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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알 럽 트래블 / 베트남) 발길 닿는곳마다 절로 추억이 묻어나는 도시 (호이안)

by 피안재 2017. 11. 10.

 

 

 

 

 

 

 

 

 

 

 

 

  세상의 모든 좋은것들은 아득한 기억 저편의 안타까운 첫사랑 처럼 대단히 짧기 마련이다.

  마음속에서 무엇인가가 아주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스멀거리듯  떠오를때면 막연하나마 어떤 목표를 정하고 길을 나선다.

  그렇게 나는 곧 잘 길을 나선다.

  떠난다는것은 나에게 있어선 항상 또 다른 또 하나의 출발이다.

  언젠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나보다 먼저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간 자들의 눈망울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길을 떠났던것에 대한 망설임, 후회, 설레임, 고통, 두려움 등이 모두 제각각의 빛깔과 기억으로 드러남을 보게된다.

  진정 자유로운 삶은 무엇이며 삶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

  산다는 것은 낯선것을 받아들여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친숙한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그래.  나는 낯선것을 만나기 위해 오늘도 길을 나선다.

 

 

  깜박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져 싸늘하게 파고들어오는 세찬 바람과 함께 페부속을 그대로 관통한다.  전율이 일듯 사시나무처럼 몸이 떨려온다.

  세반반크의 황량한 언덕위에 나홀로 서 있었다.

  쓸쓸하다.

  바다처럼 드넓은 세반호수에는 사방으로 썰렁함만이 물결치며 다가오고 있다. 겨울로 접어드는 아르메니아로 향하는 여정은 마냥 황량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 황량한 길 위에 나 홀로 걷고 있다.

  적념인가?

  가슴속이 온통 텅 비어있다.

  마음이 온통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구멍 난 문풍지 같은 기분이다.

 

 

  그 쓸쓸함에 짖눌려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고 느꼈을 때 잠에서 깨었다.

  여전히 슬리핑버스 안이다.

  나짱(나트랑)과 호이안 사이의 도로 위를 버스는 어둠을 가르며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아마도 이쯤이면 호이안이 더 가깝지 싶다.

  호이안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고개를 돌려 본다.

  챠밍여사가 잠들어 있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다가 슬며시 통로 건너로 손을 내밀어 본다.  가녀린 손 하나가 내 손 안으로 가만히 들어온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온다.

  아!  우리 모두 살아있구나.  함께구나.

  '먼 길을 떠나는 여정에 벗 하나쯤 있어야 삶이 외롭지 않다 하더니만.......  너가 옆에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버스는 어둠을 가르며 앞으로 내달리고 있다.

 

 

 

 

 

 

 

 

 

 

 

 

 

 

   이럴줄 알았으면 천천히 가달라고 사전에 기사양반께 부탁이라도 해 두었을것을......  속도제한이 업격한 베트남 도로를 밤새 씽씽 잘도 달린다 싶더니만 서둘러도 너무너무 서둘러서 그만........ 새벽 5시 땡칠 즈음에  버스가 호이안 여행자골목 어귀에 멈추어 섰다.  종점이다.

  무려 1시간반 가까이를 서둘러 달려온 것이다.

  호이안은 아직도 어둠이 내려앉은 상태로 잠들어있다.  여행객들도 느긋하게 모두 깊게 잠들어있던 상태였다.  그제야 모두들 부시시 잠에서 깬다.

  오.마.이.갓. 

  새벽 미명은 아직 가까이 오지를 못하고 호이안은 여전히 짙은 어둠에 파뭍혀있는 시간......

  여행자들을 모두 내려놓고 짐칸에서 모든 짐을 내려준 버스는 어디론가 전혀 아쉽지 않은 뒷모습만을 남긴채 떠나간다.

  열대의 나라라서 전혀 춥지는 않은 점은 다행이지만, 어둠속에 낯선 도시의 어딘가에 덜렁 내던져진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몹시 당혹스런 모습들이다.

  주섬주섬 마음과 짐을 가다듬은 일부의 사람들이 어둠속으로 걸어가고, 일부는 어떻게 알고 쫓아왔는지 택시와 흥정을 벌인다.

