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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알 럽 트래블 /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만난 사람들

by 피안재 2017. 2. 13.

 

 

 

 

 

 

 

 

 

 

 

 

  새벽에 일어나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다 커튼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제보다 한참이나 컴컴한것이 구름이 잔뜩 끼었다.

  아무래도 오늘도 온전한 일출을 기대하기에는 무리이지 싶어진다.

  혹시 숙소를 나서자마자 빗줄기가 쏟아지는 것이나 아니었으면 싶다.  그냥 스타마켓 커피숖에 걸어가서 모닝커피나 한잔 마시면서 오늘 일정을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한다.  모또나 뚝뚝이 기사들은 벌써 하루를 시작하고 무리지어 모여있다.  마켓이나 커피숖에도 벌써 사람들로 제법 붐빈다.  파이 한조각과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해서 창가에 앉았다.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 여행일정을 생각하니 시간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서둘러 '앙코르왓'의 일출을 보러 쫓아갈 이유가 없어진 새벽나절의 시간이 갑자기 너무도 여유롭고 처음대하듯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무래도 다른 여행자들 이야기처럼  앙코르에서의 일출과 일몰은 이번 여행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아.  언제 또 오게될까?'

  생수라도 두병 사기지고 숙소로 돌아갈 요량으로 지갑을 살피니 아뿔싸........  잔돈이 없다.

  캄보디아 화폐로 2.000리엘(600원)에 동전 몇개가 바지주머니에 든 것이 전부였다.

  움직이려면 가장 먼저 환전이 필요했다.  그런데 환전소는 적어도 9시 가까이 되어야 은행이던 사설 환전소든지 열것이다.  물론 호텔에서 환전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사간엔 대개의 호텔 후런트가 가장 피곤해서 여기저기 쓰러져 잘들 시간이다.  잔돈이 부족할 수도 있고.

  어쩐다?

  그러다 문득 생각해낸것이 눈앞에 있는 칼텍스주유소 였다.  24시간 영업하면서 수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씨엠립에서 포지션이 아주 큰 주유소이니 당연히 씨엠립에서 달러가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주유소 아니겠는가?  그래서 커피를 마시다 말고 주유소 창구로 갔다.

 

  캄보디아의 화페는 리엘(Riel) 이다.  1달러는 대략 4.000 리엘로 환전된다.

  하지만 캄보디아에서는 굳이 환전이 필요 없다.  모든 생활에 있어서 환전 없이 그냥 미국달러($)로 사용이 가능하다.  리엘은 오히려 작은 액면의 거스름돈이나 계산하는데 쓰이고,  모든 경제생활에는 달러가 주요 통화로서 결제수단으로 통용된다고 보면 되겠다. 무척 편리하다.

  이 점 또한 여행자들이 캄보디아를 여행하는데 있어서 매우 후하게 가산점을 더해줄 수 있는 매력적인 캄보디아의 통화정책이다.

 

  주유소 창구에 남자지기원 한명과 아줌마 아가씨 2명이 카운터를 보고 있다.  아줌마 창구로 다가가 상황을 설명하고 빳빳한 100$ 지페를 내밀었다.  다소 당황스런 표정이다.  여행자들도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렌트해서 기름을 넣고 계산을 하러 오기는 하겠지만,  낯선 여행자가 환전을 하고 싶다고 새벽부터 주유소를 찾는 경우는 처음이었나 보다.  하지만 작금의 내 상황이 이런걸 어쩌겠는가?

  다시 여행자로서 새벽에 잔돈이 없어 커다란 불편을 격고 있다고 부탁을 하자......  아줌마가 서랍을 열고 가지고 있는 액수를 확인한다.

  그러더니만 되돌아온 답변이......  '절반은 달러로  나머지 절반은 리엘로 바꾸어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노 노 노 노'를 외쳤다.

  환률차이가 클 뿐더러 고액권이 없는 리엘로 백달러를 바꾸면 한뭉치는 될터인데.......  최소의 거스름돈 아니면 거스름돈도 무조건 달러로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절대 안될 말이다. 오로지 기준 통화는 미국달러이다.  그래서 즉석에서 놀라운 기지를 발휘해 유리한 상황으로 유도한다.

