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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알 럽 트래블 / 미얀마) 은둔의 나라 신비한 미소의 나라

by 피안재 2017. 1. 20.

 

 

 

 

 

 

 

 

 

 

 

 

 

 

  '밍글라바.' (안녕하세요 / 안녕히 계세요)

  이 한마디 인사말로만도 뭇 여행객들에게 미얀마에 대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너무도 충분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거기까지였을 뿐.... 그럼에도 미얀마는 여전히 지구상에서 흔하지 않은 몇개 남지않은 미지의 세계에 속해 있다.

  미얀마?

  버마?

  내가 미얀마에 대하여 알고싶어할 즈음에 만났던 책자엔 '은둔의 나라  신비한 미소의 나라' 라고 쓰여 있었다.

  그 표현에 어느정도는 공감을 한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지금에 돌이켜보면 (미얀마 여행)은 지극히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는 그런 여행지였다고 생각된다.

 

  - 정신(精神)이라는 무위(無爲)가 물질(物質)이라는 유위(有爲)를 압도하는 마지막 남은 은자(隱者)의 나라가 바로 미얀마.  나라 곳곳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문화유산과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자연환경을 품은 대지 위에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서 불국정토(佛國淨土)를 함께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이 표현에도 어느정도는 공감을 한다.  사실은 이런 기사를 읽었기에 그런것에 대한 기대를 한가득 품고 찾아간 머나먼 여정이었다.

  그렇게 찾아간 그곳에는 전혀 다른 이면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내가 직접 보고 느낀것에 대한 나의 주관적 표현으로, 그 모두 드러나지 않은 이면의 모습들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렇게 말하겠다.

 

  - 디지털로 대변되는 하이테크놀러지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21세기 인간들에게, 아날로그 이전의 시대에 대한 향수를 품고 스스로들 찾아 오게끔 사전 계획되고 과대포장된  여러모로  불편하고 또 어느정도  배반감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이것저것 다 따지고 깊이 생각해 본다면 당연히  기피하고픈 여행지 중의 하나가 바로 미얀마 일것이라고 나는 말하겠다.디까지나 나만의 주과나적 생각과 표현이다.  모든면이 다 그렇더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만달레이(Mandalay)는 미얀마 제2의 도시이다.

  2005년 미얀마의 군사독재정권은 수도를 양곤에서 네삐도로 서둘러 옮겼다.  정치적 군사적 등의 여러이유를 배경으로한 수도이전이었다.

  새로운 수도로서 네삐도가 미얀마의 행정중심지가 된 것은 사실이겠으나,  여전히 양곤은 미얀마의 정차 경제의 중심지로 남아있고, 제2의 도시인 만달레이는 문화와 종교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고있다.

  약 2.500년전 부처께서 아난존자와 함께 다녀가셨다는 이 유래 깊은 도시는 미얀마의 북쪽지방으로 에야와디강 동쪽 퇴적지대를 기반으로 건설된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도심의 중심에 정사각형의 왕궁이 있었으며,  거의 완벽하게 재조성된 성벽과 선벽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와 동서남북의 문루가 있는데 현재는 동문을 통해서만 관광객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드나들 수 있다.  성곽 안의 볼거리는 거의 전무하다.  왕궁은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겨우 그 흔적만 남아있다.  왕국의 서문밖 해자를 건너면 영국식민시대에 조성된 도심의 중심부가 펼쳐진다.  시내 곳곳에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하지만 정작 이름난 유적지들은 만달레이 도심권에서 많이 벗어난 인근 지역들로, 사가잉. 아마라뿌라. 잉과. 쉐보. 뻥우린 등이 있다.

  하지만 미얀마 제2의 도시라 해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도심은 결코 아니다.

  양곤과 신흥수도인 네삐도의 중심가에 들어서고 있는 빌딩들 말고는 그 어느곳에서도 빌딩군이라는 표현에 걸맞는 곳이 미얀마에는 없다.

