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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알 럽 트래블 /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미얀마의 민낯을 보다

by 피안재 2017. 1. 24.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거리로 나섰다.

  제쪼(Zegyo)에 가보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제쪼란 '중앙시장'이라는 의미로서 만달레이의 제쪼는 규모면에서도 미얀마에서 꼽히는 이름난 시장이다.  새벽부터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생필품들이 모여들어 거래가 이루어지고 해지기 전에 파시가 된다.  야간에는 야시장이 같은 자리에서 펼쳐진다고 한다.

  그나라 사람들의 참모습과 생활의 단면을 보기위해서는 이런 새벽시장만한것이 없다는 것이 나의 평상시 생각이었기에 오늘도 새벽시장 구경을 위해 호텔을 나섰다.

  나일론 호텔에서 한 불럭을 걸어가면 영국식민시대에 빅토리아여왕 즉위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시계탑이 보이고,  이 시계탑에서 남쪽으로 도로를 따라 길고도 빼곡하게 늘어선 것이 바로 제쪼시장이다.  수많은 인파와 각종 물품들이 몰려들다 보니 요즘은 인근의 양쪽으로 한골목씩 확장이 되어 장이 상설적으로 서고 있다.

  이곳에서 거래되고 있는 공산품의 거의 대부분은 모두 중국산 제품이라는 설명을 호텔에서 들었다.

  새벽부터 정말로 사람이 많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이미 장사채비를 갖춘 상태였고,  이 혼잡하고 혼란스러운 좁은 틈새로 끊임없이 트럭버스가 몰려들어 온다.  그러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쏟아놓는다.  인근의 시골에서부터 새벽시장을 보려고 서둘러 트럭을 타고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다.

  어떻게 보자면 식전댓바람부터 무척이나 시끄럽고 소란스럽고 어수선하다.

  그런데 이 소란을 가만히 살펴보면은 그 속에 미얀마 사람들의 진솔한 삶이 담겨있다.  그들은 바로 이 소란속에서 나름의 삶을 영위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알 수 없는 모습들이다.  대단히 신기한 풍경이다.

  거기에 모든 사람들이 해맑은 웃음을 띠고 있다.

  가진것도 없고 힘에 겨운듯 이리 저리 쏠려 다니고 있는 지구상 최고의 절대빈국 국민들의 지친 모습처럼 보이지만,  분명 그들의 표정에는 온화하고 행복한 미소가 자연스레 피어나고 있었다.

  참 알수없는 나라가 바로 미얀마였다.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아주 나이어린 꼬마들이 일찍 생활전선에 뛰어든 모습과,  꽃을 파는 가계가 여기저기 제법 많이 눈에 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만큼 실제로 새벽부터 꽃을 사서 안고가는 사람들이 많다.  얼핏 이들의 생활수준을 생각하면 꽃가계는 어불성설일것도 같은데  실제로는 꽃시장이 성업중이다.

  카메라를 들고 이들의 모습을 담느라 여념이 없는 여행자에게 꽃파시는 할머니가 장미꽃 한송이를 손에 쥐어준다.  코로 가져가니 향이 무척 진하다.  한참을 들고 다니다가 아주 귀엽고 예쁜 꼬마를 만나 그에게 선물로 꽃을 건네주었다.  환하게 웃는 녀석이 정말 귀엽다.

  내가 정말로 이해못하는것 중의 하나인 천연화장품이라나?  햇볕에 끄을리는것을 막아주고 모공의 독소를 빼주고 피부를 하얗게 미백시켜준다는 타나카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얼굴에 바른다.  그런데 정말로 안이쁘게 보인다.  왜 바르는지 알 수가 없다.

  아침새벽 온도가 19도인데 춥다고 너도나도 긴옷이나 두터운 옷을 꺼내입은 사람들.  아침시장을 둘러보는 내내 반바지에 반팔 차림은 오로지 나 하나뿐........ '안 춥냐'고 물어오는 사람도 있는데.......  '난 더워'....... '우리고향엔 지금 펑펑 눈이 내리고 있대.'

