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찾아간 호텔의 매니저는 연실 손을 내저었다.
'일주일 전에 예약이 모두 끝났어요. 새해 3일 까지는 방이 전혀 없어요. 바간을 통털어 방이 없을 거예요.'
전신에 기운이 쭉 빠져나가면서 갑자기 무릅이 후덜거렸다.
'어디 직원용 임시 숙소나 쪽방이라도 없을까요?'
'쪽방까지도 모두 이미 나갔고, 우리 직원들도 여기 복도에서 돗자리 깔고 잘거에요. 바간 일대에는 이미 숙소가 동이 났어요.'
다른 오토바이를 섭외해서 중간 중간에 들려보며 밤길을 달려 올드바간으로 이동해 보았는데도 어디에도 방이 없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뉴 바간으로 향했는데도 '적어도 일주일 전에 예약을 하셨어야지요' 하는 대답만 되돌아 왔다.
나의 자유배낭 역사에 최악의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구상에 수없이 많은 일출과 일몰 뷰포인트가 있지만, 여기 바간의 일출과 일몰 또한 사진을 좀 찍는다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일생에 한번은 꼭 찾아가고픈 그런 너무도 유명한 여행지가 아니었던가. 거기에다 저무는 해의 마지막 일몰과 다가오는 해의 첫 일출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명소라면...... 한번쯤 미리 짐작이라도 했어야만 했다.
내가 출발하기도 전이었던 크리스마스 이브에서 부터 새해 삼일째 되는 날까지는 이미 일주일 전에 모두 매진이 되었다는 결론이었다.
사나흘에서 좋으면 닷새까지는 머물고자 했던 나의 스케줄에 일대 재앙이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토바이 기사에게 부탁해서 낭우 중심가의 처음 방문했던 호텔로 다시 데려달라고 부탁을 해서 되돌아갔다. 좀 전에 이미 안면을 익혔던 사람이 그래도 조금은 수월하겠다는 생각에 다짜고자 찾아가서는 선처를 부탁했다.
여기저기 전화를 해 대더니만 골목 밖으로 내 손을 잡아끌고 나서서는 어쩌구저쩌구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골목 저쪽의 어디를 찾아가라고 알려준다. 간간이 튀어나오는 영어단어를 근거로 나름 추측을 하면서 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나섰다. 다운타운이라는 개념이 없이 그냥 한길을 따라 쭈욱 가면서 이 골목에 숙소 하나, 좀 더 가서 다른 골목에 숙소 둘, 뭐 대충 이런 시골동네 분위기다.
암튼 어찌어찌 해서 찾아가 방금 전 호텔에서 받아 온 명함을 내밀고 사정을 설명했는데, 방이 아니라 자리가 딱 하나 남았다는 대답이다. 먼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도미토리인 가보다' 여기고 따라가 보았는데...... 아뿔싸.
여행자로 이미 가득찬 방에 침대형태의 도미토리가 아니라, 군대 막사처럼 옆으로 길게 늘어선 평상에 그냥 낑겨서 드러누워 자는 형태다. 태어나서 처음보는 외국인들과 그냥 섞여서 피부를 엉켜가며 드러누워 자야 한단 말이다.
절대 불가.
게스트하우스 매니저에게 양해를 구해 무거운 배낭을 맡겼다.
약간은 홀가분해진 차림으로 밤이 점점 깊어가는 바간의 밤거리 속으로 숙소를 구하러 비장한 각오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를 가나 이런 똑 같은 안내 표지판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기어코 안으로 들어가서 매니저를 만나 방이 절대 없다는 사실을 확인 했다.