  '잠시 뒤에 국경을 통해 방콕으로 가야하는 사람입니다.  택시를 타고 가야하는데 택시기사에게 100달러를 내고 거스름돈 받기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금방 다시 국경에서 환전을 다시 할 수는 없잖아요?  부탁 드립니다.'

  어디에서나 안면박치기에 유독 강한 내가 아니었던가.

  나의 절박한 진정성을 이해한 아줌마가 옆에 있는 아가씨와 남자의 서랍까지를 열어서 20달러. 10달러. 5달러. 2달러. 그리고 심지어 1달러짜리까지 달러 지페를 모아 100달러를 맞춰서 세고 또 세어서 나에게 건네준다.(꼴두 새벽 주유소에서 환전 성공!)

  길거리 사설환전소에서 환전을 하면 달러에서 소액달러로 바꾸어도 수수료를 내라고 한다.

  깊이 깊이 진심어린 감사를 전하고 커피숖에서 기분 좋게 카피를 마저 마시고 생수 두병을 사서 숙소로 올라온다.

  지갑 정리를 하면서 계산해 보니 이제껏 이번 여행경비로 생각했던 총 예상경비의 50% 정도를 사용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렇게 스케줄을 바꿔 다른 나라에 오기까지 했는데 에상경비의 절반 정도라니.......  참 나름으로는 저렴한 여행을 하고 있다는 뿌둣한 생각이 든다.

  이동도 많고 숙소도 바간을 빼면 썩 훌륭한 호텔들이었으며,  주점부리며 식사도 호사까지는 아니었더래도 맛난거 실컷 먹고 다니는 상황에 말이다. 하루에 네끼에서 다섯끼니를 먹고 다니는데 말이다.  맥주는 온종일 손에 떨구는 일이 없도록 마시고 포도는 없어도 와인은 있는데.....

 

  날이 환하게 밝았다.

  하늘은 여전히 잔뜩 찌프려 있다.

  꼭 요시간 새벽아침과 해질녁 시간에만 구름이 몰려온다.  참 알 수 없는 하늘의 심술이다.

  날이 새기가 무섭게 어디에선가 확성기를 통해 안내 방송이 한참이나 나오더니 이내 불경을 암송하는 소리가 계속 방송된다.

  흡사 우리나라의 민방공 훈련 상황 방송이나,  재난시 대피방송 이거나,  아니면 70년대 새마을사업을 독려하던 동네 이장님 방송 같은 그런 분위기다.  이 방송은 오전내내 이어진다.  아침이 지나면서 부터는 신나는 음악방송으로 바뀌면서도 계속 이어진다.

  새벽에 처음으로 흘러나온 방송의 분위기는 영판 이랬다.

  '동민여러분.  희망찬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우리모두 일어나 새역사 창조의 위대한 사명 앞에 손설수범하여 앞장을 서야만 하겠습니다. 오늘은 웃거리 개똥이네 진입로에 포장공사가 있겠으니 동민여러분들은 삽이나 괭이나 리어카를 끌고 서둘러 참석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 동네 도로포장사업에서 1등을 하는 마을은 면에서 씨멘트 500포대를 포상으로 주겠다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필코 1등을 달성해서 마을 빨래터 개선 사업에 쓸 수 있도록 동민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오후에는 시청에서 관게자께서 시찰을 나오신다고 하니 동민 여러분은 한분도 빠짐없이 꼭 새마을 모자를 쓰고 참여 해주시기를 간곡히....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이올씨다. 이상.'

  영락없는 이런 분위기의 방송이 아침내내 씨엠립이 떠나가라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방송의 실체는 곧 알게된다.

 

  여행을 하다보면 이렇게 낯선것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또 그리오래지 않아 그 낯선것들이 익숙해지는 마력을 지닌것이 바로 여행이다.

  그런가 하면 아주 익숙한 것이 불쑥 나타나 가끔씩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익숙한 것이 갑자기 낯설어 지는 것이다.

  아침에 앙코르유적을 둘러볼 수가 없다면 씨엠립에 사는 사람들의 아침모습을 둘러보기 위하여 거리로 나섰다.

  한불럭 뒤에 있는 씨엠립에서 두번째로 큰 '롯데마트'를 막 지나가려는 상황이었다.

  '얼씨구? 이건 뭐야?  여기가 시방 충주여 씨엠립이여?  오늘 나한테 택배올게 있나?'

