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이야기

(알 럽 트래블) 챠밍여사의 서유럽 기행

by 피안재 2019. 6. 1.




















  스물넷에 만나서 35년을 함께 보냈다.

  '이 정도면 인연이라 해도 무방하겠지?'라고 생각해 보지만,  문득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인연이란 시작할 때 쓰는 말이 아니야.  중간에서 쓰는것도 아니고......  인연이란 모든것이 정리되고 끝마칠 때 쓰는 말이야.'

  그렇다면 우리 사이는 아직은 '관계'가 맞는 가보다.

  '우린 인연이었나봐'라는 표현은 한참 뒤로 마냥 미루어 놓는것이 아무래도 더 타당한 일이지 싶다.

  그건 그렇다치고..........  35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지?


  이번 여행중에 쇼윈도에 전시된 예쁜 자전거를 만났다.

  무심코 지나쳤다가  다시 되돌아와서는 사진을 찍고 그자리에 멈추어 서서 한참을 상념에 잠겼다.

  많은 사람들이 부부가 함께가는 인생길을 나란히 뻗어있는 기차길에 비유하고,  또는 나란히 의지하며 굴러가는 수레바퀴에 비유하고는 하는데........  나는 그 예쁜 자전거에서 챠밍여사와 함께한 35년을 떠올렸다.

  앞바퀴가 방향을 잡으면  뒷바퀴가 가득 힘을 실어서 밀어준다.  가다가 가다가 힘이들면 서로의 역활을 바꿔서 하면 된다.  혼자서는 되지않는......  늘 둘이 서로에게 힘이되어주고 의지가 되어주는 '관계'이다.  가파른 언덕도 있고 비포장 도로도 있고 한적한 시골길도 있고 꽃과 숲 사이로 난 공원길도 있을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세상살이를 헤치고 나아가다 보면  수많은 이야기 꺼리가 생겨나서 이광주리 저광주리에 수북히 담겨갈 것이다.  가장 크고 귀한 광주리는 틀림없이 아들 광주리이고,  그 옆의것이 딸(며느리) 광주리고,  끄트막에 가장 예쁜 광주리가  우리 태리 광주리일 것이다.

  지금쯤......  저 아름다운 자전거처럼 충분히 예쁘게 우리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었는데........  나는 그렇게 하질 못했다.

  충분한 기회와 여건이 나에겐 분명히 있었다.

  어느날 문득 뒤를 돌아다보니.......  나는 애초에 내가 가고자 했던 길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처음 빗나가기 시작한 지점에 울고있는 챠밍여사가 보였다.

  그렇게 세월이 무심하게 흘렀다.  35년이나............





















  '나 여행가고 싶어.'

  '우리 모두 바쁜 시기 아니야?  그런데 왜 갑자기?'

  '어떤 전환의 계기가 필요해.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어.  이사도 하고 싶어. 일은 여행 다녀와서라도 언제든 더 열심히 하면 되잖아?  우리 함께 여행 가자?'

  '시간이 필요해.  파트너들과  스케줄 상의도 해야하고.  언제 얼마나 어디를 가고 싶어?'

  '태리 어린이날 축하는 꼭 챙겨주어야만 해. 하나 밖에 없는 귀한 손녀의 할머니 할아버지니까. 나머지는 알아서 해.  이탈리아가 가고 싶기는 한데......  당신 다녀온지가 두 달밖에 안됐으니 또 가자고 못하겠고....... 따뜻한 나라면 좋겠어.  지난번 여행때문에 당신 돈 없으면 내가 다 댈것이고..........'

  '뭔 소리여?  우리는 어디까지나 죽어도 살아도 더치 페이여.  내 몫 이상만큼은 내가 대지. 암.'

  '지난번에 16일 이었으니까......  까짓 더 길어도 상관없어.'

  '스페인. 포루투갈. 모로코  묶어서 한달 정도........  오케이?'

  '콜.'

  '우리 며칠 전에 만 35년 기념일이었던것 기억하니?'

  '기억하지.  그 끔찍한 날을 어떻게 잊어?  아이구야.  지긋지긋하게 살았어 우리. 당신은 아직도 철이 덜 들었구..........'

  '넘 그러지 마라.  이래뵈도 내가 태리 할아버지여.  할아버지.  내가 그때 당신을 꼬득여 줬기 때문에 저렇게 멋진 아들을 낳았구......  때문에 이쁜 손녀가 생겨난 거라구.'

  '그게 지금 자랑이라고 하니? 하이고 야.  멋진 아들. 잘생긴 아들. 하이고.........  누가 들으면 자기가 나서 길렀는 줄 알겠다.  내가 눈물로 길렀거늘.........'