 

 

 

 

 

 

 

 

 

 

 

 

 

 

 

 

 

 

 

 

 

 

 

 

 

 

 

  부처님의 길을 따라 욕심없이 순박하게 살아가는 살아가는 신비의 나라 미얀마.  그리고 황금의 나라 미얀마.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은 모든것이 낯설고 생소하기만 하다.

  도대체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저렇게 빈곤함속에서도 피어나는 은은한 미소는 무엇이란 말인가?

  저자거리에서 펼쳐지는 생업전선의 대부분은 거의 여성들이다.  남성들은 주로 오토바이나 트럭운전하는 모습을 통해 보거나 길거리 음식점에서 차를 마시거나 작은병의 럼주를 얼음물에 타서 칵테일로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선으로는 미얀마 사람들은 현실세계에서의 힘듬이나 궁핍함에 대하여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한다.  그 중심에는 미얀마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테라바다 불교'의 영향에서 찾을 수 있다.  테라바다불교관 속에서 현세는 그저 더 나은 세계로 가기위해 일시적으로 머무는 하나의 짦은 과정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현세에서 커다란 부를 이루거나 권세를 누리거나 땀흘려 죽어라 일하는 것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라는 가치관이다.  그저 열심히 기도하고 보시하고 공양하고 공덕을 많이 쌓아 부처를 닮아가면 내세에 가서 그 은덕으로 인해 풍족하고 넉넉한 영원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믿는것이다.  그중에 최고의 공덕이 바라 스스로 불탑을 쌓은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승에서의 최고의 공덕을 쌓기 위해 너도나도 여유가 있으면 어디에든 불탑을 쌓는 행위로 옮겨지고,  이것이 미얀마에 수없이 많은 불탑이 생겨난 이유이다.

  이들과는 다른 종파로 동북아시아에 전해온 대승불교에 속하는 우리나라 불교관 속에도 내세에서의 삶을 최고의 덕목으로 치는 '미륵신앙'이 이들과 비슷한 불교관이라 볼 수 있겠다.

 

  다음으로는 풍요로운 자연환경 때문이라 하겠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없으니 추위를 막기위해 두꺼운 옷이나 집이나 땔감을 모으고 비축을 해야하는 번거롭고 힘든 노동이 없다.  우기에 비를 피하는 지붕 정도에다 모기장만 있으면 사계절을 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열대몬순기후는 이런 커다란 축복을 가져다 준다.

  사방에 펼쳐져있는 드넓고 비옥한 농토는 아무때고 마음만 먹으면 3모작이 가능한 풍요로움이 넘치는 환경이 저절로 주어졌기에 의식주 해결에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뼈빠지게 들에나가 힘들게 죽어라 살어라 땀흘려 일하지 않고서도 살아가는덴 별 어려움이 없다.

 한없이 게을러 보이는  이들은 한마디로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모든일에 있어서 조용하고 행동도 전혀 급하지 않다.

  

  또 하나는 대략 6년 전까지 참혹한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50년 가까이 살아온데서 생겨난 정신적인 문제이다.  군사독재정권에 의한 '버마식 사회주의' 속에서 이들은 과나료이ㅣ든 일반 국민이든 모두가 무사안일. 무책임. 나태함. 수동적 생활태도등 부정적 요인들에 익숙해졌다.

  서로 감시하고 고발이 난무하는 삶 속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애 대해서든 책임지는 것이며, 책임지는 일이나 행동보다는 그저 수동적으로 시키는대로 따라하며 순응하는 태도여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편이라는 고정관념을 만들어냈다.  흔한말로 거리에서 열명의 사람이 모이면 그중에 둘이나 셋은 군사정권의 감시원이었다.  그런 결과가 미얀마의 남성들은 밖으로 공공장소에 나서는 것을 꺼려하게 되었고,  어떤 상황에 대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거나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그 관습이 아직까지 짙게 남아있다.

  그러다 보니 여성들이 생산적 생활현장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들의 정신문화가 바람직하게 깨어나기 까지는 아직도 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해 보인다.