 

 

 

 

 

 

 

 

 

 

 

 

 

 

 

 

 

 

 

 

 

 

 

 

 

 

 

 

 

 

 

  삼성전자 대리점 앞에 주차해 있는 대한통운 택배차량. 

  아주 잠시나마 나로하여금 실소를 짖게 만들기에 충분한 씨츄에이션이었다.

  삼성핸디폰이 미얀마나 캄보디아에서는 가장 점유율이 높은 제품이라 한다.  여타의 유명 브랜드가 있지만 단독 선점은 분명 삼성이었다.

  트럭이나 버스 또한 미얀마나 캄보디아가 우리나라에서 중고차를 가장 많이 수입해 사용하는 경우이다 보니 저런 황당한 장면도 목격하게 되는가 보다.  어디어디 교회,  어디어디 학교, 어디어디 태권도 학원,  거리를 다니다보면 이런 한글표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버스나 트럭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대부분의 노점식당이나 일부 가정이 아직도 땔감에 의존하는 부엌살림을 하다보니 아침 일찍부터 숯을 배달하는 마차도 보게되고,  길거리에서 아침을 해결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캄보디아 사람들(동남아에서는 지극히 흔한 풍경)을 만난다.  '올드마켓'으로 잘 알려진 전통재래시장을 찾아가지 하루일과를 시작하는 상인들의 손길과 발길이 정말로 바쁘게 움직인다.  가장 역동성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입구에 놓여진 저울에 또 웃음이 삐져 나온다.  모든것을 무게를 달아 게산하는 이들에게 혹시나 무게를 속이는 상행위가 벌어질까봐,  상거래 재판관이 시장 입구에 떡 하니 버티고 서서 서슬퍼런 위용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문제있으면 나에게로 와서 달아보라!'

  캄보디아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모두 이해할 수은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미얀마에 비하면 훨씬 좋고,  태국에 비하면 조금 못미쳐 보인다.

  그럼에도 모든것이 풍부하고 넘쳐난다.

  캄보디아는 풍요로운 땅이다.  씨엠립은 정말로 그냥 조용히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도시이다.  자꾸 씨엠립이 마음에 든다.

  시장안에 가계는 없지만 새벽부터 서둘러 시장 언저리 길 위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  또 그 사람들과 시장으로 부터 온갖 야채며 생필품을 사서 싣고 인근을 다니며 파는 상인, 엄마나 아빠를 새벽부터 따라나와 오토바이에 혼자 앉아 엄마나 아빠가 오기를 마냥 기다리고 있는 수줍은 소녀의 표정에는 아침 잠기운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싱그러운 아이들의 표정이 이른 아침을 더욱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아주 예전에는 있었지만 이제 길거리 어름장수도 우리에게는 생소한 모습이고......

  '저게 무슨 아침부터 장사가 될까?' 염려스러울만큼 열악한 여건으로 거리 한구석을 차지하고 와풀을 굽고있는 아주머니의 수줍은 미소속에도 굽힐 수 없는 모성의 어떤 희망이 엿보이는 것 같아서 이 아침이 정말로 감격스럽기 까지 했다.  수줍어는 하면서도 여행자의 호기심을 그대로 받아넘겨주는 성의와 배려가 그대로 전해왔다. 

  내 어릴쩍 우리쯤 세대의 어미니들은 다 저 아주머니 같은 마음, 또 그럼 모습들로 세상을 사셨다.  낯설은 타인의 모습이 결코 아니다.

  가슴 한구석에 한동안 잊고 살았던 어떤 알싸함이 전해져 온다.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새벽까지 여행자들로 넘쳐나고 씨엠립의 밤문화를 꽃피우던 '펍 스트리트'는 밤샘 여흥의 결과로 지저분하게 널부러져있고 혼란스러웠다.  도심의 청소부들이 골목을 청소하고,  일찍 가계를 여는 카페며 레스토랑 직원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청소며 정리를 시작하고 있다.

  가계정리가 어느정도 끝나있는 부지런한 카페를 찾아 거리에 나와 있는 테이블에서 커피를 한잔 시키고는,  저만치 길건너 올드마켓의 아침을 한참동안.....  또 한참동안 바라다 보았다.

  수많은 상념들이 찾아왔다가는 또 아무말도  없이 떠나간다.

