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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알 럽 트래블) 고대의 휴양지를 찾아서....... '타오르미나'

by 피안재 2018. 4. 24.

 

 

 

 

 

 

 

 

 

 

 

 

 

 

 

 

 

 

  Traveler's jokes>

 

  우리 친구 주회가 해외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서너차례 패키지를 경험하더니 어느날 갑자기 넘치는 자신감이 생겨서 마침내 사랑하는 아내를 동반하고 자유여행에 오른 것이다.

  '그까짓꺼 뭐  대수겠어?'

  미리 손수 챙겨야 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조금 낯설고 성가시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 남성이자 가장으로서 당당하게 아내를 배려하면서 앞장서서 리드하는 다소 낯선 자신의 모습에서 무한한 자긍심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때부터인가 '아내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이었는데  이번엔 사뭇 달랐다. 

  '나만 믿고 잘 따라 와.  내가 당신 잃어버리지 않고 잘 챙기고 다닐테니까 아무런 걱정 말어.'

  다소 긴장되고 떨리는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부던히도 애쓴 결과로 미리 공항에 도착해  보딩 패스를 마치고 출국심사도 무사히 통과 했다.

  면세점 코너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빨간 립스틱도 하나  선물로 사주고는  아내 손을 잡아 끌고 바(Bar)로 가서 생맥주도 한잔씩 마셨다.

  '당신 내 남편 맞아?  완전 딴사람 같아?  그리고 언제 이렇게 해외여행이 자유스러워 졌냐?  혹시 나모르게 딴 년 데리고 드나든거 아니여?'

  '이 사람이 정말?  한동안 내가 얼마나 공부했는데.........  여기 여권 도장 갯수를 세어 봐.  당신꺼랑 숫자가 똑 같지?  근데...... 내가 정말 그렇게 달라보여?'

  ㅎㅎ

  그래도 속으로는 여전히 긴장의 끈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비행기에 탑승을 하고  제자리에 앉고 나니 그제서야 비로소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다 이건 또 뭔 횡재?

  바로 옆자리에 요즘 한참 뜨고 있는 영화배우 마초맨 (마동석)씨가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닌가?

  헐.  연예인과 한 비행기라니...........  싸인도 받고 인증샷도 함께 찍었다. 

  '흐흐흐.  이런게 자유여행의 참 맛(?) 아니겠어' 하면서 스스로 대견한 자신을 다독거리고 있었다.

  기내식도 먹고  한 잠을 자고 나니  이제 슬슬 목적지에 다다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기내방송과  함께  스투어디스가 다니면서  영문으로 뭐라고 뭐라고 써있는 (출입국 카드)를 한장씩 나눠주었다.

  '아뿔싸.  내가 죽어라 공부를 하긴 했는데  이놈의 카드 생각을 못했구나.  어쩌지?  오호라.......  문제 될게 뭐 있어?  마동석씨 쓰는거 보고 따라하면 되지.'

  속으로는 애간장이 타면서도 겉으로는 아주아주 태연한 척 하면서  'NAME' 'ADDRESS' 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단어라   그럭저럭 적어 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음 칸을 보니 느닷없이 'SEX'라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간 서양 놈들 뻔뻔해도 너무 뻔뻔해요.  별걸 다 물어 본다니까?  이게 어디 함부로 입밖에 내뱉을 말이냔 말이여.......  그나저나 뭐라고 쓰지?'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슬며시 옆에서 마동석씨가 작성하고 있는 카드를 훔쳐 본다.

  '헐?  매일 이라고?  그러니까 그걸.......  그걸.........  매일 매일 한다고?  역시.......  역시 남들이 마초맨이라 부를만 하네..........'

  분명 마동석씨는 카드의 'SEX' 란에 (Male)라고 적었고,  주회는 그것을 (매일) 이라고 읽었다.

