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씨엠립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앙코르유적 여행은 대략 다섯군데 정도로 분류해 볼수가 있다.
첫째는 당연히 (앙코르 왓)이다. 단 한개의 사원유적 이면서도 앙코르유적군을 대표하는 상징이며, 수많은 유적중에서 가장 크고 한번 둘러보는데에만도 족히 반나절은 시간적으로 투자를 해야하는 멋지고 광활한 유적단지이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바로 (앙코르 톰)이다.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크메르왕국의 수도로서 당시 인구 100만명이 거주하던 곳이다. 총길이 12km의 정사각형 성벽으로 둘러쌓인 도시 안에는 '바욘사원'이며 '왕궁'이며 '바푸온' '피미아나까스' '쁘리아 빨리라이' '코끼리테라스' ' 뭉둥왕테라스' 등의 유적이 있으며, 좀 떨어진 외곽으로 '톰 마논' '차우 싸이 떼보다' 등의 사원이 포함된다. 앙코르톰을 벗어나 있기는 하지만 앙코르왓과의 사이에 있는 일몰명소로 알려진 '프논 바껭' 이나, 북문 밖의 '쁘리아 칸' '나약 뽀안' 따솜' 등의 유적은 '앙코르 톰' 여행의 범주에 넣어도 좋을듯 싶다. 상당히 면적도 넓고 둘러 볼 것이 많은 '앙코르유적 여행' 기간 중 가히 최고의 날이 될 것이다.
세번째는 동바라이 지역을 포함해 이곳 근처에 산재해 있으면서도 앙코르왓과 앙코르톰에 포함되지 않았던 유적들을 말함이다. '톰 마논'과 톰 메본'을 비롯해 (영화 톰 레이더)의 배경이었던 '따 프롬'과 '따 께우'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또 하나의 일몰명소인 '쁘레 롭'에서 '스랑스랑' 이나 '반띠아이 쌈레'까지, 이곳 역시 넓은 지역에 수많은 사원들이 분포되어 있어서 하루에 모두 둘러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정보의 집약과 선택의 중요성이 뒤따르는 여행코스라 하겠다.
네번째는 시외로 나가 시엠립에서 가장 멀게는 49km까지 떨어져 있는 북쪽지역의 유적군이다. 전체 앙코르유적중에서 가장 돋보이게 아름답다는 '반띠아이 쓰레이'가 북부유적군에 포함되어 있으며 약 16km쯤 벗어난 지역에 있다. '앙드레 말로'를 현혹시켰던 여신상이 아보 이곳에 재안치되어 있다. 오가는 거리상 족히 하루는 잡아야만 둘러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프놈펜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유적군으로 통상 '룰루오스 유적군' 이라고 부른다. 크메르왕국이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초기에 터전으로 삼고 살았던 지역이다. 그런 이유로 크메르문명의 초기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중요성을 가지고 있으며, '쁘리아 꼬' '바꽁' ' 롤레이' 사언들이 이곳의 중요한 유적으로 꼽힌다. 멀리 떨어진 이유로 여기 또한 족히 하루는 잡아야 한다.
지난 이야기에서 (앙코르 톰)의 남쪽문과 한중앙의 '바욘사원'을 둘러보았으니, 이제 나머지 앙코르톰의 유적을 둘러보기로 해야겠다.
거대한 '앙코르유적' 중에서 나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진 곳은 '앙코르 톰'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바욘사원'이 나에게는 가장 매혹적이었다. 세번이나 찾아갔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앙코르 왓' 보다도 '앙코르 톰'이 더 좋은 여행지였으며 좋은 추억의 장소였다.
얼핏 상단부가 허물어진 피라밋 처럼 생긴 바푸온 사원(Baphuon)은 조화와 균형미가 돋보이는, 가만히 살펴보면 볼수록 많은것들이 새롭고 신비롭게 느껴지는 웅장한 사원이다.