 

 

 

 

 

 

 

 

 

 

 

 

 

 

 

 

 

 

 

 

 

 

 

 

 

 

 

 

 

 

 

 

 

 

 

 

 

  한참이나 지난 이제는 먼 과거속의 시간여행 같은 시장구경이었지만  그 규모나 인파에 크게 놀랐다.

  미얀마 사람들의 삶을 단면이나마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목에 호텔 코앞의 나이리론 아이스크림.  벌써 개장해서 손님을 맞고 있었는데......  그렇게 유명한데도........ 선뜻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는다.  밀크쉐이크 같은 유리잔 위로 올려진 토핑이......  우리나라 꼬맹이들 장난감 놀이하는 수준이랄까?

  솔직히 유치해 보이기까지 하는 씨츄에이션.......  베스킨로비니슨31 정도는 공항에서도 안보이던데.......

  그리고 나서 호텔에서 처음 맞는 조식......  무척 맛있다.

  나일론호텔에서,  그리고 만달레이에서 불만족스런 것이 있었다면........  여기 이 조식으로 모든것을 탕감해 주고 싶다.  맛도 정성도 최고.

 

  식사를 하는중에 어제 후런트에서 만난 매니저 왈......  '지역 입장권 사셨나요?'

  '아니요.  아직 안샀는데요?'

  '우베인 다리 다녀오셨잖아요?  임장권 검사 안해요?'

  '사람이 워낙 많아서 혼잡때문이었는지  한번도 검사 안받았어요. 아!  다리건너서 짜욱또지 파고다 입구에서 검사원을 보았는데  그 사원엔 별로 들어가 보고 싶지 않아서 안들어갔지요.'

  '어제까지는 행운이 따라주었군요?  오늘은 어디를 가시는데요?"

  '왕궁과 만달레이 힐을 돌아보려고요.'

  '왕궁 입구에 매표소가 있고  힐엔 없는데 언덕에 오르기 전 마하무니 파고다 입구에 매표소가 있어요.  혹시나 엉뚱한 곳에서 검사원 마주치게 되면 난처한 경우도 생기고 한참 돌아나와서 다시 사야하니까 잘 생각하셔서 움직이세요.'

  '감사합니다.  힐은 꼭 올라가 봐야 겠는데,  왕궁은 안에 들어가봐야 실제 별 볼게 없다고 하니......  암튼 행운에게 좀 더 기대볼래요.'

  우리는 마주보고 흐물흐물 멋적게 웃었다.

  ㅎㅎㅎㅎ.  ㅋㅋㅋㅋㅋ.

 

  미얀마에는 각 관광지역별로 '통합입장권' 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이 여행자마다 극명하게 평가가 엇갈리는 상항인데, 여행자들로 부터 합법을 가장해 강제적으로 징수해 가는 (딸러장사)라는 말이다.

  서방세계와 아직 우호적으로 수교나 무역이 활발하지 못한 상황에서 미얀마 정부의 달러에 대한 욕심은 지독하다.  비자문제에서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수수료를 보면 알수 있다.

  만달레이 지역에 들어오면 관광지 입구에서 지역입장료 10$에 의무적으로 표를 사라는 것이다.  한군데를 관광하던 열군데를 관광하던,  관광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풀 패스권을 10$을 내고 사라는 것이다.  무조건 달러로 내야한다.   그런데 여기 만달레이에서는 두 세군데의 매표소가 있는데  나의 경우  아직 표를 사지 않은 상태에서 우베인 다리를 무사히(?) 다녀온 것이다.

  관광지의 입구에  그리고 여기저기 사방에 단속원이 배치되어 있으며 수시로 귀찮을만큼 표검사를 한다.  표를 소지하지 않으면 구입하지 않은것으로 간주하고  매표소까지 죄인 호송하듯이 안내해서 반듯이 사게 만든다.  여기서는 사게 만들지만 다른데서는 아니다.

  바간에서는 선착장이나 터미널이나 공항에서 나가는 외통길에 검문소를 만들어놓고 100% 징수율의 입장권 강매를 한다.  바간은 25$나 된다.  인례호수의 경우 전용도로에서 내려타는 길목에 검문소를 만들고   새벽3시에 검표원이 버스에 올라와 직접 입장권을 강매하는데  10$ 이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폐단은 이런 이유이다.

