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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알 럽 트래블 / 터키) 위대한 제국의 출발을 찾아가는 여행길....... 부르사

by 피안재 2018. 12. 4.

 

 

 

 

 

 

 

 

 

 

 

 

 

 

 

 

 

 

 

 

 

 

  인생을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리듬과 밸런스는 대단히 중요하다.

  사람이 어느 한가지에 너무 깊게 미쳐버리게되면(빠져들면)  그사람의 지극히 일상적인 삶은 머지않아 허물어져 버린다.

  그런데 오지랍에 역마살을 타고 태어난 나에게 바로 그런 약점이 있다.  어느 한가지에 필이 꽃혀 버리면  무조건 그 한가지에 올인해버리는 성격말이다.

  갑자기 글 쓰는데 필이 꽂히면 서너달 동안 소설만 끄적이고,  그림에 필이 꽂히면 두세달을 캔버스와 물감만 끌어안고 산다.  꽃에 필이 꽂히면 집 주위나 방안이 온통 화원으로 변한다.  해바라기에 꽂혀서 실제로 수안보 소조령의 황토방을 얻어서 2년 반을 기거하기도 했었다.  골프. 사진. 카 레이싱.......  특출나게 잘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  남들이 하는것치고 딱히 내가 못하는 것도 없는  그런 요지경속 삶을 살아왔다.

  느즈막히 나이 먹을대로 먹고나서야   리듬과 밸런스(쉽게 말해서 철이 들었다)의 중요성을 깨닳았다.  그 결과로 얼마남아있지도 않은 정열의 절반은 오로지 일에 투자하고,  모나지 않게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그저 책이나 읽고  시간이 허락되면 여행이나 즐기며 산다.

  그런데  리듬과 밸런스는  인생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여행에 있어서도 리듬과 밸런스는 대단히 중요하다.

  다양한 나라만큼 다양한 여행의 목적에 따라서 각기 다른 접근 방식으로 스케줄을 짜듯이,  휴식을 위한 여행과  모험을 위한 여행과 배움이나 깨달음을 위한 여행에 대해서도 어느정도씩은 골고루 배려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요즘은 음식에 대한 미학여행도 핫 이슈로 떠오르고 있지 않은가?

  짧은 여행기간과 넉넉치 않은 비용으로 다양한 경험을 찾는다면 당연히 어느정도 강행군이 필요하겠지만,  느릿느릿한 휴식 같은 여행도 가끔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자면  리듬과 밸런스라는 것도  다양성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겠다.

 

  부르사(Bursa)에 왔다.

  내 삶에 리듬과 밸런스를 맞춰주려고 시작한것이 여행이었다면,  내 여행에 리듬과 밸런스를 찾아주기 위하여 찾아 온 부르사였다.

  카파도키아에서의 시간은 한순간 돌연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첫인상 처럼  경이롭고 황홀하기만한 풍경으로 몇날의 시간을 모두 채우기에는 왠지 어떤 모호함으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한순간 한순간 새롭게 만나는 놀라운 풍경들이 계속적으로 두 눈가득 쏟아져 들어왔지만,  돌아서면 어느새 그 풍경들이 시들해지고 알수 없는 허전함이 피어났다.

  그래서 예정보다 서둘러 카파도키아를 떠나왔다.

  물론 오른쪽 발목을 다친 이유도 카파도키아를 떠나오게 만드는 한 요인이 되었지만 말이다.

  결국은 그런 이유로  이렇게 지금 부르사에 오게 되었다.

  이따금씩 이런 우연은 우리 인생에 아름다운 추억과 아름다운 인연들을 선물처럼 안겨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우리네 인생이 끝이 보이지 않은 머나먼 곳까지 쉬지않고 철길을 달려가는 기차라면  우연한 인연은 아마도 잠시 들리게 되는 간이역이 아닐까?

  역장도 역무원도 없는 간이역을 나서면  그곳에는 또 어떤 세상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지금의 내 마음이라면  아무런 망설임이나 두려움 없이 저 역사 밖의 세상으로 나가보리라.  그 누구처럼(설경구씨)  나서자 마자  '나 돌아갈래'라고 외치지 않을 자신이 내게는 있다.