  코앞의 신카페 여행자사무실은 6시20분에나 오픈을 한다는 안내문구를 확인한 일부의 여행자들은 아예 사무실 담벼락에 배낭을 기대놓고 주저않아 사무실 오픈때까지 못다한 아쉬운 잠을 더 청해볼 자세들이다.

  이럴때 사전에 숙소를 에약해둔 사람들에게 참으로 난처한 시간이다.  차라리 예약이 없다면 이제부터 아무대고 마음내키는 대로 찾아다니면 되기 때문이다.  숙소 문제라면 매번의 여행때마다 이미 이골이 날 때로 난 내가 아니겠는가?  내 사전에 예약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있다.  더우기 여기 호이안에는......

  작년 베트남여행때는 조용한곳을 찾다가 그만....... 올드타운과 여행자 거리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을 선택했다가 비와 무더위때문에 좀 고생을 했다.  그래서 혹여 다음에 온다면 여기에 묵고 싶다며 두군데를 눈여겨 보아두었었다. 여행자거리에 속해있어서 불과 300m만 걸으면 올드타운에 접근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였다. (반홍2 호텔)과 (탄빈3 호텔)이었는데,  최종적으로 나는 (반홍2)를 선택했다.

  현재의 상황에 적지않게 당혹스러어하는 챠밍여사를 이끌고 내가 배낭 2개를 멘 채 어둠속으로 걸어나간다. 신카페사무실에서 불과 2분이면 (반홍2)호텔에 닿을 수 있다.  그런데 아뿔싸.  짙은 어둠속에 호텔문이 굳게 잠겨져있다.

  돌아서려는데 안쪽에 인포메이션 데스크 위로 갑자기 불이 켜지더니 젊은 남성이 나타났다. 상황을 설명하자 우선 안으로 들어오란다.  그리고 호텔 곳곳에 모든 불이 켜지면서 여기저기서 서너명의 직원들이 몰려나온다.  모두 막 잠에서 깨어난 모습들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시간이었나 보다.  좀 미안했다.  우리가 이니었으면 조금더 잘 수 있었을 텐데.  아무튼 그 너무나 빨랐던 버스가 문제였어.......... ㅎㅎㅎ

  나는 에약신청서 별도사항에 분명하게 나짱에서 오는 야간버스를 타고 새벽에 도착하니까 이른 체크인이 가능하면 좋겠다고 썼었다.  카운터 여직원도 예약체크를 하면서 그 내용을 부연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빈 방이 없다.  고로 이른 체크인을 할 수가 없다.  지난주부터 매일 호텔의 모든 방들이 여행객들로 넘쳐나 꽉 꽉 찬다는 설명이다.

  아침이 자나서 누군가가 체크아웃을 하고 다시 객실청소가 이루어 진 후에야 방을 배정받을 수 있다는 현실........  오메.  우짤까나?

  '우리에게 운이 좋다면 누군가 아침일찍 체크아웃 하는 여행객이 있겠지요?  그것도 2층이나 3층 손님이면 좋겠고요......  그나저나 우리의 배낭 좀 보관 부탁드릴까요?  우선 산책 좀 하고 올께요.'

  내가 웃으며 농담처럼 이야기를 꺼내자 여직원이 수줍게 웃는다. '어쩌면요......'  그리고 남자직원이 우리의 배낭을 후런트에서 내다보이는 계단아래 구석에 보관해준다.

  우리는 호텔을 나와 올드타운으로 간다.

  여행즐기기가 아니라 일단은 시간때우기 포스를 풍기며 카메라도 없이 호이안의 이곳저곳을 기웃기웃 거리며 걷고 또 걷는다.

  그런데.......  그넘의 시간이란 녀석이.......  그렇게도 빠르게 지나가다가도......  이런 때에는 가라고가라고 떠밀어도 더디게만 간다.

  ㅎㅎㅎ

 

 

 

 

 

 

 

 

 

 

 

 

 

 

 

 

 

 

 

 

 

 

 

 

  대충 기억을 더듬으면서 인적조차도 드문 호이안 올드타운의 이곳저곳을 대충 흩듯이 구경을 시켜준다.