  어떤 지역에 들어간다 해도 의무적으로 모두 다 둘러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10개의 관광지 중에서 두 세개만을 보고자 한다면 그만큼 두 세개에 해당하는 비용만 지불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불 방법도 오로지 달러를 현찰로는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미얀마 정부의 방침은 깡패수준이다.

  내 조건에 순응해서 와서 보든지,  아니면 오지 말라는 식이다.  개선의 요구들에 대해서 '그건 너희들 사정이구' 하는 식이다.

 

  국제공항에서 면세점도 제대로 변변하게 운영하지 못하는 나라.  번듯하게 내다 팔 물건이 부족한 나라 미얀마.

  가전제품이나 기계물품 옷가게는 차고 넘쳐도  정작 생필품을 취급하는 편의점이나 마트가 하늘에서 별따기 보다 보기 힘든나라 미얀마.

  도로사정이나 관광 인프라가 제대로 구성되어지지 못한것이 아니라,  아직은 그런 개념조차도 가져본 적이 없는 나라 미얀마.

  환경개선이나 위생이나 찾아오는 손님에 대한 배려를 어느정도 요구하는 것이 사치스럼게 여겨지는 나라 미얀마.

  그래도 개혁의 물을 먹은사람들이 주로 종사하는 호텔을 제외하면 거의 여행자를 봉으로 보고 뻬껴먹기에 혈안인 나라 미얀마.

  그럼에도 하나하나의 개인을 가만히 살펴보자면 순수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사는, 참으로 아이러니 투성이의 나라 미얀마.

 

  기대했던 여행에 대해 어느정도 예상대로의 만족감과,  실망스러움을 넘어 심지어 배반감마져 느낄 정도로 극명하게 엇갈리는 나의 심정.

  남은 긴 여정의 미얀마를 어찌할꼬?

 

 

 

 

  샤워를 하면서 빨래를 했다.

  시장구경에서 겨우찾아낸 구멍가게에서 조막만한 빨래비누를 하나 샀었다.  샤워실을 겸한 화장실이 방 크기와 비슷할 정도로 넓고 빨래걸이가 놓여있어서 편리했다.

  책도 보고 누워서 휴식을 취하다가 점심때가 되어서 다시 거리로 나섰다.

  왕궁을 따라 해자를 구경하면서 걸어서 만달레이 힐 근처까지 가기로 마음을 먹은 상황이었다.

  왕궁의 가장 중요 출입문은 바로 여기 서문이었다.  만달레이의 가장 번화가인 도심과 왕궁의 연결이 해자위에 걸쳐진 서문밖 다리 하나로 오고가도록 연결이 되었던 것이다.

  현재는 왕궁의 출입통로를 동문으로 제한하고 있기에 페쇄되어있는 서문을 막 지나치려는 순간에 길건너 도심쪽으로 눈에 들어오는 낯선풍경.

  그나마 현대식으로 지어졌다고 여겨지는 건물 앞에 미니버스들이 여러대 서있고 방금 전에 관광버스 한대가 막 떠나가고 있었다.

  '뭔데 저렇게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지?'

  4층 옥상 광고탑에 써있는것은 'Golden Duck' 이었다. 

  '오리집 이라는 이야긴데.....  이걸 어디서 봤드랴?'  어디서 분명 보기는 봤던 외부 풍경이었다.  서둘러 배낭을 벗고 풀어서 책자랑 수첩을 꺼냈다.  나무 그늘 아래 서서 심각하게 정보를 검색한다.  분명 어디서 봤던 기억이 남아있다.

  -- (쉐배 레스토랑) - 북경식 오리구이인 '베이징 덕'으로 미얀마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고급 식당.  만달레이 궁전 바로 앞에 있어서 식당의 2층이나 3층에서 창문을 통해 왕궁의 풍경을 내다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유명 명소.

  찾아내기는 했는데......  어쩐다?