  'ㅎㅎㅎㅎ  그냥 그렇다는 얘기지.......'






  가장 바람직한 삶이란........

  자신이  존재하고 싶은 자리에 자기 자신을 가만히 놓아두는 것이 아닐까?

  거기에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의 안정적 생활이 보장된다면 말이다.

  왜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일까?

  무엇이 우리를 옥죄이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 느낌들이 지속적으로 나를 우울하게 만들때면  나는 훌쩍.......  여행을 떠난다.

  그냥 나를 둘러 싸고 있는 획일적인 일상으로 부터 잠시 탈출하는 것이다.  머지않아 새로운 마음과 의욕으로 다시 그 일상을 찾아 돌아올 것임을 나는 익히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여행은 치유이며 재충전이다.

  여행에서는 삶의 향기도 태양의 빛깔도 공기의 무늬까지도 전혀 다르다.  여행자의 내공 수위에 따라 다시 천차만별로 나뉘어 진다.

  '두 발로 걸을 수 있을때 떠나라.'

























  지난해 6월에 챠밍여사가 허리 수술을 했다.

  커다란 위험을 감수해야 할만큼 심각한 상태의 수술이었다.

  수술은 잘 되었는데 생각보다 회복이 무척이나 더뎠다.

  6개월이 지나도 원활한 일상으로의 복귀가 되지 않았다.  금년 3월이 되어서야 복대를 매고 걸어서 외출을 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챠밍여사의 정신적 지주였던 큰오빠가 별세하셨다.  큰오빠는 지적 장애를 갖고 태어나신 장애인으로 순진한 소년의 모습과 마음으로 평생을 사셨다. 세상에서 오로지 막내동생 밖에 모르시는지라.......  장모님이 돌아가시는 날 부터 챠밍여사가 30년 가까이 모시며 살아왔다.  그 충격은 대단히 컸다.

  장모님이 돌아가신 것보다도 더 큰 데미지를 입었다.

  장기 기증 후 화장을 하는 절차였는지라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을  가족들은 모두 숙소로 돌려보내고  나와 챠밍여사 단 둘이 밤새 분향실에서 영정을 지켰다.

  '오빠가 이제는 나 좀 자유롭게 살다가 오라고 일부러 자리를 비켜주시는 것 같아.  내가 좀 자유로와 질 수 있을까?' 하면서 밤새 울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일상은 시작되었으나  챠밍여사는 정신적 고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35년의 상당부분을 말썽꾸러기로 그저 옆에서 멀뚱히 지켜보고만 있는 나 였기에,  이번에도 그저 묵묵히 옆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

  그래서 우리는 함께 떠났다.

  서유럽으로........  포루투갈. 스페인. 모로코를 찾아서.........

  우리는 항상 배낭을 메고 다니는데........  이번엔 채 완쾌도지 않은 허리때문에 처음으로 파란색 캐리어를 끌고 챠밍여사가 앞장 서 나간다.

  하여간.......  걷는것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

  정말로 정말로 잘 걷는다.







  14시간 반 정도의 비행시간 후에 파리를 경유해서 마침내 포루투갈의 수도 리스본에 도착했다.

  같은 유럽이라도 포루투갈의 풍경은 이탈리아와 전혀 달랐다.

  리스본은 정겹고 아름다웠으며  사방에서 낭만이 풍겨져 나왔다.  도착과 동시에 우리는 리스본의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날씨였다.

  나흘간의 포루투갈 일정 중에 이틀 반나절동안 비가 내렸다.  그중에 이틀은 그냥 비가 아니라 밤새도록 퍼붓고도 종일 또 비가 내렸다.  악천후 였다.  티비에서도 연일 기상이변을 생중계했다.  예보는 내일도 또 비다.

  한마디로 '꼼짝없이 망했다'.

  But...........

  여기 이 불굴의 태리 할망구..........  폭우가 쏟아지고 세찬 바람이 불어도 꿋꿋하게 계획했던 일정을 소화해 나간다.

  그냥 호텔에 멍하니 들어 앉아서 애꿋은 하늘만 올려다 볼 그런 흔한 아녀자나 어설픈 여행자가 절대 아니다.

  한겨울 날씨를 방불케 하는 추위 속에서 따로 준비해 간 방한복도 없으면서.........  그래도 우산 쓰고 길을 나선다.  '태리 할망은 정말로 독하다.'

  그럼 이게 다냐?  절대 아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소소한 이야기는 차차.............