  낯선곳에서 작더라도 소담스런 행복을 만나고 싶다.

 

 

 

 

 

 

 

 

 

 

 

 

 

 

 

 

 

 

 

 

 

 

 

 

 

 

 

  트램이다.

  빨간 트램이 자동차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이스탄불도 아닌것이 마치 이스탄불인것처럼 빨간 트램을 보다니........  그리고 왜 나는 트램만 보면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을 해대지?  나야말로 여기가 이스탄불로 착각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너른 광장과 물기둥으로 솟아올라 포말로 부서지는 분수대하며 계단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 표정은 내겐 너무도 익숙한 터키인들의 모습임이 틀림없다.  거기에서 사방으로 전형적인 오스만 양식의 예쁜 건물들이 시야 가득 들어온다.

  이게 바로 부르사(Bursa) 풍경이구나.

  찻길 옆으로 커다란 자미(이슬람 사원)의 벽이 나타났다.  차장으로 올려다보니 어마어마하게 큰 자미다.

  '학생.  저게 울루 자미야?'

  '네.  그게 울루 자미예요.'

  '그럼 나 여기서 내리는게 맞겠네?'

  '맞아요.  여행은 이곳에서 부터 시작하시면 될거에요.  오른쪽으로 곧 버스가 설거예요.  그때 내리세요.  여기를 'PTT 정류장'이라고 불러요.  그리고 부르사의 버스노선은 한쪽방향으로만 운행하게 되어 있어요.  잘 기억해 두세요.  나중에 테르미날에 가실때도  바로 여기 지금 내리는 곳에서 다시 타시면 돼요.  아셨죠?  부르사의 교통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시내를 회전하게 되어 있어요. 잊지 마세요?'

  부르사 터미널에서 38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던 중  고등학교 남학생 3명을 버스안에서 만났다.  배낭의 태극기를 알아보고는 먼저 말을 걸어온다.  모두들 지금 K-POP에 심취해 있다고 한다.  핸디폰에 다운받은 음악을 들려주기까지 하는데.......  아뿔싸.  올드맨으로 전락한 내가 십대 아이돌들 노래를 어떻게 알겠는가?  다음 여행을 위해서는  K-POP 서너곡쯤은  연습하고 나서야 할까보다.

  낙천적이고 호기심 많고 열정이 넘치는 학생들이다.  거기에 상냥하고 배려심까지 깊다.  그들이 내게 부르사를 소개해 준다.

  PTT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 둔다.  학생들 말대로 부르사를 떠나는 날도 바로 이곳에서 터미널 가는 버스를 타야하니까.  여기서 'PTT (Posta Telgraf & Telefon)'는 우체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터키에서 내가 환전하는데 있어서 주로 이용하는 곳이 바로 우체국이다.  그러니까 이 앞건물이 바로 부르사 우체국이다.

  어느쪽으로 갈까?

  작은 배낭에서  부르사 지도를 꺼내 현위치를 찾아 살펴보니  어디로 가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어보이는 지점이다.

  처음으로 해봤다.

  가지고 있던 볼펜을 머리 위로 높이 집어 던졌다.  볼펜 심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간다.  혹시 누가 보면 어쩌지?  난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을 중시하는 사람인데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다 해보다니?

  헐.  아무튼 볼펜은 부서지지 않고 지면에 착륙을 했다.  볼펜심은 길 건너 울루 자미의 오른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쩌겠어?

  배낭을 다시 바르게 메고 지하도를 내려간다.  길을 건어야 하니까.........  인샬라.

 

  부르사에선 아무런 계획이 없다.

  꼭 가보겠다는 목적지도 없다.

  그냥 쉬어보고 싶다.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는 정도면 좋겠다.

  그냥 사람사는 모습을 실컷 보았으면 좋겠다.

  다만 한가지........  와인과 포도가 맛있으면 더 좋겠다.

