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왓)은 씨엠립에서 약 12km 떨어져 있는 '앙코르유적군'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다보니 30도를 훨씬 웃도는 캄보디아의 무더운 날씨속에서 거기까지 걸어서 여행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무리라 하지않을 수가 없겠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빌리거나, 아니면 거기에 마차나 택시를 하루씩 대절할 수도 있다. 동남아시아의 교통수단은 대부분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하여서 나는 비내리는 아침에 뚝뚝이 한번을 이용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모또(오토바이택시)를 이용했다.
교통비용도 예전에는 훨씬 저렴했다고 하는데, 어느나라나 마찬가지로 이곳의 여행경비도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는 실정이다.
현지인들의 교통비용은 여행자보다 훨씬 저렴하다는데, 평생 처음 찾아온 처지로 이곳의 정확한 물가를 헤아리기는 불가능했다. 모또의 경우 여행자가 시내에서 오갈때에는 거리에 상관없이 통상 1$를 지불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 12km나 떨어져있는 '앙코르 왓'까지는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걸까?
새벽에 작은 배낭을 메고 호텔을 나섰다. 여행자거리이다 보니 채 몇걸음 옮기기도 전에 모또와 뚝뚝이 기사들이 달라붙기 시작한다. 스타마겟 주위는 아예 이들이 상주하는 장소였다. 흥정을 시작했는데 처음 들려오는 이야기가 7$였다. 사년전쯤엔 7달러면 모또를 하루 대절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5달러로 내려갔다. 나는 계속해서 고개만 가로저었다. 씨엠립 시내가 제법 넓은데 어디서나 1달러면 이용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랬더니 '앙코르왓'은 상당히 멀다고 한다. 그래서 재차 '왕복'이 아니라 '편도'로 갈때만 태워다 주는것으로 2달러를 제시했다. 되돌아 온것은 4달러. 3달러까지 나왔다. 나는 그들을 재치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걸어가면서 골라타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중 한 사내가 헬멧을 하나 꺼내서 내게 건네왔다.
'아! 씨엠립에서 앙코르왓 까지는 2달러면 서로가 손해는 아니겠구나.' 라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나라에서 10km 택시를 타 봐라.....
오토바이는 새벽 미명을 가르면서 북쪽을 향해 나를 싣고 달려나갔다.
'앙코르유적'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두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캄보디아 입국에 필요한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앙코르유적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별 입장권이 아닌 통합 입장권을 구입해야만 한다.
입장권은 씨엠립과 앙코르유적지 중간쯤에 위치한 관리사무소에서 구입 할 수 있다.
입장권은 몇가지로 나뉘어 구분되는데, 1일 입장권이 20$. 3일 입장권 40$. 1주일 입장권이 60$ 이다. 이 경우 대개 3일 입장권을 구입하는것이 유리한데, 그 중에서도 1주일 기간안에 3일 허용 입장권을 구입했다. 이삼일 휙 다녀가는 사람은 관계가 없겠지만, 날씨나 컨디션에 따라 하루 이틀 걸러서 와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3일 이상의 입장권에는 즉석 카메라로 입장권에 사진을 담아준다. 기간 양도 양수가 불허한다는 의미이다. 분실하면 새로 구입하는 방법밖에 없다. 유적지의 곳곳에서 검표원이 수시로 검표를 한다. (바욘)에서는 한 다섯번은 검표를 받은것 같다.
관리사무소에서 입장권 사는 시간을 기다려준 모또 기사는 나를 얌전하게 앙코르왓 입구 주차장에 데려다 주었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크메르 건축에술의 극치를 보여주며 인류사적으로도 커다랗게 한 획을 그은 불가사의한 예술품으로 칭송받는 (앙코르 왓)이 새벽 미명을 받으며 서서히 눈 앞에 나타났다. 구성. 균형. 설계. 기술. 조각. 부조 등 건축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완벽함을 인정받고 있는 역사적 유산이다.
씨엠립에서 만났던 많은 여행자들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 중에 모두 한결같은 똑같은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건기에 접어든 이후로 일출이던 일몰이던 제대로 구경한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고들 했다.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임에도 아침 저녁만 되면 어디서든지 기어코 구름이 몰려든다는 이야기였다.