  한밤중에 너른 호텔객실에 덜렁 혼자 드러누워있는 시간보다도 더 고요하고 적막한 나만의 시간이다.  나는 이런 시간이, 이런 느낌이 더없이 소중하고 좋다.  그래서 지금의 이 아침 시간이 더더욱 소중하게만 느껴진다. 

  이 순간 온전한 육신으로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소중한 나의 가족들이 갑자기 몹시 보고 싶어진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올드마켓과 펍 스트리트를 아침산책으로 돌아본 나에게 허기가 찾아왔다.  어느새 시간이 제법 지나있었다.

  아점(브런치)를 그냥 길거리에서 현지인들 처럼 해결하고자 사람이 붑비고 있는 노점의 길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현지인들이 즐겨먹은 쌀국수와 닭고기 덥밥을 주문했다.  아침 차까지 내주는 노점식당에 음식 두가지에 캔맥주까지 곁들였으면 웬만큼은 그럴싸한 아침이 아닐까?  오이절임까지 김치대신 내주는 노점식당은 처음이었다.

  맛있다.  기가 막히게 맛있다. 

  남들은 집 떠나면 식수와 음식으로 고생한다는데...... 이렇게 하루에 네끼 다섯끼를 먹고 다니니.....  장기여행의 휴유증(?)으로 3KG 정도살이 쪄서 귀국하는 형편이다.  아마도 역마살로 태어난 유전인자에 해외유랑 체질의 유전자도 그득 들어있는것 같다.

  이야기 나온 김에 캄보디아의 음식에 대해서 한마디 하기로 하자.

  캄보디아에는 딱히 내세울만한 특색있는 전통음식이 없다.

  수많은 외침과 지배를 받아왔고, 근현대사에 있어서도 '킬링필드'로 대변되는 내전의 결과로 아주 오랜시간을 유엔등의 외국 원조에 의존하다보니 모든 생필품이며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맛을 내고 격식을 차리는 음식문화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오로지 어떻게 해서든 생존해야 하겠다는 간절한 생각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캄보디아는 내놓을만한 독자적인 음식문화를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한 나라이다.

  가장 쉽게 접하는 음식은 쌀밥과 쌀국수 이다.  이것은 인접국인 베트남의 음식에서 들어왔다.  그외의 야채를 첨가하거나 일부 볶음요리는 역시 인접국인 태국의 음식이 그대로 전수되어 들어왔다.  여기에 인도의 카레문화가 첨가가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도 화교들이 무역거래를 하면서 수없이 오고가다 보니 중국음식문화가 약간씩 변형되어서 많이 퍼져있다.  그러다 보니 딱히 캄보디아 음식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역설적으로 캄보디아에서는 모든 다양한 동남아의 요리를 그럭저럭 모두 쉽게 접할수가 있다고 하겠다.

  음식이 다양하지는 못해도 나름 맛깔스럽고 저렴한것이 캄보디아 음식문화의 자랑이라면 자랑이랄까?

 

 

 

  식사를 하면서 나는 옆테이블의 현지인에게 물어보았다.

  새벽 식전댓바람부터 동네방네 떠들어대는 방송의 정체가 도대체 뭐냐고?  아침나절 불경 암송을 하던 방송은 어느새 신나는 음악으로 바뀌어 있었다.  흡사 우리나라 '주현미'씨의 (신사동 그사람) 같은 분위기였다.

  현지인의 대답은 '오늘 동네에 결혼식 잔치가 있는 날' 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지척에 두 군데에서 결혼식이 있다는 대답이었다.

  우리나라 작은 읍소재지만한 씨엠립이다 보니 새벽에 '결혼식 안내방송'을 하고,  식이 진행되는 시간까지는 '불경 암송'을 내보내다가,  식이 끝나고 만찬이 시작되면 신나는 음악으로 바뀌는 것이란다.

  거참.  신기하기도 하고, 좋은 구경을 할 기회로도 생각되고 해서  '캄보디아의 결혼식'을 구경해 보기로 했다.

  전통가옥에 화려한 천막을 친 곳이 바로 결혼식장이었다.  여행자거리의 긴 골목 사이에 두 군데에서 결혼식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찾아나섰다.

  여행자의 신분임을 밝히고 나서 신랑신부의 결혼을 축하해주고, 사진도 좀 찍을 요량이었다.