  주회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제  그 내용은 파악이 되었는데  자신은 거기다  무엇이라고 써 넣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자신도 똑같이 매일이라고 쓰기에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주회는  큰 결심을 하고 카드의 빈 칸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Ha ru - gun - nu(하루 건너)'  적으면서도 혹시나 입국 사무소 직원이 '철자가 틀렸다고  영어로 질문을 해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자 옆에서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다 보던 주회의 아내가 콧방귀를 꾸면서 한 마디 거들었다.

  '꼴에 사내라고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흥!!!!!!!'

  그러더니 주회 아내가 자신의 카드에 자신있게 또박또박 글씨를 써 넣는데...........  아뿔싸...............

  'Six - Dal(6 개월 마다).'

 

  암튼 그 후로는 죽어도 비행기는 절대  안 탄다는 주회부부의 속내는 아직도 여전히  미스테리...............

 

 

 

 

 

 

 

  Travel>

   지중해를 건너와  시칠리아의 남동부에 '시라쿠사'와 '카타니아'라는 도시를 건설한 그리이스인들은  이곳에서 바다 건너의 그리이스 본토와 맘먹는 번영을 누렸다.  땅은 비옥하고 지중해성 날씨는 사계절 모두 온화하며   대리석과 철광석등의 지하자원은 물론 바다로 부터 풍성하게 해산물이 올라왔다.  점 점 더 많은 그리이스인들이 이곳으로 몰려왔다.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여 '아그리젠토'라는 거의 '아테네'에 맘먹는  성스럽고 거대한 도시까지 건설하였다.

  이 즈음에서 그리이스인들은 또 다른 도시를 건설할 계획을 짜기 시작하였는데,  이제까지의 도시들과는 달리 조용하고 풍광이 빼어난 곳에 신전과 극장과 별장들을 짖고 휴양을 겸할 수 있는 '선택받은 그리이스인들만을 위한 도시'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도시가 바로 '타오르미나'이다.  이 때가 기원전 3세기경이었다.

  본래 타오르미나의 바닷가 해안지역에는 고기잡는 어업을 주로하는 원주민들이 이미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수시로 지중해를 건너 아프리카에서 몰려오는 해적들의 출몰로 제대로 된 마을을 이루며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하여 이곳을 개발하기로 한 그리이스인들은 해발 200M 위쪽의 깎아지른 바위벼랑 위에 그리이스식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바다로 부터의 위협을 최대한 차단할 뿐더러  빼어난 조망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인근의 내륙으로 부터 풍부하게 물자를 공급받기에는 전혀 무리가 따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깍아지른 바위 벼랑을 깎고 다듬어 도시를 건설했고 상등성이를 따라 도로를 내고  물을 끌어들였다.

  타오르미나는 고대 그리이스인들의 새로운 생활터전이 되었고 지중해 최초이자 최대 최고의 휴양도시가 되었다.

  로마제국과  비잔틴제국 당시에는 지중해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름답고 모든 물자가 차고 넘치던 풍요속에 번영을 누리던 도시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슬람의 침략으로 시라쿠사와 함께 10세기경에  이 아름다운 도시 타오르미나는 몰락했다.

  이슬람에 의해 타오르미나는 사람이 살지않는  유령도시로 전락했고  이때부터 서서히  역사에서 잊혀져갔다.

  그러다가 유럽역사가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타오르미나는 재발견되었고 재창조 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유럽사회가 풍요와 번영을 누리게 되면서 부터 여행이 대중화 되었고 동시에  새롭게 재건축된  타오르미나는 다시 세상에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가히  유럽에서도 손에 꼽히는 유명한 휴양지로 각광받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해마다 엄청난 여행객이 이곳을 찾는다.

  '시칠리아를 찾는 이유는 오로지 타오르미나를 찾기 위해서'라는 설문이 자주 회자가 되기도 한다.

 

  지중해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그리이스의 유적과  현대인에게 필요한 휴식이 조화를 이루는.........  작은 천국의 땅이 바로 '타오르미나'.