새벽같이 길을 나서서 여기 앙코르왓 해자 앞에 달려온 것도 실은 해자 옆 연못가에 모여앉아 앙코르왓 머리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오늘도 어김없이 짙은 먹구름이 사방에서 몰려왔다.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야 할 판이었다.
이제 일출에 대한 기대는 물건너 갔다. 저만치나......
허니 어쩌겠는가?
터덜터덜 발걸음을 앙코르왓의 심장부로 옮길 밖에...... 사실 '앙코르왓'은 점심때가 지나 오후에 둘러보는 것이 더 좋다.
왜냐하면..... 이곳의 수많은 유적들 중에서 유일하게 '앙코르왓'만이 서향이다. 해서 여기 앙코르왓을 죽음의 신을 섬기는 사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수리야바르만2세가 살아서는 죽음의 신을 섬겼고, 죽어서는 자신의 무덤으로 삼기위해 만든 사원이라서 유일하게 서향으로 건축된 사원이라고 밝혀졌다. 그러다 보니 이른아침 일출을 제외하고는 오전내내 '앙코르왓'의 사진촬영이 온통 역광이 되기 때문이다. 하여 정말 사진을 즐기는 사람들은 오후에 이곳을 찾는다. 나도 오후 저녁나절을 권하고 싶다.
앙코르왓의 전체구조나 외형적 건축물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이곳을 찾아올 것이기에 몇장으리 사진으로 대체하고 이제 곧바로 성소 내부로 들어가보기로 하자.
(앙코르 왓) 이나 (바욘사원) 그리고 (바푸온사원)에 이르기까지 이곳의 모든 사원을 이야기 할때 꼭 따라오는 것이 '메루산'에 대한 이야기가 배경처럼 따라 다닌다. (메루산)이란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신화속의 산으로, 불교의 신화에 나오는 (수미산)과 같은 산을 이름이다.
수미산(須彌山 , Sumeru)은 바로 산스크리트어의 (수메루산)에서 음을 따온 것으로, 불교세계관에서 말하는 우주의 중심에 서 있는 신화속의 산인것이다.
'수미산은 지상의 높이는 8만 4000유순(由旬, yojana), 모양은 중간이 잘룩하고 정상과 밑으로 갈수록 계단처럼 커진다(須彌座 ∙ 須彌壇의 명칭은 이 형태에서 유래). 산은 4종의 보물로 이루어지고, 산 4면의 중복(中腹)에 사천왕의 주소, 평탄한 정상에 삼십삼천(三十三天)의 궁전이 있다. 이 산 주위로 여덟개의 바다와 산이 어긋나게 둘러싸는데, 이를 합하여 구산팔해(九山八海)라 한다. 제일 밖의 바다는 염해(鹽海)로 가장 넓고, 그 바다 동서남북에 사람이 사는 4개의 섬 사주(四州)가 있고, 또 대해의 바깥 둘레의 끝은 제9의 산인 철위산(鐵圍山, Cakraváḍa)이 원형으로 둘러싼다. 또 이 구산팔해는 밑에서부터 차례로 공륜(空輪) ∙ 풍륜(風輪) ∙ 수륜(水輪) ∙ 금륜(金輪)의 층을 포갠 위에 있고, 이 모든 것 전체가 하나의 수미산 세계를 형성한다.'
어떻게 보면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의 형상과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아뭏튼 이곳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의미이다.
'앙코르유적군'의 모든 사원들은 위와 같은 우주관에 입각해서, 사원 하나하나가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서있는 수미산 신화와 같은 '세상의 중심사상'을 담아 건축된 것들이다.
3층으로 이루어진 (앙코르 왓)의 기본 내부구조는 좌우대칭의 십자형 구조물이다. 이 내실을 중심으로 아치모양의 석조지붕들이 긴회랑을 연결하듯이 이어져 있다. 3층부에는 중앙에 거장 커다란 탑이 놓여졌고 네 방위에 따라 또 웅장한 탑들이 들어서 있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그 탑들이 연꽃모양을 형상화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여기에 각 층과 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상당히 좁고 가파르다. 그 이유는 여기는 신들이 거처하는 곳이란 의미이다. 인간이 사용하는 게단이 아닌 신들이 사용하는 계단이기에 좁고 가파른 것이다.