온몸은 땀과 먼지에 쩌들었고 허기까지 몰려들며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낭우의 삼거리 언저리, 그래도 가장 번화가라 할 지점의 한 호스텔에 '방없음' 간판을 밀치고 들어가 사정을 설명했는데....... '혹시 모르겠으니 조금 기다려 보라'고 한다. 방은 예약이 모두 끝나서 없는 상황인데, 1인 객실의 한 손님이 여기 바간에서 아는 일행들을 만났단다. 지금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친구들이 머무는 좋은 호텔로 옮길 생각이 있다고 들었다는 것이다. 방을 뺄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나는 매니저에게 내 패스포트를 맡겼다. 그 사람이 돌아와 방을 뺀다면 내가 그 방을 얻겠다는 암시였다. 그리고 나서 또 다른곳으로 방을 구하러 나섰다. 대여섯군데를 더 돌았는데 역시 방을 없었다. 정말로.... 정말로.... 안되면, 나도 오늘 하루는 어디 복도에서라도 재워달라고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 각오로 발걸음을 돌려 되돌아 왔는데........ 방이 빠져 있었다.
이층에 올라가 방을 확인 했는데....... 오.마.이.갓.(설명 불가...... 차후에 다시 설명)
내용이야 어떻튼 일단 1인 객실을 마련했다는 사실에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태어나 여행하면서 만난 가장 작고 최악의 객실이었지만 어쩌랴....... 1박에 10$씩 이틀을 예약했다.
서둘러 아까의 게스트하우스로 가서 배낭을 되찾고 돌아와 1층 복도 끝에 있는 샤워실에서 우선 씻었다.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배낭 정리를 하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방을 구하러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행자의 목소리가 연실 들려온다. 바로 옆건물의 레스토랑에서 늦은 식사를 하는 중에도 연실 커다란 배낭을 둘러메고 꾸역꾸역 몰려드는 여행자들, 그리고 방을 구한다는 그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방금 전까지의 바로 내 모습이었다.
좁은 숙소로 들어와 자리에 누웠어도, 바로 큰길가 2층이었기에, 여전히 꾸역꾸역 몰려들고 방을 찾아 헤매는 여행자들의 한숨소리가 끊이질 않고 들려온다.
'두평짜리 세상에서 가장 후줄건한 숙소일 망정 내 마음대로 내 침대에 누워볼 수 있다는게 바로 이런 감격이로구나.'
'바간에서 예약없이 불쑥 찾아와 이렇게 침대를 차지하고 누울 수 있다는 것이 모두...... 조상님들의 크신 공덕 때문에 내게 돌아오는 은덕일까?'
수많은 불탑들 중에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불탑과 사람이 위층에 올라갈 수 있는 불탑들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다.
그 중에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불탑들 마다 몰려든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왜 일까?
지금 그들이 저렇듯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오로지 지금 그것은 단 하나.......
서서히 먼동이 터 온다.
순간 사방에서 사람들이 탄성이 터져나온다.
바간의 아침이다.
(위)의 사진은 바로 쉐산도 파고다(Shwesandaw Pagoda)의 모습이다.
새벽같이 서둘러 쉐산도 파고다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2016년의 마지막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길이다. 내일은 새로운 해가 뜰 것이다. 새로운 새 해가.......
(쉐산도파고다)는 미얀마에서 최초로 통일왕국을 건설한 어노여타왕이 자신의 최초 대역사로 만든 사원이다. 불교왕국을 세우긴 하였으나 아직 힌두이즘이 많이 남아있던 시기라서, 파고다 하부의 각방향으로는 힌두교 신들의 조각이 놓였고, 부속건물에 와불을 모셨다.
좁고 어둡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상층부에 올라가면 사방으로 드넓게 펼쳐진 바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질녁이면 바간에 머무는 대다수의 여행객들이 바로 이곳에 모여들어, 방금전의 내모습처럼 놀라움속에 화려하고 장엄한 일몰을 감상하면서 바간 여행의 하루를 마감하곤 한다. 뿐만 아니라 방금 내가 목격한 놀라운 광경 처럼, 쉐산도 파고다는 일출의 명소로도 아주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이처럼 일출과 일몰을 모두 같은 장소에서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는 이곳 쉐산도파고다가 거의 유일하다 하겠다.