 

 

 

 

 

 

 

 

 

 

 

 

 

 

 

 

 

 

 

 

 

 

 

 

 

 

 

 

 

 

 

 

 

 

 

 

  이곳에 서서 주변을 바라다 보다 보면  '왜 그리이스인들은 이 높은 산정에 극장(Teatro Greco)을 세웠을까'와 ' 처음 그들이 극장을 세울때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와 과연 그들은 '이 극장에서 어떤 공연을 했었을까' 하는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나의 상상속에 그려지는 고대 그리이스의 공연(?)이라 함은,  당나귀를 탄 나그네가 하프를 겨드랑이에 끼고 지친 걸음으로 마을에 찾아오면  사람들이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고 밤이 되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나그네가 환대에 대한 보답으로 하프의 선율을 흘리며  머나먼 옛날의 이야기를 구성지게 읊어나가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 이야기속에는  제우스도 나오고 아폴로도 나오고 헤라클레스와 페세우스와  아킬레스와  유리시즈도 나왔을 것이다.  '호머'는 아마도 그런 나그네 였을 것이고,  어느 특정인의 이름 보다는  그 이야기거리를 가진 유랑자 무리의 이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이 산정에 그리이스 극장이 생긴것이 기원전 이니까  이천 수백년 전의 일이라고 생각해 보자.

  기중기도 포크레인도 다이너마이트도 없던 시기에 오로지 사람의 힘에 의해 이 거대한  유적이 만들어질 수 있다니..........

  한국을 찾는 여행자들 중에서 건축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한양의 북촌이나 전주의 한옥마을 같은 곳이다.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이나  각 각 서있는 자리마다 높이를 달리하는 토담은  가옥의 뒤를 받쳐주는 산자락의의  동선을 그대로 주택에 까지 이어내려오고 있는 듯한  자연스러운 멋이 가히 일품이라고 칭찬을 한다.  자연적인 동선을 인공의 주택까지 거부감 없이 끌여들여서  조화를 이루어냈다는 말이다.

  나는 이곳 그리이스 극장  성벽에 걸터앉아  멀리 하늘 저편으로 구름띠를 두룬 에트나 화산을 바라다 본다. 

  에트나 화산의  희뿌연 구름에 가리워진 산자락은 유유히 흘러내리다가  타오르미나를 뒤받쳐주고 있는  높고 가파른 바위산과 이어지고,  그 바위산 위에 뽀죽 솟아있는 성채와  옆으로 바위벼랑에 매달린 듯한 산정도시 '카스텔 몰라'를  환하게 켜진 등불처럼 빛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검은 바위ㅣ벼랑을 향해 뚝 하고  떨어진 동선은 결코 화사하지만은 않은 라임색 노란색 주황색 등으로 채색된 도시 타오르미나를 스치듯 지나와 다시 언덕을 올라 여기 '그리이스 극장'에멈춰 서서 그제서야 가쁜 숨을 고르기 시작한다.

 

  '정말로 그림 같다.'

  화산, 바다, 해안, 절벽, 유적, 마을, 교회, 수도원, 성채(城砦), 하늘, 그리고 가파른 벼랑 사이로 온통 들꽃들이 만발하여 어우러진,  그야말로 이곳은 성경속의 에덴동산의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카메라를 들고는 서 있지만 '인간의 시야 가득 펼쳐지는 파노라마를  카메라라는 기계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매카니즘의 한계'를   또 한번 절실하게 느껴보는 순간이다.

  크게 아주 크게 심호흡을 몇 번이고 거듭한 후에 나는 아주 천천히 주변을 둘러 본다.

  나의 두 눈 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이 풍광을 머릿속에 또는 내 가슴속에 그대로 새겨넣고 싶어서다.

  '타오르미나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리움이다.'

 

 

 

 

 

 

 

 

 

 

 

 

 

 

 

 

 

 

 

 

 

 

 

 

 

 

 

 

  제법 많은 시간을 그리이스 극장의 관람석에 가만히 앉아서 보냈다.

