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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알 럽 트래블 / 이탈리아) 르네상스 산책 '아르노 강변에 서서 르네상스를 추억하다

by 피안재 2019. 3. 30.

 

 

 

 

 

 

 

 

 

 

 

 

 

 

 

 

 

 

 

 

  삶(人生)이라는 멀고 긴 여정중에서 간이역 처럼 잠시 들러서 쉬었다 가는것이  휴가(休暇)라고 나는 생각한다.

  휴가가 꼭 여행일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최고의 휴가가  바로 여행이다.  또한 이렇게 내가 추구하는 여행을 통한 진정한 휴가는  자유여행의 초창기에 겪게되는 여행에서 오는 강박관념만 벗어버리게 된다면, 그때부터 여행은 한층 풍요롭고 여유로운 휴가가 된다.  이 여행에 책 한권, 추억의 음악이 담긴 메모리 카드 하나, 맛있는 주점부리나 와인 한병쯤 더하여질 수만 있다면  그것은 가히 호화로운 휴가라고 나는 말하겠다.

  거기에 꼭 하나만 더하여 소중한 사람과 동행하게 된다면 그것은 휴가를 넘어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리라.

  이 정도라면 판타지가 아닐까?

  하지만........  여행을 통해 휴가를 즐김에 있어서 최대의 적은 바로 환상(판타지)이다.  진정한 자유여행자는 환상을 떨쳐버리고  그 자리에 기다림과 설렘을 심어야만 한다.  인내와 너그러움과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가까이 하는 습관을 길러야만 한다.

  이제 당신은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진정한 여행자가 된 것이다.

 

  신문의 사설을 읽다가 '노블레스 노마드(NOBLESSE NOMAD)' 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나로서는 처음 대하는 신조어의 출현이었다.

  '언제 어디라도 떠난다.  노블레스 노마드족'

  선뜻 나의 호기심을 극한까지 작동시키기에 너무도 충분한 선정적며 자극적인 표현이었다.

  '목초지를 찾아 떠돌아 다니며 살던 인류는 농경사회를 이루어 정착민으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과거의 유목생활 시절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인류는 유목민적 자유와 방랑의 기억들을 되찾아내고  당시로 회귀하고 싶어하는 마음들을 가지게 되었다.  휴대폰과 노트북이 등장하면서부터 이 바람들은 한층 급속도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현대판 유목민이 출현한 것이다. 이동하면서도 언제든 외부와 접속하고 일처리를 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일정한 거주지와 일정한 직업에 얽매이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한 디지탈 유목민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들 디지털 유목민들은   기존의 사회 규범이나 제도에 얽매이기 보다 자유와 개방을 앞세우고 쾌적면서도  질적으로 보다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노마드적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으며  젊은 세대들 사이로 급속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이들을 노블레스 노마드족이라 부른다'

  참으로 매력적인 표현이 아닐수 없다.

  사회가 점점 다변화 되어가고 소득 수준도 높아짐에 따라, 예전 처럼 비싼  자동차나 비싼 부동산이나 명품으로  소유욕과 과신을 주요 덕목으로 치던 세대들이 대신 여행과 레저, 공연 관람등을 통하여  자신의 지적 감성을 풍부하게 채워줄 수 있는 경험을 중요시 하는 풍조로 새로운 소비패턴이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풍부한 경험들이 자신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고  보다 풍요로운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해준다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다.

  값비싼 명품과 겉치례를 거부하고 대신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체험과 경험을 위해서라면  돈과 시간과 노력을 경주하는 것을 전혀 주저하거나 아끼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고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믿고있는  21세기의 신인류가 바로 '노블레스 노마드족'이다.

  내가 이 사설에 눈을 잠시도 떼지 못하고 심각하게 몇 번을 다시 읽는 모습을 본 챠밍여사가 한마디 한다.

  '부러워 하지마.  나이를 생각해야지.  노블레스 노마드?  뭐 별거 아니네?  당신도 이미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잖아?. 한번 생각해 봐라.  지금 시대에 당신 나이에 당신처럼 사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니?  참 씨잘데 없는 짓을 해도해도 너무 한다 생각했는데.......  나름은 꽤나 괜찮은 삶이다 싶어.  당신이.........'

  시방 이게.......  욕이여?  칭찬이여?