비록 천년의 세월에 많이 허물고 색이 바래지긴 하였으나 쉐산도는 오늘도 역시 장엄하고 무척이나 아름답다.
바간에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길거너 가서 오토바이 대여점을 찾아 E-BIKE를 렌트하는 일이다.
며칠 전까지 6.000~7.000짯 이면 대여가 가능했다는데,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대목을 맞은 장사치들의 횡포는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제까지는 난 모르겠고 오늘은 무조건 8.000짯(8.000원) 이란다.
여기 이 e-bike가 지금 바간에서는 대세이다. 전기충전으로 이용하는 소형 오토바이인데, 바간에서는 특이하게 여행객에게 일반 가솔린 오토바이를 절대 대여해 주지 않는다. 환경과 안전 뭐 이딴 이유에서란다. 이 전기 바이크는 소형이라 국제운전면허 허가에도 적용받지 않기에 그냥 자유롭게 타고 다니면 된다. 단 배터리를 중간중간 충전하거나 절약하면서 타야한다는 전제가 따라 붙기는 하지만 말이다.
바간을 둘러보는 방법은 몇가지가 있다.
택시를 대절해서 타고 다니는 방법. 마차를 대절해서 타고 다니는 방법.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방법. 그리고 e-바이크를 렌트하는 법.
그 중에서 나는 e-바이크를 선택했고 또 이것을 이용한 여행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그럼 바간여행을 어떻게 하느냐?
아주 쉽다.
한때는 400만개의 파고다가 실재했다고 하는 불탑의 도시 바간. 프랑스 식민시절 당시까지 1천년을 넘겨 견뎌온 파고다 수를 실제로 파악해 보았더니 2.227개의 파고다가 바간 지역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 후로 지금에도 현세의 가장 큰 공덕을 쌓고자 불탑을 조성하여 숫자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수 년에 한번씩 할퀴고 지나가는 재난으로 인해 그때마다 수백개씩의 파고다가 피해를 입고는 한단다. 2016년 10월의 지진으로도 약 170여개의 파고다가 전손 내지는 일부 파손되었다.
바간 지역의 파고다는 낭우 지역을 벗어나면서 시작하여 올드바간에 이르는 사이에 가장많이 분포되어 있다. 다음으로가 올드바간에서 뉴바간 사이에 놓인 군락지들이다.
사방으로 일백리씩...... 동쪽으로 40km, 서쪽으로 40km, 남쪽으로 40km, 북쪽으로 40km 정도의 너른 지역에 산재해있듯이 불탑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사방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자전거든 오토바이든 타고 다니면서 길 양편으로 무수하게 늘어서 있는 불탑들을 이곳저곳 아무거나 마음에 드는대로 찾아들어가서 구경하면 된다는 말이다. 사방에 널린게 불탑이니 그냥 사방 쏘다니다 보면 다 둘러보게 되는 것이란 말이다.
길을 따라 나가는데 한참을 나아가도 점차 불탑들이 줄어들더니 아에 보이질 않더라 싶으면 곧바로 돌아서면 된다. 불탑이 한참동안 안보인다면 그것은 바간지역을 벗어났다는 뜻이다.
더 쉽게는 숙소에서 주는 바간지역 지도 프린트를 통해 유명 파고다 몇개를 염두에 두고 그 사이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마음 내키는대로 돌아다녀보면 된다는 말이다. 일단 시작해 보면 아주아주 쉽다.
사방으로 뚫려있는 호젓한 시골숲길을 그냥 산책하듯 나아가면 된다. 가다보면 길 양편으로 지천으로 널린게 불탑이다. 2천개가 훨씬 넘는 불탑을 모두 돌아보겠다는 생각은 아에 접도록 하자. 그냥 마음 내키는 곳들만 골라서 찾아가보면 된다.