  '커크 더글라스'가 주연했던 영화 '유리시즈'가  저만치 발치 아래  극장 무대에 올려져 연극으로 공연되고 있는 것을 관람하는 기분이었다.

  해마다 여름밤이면 실제로 이곳에서 공연이 펼쳐진다는데...........  못내 아쉽다.

  극장을 나와 내려서는 길에 만난 이탈리아의 고등학생들..........  싱그럽다.  그리고 어디가나 식을 줄 모르는 이넘의 인기(?).......... ㅎㅎ

 

  이제는 본격적으로 타오르미나를 둘러볼 시간이다.

  한참 전에 처음 이곳에 와서 교차로에서 그리스 극장을 찾아가기 전에 만났던 작은 성문이 바로  '포르타 메시나(Porta Messina)'였다.  이곳에서 약 200M를 가면 반대편에 '포르타 카타니아(Porta Catania)가 나오는데 이 양쪽의 성벽 안에 있던 작은 마을이 바로 진짜 (타오르미나)이다.  아주 작은 마을이자 휴양도시였다.  이 두개의 문 사이에 놓여진 200m 남짓한 도로를 '움베르토 1세 거리'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의 모든 도시 중심에 있는 도로의 이름은 '빗토리오 에마뉴엘 거리'  이거나 '움베르토 거리'라 보면 된다.  카타니아의 중심도로는 에마뉴엘 거리이고,  시라쿠사의 중심 도로는 여기처럼  움베로토 거리 이다.  흔하게 우리나라의 '중앙로' 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19세기 부터 여행이 대중화 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각광받기 시작한 타오르미나는,  그 중에서도 유럽에서도 좀 산다(돈 좀 있다)하는  부유층들이 주로 찾아오다 보니 이 짧은 중심가에 형성된 상점들이 이탈리아나 유럽을 통털어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명품 숖들이 즐비했었다고 한다.  교통이 나아지면서 머물기 보다는 스치듯 잠시 다녀가는 여행자가 늘어나면서 명품 숖들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현재는 여타의 다른 도시 정도의 수준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시칠리아에서는 가장 높은 물가를 자랑하기로 악명(?)이 높은 곳이 바로 타오르미나의 움베르토 거리이다.  하짐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움베르토 거리는 여전히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매력이 넘쳐나는 거리이다.

  그냥 이곳저곳 서성이듯 천천히 걸어다니기엔  이만한 곳도 드물것이다.

  봄 여름 가을 내내 관광객으로 넘쳐나고 사방에서 음악소리가 울려퍼지는 타오르미나였으나 내가 찾아 온 지금은 겨울의 한복판..........  한산함과 한적함에 젖어보기엔..........  나름의 매력이 또..........  그래도 노천 카페에 앉아 생맥주 한잔을...........

  조금씩 조금씩.......  스멀거리듯 피오오르는  느낌.........  '이런게 휴식이라는 것이구나'.............

  마을은 나름 어떻게 표현하기가 그런.........  매력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움베르토 거리를 산책하기에 앞서서........  아랫쪽으로 난 골목길로 접어 들었다.

  자신의 카페를 구경하고 가라고 손짓해주는 친절한 아저씨.........

  골목 하나를  소꿉장난 하듯이 앙증맞게 꾸며놓은  동네 예술가.........

  타오르미나를 보여주겠다면서  동네 한바퀴를 같이 돌아 준  친절한 할아버지..........  열과 성의를 다한 안내를 언어장애로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할아버지를 도와  웨이터 서비스를 해주던 멋진 시칠리아 젊은이..........

  수많은 여행자에게 지쳤음인지 까칠하기는 했지만..........  멋진 거리 화가 아저씨..........

  성문 밖 광장의 멋진 풍경(석양이었다면 참으로 멋졌을)과 사람들..........

  제각각 개성을 달리하는 예쁜 수많은 골목들............