  첫번재 결혼식장을 찾아갔더니 마구마구 하객들이 몰려들면서 좌석을 정돈하고 있는.....  막 식이 시작되려는 시간이었다.  한쪽 평상에서는 전통복장의 남자들이 전통악기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식장을 기웃거리면서 하객들에게 일일이 머리를 숙여가며 인사를 하고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신랑에게도 축하 인사를 건넸다.

  낯선 이방인의 침입에도 모든 사람들이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 주었다.  신랑과 인사도 나누었겠다....  신부가 궁금해 졌다.

  신부는 어디있느냐고 살짝 볼수가 없겠느냐고 물었더니  몰려 있던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들이 이구동성으로 한쪽의 내실을 가리켰다.

  현지 말로 뭐라뭐라 하면서 손짓을 가리키는 폼이,  '괜찮아 들어가봐.  사진도 에쁘게 좀 찍어주고....  괜찮아.......' 이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주변을 촬영하면서 내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뿔싸.......

  오.마.이.갓.

 

  일생일대의 아주 커다란 실수를 저질러 버리고 말았다.

  오 주여.......  오 부처님이시여.  어쩌자고 이런 시련을..........

  아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헐.

  그만.......

  못 볼것을 보고 말았다..........

 

 

 

 

 

 

 

 

  신부가 예복을 막 갈아입고있는 찰라에 내가 불쑥 나타나고 만 것이었다.

  어떤거를 어디까지 보았는지는 절대로 이야기 할수가 없다.  다만 이 사진만으로도  보아서는 안될 부분이 분영하게 찍혀 있으니 말이다.

  당혹스럽고 민망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당황하기는 신부도 매 한가지여서 깜짝놀라 얼른 돌아서서 옷매무새를 추스렸다.

  사태를 짐작한 둘러리들이 깔깔거리고 웃으며 당황해서 멍청하게 멈추어 굳어버린 나의 등을 두드려 주면서 괜찮다고 하면서 밖으로 다시 안내를 해주었다.  돌아서서 걸어나오는데 사방에서 요한한 웃음소리가 끊이지를 않는다.

  '아무래도 이거 여기서 맞아죽게 생겼나보다.'

  '못 볼것을 보았으니 나보고 책임지라고 하면 어떻하지?  일단 아들에게 아빠가 또 사고를쳤다고 우선 기별을 해야하나?'

  밖으로 나오니 아마도 신랑의 숙부쯤 되는 사람이 내 손을 잡아 이끌어 피로연장으로 보이는 장소로 데리고 가서 뭐라고 하니까, 안쪽에서 신부와 비슷한 복장을 한 젊고 아리따운 아가씨가 차를 내오다 준다.  당혹스러워 하는 내 모습이 여기 모인 모든사람들에겐 그렇게 재미있나보다.  아가씨도 연실 나를 보며 웃는다.  영어를 하는 아가씨가 어디에서 왔느냐기에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다들 축하하는 즐거운 날이기에 그런 해프닝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단'고 한다.  평상시 자신들이 쉽게 대하지 못하는 외국인이 찾아와서 갑자기 안절부절 하니까 다들 더 재미있어서 웃는 것이란다.  그냥 구경하다가 시간이 좀 걸려서 피로연이 시작되면 아무하고나 어울려 앉아서 식사도 하고 가란다.  그제사 다소 안심이 되었다.

  그때부터 여기 모인 하객들이 신랑신부와 무슨 관계인지는 하나도 모르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나를 알아본다.  자나가면 죄다 말을 걸어오고 손을 내민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이들과 가족이 되었나보다.

  캄보디아 결혼식은 생각보다 시간일 걸렸고 간단한 듯 하면서도 절차가 복잡해보였다. 모든 에법이 어른들을 한명한명씩 따로 죄다 의식과 절차를 거행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씨엠립의 사람들이 여기 두곳의 결혼식장으로 모두 모여들었나 보다.  무척 복잡하다.

  사진을 마구마구 찍다가 갑자기......  또 다른 한곳의 결혼식이 궁금해 졌다.

  그래서 인파를 헤치고 다른곳의 에식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은 에식이 막 끝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었다.  이미 경험이 있겠다......  마주치는 사람에겐 죄다 인사를 하면서 안으로 들어가 신랑신부랑 축하인사도 나누고, 마치 그들에게 계약된 사진사 처럼 능숙하고 능청스럽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이곳에서도 모든 하객과 신랑신부가 낯선 이방인을 무척이나 따뜻하게 환대해 준다.