  그런 내가 지금 피렌체에 있다.  아르노 강변에 서서 르네상스를 추억하고 있다.

  갑자기 떠나오느라 여행경비가 부족해서 챠밍여사 꼬득여서 그분 카드로 비행기표를 결재했다.  여행 경비까지 꿔서 훌쩍 떠나온 여행이다.

  나와 노마드족의 차이는 이쯤에서 확연하게 갈린다.

  돈을 모아 풍족하게 여행을 떠나면 노마드족이고,  마님에게 돈을 꾸면서까지 여행을 떠나는 나는 불량 영혼의 소유자 라는것이.........

 

  '담엔 또 어디를 가지?'

 

 

 

 

 

 

 

 

 

 

 

 

 

 

 

 

 

                                                                                                      ---  '조반니 델레 반데 네르 기념비(검은 군대의 조반니)' 조각상.

 

 

 

 

 

  여행자가 여행지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은  아무것에도 제약을 받지않고  그 여행지의 거리와 골목길을 여유롭게 거니는 사치(?)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카페 테라스나 공원의 벤치라면 좋겠지만,  그것도 아니라면  광장의 땅바닥이라도 좋다.  눈부신 햇쌀이 내 어깨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마구마구 쏟아지는 날에  손에 시원한 캔맥주 하나만 쥐어있으면 말이다.

  焉敢生心.

  참으로 야무지게 꿈을 꾸었던 것일까?

  춥다.

  뼛속까지 으슥으슥하게 춥고 뼈마디가 저려온다.

  도대체 이 무슨 해궤한 사단이란 말인가?

  베네치아를 거쳐 여기 피렌체에 와서까지 벌써 여러날이 지났건만.......  어쩌자고 단 하루도 맑고 햇쌀이 쨍쨍한 날이 없었다.

  종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가,  잠시 퍼붓다가 오락가락 하던가,  잔뜩 찌프린 하늘에 매서운 찬바람만 쌩쌩 거린다.

  강철 체력을 자랑하는 나 였지만서도......  결국은 어떤 한계에 도달한 듯 싶다.

  으슥으슥 점점 추워지기 시작한다.  여행자에게 있어서 배탈 만큼이나 최강의 적인 감기 몸살에 걸린것이다.

  체질적으로 폭우가 쏟아지기 전에는 우산을 멀리하는 타잎이다보니......  벌써 여러날 하루종일 비를 맞으며 쫄쫄거리고 돌아다녔으니 그럴만도 하지.

  꼭 1년 전의  이탈리아 여행은 날씨가 기가 막혔다.  피렌체. 로마. 시칠리아가 모두 너무너무 쾌청하고 따뜻했다.  평균 기온 14~16도를 유지하는 맑은 날씨였다.  20일 동안 비는 구경도 못했다.  그러다가 귀국하고 나서 보름 뒤에  로마에 60년만에 최악의 한파와 폭설이 내렸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러던것이 어쩌자고.......   이번엔 이적 단 하루도 빼꼼한 날이 없으니........  그냥 집에 갈까?

 

  날이 새기가 무섭게 무거울대로 무거워진 육신을 이끌고 거리로 나섰다.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에서 기차표도 예매하고 뜨거운 커피에 크로아상 하나로 아침을 해결한다.  대합실에 있는 도서관 카페는 역시나 오늘도 운치가 있다.

  밖으로 나오니 다시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다.

  어디로 가지?  하루쯤 그냥 들어앉아 쉴까?

  망설이다가  결국은 또 길을 나선다.  아무데나 안가본 골목길 구경이나 좀 하자............  면서 또 비를 맞는다.

  산 로렌초 성당 골목길을 지난단.

  돌아보니  기차역과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가 보이고,  야네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쌔벼 온 오벨리스크도 보인다. 

  '쌔벼도 참 너무 많이 쌔벼 왔다.  이집트에 오벨리스크가 몇 개나 남았을라나?  싸그리 로마에 있을꺼구만.  저렇게 여기저기 몇개 흩어져 있을꺼구.  나쁜 로마인 **들........  그리이스와 이집트를 홀라당 털어왔어.  적당히 하지않구......  ㅎㅎㅎㅎ  웃자.  뺏길줄만 아는 조상님들을 둔 한국인 처지에.......'