 

  '타오르미나는 한 순간 한 순간이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해발 600미터의 바위산 벼랑 위로 마치 레고 블럭을 쌍아올린것처럼 들어선 '카스텔 몰라'는  멋지다는 표현 외에도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나 안개가 자욱한 날이면 어떤 중세 영화에나 나올법한 신비감과 경이로운 풍광을 선사해 준다.  저곳에 사는 사람들은  사방으로 온통 짙푸른 코발트빛 불루 색상에 혹시나 질려버리지 않을까?

  여기 타오르미나를 유럽의 인기 관광지로 만들어준 사람으로는 단연 독일 화가 오토 겔렝과 문호(文豪) 괴테를 꼽는다.  괴테는  그이 저서 <이탈리아 기행>에서 타오르미나의 경관을 극찬하였다.  아울러  베를린이 고향인 게렝은 나이 스무 살 때 시칠리아를 여행하다가 타오르미나에 매혹되어 겨울을 지내면서 이 도시의 환상적 모습을 화폭(畵幅)에 고스란히 담아 가 독일과 프랑스에서 전시하였다. 그림을 본 유럽의 미술 평론가들은, '허풍이 너무 심하다.  그런곳이 지상에 어디 있단 말이냐'고 비판하였다.   그러자 게렝은 '타오르미나에 가 보아라. 만약 내가 과장을 하였다면 제반  경비를  모두 물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타오르미나는 감수성이 좋은 많은 예술가, 문학가들을 끌어들였다. 특히 방랑벽이 있는 사람들이 이 도시에 머물면서 그들의 인생을 바꿀 작품을 남겼다. 영국의 D.H. 로렌스와 미국의 트루먼 카포테는  여기 타오르미나에서 장기 투숙하면서 작품을 썼다.

  물론 그들이 사랑해마지않은 풍경 속에는 '이솔라 벨라(Isola Bella)도 포함되어 있다.

 

 

 

 

 

 

 

 

 

 

 

 

 

 

 

 

 

 

 

 

 

 

 

 

 

 

 

 

  움베르토 거리의 노천 가페에서 시원하게 맥주를 겸해 주점부리를 하면서 '이제는 다시 시간 조절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했던 것이다.

  타오르미나에서 1박을 하지 않는 이상  카타니아로 가는 마지막 버스에 어떻하든 시간을 맞추어야만 했다.

  '성채와 카스텔 몰라' 아니면  '이솔라 벨라'  둘 중에 한곳을 선택하여야만 할 시점이었다.

  평상시대로의 나의 여행성향이라면 당연히 '성채와 카스텔 몰라'가 90% 이상 절대적 선택을 받았을 터인데..........  어쩌다........  아주 간혹 어쩌다........  통념에 어깃짱을 놓고 싶은 심정이 불쓱 들어서  언덕 아래로 발길을 돌렸다.  아주 간혹 이런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이런 선택이.....

  헐.

  비수기인 겨울철에는 해변까지 오르내리는 케이블카가 운행을 중단한단다.  어쩐지 시작부터 좀 그렇더라니..........

  '그럼 다시 카스텔 몰라로 발걸음을 돌려?'

  '설마 이번에도 일탈이 끝까지 실망을 안겨줄까?  이왕 시작된거 끝장을 봐야할거 아니야?'

  과감하게 발걸음을 무작정 언덕 아래 해변으로 향하는 가파른 언덕길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랜 경험으로........  비탈에 세워진 마을에는  어디가나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외곽으로 차가 다닐 수 있는 조금 완만한 도로가 하나씩 있는 반면에,  현지인들만이 지름길로 삼는 아주 좁은 골목길이나 남의집 뒤란 헛간길이나 적당히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계단길들이 있기 마련이다.  한참을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던 나는 과감히 베팅을 해보기로 했다.   이리저리 꾸불꾸불해서 끝을 알 수 없는 아주 협소한 골목길에 뛰어 들었던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파르건 말건 무조건 아랫쪽으로 향하는 골목을 선택해 무작정 걸어내려 갔다.  얼마를 걸어내려 갔을까?