  신트라 여행도 망가졌고........  유럽의 땅끝마을 호카곶은 아예 송두리째 깡그리 망가져 버렸다.  비바람에 안개까지 몰려와  등대가 뭔지 기념탑이 뭔지 대서양 바다가 뭔지.........  그래도 이 할매 꽃밭에 날름 주저앉아 모가 그리도 좋은지 해맑게 웃는다.(아예 정신줄 놓아 버렸나보다)

  그래도 할건 다 한다.

  28번, 14번 트램도 타보고..........

  비가 오락가락 하던 날의  포루투갈 제2의도시 포루투 방문은 정말 멋졌다.

  '리스본 보다 포루투가 훨씬 예쁜것 같애.  혹시 다시 포루투갈에 오게 된다면  여행의 중심 거점을 포루투로 잡아야 하겠어. 그치?'

  '웅.  나도 그래 보여.'

  거기에다  리스본 대학과 포루투 대학의 축제를 지극히 일부 경험하게 되었다.  오랜 전통이 보여주는 경건함과 엄숙함과  그들에게 느껴지는 자부심.......

  거기에다 수많은 거리의 악사들.........

  소도시 여행으로 오비두스를 찾아가는 날은 모처럼 날씨가 너무도 화창했다.

  아름다운 오비두스.  마음 한조각쯤 어딘가에 흘려놓고 오고 싶은 그런 마을이었다.  언제가 마음 한조각 찾으러 간다는 명목하에 다시 찾고픈.........

  그리고.......

  이번 여행의 중요한 화두중 하나인  '맛있는 음식 마음껏 즐기기'..........  포루투갈은  염장한 대구 요리랑  정어리 통조림이 유명하다.

  어쩌겠어.  다 먹어 봤지.

  식도락은 여행의 품격을 높여주는 하나의 성스런 예식이지.  암.  그렇구 말구.  하루 다섯끼를 먹자.  그리고 애브리 타임.......  와인은 필수.















































  11시간반 이라는 길고 긴 여정의 야간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찾아간  스페인 마드리드는 화사한 햇쌀만큼이나 매혹적이고 열정이 넘쳐났다.

  더없이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와 여기저기 여기저기 울려퍼지는 축제의 향기.

  유럽의 5월은 어디에서나 온통 축제가 벌어진다.  마드리드 축제는 지금 진행중.........

  마요르 광장 특설무대에서  낮에는 락 밴드 공연이 벌어지고  밤에는 클래식 음악의 향연이 펼쳐진다.  꿈만 같은 여행이 이어진다.

  마드리드는 다분히 자극적이다.  정열적이다.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만날 수 있고,  프라도 미술관에서 고야와 벨라스케스,  그리고 엘그레코를 만날 수 있다.  피카소도 만날 수 있으나 괜히 피카소는 말라가에 가서 만냐야만 할 것같은 느낌을 차마 떨칠 수 없는것은 왜일가?

  산 미구엘 광장에서 스페인 식도락의 진수를 경험해보니 스페인이 더욱 마냥 친근하게만 느껴진다.

  수년 전 폭탄테러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상흔의 아토차 역에서 상념에 잠겨 보기도 하고,  그 아픔의 장소인 역사 안에 멋지게 만들어 놓은 자연 공원에서 진정한 휴식을 즐겨보기도 한다.

  이슬람과 카톨릭 문화가 공존하는 톨레도는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 같았다.

  세고비아의 로마 수도교를 바라보면서 나는 로마인들의(군인) 위대성에 다시한번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작금의 순간에도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길들이 로마에서 시작되어 뻗어져 나왔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들은 성스럽게 추앙받아도 될만한 위대한 영웅들이었다.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어질것만 같았던 이번 여행에 기어코 위기가 찾아왔다.

  결국 쿠엥카를 방문할 일정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다음날,  마드리드를 출발해  세비야로 이동하는 여정의 중간에 코르도바를 살짝 끼워 넣었다.  코르도바는 애초  여행 후미에 그라나다에 거점을 두고 다녀갈 생각이었지만,  어제 쿠엥카를 놓친것에 대해 시간을 좀 벌어보기 위해서 갑자기 일정을 수정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코르도바로 이동하던 중에 우려하던 일이 기어코 벌어지고야 말았다.

  심각하고 다급한 상황이었다.

  어쩌면 나머지 일정을 모두 접고  비상 항공편을 마련하여 급히 귀국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제까지의 내 여행 이력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였다.

  하지만 운이 따랐고,  고마운 천사를 만났고,  독하디 독한 태리 할미가 기어코 오기로 버티며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겨 주었다. 참으로 감사할 일이었다.

  작은 기적이  우리에게 찾아와 주었다.




































  그런 상황을 겪으면서도 이 할매는 꿋꿋하게 코르도바 여행을 계속했다.