 

 

 

 

 

 

 

 

 

 

 

 

 

 

 

 

 

 

 

 

 

 

 

 

 

 

  지하도 안쪽으로 상가가 들어서 있는데  광장쪽으로 난 출구에 고급스럽고 멋진 실크 매장이 있다.

  쇼 윈도우가 그야말로 커다란 설치예술 작품이다.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릐 실크 매장을 몇번 둘러보았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쇼 윈도우를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은 거의 작품이다.

  배낭이 무겁다는 것도 잊은 채 한참을 서서 구경했다.

  밖으로 나서니 곧바로 울루 자미의 광장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 광장은  곧바로 시장과 연결된다.

  그래.  이것이 바로 이슬람이다.

  이슬람 세계의 특징은 바로 자미(사원)과 시장으로 대표된다.  또한 이것은  유럽의 기독교 문화권에서도 매우 유사한 경험을 할 수는 있다.

  과거 로마는 정복한 땅에 가장 먼저 도로(아피아 가도)를 건설했다.  이어 성벽을 쌓고 신전을 세우고 수도교를 건설해 필요하면 물을 끌어왔다.  그렇게 해서 도시가 건설되면  다음으로 여흥을 위해서 콜로세움을 세웠고  도시 주변으로  사방에다 포도나무를 온통 심었다.  그것이 로마제국이었다.

  하지만 이슬람은 좀 달랐다.

  이슬람이 새로운 정복지에 가장 먼저 한것은 자미(사원)를 세우는 일이었다.  그만큼 무슬림의 삶은 믿음(종교)이 절대적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자미는 무슬림에게 삶의 근원이라 위안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자미를 통해서 포교를 하는것이 무슬림에게 주어진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자미 주위에 시장을 만들었다.  하루 다섯번 신에게 기도하는 무슬림에게 사원 주변의 시장은 그저 당연한 생활의 일부이기도 했다.  사원이 클수록 당연히 시장도 커졌고 교역(장사)의 수준도 커졌다.  이 시장이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의 중심지로 발전해 갔다.  시장에서 얻은 수익의 일정부분은 이슬람 교리에 적힌바대로 일부를 자미에 기부하여 빈민구제에 쓰이도록 했다.  또 '손님을 신이 보내신 선물이라 생각'하는 이슬람의 전통은  자미가 이니더라도  여러가지 방법으로 모은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전통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  이런 나눔과 배려의 정신은 신앙심을 높이고 이슬람교세를 확장하는데 있어서 지대하게 공헌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들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시장과 시장 사이를 오고가는 대상(카라반)을 통해 이슬람의  뛰어난 지식과 문화를 전파하는 역활까지를 담당했던 것이다.

  오늘날 일부 종교학자들이 내놓는 자료에 의하면.........

  과학이 발달하고 물질문명이 중심이되고 개인주의와 편리함만을 쫒는 세상이 되어갈 수록  종교의 필요성이나 신앙심의 정도가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20세기에 비해서 21세기의 초반부인 현재  모든 종교의 신자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국처럼 인구감소를 이유로 내세울 나라는 지구상에 별로 없다.   분명하게  기독교(카톨릭. 개신교. 정교회). 불교. 유대교. 등등등........  모든 종교의 신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

  단 한곳.........  이슬람교 만은 신자수가 부쩍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유럽 백인사회의 이슬람화가 부쩍 늘어가고 있다.

  왜 그럴까?

 

  편리를 앞세워 세속화가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어떤 신성(神聖)은 점점 그 성스러움을 잃어갈 수 밖에 없다.

  이슬람은 거의 1천 오백년 이상을 불변이다.  인간이 불변의 절대 신성에 복종하는 것이지,  신앙의 편리를 위해 신성에 손을 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루 다섯번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앞으로 다시 1천 오백년이 흐른다 해도 그들은 여전히 그 모습일 것이다.

  나는 그들의 신앙과 그들의 그런 가치관에 한없는 존경과 갈채를 보낸다.

  숭고하고 지고지순한 그들의 신앙 또한 지상에서 극히 보기드문 아름다움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또 믿는다.