우거진 밀림속 왕궁 담벼락에 맞대어진 곳에, 아주 너른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의 정동쪽으로 길이 200m의 3열의 기둥들이 바치고 있는 돌로만든 긴 다리가 있다. 다리의 중간에 작은 신전 같이 생긴 석조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 옛날 이곳에서 연못과 사원을 둘러보며 앉아서 쉬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을 것이다. 다리를 건너 사원에 들어가기 전에 웅장한 돌로만든 담장인 성벽과 계단과 문이 나타난다. 이 벽과 사원 사이의 공간에 또 하나의 인공연못이 조성되었다. 성문을 들어서면서 마당에 가즈런히 놓인 돌로만든 방추형의 의자모양들은 돌다리를 받치던 석열주들이다. 커다란 연못의 돌다리를 건너서 사원의 성벽 안으로 들어서면 또 직사각형의 인공연못이 있고, 작은 돌다리를 또 건너서 계단을 올라야 비로서 (바푸온사원)에 들어가게 되는것이다. 사원은 425mx125m의 직사각형으로 기단이 만들어졌다. 남쪽과 북쪽으로 아주 가파르게 정상까지 오르는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여기 바푸온사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지이 중에 하나는 바로 '아치형의 회랑'이 사방으로 많이 놓여있다는 것이다. 기둥위로 점차 내어쌓기를 통해 만든다고는 하나, 아치형이나 돔형의 지붕을 만든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작은 아치형의 다리나 지붕을 만들때는, 초기엔 흙을 실제 모양으로 쌓아놓고 그 위에 돌을 밀어올려 맞추어 나갔다. 아니면 목재로 같은 형태의 틀을 미리 짜서 맞춰놓고 같은 방법으로 돌을 들어 밀어냈다. 이 당시의 앙코르유적 공사에서는 도르레를 이용한 목재 기중기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렇게 수없이 많은 긴 회랑들을 아치형태로 만들기에는 실로 엄청난 인력과 기술이 필요했으리라.
아치형의 회랑들은 어느곳에 있는 것이나 모두 아름다웠다.
현재 관광객이 올라갈 수 있는 정상부위에 사방으로 나있던 회랑은 거의 무너져있다. 안타까웠다. 그리고 바푸온의 가장 높은 상단기단은 훼손상태가 심해 도 이상 올라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아쉬웠다.
(바푸온)은 전체 앙코르유적군 중에서 가장 편안한 장소이다.
우선은 여타의 유적들처럼 뾰죽하거나 오밀조밀하지 않게, 피라밋 처럼 안정적인 구조속에 넉넉하고도 여유로와보이는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여행객이 즐겨찾는 곳은 맞지만, 다른 유적들에 비하면 한산한 편이다. 또한 상단부의 넓은 공간의 회랑에서 발치 아래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건물들을 볼 수 있고, 사방으로 넓고 푸른 정글을 바라다볼 수 있다. 아무데나 주저앉아 마냥 쉬었다가기에 정말 좋은 곳이다.
이 세상의 중심에, 그것도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쉬면서 우주만물의 조화를 관찰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바푸온)은 불교에서 말하는 상상속의 산인 '수미산' 신앙을 형상화해서 만들어졌다. 망망대해 같은 커다란 연못의 다리를 건너서, 성문을 통과하고, 다시 직사각형 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연못위의 다리를 건너 그제서야 비로소 '수미산'에 다달으게 되는 것이다. 우주의 중심이다.
'수리산'에 관한 이야기는 불자들은 모두 잘 알고있으리라 생각되기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성벽을 다라 사원의 외부를 한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성벽의 서쪽으로 가니 벽의 중간부분을 아직도 복원공사 중인데 탐방로의 중간에서 커다란 안내표지판을 만나게 되었다. 여행책자에서 보았던 유명한 장소였던 것이다.
돌아다 보니 과연..... 드러누워 계신 부처님의 상이 보였다. 서쪽의 성벽이 와불의 형태로 조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현장에서 육안으로 보니 단박에 확실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바오 위의 세장의 사진속에 와불형상이 담겨있다. 혹여 보이면 어느정도(?) 해탈을 한 시선이겠고, 아니면.......