한마디로 (앙코르 왓)은 당시 사람들의 우주관을 건축이란 방법으로 표현을 한것이다. 결론적으로 '돌로 만든 우주'라는 뜻이다.
돌로 만든 65m 높이의 중앙탑은 바로 수미산을 의미하며, 주변의 조금 작은 네 탑과 함께 수미산의 다섯봉우리를 상징하고, 성의 외벽은 세상의 끝을 둘러 싼 산맥이며, 성을 둘러싼 해자는 우주의 바다를 의미한다. 1층은 지옥이 있는 미물계를 나타내고, 2층은 인간계이며, 3층이 바로 천상계인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고 나면 이곳의 모든 사원들이 해자를 치고 성벽을 쌍고, 그 위에 제단을 만들고, 또 뾰족뾰족 탑을 쌓은 이유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외부의 배치와 구성은 다음 기회에 부연 설명하기로 하고 이제 걸음을 옮겨 1층의 회랑으로 들어가 보자.
1층의 회랑은 온통 부조 조각들로 가득차 있다.
1층 회랑의 부조들을 하나하나씩 이해하면서 둘러본다는 것은 내용의 방대함으로 인해서 일반여행자의 스케줄로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부조의 내용들은 대략 서쪽면 북쪽회랑의 (랑카의 전투), 서쪽면 남쪽의 (쿠륵세트라 전투), 남쪽면 서쪽회랑의 (수리야바르만2세의 군대) 등으로 나뉘어 묘사되어 있다. 왕이 자신의 업적을 조각으로 남긴것도 있고, 힌두교의 유명설화를 묘사한 것도 있다.
회랑을 한바퀴 돌고나면 다시 중앙의 내실이 있는 고프라로 돌아오게 된다. 십자형 구조물의 석조 기둥에는 산스크리트어와 크메르어로 적인 수많은 힌두교 비문들이 보인다.
그리고 중앙통로에서 우측을 보자면 심하게 훼손되었거나 목이 잘려나간 불상들이 놓여있다. 이곳이 지난 날 '천 개의 불상이 놓인 회랑'으로 유명했던 장소이다. (앙코르 톰)을 건설한 '자야바르만7세'는 불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힌두교 사원 이었던 (앙코르 왓)의 중앙 성소에 '천 개의 불상이 있는 방'을 만들었으며, 고푸라의 이곳저곳에 불상을 설치했다. 그리고 이 일이 생기고 나서부터 힌두교사원 이었던 '앙코르왓'이 불교사원으로 둔갑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 십자구조의 회랑 안쪽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2층의 중앙 성소에 이르게 된다.
2층는 1층에 비해 면적이 많이 줄어들었고, 또 1층 회랑의 화려한 부조에 배하면 지극히 단촐해 보인다.
그 이유는 2층의 사용용도가 주로 왕과 승려들이 명상을 하던 곳었기에 과도한 장식이나 요란함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2층의 회랑이 그저 밋밋하고 싱거운 것은 아니다. 2층의 회랑은 바로 압사라로 대변되는 천상의 무희들의 향연장이다. 1500명이 넘는 무희들이 가만히 살펴보면 제각각 모두 다른 표정과 옷차림과 머리장식과 장신구들로 치장한채 모두 다른 포즈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렇게 천상의 무희들인 압사라들을 실컷 마주대하고 나면...... 이제 서서히 3층 회랑과 중앙 성소로 올라갈 때가 된 것이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오를 준비가 되었으면 말이다.
3층은 왕과 크게 깨달음을 얻은 고승들만 올라갈 수 있었던 지극히 신성한 장소였다.
우주의 중심에 해당하는 신들의 영역이었던 곳이다.
이제 나도 세상이 좋아져서..... 온 우주의 중심에......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무척 사람이 많다.
모든 앙코르유적군을 통 털어 가장 사람이 붐비는 장소이며, 인내를 가지고 긴 기다림의 시간을 투자해야만 하는 장소이다.
나도 1시간 이상을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이리출이 불발된 후 곧바로 찾아온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말이다.