 

 

  이런들 어떠하고 또 저런들 어쩌겠는가?

  여기는 부르사요  나는 지금 이곳에 있는것을.......

  사원이면 어떻고 시장이면 또 어떠리?

  사람사는 곳이면 나는 어디든 갈 수 있는것을.........

  그런데 좀 심각한 문제다. ㅎㅎㅎㅎ   이넘의 배낭을 메고 인파속을 헤집고 다니자니 여기 걸리고 저기 부딪치고........

  그제서야  어디 호텔부터 구해서  배낭부터 벗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뭐하겠나?  예약한 호텔 바우처가 있어?  당장 찾아갈 보아둔 호텔이 있나?  아무것도 없잖아?

  인샬라.

  인샬라.

  볼펜심이 이쪽을 가리켰으니  뭔가 나름 이유가 있겠지?  그 또한 인샬라다.

 

 

 

 

 

 

 

 

 

 

 

 

 

 

 

 

 

 

 

 

 

 

 

 

 

 

 

 

 

 

 

 

 

 

 

 

 

 

 

 

 

 

 

 

 

 

 

 

 

 

 

 

 

 

  카파도키아를 떠나서 12시간을 버스를 타고 도착한 부르사 터미널에서 내가 가장 먼저 꼭 해야만 했던 일이 있었다.

  헐레벌떡 화장실로 달려간 것이다.

  장시간 버스를 타고 이동했으니 당연히 생리적인 급한 볼일이 있어서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반바지를 긴바지로 갈아입기 위해서였다.

  부르사에서는 그렇게 긴바지로 갈아입는 일이 화급하고  또 중요한 일이다.

  터키여행을 즐겨하는만큼  나는 어느정도 터키의 각 지역의 특성에 대해서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여기 부르사는 아주 특별한 지역이라는 것도 오래전부터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부르사는 터키 전체를 통털어서  두번째 가라면 몹시 서러워할만틈 아주 아주 보수적인 도시다.  여기서의 '보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의 그런 보수가 아니다.  왜 내가 그렇게 긴바지부터 갈아 입어야만 했을까?  보수성 때문이다.

  부르사에 머물면서 주로 사람을 만났고 수없이 많은 사진을 찍었다.  한번 찾아보시라.  반바지를 입거나  무릎이 드러나는 치마를 입은 사진이 있는지?  없다.  단 한사람도 보지 못했다.  포대기에 쌓인 갖난아기 빼고는  어린아이들도 반바지나 짧은 치마는 입은 모습을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부르사의 날씨는  늦여름과 초가을 정도의 날씨였다.  내가 막 떠나온  카파도키아에서 오로지 반바지로 일관했고,  다음 여행지인  이스탄불에서도 오로지 반바지로 일관했다.  로마의 바티칸 성당과   피렌체 두오모도 반바지로 들어갔던 나인데  여기 부르사에선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바지부터 갈아 입었다.

  왜 그랬을까?

  부르사에선 그래야만 하니까...........

 

 

  앙카라에 사는 사람이 말했다.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야.  정치의 중심지이지.  터키를 운영하고 다스리는 곳이기도 하지. 그러므로 앙카라는 터키의 심장이야' 라고 말했다.

  이스탄불에 사는 사람이 말했다.

  '터키의 문화와 경제는  이스탄불에 의해서 죄지우지 되는거야.  세계속에서  터키는 이스탄불이고  이스탄불이 곧 터키야' 라고 말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부르사 사람이 넌지시 말했다.

  '알라께서 오스만의 출발을 지켜보시고 허락하셨지.  그곳이 바로 부르사였어.  오스만의 정신은 부르사가 지켜내려왔어.  오스만의 시작이 부르사였고,  부르사는 곧 살아있는 오스만의 정신이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더 이상은 그 누구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부르사는 좀 유별난 곳이다.

  아니  전체 터키 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곳이다.