하나의 팁을 말하자면....... 기념품이나 음식 파는 상점이 밀집해 있고 차량이 우루루 모여있는 곳이면 그만큼 유명한 파고다가 틀립없다. 그런곳에 가면 수많은 현지인들이 찾아와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그런곳이 바로 영험한 불력이 살아있는 유명한 파고다이다.
해가 방금 솟았음에도 벌써 한낮같은 무더운 열기가 느껴진다.
숙소로 돌아왔다.
희미한 조명이 아닌 눈이 부신 햇쌀아래서 내가 지난밤을 보낸 내 방의 실체를 제대로 보고나니 절로 터져나오는 실소를 금하지 못하겠다.
채 2평이 못되는 몽색한 방.
타일이나 장판 같은것은 아에 없고, 냉방도 달랑 구식 선풍기 하나에 흔한 TV 하나도 없다.
합판을 붙여 만든 출입문이니 아에 방음 이딴것은 생각도 말고, 보자기 쪼가리 같은 커튼 뒤로는 틈새 벌어지는 유리창에 밖은 바로 먼지 폴폴 날리는 낭우의 번화가 도로.
벽면의 선반은 티비 거치대가 아니라 여기 토속신앙의 기도실로 타다남은 양초랑 향이랑 쬐끄만한 부처님이 올려진 선반, 그나마 오가면서 자꾸 이마가 부딪혀서 내가 화장지를 늘여트려 놓았음. 디지게 세게 두번 부딪힘. 초등학생용 책상걸상 하나.
혼자 드러누우면 옆에 겨우 배낭 놓을 수 있는 공간뿐인 스폰지형 나무침대.
끝.
1박에 10$. 화장실 샤워실은 1층 내려가서 복도 끝에..... 그래도 3개씩 있음.
직원들은 더없이 순박하고 친절함.
그리고.........
차림은 더없이 엉성하고 볼품없어 보이지만......... 정말로 정말로 맛있던 조식.
맛있는 조식과 친절한 직원덕에........ 최종 사용후기는........ '대체로 만족'. 10점 만점에 ...... 7점.
조식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드러누워 푹 쉰다.
낮에는 본격적인 파고다 투어를 나가야 하니까.....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99번지에 가면 '탑골 공원'이 있다. 국보 2호로 지정된 (원각사지 10층 석탑)이 놓여있는 이 공원의 본래 이름은 다름아닌 '파고다 공원' 이었다.
여기서의 파고다(Pagoda)는 '불탑'을 의미하는 영어식 표현이다.
이 '파고다'를 미얀마에서는 '당연히 존경받아야 마땅한 것' 이라는 의미의 '파야(Phaya)'라 부르는데 '부처님'을 뜻하는 같은 의미로도 쓰인다.
이런 의미에서 '파고다'란 부처님의 사리와 유물. 또는 불경 등을 묻고 이를 보관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조형물이라는 의미이다. 거듭 다시 말하자면 '파고다'는 '부처님이 기거하는 집' 인 것이다.
미얀마에서는 파고다(Pagoda)를 대개 3가지로 구분하는데, 제디(Zedi)와 파토(Phato)와 떼인(Thein) 이다.
'제디'는 '성스러운 보관소'라는 뜻으로 부처님의 사리나 불법이 아주 높은 고승들의 사리등을 보관하는 장소인 다토제디(Dhato Zedi)의 준말이다. 이런 파고다들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밖에서 경배만 올릴 수 있다.
반면 '파토'는 파고다 안에 부처님을 모시는 감실이 별도로 있어서 신도들이 안까지 들어가서 경배를 올릴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면 '제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파토'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떼인'이란 승려들이 불경을 공부하며 정진하는 '수도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수도원에서는 불경스러운 행동을 금하여야만 하는데, 그중 으뜸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맨발'로 다녀야만 한다는 것이다. 운동화나 샌들은 물론 양말이나 스타킹도 반듯이 모두 벗고 온전한 맨발로만 경내에 들어갈 수 있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미얀마 사람들에 맨발이 아닌 불경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화를 벌컥내니 유념하여야만 하겠다.
