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1일.(토요일)
이번엔 기필코 야생화에 대한 한을 풀겠다고 벼르고 벼르던 날이었다.
지난해였다.
야생화에 한 번 한껏 취해보기로 하고 산림청에 문의해 (곰배령) 탐방 예약을 해보았다. 그것도 최고 성수기인 칠월을 바라고......
아니나 다를까. 팔월까지 이미 예약이 모두 마쳐진 상태라는 답변이었다.
곰배령의 야생화에 대해 익히 들어왔던 터라 어느정도 예상은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구구절절하게 꼭 곰배령을 한 번 가보아야 하겠다는 사연을 장문으로 써서 기어코 팩스로 곰배령관리사무소로 보냈다.
다음날 이메일이 날라왔다.
칠월 중순의 아무날이고 신청하면 받아주신다는 소식이었다.
잽싸게 이름 주민번호 전화번호를 적어서 칠월 모일에 왕짜증여사와 탐방을 가겠다고 팩스를 다시 보냈다. 허락이 떨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날이 다가왔는데, 아뿔싸.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아무튼 왕짜증여사와 냉전이 최고조로 달해있던 시점과, 직장에서 벌어진 일이 생겨 부득이.......... 부득이 곰배령 탐방을 포기했던 기억이 있었다.
하여, 그 후로 오랫동안 벼르고 별렀던 것이 언제고 곰배령 못지않다는 (분주령 금대봉 야생화 탐방)을 계획하였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아무 이유없이 그 생각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생겼기에, 좀 때가 이른 듯 싶기도 했지만 이왕 작정했던 것 무조건 나서보기로 하였던 것이다.
새벽같이 길을 나섰다.
제천. 영월. 고한을 지나 마침내 분주령 여행의 시발점인 싸리재(두문동재)에 차를 주차했다.
관광버스를 비롯해 여러대의 승용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슬슬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관리사무소에서 직원의 제재를 받게된 것이다.
'3월 15일까지는 산불조심 기간으로 전면 입산이 통제되고 있단다.'
맥이 탁 풀리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먼 길을 새벽같이 달려왔는데........
'선생님. 그러면 저기 저 차들은 다 무엇입니까? 저들은 입산을 한것이 아니겠습니까?" 젊잖게 따져 물었다.
'백두대간 종주하는 등산에 대해서만은 입산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일부는 함백산에 오르신 등산객들이고, 일부는 금대봉 방향으로 등산을 떠난분들 이지요.'
'그러면 우리도 금대봉 등산을 위해서 입산을 좀 하겠습니다.'
관리소 직원이 다소 어이가 없는 듯 피식하고 웃는다.
'백두대간 종주하시는 등산객의 복장이 아니신데요. 누가봐도 한 눈에 알아 보겠는데요. 종주하시는 분들은 차림새와 장비들이 만만치가 않거든요.'
'차림이야 어떻튼지 산에 올라가겠다는데 안되겠습니까?'
'여기서 조금 올라가시다 보면 삼거리가 나오고 금대봉 가는 등산로는 우측이고 야생화 단지로 가는 길은 왼편입니다. 헌데 그 구역안에 사방 수시로 순찰돌며 탐방객을 막으려는 직원들이 여럿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심하면 벌금을 낼 수도 있습니다. 등산을 하신다니 막을 수는 없겠으나 조심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상황이 그쯤되자 왕자증여사도 썩 내켜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기어코 가는데까지 가보겠다고 마음을 먹고난 후였는데........
서둘러 언덕길을 오르다가 삼거리에서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는 왼쪽길로 접어 들었다.
산 능선에서는 채 이른 듯 아직 겨울의 잔상이 어느정도 남아 있는 느낌이었으나, 능선에서 안쪽으로 내려서면서 부터 전혀 다른 별천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온갖 꽃들이 만발해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나 이 높은 산속에 이런 풍경이 숨어있다니, 이 이른 계절에.'
나도 왕짜증여사도 열려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연실 탄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때 였다.
저만치 아래쪽에서 사람이 하나 올라오고 있었다.
처음엔 우리보다 더 부지런하고 재수좋은 여행객도 있구나 하였었는데, 어느정도 가가워지자 그의 목에 파란 끈이 달린 명찰이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산림 감시원이 었다.
막 시작되려는 차에 재대로 걸려든 것이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이렇게 되어서 미안하다고 정중하게 사과했다.
워낙 오만가지의 상황과 여러부류의 사람들을 많이 대해와서였는지 그 젊은 감시원은 느긋하게 웃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연에 대해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계시니까 여기까지 오신 것이 겠지요. 이해는 갑니다. 혹시 오시다가 연세 지긋하신 영감님을 만나시지는 않으셨었습니까?'
'못만났는데요.'
'다행이시군요. 여기까지 오시는 중간 어디에 계셨을텐데. 그분께 걸리셨으면 좀 고초를 겪으셨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까지는 하지 못하는데, 아무튼 일단 여기서부터는 무조건 오셨던 길을 되돌아 가셔야만 하겠습니다. 제 임무가 바로 그것을 위해 여기 있는 것이고 입구까지는 제가 동행해 드리겠습니다. 하여 다른 문제는 생겨나지 않을 것이니 안십하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폐를 끼치는 군요. 몹시 아쉽지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천천히 돌아가시면서 사진은 말껏 찍도록 하십시요. 얼레지 꽃이 참 아름답지요.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은 거의 끝물이라 하겠숩니다. 가장 예뻤을 때가 어느정도 지났다고 봐야겠지요. 며칠 있으면 모두 지고 이번엔 다른 꽃들이 이 능선을 가득 채우게 되지요. 매년 오월 중순에 산불방제기간 입산통제가 해제되고 나면 얼레지 꽃무리의 장관은 좀 시기가 지났다고 봐야겠습니다. 그 아름다운 광경을 저희같은 몇몇만이 볼 수 있다는 것에대해 사실 많이 안타까워 하고 있는 사람이랍니다.'