  그들은 유구한 오스만 투르크의 전통과 역사속에서 생활한다.  그들은 오랜 전통과 관습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브르사 현지인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 전통과 관습을  터키인 모두에게 요구하고,  나아가서  여행객에게까지 요구한다.  이란이나 사우디를 제외하고는 거의 그렇게까지 요구하는 나라나 여행지가 극히 드물다.  하지만 부르사는 요구한다.  그래서 반바지나 짧은 치마가 허용되지 않는다.

  지구상의 이슬람 국가중에서 터키가  여성의 권위나 신앙활동에 대해 가장 관대하다.  사원에서의 여성의 기도생활 또한  다른 무슬림 국가에 비하자면 비교적 관대하고 자유로운 편이다.  또한 이스탄불이나  터키의 다른 지역을 보더라도  여성의 전통복장인  히잡을 착용하는 여성보다 착용하지 않는 우리네와 똑 같이 자유로운 복장의 여성이 더 많다.  또한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하지만 부르사에서만은  아니다.  현지 여성의 거의 대부분이 히잡을 착용한다.  거의 사우디나 이란 수준으로 말이다.  정말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가장 보편화된 무슬림 여성의 복장이 (히잡)이다.  머플러 같은 천으로 얼굴은 내놓고 머리와 어깨를 가린다.  가장 흔하게 보는 무슬림 여성 복장이다.

  좀 더 보수적인 무슬림 여성은  (차도르)를 착용한다.  얼굴은 내어 놓지만  머리에서 발끝가지 전신을 감싸는 복장이다.

  거기에다 좀 더 보수적으로 가면 (니캅)을 착용하는데,  눈만 내어놓고 전신을 감싸 감춘다.

  최고로 보수적인 사우디 이란 여성의 복장이 (부르카)다.  니캅 차림에다 눈까지 망사로 철저하게 가리는 전통 복장이다.

  그런데 여기 부르사에서는  히잡만큼이나 흔하게 차도르가 보편적인 복장이고,  니캅과 부르카도 흔하게 마주치게 된다.  여기는 그런 곳이다.

 

  여행자라고 예외가 없다.

  짧은 치마나 반바지를 입고 외출하면  거리에서  현지인들에 의해 곧바로 제지를 당한다. '부르사는 알라신이 거하시는 신성한 지역이기 때문'이란다.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한 여행자를  '부르사'는  거부한다.

  수많은 터키인들이 성지순례로 부르사를 찾는다.  일생에 한번은 메카를 찾아가야만 한다면,  그 다음으로 찾아가야 하는 곳이 부르사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유독 사우디와 이란의 순레자가 많다.  아마도  엄한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개방된 서구 문물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우디나 이란의 여성들이 개방된 이스탄불 같은 곳을 처음 접하게 되면  문명에 대한 심한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이해도 된다.  그 다음이  쿠웨이트.  이라크. 오만. 요르단 여행자가 부르사에는 많이 있다.

 

 

  볼펜에도 신기하도 영험한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 날 깨닳았다.

  아니면 '인샬라'가 통했던가.

  시장이 너무나 넓고 크고 사람도 많기도 하여 이러다 방향을 잃기라도 하면  여행 전체에서 불편을 초래할 수 있기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우선 숙소부터 구하기로 마음 먹었다.  높은 울루 자미의 종탑은 어디서나 보이기에  그쪽으로 방향을 잡아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그 건너편이 PTT 정류장이 틀립없으니  아무튼 그 인근이 나머지 여행에 있어서 편리할 것이다.

  울루 자미 광장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에  볼펜이 가리킨 방향으로 한블럭을 옮겼을까?

  시장쪽으로 난 골목의 초입에  호텔 하나가 떡하니 모습을 나타냈다.

  '인샬라.'

  재고 따지고 살피고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애초 처음부터 그렇게 마음먹고 시작한 부르사여행이었기에.

  몸을 잘 가누지 못하시는 연세 많으신 할머니가 창업주시고  중후함이 엿보이는 다음 할머니가 현재 경영자이고,  전반적으로 운영을 맡고있는 중년 여인이 이 집안의 며느리인  가족끼리 운영을 하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호텔이었다.  세련까지는 아니더라도 깔끔하고 자연스레 몸에밴 친절이 인상적이었다.