팻말표 200개가 손에서 손으로 전해진다. 3층에 올라있는 사람의 정원 정족수가 200명이라는 이야기다. 한사람이 게단을 내려와 인식표를 내어 놓으면 기다리던 한사람이 인식표를 받아들고 계단을 오를 수 있다. 하긴 천국에 오르는 일이 그렇게 쉬우면 기치가 없겠다.
해질녘 일몰에 즈음에 명소로 소문난 (프놈 바껭)에 가면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그곳의 정원은 250명인데...... 오후 2시 넘어서 부터 줄을 서기도 한단다. 오후부터 일몰을 보려 250명이 올라가고, 아래에 1000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일몰이 끝나기 전에 내려올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겠는가? 이건 수학문제가 아니고 기초적 산수문제이다. 그런데 나는 올라갔다. 그리고 보았다.
어떻게??????? 비밀........
아뭏튼 이날은 1시간 이상을 기다려서 마침내 천국으로 가는 계단에 첫발을 내디뎠다.
오.마.이.갓.
3층 성소를 오르내리는 게단은 본래 건물의 중앙인 서쪽의 출입구쪽에 놓여진 '왕의 계단'이었으나 훼손이 심하여, 현재는 철제보조간간을 보강한 동쪽의 계단을 여행객이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계단은 모두 각기 40개씩의 층으로 되어있으며 경사도는 70도에 이른다.
수미산을 상징하는 중앙성소(중앙탑)은 3층의 회랑에서 약 42m 정도 더 치솟아 있으며, 이 탑은 층층이 하나하나씩의 초석을 올려쌓아 만든것이다. 시멘트 같은 접착제나 쐐기 같은 연결부위 없이 만들어진 여기 '앙코르유적군' 모든 건축물의 놀라운 경이로움에 무한한 감탄을 연발한다해보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닐것이다. 이것은 경이로움을 넘어서 미스테리의 차원인 것이다.
중앙 성소는 상층부 탑의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으나, 역시 한없이 신성한 장소이기에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 이 중앙성소의 건축의미 자체가 힌두교의 비쉬누 신을 모시던 장소였으나, 현재는 막혀있는 내실마다 불상이 모셔져있다.
(아아코르 왓)을 감상하기에 좋은 시간이 오후라고 이미 밝혀둔 바가 있다. 서쪽을 향해 지어진 건축물 이기에 오전내내 햇빛이 동쪽에서 내리쬐어 카메라의 빛이 역광을 감수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하여 상당수의 여행자들은 오후에 찾아와 여유롭게 이곳을 감상하고, 해거름이면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프놈 바껭'을 찾아가 앙코르의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구경하고는 한다. 하지만 무척이나 뜨거운 캄보디아의 날씨에 지친 여행자는 그냥 여기 앙코르왓의 3층 중앙성소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도 무방하다. 이곳에서 정글위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도 정말 일품이기 때문이다.
정말 좋았다.
더우기 여기는 신들이 거처하던 곳이 아닌가. 천국이 여기가 아니었던가. 우주의 중심이 바로 이곳이었다.
사방으로 어디를 둘러보든 절로 탄성이 터져나오는 곳이었다.
이 위대한 사원을 고대의 사람들이 단 40년의 세월에 건축했다는 사실이 절대 믿기지가 않았다.
대지를 다지고 다듬으면서 사방으로 20여m애 해당하는 너른 해자(호수)를 파내고...... 다리를 놓고...... 거대한 크기의 초석들을 잘라서 운반해서 다듬어 쌓기를 시작해서...... 수많은 내실과 이를 감싸고 돌며 연결하는 회랑을 만들고, 계단을 만들고 상층부를 만들고.......
땅바닥에 나뒹구는 하나하나의 돌조각들을 보라. 쌓으면서도 틈새하나 없게 만드는 정교함이며 섬세한 조각들이며.......
현대의 장비와 기술력을 총동원하여 이 사원을 해체를 하여 디시 복원하는 것 만으로도 40년에는 절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고대의 시대에 돌을 잘라다 운반하고 다듬고 조각을 해서 저 웅대한 건물을 저 높이 까지 쌓아올리는데 단 40년이었다니........ 400년 아니었을까?