또한, 만달레이의 마하무니 파고다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짜익티요 파고다에서는 여자들이 불상에 가까이 가거나 만지는 것을 절대 금하고 있다. 여기에는 외국에서 여행온 여자여행객의 경우라도 에외가 없다. 절대 만져서는 안된다. 금박을 입히는 시주도 안된다. 굳이 금박을 입히고자 한다면 누군가 다른 남자나 승려의 손을 빌려서 대신 금박을 입히도록 하여야 한다. 부처님 앞에서 여성은 일단 윤회설에 입각해 전생에 죄를 지은 신분인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2.000여개가 넘는 바간의 파고다들을 둘러보는 일만 남았다.
높이 61m로 바간에서 가장 높은 땃비튜 사원(Thatbinnyu temple) 이다. 불교 원산지인 인도 북부지방의 불탑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조금 전의 설명대로 승려들이 거주하면서 수도에 정진하는 '떼인'의 의미를 가진 사원이다.
총 5층으로 이루어졌는데 1.2층은 승려들의 거처이며, 3층은 아주 작은 파고다들을 만들어 전시하였다. 4층은 도서관으로 만들어졌으며, 5층은 부처님의 유물을 보관했다. 1층은 4면으로 각기 다른 부처님상을 만들어졌고, 현재는 1층만 개방되어있어 사원을 모두 제대로 둘러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무척 크고 대단한 위용을 자랑한다.
쉐지공 파고다(Shwezigon Pagoda)는 '황금모래언덕 위에 세워진 절' 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데, 가히 바간지역 불탑군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다. 부처님의 뼈와 사리가 보간되어 있다고 한다.
어노여타 왕이 스리랑카에서 부처님 사리 4개를 이곳 바간에 가지고 왔다 한다. 왕은 네마리의 코끼리 등에 부처님 사리를 나누어 싣게하고 동서남북 네방향으로 보내고 나서, 코끼리들이 멈추는 곳에 파고다를 지어서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기로 했다.
하여 가장 북쪽으로, 올드바간에서 보면 낭우 인근의 가장 먼곳에 코기리가 멈춘자리에 바로 이 (쉐지곤 파고다)를 세웠다고 한다.
남쪽으로 가다가 코끼리가 멈춘 자리에는 (로까난다 사원)이, 동쪽으로는 (뜨유윈따웅 파고다)가, 서쪽으로는 (딴지따웅 파고다)가 생겨난 것이다.
하여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미얀마 속설에는, 아침일찍 해가 뜰때 길을 나서서 정오때가 되기 이전에 네군데의 사원을 모두 방문하고 꽃을 바치면 그사람이 바라는 소망과 하는 사업에 부처님의 커다란 축복이 내린다고 믿기 때문에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를 믿고 아침 새벽에 순례의 길을 맨발로 걸어서 길을 나서는 사람들이 지금도 무척 많다고 한다.
미얀마의 불탑들을 돌아보면서 가장 크게 나를 당황시켰던 것은 만달레이에서 본 것처럼 무리지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불탑군 지역의 탑들이 콘크리트로 약간은 엉성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시멘트로 만든 유적은 나를 엄청 당혹스럽게 혼란으로 밀어 넣었다.
마치 70년대 초 중반에 우리나라 새마을사업의 초기에 시골 여기저기에 시멘트로 엉성하게 만들어 놓은 준공기념비나 크로바를 그린 4-H 탑을 연상 시켰다. 하나의 콘크리트 덩어리는 별볼일이 없겠으나, 수십개 수백개가 모여 군락을 이룸으로써 보여주는 색다른 이색적인 풍경정도의 느낌이었다. 물론 적별돌을 찍어서 쌓아올린 대부분의 미얀마 불탑을 보면서도 별반 그 이상의 감동이나 기대는 생겨나지 않았다.
