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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알 럽 트래블 / 터키) 이젠 떠나자. 악마의 숨구멍 같은 카파도키아에서....

by 피안재 2018. 12. 1.

 

 

 

 

 

 

 

 

 

 

 

 

 

 

 

 

 

 

 

 

 

  밤을 하얗게 새우다시피하며  잠을 설쳤다.

  다친 오른쪽 발목의 컨디션이 영 말이 아니다.   소염진통제 마사지가 효험이 있었는지 붓기는 쏙 빠졌지만   통증이 여전히 남았다.  화장실 다녀오기가 힘들 지경이다.  등에 식은땀을 흘릴 정도다.

  새벽부터는 수첩과 백지를 꺼내놓고 이방법 저방법을 찾아보면서 궁리에 또 궁리를 해본다.

  여행 일정은 아직 남아있고,  이 상태로는  하루종일 걸어다니는 트래킹이 더 이상 불가능해 보인다.  어쩌지? 

  아침까지는 어떤 것이든  최종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유니콘 호텔에 숙소를 얻으면서  일단 3박을 예약했었다.  오늘 아침이 마치는 날짜이다.  이틀 정도 더 머물 수 있다고 매니저에게 미리 언질은 해 놓은 상태였지만,  지금의 상태라면  여기 카파도키아에서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당장 다른 방도를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사실은......  그냥 카파도키아에서 어서 빨리 벗어났으면 하는 심정이 어제 저녁무렵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던 이유도 있다.  지난날 미얀마 바간에서 느꼈던 심정과 비슷했다.  지금 이 정도면 충분할것 같다.  카파도키아는 그만큼 강렬한 감동이었고  너무도 쉽게 식상함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침이 밝아왔다.

  소염제 마사지를 한번 더 하고 테이핑을 다시 했다.  한결 편해졌다.

  그 위에 압박붕대까지 감고나니 걸어다닐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붕대 부피로 인해 신발에 들어가지를 않는다.  결국 붕대는 풀고 약간 조이는 양말에다 편한 신발로 바꿔 신고 아침 산책을 나선다.  약간의 통증이 신경에 거슬리지만  그런대로 걸을만은 했다.

  여전히 오늘도 우선은 전망대로 향한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전망대가 아주 썰렁하다.  겨우 대여섯쌍의 여행자들만이 추운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비가 오고  벼락과 천둥이 치는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해가 뜨기 시작하는데도  벚꽃 흩날리듯 날아오르던 애드벌룬이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뭐야?

  핸드폰을 열어 날짜를 확인해보니  일요일이다.  일요일은 벌룬투어가 쉬는 날인가보다.

  그럼 저 사람들은 모야?  일요일은 벌룬이 안뜨는것도 모르고 일출을 보겠다고 찾아온 바보들?  어휴 맹충이들........  고부 좀 하지.

  그럼 나는?  나?  나는 좀 다르지.  카파도키아 일출을 아직 보지못했으면서 보겠다고 찾아올라온 사람들은 정말 바보고,  이미 이틀이나 본 나는.......  혹시나 저런 바보들이 얼마나 있을까 살피러 올라와 본 거랑말코.

  거기다가 오늘 날씨는 많이 불량이다.  구름이 많이 끼어 제대로 해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 다시 여기 전망대에 올라올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괜히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한참동안 머물면서 나머지 일정에 대해 다시 정리를 해본다.

 

  이즈미르 - 셀축 - 에페소를 가서 좀 더 걸어보는 용단을 내려볼까?  파묵칼레의 히에라폴리스 유적군까지 포함한다면  귀국길은 그냥 이스탄불을 당일 경유하는 코스가 될것이다.  이 컨디션으로 더 걸어다닐 수 있을까?  한마디로 모험이 된다.  걷지못하면 모든것이 꽝이 된다.