  빗속에서도 가죽공예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아침일찍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하고 있다.

  담에 오면 겨자색 가죽 가방 하나 사야겠다.

  파사드가 없어서 완공되지 못한  산 로렌초 성당의 텅 빈 광장을 지나쳐 걷는다.  별로 유쾌해 보이지 않는  조각상이 거만하게 떡 버티고 서있다.

  '조반니 델레 반데 네르 기념비(검은 군대의 조반니)' 조각상이다.

  메디치 가문이 몰락하면서 부터 피렌체 사람들은 이 조각상을 혐오하고 꾸준하게 철거를 주장해 왔단다.  하지만 조각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피렌체 사람들은  '콘도티에로 조반니(용병 조반니)'를 대부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출신은 분명 피렌체 사람이지만  그가 피렌체를 위해서 공적을 쌓은것은 거의 없다.  말썽을 하도 벌여서 메디치 가문이 멀쩡한 판에 피렌체에서  두 번이나 강제 추방을 당했다. 숙부뻘인 교황을 위해서 군대를 이끌고 다니며 좋지못한 일들을 많이 벌였다.  그 후엔 용병 회사까지 직접 차려서 옳고 그른것을 떠나 돈만 주면 무슨짓이든  마다하지 않는 철면피로 변했다.  결국 포탄에 맞아 불구가 되었고 패혈증으로 죽었다.  그는 피렌체의 수치였다.

  그가 벌였던 말썽중에는  강도 폭행 상해는 물론 수많은 여성편력에 더하여  남자 아이를 강간했던 죄목까지 있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이렇게 버젓이 광장에 높다랗게 커다란 조각상으로 으젓하게 앉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유는 단 한가지다.  수많은 세월동안 피렌체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경멸했어도  저 자리에 버젓이 남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아들을 잘 두었기 때문이다.

  비록 개망나니 같은 존재였을지라고.......  그는 코지모 메디치 1세의  친아버지이다.

  쓰러져가는 메디치 가문과 경쟁에서 밀려나던 피렌체를 다시 번영과 풍요속으로 이끌었던 위대한 독재자 '코지모 메디치 1세'의 아버지이기에 누구도 그를 강제로 끌어내리기 까지는 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피치 미술관.  새로 수리한 현재의 베키오 궁전.  개축한 피티 궁전과 보볼리 정원 등등  현재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남아있는  피렌체의 유산 중 절대다수가 바로 코시모 메디치 1세의 업적에 들어간다.

  쫓겨났던 메디치 가문을 이끌고 피렌체에 복귀한것은 알렉산드로 메디치였지만,  요절한 그의 뒤를 이어서 확고하게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다시 지배하게 하고 군대를 동원해 앙숙 씨에나를 멸망시키고,  피렌체에 안정과 번영을 가져온 사람이  코시모 메디치 1세였다.

  이런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과시하기 위하여  팔라초 베키오 정문의 다비드 상 옆에 '카쿠스를 잡은 헤라클레스' 조각상을 바치오 반디넬리로 하여금 만들어 설치하게 하였으며,  같은 반디넬리로 하여금 자신의 아버지 기념상을 만들어  메디치 가문의 가족묘가 있는  로렌초 성당 앞에 번듯하게 설치하도록 했던 것이다.  이런 마다아에 그 누가 코시모에게 대항하여 나설 수가 있었던 말인가?

  그렇지만.......  반디넬리로 양심은 있었던 것일까?

  용병 할아버지의 표정이나  앉아있는 자세가 영 불편해 보이는것은.......... ㅎ

 

  걷다보니 비는 점점 잦아들더니......  아주 잠간씩 해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날도 온종일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 했다.

  그래도 그 잠간의 햇쌀이 어찌나 고맙고 반갑던지........

  그리고  비가 오나 안오나......  피렌체는 아름답다.

 

 

 

 

 

 

 

 

 

 

 

 

 

 

 

 

 

 

 

 

 

 

 

 

 

 

 

 

                                                                                                       ---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마주친  단테와 베아트리체<퍼옮>

 

 

 

 

 

 

 

 

 

 

 

  아르노 강변에 서면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슬픈 사랑이 떠오른다.

  그런가하면 베카오 다리((Ponte Vecchio)의 아름다운 자태가 강물에 투영되면서 나타나는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을 감상할 수가 있다.