  시간이 더디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기는 간다.  세상이 환해지고 구름 사이로 해가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호텔로 돌아왔다.

  여직원이 어색한 웃음을 띄우면서 애써 시선을 피하는 눈치다.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말이다.  여행이란.....  이것도 재미요 추억인데.......

  수영장쪽의 푹신한 소파로 안내해 주면서 별도의 선풍기까지 가져다 틀어주면서 편하게 쉬란다.

  구내식당으로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여기는 호텔 조식이 무료로 주어지는 곳이다.  그런데 우리 예약상 조식은 내일 아침부터나 주어지게 되어있다.  카운터에 갔다.  별도의 게산을 할 터이니 오늘 조식부터 먹고싶다고 했다.  청구서에 싸인을 하고 식당으로 갔다.

  어디 호텔에서나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바로 고만고만한 정갈한 아침메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결코 싸지 않은 아침이다.  호텔 숙박비에는 2인의 아침 조식이 포함되어 있는데,  별도의 요청 조식비용이 호텔숙박비의 거의 절반 수준이다.  이거..... 숙박비가 싼건가?  아님 밥값이 비싼건가?

  ㅎㅎ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여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온다.

  방금 두 팀의 손님이 체크아웃을 해서 지금 청소중이란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입실을 할 수 있겠단다.  2층과 4층이 났는데 어디를 선택하겠느냐기에 직접 보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발코니 아래로 수영장이 그대로 내려다 보인다.  4층까지 올라갈 필요없이 2층을 선택했다.  잠시 뒤에 드디어......  우리의 방을 배정 받았다.

  짐정리를 마치고......  샤워를 하고나서.......  앙증맞은 크기에 예쁘장한 풀장으로 내려갔다.  피로를 풀기엔 물놀이가 최고 아닌감?

  그제사......  이제야 (호이안)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오랫만이구나. 호이안.

  이제 다시 슬슬 너를 만나러 나서보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이다.

  알.럽.호.이.안.

 

 

 

 

 

 

 

 

 

 

 

 

 

 

 

 

 

 

 

 

 

 

 

 

 

 

 

 

 

 

 

 

 

 

 

 

 

 

 

 

 

 

 

 

 

  베트남의 중부지역은 3개의 도시로 대표된다.

  가장 북쪽에 있는 후에(훼.Hue)는 최초로 베트남을 통일했던 응우엔왕조의 오랜 수도로서 찬란한 역사를 간직한 고도(古都)이다. 

  중앙의 다낭(Da Nang)은 19세기 이후에 등장하여 통일전쟁 당시 미군의 병참기지로 활용된 이후로 현대화의 길로 날로 변모해가는 신흥도시다.

  가장 남쪽의 호이안(Hoi An)은 천년 전에 이미 도시가 형성되었고  실크로드의 중간 거점으로 발전하면서 국제무역항으로 각광을 받았던 곳이다.  그러나 15세기 이후 시대흐름의 수레바퀴에서 밀려나면서 점차 쇠퇴의 길을 걸으며 잊혀져갔으나,  세월에 잊혀지고 고립되었던 도시와 문화가 현대에 이르러 재조명을 받으면서 동남아시아 최고의 여행지로 급부상을 하고있는 작고 아담한 도시이다.

  베트남의 역사속에서 이 3개의 도시는 서로 얽혀있으면서도 제각각 번영과 쇠락의 시간을 서로 교차하고 반복하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노라면 살아숨쉬는 베트남의 역사가 이 세도시의 역사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세도시의 역사를 이해하게 된다면,  더이상 굳이 하노이나 호치민을 들여다 보지 않더라도 선사시대 이후에서 오늘날까지의 베트남 역사를 이곳에서 모두 찾아 볼 수가 있다.

 

  흔히들 다낭을 베트남 세번째 대도시라 하는데 그것은 아니다.  베트남엔 우리나라의 직할시나 광역시 등급의 도시가 더 있다.