  아니면 내가 터키를 아무리 좋아하고  또 앞으로 다시 찾아와 여행을 다닌다해도,  처음부터 마음에는 늘 있었으나 딱히 어느 코스에도 잘 연계가 되질 않아서 어쩌면 영원히 포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왔던  부르사를 이 참에 찾아가서 몇날이고 편하게 있다가 역시 당일 이스탄불을 그냥 경유해서 귀국해 버릴까?  이번 기회에 부르사에 가보지 않는다면 평생 이즈닉도 물건너간거잖아.  이참에 부르사? 

  터미널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할 정도로 쬐끄만  카파도키아 터미널로 향했다.  10여개의 버스회사별 사무실이 늘어서 있다.  큰 회사인 메트로부터 들려서 이즈미르. 부르사행의 시간표와 경유시간들을 살펴보는데  이즈미르 셀축의 경우  80km 떨어진 카이세리에 가서 타거나 여기에서 경유해서 가는 시간대 버스를 골라서 타야한다.  그럴 경우는 차라리 국내선 항공 이용이 편할 것이다.

  부르사의 경우는 카파도키아에서 직접갈 수 있는 버스회사가 파묵칼레버스 회사가 유일하며  하루에 단 1편 저녁 6시에 출발해서 12시간이 소요된다.

  터미널 인근의 카페에서 이른 모닝커피를 한잔하면서 최종적으로 남은 일정을 요약한 결과로 금일 저녁에 출발하는 부르사행 버스표를 예약했다.

  호텔로 돌아와 매니저에게 금일 부르사로 떠나게 되었다고 알리고 체크아웃 이후의 배낭 보관을 부탁했다.

  매우 자상한 이 매니저 배낭을 그냥 내 방에 두고 나가도록 배려해 준다.  아직 오늘 내가 묵었던 방에 예약이 없는 상태였다.  손님이 들게되면 그 때 배낭을 카운터에 가져다 보관해 줄테니 아무 걱정말라고 한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짐정리를 하고 사용했던 방도 나름 깨끗하게 정리를 하고   오후 3시 이전엔 돌아오겠노라고 언질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카파도키아에서 마지막으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남아있었다.

 

 

 

                                         

 

 

 

 

 

  카파도키아에 대한 첫느낌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감동이었다. 

  어쩌면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서 어느정도 카파도키아에 대해서 보고 듣고 했었기에 그나마 충격이 덜했을 것이다.

  시간과 바람이 창조해낸 불가사의할 정도의 경이로운 대자연의 신비........  그랬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그 뿐이었다.  그게 전부이고......  나머지도 온통 그런 비슷한것 뿐이다.

  기독교의 역사와 유적.......  남아있는 기록일 뿐이다.  영속성이 모두 끊어진 형이상학적인 존재의 미미한 잔유물 정도라고 할까?  그럼 미미한 잔해들을 이용해 상업적인 상술로 포장된 교묘하고도 약간은 저속해보이는 이름만 아주 유명한  일개 여행지일 뿐이다.  사람의 냄새와 사람의 정이 없다.

  그저 잠시 스쳐지나가는 여행자와  그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쓰리꾼 같은 장사치만이 득실대는 곳이 카파도키아이다.

  여행자의 편의를 위한 시설이나 누릴만한 꺼리가 없다.  흔한 시장이나 대형 마켙도 없다.  구색이라는 것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정도다.  거기에다 물가는  이스탄불 보다도 더 비싸다.  온통 숙박없소와 식당과 기념품 판매소와 여행사뿐이다.

  현지인들의 삶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여행자보다도 더 낯선 뜨내기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현지인들이다.  그들의 시선도 관심도 오로지 여행자의 지갑만 쳐다보고 있다.  여행을 하면서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어디서건 이런정도까지 일거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다.

  카파도키아에 존재하는 것은 대자연의 신비와  기독교 역사의 흔적이다.

  그런데 이곳의 사람은 모두 이슬람교도이다.  이교도의 역사와 유적에 대한 존경이 우러나올 일이 없다.  기대할 수가 없다.  그것들은 오로지 돈벌이의 수단이 될 뿐이다.  그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가만히 살펴보다 보면  그런 느낌을 서서히 받게될 것이다.