산이 없고 돌이 귀한 미얀마에서 벽돌을 찍어서 불탑을 만드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겠으나........ 비록 바간에 와서 아주 커다란 불탑과 사원을 보며 위용에 감동하기도 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베트남 참파왕조들이 남긴 조형미가 빼어났던 같은 벽돌유적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지금 천년의 세월을 견뎌낸 바간의 불탑군들 대부분이 붉은 황토색 빛깔의 모습으로 숲속에서 경이로운 풍경으로 보여지고 있지만, 상태가 그나마 좋은 많은 파고다들을 살펴보면, 우선 적벽돌을 쌓아서 만든 후에, 그 위에 시멘트를 덧입혀서 표면 미장을 하면서 그 위에 조금 이색적인 모양들을 더했다. 그리고 시멘트 위에 흰색 석회를 발라서 마감을 하거나, 아니면 금박을 입혀서 황금탑을 만들었던 것이다. 훼손되기 시작하는 불탑이나 많이 회손된 불탑에는 여지없이 시멘트의 흔적들이 그대로 매달려 있다. 차라리 오랜 세월에 덧칠이 모두 벗겨져서 붉은 황토색만 남은 불탑이 그나마 아름다워 보인다.
한마디로 유명한 바간의 풍경은 풍경이고...... 미얀마의 불탑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한 소승불교의 특징인지, 아니면 부처상을 만들때도 그나라 그지역의 성격이나 그나라 사람의 특징이 스며들었음인지..... 중국을 포함한 동남아 어느나라의 불상이든지...... 하나같이 모두가 못생겼다. 어찌보면 무섭기까지 하다.
온화하고 자애스러운가 하면 위엄까지 내보이는 한반도의 불상만큼 아름다운 불상은 여지껏 본적이 없다.
온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의 부처상이 가장 아름답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석굴암의 부처상보다 아름다운 부처는 이세상에 없다.'
어디를 가나 흔한듯 그냥 사방 아무데나 방치되듯 널려있는 불탑들......
그러나 사실은...... 내세에서의 극락왕생을 열망하면서 이승에서의 최고 공덕을 쌓고자 누군가 한사람 한사람의 지극정성으로 지어진 것들이 아닌가.
윤회가 무엇이건데..........
극락왕생이 과연 무엇이건데..........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건축물들이나 유물들의 배경에는 지배자의 강압과 요구, 노비와 전쟁 포로들의 노역, 백성들의 강제부역의 결과라는 평가가 뒤따르고 있는 시각에서 보자면, 여기 미얀마나 바간의 불탑군을 보자면 다행이 그런면에서는 비껴나 있다고 보아야겠다.
내세의 복을 구하기 위해 내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쌓아올린 불탑들이니까 말이다. 강요하거나 가아제가 동원된 불탑으로는 공덕을 절대로 쌓을 수 없다는 것이 미얀마 사람들의 가치관이니까 말이다. 그러기에 남의 공덕을 시기하여 부러 불탑을 훼손하는 경우도 없다.
다만 부처님을 시기하는 '지진'이라는 놈이 가끔 말썽을 부리는것 말고는 말이다.
아직도 실제로 사용할 수 있을만큼 굳건하게 버티고 서있는 목조건축물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대여섯대의 마차로 여행하는 무리들이 몰려왔다. 나이어린 동자승과 함께......
고급 카메라로 중무장한 이들 여행객들이 동자승을 앞세우고 사진찍기에 열심이기에 다가가서 뒷전에서 두장을 찍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내가 분명하게 알아 들을 수 있는 말로 이렇게 말했다.(그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이미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우린 지금 돈을 지불하고 같이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 겁니다. 돈을 지불하고 함께 다니면서 찍으실래요?'
그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시야를 돌려 여행객들을 위해 포즈를 취해주고 있는 동자승의 표정을 살펴 보았다.
힘들고 지쳐 보였다.
돈으로 작품이 탄생한다고 생각하는 이 사람들....... 고귀한 아름다움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 사람들..........