  베트남에서 실제적으로 가장 큰 도시라면 당연히 호치민(사이공)이다.  두번째가 수도인 하노이라 하겠다.  그 다음이 다낭이냐 하면  아니다.  하노이에서 동족으로 100km 떨어진 항구도시 하이퐁이 도시면적 인구수 모든면에서 베트남 세번째 도시다.   그런가 하면 남부지방의 나짱(나트랑) 또한 결코 다낭보다 모자람이 없는 대도시다.  하지만 북쪽은 하이퐁을 위성도시로 하노이를 치고,  남족은 나짱을 위성도시로 호치민을 친다.  그러다보니 중부지방을 대표하는 도시로서의 다낭을......  일부사람들이 세번째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다낭의 발전해가는 모습도 놀라웁지만,  나짱 해안선을 따라 남족으로 벗어나보면 현재의 나짱보다 월씬 더 큰 뉴씨티가 한창 건설중인것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창원시나 광양시를 모티브로 하는 느낌까지 받았을 정도였다.  세계에서 가장 젊은나라 베트남의 놀라운 성장율은 이제 머지않아 중국을 능가하게 될것만 같다.

  미래를 개척하고 싶은 사람,  새로운 창조의 역사에 동참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베트남에 주목하시라고 나는 꼭 당부하고 싶다.

 

  여행사의 책자나 홍보를 보면 베트남 중부여행을 그냥 (다낭여행)이라 명명해 놓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베트남 중부를 이미 여행해 본 사람이거나 현지의 실사정을 어느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다낭여행)이라는 표기는 의당 (호이안여행)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생각 할 것이다. 

  (다낭여행) 하면 (호이안)과 (후에)를 포함하는 것처럼 논하지만  아니다.  나는 절대 아니라고 본다.

  (호이안여행)에 (다낭)은 포함될 수 있다.

  (후에여행)에 (다낭)이 포함될 수 있다.  다낭을 목적지에서 뺄 수는 있어도 (호이안여행)과 (후에여행)은 별개이다.

  다만 여행사의 편의상......  호이안을 가던 후에를 가던 꼭 다낭을 거치거나,  거치는 것이 편리하다 보니까  그렇게 두루뭉실 때려잡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여행사는 다낭을 여행의 기점으로 삼아 호이안도 다니고 후에도 다녀오는 어눌하고 아주 미미한 맛보기식 정도의 스케줄을 진행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자유여행자들은 주로 호이안에 거점을 두고 다낭은 잠시 그냥 다녀오는 정도이다.  또,  후에를 보고싶다면 또 하나의 별도 여행스케줄로 이틀이고 삼일이고 다녀오는 식이다.  다낭은 그냥 반나절이거나  비행장이나 기차역에 가기 위한 경유지 정도로 여기면 된다.

  지난 베트남 여행에서 나는 호이안에 4일을.  다낭은 그냥 거쳐서 후에에서 2일을 묶었다.  이번 아내와의 여행에서도 호이안에서 4일을 머물면서 다낭은 그냥 반나절 다녀왔다.

  왜 그런지는 여행공부를 많이하거나,  멋진 여행을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거나,  아니면 이미 충분하게 멋진 호이안여행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 말의 깊은 의미를 아마도 모두 알것이다.  호이안에 머물고 다낭을 경유하여 후에에 머무는 여행을 권한다.  다낭에 짐을 풀고 호이안과 후에를 잠깐 들여다보고 마는 여행은 진정한 베트남 중부 여행이라 할 수가 없다.

 

 

 

 

  호이안의 중심이라고 할 올드타운은 아주 작다.

  그저 산책한다고 생각하고 30여분 거닐다보면 어느새 한바퀴 다 돌았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다양한 문화가 섞여있다고 설명들을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지극히 단면적인 모습은 그저 심플하고 엣스러운 정겨운 마을이란 느낌이 전부라 하겠다.

  그나머지는 어디까지나 여행자의 몫이다.

  새벽에 일어나 한바퀴 돌고 뜨거운 한낮에 점심먹으러 나가서 또 한바퀴 돌고,  쉬었다가 해지고 나서 야경을 감상하며 밤문화를 즐기러 또 돌고.....  그렇게 돌다보면 같은듯 하면서도 매 순간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호이안을 만나게 될것이다.