  자연사박물관 일대로 대변되는  그 유명한 카파도키아의 프레스코화를 보자.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는 장소이고  인증샷의 대명사다.  그런데 현지인들의 반응 영 글쎄올씨다 이다.  수백년에서 천오백년 전쯤에  도망쳐서 겨우 동굴에 살게된 사람들이 벽과 천정에 그림을 남겼다.  제대로 된 물감도 없었을 뿐더러  그들은 수도하는 사람이지  화가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벽에 회칠을 하고  나무막대나 손가락을 이용해  비둘기 알 노른자나 흰자에 색색의 광석 가루등을 섞어서 칠했다.  만들거나 그린 사람들의 정성과 숭고한 신앙심의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인의 시선으로 보자면 그야말로 조잡하고 형편없는  중학교 저학년 수준의 그림이 아닌가.  레아나드로 다빈치. 렘브란트. 고야. 마네에게 익숙해진 현대인의 시선으로 보자면 그야말로 조악한 애들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그런 그림에 반목숨을 걸다시피 몰려든다.  최소한 그 그림들을 보아야만 적어도 카파도키아를 다며온 여행자 반열에 오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니면 카파도키아가 볼것이 별로 없든지.

  우상을 믿지않는 이슬람교는  마호멧이 기도하던 동굴에서 올려다본 초승달 외에는 형상이라는 것이 없다.  그들에게  이 벽화를 향해 몰려드는 이방인들의 행태는 얼마나 경이롭겠는가?  숭고한 경이로움이 아니라........  여행자 머릿수에  달러를 곱해서 불어나는 숫자말씀이다.

  카파도키아에는 사람이 없다.  굴러다니는  달러만 있다.

 

 

 

 

 

 

 

 

 

 

 

 

 

 

 

 

 

 

 

 

 

 

                                 ---  괴뢰메 자연사 박물관 앞 몰려든 인퍄.  오로지 이런곳에만 사람이 몰려있다.  전망대와.......

 

 

 

 

 

 

 

 

 

 

 

 

 

 

  내가 시내버스를 타고 찾은곳은 위르굽(Urgup)이라는 작은 마을이다.

  처음 카파도키아에 오면서 경유했던 카이세리는  터키에서도 꼽히는 대도시다.  그야말로 현대적 대도시의 풍경 그 자체였다.  하지만 카파토키아에 대한 상징성을 잃어버리고 저만치 뒷전으로 물러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현 카파도키아의 중심은 괴뢰메에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카파도키아라는 위상에 비하자면 그야말로 '시골 촌구석이 어느날 동방석에 올라앉더니 그야말로 인간성마저 정내미 떨어지듯 거랑말코가 되어버렸다'라고 표현한다고 해서 그리 무례하거나 실례가 되지는 않을것 같다.  괴뢰메는 최악의 장소다.

  그래서 겨우 10km 떨어진,  괴뢰메에 비하자면  유명세가 하늘과 땅 차이정도인 위르급을 찾아가 보기로 한 것이다.  카파도키아에서의 마지막 여행지였다.

  설마 했었다.  '설마 이 너른 카파도키아가 모두 다 괴뢰메 같을려구?' '괴뢰메라는 지역은  내가 알던 터키의 다른 지역하고 나무도 달라.'

  괴뢰메는 불쾌한 여행지야.(유니콘 호텔만은 빼고)

 

  달랐다.  너무도 달랐다.

  위르굽은 내가 알던 터키의 모습이었으며,  진정한 터키인들이 모여살고 있었다.  가까운 이웃마을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위르굽이 카파도키아의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도심의 풍경과 모든것이  괴뢰메 보다 위르굽이 훨씬 아름답다.  이제 소개를 하겠지만 말이다.