  나이지긋하신 하객 손에 이끌려 피로연 테이블에 앉았는데.....  좀 전에 식사를 했던 이유로 음식엔 별로 손이 가지를 않는데.....  차를 내어주는줄 알고 마신 캄보디아 전통주가 엄청 독하다.  '後來者 三盞'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풍속인줄 알았더니만......  여기서도 연거푸 석잔을 건네 준다.  차마 거절하지 못해 단숨에 미시고 나니......  금새 알딸딸......  모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면 즐거워 한다.

 

  새롭게 가정을 꾸리고 새 삶을 시작하는 두 쌍의 부부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나가시기를.........

  정말로 뜻박의 멋지고 소중한 여행의 추억,  오래오래 기억하고 간직하겠습니다.

  

  그리고, 세상 어디를 갖다 놔도 식을 줄 모르는 이넘의 인기는...........  헐.

 

 

 

 

 

 

 

 

 

 

 

 

 

 

 

 

 

 

 

 

 

 

 

 

 

 

 

 

 

 

 

 

 

  결혼식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시엠립의 여행자거리 낮풍경은 사뭇 정겹다.

  그중에 특히 중간에 들려본 한 초등학교의 아이들 풍경이 정말로 아름답다.

  터덜터덜 여행자 거리를 걷다보면 이삼일 머물렀을 뿐인데 벌써 고향마을 입구에 다달은 것처럼 마냥 정겹다.

  분점까지 내고있는 씨엠립에서 아주 유명한 한식당 대박 본점도 있다.  또 그리 멀지않은 곳에 대박 둘째 지점도 위치해있다. 인근이다.

  더 걷다보면 마침내 (소카 앙코르 호텔)이 모습을 드러낸다.  '소카 호텔'과 '올드 마켓'과 '앙코르 왓'의 위치만 기억할 수 있으면 씨엠립에서의 모든 생활은 일단 여유를 가져도 좋다.

  마주 보이는 소카 호텔의 길건너 맞은편이 바로 칼텍스 주유소이자 스타마켓이다.  스타마켓에서 소카호텔을 마주 보면서 오른쪽으로 30m를 가면 경찰서요. 뒷쪽 길가에 롯데마트가 있다. 스타마켓에서 뒷쪽 골목으로 1km 정도의 골목길이 여행자 거리이며 끝에 올드마켓이 있다.

  수많은 호텔과 카페와 여행사사무실이 들어서 있다.  나는 근처의 '롱 라이브 앙코르 빌라'에 머물렀다.

  이 부근 아무데서나 모또를 타고 2$이면 12km 떨어져 있는 앙코르왓에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씨엠립 도심 지리적 파악 끝.

 

 

 

 

 

 

 

 

 

 

 

 

 

 

 

 

 

 

 

 

 

 

 

 

 

 

 

 

  숙소에서 쉬다가 사간을 확인하니  오후 4시가 막 넘어서고 있다.

  허겁지겁 서둘러서 배낭을 둘러메고 다시 거리로 뛰쳐나와 모또에 올라 탔다.

  하늘을 보니 역시 저녁나절이 되었음을 알아서인지 사방 구름이 자욱하다.

  그러나 더는 시간이 내게는 없었다.  오늘이 아니면 더는 일몰을 기대할 시간이 내게는 허락되지가 않는 것이다.  내일 오후에는 귀국을 서둘러야만 하는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일몰의 기대가 무리인줄을 알면서도 안가볼 수는 없는 마음이었다.

  갑자기 마음만 급해졌다.

  '앙코르왓'을 지나서 한참을 달려가면  '앙코르 톰'의 남문 고푸라가 막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에 앙코르유적군에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명소인 (프놈 바껭)이 있다.  여기서 '프놈' 이란 '작은 산 언덕' 이라는 의미이니 프놈바껭은 '바껭 언덕'이라는 의미이다.

  산은 그다지 높지않은 산언덕 쯤이지만 드넓은 밀림으로 뒤덮인 정글에서 그나마 뾰족 튀어나오듯 솟아있는 인근에서 유일한 산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도 휘감아 올라가는 산길은 제법 멀고 가파르다.  무더운 날씨 때문에 더욱 그러하리라.  멀리서 구름사이로 해가 내려앉는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하자 더욱 조바심이 생겨서 거의 뛰다시피 언덕을 올라갔다.

