지나 선장이 제출한 항해 일지나 모두 이상이 없습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똑 같은 포도를 가지고 똑같은 방법으로 만들어 같은날 배에 선적했네. 곧장 이리로 왔으니 이 오크통 하나만 특별할 수 있는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거기에다 이것은......... 우리가 이제가지 전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와인이 아닌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이가?'
'저희로서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세세하게 감별을 해 본 결과......... 현재 이 배에 선적된 오크통의 절반은 이미 부패에 접어들어서 와인이라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나마 절반 정도만 마실 수 있겠으나 최하등급의 와인 상태입니다. 그런데 어지된 영문인지 이 한통의 오크통만은....... 멀쩡합니다. 아니 향도 더욱 그윽하고 첨가하지 않은 과일의 향도 풍겨 나옵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발효 과정을 거친것처럼 말입니다. 보통의 와인보다 더 자극적인 알콜 도수에 지금 느껴지는 이 풍미를 더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조금 시간이 지나 주태백이 전문가는 모든 사실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어디까지나 그의 장난끼 서린 실수 덕분이었다.
포트 와인은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되었다.
와인의 숙성 과정에서 높은 알콜 도수의 브랜디를 일정 비율로 희석하면, 그 브랜디를 증류주로 만들 때 사용된 과일의 향이 와인에 녹아 들고, 브랜디의 높은 날코 도수가 포도의 급격한 발효과정을 안정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포트와인은 18도에서 20도 정도의 다소 높은 알콜 도수를 가지게 된다. 보통의 와인은 8도에서 10 정도이고 지극히 일부 13도 정도의 와인이 주류를 이루는 시장에서 말이다.
한편 인근의 스페인에서는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강화 와인인 셰리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스페인만의 독특한 특산품이다.
그럼, 포트와인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냐?
글쎄다.
영국을 고깝게 여기는 프랑스나 스페인이 가만 있겠어?
언덕위에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는 카데르랄( 대성당)은 포루투 사람들에게는 자긍심이자 성지이다.
포루투갈의 번영기를 있게만든 해양왕 엔리케 왕자가 세례를 받은 곳이라 더욱 그렇다.
장엄한 겉모습에 비해 대성당의 내부는 하려한 장식을 거부한 채 그냥 깔끔하고 묵직스러운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다.
대성당 입구인 언덕에 세워진 청동 기마상은 프랑스의 앙리 백작과 더불어 포루투갈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미마라 페레즈의 동상이다. '포루투의 백작'이라 칭송 받으며 현지인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추앙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대성당 앞마당에는 죄인이나 노예를 결박해 매달아 놓고는 매질을 하는 용도의 건축물이 놓여져 있는데 이를 '페로우리뇨'라고 부른다. 공개적인 광장에서 얼마차 참혹한 형벌이 자행되었는지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포루투의 대성당은 특별하거나 화려한 장식을 과감하게 삭제한 채 오로지 장엄한 분위기로 다가와 마음을 가다듬고 추스리기에 참으로 좋은 장소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내려다 보는 빌라 노바 지 가이아 지구의 풍경 또한 대단히 아름답다.
--- 해양왕 인판테 동 엔리케 왕자.
15세기에 이르러 포루투갈에 커다란 신의 축복이 내려진다.
(해양왕 엔리케) 혹은 (인판테 동 엔리케 왕자)로 불려지는 위대한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해양왕 이라는 표현은 그로인하여 포루투갈이 인도양을 거쳐 아시아로 향하는 항로를 개척하게 되는 포루투갈의 대항해 시대를 연 개척자라는 의미이고, 인판테 동 엔리케 의 인판테(Infant)는 왕위 계승권을 가지지 못한 왕자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포루투갈 왕이었던 주앙 1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기에 왕위 계승권에서 멀어져 있었고 이름 앞에 항상 인판테를 달고 살았다.
이렇게 보자면 이제 두명의 엔리케가 모두 등장한 것이다.
국토 회복운동을 통해 무어인을 몰아내고 에스파냐의 카스티야에서 독립한 포루투갈 아비스 왕조으이 초대 국왕이었던 (아폰수 엘리케)가 한명이고, 포루투갈의 대항해 시대를 연 영원한 왕자 신분의 (인판테 동 엔리케)가 다른 한명이다.