  만약에.......  만약에 내가 다시 카파도키아에 가게된다면  나는 위르급에 머물것이다.  아니라면 매일 한번씩은 마을버스타고 다녀갈 것이다. 왜?

  위르굽은 아름답고  풍요롭고 작은 시골마을에 비해 모든 물자가 넘쳐난다.  괴뢰메는  전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물가도 너무너무 저렴하다.  위르굽을 기준으로 본다면  괴뢰메는 사기꾼들이나 사는 지역이다.

  카파도키아의 일출과 일몰을 기대하는 여행자라면  10km 떨어진 거리를 헤쳐나갈 방도를 모색해야하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위르굽의 일출 일몰 또한 일품일것 같다는 기대는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디서 왔어?'

  '일단 여기 와서 앉아 봐.  어서?'

  '차 한잔 할래?'

  '보드카를 한잔 줄까?'

  '여기 사탕도 있고  빵도 있어.  일단 앉아보라니까?'

 

  이 어르신들 그동안 사람이 그리우셨나?  말 벗 해주는 사람이 없나?  여행자인 나를 전혀 낯선 이방인으로 취급을 안해준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도 그렇게 서로 앞다투어 내게 말을 걸어오고  무엇이든 나에게 주려고 안달들이시다.

  아이고야.  여기서 붙잡히면 오늘중에 부르사로 출발하기는 다 틀렸다.

  거기다 뭔놈의 보드카는 그렇게 독하다냐?  트빌리시 도깨비 시장 짜짜랑 비등비등하다.  헐.

  이런게 사람사는 냄새 아니겠는가? 

  위르굽은 사랑스럽다.

 

 

  터키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음유시인들은 수세기 전부터 길쭉한 손잡이가 달린 3현악기 사즈(Saz) 하나만을 들고 이곳저곳을 유랑하면서  그 어느곳에서건 사람들을 만나면 즉흥적으로 만든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대부분의 음유시인들은 그저 이름없는 악사라는 익명성 속에 파뭍혀버렸다.

  리크 바살란((Refik Basaran)은 여기 위르굽 사람으로  수많은 음유시인들 중에서 터키인들로 부터 가장 사랑받았던 사즈 연주가였다.

  유튜브를 통해 감상할 수 있는 그의 연주와 노래는  터키인들의 정서가 그대로 녹아들어있다.

 

 

 

 

 

 

 

 

 

 

 

 

 

 

 

 

 

 

 

 

 

 

 

 

 

 

 

 

  위르굽은 작은 마을이 아니다.

  많은 여행책자에서 그렇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위르굽은 아주아주 큰마을이거나,  아니면 작은 도시이다.  괴뢰메하고는 비교가 안된다.

  위르굽은 아름답다.  아나톨리아 평원과 멋지게 조화를 이룬 아주 세련된 도시다.  이탈리아 북부나 스위스 남부 알프스 인근의 도시와 닮았다.

  고대 히타이트 시대부터 이미 사람이 모여 살았고 포도나무를 재배했다.  투라산 와이너리는 가격이 저렴하지만 품질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있다.

  마을 중심에 있는 시게탑 광장 겸 공원에서 서쪽에 위치한 티멘니 언덕(Temenni Tepesi) 아래에는 여타의 다른 지역들처럼 사람들이 동굴을 파고 살면서 이루었던 마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티메니 언덕 정상의 전망대에 오르면  위르굽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폭의 그림을 보는것처럼 아름답다.

  위르굽의 옛모습을 볼 수 있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

  여기 티메니 언덕 전망대에서 보는 일출 일몰은 또 어떤 모습일까?  나에겐 시간이 남아있지 않아서 그저 상상으로 겨려볼 뿐이었지만  틀림없이 무척이나 아름다웠을 것이다.  왜냐면  사방으로 펼쳐있는  위르굽 도심의 풍경이 너무나도 예쁘지 않은가?