  대부분 미얀마 전국토의 수준은 70년대 대한민국에서 새마을사업을 막 시작하던 즈음의 시절로 되돌아갔다고 여기면 무난할 것이다.  이곳 만달레이 같은 대도시 분위기가 80년대 초의 대한민국 지방 소도시 분위기라면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만달레이 같은 대도시의 도심은 그나마 사람이 몰려들어 얽히고 설켜서 사는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여타의 다른 도시들은 한마디로 엎타운과 다운타운의 기준이 애매하다.  쉽게 말해 도심 번화가라는 의미를 찾아보기 힘들정도라는 말이다.

 

 

  아무튼 방콕의 돈무앙 공항을 떠나서 뜨거운 한낮에 만달레이에 도착을 했다.

  - 아저씨, 저랑 합승하실래요?

  등 뒤에서 한국말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방학을 맞아 동남아를 여행중인 청년이었다.  내 배낭에 태극기를 보고 선뜻 나에게 말을 걸어볼 용기가 생겼다고 한다. '쉐어 하실래요' 라는 말만 듣다가 '합승하실래요' 라는 말이 정겹게만 느껴졌다.

  문제는 목적지가 같아야만 한다는 전제가 따르는것이 정상인데  지금 나에게는 그것도 문제가 안되었다.  청년은 게스트하우스가 에약이 되어있다.  그곳이 도심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함께 택시에 올랐다.  아직 숙소예약이 되어있지 않은 나였기에 그 청년의 숙소에 함께가서 마음에 드는 방이 있으면 아무때고 체크인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청년은 예약을 확인하고 체크인을 했는데,  아쉽게도 우리는 그쯤에서 헤어져야만 했다.

  게스트하우스 전체가 도미토리로만 운영되는 곳이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기준과는 너무 동쩔어진 분위기였다.  아쉬워하고 미안해 하는 청년에게 좋은 여행하라고 당부하고는 헤어졌다.  자기 아버지 보다도 연장자인 내가 이렇듯 당당하게 혼자 여행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충격적이라고 나에게 실토를 한다.  (정말 그런가?)  어떻게 생각하면 이쯤에서 헤어지는게 서로에게 좋을것이라는 생각도 가졌다.  너무 나이차이가 나면 시간이 지날수록 하루이틀일지언정 함께 움직이는게 점점 어색해지고 부담스러워지는 것이다.

  지도를 펼쳐놓고 현재 나의위치부터 파악했다.

  여러 정보를 통해서 그나마 만달레이에서 다소나마 만족스럽게 지낼수 있는 숙소들로 메모해 놓은 수첩을 꺼내들고 지도와 비교하며 찾아본다.

  잠시 고민 끝에 (나일론 호텔)을 목표로 정했다. 

  지도를 살펴보니 찾아가는 것은 무리가 아니겠는데  거리가 제법 된다.  오토바이 삐끼들은 연실 덤벼들고.........  나는 과감히 무거운 배낭을 둘러메고 32도의 무더위와 태양이 작열하는 도심의 도로위로 나섰다.

  - 아니.....  이게 도심 맞아?  저 앞에 보이는 것이 왕궁의 서쪽 벽면일텐데.......  그럼 여기도 번화가여야 하는것이 아니야?

  -  만달레이라면 적어도 우리나라의 부산 아니야?  이 분위기는 부산의 언제?  해방 직후에?  오.마.이.갓.

 

 

 

 

 

 

 

 

 

 

 

 

 

 

 

 

 

 

 

 

 

  방콕을 돌아다니면서도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상상도 못해봤다.

  아니 베트남에도 이런 풍경들은 없었다.

  세상에나........

  하지만 어쩌겠는가?

  여기는 미얀마이고  나는 지금 만달레이의 도심을 걷고 있었던것을.........

 

 

 

 

 

 

 

 

 

 

 

 

 

 

 

 

 

 

 

 

 

 

 

 

  노점 구경을 하면서 걷다가 주점부리도 해보았는데  사진속의 얇은 부침개 같은것이 맛이 고소하고 바삭바삭한게 기가막히다.

  만달레이 도심의 중심부에 들어섰다는 표시인 영국식민시대에 만들어 놓은 시계탑(워치타워)이 보이면 목적지에 다달았다는 의미이다.  바로 그 다음블럭 모퉁이에 바로 나일론 호텔이 있으니 말이다.