  천만 다행으로 저녁에 세비야로 무사히 이동할 수 있었는데.......  아뿔싸.  세비야 여행중에 또 두번째 사고를 치고 말았다.

  골목길을 걷다가 발을 헛디뎌서 발목을 삐고 말았다.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발목을 다친 여행자를 수도없이 자주 보게된다.

  울퉁불퉁 돌을 다듬어 포장한 옛 도로 상태며, 사방에 설치된 구조물들,  거기에다 여행자의 시선을 잡아 끄는 온갖 볼거리들은 넘쳐나니 지속적으로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는 것이 여간 어렵지가 않다.  비가 오면 무척 미끄럽고  밤길은 조금만 방심하면 여지없이 발목을 다치기 십상이다.

  (유럽 여행 = 발목 주의)

  발이 퉁퉁 붓고 까맣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부러지지 않은게 다행이라면 연실 소염제를 바르고 맛사지를 했다.  아침이 되니 조금 상태가 호전되어 보인다.  다시 맛사지에 소염제를 바르고 압박 붕대로 칭칭 동여매고는 또 길을 나선다.  에정된 여행 일정을 꿋꿋이 소화해 나간다.  저녁이면 통중에 인상을 쓰고 또 맛사지를 하면서도 아침이면 생글거리면서 또 길을 나선다.

  세비야 대성당의 콜럼부스 무덤 앞에서 그녀는 멈추어 섰다.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멍하니 넋을 놓고 마냥 서 있다.  엄청나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눈물이 나올만큼 감동적이다. 이런게 유럽 문명이구나.......'

  세비야 여행을 마치고  알헤시라스로 이동하여 지중해를 건너 모로코로 향하면서도 흐트러짐 하나 없다.  거침이 없다.

  암튼 우리는 쉐프샤우엔에 무사히 도착했다.


































  '모로코는 완전히 사진빨이다.  마치 교묘한 눈속임 같아?'

  '와서 직접 보고나니 그런면이 좀 있지?'

  탕헤르를 거쳐 쉐프샤우엔에 들어와서 하루를 보내고 점심 식사를 하던중에 챠밍여사가 불쑥 꺼낸 말이었다.

  '다음이 어디라구?'

  '페스.'

  '냄새 무지 난다는 가죽공장?  그 다음은?'

  '마라캐쉬.'

  '거 뭐냐?  앨프나 광장인지 몬지 야시장이 볼만 하다는 거기?'

  '응.'

  '그럼 거기까지 죽어라 찾아가도 그딴거 특색있는 하나를 빼면 메디난지 뭔지 죄다 여기처럼 냄새 폴폴 나는 좁은 골목길 뿐이라는거 야냐?'

  '그런면도 좀 있지.'

  '내가 방금 생각해 보았는데........  우리 당장 스페인으로 돌아가면 안될까?  사진빨에 속아서 게속 냄새나는 골목길만 돌아다닌다는게 좀.........  난 지금 스페인이 너무도 좋아졌어.  스페인이 자꾸만 나를 잡아 땡기는것 같애.  하루라도 스페인에 더 머물고 싶어.  안될까?'

  '안되긴?  누구 명이시라고.........'

  부랴부랴 후런트로 달려가 매니저랑 딜을 시도했다.  숙박 예약이 아직 남아있는것을 그대로 날릴 수는 없지않겠는가?

  딜은 성공했고 부랴부랴 다시 짐을 싸기 시작했다.

  페스와 마라캐시에도 메일을 통해 예약을 취소하고.......  다행히  탕헤르로 돌아가는 버스편이 있어 서둘러 택시를 탔다.

  세상에 아프리카까지 와서 이 무슨 해괴망측한 시츄에이션이란 말인가?

  기어코 밤 9시반에 탕헤르를 출발하여 알헤시라스까지 가는 페리에 올랐는데........  항해 시간 45분에  시차가 2시간이 있다.  결국은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에  스페인 땅에 발을 겨우 내디딘 것이다.

  헐.

  자정을 훌쩍 넘긴 야심한 시간에 멀고먼 이국의 항구에서 배낭을 걸머메고 캐리어를 끌면서 호텔을 구하러 다니는 우리 신세........

  그래도 챠밍여사는 여기가 스페인이라고 생글거리며 앞장을 선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환장할 노릇이다.

  또 헐.



































  '모로코만 눈속임에 사진빨로 먹고사는것이 아니었네?  스페인도 그렇잖아?  여기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절경이라고?'

  그라나다 알베이신 전망대에서 알함부라 궁전의 일몰을 바라보면서 챠밍여사가 대단히 실망스럽다는 투로 던지는 말이다.