  쿠웨이트에서 온 예쁜 아가씨 여행단을 만났는데  넷은 수줍음에 가까이 다가서지 못함은 물론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하지만 해맑은 아가씨 셋은 내 배낭의 태극기를 확인한 순간부터 주위를 맴돌며 자기들 끼리 계속 뭐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를 보고는 웃는다.  아마도 k-pop의 영향일것 같다.  대화가 통했으면 좀 더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을 터인데 영어를 하는 아가씨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전혀 무슬림여성의 거리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럴때를 대비해서 내가 준비한 인사말이 딱 하나 있다.(혹시나 IS 무장단체에게 걸려들면 써먹으려고 준비해 둔)

 

  '앗 살람 왈레이쿰(당신에게 신의 축복이 내리기를).'

  순간 당황한 듯 잠시 놀란 표정의 세 아가씨가 이내 환하게 웃으면서 동시에 마치 합창을 하듯이 나에게 화답의 인사를 건네온다.

  '왈레이쿰 앗 살람(당신에게도 신의 축복이 있기를).'

 

 

 

 

 

 

 

 

 

 

 

 

 

 

 

 

 

 

 

 

 

 

 

 

 

 

 

 

 

 

 

 

 

 

  여행자의 발걸음이 우연히 들리게된 위르굽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름다운 시골마을이다.

  사람들 북적거리는 소란도 없고  도심은 깨끗하고  그저 고만고만한 안락함으로 낯선 이방인을 맞아준다.

  인간 본연의 모습을 생각나게하는  소박함과 배려심이 저절로 묻어나는 곳이다.

  젊은이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지만  그곳의 사람들이 오랜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환한 그들의 표정에서  쉽게 엿볼 수가 있다.

  동시대를 같은 시간위로 걸어왔음에도 어쩜 하나하나의 어깨위에 걸머졌던 세월의 무게가  이다지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하는 의아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평화로운 그네들의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노라면 '나만 힘들게 고된 세상을 살아왔노라'고  스스로에게 힐문하던 마음이 슬그머니 저절로 사그라지고 만다.  누가 보아도 여행자의 입장인 내 차림이나 행색이 그네들보다는  훨씬 나아보이겠으나,  내 표정이나 내 마음속 드러나지않는 진면목은 저들만큼 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들어서이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차를 나누고 담소를 나누는 그네들의 표정에서는 질타나 멸시를 찾아볼 수가 없다.  마주보는 눈빛에서 이미 서로에 대한 신뢰와 평온함이 느껴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도 오랜전엔 저런 표정과 미소가 있었음이 새삼스레 이제야 생각이 난다.

  그 환한 미소와 평온함은 다 어디로 갔을까?

 

 

 

 

 

 

 

 

 

 

 

 

 

 

 

 

 

 

 

 

 

 

 

 

 

 

 

 

 

 

 

 

 

 

  꼬마 숙녀의 이름은 '월드'.  그러니까  월드양이다.

  위르굽 공원 안에 있는 아주 아주 작은 마음 박물관 매니저이자 학예사의 딸이다.

  혼자 놀고있는 모습이 하도 예뻐서 한참을 말을 걸어보았는데도 눈길 한 번 안준다.  마침내 엄마가 나타나고 내가 내 소개를 하고 나서,  엄마 손에 쥐어 있는 내 핸디폰으로  태리(우리 손녀) 사진을 보여주고나서야 나에게 수줍은듯 환한 미소를 보여준 녀석이다.

  라이오넬 리치와 마이클 잭슨이 주도했던  콘써트 (We are the World)를 보고나서 딸의 이름을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지었다고 한다.

  그 이름에 걸맞은 여성으로 자라나기를 기원해본다.

  아주 깜찍한 소녀 월드.

 

 

  그리고나서 재래시장 입구에서 마주치는  풍요로운 위르굽의 모습.

  괴뢰메에서는  과일을 거의 구경해 보지 못했다.  미니 슈퍼에서 바구니에 담아 놓은 말라비틀어진 정도 뿐이었다.  빵집도 눈의 띠지 않았다.  과일이나 와인은 온통 여행자를 상대로 하는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만 가능했다.