속 깊은 곳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전 그런사진 안찍을겁니다. 원하시면 본의 아니게 지금 두장 찍었는데 여기서 당장 지워보이겠습니다.'
그 남자는 더이상 아무말도 내게 하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셔터를 누루기 시작했다.
침을 탁 하고 뱉지는 못했지만....... 뱉고 싶었다.
나는 얼른 발걸음을 돌려 바이크를 타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슬픈 동자승의 모습이 여운처럼 눈앞에 한참을 어른 거렸다.
'어쩌면 동자승이 아닐지도 몰라. 저런 인간들 상대로 먹고 살려고 머리 깎고 승복만 걸쳤는지도 몰라........... 쓰벌. 기분 드럽네.......'
바간에서 이런 광경은 다음날도 목격하게 된다.
인레호수 초입에 들어가면 어떻게 알아 보았는지 한국여행객들을 용하게 알아보고는 다가와서 물고기 잡는 어망을 들어서 나비모양을 만들어 주고, 갖가지 포즈를 취해주는 어부 형제가 있다. 그리고나선 팁을 요구한다. 고기잡이로 살아가는 어부에서 모델로 전업을 하게 된것이다. 그런 고만고만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사진들이 여기저기 사방에서 멋진 사진으로 둔갑해 유포된다.
글쎄..... 난 그냥 여행을 즐기고 싶다. 그 여정에서 우연처럼 다가오는 일이나 풍경에 자연스레 셔터를 누룰 수 있는 정도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이럴땐 내가 한국여행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다.
누군가 우리나라 정신대 할머니들의 코앞에 다가와 호기심으로 셔터를 누른다면 결코 유쾌하지 않을 나 이기에...... 그분들의 고통이 느껴지고 그분들의 한을 이해하고 난 후에, 그 진실을 널리 알리고 호소하기 위해서 셔터를 누룬다면 나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우리가 먹고살만해 진것이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민족의 천성이 인간의 존엄성을 다분히 이해하고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모습이 아니었나?
시간을 살펴보니 점심시간이 지나도 한참이나 지나있었다. 숙소에서 오후 투어를 시작할때가 점심시간이었다.
개운치 않은 기분도 달래고 잠시 쉴 요량으로 책자에서 보았던 미얀마 전통음식을 제대로 맛볼수 있는 집을 찾아갔다.
여행객들에게 미얀마 전통음식점으로 가장 유명한 집이라 했다. 분점도 내었단다.
여러가지 미얀마 음식들이 접시에 담겨 부페식으로 테이블에 한상 가득 차려진단다. 맛있게 먹다보면 반찬이나 밥이 무한 리필로 접시가 비면 다시 가져다 준다고 했다. 찾아가기가 힘들다 했는데 나는 단박에 아주 쉽게 찾아갔다.
식사비도 아주 저렴해서 1인 3.500짯(3.500원)이라 했는데, 실제 찾아가니 4.000짯으로 인상되어 있었다.
테이블을 차지하고 주문을 했는데......... 아뿔싸.
오늘 점심장사가 끝난 시점이라 밥과 기본 반찬으로 식사는 할 수 있겠는데 제대로 된 정식 차림은 아니되겠단다. 2시간 정도 후에 오면 미얀마 정식을 먹을 수 있단다. '아이고야. 미얀마 정식이 뭔지는 몰라도 그걸 먹으려고 2시간을 더 참았다가 다시 와?'
그냥 식사나 하게 있는것으로 다라고 했다. 2.500짯에 제공해 주겠단다.
음식이 나왔다.
헐.
그냥 허기만 면했다..........