  그나마도 운이 좋아서 유유자적 할 수있는 한산한 시간을 만날 수 있으면 말이다.  의외로 호이안은 늘 인파로 가득차고 넘친다.

  우기의 끝자락에 다시 찾은 이번여행의 호이안은 나름 호젓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참 좋은 기회였다.

  하여 여러면에 있어서 참으로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호이안은 참족에 의해서 건설되었고 참족의 역사와 함께 발전하고 번영을 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원인이야 다른것이지만  참족의 멸망과 함께하여 비슷한 시기에  호이안도 역사의 기억에서 지워져갔던 것이다.

  멀고 먼 바다건너 인도네시아에서 힌두교를 믿는 일부의 어부들이 불교를 믿는 비엣족의 나라 베트남의 남부(나짱)에 유민으로 흘러들어왔다.  흘러온 유민들은 배를 만들고 항로를 따라 항해를 할 줄 아는 해양민족이었다.  어업을 통해 생활의 기본을 해결하고 뱃길을 통한 장사를 하면서 점차 참족은 자신들의 세력과 영영을 넓혀나갔다. 그러자 마침내 본토유민인 비엣족과 잦은 마찰이 생겨났고 종국엔 사활을 건 전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막대한 부를 이미 축적한 참족은 그 돈으로 무기와 군사력을 확충했다.  그 결과로 비엣족과의 전쟁은 연일 전승을 이어나갔다.  결국 비엣족은 북쪽으로 북쪽으로 현재의 하노이와 중국국경 인근의 산악지역으로 쫓겨가야만 했다.

  참파왕국을 이룩한 참족은 이곳 베트남의 중부까지 쳐올라와서는 심하푸라(미선유적과 가까운 오늘날의 트라께우)를 첫 수도로 삼았고,  인근에 힌두교의 신성한 성지인 (미썬유적군)을 건설했던 것이다.  미썬유적은 호이안에서 서쪽으로 투본강을 끼고 55km 떨어져 있다.  새로운 왕국의 수도 심하푸라와 절대성지 미썬을 바다로  연결해 주는 길목에 바로 호이안이 위치하고 있었다.  참족의 번영에 따른만큼 호이안도 번영을 누렸다.  거기에 중국과 인도를 연결해 주는 해양실크로드의 가장 중요한 길목에 호이안이 자리잡게되어 바야흐로 국제해양무역의 시대를 좌지우지하는 해상무역왕국으로 탈바꿈하는 시대가 도래되었던 것이다.  비단과 각종 향신료와 도자기를이 이곳을 통해 거래가 이루어졌다.  10세기에는 인드라푸라(동즈엉)로, 그리고 12세기에는 비자야(꿔년)으로 수도를 옮기게 되었으나 새로 건설된 수도 모드가 미썬유적지 인근으로 바다로 통;하는 길목의 호이안은 아주 오랜세월동안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세월 전성기를 누리던 참파왕국인 같은 힌두교 국가인 크메르와의 전쟁에서 지고난 후, 급격하게 쇠락의 길을 걷고 있을 즈음,  호시탐탐 복수의 시기만을 노리고 있던 본토원주민인 비엣족의 침략앞에 허망하게 무너져내려 하루아침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말았던 것이다.

  참족은 멸망해서 떠나갔지만 호이안의 중요성은 결코 퇴락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건너온 거상들이 호이안의 무역권을 독점하다시피 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지금의 호이안 올드타운을 보면 베트남의 풍속이 가미되었다고는 하나 대부분의 건축물과 풍습들이 다분히 충국색채가 진하게 남겨진 이유이다.  그러자 이 막대한 상권을 노리고 일본의 상인들이 본격적으로 진출을 하였다.  일본상인들은 이미 중국상인들이 점령한 본래의 시장권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되자 개울건너에 일본인 중심의 상점들을 세우고 상권을 형성해 나갔다.  그리고 이미 알자배기 땅에 들어선 중국상인들과의 원활한 교역을 위해 목교를 세웠으니 바로 내원교(일본인다리) 이다.