  좁지만 차량이 지나가는 도로가 나왔는데 뒤돌아 보니 거의 중간 정도 내려온 것 같았다.  아주머니 한분을 만나서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의 장벽을 허물어 보려고 애를 쓰는데........  '이솔라 벨라'라는 말에  옆의 오솔길을 가르쳐주시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많이 오가는 걸어서만 다닐 수 있는 길이 분명했다.

  '동구밖 과수원길' 처럼 생긴 언덕을 조금 내려가니  비로소 '이솔라 벨라'가 발치 아래로 마치 코 앞에 있는 것처럼 나타나면서 콘크리트 계단길이 보인다.

  잠시 후 차량이 씽씽 지나는 해안 도로를 만나고,  길을 건어 마침내 이솔라 벨라 해변에 도착했다.

  '이솔라 벨라'

  수 많은 여행잡지에 멋진 화보로 등장하고,  한국의 여행자들에게는 마치 타오르미나의 상징처럼 받들여지는 장소이다.

  하지만  내게는............  급.실.망.

  '어이구........  내 이럴줄 알았어.........  카스텔 몰라엘 올라가는 건데...........'

  나름 '괜찮다'  '멋있다' '빼어난 풍광을 자랑할만 하다'라고 스스로 위로를 해 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이 정도 풍경을 볼려고 여기 타오르미나까지 왔단 말이야?  헐........ 이런 어처구니가.........'

  이솔라 멜라가 시칠리아에서 꼽히는 관광 명소인 것은 맞다.

  우리나라의 많은 여행자들이 극찬하는 글을 여러번 본적이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 정도의 풍경.  이런 앙증맞은 섬이 육지와 겨우 연결되어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 무지 많다.  전혀 특색있는 풍경이 아니다.'

  후.회.막.심.

  단박에 떠오르는 일례로........  우리나라 간월도가  이솔라 벨라 보다는  훨 멋지다.  이런 모습의 섬은 우리나라에 무지 무지 많다.

  하지만 이미 힘들게 여기까지 내려온 걸 어떻게 해..........

  왔으니 이솔라 벨라를  천천히 둘러본 것 까지는 좋았는데........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니.........  20분쯤 택시나 버스를 기다려 보는데........  반대 차선으로 가는 차는 무수히 많은데,  타오르미나 공영 주차장으로 가는 차편은 좀 처럼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기다리다 지쳐서 다시 계단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  땀을 무지무지하게 흘렸다.  막차 시간 맞추다 객사하는 줄 알았다면..............   헐.

 

 

 

 

 

 

 

 

 

 

 

 

 

 

 

 

 

 

 

 

 

 

 

  여기 '이솔라 벨라'가 더욱 유명하게 된 배경에는 한 편의 영화가 크게 작용했다.

  (니키타) (레옹)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뤽 베송' 감독이 만든 영화 <그랑 불루>가  바로 이곳 이솔라 벨라 부근에서 쵤영되었던 것이다.

  지독하다 싶을만틈 아름다운 영상미를 영화 매니아들에게 듬뿍 선사해 주었던  <그랑 블루>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주 많다.  코발트빛 불루에 매혹된 두 남자가 바닷속으로 잠수 경쟁하는 내용을 담은 아주 뚜렷한 기억을 남겨준 영화였다.

  극단으로 치닺는 두 남자의 경쟁...........

  산소통 없이 누가 더 깊이 바다속으로 들어가는 지를 경쟁하던 두 사내는  문득 '왜 다시 밖으로 나가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결국은 그냥 그대로 바다속에 머무는 선택을............

  때론 사람이 죽음을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순간에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얻게되는 것일까?

  그들이 선택한 바다가 바로 여기 이  검푸른  시칠리아의 바다였다.

 

 

 

 

 

 

 

 

       -------  다음 이야기는  '시라쿠사'로 이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