인판테 엔리케는 포루투갈 특유의 범선인 카라벨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미지의 항로를 개척해 나갔다. 아프리카를 발견하고 희망봉을 발견했다. 군대를 이끌고 지중해를 건너 현재는 스페인 령으로 있는 세우타를 점령하기도 했다. 그가 개척한 대항해 시대는 포루투갈의 황금시대를 열게된다. 그의 사후에 인도 항로가 개척되고 더 나아가 브라질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 이면엔 바로 엔리케 왕자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으며, 그는 포루투갈 최고의 영웅이자 영원히 칭송과 추앙을 받는 인물이다.
엔리케에서 시작된 포루투갈의 번영기는 약 200년간 지속된다. 그리고는 하루 아침에 추락하고 말게되는 것이다.
16세기 후반 포루투갈에 새로운 왕이 득극했다.
왕위 계승권자들이 하나 둘 모두 사망함에 따라 유일한 남자 혈육인 세바스티앙이 새로운 왕에 등극하였는데....... 그의 나이 3살 이었다.
결국 할머니인 카타리나가 오랫동안 섭정을 했다. 그 오랜 기간동안 국운은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세바스티앙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이룬다. 그만큼 어떻게 쉽게 평가하거나 정의 내릴 수 없는 인물이었다. 24살에 모로코 정벌에 나선 세바스티앙은 포루투갈의 최정에 전군을 이끌고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만 포루투갈은 전투에서 철저하게 괴멸당하고 총사령관인 세바스티앙 마저 전사하지만 끝내 그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 이는 단 한번의 패배로 끝나지 않았다.
세바스티앙에게는 아직 후사가 없었던 것이다.
이 뜻하지 않은 왕위 공백기간에 에스파냐가 뛰어 들었다.
결국 이후로 약 60년 동안 포루투갈은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된다.
포루투갈을 차지한 에스파냐가 포트와인이 영국인들의 목을 축이고 있다는 사실을 이대로 모르는척 묵과 할리가 없다.
에스파냐는 즉각 포트와인의 영국 수출을 금지했다.
포루투의 경제는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영국은 나라의 운명을 걸고서라도 이 사태를 그대로 넘겨버릴 수가 없었다 포도주가 필요한 영국은 어떻게든 스페인의 장벽을 넘어서야만 했다.
사사건건 부딪치던 두 나라가 마침내 된통 한판 붙어버리고 만다.
세상을 호령하던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트라팔카 해전에서 영국의 넬슨 제독에게 처절하게 깨져버리고 만 것이다.
스페인은 이제 유럽의 강호에서 추락했다. 그 사건으로 인해서 오늘가지도 스페인은 다시 유럽의 최강국으로 되돌아 가지 못한다.
영국은 이제 포도주의 갈증에서 완벽하게 해방되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부상한 것이다. 지구상 어느나라의 포도주이던 선택해서 골라 먹을 수 있는 강국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 와중에 한군데에 의지하는 와인 공급이 얼마나 무지한 일인가를 깨닭은 영국인들은 새로운 와인 생산지역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이 바로 시칠리아와 몰타였다. 척박한 몰타에서는 거의 실패했지만 시칠리아를 선택한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지중해성 온화한 기후와 1년중 300일 이상의 따사로운 햇살과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에트나 화산의 잦은 폭발로 생겨난 검은 옥토는 그야말로 와인 생산지로서 최고의 입지였다. 영국인들은 이곳에 개량되지 않은 초기의 포도나무를 심었다.
어차피 그들이 필요한것은 지리적 이유로 포트와인이 필요했기에 단순하고 애초의 품격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날고 오래된 품종을 원했다. 순수한 원액에 브랜디를 섞은 포트와인이 필요했고, 본래의 순수 와인을 재배하기에는 시칠리아가 최고 였다.
하지만 이런 영국인들의 유달리 강한 와인의 취향을 신이 그냥 가만히 놓아둘리가 없었다. 영국의 숙적인 프랑스에 새로운 영웅이 등장한 것이다.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은 영국이 관리하는 포도주 산지란 산지는 모두 침략했다. 스페인. 포루투갈. 이탈리아. 몰타. 그리고 동유럽의 와인 산지란 산지는 그대로 싹쓸이 해 버렸다. 또 영국은 포도주에 목말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영국은 웰링턴을 선발해서 전장으로 내보냈다.
와인 반입로 확보가 드러나지 않은 최고의 목표였다.