  '정말로 여기는 아니다' 싶을 정도만 아니라면 무조건 투숙하겠노라고 생각하고 불쑥 찾아들어간 호텔이었는데 이건 그야말로 횡재였다.

  아무래도 내 볼펜에  어떤 영험한 기운이 서려있는가보다.

  창밖으로 시장 골목의 전경이 그대로 내다보이고 너른 싱글 침대가 두개에다가 넓은 샤워실까지........  별 세개짜리 호텔 3층이다.

  거기다 전혀 흥정 없이 그냥 얻었는데.......... 2박에 240리라(4만 7천원 정도)이고 거기다 조식까지 포함이다.

  오.마.이.갓.

  이 정도라면  현재의 터키 사정을 그대로 반영했다고 쳐도  거의 횡재다.

  부르사에는  카파도키아 같은  여행사나 장사치의 이중 환율 장난질이 적어도 없다는 결론이 된다.  환차익의 효과를 고스란히 여행자가 느낄 수 있는것이다.

  서둘러 카파도키아를 떠나  부르사로 오기를 잘했다.

  부르사가 점점 좋아지기 시작한다.

 

 

 

 

 

 

 

 

 

 

 

 

 

 

                                  

 

                                  

 

                                   

                                    --- 내가 아는 한  이상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호텔.(부르사에 있음)   1박에 2만사천원 안쪽.(조식 포함)

 

 

 

 

 

 

 

 

 

  부르사는 한마디로 매혹적인 도시다.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지인들 삶의 모습은 그보다 더 아름답다.

  점차 부르사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가장 머물고 싶은 도시라면  영원히 나는 '이스탄불'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딱히 그 무엇이라고 단정짖지 못하는  무언가 아쉬움이 조금이라도 이스탄불에게 남아있었다면,  그 부분이 여기 부르사에 있다.

  이스탄불에 없는 부분이 부르사에 있고,  부르사에 없는 부분이  이스탄불에 있다.  이 둘이 합쳐질 때  비로소 완벽한 터키가 된다.

  난 느끼고 있었다.  이제야 진정한 터키를 모두 만났노라고..........

  이스탄불이 너무 개방되고  서구문명에 어느정도 변질된 터키라면,  부르사는 너무 스스로 고립되고 옛 오스만 투르크의 추억과 정취에만 파뭍혀 사는 낯설고 이질적인 도시라고.........  나는 이스탄불을 너무나 좋아한다.  더불어 이스탄불과 너무도 상반된 부르사가 마냥 좋아지기 시작한다.  빠져들고 있다.

  너무도 아쉽다.  이렇게 떠밀리다시피 우연처럼 부르사를 찾아오다니........

  한 한달쯤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부르사에 그냥 눌러앉아 빈둥빈둥 거려봤으면 좋겠다.

  부르사야.  넌 딱 내타입이야.  ㅎㅎㅎ

 

 

 

  짐정리를 하고 샤워를 마치니 밖에 소나기가 내리고 있다.  연 중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우기인 것이라 그러려니 하겠지만........  빼먹은 것이 있잖은가?

  때도 어느새 저녁시간이다.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고 있다.

  다급하게 호텔을 나왔다.  당연히 우산도 없다.  카메라도 두고 지갑만 들고 서둘러 나왔다.

  지나가는 행인을 봍잡고 길을 물어보기 시작했는데........  아뿔싸.

  부르사에서 그만.........  꿈속에서도 생각해 보지 못한 암초를 만났다.

  부르사에는 딱 한가지 않좋은 것이 있다.  불편한 것이 아니다.  없는 것이 있다.

  딱 한가지.........

 

 

 

 

 

 

 

 

 

 

 

 

 

 

 

 

 

 

 

 

 

 

 

 

 

 

 

 

 

 

 

 

  숙소 근처의 작은 슈퍼마켓엘 들렸다.  그런데 없다.  물어봐도 아예 무슨 뜻일줄 못알아 듣는다.