  금은 보석상점과 가죽공예품을 파는 상점이 길게 늘어선 다리를 건너면  우피치 미술관 못지않게 훌륭한 르네상스 회화와 조각을 소장하고 있는 피티 궁전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피티 가문으로 부터 궁전을 사들인  코시모 메디치 1세는  여러차레에 걸쳐서 궁전을 개축하였으나,  브르넬리스키가 설계한 기본 골조는 그대로 유지했다.  또한 아내 엘레오노라의 건강을위해 약 1만오천평의 대지에 보볼리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코시모 1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낯선 이방인의 가슴에도 그대로 느껴진다.

  궁전의 2층에는 라파엘로와 타치아노의 작품이 전시된  팔라티나 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아르노 강 건너편의 여러 명소중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곳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피티 궁전에서 북서쪽 방향의 좁은 골목길 안쪽에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는  산토 스피리토 교회(Church of Santo Spirito)그 앞마당에 펼쳐진  산토 스피리토 광장 이다.

  특히 이 지역은 여타의 다른 피렌체 지역중에서 유독 낡고 허름해 보인다.  관리가 잘 안되고 훼손이 심한 느낌이라는 표현이다.  하지만 피렌체 전체중에서  가장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장소이다.  로마 바실리카 교회양식에 초기 아무런 치장도 전혀없는 아주아주 초기 형태의 파사드가 허전한듯,  그리고 쬐끔은 썰렁하게 여행자를 맞는다.  그러나 햇쌀이 따듯한 날이면  이러허게 포근한 양지가 어디에 또 있을까 싶다.  여행자건 현지인이건 아무나 그 햇쌀이 내리 퍼붓는 계단에 담벼락에 땅바닦에 아무렇게나 기대고 앉거나 누워서 햇쌀을 즐긴다.  일년 전 방문때도 그랬다.  나도 드러 누웠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비가 오락가락하고 세 찬 바람이 부는 광장은 너무나 썰렁했다.  지난 해의 추억이 너무도 그리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햇쌀을 즐기고  전통 재래시장이 열리고.......  가장 현지인들의 있는 그대로의 생활을 느끼기 좋은 장소이건만........

  오늘도 교회의 문은 굳게 잠겨있다.  미켈란젤로가 청소년기에 만든 십자가를 꼭 보고싶었는데 말이다.

 

 

 

 

 

 

 

                                                                                                                    --  윤태리(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

 

 

 

 

 

 피렌체 여행기를 가득 채울 이야기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데.......

  이제 이쯤에서 접고 다음 여행지로 떠나야만 할까보다.

  서둘러 로마와 몰타를  둘러보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피렌체를 비롯한 이탈리아는 어찌되었건  앞으로 한번은 더 가야만 하기에  이번에 못다한 이야기들은  다음번의 이탈리아 여행을 위해서 남겨 놓아야만 하겠다.  우리 예쁜 손녀 윤태리의 이름 (태리)가 이태리의 (태리)에서 따올 정도로  아들 부부도 이태리를 좋아한다.  그리고 챠밍여사 여행 버킷 리스트 1위에도  이탈리아가 올라 있다.  이번 2019년  1월 여행에서 함께 가려고 했었지만  지난해에 허리 수술을 한 결과로 동행하지 못한 사연이 있다.  하여서 언제고  챠밍여사와  윤태리를 위해서도  이탈리아를 한번은 더 가야만 한다.  이번에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번 여행기에서 하기 위해 남겨 놓기로 한다.

 

  갑자기 왜 지금 쓰고있는 여행기를 서두르게 되었느냐 하면.........

  다음 여행 스케줄이 잡혔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여행지는  스페인.  포루투갈. 모로코를 다녀올 계획이다.

  챠밍 여사와 동행인데.......  이탈리아를 먼저 생각했지만,  오늘 시점으로 이탈리아 다녀 온지 두 달만에 다시 간다는게......  여행사 직원도 아닌 처지로.

  그래서 이탈리아는 다음으로 미루고.......  5월 초에  마드리드로 떠난다.  그 전에 쓰고있는 여행기를 마무리 해야만 하겠다.