워털루에서 영국인들에게 마침내 와인 유통의 길이 다시 열렸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
수많은 교역선들이 오고갔던 역사적인 부두와 끊임없이 푸른 물결이 대서양을 향해 흘러가는 도우루 강변을 거닐다 다시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간다.
빛바랜 페인트칠과 누렇게 탈색된 콘크리트벽과 따사로운 햇볕에 그을려 영롱한 붉은 빛을 어느정도 잃어버린 지붕들이 발걸음을 돌리는 여행자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다. 빈티지한 아름다움은 지나간 시간이 주는 아늑함과 포근함, 그리고 어떤 그리움을 여행자의 가슴에 전해준다.
방금 내가 지나온 미로같은 골목들과 이따금식 그 골목 안에서 마주쳐 '올라'하고 말을 건네면 수줍은 미소와 함께 역시 '올라'라고 화답해 주며 여행자의 발걸음이 골목 어귀를 돌아나갈 때 까지 멈추어 서서 수줍게 손을 흔들어 주던 현지인 노인들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을것 같다.
올드 시티와 히베이라 역사지구를 벗어났다.
상 벤투 역사를 지나쳐 한참을 더 언덕길을 오르면 오래된 포루투의 전통재래시장인 볼량 시장이 나온다. 대부분이 현지인들이다.
시간이 충분치 못한 관계로 그냥 지나쳐 언덕위의 산투 알폰소 성당을 잠시 들여다 본다. 18세기 초엽 리베리아 반도 카톨릭을 총괄하던 톨레도의 알폰소 대주교를 기리기 위해서 건립되었다. 성당의 정면으로 장식된 알폰소 대주교의 일생이 수록된 아줄레주가 아주 인상적이다.
이곳을 나서면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신포루투 지구로서 오늘 현재의 포루투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가장 핫한 번화가가 늘어서 있다. 우리나라의 명동이다.
와!
무척 많은 사람들로 거리는 꽉 차있다. 현지인과 여행자들로 거리는 온통 차고 넘치고 있었다. 볼량시장이나 올드 시티와는 전혀 딴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포루투의 현주소를 살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그 인파속을 헤집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인파속을 헤집고 들어가고 있는데 한무리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저러지?'
가까이 가서 살펴보고 나서야 나는 그곳이 (카페 마제스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카페 마제스틱.'
실내가 아르누보 양식으로 대단히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다는 포루투의 상징적인 카페다. 1921년에 생겼다니 거의 1백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고풍스런 가죽의자에서 부터 우아한 샹들리에와 폴랑드르 스타일의 큰 거울과 바닥의 대리석 마감재까지 마치 르네상스 시대의 카페에 들어 온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준다고 온가자 여행잡지와 방송에 실려 있는 명소이다.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 첫권이 바로 이곳에서 집필되었기에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장소이다.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이집의 가장 유명한 메뉴는 바로 '프랑세지냐(Francesinha)'이다.
하지만 이날 끝내 우리는 이곳에서 프랑세지냐를 먹어보지 못했다.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긴 줄에....... 대표자만 달랑 나와서 줄을 서고 있는 단체 여행객들이 중간에 섞여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또 다른 프랑세지냐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명소라 할 수 있는 '카페 산티아고'에서 비로소 프랑세지냐를 맛보았다.
포루투의 명물이라는........ 포루투에 왔으면 곡 먹어보아야만 한다는 '프랑세지냐'를 맛 본 우리의 느김과 소감은 한마디로....... '한번 먹어 보았으니 그걸로 충분함' 이었다.
여행자들에게서 프랑세지냐는 '내장 파괴 버거'라는 애칭으로 불려지고 있다. 너무나 달고 맛있지만 건강상으로는 결코 좋을것이 없다는 결론에서 얻은 별명이다. '프랑스의 작은소녀'라는 의미를 가진 프랑세지냐는 바로 프랑스 음식인 '크로크무슈'에서 파생된 포루투갈식 음식이다. 포루투갈 셰프로서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요리를 하던 '다니엘 다 실바'가 고향인 포루투갈로 돌아와서 크로크무슈를 포루투갈식으로 재해석해서 만든 음식이 바로 프랑세지냐 이다.
하지만 결코 우리의 취향은 아니었다.