  쏫아지는 소나기를 그대로 맞으면서 큰 길 건너 대형마트(작은 백화점)로 달려갔다.  매장을 두바퀴나 돌며 샅샅히 살폈는데도 눈에 띄지 않는다.

  '술 파는 코너가 어느쪽에 있어요?  안보이네요?'

  여기가 달나라도 아니것이  그렇다고 화성이나 목성도 아닌것이.......  아가씨가 완전 동작그만 상태로 나를 멀뚱히 쳐다본다.  지금 내가 이상한 상황인지 이런 표정의 아가씨가 이상한것인지 도무지 파악이 되질 않는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 직원이 다가왔고  내가 다시 한번 똑 같이 물었는데.......  아뿔싸.  이 친구도 금방 세꾼에 오염된 것처럼 같은 반응이다.

  '내가 지금 와인을 사고 싶다고요?  못 알아들어요?  와인 말이예요 와인? 돈 언더스탠?  그럼........  위스키. 노우?  보드카.  러시안 보드카. 노우?  그럼 이건 알아요?  비어. 비어라도 좋아요.  비어는 있지요?  노우?  삐루라 해야 알아듣나?  노우?'

  아!!!!!  지구상에  영어가 아니라  바디 랭기지도 안통하는 곳이 있었다.  부르사였다.

  부르사 사람들은 술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아주 슬픈 사실인데........  부르사엔 술이 없다.

  이건 나에게 있어서........  한마디로 비극이다.  이건 그야말로 사형선고다.

  와인이 빠진 여행이라니......  아니 술이라는 생명이 모두 증발해버린 사막여행이라니.........  이건 영혼이 증발한 여행이나 마찬가지다.

  허탈.....  그리고 좌절.........

  호텔로 되돌아와 엘레베이터 앞에서 작은 할머니 매니저를 만났다.  그래서 부르사에 왜 술이 없냐고 물어봤다.

  부르사는 대부분 사람들이 무슬림 율법에 적힌바대로 계승되어 내려온 전통 생활방식에 따라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술 문화가 아예 없단다.

  그렇다면.......  삼겹살 쌈에싸서 한입 먹고  홍차 한모금 마시고  소불고기 한입 먹고  홍차 한모금 마시고, 참치 회에도 홍차.........  이게 말이돼?

  '그럼 서구의 여행자들은요?  와인이 곧 생수인데........'

  '율법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술은 가장 경계하고 금기시 되는 것이기에 절대 안되고요,  여행자들이 점점 늘어나다보니까  국가차원에서  부르사에 있는  가장 큰 최고급 호텔 3군데 정도에  와인 바를 만들도록 허가했어요.  오로지 여행자만을 위한 시설이지요.  거기에 가면 와인 말고도 다양한 종류의 술을 접할 수가 있어요.  꼭 술이 필요하면 그 곳으로 가면 될거에요.'

  '바에 가서 먹는 거 말고요.  그냥 술만 구입해서 가져다 먹는덴 없어요?'

  '술을 사고판다는 제도 자체가 아예 없어요........  아!  여행자들에게 듣기는 했는데  배낭 여행자가 늘어나면서 몇군데 골목안 허름한 구멍가계에서 술을 파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부르사 전체에 네 다섯군데쯤 된다 하던데............'

  '그게 어딘데요?'

  '당연히 모르지요?  나도 술을 마셔본적이 없거든요.  어디라드라?  헤이켈 지나서 언덕쪽 골목이라던가?  확실치가 않아요?'

  '암튼 고마워요 할머니.  친절하게 가르쳐 주셔서.'

  부르사에서 이 지역을 '헤이켈 지구'라 부른다.  여기서 헤이켈은  '동상' 이라는 뜻이다.

  길 건너 시계탑 뒤쪽으로 공원 한가운데  아타튀르크 동상이 우뚝 서 있다.  헤이켈 지역의 중심인 것이다.

  빗속을 달려 나갔다.

  흔하디 흔하던 와인이 절대 없다니까  죽어도 더 마시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진즉 알았으면 위르굽에서 싸고 질좋은 와인을 세 병쯤 사들고 왔을텐데.