  이 대목에서 (나일론 호텔) 모처럼 꽤 괸찮은 숙박지로 소개해 보자.  자유배낭여행자라면 만달레이에서는 나이리론 호텔을 강추한다.

  왕궁 서쪽 모서리부분에 가깝게 위치한 이 호텔은 우선 만달레이를 여행하기에 썩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택시나 행인들이 나일론 호텔을 알고있지만 혹시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당황하지 말자.  만달레이에서   남대문만큼이나 유명한 곳이 (나이리론 아이스크림가계)인데 이곳이 나일론 호텔과 코를 맞대고 있다.  나일론 아이스크림을 찾으면 그 앞에 호텔이 있다.  너무도 우명한 나일론 아이스크림은 우리가 아는 아이스크림과는 다르게 허접한 토핑이 식감을 떨어트릴것만 같은 유리잔에 든 밀크쉐이크 모양이다.

6층건물의 호텔은 엘레베이터가 없다.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건축한 지도 오래되어서 좀 낡았다.  침구는 나름 깨끗하게 세탁하고 정리정돈을 하였지만,  구형 티비에  겉으로 들어난 수도배관 파이프들 위에는 찌든 먼지가 수북하다.  에어컨도 낡아서 소음이 제법 난다.  상큼한 환경이라고는 절대 말못하겠으나  완전재유배낭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도미토리에 비하자면 제법 너른 독방을 에어컨과 샤워실까지 가지고 지낼 수 있는 장점이라면 장점이 있다.  직접 찾아가니 아고다 보다도 조금 더 저렴하게 해준다.  스탠다드 더블룸이 1박에 15$씩 이기에 이틀을 예약했다.  물론 거기에는 조촐하나마 부페식으로 준비해 주는 아주 정성 가득한 조식이 포함되어있다.  나일론 호텔의 여러 부족한 점들은 너무나도 친절한 종웝원들과 맛깔스런 조식으로 모두 해소가 되고도 남았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숙소에 배낭을 내려놓자 마자 밖으로 나왔다.

  길건너 가까운 곳에 아주아주 허름해 보이지만 손님이 끊이질 않는 식당이 있어서 찾아갔다.  너무도 힘들고 허기가 졌던지라 처음대하는 미얀마 음식임에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시켰는데......  별로였다.  옆테이블에 다른 여행자가 먹고있는 음식이 참으로 맛있어 보였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드러누워서 티비로 뉴스를 보자니 뉴스에 한장면씩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대통령 탄핵의 소식이 꼭 한번씩은 나온다.

  맥주를 두 병이나 마시고  드러누었다 샤워를 하고......  잠시 잠을 청해보지만 도무지 잠이 올것 같지가 않다.

  안내 책자와 지도와 노트를 꺼내놓고 또 공부(?)를 한다.

  -  까짓꺼.....  이제라도 서둘면  우베인 다리의 일몰을 볼 수 있겠잖어?

  배낭까지 뒤져서 (우베인 다리)에 대해 모아놓은 정보를 찾아낸다.

  -  좀 피곤하긴 하지만......  다녀와서 푸짐하고 맛나게 저녁 먹고 푹 자면 될것 아니야?  가자 우베인으로..........

 

 

 

 

 

 

 

 

 

 

 

 

 

 

 

 

 

 

 

 

 

  만달레이에서 남쪽으로 11km 떨어진 곳에 따웅떠만 이라 불리는 커다란 호수가 있다.  본래 이곳은 아마라뿌라 라는 고대도시가 있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따웅떠안 호수에 인접해 빠또도지 파고다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고대 도시의 중심였던 곳이다.

  하지만 이곳을 정작 유명하게 만든것은 바로 빠또도지 파고다를 지나면서 모습을 드러내는 (우 베인 다리 : U Bein Bridge) 때문이다.

  미얀마를 여행하는,  적어도 만달레이를 다녀가는 여행자들이 빼놓지 않고 다녀가는 관광명소가 바로 이곳이다.

  그리스의 산토리니만큼 명성을 얻고있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미얀마를 통털어 바간의 일출 일몰과 더불어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여기 우베인 다리의 일몰광경이다.

  호텔을 나서자마자 우루루 오토바이 택시들이 모여든다.