그나마 감자 튀김이 함께 있어서 다행이었고, 생맥주가 있어서 둘이서 한접시를 겨우 비울 수 있었다.
ㅋㅋㅋㅋ.
포루투갈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은 당연히 (빠깔라우)다.
염장한 대구를 이용한 음식이 365가지도 넘기에 매일 한가지씩 요리를 해도 다 먹을 수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빠깔라우를 정말 좋아하고 사랑한다.
대항해 시대를 맞아 아주 멀리 북대서양의 깊은 바다에서 잡은 대구를 보관과 운송의 방법으로 소금에 절이는 방법을 택했고 거기에서 생겨난 음식이다. 바다를 지배했던 옛역사에 대한 그리움과 자부심이 은근히 배어나오는 그런 음식이다.
이미 리스본에서 두 번이나 먹어보았는데........ 글쎄...... 적어도 내 입맛에는 어떤 감칠맛이 부족했다.
그 다음으로 포루투갈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이 바로 (사르디나)이다.
사르디나는 한마디로 청어과의 정어리를 말한다. 숯불에 구워 먹기도 하고 기름에 튀겨 먹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이들이 가장 즐기는 요리로는, 사르디나가 워낙 작은 물고기여서 빠깔라우 처럼 내장을 제거하고 토막을 쳐서 염장을 하는 방법이 되어지지 않는 고로....... 우리나라의 곰삭은 젓갈 비슷하다고나 할까? 내장을 제거하고 손질된 정어리(사르디나)를 잘게 빻은 마늘과 올리브유에 재워서 통조림으로 만들어 장기간 보관하면서 그때그때 요리해 먹는 방법이다. 특별한 요리과정 없이 그냥 사르디나 통조림을 따서 약간 곰삭은 듯한 내용물을 빵 사이에 넣고 샌드위치처럼 그냥 즐기기도 한다.
포루투갈의 이곳저곳 도심을 다니다보면 여기처럼 온통 정어리 통조림을 가득 쌓아놓고 판매하는 전문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것을 볼 수 있다.
정어리 통조림도 와인 처럼 오래 묵을 수록 맛있다나 어쨌다나. 가격도 결코 싼 편이 아니다. 와인처럼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나도 통조림 하나를 사서 현지인들처럼 빵에 싸서 먹어 보았다. 챠밍여사는 특유의 비리니내 때문에 도전을 포기했지만....... 근데 은근히 맛있다.
나름 은근하고 깊은 맛이 있다. 비릿한 정도는 그런대로 견뎌낼만 했다. 시간이 지나도 생각날 정도로 맛있었다.
그런데 이 경험때문에 엄청난 참사를.........
이날의 기억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고르고 또 고르다가 비슷한 정어리 샌드위치를 바에서 골랐는데.......... 으악. 결국은 뱉어버리고 말았다.
최악이었다.
겨울이 오면 나는 포항 과메기(청어로 만든)를 구입해서 잘게 빻은 마늘과 올리브유에 재워서 포루투갈 방식의 사르디나를 꼭 만들어 먹어볼 생각이다.
포루투의 번화가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포루투 대학교 여학생들의 길거리 공연을 구경하게 되었다. 정말로 정말로 열정적이고 자신에 찬 활기찬 모습이었다.
그런가 하면 어제는 리스본에서 리스본 대학생들의 축제를 엿볼 기회가 있었다. 두 학교 모두 학교생활과 일상생활 속에서 검은 제복을 입기로 유명하다.
포루투갈에서 리스본 대학교와 포루투 대학교 간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 경쟁은 너무도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연고전 이상이다.
그렇게 보자니 포루투갈에서 수도인 리스본과 제 2의 도시인 포루투 또한 언제나 경쟁 관계에 있지 않은가?
포루투 사람들은 리스본 사람들을 '알파신야(상추)'라고 빗대어 부른다. 리스본 사람들이 상추를 즐겨 먹고, 상추처럼 쉽게 상하거나 유악하며 게으르고 놀기만 좋아한다는 데서 빗대어 야유하는 표현이다.
리스본 사람들은 포루투 사람들을 '트리페이루(내장 요리를 먹는 사람들)' 라고 부르며 일과 돈 밖에 모른다고 비꼰다. 포루투 사람들은 리스본 사람들과는 다르게,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사람들 처럼 소. 돼지 내장요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즐긴다. 이는 우리 입맛에도 썩 잘 맞는다.