바푸온사원의 북쪽 마당에 서면 눈앞에 왕궁으로 들어가는 고프라(탑 형태로 만들어진 문) 형태의 문이 나타난다. 이곳을 통과하면 바로 크메르왕국의 내궁이었던 장소인데, 현재는 사방으로 여기저기에 돌무더기와 주춧돌만 남아있을 뿐, 아유타이 칩입때 아주 철저하게 파괴되어 옛왕궁의 흔적조차 제대로 찾기가 힘들 정도있다. 석조건축물이 저정도로 파괴되었으니 주거공간이나 실생활에 사용했던 목조건축물들은 쉽게 불에타거나 부서졌으리라.
파괴된 왕궁의 잔해터를 거닐다 보면 정글 숲 저편으로 방금전에 돌아보고 나온 '바푸온사원'과 비슷한 형태를 갖춘 작은 사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왕궁 내에 지어진 '왕실 개인사원 이자 제단' 이었던 '피미아나까스'(Phimeanakas)가 있다. 역시 심하게 훼손된 상태이다.
크메르왕가의 혈통엔 뱀의 피라 흐르고 있다고 전해내려 오는데, 바로 그 뱀에 관한 전설이 서려있는 장소이다.
숲속으로 더 걸어들어가면 '쁘리아 빨리라이'(Preah Palilay) 지역에서 더 심하게 훼손된 석조건축물 잔해들을 만날 수 있겠된다. 힌두교 사원에서 작은 불교 사원과 창고 생활관 목욕탕 등의 왕궁 시설물이 있던 지역이다.
다시 고프라 석문을 통해 왕궁터를 바져나오면 이제부터 드넓은 지역에 탁트인 시야를 가진 연단과 마주치게 된다. 코끼리 테라스이다.
(코끼리테라스)는 '바푸온사원'의 입구 옆에서 시작하여 '문둥왕테라스' 직전까지에 이르는 길이 약300m에 달하는 일종의 사열대이다. 사열대 앞으로 드넓은 광장이 펼쳐져 있어서, 왕이 이곳에서 군대를 사열하거나, 백성들을 알현하거나, 축제를 여는 장소로 사용되었던 광장이다. 발코니처럼 생긴 이 테라스의 발아래 외벽으로 길게 주로 코끼리를 주제로한 부조가 새겨져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다.
30도를 훨씬 웃도는 무척이나 더운날이었다. 가히 살인적인 날씨라 해도 별반 무리가 아니지 싶다.
'앙코르유적투어'를 시작하는 첫날, 나는 오로지 (알코르 톰)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단숨에 달려왔다. 모또(오토바이택시)를 타고 '앙코르 왓' 앞에서 내려서 숲길을 걷고 또 걸었다. 종일 모또를 대절하거나 마차를 대절하는 방법도 있는데, 내가 보고픈 유적을 맘껏 보기에는 완전자유여행이 필요했고 나는 걷기를 택했다.
해자를 건너 (앙코르 톰)의 남쪽문인 웅장한 고프라에 도착해서 사면상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을때 가졌던 감홍은 결코 잊지못할 것이다.
그 옛날 원나라의 사신 주달관이 앙코르 톰의 웅장함을 잘 알 수 있는 기록을 남겼다.
“왕궁의 중앙에는 황금탑인 바이욘이 우뚝 서있고, 주변은 12개가 넘는 작은 탑들과 수백 개의 돌로 만든 방으로 둘러싸여 있다. 두 마리의 황금사자가 양쪽에서 지키고 있는 황금 다리가 동쪽으로 놓여 있고, 다른 쪽에는 여덟 개의 황금 부처가 돌로 된 방을 따라 늘어서 있다. 청동으로 된 황금 탑(바푸온)의 북쪽에는 바이욘보다 더 높을지도 모르는, 밑에 10개가 넘는 방이 있는 탑(피메아나카스)이 있다. 이 탑의 북쪽1/4리쯤에 왕이 기거하는 왕궁이 있다. 왕실 위에는 또 다른 황금탑이 있으며 이 탑들을 보고 외국에서 온 상인들마다 참 부유하고도 장엄한 앙코르제국이라며 감탄하였다. 성문의 앞에는 돌로 만든 큰 뱀을 껴안고 있는 거인상들이 있으며, 문은 4면에 얼굴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 탑문이다”
이 기록문을 읽고 늘 가슴에 담아놓고 가슴앓이를 하다가 찾아온 (앙코르 톰)이었다. 주달관의 마음이 곧 내마음이었다.