  이 시간쯤에 호텔에서 나서는 여행객이라면 다들 어디를 고고자 하는 것인지 이들은 익히 알고있다.

  '우베인' '우베인' 하는 이들에게 가격 흥정을 해본다.

  7.000 짯(7.000원 정도. 비슷한 화페단위)을 부른다.  바가지 상혼에 온통 쩌들은 사기꾼들에게 여행자는 그저 봉으로 보이나 보다.

  '2.000짯' 이라고 대답하니 모두가 하나 같이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들이다.  내 눈엔 저들 모두가 어처구니가 없어 보였다.

  '너희들 오토바이를 하루종일 렌트하는 비용이 7.000~8.000 짯 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호텔 매니저 불러서 확인해 줄까?'

  내가 결코 호락호락한 봉이 아님을 알아챈 삐끼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간다.

  집요하게 끝까지 남은 기사가 '우베인 왕복을 5.000짯'에 하자고 한다.  일몰을 보고 나면 어두운 밤길을 달려야 하기 때문이란다.

  여기의 밤길이 험악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이 기사와 약속을 하고나면 우베인 다리의 일목을 매 마음대로 느슨하게 여유있게 즐길 수가 없게된다.  그래서 나는 원 웨이(편도)를 요구하고 결국은 3.000짯에 합의를 했다.

  시골로 나가는 외곽도로가 비록 포장은 되었다고 하나, 행인들이 그냥 도로를 건너다니고,  넘쳐나는 오토바이며, 트럭 버스며,  심지어 가축들까지 그냥 무단 횡단을 하는 말뿐인 시골 포장도로를 뽀얀 먼지를 그대로 홀랑 뒤집어 쓰며 30분 이상을 달려 마침내 빠또도지 파고다 앞에 이르렀다.

  저만치 시야에 보이는 것이 그동안 사진에서 숱하게 보아온 우베인 다리임이 틀림이 없다.  이곳에서 다리 입구까지는 좁은 길 양편으로 길게 노점들이 늘어서 있다.  음식점과 기념품을 파는 가계가 주류를 이룬다.

  '여기서 기다린다면 돌아갈때 또 내 오토바이를 이용해 주겠느냐?'며 기사라 집요하게 매달린다.  '나는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만약 당신이 그때까지 기다려 준다면 그때도 3.000 짯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하며 기다릴 장소도 약속을 했는데......  내가 되돌아 나왔을때 그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아마도 운 좋게 어느여행객을 꼬셔서 바가지를 듬뿍 씌우고 훌쩍 먼저 떠나갔나보다.

  순수한 마음의 불국정토를 꾸려가는 사람들이라고?

  미얀마라는 국가는 온통 딸라($)에 굶주린 하이에나 같고........

  여행객을 상대하는 직업의 종사자 절반 이상은 체면도 자존심도 모두 팽개치고 먼 미래 보다는 눈앞의 현금에만 혈안이 된 시전 잡배로 전락한 무리들일 뿐이었다.  처음엔 측인지심이 발동했고,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한심들 했고, 좀더 시간이 지나면서 생겨나는 배반감을 넘어서는 혐오감마저 일으키는 저들의 눈초리는 '그 마저도 내 알바가 아니라는 태도'이다.  그것이 오늘의 미얀마였다.

 

  노점이 늘어선 골목 입구에서 부터 인파로 넘쳐났다.

  나 같은 외국에서 온 여행자들 뿐만이 아니었다.  수학여행단에서 불교성지 순례를 하는 내국인 여행자까지 그야말로 어디 마음대로 발디디고 앞으로 나갈 틈새마져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아직 일목 시간이 좀 더 남은 이른 시간이었기에 한낮의뜨거운 열기는 아직까지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누군가  현재 온도가 34도를 가리키고 있다고 한다.

  미얀마에서의 첫 식사였던 아까의 점심이 부실해서 였는지 갑자기 또 허기가 몰려든다.

  그냥 점포 뒷마당에 앉은뱅이 탁자와 테이블이 놓인 노점 식당에서 옆사람이 먹는 볶음밥 비슷한것을 시켰다.  근데 무척 맛있다.

  한국은 계란 파동이 시작되었다는데 게란 후라이가지 올라있다.