  평소 여행을 하면서 그렇게 음식에 대한 호사를 즐기지는 않는 편이라 고민이 되었다.  더군다나 혼자하는 여행이 최고로 힘든 이유가 바로 혼자 고급식당을 드나드는 것이었는데....... 커다란 테이블에 덜렁 혼자 앉아서 밖에서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들 표정을 바라다 봐라. 미친다.  잠시 고심을 한 끝에 '까짓 오리 먹으로 북경까지 찾아가는 거서도 아닌데.....  고생하는 내 육신도 위로 좀 해주자' 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제대로 교육을 받은 종사원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가니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만달레이왕궁의 머서진 풍경이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그런데 창가로는 대부분 커다란 테이블이 놓였고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결국 창가와는 정 반대 안쪽 벽면앞 2인 테이블을 배정받고 앉았다.  메뉴판을 보니 역시나 가격대도 미얀마 상황에서는 상당히 높다.

  종사원에게 북경 오리를 맛볼수 있는 음식으로 추천을 부탁하니 '훈제 북경요리 반마리를 시키시면 제대로 모두 맛볼 수 있다'는 소개로 그 음식에 맥주를 한변 주문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 마침내 주문한 훈제 오리가 나왔다.

 

 

 

 

 

 

 

 

 

 

 

 

 

 

 

 

  모처럼 호사를 누려 보았다.

  북경까지 가서 베이징 덕을 먹어보지는 못하였지만  분명 한국에서 먹어본 것과는 무엇인가가 확실하게 달랐다.

  그리고 이 오리라는 놈이 반마리를 시켰지만 양이 제법 많았다.  결국엔 쬐끔 남겼다. 정말 맛있었다. 언제 북경가서 본토걸로 먹어봐야지.

  다시 왕궁을 따라 걷는데 멀린 (만달레이 힐)이 드디어 시야에 모습을 나타냈다.

 

 

 

 

 

 

 

 

 

 

 

 

 

 

 

 

 

  미얀마 여행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불교사원은 만달레이 언덕의 초입 갈림길에 서 있는 (짜욱또지 사원) 이었다.  '짜욱또지 파고다' '짜욱또지 파야' 라고도 부르는데..... 비얀마에서 불교유적에 대해 각기 다르게 부르는 이름에 대해서는 (불탑의 도시 바간) 이야기를 시작할 때 사아세하게 다시 설명하기로 하겠다.

  바간에 있는 (아난다 사원)을 모델로 지어진 이 절은 부처의 제자들 이라고 하는 80여개의 아라한상들이 사면으로 부처를 에워싸고 있는 형상인데 총 20개의 그러한 불탑이 군상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또 이곳의 이름인 '짜욱또지'는 여타 다른지역에도 유난히 같은 이름은 사원이 많이 있어서 쉽게 혼동하기 일쑤이다.

  잠시 둘러보고 나서 계단을 내려오면 많은 트럭택시들이 쫓아들며 호객행위를 한다.  만달레이 언덕은 그리 높아보이지는 않지만 이 무더위 속에 직접 걸어올라간다는 것은 적지않게 무리라는 정보를 이미 얻었기에 사진의 트럭 신세를 지기로 했다.

  얼마냐 물으니 흥정도 전에 1.000짯(우리돈 천원)만 내라고 한다. 그래서 주었더니 냉큼 조수석 자리를 나에게 내어준다.  그렇다면 그냥 저기 뒤에 짐칸에 타면 도대체 얼마라는 말인가?  실로 궁금했는데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사람이 가득 타고 나서야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난코스가 제법 여러군데 놓여 있었다.  차를 타길 잘했다 싶었다.

  15분 정도 험한 산길을 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만달레이 언덕 주차장에 도착했다.

  물론 나는 아직 지역입장권을 구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까짓 갈때까지 가 보기로 했다.

  만달레이 언덕 정상부는 사원으로 되어 있다.  언덕에 오른다는 뜻은 곳 정상의 사원을 방문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주차장에서 정상부의 사원까지는 에스켈레이터가 있는데  내국인에게는 돈을 받는데 여행자에게는 돈을 받지 않는다.  아마도 지역입장권에 포함시켰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그럼 나는 무임승차인가?)