  헤이켈을 지나 할머니 말씀처럼 느껴지는 언덕 골목을 두바퀴나 돌았는데 구멍가계가 보이질 않는다.

  다시 지나가는 영어를 하는 사람을 찾아서 살인사건 탐문수사 하듯이 구멍가계를 찾는데  아뿔싸.......  술을 알아듣는 사람을 겨우 찾아냈는데,  자신이 알기로는 여기가 아니라 저쪽에 있더라고 하더라면서 가르켜 주는데  전철길 따라 한참 아래로 내겨가는 곳이다.  어쩌겠어.  죽어라 달려가서 또 죽어라 찾아봤는데 없다.  그래서 똑 죽어라 탐문했더니  이번엔  시장 저쪽으로 통치자의 문을 찾아가는 길목에 있단다.  그래서 다시 쫓아갔고 끝내 못찾았다.  대충 잡아서 한 5KM 정도를 소나기를 맞으며 쫓아다녔다.  발목이 아픈지도 몰랐다.  이거야말로 거의 탐험이다.  다시말하자면  완전히 미친짓이다.

  그넘의 와인이 무엇이라고?  하루 이틀 안마신다고 당장 숨이 넘어가는 것도 아닌데........  미친넘.

  지쳐서 거의 포기하고 돌아오다가 소나기가 너무 심해서 버스 정류장에 잠시 비를 피하는데  여행자로 보이는 젊은이 서넛이 들어온다.  그래서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질문을 던져보았는데........  젊은 여행자 입에서 짧게 터져나오는 구원의 단비 같은 반가운 소리.

  '저는 어제 사다 마셨는데요?  와인 말고 보드카도 있어요.  진짜 러시아 보드카.  맥주도 있고요.'

  '어디서요?  어어어어........ 어...... 어디요?'

  '저기 헤이켈에서요.'

  '아타튀르크 헤이켈 지나 언덕 골목을 갔다가 왔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던데요?'

  '거기 있어요.  두번째 였던가?  골목을 올라가다 보면 중간에 옆으로 꼬부라지는 골목 모퉁이 안쪽에 있어요.  이렇게 양쪽으로 여는 작은 유리문이요.'

  구원의 계시를 들었으니 어쩌겠는가?  즉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수행자의 기본 도리가 아니겠는기?

  도대체 이게 뭔짓인지?

  우와!!!!!!!  가보니 실제 있다.  아주아주 작은  허름한 점빵이 있다.  담배파는 구멍가계 수준이다.

  나무 선반위에 와인과 보드카가 진열되어 있다.  또오기 힘들까봐 혹은 내일은 다 떨어질까봐 보통 와인의 두배되는 큰병으로 두개를 사는데  가격이 더 없이 착하다.  카파도키아의 가격이면 여기서 큰병 두개를 산다.  믿기 힘든 현실이다.

  나오다가 눈에 띄는 커다란 캔맥주.  세상에.  또 세상에. 1리터짜리 캔맥주가 있다. 놀래서 자빠질 뻔 했다.  캔맥주가 1리터라니.......  또 샀다.

  돌아오는 길이 왜 그리 먼지.........  술은 또 왜 그리 무겁던지........

  속옷까지 홀랑 젖어서 미안한  표정으로 엘레베이터에 타려는데  작은 할머니 매니저의 그 귀신에 홀린듯한 표정..........'의지의 한국인'을 새삼스레 확인하였기에 놀라는 표정이었던가,  아니면 '술에 환장한 미친넘을 친견하게된 감격'에서 나오는 표정이었던가.  뭐 그런 표정이었다.

  정말로 이건 한번 심각하게 짚어볼 이유가 충분하다.

  나에게 술이 도대체 뭐지?

 

  부르사의 와인.  그리고 부르사의 포도..........  그건 마약보다도 강렬하고 황홀한  깊은 추억이 아닐까 싶다.

  돌아가고 싶다.

 

 

 

 

 

 

 

 

 

 

 

      ----  다음으로 이어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