  작은 게며 민물새우며 멸치류를 튀겨서 파는데.....  먹어보니 기가막힌 주점부리다.  캔맥주 하나까지 후딱 해치우고 다리로 향한다.

  다리 입구까지는 북적대고 있었지만.....  너무도 뜨거운 날씨 때문인지 조금 나아가다 보면 이내 다리의 중심부는 한산해 진다.

  그제사 주변의 풍광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우베인 다리.........

 

 

  일몰로 유명해진 이 다리는  따옹떠만 호수를 가로지르는 길이 1.2 km의 거대한 목조다리로 그 수명이 장장 200년이나 되었다.

  이곳을 기반으로 번성하던 아마라뿌라 왕조가 쇠퇴하자 뒤에 들어선 왕조는 이곳의 왕궁 건축자재들을 뜯어다가 만달레이의 궁성 건설에 사용했다.  이곳은 이제 옛 영화가 모두 사라진채 흉물스런 흔적만 남았을 뿐이었다.

  그때 이곳을 다스리던 최고관리 (우베인)인 이미 뜯겨진 왕궁에서 1.086개의 티크목재를 찾아내서 이금의 이 다리를 만들었다 한다.

  80년대까지 미얀마의 주요수출품목이었던 티크목재는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직접 관리하는 특급 자원이 되었다.  나무를 베어서 처음에 제대로만 말리면 그 후로는 시간이 지날수로 점점 단단해지는 아주 특별한 재질을 가지고 있다 한다.  하여 영국이 식민지 개척을 위해 세웠던 동인도 회사 소유의 모든 배는 바로 미얀마 티크목재로 만들어졌다 전해진다.  심지어는 제대로 말린 티크 목재는 총탄도 뚫지 못해 고대로 부터 갑옷의 재로로 쓰였다고 한다.  200년이 지난 시점에도 우베인의 다리 난간은 여전히 견고하고 단단하게 우뚝 서 있다.

  우베인의 일몰이 특히 아름다운 것은 따옹떠만 호수에 조각배를 띄워 놓고 그 배 위에서 바라보는 일몰을 최고로 친다.

  그런데 지금 12월 말은 이곳이 건기로 접어든지 제법 시간이 지난 터라 호수는 바닦을 드러낼 정도로 메말라 있었다.  말라버린 호수는 매우 더럽고 악취마저 풍긴다. 한무리 오리떼를 키우는 농장으로 전락해 버렸다.  종국에 얼마 남지않은 호수물에 가득 배를 띄운 사진여행자들의 풍경이 더 신기한 장관으로 보여지는 풍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미얀마 여행은 대부분 건기에 피크를 이룬다.  그나마 온도도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느낌을 주고  쏟아지는 폭우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역의 특징인 열대우림지역의 특징적인 풍광의 맛과 멋은 반감된다.

  예쁜 풍경과 사진을 위해서는 우기에 모험을 감수하는 것이 정말로 빼어난 미얀마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좀 고생이 되어도 미얀마의 본 모습을 감상 할 수 있는 우기의 중간이 한여름의 미얀마 여행은 권하고 싶다.

  건기의 미얀마 여행은 얻는 것보다 포기해야 하는것이 더 많은지도 모르겠다.

  호수가 말라버린 우베인의 일몰 또한 그중 하나이다.

 

 

 

 

 

 

 

 

 

 

 

   --- 가급적 우베인 다리를 찾으면 치마를 입지마라.  다리 아래서 카메라 렌즈로 올려다 보면 당신의 언더웨어가 적나라 하게 그대로 드러난다.

 

 

 

    --- 말라버린 드넓은 호수 바닦엔 건기를 이용해 땅콩을 재배한다.  실로 엄청난 면적이다.  그만큼 가믐이 심한 시기가 바로 건기이다.

 

 

 

 

 

 

 

 

 

 

  -- 내가 다리를 건너갈 때부터 눈만 내놓고 전신을 천으로 감싼채 한자리에서 시간반 이상을 일몰을 기다리며 앉아있던 여인.  한국 중년인으로 짐작됨.

 

 

 

 

 

 

 

 

 

 

 

 

 

 

 

 

 

  우기에 찾아온 우베인 이었다면 더 환상적이었을 것을..........