그 젊은 감시원은 참으로 자상하고 친절했다.
'카메라로 여기 한 번 찍어 가십시요. 여기 이 하얀꽃을요. 이 꽃도 얼레지 입니다. 하얀 얼레지이지요. 아는 사람은 아는데 절대 흔한 꽃이 아닙니다. 두 분은 운이 좋으신 편에 속하시는 군요. 하얀 얼레지를 찍으려 일부러 열심히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쉽게 만나지 못하는 꽃이거든요.'
-- 하얀 얼레지 꽃. 젊은 감시원의 선물이었다.
그렇게 주차장으로 돌아와 차에 올라타고 사리재를 벗어나려니 좀 허망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에 여기서 그냥 충주로 돌아가기는 무엇인가 억울한 느낌이었다.
'오냐. 정히 그러허다면 이번엔 그리로 가보자.' 다시 엑셀레이터를 힘차게 밟았다.
싸리재에서 엄청나게 떨어져 있는 강원도 땅 도계읍 무건리를 향해 달려 나갔다. 정말 오지중의 오지를 찾아 나선 것이다.
7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 마침내 도계읍 고사리에 도착했다. 하고사리 역 부근에서 도랑을 따라 가파른 언덕길을 한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석회암 채굴 광산이 나온다. 광산의 마당을 가로질러 가파르기가 이를데 없는 산길을 힘들게 오르노라면 마침내 막다른 길목에 닿게 된다. 여기서 부터는 차가 갈 수 없다. 무건리에 딱 한 집이 살고 있는데 바로 이장님 댁이다. 이장님 댁 마당이 임시 주차장이 되는 것이다.
그 유명한 (무건리 이끼계곡)을 찾아온 것이다.
차를 좀 주차하겠다는 양해를 구하고 이끼계곡으로 가는 길을 좀 안내 받으려는 차에 저만치 밭에서 이장님이 내려오시는데 한쪽 팔에 빨간 완장을 차고 계시는 모습이 불현듯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든다. 빨간 완장에는 노란 글시가 수놓아져 있는데 '산불조심'이라 써있었다.
'안됐지만 여기서 돌아가셔야 만 하겠습니다. 오월 십오릴까지는 일체 입산이 금지되고 있습니다. 십오일 지나서 오십시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되는 일이여? 여기까지 그 먼길을 어떻게 찾아 왔는데.........'
하니 어쩌겠는가. 돌아설 수 밖에.
나는 맥이 탁 풀려 파김치가 되어가고, 그래도 왕짜증여사는 이런 나를 위로한다.
'강원도 드라이브 실컷하니 좋잖아. 괜찮어. 산에 왜 가는거야?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거 배우라고 가는거 아니야? 힘내라고..........'
이 사람이 지금 그걸 말씀이라고 하시는건가? 불난 집에 휘발류 뿌리는거여.........
한참을 달려 되돌아 오는길에 태백을 지나는데....... 도로 표지판에 (검룡소)라는 아나내가 보인다.
본래 분주령 금대봉 양행화 탐방을 마치면 검룡소로 하산하려던 계획이었는데........
'이렇게 된 것, 검룡소라도 들렸다 갈까?'
'그러고 싶으시면 그렇게 하세요.'
냅다 우회전을 해서 달리는데 또 호기심을 자극하는 안내표지판이 시야에 들어온다.
(바람의 언덕)
대관령 삼양목장 뒷편의 풍력발전기 못지않게 이곳도 바람이 마낳이 불어 풍력발전기를 설치한 단지라는 것이다. 또한 그 일대가 온통 고냉지 채소단지로 개간되어 그 또한 장관을 연출한다는 것이었다. 연예프로 일박이일을 비롯해 다수의 영화촬령지라는 아나내였다.
검룡소 가는 길목에 있어서 급하게 좌회전으로 산언덕길을 한참을 올라가니 멋진 장관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아쉽기는 연 중 딱 지금이 제일 풍경이 덜 한 시기인것 같다. 그 점은 매우 커다란 아쉬움이었다.
바람의 언덕을 내려와 한참을 더 달려 마침내 검룡소 주차장에 당도 하였다.
꽤나 많은 여행객들이 타고 온 차가 주차해 있었다.
하긴 한강의 발원지라고 꽤나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 아니었던가.
검룡소 다녀오는 길은 알맞은 정도의 가벼운 산책코스로 제격이었다.
한강의 발원지라는 커다란 의미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뭔가 매혹될만한 것이 없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오늘같이 허망하기만 한 여행길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고 남는 곳이었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것이구나.'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경우를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
이렇게 속으로 자신을 추스르고 있는데, '당신 오늘도 수고 많았어. 지나 놓고 나면 이것도 하나의 좋은 추억거리가 될 거야.' 라고 왕짜증여사가 위로의 말을 건네온다.
그럼 됐지 뭐.
--- 2013. 05. 11. 실로 어이없던 날에.........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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