마치 베트남 후에의 참파유적에 시멘트를 발라놓은것과 흡사한 (우 뻘리 떼인 ; U Pail Thein)은 이색적이면서도 아주 가치있는 독특한 건물이다. 승려들이 기거하면 정진하는 도장이라는 의미의 '떼인'을 붙인 이곳은 '우 뻘리'라는 미얀마에서 최고로 명망이 있던 고승의 이름에서 따온 사원이다. 수도승(Koyin)이 정성껏 준비한 보시물을 가지고 이 사원에 들어가 자신의 불심을 드러내놓고 이제부터 수도자(Pongyi)가 되겠다고 서약하는 성스러운 장소(Ordination Hall) 바로 여기 (우 뻘리 떼인)이다. 이 과정을 거쳐서 열심히 정진하고나면 그제서야 바야흐로 정식승려(Arahant)가 되는 것이다. 그만큼 이 장소는 대단히 성스러운 자리였던 것이다.
내부에는 바면으로 벽화와 큰부처와 작은 부처상이 하나씩 있는데 관리자가 상주하며 철저하게 사진촬영을 제한하고 있다.
2천개가 훨씬 넘는 바간의 파고다군을 돌아본다는 것. 10%만 잡아도 200개가 넘음이며 5% 잡아도 100개가 넘는다.
이틀동안 영심히 둘러보았는데..... 바간에서 중요한것은 그 하나하나의 사찰 개요가 아닌것 같다.
수많은 불탑이 모여서 (파고다군)을 이루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불탑들이 드넓은 벌판의 숲속에 분포되어 있으면서 아침 저녁으로 놀라운 풍경의 일출과 일몰을 여행객들에게 선물로 안겨주면서 황홀한 모습의 장관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보다 중요한 사실일 것이다.
더군다나 결울철인 건기임에도 한낮의 온도가 33도 34도를 오르내리는 폭염과, 1년중에 가장 여행객이 북적이는 시기에......
그 유명한 (아난다 파고다)를 둘러보면서도 주변풍경 서너장을 찍었을 뿐, 정작 거리에 따라 온화한 표정에서 엄중한 표정으로 바뀐다는 부처상을 스쳐가면서 구경은 하였어도 사진에 담을 수는 없었다. 어마어마한 인파를 뚫고 그냥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힘겨웠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바간여행은 힘에 겨웠고 썩 만족스럽지 못한 그런 경우였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부연설명 없이 그냥 사진으로 쭈욱 넘어가야 하겠다.
다나카를 발라보는 젊은 일본 여행객에게 박수를 보내준다. 귀엽다.
이제 서서히 바간의 일몰을 보러 뷰포인트를 찾아나서는 중에......... 또 아뿔싸.
e-bike가 그만 멈추어 서 버렸다.
바이크를 끌고 바로 옆에 있던 오토바이 센터로 갔다. 직원이 점검을 하더니 배터리와 구동장치 사이 연결부위에 문제가 있단다. 그런데 이건 전기오토바이기 때문에 일반 센터에서 고칠수가 없고, 처음 렌트한 대여점에서만 처리할 수 있는 전기장치 결함이란다.
난 여행중에 로밍을 하지 않는 습관이라, 센터 직원이 자신의 핸디폰으로 대여점에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조치를 해주겠다니까 저쪽에 평상에서 좀 기다려야 하겠단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도로 저만치 떨어진 평상에 올라가 그대로 벌렁 드러누었다.
미먄마던 바간이던 무슨 상관이람? 차지하고 드러누우면 다 내차지지. 나무 그늘에 산들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한없이 편하게 쉬기 시작했는데....... 그만 이 시간이 한시간을 넘겨 버렸다. 대여점에서 사람이 왔을때는 이미 사방이 어두워져 있었다.
바간에서 보는 12월 31일의 일몰?
저만치 물건너 갔다.
고장난 오토바이를 함께 트럭 택시에 싣고 밤길을 달려 숙소로 돌아왔다.
왜 미얀마는...... 바간은..... 나에게 이런 시련만 안겨주는걸까?
12월31일의 아침과 저녁에는 구름이 잔뜩 끼었는데..... 과연 내일은?
--- 나머지 바간여행과 새해 첫날의 일출과 일몰은 다음 이야기에서 이어서........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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