남문을 통과해 또 길고 긴 직선도로의 숲길을 걷고 또 걸어서 마침내 그렇게 고대하던 (바욘사원)을 만났다. 기적이 아니고서야.......
(바욘사원)에서 제법 오랜시간을 머물고 (바푸온사원)과 (왕궁)을 거쳐서 (코끼리테라스)까지.......
아직도 둘러봐야 할 (앙코르 톰)이 많이 남아 있었다. 바로 옆의 (문둥테라스)에서 북문 고프라를 봐야하겠고, 북문밖의 고프라도 가볼 예정이었다. 인근의 (동 바라이) 유적군도 모두 돌아봐야만 했다.
하지만...... 너무 강행군을 했다. 뜨거운 날씨에 몸도 마음도 이미 지쳤다.
집중과 선택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이미 점심때도 한참이나 지나있었다.
어차피 이곳에 다시 오긴 꼭 다시 올것이었다.
잠시 나무그늘에서 지도를 펴놓고 고심을 하던 끝에 결정했다.
'코끼리테라스' 한 가운데서 정동쪽을 향해 나있는 도로를 따라서 (승리의 문)을 나가겠다고.
그래서 걷고 또 걸었다.
(톰 마논)을 보고 (차우 싸이 떼보다)을 들르고 나서 2km 정도를 걸으니 (따 께우)가 나오고, 다시 2km 정도를 더 걸으니 (따 프롬)이 나온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다.'
이제까지 들렸던 유적들은 다음 '문둥왕테라스' 이야기와 '북문고프라'이야기때 다시 꺼내기로 하고.... 오늘은 이쯤에서 (따 프롬)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따 프롬)은 '브라마의 조상'이라는 의미로 '앙코르 톰'을 세운 자야바르만7세가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원이다.
그리고, 이 사원이 더욱 유명세를 톡톡히 타게 된것은 바로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영화 (톰 레이더)가 바로 이곳에서 촬영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원시의 정글속에 파뭍혀 있던 신비한 고대유적에 담신 전설같은 이야기..........
자. 이제 우리도 저 아름다운 석문을 통해 그 신비로운 세상속으로 들어가보자. 안젤리나 졸리를 따라........
현재 앙코르유적의 복원사업에는 세계각국의 자발적 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바푸온사원'의 경우는 프랑스가, 그리고 여기 '따 프롬'의 경우에는 인도가 적극 나서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미참여국가이다.
유적의 훼손상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나무뿌리가 사원의 지붕과 기둥을 감싸안거나 파고들어가 무너뜨리기도 하고, 또 떨어지면서 부서지기도 한다. 사암은 대리석 보다는 단단하지만 화강암에 비하면 약한 재질이기 때문이다. 사원의 어느곳을 둘러보든지 고대인들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위대함에 자연이 만들어낸 파괴성이 합쳐져서 참으로 미묘한 파괴와 융합의 이중성을 여실히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학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호가 급선무라는데 이견이 없다. 그래서 복구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이 복구작업에는 많은 인력과 시간과 기술과 자본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세계각국의 자발적 복구작업 참여를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지극히 일부의 여행자들은 다소 복구에 회의적인 시각이다. 인간의 창조와 자연의 파괴가 만들어 내는 이 순간의 절묘하고 신비한 광경이 곧 사라지게 될까봐 하는 아쉬움의 반증이다. 그러나 먼 후세까지 이 위대한 유산을 물려주자 한다면, 더 이상의 파괴가 이루어지기 전에 복구가 시급한 것이 사실이다.
현재의 복구작업은 단순하게 이런 수준이다.