이렇게 서로간에 라이벌 의식이 팽배하다.
포르투 사람들은 돈을 벌줄만 알고, 리스본 사람들은 돈을 쓸줄만 안다고 서로를 비꼰다.
세상 어디를 가나 이런 지역적인 또는 가문이나 학연적인 라이벌 의식은 흔하게 존재하나 보다.
도심의 골목 어귀에 있는 작은 동네 교회 하나도 정말로 멋진 문화재급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주 작고 소박한 작은 교회이다.
그러나 교회의 안과 밖으로 치장된 아줄레주는 가히 국보급이다.
포루투갈만의 독특한 문화요 예술인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포루투를 여행하다보니......... 아뿔싸.
리스본으로 돌아가는 기차시간이 가가와지고 있었다.
아쉽다. 너무도 아쉽다. 언제고 다시 포루투에 와 볼 기회가 있으려나?
며칠은 포루투에 머물면서 충분히 포루투를 즐기지 못한것이 못내 아쉬었다. 아마 두고두고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게될것이다.
포루투에 거점을 두고 코임브라와 브라가를 꼭 가보았어만 했는데..........
발걸음을 상 벤투 역으로 향해 바로잡으면서도 여전히 우리의 발걸음은 더없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하나라도 더 보고 떠나야만 하겠기에.........
청동으로 만든 돔이 얹혀진 순백의 시청사(시티홀)은 이곳이 그냥 관공서라고 하기에는 차마 믿기 어려울 정도로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어디 그뿐인가?
시청사의 게단 아래로 펼쳐지는 리베르다지 광장의 풍광 또한 압권이다.
그야말로 포루투의 진면목을 이곳에서 보고 있는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곳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은....... 매일 이 광장을 지나쳐다니는 시민들은 얼마나 좋을까?
어디에서도 쓰레기 하나 나뒹굴지 않고 부랑자나 구걸하는 사람 하나 없는 아름답고 깨끗한 도시 포루투. 이름난 관광지마다 넘쳐나는 호객행위가 지난친 길거리 노점상 하나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노점상은 철저하게 단속대상이 되는가 보다. 이런 여행지도 처음이다.
포루투에서 만나본 노점상은 단 한명이다. 그것도 길거리에서 뿌옇게 연기를 피워내는 아주 독특한 노점상이 유일했다.
바로 이곳 리베르다지 광장에서 군밤을 구워서 파는 아주 작은 리어카를 끌고있는 노점상 뿐이었다.
광장의 한복판에 우뚝 서서 말을 타고 한손에는 포루투갈의 헌법을 들고 서 있는 페드로 4세 동상에게 포루투와의 작별 인사를 건넸다.
알.럽.포.루.투.반.가.웠.어.그.리.고.고.마.웠.어.안.녕.
우리는 아쉽지만 서둘러 발걸음을 기차역으로 옮겼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캄파냐 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리스본으로 돌아가는 고속열차에 올랐다.
포루투 여행을 마치는 시점이 된 것이다.
'태리할라버지야. 우리가 오늘 꿈속을 헤매다고 온 것은 아니지? 한마디로 기적 같은 일이 우리에게 벌어졌던 거야. 모든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야.'
챠밍여사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지난 밤새 쏟아진 폭우. 절망적인 기상 예보와 호텔 밖의 풍경.......... 그리고 급조된 오늘 스케줄........ 무조건 떠나 본 포루투 여행........ '이건 기적이야.'
나도 차창에 비치는 내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넌지시 고백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차가 리스본과의 중간쯤을 달리고 있을 때 차창으로 세찬 비바람과 함께 굵은 빗방울이 다가와 부딪치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 리스본에 도착하였을 때, 리스본엔 언제나 처럼 거센 소낙비가 줄기차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호텔에 도착해 리스본의 오늘 날씨를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온종일 세차게 비만 내렸다는 대답이 전해져 온다.
헐.
세상에 이런 일이..........
'먹고살기 힘들어지면 나 현대타운 어디에다 돗자리 하나 깔을까?'
밤이 깊도록 우리는 가적과도 같은 오늘 하루를 자축하는 파티를 열었다. 오늘 여행의 수다를 떨면서........
포트와인을 두 병이나 해치워 버렸다.
할렐루야.
아멘.
----- 다음 여행기로 이어지겠습니다. 찾아주시고 읽어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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