 

  * 파치가 예배당 --  부르넬리스키가  메디치 가문의 정적이었던  파치 가문을 위해서 세운 예배당이다.  르네상스 건축의 최고봉으로 불린다.

  * 팔라초 베키오 -- 500인 홀의 위용과 화려한 벽화들을 소개하고 싶었다.  박물관 이상의 가치를 지닌 르네상스의 보고이다.

  * 피티 궁전과 보볼리 공원

  * 산타 크로체 성당 --  뽀족탑이 고딕양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교회건물.  르네상스 고딕양식의 진수를 내부장식에서 볼 수 있다.

  *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  피렌체를 또는 르네상스를 여행한다면  '마사치오'의 (삼위일체)는 꼭 보아야 하는 그림이다.

  * 산토 스피리토 교회  -- 미켈란젤로의 초기작품 '십자가 상'과  이 교회가 부르넬리스키의 마지막 작품이라는데 의미가 더하여진다.

  * 미켈란젤로 언덕  -- 첫 방문때는  시간에 쫓겨서,  이번 방문에는 연일 비가 내려서 아쉽게도 올라가 보지 못했다.

 

  이러한 소재의 여행 이야기를 더 기획하고 있었는데....... 아쉽지만 이쯤에서  피렌체는 건너 뛰기로 해야 하겠다.

  언젠가 다음 이탈리아 여행에서  이번에 못다한 피렌체의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기로............

 

 

 

 

 

 

 

                                                                                                                                                            -- 산토 스프리토 교회 전경.

 

                                                                                                                                            -- 산트 스프리토 광장.

 

                                                                                                                      -- 미켈란젤로의 십자가 조각상.<퍼옮)

 

                                                                                                                                                                           --  피티 궁전 전경.

 

 

                                                                                                                                     -- 단테의 조각상이 서 있는  산타 크로체 성당

 

                                                                                                                   --  피렌체 여행의 시작분기점인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  마사치오作  (삼위 일체) <3장 퍼옮>

 

 

                                                                                                  -- 안드레이 베키오作 (돌고래를 안은 동자.  팔라초 베키오 정문 안쪽)

 

 

 

 

 

 

 

 

 

 

 

 

     꽃을 꺽다가 가시에 찔리 듯

     사랑을 위해서라면

     내 영혼의 상처쯤은 견뎌야 하는것

     상처 받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상처 받는 것이므로

                                            ------  조르주 상드 (상처) 중에서..........

 

 

  산토 스프리토 다리 난간에 기대어 서서 베키오 다리를 올려다 보면서 문득 조르주 상드의 시가 생각이 났다.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도 슬픔도 모두 다리 아래 아르노 강물을 따라 흘러내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지만 단테는 끝내 그 사랑을 잊거나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마침내 자신의 작품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를 함께 영원한 여행을 떠나는 동반자로 부활 시키고야 만다.

  신(神)이 인간에게 약속한 사랑만이 영원한 것이 결코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또한 영원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르네상스다.

 

  아쉽지만 이제 르네상스를,  이제 피렌체와 토스카나를 떠날 준비를 할 때가 온것 같다.

  여행을 하면서 어떤 장소를 떠날 때마다 '만약에 내가 이곳에 다시 오게된다면.......'  이라는 가정하에  '다음엔 이렇게 이렇게 해야지' 하면서 소중하게 모아놓은 리스트들이 나에게는 있다.

  여행에 있어서 '다시' '다음엔' 하면서 무엇인가 아쉬운 머뭇거림이 있다는 것은,  이번 여행에 대한 어느정도의 만족감과  다음번의 여행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음 여행이 바로 지금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던지는 암시이자  자기 최면이기도 하겠다.

  '다음'이 나에게 남아 있어서 참 다행이다.

  피렌체야.  르네상스야.  다음엔 챠밍여사와 나란히 예쁜 손녀 손잡고 다시 올께.  그리 멀지 않은 '다음에'...............

 

 

 

 

 

 

 

 

 

 

                                         --  란치 회랑  (메두사의 목을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를 조각한  벤베누토 첼리니.  베키오 다리 중앙에 있다.

 

 

 

 

 

 

 

 

 

 

 

 

 

 

 

 

 

 

 

 

 

 

 

 

 

 

     ---  이쯤에서 르네상스 산책을 마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씨에나 기행)으로 이어가겠습니다.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