  알함부라 궁전 투어는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내일 또 오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여 일몰 구경으로 알함부라 투어를 멋지게 장식하려고 알베이신 전망대로 자리를 옮긴 것이었는데.......  여행객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해는 서산으로 넘어갔다.

  뭐가 이렇지?  이게 다야?

  너무 밍밍하잖아?

  서산에 해가 걸린 붉은 노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노을빛이  알함부라에 비춰지는 붉은 빛을 감상하는 것이라는데.........  인간의 시야는 그 붉은 가시광선을  파악하고 느껴지는데 지극히 미미한 정도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라........  그냥 서서히 어두워지다가 그냥 사라지는 정도 밖에는.......

  그러나 카메라는  그 점점 붉어지는 가시광선의 파장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데.........

  '거봐. 사진빨이지.  이거 완전 사기네.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가장 실망스러운게  바로 여기 알함부라 궁전의 일몰 풍경이야.  에게게.......  그래도 사진 속에서는 빨갛게 물들었네.  우리 앞으로 여행하면서는  절대로 사진빨에 속지 말자.'

  ㅎ.

  그리고 찾아간 바르셀로나.  그 중에서도 사그라다 파밀리온 대성당.........

  챠밍여사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굳어져 버렸다.  일체의 미동도 없이 한참을 그렇게 마냥 서 있었다.

  '나 지금 이대로 주저앉아 마구 펑펑 울고 싶어.  정말 감동적이다.  어떻게 이런것이 가능하지?'

  '도대체 신의 존재가 무엇이기에........  신에 대한 사랑이 얼마만해야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 나 귀국하면 며느리에게 이 말부터 해줄거야.  너희들 내년에 꼭 스페인 다녀와라.  엄마가 보내줄꺼야 라고.'




































  '바르셀로나는 가우디가 먹여 살린다는 말이 틀린말은 아니구나.  정말 놀라워..........'

  '생긴 바꾸는 호날두가 좀 나아보이지만  공 차는 실력은 메시가 훨 나은것 같애. 국적은 아르헨티나지?'

  '유로화 조형물 앞에서 사진한장 찍어 줘야해.  앞으로 온 유럽을 모두 돌아보려면 한번은 돈벼락을 맞아야 하니까....... ㅎ'

  그리고 나서 우리는 몬주익 언덕으로 향했다.

   카탈루냐 미술관이 있는  가를레스 부이가스 광장에서 벌어지는 바르셀로나 분수쇼를 보기 위해서 였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명품 분수쇼이다.

  그런데 그날......... 끝내 분수쇼는 펼쳐지지 않았다.

  와!!!!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배반감.  지난해 아르메니아 중앙 광장 분수쇼도 끝내 나를 배반하더니만......... 바르셀로나도......  나랑 분수쇼는 잘 안맞나?

  몹시 아쉬운 표정이 역력한 챠밍여사.

  ㅎ.  이런것 또한 여행 아니겠어?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서 선택했던  '몬세라토 트래킹'은 그야말로 황홀함 그 자체였다.

  뜨거운 햇살아래 우리는 바위산 툼사이로 난 험준한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지금도 그 순간 순간이 생생하게 여운처럼 그대로 남아 있다.

  '여기 몬세라토에 비하면 언니들과 다녀왔던 장가계는 아무것도 아니었던것 처럼 느껴져.  정말 놀라울 따름이야.  이번 여행 정말 고마워.'

  '그렇게 좋았어?'

  '몬세라토도 우리 애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  내년엔 꼭 애들을 스페인에 보내주어야 겠어.  콜럼부스 무덤이랑  파밀리온 성당이랑 여기 몬세라토 수도원은 영원히 잊지 못할것 같애.  돌아가는 대로 애들에게 이야기 해 주어야지.'

  '알았어. 나도 도울께.'

  '귀국하면 우리 정말 바쁘게 돈 벌어야 겠구나?  겨울에 우린 이탈리아 가야하고  애들 스페인 보내주어야 하니 많이 벌어야 겠다.'


  그렇게 그렇게 약 한달 가까운 우리의 이번 여행은 끝이 났다.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또 그렇게 이번 여행은 마무리 되었지만........  그것은 또한 다음 여행의 시작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이제 이번 여행기는 차차 좀 더 소상하게 풀어나가기로 하고  이쯤에서 프롤로그를 마쳐야만 하겠다.

  이제 우선은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더 열심히 일하면서........  틈 나는대로  이번 여행기를 올려볼 생각이다.

  기다려 주신분들께 감사하고  본격적인 여행기를 기대해 주시기를..........







                                                                ---    무사히 여행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06.02.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