  에스켈레이터에 내려 사원에 들어서려면 검사원이 책상을 놓고 떡하니 지키고 있다.  '드디어 여기서 걸렸구나' 하는데 이 검사원은 품질이 좀 다르다.  미얀마에서는 카메라를 (판도라)라고 부르는데 여기 만달레이 정상에서는 판도라 사용세를 받는다.  카메라 한대당 100짯(100원)을 받는데,  핸디폰도 카메라로 여겨 돈을 징수한다.  참말로 웃기는 나라다.  카메라세를 받는 곳은 인례호수에서 한군데 더 있다.

  핸디폰은 배낭에 들어서 카메라 비용만 100짯을 지불하고 검사대를 무사히 통과했다.

  만달레이 언덕은 해발 236M에 불과한 야트막한 언덕이다.  그만큼 드넓은 광야의 나라 미얀마에서는 제대로 된 산을 찾기가 어렵다.

  2500년 전 부처가 아난존자와 함께 바로 이자리에 올라서서 들판을 내려다보며 2400년 후에 저기에 위대한 도시가 들어설 것이라고 예언을 했었다 한다.

  예언대로 대도시를 건설한 민돈 왕은 부처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이 언덕위에 (쉐얏또 파고다)를 지었다.  흔히 말하는 말달레이 언덕이 곧 쉐얏또 파고다가 되는 것이다.

  정상에서 보면 와아궁은 물론 만달레이 도심 전체와 에이야와디 곡창지대와 샨 고원지대는 물론 사가잉과 밍군언덕까지는 매다볼 수 있다.

  한마디로 가슴이 시원하게 탁 트이는 머서진 정경을 감상할 수 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다시 시내로 가기위해 아랫쪽으로 난 계단을 한참 걸어내려갔는데......  아뿔싸.

  다른 계단을 타고 내려온 것이다.

  만달레이 언덕의 초입에서 산정상까지는 자동차로 올라온 길 외에,  민돈 왕에 의해 애초에 놓여진 1.729개의 계단이 4단계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만 그 계단을 내려오고 만 것이다.  어쩐지 아무도 안따라 내려오더라니.......

  계단 사이를 가로질러 가는 자동차 도로에서 방금 내려온 계단을 올려다 본다.  까마득 하다.  기억속에 아까 올라온 이 자동차 도로도 까마득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쩌겠는가 터덜터덜 내려가다 차를 만나면 세우는거지.

  그런데 그것마저도 착오였다.  오르고 내려오는 차마다 콩나물 시루처럼 빼곡학 사람이 타서 아무리 세워봐도 서주는 차가 없다.

  입구까지 정말로 걸어내려 가야만 하나보다.

  젊은 청년이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언덕을 올라가기에 손을 흔믈며 사정을 해 보는데.....  그냥 휙 지나 올라가 버린다.

  땀이 온 몸 가득 흐르고 점점 지쳐간다.

  그때 한 5분 전에 올라갔던 젊은 청년의 오토바이가 내려오다 내 앞에 멈춰선다.  신세 좀 져야겠다고 애걸복걸 하는데...... 이 청년 한다미도 알아듣지를 못한다.  바디 랭기쥐로 연기를 하니 멋적게 웃으며 뒤에 타란다.  얻어타고 내려오는 길과 시간이 올라갈때보다 훨씬 더 멀게 느껴진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 왔는데 갑자기 눈 앞에 책자에서 많이 보던 사원이 스쳐 지나간다.  그러더니 이내 또 다른 아주아주 익숙한 사원이 지나치기 시작한다.  난 정년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스~~~~~  또~~~~~~ 뿌.

  청년에게 소정의 사례를 하려고 지갑을 꺼내들었는데  손사래를 치던 청년은 벌써 저만치 달려나가고 있었다.

  그 청년이 내 시야에서 사라져 갈때까지 나는 열심히 두손을 흔들었다.

  때~~~~~~ 앵~~~~~~~큐.

  여행에는 이런 고마움이,  이런 감동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 다음 이야기(만달레이에서 바간으로 가는 여정)으로 이어서.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