(앙코르 왓)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신비한 불가사의' 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계단을 내려간다.
왜냐면..... 천국을 고대하면서 마냥 길게 줄을 선 사람들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1층 회랑을 거쳐 밖으로 나오는 계단에 놓여진 꼬리가 잘려진 사자상. 모든 사자상의 모습은 정말로 놀라울 정도로 자세가 똑같다. 적당히 엉거주춤한 자세로 쎅시함을 한껏 자랑하는 묘한 자세로 모두가 같다. 꼬리가 잘려진 이유는 이미 말했고, 잘려나간 저 수많은 꼬리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다시 방콕 인근의 아유타이에 갈 기회가 생기면 혹시 '크메르사자 꼬리 무덤'이라도 있는지 찾아봐야 겠다.
돌로 포장된 대로를 따라 몰려드는 여행객 군단이 눈에 띄는데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알겠다. 차이나 군단이 몰려오고 있다.
내가 지금 밖으로 나가는 중에 차이나군단을 마추쳤다는 사실에 절로 안도감이 솟아나온다.
적어도 내가 여행함에 있어서 '차이나 군단과 함께'는 엄청난 비극이다. '즐거운 여행'이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차이나 군단'과 마주치는 일이 없는 곳에서나 가능하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소견이다. 그냥 그런 개인적인 심증에서 하는 고백이다.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었으나 날씨는 이미 한여름의 폭염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모든 건축물의 입구에 서있는 부서진 사자상과 뱀(코브라)조각상은 알싸한 역사적 아픔을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준다. 건축물과 성벽과 다리들 앞에 놓인 저 석상들은 바로 수호신인 것이다. 사원과 왕국의 수호신을 누군가 철저하게 부셨다면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해자를 건너 아침에 일출을 고대하며 서성거리던 자리에 오니, 여행객 남녀가 맛있는 오수에 심취해 있다. 살펴보니 술을 마시고 떨어진 것이 아니다. 멋진 풍경을 감상하다가 쉬고 싶어서 아무데나 드러누워서 짬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서구여행객들의 자유분망함과 정열과 젊음이 참으로 아름답고 부럽다. 저들의 자유의지가 참 부럽다.
때가 지났음을 깨닫고 '앙코르왓' 입구 주차장 안쪽의 숲속에 있는 '앙코르 카페'를 찾았다.
모든 유적지의 입구마다 기념품을 파는 가계랑 주점부리 또는 식당들이 들어서 있는데, 식수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현지사정상 음식의 위생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회자되는 여행지였다. 그래서 그 중에서도 유적군 지역에서 가장 이름이 난 식당을 찾았던 것이다.
기념품 숖과 함께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분위기나 시설이나 종업원 수준이나 매우 수준급이었다. 망설이던 끝에 지난 여행의 향수때문에 '베트남 쌀국'를 주문했다. 잊지못하는 나짱에서의 쌀국수랑은 조금 달랐는데, 나름 맛은 있었다. 맑고 담백한 국물의 쌀국수와 야채가 따로 나왔는데, 진한 국물에 야채를 듬뿍 아에 담아서 내주던 나짱의 길거리 쌀국수와 다른것은 아마도.... 나짱할머니의 손맛 차이가 이닐까?
오늘에사...... 베트남에도 다시 가고 싶다.......
방어용으로 파놓았던 넓이 200m의 해자가 지금은 너른 호수로 변모하여 수많은 연꼿이 피어있다.
그리고 해자의 주변은 이제 누구나가 편하게 쉬어가는 공원으로 변모해있다. 사뭇 평화로운 모습이다.
호수위로 가득 피어난 연꽃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한참을 쉬던 나의 발걸음은 다시 길위로 올라섰다.
다시 새로운 발걸음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발걸음에서 시작되니까 말이다.
나는 또 걷는다.
왜?
가고픈 곳 보고픈 것이 아직 많이 남아서.......... 아직은 성한 내 두발이 나를 지탱해 주고 있어서.
----- 다음으로 이어지겠습니다. 씨엠립에서 살아가는 캄보디아 사람들 모습을 보여드리지요.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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