복구가 필요한 유적의 전면과 후면, 측면과 위와 아래서 세밀하게 사진 촬영을 한다. 그리고 나서 실제유적과 사진에 돌덩이 하나하나마다 고유의 번호를 기록한다. 구분과 기록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나면 기계를 이용해 유적을 하나하나씩 분해한다. 파고들어있거나 감싸고 있는 나무뿌리를 제거한다. 그리고 나서 매겨진 번호 순서에 의해 분해의 역순으로 하나하나씩 조립해 나간다. 이것이 현재 시행되고 있는 최선의 복구방법이다. 하지만 아무리 신중을 기해도..... 완벽한 복원이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옛 고대인들의 기술과 솜씨에 기가막히고 감탄할 밖에......
사원의 이름과 복구지원국가는 말하지 않겠다. 현재 미완성이면서도 완전복구로 판명받은 유적이 있다.
한 국가가 20년 이상에 걸쳐서 초일류 기술자들을 동원해 사원 하나를 복구했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석조물들을 일일이 하나씩 사진을 찍고 번호를 붙이고 컴퓨터를 이용해 레고블럭 맞추듯이 복원도를 완성했다. 이 복원도를 기준으로 기술자와 장비가 동원되어 복구작업을 장장 20년에 걸쳐 진행했다. 지붕까지 복원이 이루어져 덮혔는데...... 거기에서 작업이 중단되었다. 뾰족탑까지 애초 사용되었던 석재들은 모두 마당에 남아 있는데...... 이 석재들이 더 이상 맞아들어가지가 않았던 것이다.
속된 표현으로 머리부분으로 만들어진 돌조각이 엉덩이 부분 조립하는데 대충 맞으니까 끼워 넣었고, 허벅지 부분 돌덩이를 목을 조립하는데 엇비슷하니까 먼저 끼워 넣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머리를 조립하는데 맞아들어가는 크기와 모양의 돌덩이가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컴퓨터로 찾고 또 찾아보니 엉덩이에 박혀있더라는 이야기쯤으로 대신 설명을 해보았다.
제대로 복원하자니 다시 해체하고 조립하는데까지.... 이제까지의 20년 가지고도 모자라겠다고 판명되어 그대로 두기로 했단다.
과연 고대인들은 이 돌조각 하나하나를 어떻게 깍고 다듬고 제자리에 가져다 맞추었을까?
그들이 가지고 있던 설계도면은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따 프롬)은 사암으로 된 담장의 길이만도 700mx1.000m에 이르는 결코 작은 사원이 아니다.
중앙 성소의 회랑의 중심으로 단층으로 된 길고 낮은 건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크메르건축의 특징처럼 이곳도 좌우 대칭의 구조를 띠고 있다. 내부로 들어갈수록 훼손의 정도가 심해져 일부구간은 아에 통행이 불가능한 곳도 있다. 원래는 동쪽문이 정문이었는데 진입로쪽이 파괴되어, 현재는 서쪽문으로 들어가서 동쪽 담장을 따라 돌다가 북쪽 복구가 한창인 장소에서 중앙 회랑을 통해 다시 서쪽의 훼손된 사면상의 고프라가 있는 곳으로 나오면 된다.
어머니에 대한 애절함으로 왕이 특별히 만든 사원이었음에 그 지위도 상당하였음인지, 이곳에서 발견된 산스크리트어 비문에 의하면 사원의 지위가 잘 나타나있다. 3.140개의 마을이 관할 구역이였으며, 사원 관리인으로 7만9.365명을 두었다 한다. 고승이 18명 관리가 2.740명 인부 2.202명 무희 615명을 두었다고 하니 새삼 그 규모와 위용이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 있겠다.
현재 페허인 상태로 남아있는 (따 프롬)은 신비함으로 가득하다.
독특한 볼거리로 여행자의 마음을 유혹하는 (따 프롬)의 매력이 한동안은 더 유효할것으로 보인다.
(다 프롬)은 비가오는 이른 아침에 방문하면 더없이 신비롭고 매력적인 여행지라고 나는 자신있게 권한다.
꼭 일기가 좋지않은 날을 골라 이른 시간에 가 보기를.......
---- 다음으로 이어서 앙코르유적 소개를 계속하겠습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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