  도대체 괴뢰메 현지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지?

  하지만 위르굽은 달랐다.  드넓은 아나톨리아 평원의 풍요가 그대로 담겨있었다.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는 이웃마을임에도.........  괴뢰메는 명성 그대로 지구밖의 낯선 행성이요,  위르굽은 그대로 터키였다.

  내가 처음부터 위르굽을 알았더라면 나는 하루 한번은  시내버스를 타고 여기를 다녀갔을 것이다.  과일과 와인 때문이라도.......  로마나 파리에서 같은 비용을 주고 괴뢰메의 와인을 절대 사지 않았을것이다.  위르굽의 와인은  시칠리아나 조지아와 몰타의 와인만큼이나 맛있고 저렴했다.

  위르굽이 파라다이스 라면.......  괴뢰메는  소돔과 고모라 처럼 느껴졌다.

 

 

 

 

 

 

 

 

 

 

 

 

 

 

 

 

 

 

 

 

 

 

 

 

 

 

 

 

 

 

 

 

 

 

 

 

 

 

 

 

 

 

 

 

 

 

 

 

 

 

 

 

  동남아를 벗어난 다른 지역에서 처음으로 중국식당엘 들어가 보았다.  처음이다.

  시내버스로 괴뢰메에 막 도착했을 때 갑자기 심한게 소나기가 내리 퍼부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중국식당엘 들렸다.

  나보다 한참 먼저 여행을 시작하셨던 선배 말씀이 생각났다.

  '이 세상 어디에 가든지 도시라고 생겼으면  차이나타운은 반듯이 있어.  이탈리아 음식하고 터키음식이 최고니 어쩌니 하는데......  모두 개뿔이여.  여행 피로에 지칠대로 지치거나  몸이 아프거나  도통 밥맛이 없으면  힘들게 한국식당 찾을 필요 없어.  그냥 지나가는 택시 잡아타고 차이나타운 하고 외쳐.  그럼 끝이야.  메뉴판 한참 고를 필요도 없어.  그냥 눈에 띄는대로 두세가지 시켜.  직빵으로 효과 만발이야.'

  평소 식생활에서 김치 고추장을 찾지않는 스타일이다 보니 여러날 여행을 다녀도 한국음식에 대한 갈증같은 것을 도통 느껴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보름 가까이 유럽인들 식생활에 맞추어 지내왔는데......  음식이 아니라 국물 생각이 났다.  크림 스프이던  누룽지던 오뎅국물이던  그냥 국물 생각이 났다.  커피나 와인이나 맥주만 마셔댔지 국물 마셔본지가 보름이 되었다.

  마침 소나기는 내리고  배도 고프고 한 참에 중국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오메 좋은거.

  다음부터는 어디 새로운 도시에 들어가면 가장먼저 어디 중국식 레스토랑부터 알아놓아야만 하겠다.  오메 좋아부렀어.

 

 

 

 

 

 

 

 

 

 

 

 

 

 

 

 

 

 

 

 

 

 

 

 

 

 

 

 

 

 

 

 

 

 

 

 

 

 

 

 

  소나기는 지나갔고 약속했던 시간에 조금 못미쳐 숙소로 돌아가 체크아웃을 했다.

  정말로 고마운 (유니콘 케이브 호텔)  매니저는  떠나는 나에게 샤워할 수 있는 배려까지 서슴치 않고 베풀어주었다.  배낭을 다시 풀기가 귀찮아서  간단하게샤워로 땀만 씻어낸 후에  다시 오전에 입었던 옷을 걸치고 배낭을 둘러메고 밖으로 나왔다.  언제고 다시 오겠노라고 인사를 나누었다.

  시간은 한참이나 남았다.

  발목탓인지 배낭이 유독 무겁게만 느껴진다.