  그런데 아뿔싸.......  그때까지도 전혀 에상을 하지 못했었다.

  인파......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고,  사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는 이미 이삼백명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올려다 보니 사원의 3층 테라스엔 벌써 일몰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해 보였다.  포기하고 내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사연을 물어보니.......  여기도 인식표 250매를 배정하면서 해당 인원수만 사원 위로 올려보낸다는 이야기였다.  누군가가 내려와야만 기다리던 다음사람이 올라간다는 말이다.  이것은 유적 보호상 불변의 규정이라 한다.  그런 상황이니 지금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 중에 누가 일몰이 끝나기 전에 내려오겠냐는 생각에 마침내 포기를 결심했다는 답변이었다.  선발의 20여명 에비자는 게단 출입구에 따로 대기하고 있고,  이들에게서 일정 거리를 떼어 놓고 약 2백여명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대략 난감이었다.

  이제 앙코르유적군에서의 일몰은 절대 불가능한.... 미련을 버려야만 하는 상황에 맞딱뜨리게 된 것이다.  허망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때 스치듯 지나쳐가는 한가닥 기발한 생각이 있었다.

  분명 옳은 일은 아니었다.(이 글을 통해 깊이 반성하였음을 새삼 밝혀둔다.)  하지만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욕심이 앞섰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저지선 옆으로 뛰어나가며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리를 외쳤다.  사람들이 죄 다 쳐다본다.  긴 줄을 지나쳐서 우선 대기자 20명 정도가 서있는 줄로 다가서면서 '헤이 미스...... 헤이 미스.........'를 연발했다.

  그 많은 대기인원을 관리하던 검표원들이 일제히 쳐다보고 있는데 능청스럽게 연기를 했다.

  '헤이 아가씨.  나 기억하시죠?  좀 전에까지 여기서 줄을 섰던 사람인데,  카메라를 놓고 온것을 알게되어 뛰어내려가 겨우 나갈때를 에약한 뚝뚝기사에게서 카메를 찾아서  이렇게 다시 뛰어 왔다구요.  나 기억하시지요?'

  내가 지명한 아가씨는 기억에 없는지 고개를 절래절래 가로젖는다.  기억 날리가 있겠는가?  완전한 거짓 연기인것을.

  '그럼 다른 아가씨였나?  이렇게 죽어라 뛰어갔다가 겨우 돌아왔는데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아가씨는 멍하니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땀에 흠뻑 젖어서 뭇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로 하소연을 하고 있는 사람을 왜면하지도 못하고 난처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자 뒤에 앉아있던 나이 지긋한 사람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럼 여기 대기하다가 카메라 때문에 내려갔다 왔다는 말이냐?'고 재차 묻는다.  그래서 나는 카메라를 흔들어 보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날씨탓에 후줄거니 흠뻑 젖었겠다, 서둘러 올라오느라 지쳐보였겠다.

  그러자 그 사람이 내 표정을 살피더니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그리고 나서.......  나는 기다리는 예비줄에서 세번째로 일몰이 막 시작할 즈음에 사원의 3층 테라스에 올라갔다.

  (진심으로 거짓말을 해서 새치기를 했음을 고백한다.  나로 인하여 일몰을 보지 못했을 누군가 한사람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보낸다)

 

 

 

 

 

 

 

 

 

 

 

 

 

 

 

 

 

  역시나..........

  오늘도 '프놈바껭'에서의 일몰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사원 테라스에 몰려있던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절로 탄식의 한숨들이 튀어 나왔다.

  어둑어둑해지자 더 이상의 기대를 접고 포기한 사람들이 우루루 테라스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래쪽에서는 그때까지도 포기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행렬이 아직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포기하고 내려가는 사람과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서둘러 올라오는 사람의 발길이 좁은 게단에서 서로 교차한다.

  어쩌면........  이런것이 인생이 아닐까?

 

  이렇게 알코르에서의 일출과 일몰은 요원한 일이란 말인가?

 

 

 

 

 

 

 

    ---- 다음 이야기에서는 나머지 앙코르 유적 투어를 한꺼번에 모아서 전해드리고, 곧바로 다시 방콕으로 귀국길에 오르겠네요.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