  이때까지의 무역항들은 대부분 바다에거 커다란 강줄기를 타고 약간 내륙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포구를 세우고 교역을 했다.  항만건설의 기술이 발달하지 못하였기에 부두의 접안시설 같은 항만을 세울수가 없었던 때문이었다. 폭풍우와 거센파도와 해일과 또 북동아시아에서 이곳까지 원정을 나선 해적(왜구)들로 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큰 강을 끼고 내륙으로 들어가 배를 대기 쉬운 강변에 마을을 건설하고 상가를 짖고,  주변에 군대를 주둔시키거나 방어성벽을 쌓아서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런데 건설기술의 발달로 15세기에 들어서면서 부터 수심이 깊고 너른 바다로 쉽게 나갈 수 있는 지역을 택해 접안시설과 방파재시설을 준설하는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오이안과 같은 내륙의 포구들은 갑자기 쇠락의 길을 걷게되었다.  이때부터 호이안의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났고,  한산한 어촌마을이었던 다낭에 항만이 건설되고 부두가 생겨나면서 새로운 묵제무역항을 발돋음하게 되었던 것이다.

  베트남을 식민지배하기 위하여 프랑스는 다낭을 국제무역항 규모로 건설 발전시켰다.

  거기에 통일전쟁의 시기에 미군이 주문하면서 병참기지화 하기 위하여 오늘날 규모의 거대한 항구도시로 다낭을 현대화 시켰다.

  그 결과들이 지금의 다낭과 호이안의 모습이다.

  오이안의 서쪽 55km 떨어져 있는 (미썬유적)은 택시를 대절하면 1시간이면 찾아갈 수 있지만,  도로여건이나 대중교통망이 상당히 미비하기 때문에 여행사투어를 이용해 반나절만에 다녀오는것을 권하고 싶다.  나도 그렇게 했었다. 돌아오는 길에 투어버스로 곧장 돌아오는 방법도 있고,  중간에 내려 보트를 갈아타고 투본강을 유유히 흘러내려오는 방법도 있다.  비용도 무척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그렇게 크고 대단한 유적지역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폭염속에 정글 숲속을 헤매고 다녀야 한다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한 일만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을 찾아왔고  베트남 역사에 관심을 갖는다면 꼭 한번 찾아가보시라 권하고 싶다.

  참족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베트남 통일전쟁의 참혹했던 참상을 간접으로나나 목격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갑자기 폭우가 내리 퍼붓는다.

  우산도 들고나오지 않았던 터라 서둘러 호텔로 달려갔음에도 이미 흐뻑 젖은 상태였다.

  한동안은 그칠 낌새가 아니다.

  이왕 젖음몸......  훌훌 벗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풀장으로 내려간다.  관리직원이 나타나 타올이며 써비스를 묻길래.....  정중하게 사양했다.

  '그냥 우리끼리 놀테니까 신경 꺼줘........'

  비 맞으면서 풀장에서 논다.  우리 둘이서만.......

  비에젖어 호텔로 쫓겨들어오는 사람들이 신기한 듯 우리를 쳐다보며 지나간다.

  해질녁이 되자 비가 멎었다가 내리고 또 멎었다가 내리기를 반복한다.

  저녁은 먹어야겠기에 우산을 챙겨들고 야경도 볼겸 거리로 다시 나서려는데......  카운터에서 메세지를 전달한다.

  현재 베트남 전역에 기상특보가 내려졌단다.  하긴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매시간 뉴스 속보가 티비에 나오고 있었으니까......

  태풍이 진로를 베트남으로 향하고 있는데  내일 오후에 다낭과 하노이 중간의 중북부지방으로 상륙할 예정이란다.

  비에 젖을 각오로 우기에 나선 여행이었는데  이번엔 태풍까지?

  이역만리 타국에서?

  그럼 남은 우리의 스케줄은 어떻게 되는거지?

  오.마.이.갓.

 

  하지만  이럴때일수록.........  우선 맛난거를 실컷 먹어둬야만 한다.  배가 든든해야 버티는거야.

  우리는 다시 올드타운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태풍은 내일이고  당장엔........  뭘 먹지?

 

 

  이렇게 다시 어두워지는 거리로 나선 이날.......  이번여행 최악의 먹거리를 마주쳤습니다.  다음에서.........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