  언덕을 돌아서 내려가려는데  공터 건너로 건축 현장이 보인다.  석재로 아아치형태 창문을 만들고 있었다.  평소에도 아아치 형태의 커다란 창문이 빼곡히 들어간 고딕양식 건축물을 좋아하는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현장 안쪽으로 들어가 양해를 구하고 잠시 구경을 한다.

  뒷쪽에서 재단을 하고 마감을 하는 작업을 보고있노라니  비슷한 일이긴 한데 재단하는 방법이 우리랑 좀 다르다.  거꾸로 하고있다.  기다렸다가  다가가서 '우리는 이렇게 반대로 한다'고 시늉을 해 보였다.

  건축가냐고 하기에 뭐 그냥 비숫한 일을 한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젊은 매니저가 나타나 호텔을 건축중인데  여기는 출입구 부분 외부 마감작업이고 실제는 모두 안쪽 지하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냥 겉으로 보자니  우리로 치면 그냥 작은 여관 정도쯤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하는 일이 주로 지상으로 높이 쌓아올리는 작업이라고 말해 주었다.  바닦을 다듬고 기둥을 세우고 벽을 붙여서 올리고 지붕을 덮는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해간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 카파도키아에서의 건축은 주로 땅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작업이란다.

  '한번 구경하실래요?'  하는 제의에 결단코 마다할 내가 아니지 않은가?

  큰 배낭을 벗어놓고 안쪽으로 따라 들어갔다.  아니 땅속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이게  결코 작은 건물이 아니었다.  지하 3층까지 내려가게 되었던 것이다.  동굴을 파서 거실과 방을 만들고 있었다.  기둥뿐만이 아니라  의자와 침대도 그대로 조각을 하듯이 만들고 있었다.  흔히 얼움궁전에서 보던 풍경이다.  모두 완성이 되고나면 참으로 멋질것 같다.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모두 만나서 인사 나누고 작업 설명을 듣는다.  그리고 따라 해본다.  분야가 다를 뿐이지 결국 건물을 만든다는 것은 다 같은 일이다.  나름 재미있다.  세세하게 설명을 들어가면서  작은 배낭도 벗어던지고 아예 실전에 투입하다시피 했다. 

  좀 전의 샤워는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전신이 따마에 이미 젖었다.

  잠시 쉬면서 포도로 만든 보드카도 얻어 마시고 다시 작업을 하려는데  실질적인 호텔 건축주가 나타났다.  무지 무지하게 지미있다는 듯이 웃는다.

  잠시 지나서 콜라를 주면서 '가지마.  그냥 여기서 일하며 지내.  먹여주고 재워도 줄께.  한국 가지마.' 라고 한다.  또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한 시간 정도 땀흘려 그들과 같이 일을 했다.  참 좋은 추억이 될것이다.

  '내년 가을에 오면 호텔이 완성될거야.  공짜로 재워줄께.  꼭 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터미널 뒷쪽의 카페에서 땀도 식힐겸 맥주를 한잔하면서  부르사로 떠나는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젠 카파도키아를 떠날 시간이 된 것이다.

 

 

  숲속에 들어가 있으면 전체적인 숲을 바라볼 수가 없다는 말을 우린 자주 듣곤 한다.

  어쩌면 그럴지도 몰랐다.

  카파도키아의 너무 깊숙한 곳에 들어와 있다보니까  더 넓고 더 무한한 카파도키아의 진면목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처음 입에서저절로 탄성이 터저나오던 풍경과  군데군데에서 느껴진던 경이로운 풍경은 분명 압도적이었고 잊을 수 없는 멋진 풍경이었다.  너무도 강렬했다.

  그런 경이로움들이 사방으로 차고도 넘쳐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런 경이로움이 너무 넘쳐나다 보니까 점점 어떤 불합리한 압박감처럼 서서히 가슴을 짖누루기 시작했다. 