  밤새 소낙비가 쏟아지다가 한낮에 그치고......  오후들어 쨍하고 햇볕이 가득한 어느 여름날 맞는 우베인의 일몰이었다면.......

  이래서 좀 힘들고 번거로와도.....  사람이 혼잡한 성수기를 피해서,  또 기상악화를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찾아다니는 나만의 좀 특별한 여행이 더 진가를 발휘할 때가 있나보다.

  땅거미가 내려앉아 그렇게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려니 일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느긋하게 인파가 좀 빠져나가기를 기다려 도로로 나와 또다시 오토바이 기사와 밀당을 한다.  가히 이제는 나도 밀당의 귀재가 되어버렸다.  기사는 낮춰서 4.000짯이 맥시멈이라 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나갈 오토바이가 없다고 협박하고,  나는 2.500짯 제시에 까짓거 밤을 새워 걸어가는 것도 불사하겠노라 으름짱을 놓고.......  저기 봐라.  종당엔 빈차로 허탕치며 돌아가는 너희도 생기는것이 아니냐?

  종국엔 3.000짯에 성공해서 오토바이에 올랐는데.......  그야말로 생지옥에서 운수업에 종사하는 극한직업의 역꾼이 바로 이 오토바이 기사였다.  움푹움푹 패인곳이 흔한 말뿐인 포장도로.  신호등이 없이 사방에서 밀고들어오는 홉잡한 교차로.  그 와중에 속도를 높여 치고 나가는 트럭택시와 자가용들.  무조건 부딪치면 커다란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아니나 다를까.  혼잡한 두군데의 지점에서 피를 쏟으며 길바닦에 나뒹구는 오토바이를 목격했다.  나를 태운 노련하고 성실한 기사는 무사히 나를 나일론 호텔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나는 서슴없이 지갑에서 4.000짯을 꺼내서 건넸다.  순간 기뻐하는 기사의 표정이란.........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그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쩨주 띤바대.  쩨주 띤바대.'(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샤워를 하고 간편한 복장으로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참으로 불편한 것중의 하나가 미얀마에서는 온동네를 뒤져보아도 슈퍼는 둘째치고 구멍가계조차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일단은 식당에 들려서 제대로 된 저녁식사를 했다.  낮에 먹었던 것에 비하면 무척 만족스러웠다.

  그리곤 주인에게 물어서 마트를 찾아나섰다. 두 블럭쯤을 돌아가서 마침내 찾긴 찾았는데,  우리나라 24시간 편의점 같이 생긴 마트가  아주 작고  취급하는 품목도 아주 간소하다.  술과 담배는 있는데   심지어 과일 조차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런데 술값은 싸다.

  결국 맥주 두병에 럼주를 한병사고,  안주는 쏘세지 비슷한 것이랑 과자 주점부리를 좀샀다.

  내일 부터는 해지기 전에  어디 멀리 떨어진 시장을 찾아가서 라도  와인과 포도를 먼저 사두어야 겠다.

  그런데 다음날 부터  미얀마를 떠나오는 날까지......  미얀마의 모든 대형마트와 상설시장을 통털어   포도를 파는 곳은 아주아주 지극히 소수의 가계였다.  거기다 과일중에서 가장 비싼.....  한국의 물가와도 비슷한 정도의 가격이 포도 가격이었다.  그래서 결국 미얀마 여행에서는 포도는 포기했다.  와인은 있되  포도는 흔치 않은 나라가 미얀마였다.

  이러니 나에게 좋은 평점을 받기는 아예 글렀다.

  '싸고 질 좋은 와인에 맛있는 포도가 넘쳐나는 곳이 정말로 훌륭한 여행지다'  라는 것이 나의 평소 지론이고 보면 이런 상황은 당연히 적지않게 당혹스럽다.

 

  많이 기대했던 미얀마에서의 첫 하루가 이렇게 지났다.

  우베인에서 돌아오는 길에 겪은 교통사고 상황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미얀마에 대한 기대와 현실을 깊게 생각하면 할수록 자꾸만 혼돈처럼 흔들렸다.

  쉽게 잠을 이룰수가 없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다음 이야기에 이어서.  피안재.