  다른 지역에서 인간이 만든 건축물들을 보면  하나하나의 건축물마다 사연이 있고 역사가 있고  디테일이며 다 다른 느낌이 선명하게 뇌리에 남는다.  그런데 여기 거대한 버섯바위들은  눈 앞에 나타났을 때는 장엄함과 신비로움으로 시야야 가슴을 확 나꿔채가지만  돌아서면  어떤 특징적인 디테일이나 사연이 없다.  그저 막연한 듯 '시간과 바람' 이라는 느낌 뿐이다.  그런 느김의 반복들이 점차 여행자의 가슴을 짖누르기 시작한다.

  스머프의 집을 연상 시키는 위용이 넘치는 거대한 버섯바위가 우뚝 솟아있는 한 장의 사진.  벚꽃처럼 흩날리는 애드벌룬 가득한 괴뢰매 사진 한장.......  그 짧고 강령한 풍경과 느낌의 카파도키아가  여러날 머무는 카파도키아의 모습보다 강렬하고 느낌이 더 좋았다.

  여기 카파도키아에 이틀 사흘을 더 머문다면.......  그동안 내 발길에 아롱새겨진 모든 추억과 풍경들이 모두 질식해서 파뭍히거나 사라질것만 같다.  나에게는 그 모든 기억과 추억들도 중요하다.  여기 카파도키아도 그저 몇장의 사진 정도의 추억이면 족하다.  나의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에  추억이나 기억의 공간을 아직은 많이 비워두어야만 한다.  그러자면 떠날 수 밖에......

  그런데 떠나려는 순간에도 전혀 아쉬운 생각이 들지 않는것은 왜일까?

  카파도키아는 충분히 아름답고 경이로왔다.

  하지만  카파도키아(괴뢰메)는 여행자를 반기고 배려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장소는 절대 아니었다.  '세상에서 절대로 보기드문것을 여기에 우리가 가지고 있으니  보려면 너희들이 제발로 찾아와.  다른것은 기대하지 말고.  대신 댓가는 춘분하게 지불 해야 돼.  싫으면 오지 말던지 오려면 돈을 가지고 와.  갈땐 알아서 가든지 말든지 내 알바 아니고.'  내가 괴뢰메에 대해서 받은 느낌은 그러했다.

  괘뢔메라는  불쾌한 인상을 떨쳐낼 수 있다면,  카파도키아는 조금은 달라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괴뢰메에는 여행자와 장사꾼 사이의 메마른 거래 외에는 없었다.

  그동안 내가 다녀 본 도시나 마을중에서  가장 비호감인 장소를 고르라면 나는 주저없이 '괴뢰메'라고 대답할 것이다.

 

 

 

  부르사로 향하는 '파묵말레 회사' 버스는 대단히 상태가 좋은 고급스런 버스였다.

  괴뢰메에서 현지인을 포함해 4명이 탔고  버스 좌석은 절반이 빈 상태였다.  중간 좌석에 앉아보니  푹신한 것이 아주 편했다.  이제 12시간이 지나면 부르사에 새벽에 도착할 것이다.  편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그곳에서의 일정을 나름 정리를 좀 해야겠다.

  그런데 갑자기 아뿔싸.........  또?

  버스가 카파도키아 지역을 벗어났다고 느껴지기 시작하였을 때부터  갑자기 묵은 체중이 싹 씻겨내려가듯이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 지는 것이 아닌가?

  카파도키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느낌이  아떤 안도감처럼 다가왔다.  왜 그랬을까?

  어떤 정지됐었던 나의 여행이 다시 시작된다는 이 느낌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때였다.

  차창 밖으로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버스는 서서히 내려앉는 어둠속으로 세찬 빗줄기를 뚫고 달려가고 있었다.

  또야?  내가 이동하는 걸  눈치채고 또 뿌려대는거야?

  이게 징크스야?  저주야?

 

 

 

 

 

 

 

 

 

 

 

 

 

 

 

 

 

 

 

 

 

 

 

 

                                      -----  다음 이야기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